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folk Table 킨포크 테이블 one The Kinfolk Table 킨포크 테이블 1
네이선 윌리엄스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친족이나 가족을 뜻하는 말이라는 KINFOlK는 네이선 윌리엄스가 2011년 창간한 잡지다. 상업광고를 배제하고 '단순한 삶, 함께 나누는 식사'의 의미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잡지라고 한다. THE KINFOlK TABLE은 이 계간지의 푸드스타일링북이다. 네이선 윌리엄스의 아내 케이티의 사진. 이 잡지의 출발을 알렸던 젊고 매력적인 부부가 이 책의 초대 손님이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의 짧은 이력, 자신만의 레시피, 추억이 나열된다.

포토그래퍼와 스타일리스트인 연인 윌리엄 히어포드와 알리사 파가노. 이 사진 한 장만으로 이 연인의 이 순간의 관심, 배려, 사랑이 포착된다. 푸드스타일링이라는 근접하기 힘든 단어를 구태여 붙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순간을 엿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순간이 과거에 현재에 미래에 있었을 것이니까. 어린 시절 먹었던 구운 토마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남자의 모습이 다감하다.

어딘가에서 이런 샐러드를 먹은 기억. 이 샐러드를 만드는 레시피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구하기 힘든 제철 재료들에 조금 기운이 빠질 뿐. 이 책을 요리책으로 활용하기에는 브루클린과 덴마크라는 공간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만 이 요리에 얽힌 추억과 이 요리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는 그 특별한 레시피의 소개로 요리책으로 아쉬운 부분은 채워진다.

막무가내로 만들어본 기억이 있는 카프레제. 생각보다 모짜렐라 치즈는 예쁘게 썰어지지 않아 토마토와 교대로 어슷 기대어 놓은 모습은 기대이하였다. 가족들은 신기하다며 시도해 봤지만 별맛이 날 리 없는 이 생 샐러드에 생각만큼 감탄해 주지 않았던 기억. 자라면서 애플파이를 먹었던 연인의 레시피는 조금 더 그럴 듯하다. 조만간 다시 시도해 보자.

이 간단하고 현실적인 레시피는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하다. 이런 부분이 빛난다. 별 재료 없고 특별한 과정이 없지만 아련한 추억을 품은 그러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푸드스타일링 북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재료들과 거대한 오븐을 항상 동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서 밥을 얻어먹는 일은 아주 하찮은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이다. 별로 내키지 않았던 저녁 초대에서 정성껏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며 나는 갑자기 목울대가 시큰해졌다. 그것은 그 사람과 정말 처음으로 만나는 일과 같았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시간을 공유하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교감을 나누는 일. 식탁 한켠에 의자를 내어놓는 것은 그 사람에게 곁을 주는 좀더 세련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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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2013-12-0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련된 표지에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면 다소 평범한 듯 하면서도, 또 은근한 매력이 있는 듯해요 전 크리스마스 맞이 kinfolk 잡지 한권 주문했어요.^^ 바삭 구운 베이컨 피넛버터 샌드위치는 꼭 해먹어보렵니다!

blanca 2013-12-02 09:40   좋아요 0 | URL
like님, 벌써 또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랐어요. 절대 될 것 같지 않았던 나이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싱숭생숭합니다. 맞아요! 된장스러운 책인 줄만 알았는데 ㅋㅋ 사진도 레시피도 참 소박하니 좋더라고요. 저도 꼭 해 먹으려고요^^

2013-12-05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3-12-1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나온 사진을 다시 찍는 게 이렇게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군요~ #

blanca 2013-12-10 12:08   좋아요 0 | URL
icaru님, 또 사진 찍을 때도 은근 재미있더라고요. 워낙 원사진이 좋아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괜찮게 나오더라고요.
 

집 앞에 바로 대학병원이 있다.작년 폐렴에 걸려 입원하여 밤새 뒤척이며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를 억지로 휠체어에 태우고 엑스레이실 앞에 줄을 서던 기억이 난다. 제발, 오늘은 좋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고작 아침 일곱 시 언저리의 엑스레이실 앞은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침상에 누워 거의 의식이 없는 사람도 제 발로 서서 엑스레이를 찍을 능력이 있는 사람도. 모두의 표정은 지쳐있고 삶이란 것을 희구하면서도 그 삶에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김훈의 말마따나 삶은 결국 던적스럽다. 그 춥던 으시시하던 기억. 호랑이 캐릭터가 점점이 박혀 있던 그 어린이 환자복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많이 아팠던 아이. 그리고 그 수많은 아픈 사람들. 그럼에도 하늘에서는 그때도 정말 눈이 부실 만큼 흰 눈이 내렸었다. 그 눈이 정말이지 너무 서러웠다.

