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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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치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그곳의 참상을 다양한 형식으로 증언했다. 인간이 강제한 시스템 아래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견디어 낸 시간은 삶의 자기회복력의 세례를 받아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개별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견디어내고 살아남았다고 섣불리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 인간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한 기억은 그 인간들을 마주보고 살아내야 하는 삶 자체의 의미를 뿌리부터 흔든다.

 

그러나 <운명>은 여타 다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의 증언의 어조와 달랐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열네 살 소년이다. 회상의 형식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한창 가족의 따뜻한 보호 아래 공부하고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할 소년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 노역을 다니다 그 출근 버스에서마저 끌려 내려와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우리는 학교를 위해 공부하지 않고 삶을 위해 공부한다."였다.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대해 반드시 공부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4

 

열네 살 소년은 울지 않았다. 건조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때로 화가 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지만 그는 아이처럼 징징대지도 포기하지도 않은 채 그저 성실히 하루 하루 수용소 생활을 해나갈 따름이었다. 그의 시선은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주변 풍광, 그를 둘러싸고 수용소의 질서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어른들, 같은 수용소 안의 또래 소년들, 때로 항상 배고픈 그에게 대가 없이 빵을 주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격려하는 멘토 같은 사람들을 따라 움직인다. 그의 시선을 통과한 수용소의 풍경은 마치 우리가 가진 삶의 일상처럼 흘러간다. 소년도 때로 그 점에 놀란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 던져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하루 하루를 힘들지만 엮어 나가며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지쳐 있는 수용소의 의사에게 "당신의 고통은 별거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얘기해 줄까도 생각했다.

 

그는 일년 여의 수용소 생활을 종전으로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귀가하다 대신 전차 요금을 내어 준 어른에게 고국의 부다페스트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증오심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른도 아닌 아이를 부모에게서 강제로 떼어놓아 수용소에서 노역을 시키고 인간이하의 대우를 일삼는 것을 방조한 자신의 고국에 대하여 아이는 증오를 느낀다. 끔찍한 기억을 다 잊으라는 동네 어른들의 조언에는 반발한다. '내 기억에 대고 명령을 할 수는 없다.'고.

 

소년이 돌아올 곳은 해체되고 없었다. 아버지는 죽고 새어머니는 재혼했다. 그러나 노을지는 저녁 거리에서 생모를 찾아 가며 그가 느낀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가 이 시간대를 수용소에서도 가장 좋아했다,고 회고하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장엄하다. 계속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계속 삶을 지속해 가겠다는 각오를 지키기 위하여 소년은 나아간다. 어른들의 잔인한 도발로 소년의 삶은 파괴되지 않는다. 소년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살아 귀환한 자의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성장에 대한 기대가 어쩐지 눈물겨웠다.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자전적 이야기의 회고인 이 이야기가 그가 후에 소년 시절 겪은 수용소의 트라우마로 순탄치 않은 삶을 이어가야 했음을 알고 들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생을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음을 그 자신이 삶으로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단지 외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타인의 존재와 그에게 주어진 생 전부를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처절한 예시가 된다.

 

이제 우리 과장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p.284

 

언제나 삶에는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그 무엇이 있다. 그러니 섣불리 과장하지 못하겠다. 느낌도 짐작도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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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3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6-05-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혹시 영화 사울의 아들 보셨어요? 비르케나우 배경으로 한 영환데 영화 기법(잘은 몰라도)과 더불어 아우슈비츠의 삶을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역사를 기록하는 어떤 방식에 대한 고민거리와 더불어... 굴라그 배경의 문학작품들도 떠올리게 되고요. 다르지만... 아직 운명 초반부밖에 읽지 못했는데 얼른 읽어야겠습니다.

