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키의 소설적 자아와 에세이에서의 자아의 낙차가 흥미롭다. 하루키의 '나'는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으로는 비교적 자유롭고 내면의 심연을 응시하는 지점에 가 있곤 하는 하는 젊은 남자다. 수많은 관계가 있고 때로 일탈이 있다. 하지만 실제의 하루키는 벌써 육십 대 중반에 하루에 한 시간을 삼십 년이 넘에 달려 온, 자신이 쓴 원고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청취하는 대학 시절 만난 아내가 곁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다. 소설에서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이지만 자기 고백적인 하루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평범한 나도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어떤 예우가 느껴져 터덜터덜 걷다 갑자기 무릎을 굽혀 운동화 끈을 다시 매게 하는 견인을 얻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때로 마음이 휑해지기도 하지만 그의 고백을 듣고 나면 산다는 일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게 된다.

 

이번 책에서는 그가 언제나 그러했듯 사생활에 대한 내밀한 고백 대신 그가 쓰기 시작한 일, 쓰게 된 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느낀 생각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어디에선가 반복된 이야기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것들을 묶어 내는 리듬은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청량한 것들이다. 번역자는 하루키의 그 문장의 리듬을 간파하고 살리려 노력한다. 시종일관 어떤 하루키적 경쾌함이 '하루키'라는 숲을 기분좋게 순례하게 하는 기분이다. 그냥 읽기만 해도 하루키적이 되는 느낌은 원래의 하루키의 그 단순 명쾌하면서도 '아님 말고' 식의 쿨한 목소리와 또 그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 낸 번역자의 협업이 비교적 성공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가 스물 아홉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유명한 진구 야구장에서의 돌연한 순간에 대한 고백은 또 다른 형태로 재생된다. 그런데 또 들어도 시원하고 부럽다.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하루키는 그렇게 작가가 된다. 쓸 것이 없었던 그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과 주변 환경에서 불필요한 수식을 제거한 리드미컬한 자기만의 문체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뭔가를 써 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은 오만이 아니다. 그 자신만의 고유한 비전과 그것을 향한 프로세스에 대한 확신은 시간의 퇴적을 이겨 내고 그에게 남은 자부심이었다.

 

만일 당신의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p.110

그가 소설 창작의 비법을 으시대며 전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주변의 사람과 사물과 일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머릿속의 서랍에 넣어놓은 다음 그것을 다시 열어 쓰고 묵혀두었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으로 공력을 들이고 또 그러한 노력은 시간을 통해 진가를 발휘한다는 자신감에 대한 고백은 기억해 둘 만하다.

 

무엇보다 그가 그러한 창조력과 순발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삶에 들이는 그 사려 깊은 자세는 닮고 싶다. 하루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그 성실함이 결국은 그가 삶을 대하는 하루 하루의 무게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고 쓰는 일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나이듦은 몸의 무게를 실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몸의 무게는 엄청나다. 삶을 이야기할 때 몸에 대한 화제는 어쩐지 지나치게 비속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우리가 삶을 사는 일은 몸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움직이게 하는 일에 편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몸을 제대로 대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삶에 대한 기본 자세 같은 것이 아닐런지. 그에게 있어 '강함'은 이러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부의 심연으로 들어가 그 온갖 깊은 좌절과 악과 욕망의 잔재를 들쑤시며 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에는 엄청난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사실 강하고 건강한 몸에 기반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고작 마흔 언저리에서 어떤 결론과 체념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 연배의 하루키의 이야기들은 가장 뻔한 것 같으면서도 필요한 이야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어떤 사안에 대한 유예적이고 자기 변명적인 대목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하루키다운 모습이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 작가의 그 지극히 개인적인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가 응시하고 마침내 이야기하는 것들에 위로와 힘을 받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러한 조응이 결국 하루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닐까.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6-05-0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그동안 하루키 연구서도 많이 나왔고, 여기저기 겹칠 것 같아서 뭐 새로울 게 있을까 싶어요. 누구는 예전에 나온 책 제목만 바꿔서 나왔다고도 하던데...

blanca 2016-05-02 19:40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키는 에세이 위주로 읽어왔는데 복간된 것도 있고 겹치는 부분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은 최근의 하루키가 집필한 내용이라 저는 처음 보는 글들이었어요. 마지막 고인이 된 심리학자 부분만 제외하고요. 여하튼 저는 흥미롭게 읽었어요. 물론 하루키적인 한계나 변명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그게 또 하루키니까요. ^^;;

alummii 2016-05-0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blanca 2016-05-02 19:41   좋아요 0 | URL
읽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단발머리 2016-05-0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어요.
역시 하루키,하고 있지요^^

blanca 2016-05-02 20:45   좋아요 0 | URL
아흑, 빗소리와 너무 잘 어울리죠.