 

어제 하늘에서는 또 미친듯이 눈부신 눈이 내렸다. 발코니 전창 앞에서 세상에 태어난 지 고작 석달인 아가에게 이 눈부시고 마구 언제까지나 살고 싶게 만드는 눈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만일지라도 그런 것들에 기대어 삶은 지속되는 것같다.

 

 

읽은 책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모교 구내서점에서 만난 날, 김연수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 낭만적인 이름의 작가의 팬이 되기로 했다. 뭐랄까 아주 서정적이고 명철한 작가의 시어 같은 문장들이 속살거리며 다가왔다. 단편집이니 만큼 전부 좋았다고는 못하겠고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는 너무 좋아 잠시 멈추고. 이런 이야기.

 

나는 나의 열세 살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나? 1982년, 중학교 1학년. 프로야구 개막. 봄바람에 흔들리던 성당 초입의 벚꽃들. 브라보콘과 키스바의 여름. 봉고에 음식을 잔뜩 싣고 가족들과 찾아가던 일요일의 계곡. 응접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의  모습. 여름에도 서늘하던 본당의 건물. 형형색색의 빛으로 반짝이던 스테인드글라스.

-<파주로> 중

 

이야기 속의 '내'가 열세 살을 떠올리게 된 것은 선배의 열세 살 딸내미 앞에서 그와 같은 나이였던 소녀 '안네의 일기'를 떠올리면서였다. 좁은 곳에 갇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음에도 소년과 사랑에 빠져 달콤함에 젖어들었던 안네. 언제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훨씬 축약되고 민감한 내용이 삭제된 안네의 일기에 기대어 나도 어린이에서 사춘기 소녀로 건너가던 기억만은 남아 있다. 서쪽의 창가. 밤이면 봄이면 벚꽃과 노을이 아련하게 걸어들어왔던 그곳. 김연수는 추억을 불러내는 재주가 있다.

 

 

 

 

왠지 이런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뻔한 이야기라도 두서 있게 조곤조곤 일러주는 사람을 한 명쯤은 곁에 두면 삶의 질서가 잡힌다. 정갈하고 소박한 이야기. 삶에 있어 모든 곁다리 같았던 것들을 제자리에 두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되새김. 법정의 책을 오랫동안 곱씹어 보며 읽다 못내 아쉬워하며 돌려준 친구에게 불현듯 선물하고 싶어져 감행했다. 순간 티비를 보며 무기력해있던 친구는 이 책을 시작했다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머리가 덜 아팠으면.

 

 

 

 

 

 

 

 

 

 

반값 세일이길에 표지가 너무 크리스마스틱하길래 구입했는데 딸아이가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모아두고.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을 만들 수 있는 책. 눈꽃결정 모양은 창에 붙이면 손쉽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수 있을 것같다. 집에 온 아이 친구가 자기도 갖고싶다고 해서 두 권 더 주문해서 아이들이 좀 엄마들을 덜 귀찮게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모빌을 만드는 부분은 좀 어려워서 어른의 손이 가야 하기는 하지만. 가격대비 알찬 책이고 꼬마 친구들에게 선물해 주고 생색내기도 좋다.

 

 

 

 

 

벌써 크리스마스고 벌써 연말이다. 전도연은 티비에서 나이 먹으니 정말 진심으로 너무 좋다고 하던데 그녀보다 어린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좀 덜 망아지같아지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자꾸 철이 드는 게 좋기만 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이해받고 용인받을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이다. 자꾸 범람하는 추억들. 할머니가 되면 그 추억들 한 복판에서 좌초할 것같다.

 

정말 제대로 된 기억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분명 뒷산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위해 키작은 나무 하나를 베어 왔고 우리는 그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졌드랬다.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든 내가 고작 내 허리밖에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내어놓자 아이는 어찌나 실망하던지 꼭 자기 키보다 더 큰 트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 아빠는 정리를 잘 하면 그러마 하고 약속하고 나는 어수선해서 안 된다고 딱 자른다. 잘 모르겠다.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저러지는 말아야지 했던 어른들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귀찮고 어처구니가 없어도 했던 많은 것들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그 게으름은 성숙이 아니라 비겁한 타협일 텐데 때로 그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씁쓸하다.

