전자책은 아이폰에 다운받아 보기도 하고 킨들로 읽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종이책만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일단 전자책 서재는 실제 서재처럼 시각화가 어렵다. 서재에 꼭 반듯하지 않아도 손때 묻은 책을 꽂아두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일이다. 어떤 기억을 꺼내 보거나 어떤 비교와 대조가 필요할 때 전자기기를 켜 전체적인 그림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육백여 권의 책을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하며 전자책에 집중해보자,던 생각은 많이 흔들리는 중이다. 편혜영의 신간 판형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세로 판형이 길고 전체적으로 얇고 크지 않은데 품고 있는 자간도 좁지 않고 활자도 보기 시원하다. 이 맛에 종이책을 떠나지 못하나 보다.



내친 김에 킨들 크기와 비교해 보니 거진 비슷하다. 킨들의 최대 단점은 한글책의 절대 부족과 터치감이다. 반응이 한 박자씩 늦다. 활자를 키우고 줄이는 기능과 영문 신간의 접근성은 좋지만 아무래도 나의 영어 실력 부족과 게으름은 서재에 종이책을 쌓는 일과 전자책장에 먼지 앉는 책들을 채우는 일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하다. 조금만 읽다 재미가 없으면 별 죄책감 없이 중단하는 경우가 킨들에서 더 많다. 바로 클릭만 하면 결제되는 기능 때문에 막내 아이가 킨들을 가져가 사정없이 결제해 버린 것들 수습하는 과정도 귀찮다. 킨들은 고도의 출판계의 상업성과 문학의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것 같다. 책을 이렇게 손 안에 다 들어오게 하는 과정을 그저 터치 하나로 가능하게 하다니 일말의 망설임도 차단하는 영리함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쌓이는 책의 물성을 못 느끼니 그저 클릭 하나만으로 전자책 서고는 배가 빵빵해진다. 


종이책은 내용의 물화가 아닌데 언뜻 손에 잡히는 한 장이 그 허구에 한 뼘쯤 더 다가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종이책 욕심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손안에 들어오는 그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은 여전히 떨칠 수가 없다. 줄도 긋고 간지도 붙이고 그렇게 이제 남한테 넘기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고 나면 마치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은 심한 착각이지만 그 착각조차도 좋다. 


이러다 또 전자책으로 가기도 한다. 언제까지나 활자만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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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5-1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서재에 책 표지 말고 책등으로 정렬해서 책꽂이처럼 보이게 하는 기능이 있나요?

blanca 2018-05-13 00:5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깨비님. 제가 못 찾는 걸 수도 있는데 알라딘도 그렇고 킨들도 책등은 아니고 책표지 정면으로 구입책이 보이네요.

Nussbaum 2018-05-1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blanca님이 올리는 페이퍼를 보면 저와 유사한 취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전자책은 너무 쉽게 주문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저도 킨들과 리디북스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TV 속에 나오는 어떤 연예인. 이상형이지만 만날 수 없고, 대화할 수도 없는.

blanca 2018-05-13 01:01   좋아요 0 | URL
리디북스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공간과 나중을 좀 저리 치워놓는다면 그 종이책이 주는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좀 즐겨도 되지 않을지. 아, 저희 아이가 제 맹점을 정확하게 알아서 비싼 책 막 클릭해서 다 결제해 놓고 도망가요. ㅡㅡ 절대 킨들을 손 닿는 곳에 두면 안 되겠어요.

세실 2018-05-1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활자가 좋아요.
줄 긋고, 띠지 붙이고.....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착각^^
책을 구입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blanca 2018-05-13 01:06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전자책도 하이라이트를 할 수 있지만 그게 참 손으로 쭉 긋는 느낌이랑은 다르고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도 불편해요.