blanca 2016-05-24 20:47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댓글 보고 찾아보니 아주 평이 좋네요. 아쉽게도 아직 못 봤는데 줄거리 보니 도저히 못 볼 것 같아요. 이제 너무 참혹하거나 슬픈 영화는 차마 볼 수가 없어요. 홀로코스트 관련된 이야기들을 공교롭게 여러번 접하게 되는데 결국은 절망으로 귀결되서 자꾸 가라앉게 되는 것 같아요.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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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 작품들이 악을 형상화한다. '선'에는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없다. 경로도 한정되어 있다. 기대치도 있다. 평면적이다. 그러나 악은 바닥도 경계도 없다. 살아 숨쉬는 우리 모두에게는 끝도 없는 상승보다는 미담보다는 무한추락과 비극과 범죄 이야기가 더 가깝다. 그게 엄혹한 현실이다. 사람을 믿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정유정의 이야기에는 그렇게 태어난 아들의 이야기다. 아들은 화자가 되어 자신을 설명하지만 그의 악행은 설득력도 이해도 얻기 힘들다. 단지 그렇게 타고 난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근거일 따름이다. 정신병,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면죄부라기보다는 그의 범죄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양육 과정이 아들의 삶을 통제하고 아들의 꿈을 파기하여 결국 아들의 범죄를 막지 못한 실패로 결론이 난 어머니는 그리고 그들과 같은 여자들은 이 청년의 잔인하고 무감각한 악행의 조준점이 된다.

 

이 불편한 이야기의 경로에는 가파른 호흡을 물고 적확한 언어를 찾아 분투했을 작가의 지난한 시도와 그 시도의 궤적이 있다. 그가 이야기가는 인물들의 개연성, 관계, 매력을 떠나 그들의 어떤 행동도 정유정의 손끝에서 나온다면 살아 움직이는 힘을 얻는다. 소설적 언어의 지루함도 종이의 그 생래적 한계도 그녀 앞에서는 밀려나간다. 읽는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이 남자의 범죄 현장에 동행하며 어느덧 그의 행동 하나 하나를 바로 손 닿을 만한 거리에서 느끼며 멈칫하게 된다. 그 현장에서 말 없이 그의 행동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덧 공범이 된 듯한 죄책감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 때문일까, 아니면 그러한 악행을 적극적으로 말리고 개입할 자신이 없는 비겁함이 들킨 때문일까. 그를 끝까지 말리려 하다 결국 죽게 되는 형을 대신하는 존재였던 친구의 모습에는 우리가 용감한 시민이 되지 못하게 되는 어떤 참조점이 말라붙어 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미 한계와 거리를 가지고 시작하는 관계, 형제에 대한 묘한 경쟁심, 그리고 죽음, 일을 저지르고 돌아온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양가적 감정, 이미 그렇게 태어난 아이와 묘한 긴장 관계에서 시작하는 통제권을 가지고 싸우는 과정 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닫힌 가정 안에서 일어나다 마침내 밖으로 비어져 나와 애꿎은 희생양을 만드는 비극.

 

이러한 이야기는 이제 이야기에서도 현실에서도 낯익은 것이 되어버렸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는 명칭으로 그들을 한정하는 것은 그러한 악행을 감치고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동어반복적으로 완성시키고 끝내버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미 그랬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당분간 나이가 들 때까지 격리시켜 버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사는 거야. 그럼 그런 애가 나의 아이가 된다면? 우리 가족이라면?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의 결론은 또 다른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가고 만다. 인간의 악은 그렇게 동어반복적이고 자기복제적으로 끊임없이 순환한다. 이야기는 남의 것으로 소비되고 나의 것이 되어버리면  추방된다.

 

어두운 이야기의 슬픈 결말은 출구가 없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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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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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베네수엘라가 3년 새에 열악한 공중보건으로 신생아 사망률이 백프로 증가했다는 외신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했던 정부의 붕괴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예측 변수가 '높은 유아 사망률'이라는 지적의 예증 같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높은 유아 사망률이 정부가 허약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라는 것과 통한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역할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유독 이 책에서 열대국가들의 문제를 공중 보건 정책의 관점에서 조명한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얘기인 셈이다.