 

우아하게는 어렵더라도 덜 추하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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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11-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고 프네요 김연수

blanca 2013-11-29 09:5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시를 썼던 사람이 쓰는 산문은 문장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겨울의 초입에 잘 어울리는 글들입니다. 바람이 찬데 하늘바람님도 아이들도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프레이야 2013-11-2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달 아가에게 흰눈을 보여주셨군요. 사진기로 찍듯 아가는 눈으로 마음으로 찍었을거에요. 백일이 다가오군요 그럼. 백일때 아가들 참 이쁘죠. 추억을 불러주는 김연수의 문장. 열세살 짜리 저의 기억도 불러지네요. 요즘 기억에 대한 단상이 몇 떠올랐는데 한번 써봐야겠ᆢ다고 생각만 하고 있어요ㅎㅎ 나이 들어 좋다고 말한 전도연이 확 좋아지네요. 덜 추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블랑카님은 물론이구요^^

blanca 2013-11-29 10:0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이들은 어리고 저만치 삼십대는 걸어가고 연말이고 이래저래 싱숭생숭해져요. 첫애때는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그 나이때의 귀여움을 즐기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비록 몸은 힘들지만 이제 순간 순간의 사랑스러움을 돌아볼 수 있어 좋기도 합니다. 아, 빨리 쓰세요!

icaru 2013-11-2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되면 추억 한 복판에서 좌초할 것 같다... 아,, 저도 이런 생각해 본적이 있는요 ^^ (그리고 전, 가끔 나이 들었을 때 내 모습 생각해 보는데요. 어쩐지, 고집세고, 목소리 크고 완력이 강한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저만의 생각일지도요) 말이지요~
블랑카 님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어느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가 생각나요... 할머니, 아버지, 어린 나와 지금의 나... 나이듦...
심플하게 산다,는 제목이 어찌나 동하는지, 허나 도서관서 대출해 읽어야겠다고 고작 그런 생각이나 합니다.^^;;;

blanca 2013-11-29 10:02   좋아요 0 | URL
icaru님! 성탄제! 저도 이 시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알알이 붉은 산수유 열매~" 이 부분이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이 책 예전에 서점에 가서 그냥 들춰보는 수준으로 보고 말았는데 제대로 읽으니 뻔한 얘기들인데도 참 와닿더라고요. 마음이 정갈해진다고나 할까요.

saint236 2013-11-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만드는 책이라...심하게 땡깁니다.

blanca 2013-11-29 10:02   좋아요 0 | URL
saint236님, 이 책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ㅋㅋ 비록 종이이지만 만들어 놓고 보면 제법 그럴싸해요. 트리에 걸어도 될 정도로요. 강추합니다.!

세실 2013-11-2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니 조금씩 중심에서 벗어나는 여유도 좋고, 대접 받는 것도 좋고(?) ㅎㅎ
우아하게 살도록 노력해요, 우리!
김연수 책은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blanca 2013-11-29 10:04   좋아요 0 | URL
세실님, 그런거죠?! 그런데 세실님은 그냥 나이드신 게 아니라 꾸준히 성장하고 배우시고 그러잖아요. 저는 지금 정체 상태로 나이만 먹고 있는 중이라 나이드는 게 더 두려운가 봐요. 김연수 책은 커피 마시면서 한 편씩 내키는 대로 읽으니 참 좋더라고요.^^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믿기 시작하면 역설적으로 불안감이 더 높아진다. 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는 경우는 자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일, 그냥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실어버리면 더 쉬워지는 경우도 있다.

 

첫아이를 낳고 소위 멘붕이 왔다. 일차적으로 자고 먹고 싸는 일에 갑자기 장애가 왔다. 신생아는 두 시간에 한번씩, 때로는 한 시간에 한번씩 수유를 해야 한다. 이유없이 밤을 새워 울기 시작하면 아이를 안고 베란다를 서성이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게 수면의 전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급하게 기저귀를 갈거나 달래줘야 하는데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참다참다 변비가 오기도 한다. 게다가 나에게 온 아이는 좋게 표현하면 섬세했고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극도로 예민했다. --;;

 

자, 언제나 그랬듯 나는 육아를 책으로 할 수 있는 줄 알고 책을 사모으며 독파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오른손으로 책도 넘기고 줄도 긋는 신공이 생긴다.