psyche 2018-05-1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자책 종종 읽지만 물론 종이책이 훨씬 좋아요. 그래도 환경때문에 어쩔수없이 전자책을 읽게 되고 또 그렇게 읽다보니 익숙해지네요. 워낙 집순이라 그런지 집에서 클릭만으로 도서관 책 빌리고 반납도 자동으로 되는것도 장점이에요.
그리고 저는 와이파이를 끄고 써요. 도서관책은 컴으로 연결해서 옮기니까 와이파이 쓸 필요없구요. 와이파이 꺼놓으면 밧데리가 오래가거든요. 블랑카님도 꺼두시면 아드님이 팍팍 결제하는 걸 막으실 수도 있겠네요

blanca 2018-05-14 01:57   좋아요 0 | URL
아, 프시케님, 저 와이파이 꺼두는 것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 2018-05-1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초에 여행가면서 크레마 사운드 구입해서 페란테 시리즈는 아주 야무지게 잘 읽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 크레마 사운드는 어디엔가 잘 있습니다 ㅠㅠ

저도 아직은 종이책이 좋고요. 전자책은 읽어주기 기능이 아주 좋던데, 그건 핸드폰으로하다 보니까...
언제쯤 전자책이랑 친해질까요~~~~

blanca 2018-05-19 02:07   좋아요 0 | URL
오, 페란테 시리즈를 전자책으로 다 읽으셨어요? 저는 아직 페란테는 안 읽어봤는데 궁금하네요. 아우, 저는 종이책이 훨씬 좋아 큰일이에요. 다시 또 책 욕심이...안 그래도 읽어주기 기능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전자책은 글자 키우기 기능은 좋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 노안이 오면(안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보지만) 전자책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8-05-19 09:42   좋아요 0 | URL
아이구.... 다는 아니구여.
제가 정확히 못 했네요. 1권은 이북, 2,3권은 도서관책으로, 4권은 구입해서 읽었어요.
그 때 막 크레마를 구입해서 익숙하지 않았는데 페란테 덕분에 크레마랑 많이 친해졌죠. 크레마 전도 친구도 크레마 처음 사용할 때 쭉쭉 읽히는 쉬운 책(?)으로 시작하라 권하더라구요.
그나저나 우리의 종이책 사랑ㅋㅋㅋㅋ
종이책이여, 영원하라!!!

transient-guest 2018-05-1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책에 관심이 쪼끔 있는데 절판된 책이나 ebook으로만 나오는 책, 그리고 PDF로 갖고 있는 고전무협지 같은 걸 제대로 보고 싶어서에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킨들로 한국책을 보는 건 꽤 어렵다고 하네요. 역시 크레마를 구해야하는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종이책이 더 좋아서 사실 전자책에 가는 관심은 딱 이 정도의 목적 때문입니다.ㅎ

blanca 2018-05-19 02: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킨들은 한글책은 전무하던걸요. 고전무협지가 PDF로 소장할 수 있군요! 한글책과 영어책 다 마음껏 지르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지가 않네요.
 
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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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의 법정에 나온  유대인들을 학살한 전범들은 희대의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도 가정에서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자 자애로운 아버지인 경우가 많았다. 상부조직에서 하달 받은 명령을 기계적으로 집행했다고 항변하는 그들의 모습은 타인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도 끝내 이어나가고야 마는 생존의 가차없는 모순의 체현 그 자체였다. 살기 위해 살고자 하는 이를 죽인다는 것만큼 자기 기만적인 비극의 전형이 있을까? 타인의 숨통을 끊어야만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삶이라니... 편혜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퇴락일로인 소도시의 종합병원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곳이 아니었다.






無主空山


무주는 특별하지 않다. 무언가를 전적으로 주도하거나 집행하거나 모의할 그릇은 아니다. 그의 시계는 생존과 타협, 도덕률과 공명심이 혼재되어 있는 영역에 걸쳐 있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타의로 사직하여 이인시의 선도병원의 관리부 구매 담당으로 내려온 그는 우연찮게 내부고발의 주역이 되어 비교적 친근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던 이석과 척을 지게 되고 동료 직원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그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단단하지 않은 지반에서 허룩한 생존의 촉수를 뻗치며 그저 살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무정형의 모습이다. 그래서 언뜻 그는 일관성도 융통성도 깊이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제는 무기력하게 부정의 공모자가 되고 오늘은 친한 동료의 비리를 고발하고 내일은 병원비가 체납된 노인의 침상을 강제로 치워버리는 무자비한 모습의 혼재가 오늘날의 어쩌면 가장 실감나는 비열하고 던적스러운 인간형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주인공이면서도 사건의 직접적인 동인의 저력은 없는 배경으로 저만치 물러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무주는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때로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는 우리와 닮아 있다. 그는 생의 모순 그 자체다. 낯설지 않다. 우리는 도저히 우리의 변화를 우리의 그 무일관성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연속선상에 도열해 있지 않다. 산다는 일은 참으로 비논리적인 일이니 말이다.