기억의집 2016-05-0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단발머리님처럼 역시 하루키!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 하루키 글은 사물을 보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세계관이 본인이 의도한대로 쓰는 것 같아요. 어제 하루키 읽으면서 문득 나보코프도 문장이 어려웠는데..그도 하루키처럼 곱씹은 사유의 결과물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루키,,참 설명하기 힘든 멋진 작가에요.

blanca 2016-05-03 11:51   좋아요 0 | URL
하루키,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은 정말 특별하구나,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사물을 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에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어요. 육십 대 중반 넘어서도 건강한 몸도 부러워요.--;; 몸에 대한 이야기도 참 배울 게 많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6-05-1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되었을 때는 조급함으로 구입해놓고는,
손도 못 대고 있는 책이네요. ㅠㅠ. 하루키의 강박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성실한 실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소설의 틀이 모호한 자유로움, 방황이 늘 매력적입니다. 삶의 치열함에 대한 극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블랑카님의 글에서 ˝청량함˝이라는 단어, 꼭 맞게 느껴지네요.

blanca 2016-05-16 14:45   좋아요 0 | URL
하루키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이듦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 있더라고요. 나이들면서 사람이 유연함과 개방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육십 중반이 되어서도 청년 같은 면면이 죽지 않는 걸 보면 이래서 하루키구나, 싶어요. 저도 하루키 책은 나오면 막 초조해요. 빨리 사서 읽어줘야 될 것 같은 ㅋㅋ
 

눈부신 나날들은 바깥으로 흐른다. 때로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따사로운 햇살, 향그러운 봄꽃, 젊은 아이들, 그림 같은 아가들. '생로병사'를 절감하는 하루 하루. 김연수가 맞았다.

 

모든 연령이 다 힘든데, 인생에서 골짜기처럼 꺼지는 나이대가 있죠. 그게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아이는 성인이 되고, 부모는 돌아가시죠. 그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오히려 모두가 나에게 기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죠.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

 

제임스 A. 미치너가 <작가는 왜 쓰는가>에서 권한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었다. 4대에 걸친 부덴브로크 가문의 흥망성쇠가  이십 대 중반의 토마스 만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물론 군데 군데 너무 전형화된 인물형을 고수하려는 작가의 고집이 다소 미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러한 한계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삶에 대한, 특히나 이십 대에는 도저히 알아차리기 힘든 그 생로병사에 대한 진중한 이해가 놀랍다. 청춘 안에 가두어진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고 믿기 힘들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역시 위대한 작가의 시선은 그 너머로 향해 있다. 거대한 저택도 젊음도 삶에 대한 의욕, 확신, 꿈, 기대도 어느 순간 허물어지고 이지러져 소멸로 간다는 것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가 있다. 그래서 거상 부덴브로크 가의 화려한 집 안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자라나 저마다 삶에 주어진 책무와 굴레 안에서 분투하다 넘어지고 절망하고 죽는 과정에 대한 그 흐름은 대단히 실제적이다. 특히나 가업을 승계한 장남 토마스가 외견상으로 모든 것이 무난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에게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하여 천착하는 장면은 암시적이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누구나 두려운 것이구나, 싶은 마음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더 한층 사는 일에 대한 그 생래적 고통의 무게 같아 암담해지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 결국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시점은 모든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장남 토마스를 냉소적으로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 그의 내면에서 몰아치는 그 수많은 갈등, 회의를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안토니의 그 무모하고 단순한 면면을 희화화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소녀 시절과 청춘에 대한 묘사는 더없이 너그럽고 아름답다. 그래서 토마스 만이 안토니인 것 같기도 하고 토마스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인물들의 바깥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때로 일심동체가 되어 이야기한다. 해파리를 널어 말리면 그 안의 별이 남을 것이라고 믿었던 소녀는 끝내 첫사랑을 포기하고 정략 결혼을 묵인한다. 계속되는 결혼 실패에서도 결국 부덴브로크 가의 마지막 생존자는 그녀가 된다. 죽음이 자신에게 부과된 생에서의 모든 부담과 그 형식에서의 궁극적인 해방일 거라고 소망했던 토마스는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그 외양의 엄격함을 어처구니 없이 죽음 앞에서 빼앗기고 길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최후를 맞는다. 젊은 토마스 만 앞에서 삶은 무한히 크고 단단한 것이 아니라 작고 조야하고 허무했나 보다. 아름답고 찬란했던 의욕의 시대는 전반에 소멸과 절망과 허무는 후반에 배치되어 삶의 전개도를 그린다.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환갑을 훌쩍 넘겨 연주하는 피아노 영상을 본다. 젊었을 때의 화려한 타건과는 다르다. 무언가 아주 유려한 흐름이 있다. 격렬한 대목에서는 힘겨워도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설명하기 힘든 우아한 노장의 연주 앞에서 울었다는 댓글을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건반의 터치에 실린 시간은 허무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것은 아닐 게다.