 

 

 

 

 

 

 

 

 

 

 

 

 

 

 

이 영국인 간호학교 출신의 저자는 양육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의 불규칙성과 돌출행동들을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이 책이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무조건 아이를 울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 최대한 아이를 덜 안아주면서 아이에게 규칙적인 일과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귀띰을 준다. 아이의 기질을 관찰하고 그 기질에 딸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적어도 육아와 보육의 그 무한 반복의 질곡에 생각없이 얽매이는 실수는 방지해 주려 한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 아기를 돌보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찬찬한 관찰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좌표 정도를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육년이 지나 둘째를 낳은 지금에도 나는 이 책들을 여전히 꺼내본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수시로 수유하고 안아 흔들어 재우는 나의 모습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첫째는 소위 '수면교육'에 들어가 두 시간 동안 안아주는 대신 자장가와 다독임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과거를 후회한다. 아이의 수면과 수유는 그렇게 관리하려는 수고 대신 상당부분을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런데 그 앞의 거리를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 아이의 생리활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승산없이 좌절당하면 육아는 오히려 더욱 난공불락의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나는 노력하고 있고 통제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족감은 아이의 울음이 미칠 아이의 상실감으로 다 상쇄되어 버리는 것같다. 물론 아이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그 긍정의 자세는 배울 만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업고 어르고 부둥켜 안고 키웠던 우리 어머니들 밑에서 나온 오늘의 엄마가 따로 재우고 아이의 수면과 수유를 완벽하게 시간표에 맞추어 관리하는 정서는 낯설고 어색하다. 설사 그래서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그것은 아이의 기질이 협조해 준 덕분이 더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안 될 아이는 아무리 수면교육을 시켜도 안 잔다. 2008년도의 다이어리에는 예민한 기질의 아이가 스스로 등대고 스르르 잠들 날을 고대하며 수면교육을 시키며 좌절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수면교육과는 상관없이 아이는 세 살이 되고 여섯 살이 되며 밤에 자지 말라고 해도 키가 커야 한다며 스스로 들어가 잠이 든다. 결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당시 더 많이 안아주고 기다려 주지 못한 시간들이 참 아쉽다.

 

 

 

 

 

 

 

 

 

 

 

 

 

 

2013년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며 맛보았던 달디달았던 자유의 시간들은 다시 추억이 되고 --;; 자발적으로 다시 그 기본적인 욕구들이 저지당하는 상황이 출몰하는 육아의 전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전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미 EBS에서 방영되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방송분에 대한 책이다. 다들 아기띠나 유모차를 사용할 때 오히려 외국에서는 우리 전통 포대기를 이용하여 아이를 업어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를 업는 방법에 대한 동영상의 주인공도 우리나라 엄마가 아닌 외국 여성이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첫손녀를 업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이미 국민아기띠로 안고 업히는데 익숙했던 아이는 포대기를 동원해서 업어주려는 할머니들에게 착 업히는 대신 울음으로 항변했다. 할머니 등에 업혀 사방팔방을 다니며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배웠던 나의 경험을 애석하게도 나의 딸은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등의 온기와 그 등의 체취로 할머니와 교감했던 만큼 나의 딸은 할머니와 친하지 않다.

 

여기에는 본능과 직관에 따르는 육아가 있다. 책으로 배우고 아이의 일과를 통제하는 육아가 아닌, 그저 살을 맞대고 부비며 아이가 달라는 대로 주고 자고 싶은 대로 재워주는 세 살 이전까지의 애착형성의 보살핌이 있다. 엄마가 편하자고 아이를 울리며 불편한 정서를 역으로 경험해야 하는 고문 아닌 고문도 없다.

 

이자벨 필리오자는 육아에는 유용한 성장의 법칙들이 있지만 '반드시'라는 것은 없으며, 초보부모가 배워야 하는 것은 그런 법칙들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아이를 믿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류학자들은 수유는 자연적인 반응행동이지 관리되는 행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류는 탄생 이래 17세기까지 한 번도 수유를 관리당해본 적이 없다.

-p.87

 

물론 전통육아라고 능사는 아니다. 대가족 전체가 협력하고 동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예전의 육아는 분명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 양육자 자체의 정서나 휴식에 대한 배려도 아쉽다. 단, 육아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지침에는 대단히 값진 무게가 실려 있다.