利析秋毫


"이석은 평판이 좋았다."는 첫 문장은 이석을 가장 잘 요약하여 소개한다. 이석은 언뜻 두루뭉술해 보인다. 직장에서 시덥잖은 농담을 잘 던지고 수완이 좋아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람. 적당히 비겁하고 적절히 타협하는 그 지점에서 마치 삶의 기술 그 자체를 연마한 듯 보이는 능구렁이. 하지만 그는 이미 무주가 그곳에 당도하기 이전부터 삭아내리고 있었다. 이석에게는 아픈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의 숨통을 끊지 않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은 정직하게 받은 고정 급여로 충당불가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그의 횡령과 부정부패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정당화의 지점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연민은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무주에게도 혼란스럽다. 이석은 아이가 아프기 전부터 나빴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는 더 나빴다. 그러나 결론은 이석의 비리를 고발한 무주는 이석의 생의 기반을 흔들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가책에 시달린다. 이석의 삶은 무주의 그것과 고통의 대비 효과로 표면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그의 그것은 그의 행위를 헛된 공명심이자 이기심으로 폄하하는 근거가 된다. 이석의 고통은 이석의 부정을 어느 정도 용인하게 만들고 도덕률과 생존이 부딪힐 때 그 불투명한 경계는 뭉뚱그려 뭉게진다. 가치 판단과 대의는 생존 앞에서 흔들린다. 절대선과 절대악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며 읽는 이를 갈등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작가는 물러서지 않는다. 편혜영은 우리가 이미 우리 자신에서 무주와 이석을 찾아내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미 충분히 감정을 이입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상황논리를 더듬고 있는 독자를 예상한 듯하다. 작가는 마침내 이기고 만다. 때로는 생 그 자체가 가장 도덕적 판단의 준거가 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생을, 그 사람이 아이를 품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생을 뒤흔드는 결론은 엄혹한 도덕적 심판에서 빗겨간다. 아이를 살게 하는 힘 그 자체가 도덕으로 여겨질 때 부수적인 모든 행위는 용인되며 도덕적 공황, 진공 상태가 수반된다.



골리앗 크레인


<죽은 자로 하여금>에 조선업의 퇴락으로 유령도시로 전락해 가는 이인시의 모습은 한때 눈부셨을 골리앗 크레인의 흉물스러움으로 환유된다. 시장의 논리가 밥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그 생에 대한 초라한 곡진함은 이미 이용 가치를 상실한 크레인의 모습 앞에서 무너진다. 그 거대한 크레인의 비극의 정점은 한때의 은성함이고 그것을 실제 경험하고 목격한 이석의 삶의 전락과도 만난다. 우리 모두는 한때 빛났다. 그러나 생의 본질은 그것은 아니고 생의 추락은 도저히 예습할 도리가 없다. 생의 내리막길은 비로소 생의 비의를 노출함으로써 더욱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살고 싶고 살아나가고야 만다. 골리앗 크레인은 거슬리지만 거기 그렇게 완강하게 스스로 버팀으로써 실재를 노출한다. 





병원


선도병원은 꺼져가는 생의 불꽃을 재점화하는 의학의 숭고한 현장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다. 노인요양시설을 지어 유령도시가 되어 버린 지역에서의 이윤의 추락을 만회하기 위하여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현장은 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놓았냐고 행패를 부리는 아들이 달겨든 곳이다. 환자가 위험한 순간에 빠질 뻔했던 주사 투약 사건도 병원의 명예 앞에서는 번거롭고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다. 생과 사가 넘나들던 소격서는 큰 판돈이 들어올수록 기대하는 한탕이 커지는 노름판이었다.