 

 

 

https://youtu.be/8mxJ1zMNrns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6-05-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에서 쉰살 사이...아니 쉰살에 가까운...
아직 네분이 살아계셔서 덜 부담스러운데 곧...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들듯 합니다.

blanca 2016-05-09 15:03   좋아요 0 | URL
사람이 늙고 죽고 태어나고, 이 당연한 명제가 얼마나 처절하게 무거운 것인지를 요즘 실감해요. 나이 잘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면 정말 대단타,고 감탄이 나옵니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좋아합니다. 예전엔 주로 화장실에서, 베란다에서. 요즘에는 솔직히 그런 공간들에서 스마트폰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되어서 좀 줄긴 했지만 그래도 책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당연히 종이책이지요. 잠깐 이북을 다운 받아 보기도 했는데 저는 영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눈도 좀 피로하고. 손으로 만지지 않는 이야기에는 무언가가 결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음, 예전에는 책에 볼펜으로 밑줄을 긋기도 하고 접기도 하고 했는데 나중에 그렇게 이미 되어 버린 내 책을 보는 게 낯설고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왜 여기에 줄을 그었나, 싶은 대목들. 되도록 새 책 그 상태로 보고 간지를 붙이고 나중에는 따로 노트에 그 부분을 옮겨 적어 둡니다. 그렇다고 그 노트를 다시 보지도 않으면서도 되새김질하듯 그런 필사의 과정을 하게 됩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솔직히 자기 전에는 책을 잘 읽지 않아요. 일단 아이들을 재워야 하기 때문에 불을 꺼버리기 때문이고 이상하게 자기 직전에는 읽는 것보다 사람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라디오를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어요. 책 낭독 팟캐스트를 들으며 잠들기도 했는데 그런 습관이 또 어느 새 없어졌네요. 너무 재미있어서 잠이 확 깬 경험이 있어서요. 김영하가 덤덤한 목소리로 읽은 체홉의 단편이 그랬어요. 좀 으스스해지기도 하고.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솔직히 나의 개인 서재가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 간소하게 줄이려고 합니다. 두 번 읽지 않을 책은 끊임없이 처분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작가별로 책을 눕히지 않고도 잘 정리한 볕이 잘 드는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한 권, 한 권 다시 읽어가며 늙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소공자>, <소공녀>, <쿠오레> 속의 사랑스러운 소년, 소녀들을 닮고 싶어서 몇 번이고 읽고 말투(번역체)를 따라해 보기도 했고 뭐 그런 기억이..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나를 더 예뻐해 준 것도 아닌데...아무도 나를 주목해 주지 않아서 그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무언가 관심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었던 것도 같아요.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좀 뜬금없는 책들도 ㅋㅋ <금융법률실무> 같은 거, 지난 주에도 버릴까 하다 한때의 경험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기기로...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정말 진심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싶어요. 그가 죽기 전에 어떻게든 먼 발치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는데... 자신의 일과 글쓰기를 충실히 양립시키면서 사려 깊고 섬세하게 삶을 살고 또 그렇게 죽어간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러워요. 다양한 관심사가 예술과 사람에 닿아 있어 그런 부분이 참 경이롭기도 하고. 제대로 성실하게 잘 살다 간 부분을 닮고 싶어요.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대체로 읽은 편입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민음사 판으로 나오는 순서대로 읽어가고 있는데 다 읽을 수 읽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지금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있는데 다 읽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네요. 아주 잘 넘어가는 책은 아니라서요.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서머싯 몸의 <면도날>. 이 책은 정말이지 읽고 또 읽어도 읽을 때마다 매번 놀라요. 소설 이상의 이상. 잘 읽히기도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인간 모두가 그 상황에서 정확한 설득력을 얻는 것 같아요. 어느 누구 하나 이해하지 못할 캐릭터가 없어요. 마치 인생 자체인 소설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그 어떤 책이라도 좋아요. 한국어의 찰진 맛이 그리울 때 박완서의 글은 그런 허기를 채워 줍니다. 마지막 한 권은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만나지 못한 그 어떤 책이 될 듯합니다. 가장 좋은 책은 항상 또 생겨나곤 하니까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조기후 2016-04-2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읽은 편입니다... 존경합니다 블랑카님 ㅜㅜ