 

<총,균.쇠>의 저자로 각광받은 저자는 언뜻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어려운 얘기를 하는 석학으로 비쳤다.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이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지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대단히 광활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노교수의 육성이 들리는 듯할 정도로 생생하고 쉽고 지루하지도 않다. 세계적으로 불평등과 테러와 환경 오염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역사적이고 지리학적인 저자의 식견에 근거한 해법은 사변적이지 않으면서 진지하고 통찰적이다. 저자가 지리학 교수인 만큼 지리학적 위치가 어떻게 그 나라의 경제와 제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결론적으로 부의 불균형을 낳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국과 유럽의 원정대를 비교하며 결국 중국이 세계의 선두적 위치를 차지했을 수도 있었을 과거의 기회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에 역사적 분석도 인상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오히려 여기에서 '사공이 많아 배는 계속 나갈 수 있었다'로 치환되어도 무방할 듯하다. 정화의 원정대는 황제가 함대의 파견을 중단하는 것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유럽의 원정대는 여러 통치권자들의 지원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어 계속 이어져서 세계 정복의 동인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편 현대의 중국의 영향력과 미래 전망에 대한 모호하고 상대적으로 짧은 언급이 아쉬웠다.

 

'건설적 편집증'이라는 저자의 용어는 꼭 국가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개인의 삶에 적용할 만한 지침이 된다. 현대인들은 테러, 전쟁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음주, 흡연, 낙상 같은-은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은 개인 생활에서의 위기 관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조언이 된다.

 

현대의 각종 테러, 난민 문제를 세계적인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만 단순화하여 선진국의 경제 원조와 지원의 해법을 제시한 것은 문제를 평면적으로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당연히 경제적으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다른 안전하고 풍족한 국가를 공격하거나 그곳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에 난민이 되고 테러를 가한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국민들을 잠재적 난민과 테러분자로 낙인 찍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개인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들보다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반드시 무겁고 어렵게 이야기되지 않아도 된다,는 전범을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위기 문제의 해결이 개인의 삶에서의 위기 상황 타개에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부분을 여러 예시와 접목시켜 보여주는 대목은 개인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문제 해결과 역사의 과정이 분리될 수 없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방식에 어떤 노력과 시도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은 결국 닮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일인당 평균 인간영향'이라는 용어는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자원량과 생산하는 평균 폐기물량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화석연료 소비와 비례하므로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살면서 소비하고 쏟아내는 모든 것이 지구를 황폐화하는 데에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매주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한 가족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지 놀라게 된다. 내가 지구를 차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적게 소비하고 적게 오염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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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생을 만났다가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에 가보려 한다니, 101번을 타고 종로 2가에서 내리면 된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정말 지독한 길치라 낯선 길에는 본능적으로 겁쟁이가 된다. 정말 여기서 타는 게 맞냐? 거꾸로 가는 건 아니냐? 고 재차 확인하고 정말 백만 년 만에 제대로 된 외출을 하게 되었다. 봄날은 눈이 부셨다.

 

그.러.나. 나는 역시 잘못 내리고야 말았다.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참고로 예전에 회사에서 외근 나갔다 수원에서 버스를 거꾸로 타는 기염을 토해 퇴근 시간에 울상이 되어 겨우 회사에 들어오니 다들 미루어 짐작해 왜 늦었냐? 고 묻지도 않았다는-종로 3가에서 내렸다. 잠시 멍해졌다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켜고 차근 차근 지오다노 매장을 찾아 가니 올레! 드디어 알라딘 중고 서점 입성!

 

흥분을 가라앉히고 입구 복도에서 셀카를 찍었으나, 역시 아줌마의 얼굴은 자신의 것인데도 사진 보고 확 기분이 나빠졌다.