초인을 기다리다


무주도 이석도 병원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사무장도 다 떠나고 남은 병원 안 직원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다시 생을 이어나갈 수 있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워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살기 위해서 건강하지 않은 시스템에서 부정을 저지른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그 오염된 시스템의 공백을 다시 채울 또 다른 초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은 정의로운 초인은 그들이 정확히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초인은 생존의 바퀴를 부드럽게 굴러가게 할 기름칠을 마다하지 않을 이다. 적응해 왔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시스템의 틀 안에서 숨 쉬게 할 자이다.  이미 또 다른 무주, 이석, 사무장은 그렇게 다른 어딘가에서 이 자리를 메우려 이미 출발하고 있을지 모른다.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게 하려고 그 절망의 악순환은 오늘도 그렇게 끝을 모르고 계속 되고 있다. 산 자로 하여금 살게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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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1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여와 낭비가 허용되지 않는 나이듦은 참 피곤하고 서글프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낮잠을 좀 자도 낭비를 좀 해도 시간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괜찮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의 지평선이 보이기 때문에 심히 죄책감이 든다는 것. 스무 살의 하루는 길고 또 길어 하루 종일 자고 종일 친구를 만나 아무 의미 없는 동어반복적인 수다를 떨어도 다 용서가 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도 소비도 시간도 모두 딱딱한 경계로 나뉘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짜기가 있고 따라서 가치 평가가 항상 따라온다는 것. 너무 피곤하다. 낭비하고 싶지 않고 무의미하고 싶지 않다는 그 달성할 수 없는 목표 안에서 일상의 따뜻한 평안함은 멀다. 갑자기 김연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물가물하지만 청춘의 특권이 시간이라는 말. 종일 책을 읽고 쓰고 또 써도 무한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에 관련한 단상이었던 것 같다. 시인 김연수는 시를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그래도 시간은 또 남고 남았다지.















분명 스무 살의 시간과 마흔 살의 시간의 양적 실체는 다를 바 없을 텐데 이렇게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참 선뜩하다. 김연수가 사십 대가 가지는 무게에 관련해 했던 이야기도 다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오십 대는 어떤 건지 슬슬 쓰기 시작할 때가 됐는데 왜 신간 소식은 없는 것인지... 예습할 수 있게 반드시 먼저 살아보고 얘기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나는 귀가 얇고 삶은 닮기 마련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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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중에 김연수 선생님도 이름과 얼굴을 다 아는 김연수 빠가 있습니다. 김연수 선생님 일본 일정에 맞춰서 일본 놀러가는 무시무시한 친구인데요.

한참 작품이 안 나온다고 탈덕을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야 안 그럴 거 뻔히 알지만, 어쨌든 팬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네요...

blanca 2018-05-04 09: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가 분명 신부와 관련한 역사 소설 집필 중이라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었는데 소식이 없네요. 친구분 대단하시네요. 다시 돌아오셔야 할 텐데요. ^^

프레이야 2018-05-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달 전 김연수 강의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이야기의 내용도 태도도요. 백석 관련한 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하던데요.
달라진 시간의 질감, 실감해요 ^^

blanca 2018-05-05 03: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 저는 실제 강연을 들어보거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어 부럽습니다.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라니... 백석 관련된 이야기를 김연수의 문장으로 읽는 맛도 색다르겠네요.