blanca 2016-04-23 19:30   좋아요 0 | URL
에이, 그건 제가 읽고 싶은 책에 한에서잖아요^^;;

단발머리 2016-04-2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일 중요한 질문이 10번 같아요.
10번에서 제일 확실히 알 수 있죠. 진짜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 다시 보이네요. 블랑카님의 추천에^^

blanca 2016-04-23 19:31   좋아요 1 | URL
아, 정말 정말 너무 좋아요, 면도날!!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좀 내면적인 묘사가 힘들까요?

페크pek0501 2016-04-24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도 서머싯 몸을 좋아하시는군요. 같은 팬으로서 반갑습니다.

이 페이퍼, 비교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6-04-24 10:2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서머싯 몸 페이퍼 열심히 읽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자와 맥주> 참 읽고 싶은데 이게 번역본은 너무 오래 된 거더라고요. 차근 차근 전부를 찾아 읽어 보고 싶어요.

다락방 2016-04-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면도날은 사두기만 하고 아직도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중 하나인데 블랑카님은 무인도에 가져갈 책이란 말입니까!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서머싯 몸이 남성우월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데, 면도날을 읽어보면 제 기억이 맞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책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한 이 페이퍼들을 읽으면 자꾸 새로운 책이 사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 ㅠㅠ 물론 면도날은 가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blanca 2016-04-29 14: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면도날>을 제가 좋아하는 건, 그 작가들이 어떤 인물을 창조할 때 한 명 정도는 굉장히 멋지게 형상화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소설적이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우리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닮은 면이 다 제각각 있어요. 보고 또 봐도 그 소설 속의 인물은 살아 있어요. 이게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더라고요. 아, 책 욕심은 정말이지 아, 저도 미치겠습니다. ㅋㅋ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첫 문장이다. 한때는 내 삶에 굴곡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이 그다지 유별나게 굴곡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다 그렇더라. 크고 작은 파문 가운데에 놓여 있다. 많은 서사를 품고 있는 삶은 이제 읽고 듣는 것으로 족하다는 조금은 안일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변화가 삶의 본질인데 나는 그 변화에 적응이 느리고 겁이 많다.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떄가 있다.

-p.223

 

저자 리베카 솔닛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녀 관계는 어머니가 딸에 가지는 묘한 경쟁심으로 인해 따뜻하거나 교감을 나눈 기억이 없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일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러한 범위로 한정되지 않는다. 생로병사, 사회적 가치, 연대, 공감, 사랑으로 확장해 나간다. 겁이 많은 나에게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는 그녀의 결심과 가족과 지인들의 투병, 죽음 앞에서 자꾸만 닥치지도 않은 온갖 상황들에 매몰되는 나에게 삶에 닥치는 그러한 고통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너무 시의적절했다. 마치 리베카 솔닛은 나를 지금의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격려하고 세심하게 조언한다.