 

어제 둘째 아이 대신 일곱 살 큰 아이를 업어 주었다. 아이는 아직도 무던한 편이 아니다. 임신했다고 동생이 있다고 더이상 안아주지 않았던 아이가 등에 업히니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많은 말 대신 가끔 업어주려 한다. 나는 연년생 동생이 태어나고 맨날 꿈을 꾸었다. 그 꿈 속에서 엄마는 동생을 업고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 꿈이 어찌나 서러웠던지 나는 아직도 그 서러움을 기억한다. 우리 육아에서 '업는다'는 행위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같다. 세련된 아기띠로도 업는 자세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우리 엄마들이 포대기로 업어주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누구나 결국 사랑과 관심을 요구한다.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는 것도 그런 것들이 아닐까. 너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냥 내 앞에서 요구되는 관심과 사랑을 주려고 노력해 볼란다. 십 년이 지나고 무엇이 옳았는지보다는 어떤 것이 후회를 덜 남기는 지로 판단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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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0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제 외할머니를 엄청 좋아해요. 외할머니가 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여동생이 잠시 친정에 다니러 오면 그 때 보았던 게 전부거든요. 그런데 왜그렇게 좋아할까 저희 식구들 모두 의문이었는데, 이 글을 보니 알 것 같아요. 여동생은 애기띠로 동생을 안아주었지만, 저희 엄마는 애기띠가 어색하다고 하시며 포대기를 사가지고 오셔서 업어주셨거든요. 그때문이었나봐요, 조카가 그토록 제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건. 지금도 할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녀요.

그런데 블랑카님, 일곱 살 큰 아이를 업으시다니, 무겁지 않으셨어요? 전 네 살 된 조카를 안는데 이제 힘이 딸리더라고요.

blanca 2013-11-08 12: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포대기도 어렸을 때부터 안 해주면 어색한지 제 딸은 안하려 들더라고요. 할머니가 업어주는 맛을 못 느껴보고 커서 저도 아쉬워요. 아, 물론 무거워요. 그런데 제가 둘째를 가지며 첫째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못한 기억 때문에 아이가 요새 자면서 울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서요. 참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좀 폼은 안 나지만 포대기로 아기를 좀 업어볼까 하는 생각중입니다. ㅋㅋ

페크pek0501 2013-11-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란 참 신기해요. 기억이 나지 않던 시절인데도 어느 한 순간은 또렷이 기억나거든요.
저도 여섯 살쯤인가 되었을 때인데, 엄마가 업어 줬던 걸 아직도 기억해요.
엄마와 함께 놀러간 친구 집에서 제가 잠이 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업고 집에까지 간 거예요.
업히는 게 좋아서 자는 척을 했던 것까지 기억합니다. 얼마나 업혀 있는 게 행복했으면요...
그때만큼은 아무 것도 부럽지 않아요.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이런 값진 경험이 있다면 그 시절에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추억을 많이 갖게 해 주는 게 어쩌면 자식을 위하는 최고의 일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죠.

blanca 2013-11-09 11:06   좋아요 0 | URL
pek0501님, 업히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오래 아주 소중하게 남나봐요. 예전에는 업어주는 어른들이 많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아기띠라는 중간 매개가 있어야 하니 그 맨 살에 착 닿아 주변을 구경하던 기억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리가 자꾸 아파서 아이들을 꾸준히 잘 업어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프레이야 2013-11-0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홍공주 업어주셨다니 잘하셨어요. ㅎㅎ 울작은딸 유치원다닐 때 가기 전후로 꼭 집안에서 잠시 업어줬던 기억이 나요. 참 좋아했죠. 큰딸은 아주 어릴 때 말곤 안 업어줬네요. 다 커도 업히고 싶을 때 있잖아요 우리도^^ 울엄마도 제가 초등 이학년 때 급성신장염을 앓을 때 이불 덮어 씌워서 업고 등교시키셨지요. 그런데 그때 그 촉감이 기억 나질 않아요ㅜㅜ 오른손만으로 책장 넘기고 밑줄긋기까지 하셨다니 진짜 대단해요 블랑카님. 몸조리 잘하세요^^

blanca 2013-11-12 07:4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을 업고 등교하시는 친정어머님 모습이 그려지네요. 사실 육아라는 게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아이 먹이며 오른손으로 책 읽고 그러면서 견딥니다.^^;; 그런데 줄을 그으려니 왼손이 더 편해서 왼손으로 연습까지 하고 있어요^^;;

마녀고양이 2013-11-0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 힘드시죠? 그리고 이쁘기도 엄청 이쁠거 같고...
솔직하게 부럽네요, 아가야와 함께 지내시는 모습이, 저는 감당이 안 될거 같으면서도 부러워요.