페크pek0501 2018-05-05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것이 선배 작가들이 자신이 밟아 온 길에 대해 쓴 책이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참고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직업은 그런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blanca 2018-05-06 23:4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언어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전수할 수 있다는 건 공력이 드는 만큼 그 점에서는 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8-05-1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김연수작가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잘 다가와주지 않네요. 뭔가 저하고 안 맞는건지..-_-: 제가 나이를 느끼는 건 다른 요소도 많지만 술마실 때입니다. 20대 초반엔 무한대로 들어갔는데 이젠 딱 정량이 있어서 거기서 끝나네요. 마신 다음 날 회복도 오래 걸리구요...-_-

blanca 2018-05-19 02:05   좋아요 1 | URL
호불호가 갈리지요. 저도 김연수 작가의 어떤 책은 좋고 어떤 책은 좀 안 맞고 그렇더라고요. 술은... 그렇죠. 이십 대에는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일어나면 술냄새만 났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참 묘한 게 책 선택도 어떤 흐름 같은 게 있어서 한동안은 고르는 책마다 잘 읽히고 좋은 내용이 많은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시기는 고르는 책마다 그만 읽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후자다. 벌써 두 권째 실패 중이라 곁에는 지금 읽는 책이 없는 상태. 이럴 때 새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심한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다. 이상한 강박인데 아무리 재미없고 흥미 안 가는 책이라 해도 일단 돈 주고 사면 끝가지 다 읽어야 한다는 아주 지독하고 자학스러운 독서관이 있다.--;;


새로 나온 책들은 어찌나 상큼한지... 가상으로 장바구니를 꾸려봐야겠다.



편혜영의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라 그녀를 전반적으로 평가하거나 깊이 있게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여하튼 그녀의 그 서슬 퍼런 문장이 좋다. 길게 중언부언하지 않으며 서사를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가. 일단 서사의 진폭과 심리 묘사의 결이 아주 잘 어우러져 가독성이 높은 작가다. 지루하거나 어려운 글은 그녀와 멀다. 기대되는 이야기. 어서 읽어보고 싶다. 양지로 가서 해바라기를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인간의 내면 저 깊이까지 내려가 만지는 실재의 무게를 실감하게 해주는 진지한 작가의 글이 매력적이다.











 



제목에 끌린다. 젊은 여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만 늙은 여자는 배경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미 젊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늙기 위해 공부를 좀 해야 한다. (공부가 가능한 영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자꾸 끌린다. 아이를 키우는 게 개인적인 육아관보다 그 아이를 키우는 문화권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절감한다. 이 문화권에서는 용인되는 아이의 행동이 저 문화권에서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져 훈육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분명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이러한 다른 양육 태도는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 안 가는 것이 중요한 곳이 있고 (기본적인 도덕률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참, 이것의 경계 만큼 모호하고 자의적인 것이 없다.)이 무조건 최고인 곳도 있다. 여하튼 궁금하다.






작은 아이의 영어 이름이 올리버인데 어떤 아이가 자기 올리버 안다고 이 올리버 아니냐고. 사실 개인적으로 올리버 색스 작가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에 좀 무리수를 둔 작명이긴 했지만 나는 정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발견을 했다. 찰스 디킨스는 의외로 지루하거나 읽기 어려운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문장도 쉽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도 있어 대체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제대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기다려야 하느니라... 이게 삼십 대와 사십 대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삼십 대에는 책상에 새 책을 가득 쌓아놓고 냄새 맡고 어루만지며 뿌듯해했다면 이제는 자꾸 공간과 비용과 이런것 저런것을 저울질하고 계산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서글프기도 하고 타협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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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8-04-2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아마 다음 페이퍼는 책상 또는 책장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 공감합니다. 이사하고 책을 많이 버리면서 책을 구입하는 데 인색해진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쩌면 책을 읽고 구입했던 것들이 어떤 종류의 허영이 아니었나 하는 반문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blanca 2018-04-28 02:56   좋아요 0 | URL
와, 책상, 책장, 문구 이런 거에 관련된 이야기 저 너무 너무 좋아해요. 빨리 올려주시기를... 아직도 노트, 필기구 이런 것에 관련된 욕심은 사그라들지를 않아요. 딸아이랑 싸울 정도예요. ^^;; 허영은 청춘의 특권 아닌가요? ^^;;

stella.K 2018-04-2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침 노년 성장 소설이라네요.
노년을 여전히 성장으로 보는 관점이 좀 놀랍네요.
저도 아직 그렇게는 생각 안 해봤는데.
공부는 해 두는 게 좋겠죠.