 

매장 안에는 근처의 대형 서점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이를테면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와 그 책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통과해 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책은 좋은 책들이 많아 예전에 큰 딸 만할 때 흥미롭게 읽은 <홍당무>를 골라냈다. 그러나 의외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눈에 띠지 않았다. 민음사나 문학동네 전집류도 거의 없었고 여하튼 내가 기대했던 책들의 풍경은 아니었다. 똑같은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 것도 좀 아쉬웠지만 아무래도 중고책이라는 게 처분을 매개로 한 것이다보니 정말로 갖고 있고 싶은 책은 안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문학의 경직된 틀을 깨려는 시도가  신선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또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실리면 좀 어렵다. 소설가 배수아의 작가 인터뷰는 언제나 챙겨 읽게 되는데 이장욱 작가는 어렴풋이 단편 한 편 정도 읽은 기억이 나서 잘 아는 작가라 하기는 힘들어 아무래도 몰입이 좀 어렵긴 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다 문학이란 접점에서 만나니 아무래도 대화가 깊이가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독자 입장에서의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 접근 자체를 좀 어렵게 하는 면도 있다. 문학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수긍이 가면서도 안타까웠다. 후반부에는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임솔아의 <선사인 샬레>를 재미있게 읽었다. 여행자들의 숙소를 '샬레'라 부르고 그곳을 청소하고 그들의 시중을 드는 '나'의 이야기는 건조하고 담담한데 투숙객 들과의 그 소통되지 않는 관계가 과장되지 않고 현대의 관계를 묘하게 오버랩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들이 묵는 방을 실험실의 '샬레'를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지칭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글로 차마 옮기기 힘들었던 많은 일들. 그 전과 후가 같을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젊어지더라도 눈부신 햇살을 통과해 걷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할 도리는 없다. 그 때는 너무 많은 경험의 주체가 되었기에 그것들로도 충분히 바빴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지 조금 알아서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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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4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5-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알라딘 중고 안 가 보셨군요.
정말 기대하고 가면 안 될 것 같구요, 그냥 둘러보다 의외로 눈에 띄는 책
있으면 반갑더라구요. 없으면 말구.
두 공주님들 때문에 어찌 다녀오셨을까 궁금 반, 걱정 반하네요.ㅋ
전 지난 번 예스24 매장 갔다왔는데 거기가 인테리어나 책들이 좀 나 보였어요.
그런데 책값은 알라딘이 조금 낫지 않나 싶어요. 그렇게 많이 차이나는 건 아니지만...

저도 이번에 나온 악스트가 이장욱이라 사 볼까 말까 생각 중이어요.
이름은 알지만 읽어 본 적이 없고, 제가 잡지는 잘 안 보는 편이라...
참, 그때 예스24 중고매장에 갔을 때 채널예스24를 가져와 봤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었더라구요. ㅋ

blanca 2016-05-14 19:34   좋아요 0 | URL
몇 년 전 초창기 때 가보고 거의 근 몇 년만에 가서 위치도 못 찾고 하여튼 어리버리했어요. ^^;; 아, 다음에는 예스24 매장 가봐야겠어요. 제가 읽고 싶은 책이 좋은 가격들로 나와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가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어요.

악스트 저는 좋더라고요. 잘 아는 작가는 아니지만 질문 하나 하나에 대한 답이 성찰이 강하게 묻어나서 배울 바가 많더라고요. 대신 스텔라님 저번에 언급하신 것처럼 아, 저는 작은 글씨 이제 너무 피곤합니다.--;;


단발머리 2016-05-14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줌마의 얼굴은 자신의 것인데도..
에서 웃고 갑니다. 저도 오늘 셀카 5장 찍었는데 모조리 삭제예정이거든요^^

blanca 2016-05-14 19:34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러니까요. 왜 제 사진 보고 제가 기분이 나빠지는 건지 ㅋㅋ 이제 애들 사진만 잘 나오고 제 사진은 뭐, 포기해얄 것 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6-05-1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셀카 못 보겠고, 화나고 그런데... 블랑카님도 그렇다니 어쩐지 안심. ㅋㅋ.