블랑카님의 열심히 고민하시는 마음만으로도 아이들이 이쁘게 자랄거 같아요.
멋진 엄마를 두었으니, 아이들이 행복하겠네요. ^^

blanca 2013-11-12 07:48   좋아요 0 | URL
아...마녀고양이님,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각오했던 것보다 더 힘드네요. 특히 허리,손목이 너무 아파요. 지금은 솔직히 행복하다,는 생각보다는 힘들다, 시간아 가라! 이러면서 견디는 중이에요.

저는 마고님이 부러운 걸요.

꿈꾸는섬 2013-11-2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전 외출할땐 아가띠, 집에서는 포대기를 많이 이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집안일할때는 포대기가 정말 최고였는데...ㅎㅎ
아이 키우는 일은 책이나 이론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자연스럽게 아이의 기질에 맞는 방법은 부모와 아이가 찾아야하는 것 같더라구요.
블랑카님 날이 많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꿈꾸는섬 2013-11-25 16:13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뜸한동안 둘째도 낳으신건가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blanca 2013-11-26 10:40   좋아요 0 | URL
아, 벌써 백일이에요. 꿈꾸는섬님은 그간 잘 지내셨어요? 자주 서재마실 오세요. 저희는 이미 가족이 다 한차례씩 감기 혹독하게 했답니다. 아이들 아플 때가 제일 속상하고 힘든 것 같아요. 현수와 현준이도 잘 지내죠?

2013-11-26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7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7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8 0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구나 죽는다.

 

개별적인 인간 존재는 강물 같아야 한다. 처음에는 미약하다가 좁은 강둑을 따라 흐르게 되고, 때가 되면 열정적으로 바위들을 지나 폭포 위로 돌진한다. 강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제방이 멀어지면 강물은 더욱 빠르게 흐르며, 마침내 눈에 띄는 휴식도 없이 바다와 합쳐지고 나면 아무런 고통 없이 자신의 개별적인 존재를 잃어버린다. 나이가 들었을 때 자기 삶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개별적인 존재는 소멸되더라도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지속될 테니까.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중

 

 

 

 

 

 

 

 

 

 

 

 

 

 

버트런드 러셀은 늙어가며 '죽음'과 화해한 것 같다. 죽음 앞에서 개별적인 세상에 하나뿐이었던 '나'들은 의미없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소중하게 여긴 가치들과 평생 추구한 과업들은 그의 죽음 뒤에 남는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솔직히 조금 거창하고 쉽지 않다. 누구나 그처럼 담대하게 '죽음'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죽음 앞에 설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전 손택도 마지막 앞에서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라는 주어가 사라지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두렵다. 벌써 주어진 시간의 허리에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소름이 돋는다. 러셀은 과거에 연연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년을 폄하했지만, 그가 폄하한 그 모습이 사실은 가장 평범하고 많은 '나'에 대한 묘사다. 평생 거의 아픈 적이 없고 지적인 역량으로 수많은 창작물들을 펴내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귀기울여줬던 그가 말하는 '죽음'과 '노년'은 이상적이지만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지는 않다.

 

 

평범한 죽음, 도처에 널린 죽음은 여기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필립 로스 <에브리맨> 중

 

 

 

 

 

 

 

 

 

 

 

 

 

 

 

우아하게 사는 것도 우아하게 죽는 것도 어렵다. 부지불식 간에 삶에서 비어져 나오는 것들은 너무 많다. 모르는 사이에 늙고 모르는 사이에 병들고 모르는 사이에 이 지상을 떠난다.  언어로 포장할 수 없는 곳에 진실이 앉아 있는 풍경이 너무 을씨년스럽다. 필립 로스는 이 풍경 앞에 다가선다. 늙어가는 것, 죽는 것이 두려워질 때 이 책을 다시 펼쳐들면 때로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환기해 주니까. 주인공은 처음도 마지막에도 죽는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의 요약된 삶과 응축된 노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나의 삶도 그런식으로 끝맺음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마침표는 가족들,지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간략한 이야기가 된다. 곡해되고 이가 빠져도 항변할 수 없다. 죽음은 그렇게 무기력한 것이다. 아픈 이야기.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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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0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죽어 갈 때 말고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년에 이른 어느 몽상가가 '늙어서는 온 채로 죽는 게 아니다'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던 말도 조금은 고려에 넣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 * *