저도 마지막 문단에 공감하는데, 이젠 책 사는 게 무섭더라구요.
작년까지만 해도 중고로 그동안 못 본 책 마구 사 들였는데
이건 뭐 사 놓기만하고 읽는 속도는 느리고 그 사이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동안 괜히 책 사 들였나? 후회하고. 그러다 못 참고 사고.
책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을 뛰는 것 같습니다.ㅠ

blanca 2018-04-28 02:57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책 관련해서는 참,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또 전자책 읽어보겠다고 막 다운받아놓고 이것은 종이책보다 더 실감이 없으니 방치되고 있어요. 이런 개념이 아예 없고 읽고 싶은 책 다 사서 읽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

AgalmA 2018-05-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이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가치관을 담은 훈육 or 지적이 심한 한국에서 이 문화적 특징이 쉽게 바뀔까 싶어요... 교육, 취업, 혼사, 장례 등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속속들이 관계되니~_~;;

blanca 2018-05-06 23:44   좋아요 0 | URL
좁은 공간, 촘촘한 인구 밀도, 가족 중심 문화의 결합이 낳은 이 틀이 쉽게 바뀔 것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좀더 유연하고 느슨해지기를 바라봅니다.
 
[전자책]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대학교 때 문과계열 전공자는 제2외국어를 필수로 수강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열심히 안 하니 못하고 못하니 더 열심히 안 하는 악순환으로 이미 질려버렸던 터라 무언가 전혀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가 스페인어다. 단짝동기도 설득해서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스페인어 수강생 중 많은 학생들이 이미 스페인어를 배웠거나 스페인 체류 경험이 있었다. 교수님은 그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신 다행히도 초급자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수업 난이도를 조정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게 도움을 주셨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유사한 단어가 대부분이고 문법이나 발음 규칙이 다른 언어들보다 까다롭지 않아 대체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외국어로 느껴졌다. 차근차근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맛보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 그리고 좀 흔하지 않은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허룩한 자부심 등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전공공부보다 더 열중해서 하는 경지까지 나아갔지만 졸업 후 나는 스페인어는 전혀 쓸 일도 쓰일 일도 없는 세계에서 그 매력적인 언어의 야트막한 기초공사를 방치하다 거의 흔적도 없이 떠나오게 되는 허무한 결론을 맞게 되었지만, 지금도 나의 스페인어 공부에 관한 추억은 아스라한 대학 교정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남아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5년여 동안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초급,중급 라틴어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회법학을 공부했고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한동일 신부다. 라틴어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아니고 로마에서부터 현대 유럽의 역사, 법, 문화, 종교,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라틴어를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곁들여 라틴어의 아름다운 경구를 현실과 접목시켜 마치 강의실에서 실제 진지하고 잔잔한 강의를 하듯 엮은 책이니 만큼 잘 읽히고 쉽게 들어와 박힌다.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Prima Schola alba est.)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느 대목을 펼쳐 읽어도 좁게는 생소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노력을 경주하는 것부터 젊게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것까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는 외연을 경험할 수 있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에게 막연한 이상주의나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보다는 기성세대가 공정한 경쟁,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 가지는 책임감과 한계를 자인하고 자신이 가진 종교관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 유연함이 구태의연하지 않아 와닿았다.


막연하고 공허하고 자신의 삶과 무관한 언어로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과 보여지는 삶을 직조하기 쉬운 세태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부류에 편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인정, 겸허한 모습들은 그런 의심을 스러지게 했다. 삶과 죽음 앞에서 많은 언어의 모어가 된 라틴어의 단순하고 기본적인 명제로 돌아가 깊이 있게 천착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독자를 참여시키는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한뼘쯤 더 진지해지고 유의미에 가닿은 느낌이 든다.


나의 스페인어는 그렇게 스러져갔지만 아직도 어떤 언어를 통해 미지의 세계로 가는 하나의 경로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다면 이 책은 올바른 선택이 될 듯하다. 꼭 언어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데에 대한 호기심이 줄지 않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간직한 채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소중한 지침들을 < 라틴어 수업> 청강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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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5 0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