 

에세이의 한계는 자기 경험의 범위다. 그것을 넘어서기가 어려워지면 신변잡기로 오그라든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에는 분명 이 경계를 지워버리고 확장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이 돋보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의 혁명 전후의 삶, 프시케의 신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등의 이야기와 그녀의 목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만나는 암초와 그 암초를 넘어서 꿈꾸는 것들과 시간 앞에서 소멸로 가는 길들에 대해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을 벼린다. 강요도 단정도 과장도 미화도 생략도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수술, 친구의 죽음 같은 그녀 삶의 이야기는 도드라지지 않으며 묘하게 어우러져 그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읽는 이들도 그 이야기로 연결되는 패턴을 따라 함께 섞이고 확장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읽고 뛰던 가슴이 좀 가라앉았다. 다들 그렇듯이 삶의 풍경은 다르지만 생로병사와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소멸의 노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6-04-1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 글도 참 좋네요...
저는 레베카를 저만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어요.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원서도 구입했구요.
그녀의 이야기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죠. 그래서 위로가 되요^^

blanca 2016-04-13 13:38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까지 읽은 여느 에세이와 참 다르더라고요. 그 깊이와 넓이가 참 경이롭기도 하고...원서는 어떤 다른 감상이 느껴질 지 기대가 되네요.

짜라투스트라 2016-04-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이죠. 그리고 이 글도 너무 좋네요. ^^

blanca 2016-04-13 13:38   좋아요 0 | URL
아, 벌써 다들 읽으셨군요!

무해한모리군 2016-04-1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지는 리뷰네요.

blanca 2016-04-13 13:39   좋아요 0 | URL
그저좋은모리군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가볍지 않은데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한 편의 긴 서사시처럼 아름답기도 하고요.

안한샘 2016-04-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리지 어떻게 받나요
 

한때 취미 발레를 잠깐 배운 적이 있다. 거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발레를 전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그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취미 발레 교습임에도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던 그녀들이 기억에 남는다. 목이 길고 선이 가녀리고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특별한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지친 나는 어울리지 않게 발레를 배우는 여자가 되어 피로와 스트레스로 뭉친 근육은 덤으로 풀고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의 그 매혹적인 경계에 잠깐이나마 발을 딛게 되었었다. 석달 천하로 끝나버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주인공이 발레리나는 아니고 학창 시절 발레를 배운 경험으로 무용원에서 성인과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발레 교습을 잠깐 맡게 되면서 떠오른 유년과 청소년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특히나 주인공 예정이 무용원에 단체로 온 유치원생들이 발레복을 갈아입고 용변을 보는 일 등을 도와주며 그 아이들과 비슷했던 나이에 낯선 남자로부터 당했던 성추행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읽기가 힘겨웠다. 아이들은 지극히 무력하다. 쉽게 자기보다 힘도 세고 상황을 악용하기 쉬운 성인들로부터 학대나 성추행을 당할 상황에 놓인다. 문제는 그러한 비극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조차도 주변의 어른들의 조력은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일어난 경우의 일일 때 그것을 은폐하고 축소하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아이들은 재차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상처를 받게 된다. 많은 평범한 겉으로는 지극히 상식적인 어른들이 정작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했다. 비겁해진다. 그러면 아이는 그러한 기억을 가진 자기 자신조차 부정하고 믿지 못하게 된다.

 

진실은 대부분 편하지도 편리하지도 조용하지도 않다. 뼈아프고 시끄럽고 불편한 경우가 많다. 어떤 관성으로 밀고 나가고 싶어질 때 마치 과속방지턱처럼 '타닥' 걸리는 소리에 주춤하게 되기도 한다. 그냥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자란 예정은 치유받는 감동적인 대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발레 교습을 받았지만 연결된 발레 동작을 구사하지 못하는 예정이 그랑주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그녀 안에는 부정되고 억압되고 은폐된 채로 있다.

 

미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결말이지만 진지한 질문을 어렵지 않게 하는 이야기가 혹시 나도 그러한 방관자적 어른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보게 했다. 상처 받은 아이는 상처 주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아이를 구해 주는 지켜 주는 어른이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일 것이다. 그 성장의 길목에서 방황하는 예정의 이야기의 여운이 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