하느님은 사람들의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 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내리는 혜택이다. 이것은 노령의 단 하나의 소득이다. 마지막에 죽는 것은 그만큼 온전한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며, 그만큼 고통도 덜 받을 것이다. 이런 죽음은 사람의 반이나 반의 반쪽밖에 죽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내 이 하나가 아프지도 않고 힘도 안 들이고 빠졌다. 그것은 이 이의 상태로서 자연스런 한계였다. 그리고 내 존재의 이 부분과 다른 부분들은 이미 죽었고, 내가 정력이 왕성하던 시기에 가장 생기 있던 다른 부분들은 이미 반은 죽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무너져 가며 나로부터 빠져 나간다. 죽음으로의 뜀박질이 이렇게까지 진척되어 있는 것을, 내가 이제 온 채로 죽는 것으로 느낀다면 내 오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나는 오성이 그렇게 어리석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몽테뉴)


blanca 2013-11-06 10:44   좋아요 0 | URL
oren님, 몽테뉴 인용해주신 대목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서글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마음 속에는 아직도 십대 때의 시간들이 생동하는 것 같은데 저는 벌써 마흔으로 차곡차곡 가고 있어요. 마흔이되면 정말 산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미성숙하고 실수도 많이 하면서요.

마녀고양이 2013-11-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하게 살려고 하고 우아하게 죽으려고 하면 정말 힘들거 같아요, 블랑카님.
그냥 진흙에 쳐박고 허우적대면서, 곁에 있는 사람 바짓가랑이 잡고 끌어달라고도 하면서, 때론
남의 바짓가랑이 움켜쥐고 끌어올려주시도 하면서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엔 든답니다.

모두들 허우적대도, 그래도 따스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언젠가는 다들 죽을테니까요. 좋은 날 되세요, 둘째 잘 크죠?

blanca 2013-11-06 10:4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정신 없어요. 밥도 서서 먹고요 ㅋㅋ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고 무언가를 해 보려면 잠 같은 기본적인 생리적 활동을 줄여야 합니다. 어느새 가을은 저만치 가버렸네요. 아이 재우고 한 삼십 분 배깔고 스탠드 밑에서 책 읽는 낙으로 버팁니다. 그리고 달달한 믹스커피를 다시 시작했어요. ^^ 딱 감기 걸리기 쉬운 계절 몸 조심하셔요.

페크pek0501 2013-11-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하게 죽기 위해서 안락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고통스럽게 앓다가 죽는다는 건 참 끔찍하잖아요.

"~이 책을 다시 펼쳐들면 때로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환기해 주니까. "
- 제가 생각하는 바예요. 지구가 멸망이 된다고 해도 다 함께 죽는 거라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아요. 무서움은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나만 그럴 때 최대의 크기가 되는 것 같아요.


blanca 2013-11-07 10:53   좋아요 0 | URL
맞아요...견딜 만한, 그래도 괜찮은 정도의 죽음을 맞고 싶어요...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도 화해해 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해요. <에브리맨>은 젊음에 취해 있는 사람은 절대 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작품인 듯해요. 저도 더이상 젊지 않다는 방증일까요?^^;;
 

우연히 매우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1795년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하여 수원으로 행차하던 그 8일 간의 여정과 준비과정 등을 낱낱이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드라마틱하게 복원한 프로였다. 자신의 행차를 행복한 축제 '행행'으로 명명한 정조의 행차는 33년 전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어야만 했던 생부 사도세자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 다른 의궤들과 달리 널리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랐던 정조의 의중이 반영되어 인쇄본으로 제작된 여덟 권의 의궤 속의 그 세밀한 준비과정과 축제의 묘사는 3D로 충실히 복원되어 아름다운 영상과 교차되며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정조의 의궤는 단순히 왕실의 의식을 기록하는 형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축제를 함께 하며 나눔을 베풀고자 했던 백성을 향한 진솔한 사랑의 표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의 예,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한 은밀한 견제 등이 어우러져 또다른 정조의 개혁 정책 표방의 일환이 된다. 육천여 명을 육박하는 수행인원을 거느리고 행차하는 왕의 모습과 그 왕을 스스럼없이 구경할 수 있는 백성들의 자유로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며 분분하는 꽃잎, 장엄한 배경 음악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잘 만들어진 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의궤 그 자체를 3D로 복원하여 붓 끝에서 생동하는 그 축제 현장의 기록들도 인상적이었다. 배우 이성민의 담담한 나레이션도 좋았다.