일산에도 알라딘 중고 서적이 있어서 한 번 들렸는데, 저는 꽤나 많은 책을 건져왔어요.
이후에는 시간이 없어서 들리지 못했네요, 실은, 서점 들리기가 겁나요, 하두 사대서. ㅠㅠ

blanca 2016-05-16 14:46   좋아요 0 | URL
일산에도 있었군요! 셀카는 찍는 족족 삭제하며 또 포기를 못하네요. 아웅, 제가 간 시점이 별로였던가 봐요. 기대 잔뜩 하고 큰 가방 들고 가야 하나 싶었는데 저는 애 책만 두 권 사고 하나도 못 건져서 너무 아쉬웠어요.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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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오는 밤 뜬금없이 스마트폰에 '김연수'를 검색했다. 그리고 마흔이 안 된 그의 과거 인터뷰 내용 중 수시로 '설국'을 읽는다는 이야기에 '설국'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언제였을까? 나는 '설국'을 읽었다. 어렸을 것이다.내용은 흐릿하고 그 아름답고 서늘한 분위기만 남아 있다.  어떤 아주 매력적인 여자가 나왔고 시리고 차갑고 요요한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의 잔상은 다행히 어그러지지 않는다. 이백 페이지도 안 되는 소설을 거의 한 자리에서 다 읽고 다시 되돌아 첫 페이지로 간다. '소설'이란 이런 식으로도 완성될 수 있구나, 싶은 이야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찾아보니 있긴 하다.) 급진적인 전개나 확실한 플롯이 없다. 보통 그러면 문장에 무게가 실리며 억지로 쥐어짜거나 과장, 미화된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많은데 '설국'은 언어로 담을 수 있는 모든 감각적인 색채들이 눈이 부시다. 문장 하나 하나에서 그 차갑다 못해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갑고 서늘한 설경의 냄새가 절로 뿜어져 나온다. 덧붙일 것도 생략할 것도 없는 딱 좋은 그 정도에서 작가의 욕심은 멈춘다. 응축되고 농축되고 농염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여기에서의 '국경'은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아니다. 지리적으로는 군마 현과 니가타 현의 접경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이라는 단어가 크게 어긋날 것 같지 않다. 경계를 넘어서서 한 인간이 인물과 그 인물의 뒤에 있는 풍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삶과 죽음을 넘어선 피안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로서 '국경'이란 표현은 무리가 없다. 시마무라는 동경에서 이 눈의 고장으로 넘어오며 고마코라는 당돌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 고마코는 온천장이 있는 마을에서 게이샤 출신의 스승으로부터 샤미센과 춤을 배워 결국 게이샤가 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묘한 삼각관계를 이뤘던 요코를 고마코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에 대하여됴 미묘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마코는 두 남자를 두고 동시에 두 개의 삼각 관계에 얽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주는 아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밀고 당기는 관계는 시마무라가 여행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때로 몸을 팔기도 하는 고마코가 일기와 독서록을 꼼꼼히 적는 일에 대하여 느끼는 냉소와 만나 허무로 수렴된다. 그것은 그 일의 하찮음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도 그 비애에도 성실하고 진지하게 모든 보고 읽는 것들을 대하는 소녀에 대한 안타까운 정서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기본 정서는 삶이 가지는 그 필연적인 허무와 덧없음에 대한 깊은 의식이다. 짧고 덧없는 생과 그 길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이별이 벌어지는 배경에 오히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언어가 닿아 있다. 끊임없이 내리고 또 내리는 눈 속에 갇히는 마을, 그 동면의 계절 동안 소녀들이 집 안에 갇혀 눈 속에서 실을 만들고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래는 지지미 옷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언뜻 큰 관련 없어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줄곧 연인 아닌 이 연인을 둘러싸고 담담하게 이어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연보를 보다 힘들게 맹장 수술을 받고 얼마 안 있어 가스로 자살한 대목에서 그 자신이 한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또 그 모든 과정을 기탄없이 부정할 수 있는 그 묘한 어긋남의 대목이 작가의 것이었나, 싶으니 시마무라가 은하수와 만나는 그 마지막 문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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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5-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국 다시 읽어야겠어요. 피상적인 제 독서를 반성하게 되는 글입니다...

blanca 2016-05-13 08:11   좋아요 0 | URL
노벨상과 문학적 완성도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책은 절로 수긍이 가더라고요. 얇고 가독성도 좋아서 여러 가지로 참 즐거운 읽기였습니다. 에이바님도 꼭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