 

사람이, 그도 왕족이 쌀을 보관하는 뒤주에 갇혀 8일동안이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간 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악이요, 더없는 비극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친아버지이다. 이것이 픽션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오늘날에도 많은 논란거리와 시사점을 던져준다. 여기에는 대치되는 시각이 있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에는 남편 사도세자가 중증의 정신병을 가져 비상식적인 행동과 살생을 일삼았던 것으로 그려진다. 자연히 늙은 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자초했다는 결론이다.

 

 

 

 

 

 

 

 

 

 

 

 

 

 

 

또다른 시각은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탕평책을 폈던 영조는 집권 노론 세력들을 장악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손아귀에 포섭되지 않고 문보다는 무에 관심이 많았던 사도세자는 끊임없는 공격 대상이었고 결국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손으로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시 왕권은 보이는 것과 달리 미약했었다는 시선이다. 그러니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은 집권 노론 세력이었던 친정 식구에 대한 변호쯤으로 해석된다. 물론 말로 남은 사실들의 체에는 군데군데 진실이 빠져나가기 마련이므로 완벽한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 어디쯤엔가 진실은 제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다만 노론 세력들이 죄인의 자식으로 왕위 계승에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정조는 할아버지에 이어 조선말 최고의 현명한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는 복수할 수 있음에도 복수하지 않고 그칠 '지'를 이야기한다. 정치는 살풀이가 아니다. 그럴 수 있음에도 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기 위하여 신하들을 이끌고 행차한 곳은 아버지의 무덤 앞이었다. 어머니의 생일이 아닌 아버지의 생일에 어머니의 생일잔치를 계획했던 정조. 열한 살에 할아버지의 손에 죽어가는 아버지를 봐야 했던 왕. 수많은 개혁 정책을 펼쳤지만 번번이 신하들의 유교적 명분과 당파적 이기심 앞에서 좌절당해야 했던, 그럼에도 끊임없이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이상주의자였던 왕. 정조의 그 아름다웠던 꿈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고흐가 그 절박하고 힘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늘의 별을 그리고 싶어했던 마음과도 만나는 지점. 아무리 현실이 각박해도 절망적이어도 인간은 꿈꾸고 싶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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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10-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삼대를 보노라면 끊이지 않는 연극을 보는 느낌이 종종 듭니다. 세자에게 갈 땐 늘 나쁜 일이 있을 때만 드나드는 문으로 출입했다는 영조, 결국, 정신질환까지-결벽증이 있었다지요- 얻었다는 사도세자, 그리고 역사 한귀퉁이를 말끔하게 지워내는데 성공한 정조까지. 세자의 자질이 이미 훌륭했다는 전하는 말도 있으나 자식을 죽이던 날, 뜰에 엎드린 세자에게 영조가 전하는 첫마디는 역시 살인에 관한 것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네가 왕손의 어미를 박살내 죽이지 않았는가?'

실제 세자의 살인은 한둘이 아닌 백여명에 넘었다고 전하고, 형벌에 처한 숫자는 더하지요. 연산군조차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고(때리는 것에 그쳤다는!) 성리학과 유교의 조선에서 백여명도 넘는 사람을 직접 죽인 세자는 군주가 될 수 없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천하의 성군인 정조 제위 당시 승정원 일기 훼손 삭제분만 하여도 백여 군데가 넘으니, 효심으로 역사를 덮는 일은 성군을 가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당쟁이 전부가 아닐 거란 생각, 아비의 홀대와 자식의 살인과 각종 정신질환, 그 자취 일부를 먼지 속에 보내는 뒤를 잇는 아비와 아비의 자식까지, 사람의 깊이만큼 기록과 드라마가 그 간극을 벌리는 느낌이었어요. 어디까지나 제 느낌과 전해들을 말이 섞인 댓글이라 저역시 정리가 힘들지만, 이 삼대를 부족한 기록으로 완전히 정리하기는 누구라도 온전히 해내기 힘든 일이지 싶습니다.

blanca 2013-10-28 14:16   좋아요 0 | URL
쟌느님,사도세자에 관련된 부분은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끼리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대목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감정적으로 정조에 기울어 있지만 (승정원일기 삭제는 몰랐어요.) 사도세자가 과연 왕위계승자로서 적합했느냐, 하는 문제에는 저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극이지만 결국 영조 다음으로 정조가 왕위를 계승한 것이 결론적으로 더 나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기회가 되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 아쉬운 것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가네요. 다시 시작했던 피아노도 한창 열심히 하다 놓아 버리고. 하던 일도 그렇고. 다 다시 잡을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