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다시 시작한 피아노를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그만두게 되어 버렸다. 그러다 혼자 또 다시 시작했다. 나날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혼자 즐기게 된다. 어제 안 되던 마디가 오늘은 되는 경우, 시간만 잡아 먹는 게 나이 드는 게 아닌 것 같아 기분이 한결 낫다. 시험 공부는 괴로웠지만 시험이 끝난 뒤를 상상하는 시간이 행복했고 시험이 끝난 당일 그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시원한 기분이 좋아서 시험 끝나는 날을 기다리다 보니 대학생이 되어 버렸다.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시험이 끝난 뒤로 미뤄야 하는 인내의 시간의 무게가 시험이 끝난 뒤의 홀가분함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제 끝내야 할 시험이 없는 시간이 막막하다. 더 이상 다음 주, 내년, 십년 뒤를 설레어 하며 기다릴 나이는 아닌 것이다. 이제 무언가를 스스로 배우지 않는 한, 노력하지 않는 한, 등을 떠밀어 주고 격려해 주며 도착지를 안내해 줄 어른의 굳건한 지지는 없다. 잠들기 전, 잠과 잠 사이, 잠이 깰 때, 나이듦을 느끼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풍도 시험도 소개팅도 데이트도 알아가야 할 미지의 것들도 이제 다 어딘가 시간들이 쌓여 풍화하는 그곳에서 삭고 있거나 할 것이다.

 

 

 

 

 

 

 

 

 

 

 

 

 

 

 

 

 

제목이 참 쓸쓸하다. 중년을 훌쩍 넘겨 버린 프랑스의 철학 교사는 니체를 페소아를 쇼펜하우어를, 몽테뉴와 프로이트를 인용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생에 느낀 배신감, 그 황량함, 부조리함을 고백한다.

 

독일인들은 우울을 '세월병'이라 부른다. 마치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속에 섞여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부식성 물질처럼, 초,분, 시, 일, 주, 월, 년의 흐름이 우리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프레데리크 시프테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중.

 

 

그렇구나, 세월병. 요가를 하면서 때로 '몸'이라는 이 세월이 흔적을 매일 부지런히 쉬지 않고 아로새기는 바탕을 강렬하게 실감할 때가 있다. 내가 마음대로 구부리고 펼 수 있는 이 느낌도 결국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냥 그 찰나에 모든 것을 구겨넣고 싶은 심정이다. 철학 교사의 글은 철학자의 글 같은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막간의 자신의 이야기는 살짝 귀엽다.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여자를 향한 사랑에 대한 모순적인 소회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그렇지, 내일 죽을 것을 알아도 아름다움의 빛에는 반응하고 하나의 환상이 매개한다 해도 거기에 더한층 진실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 뼛속까지 물든 염세주의자는 도저히 삶을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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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6-2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안 되던 마디는 연습하면 나아지기도 하겠지만 ... 이젠 끝내야 할 시험이 없다는 블랑카님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네요...

blanca 2016-06-21 10:17   좋아요 0 | URL
줄줄이 시험이 있을 때에는 그리도 괴롭더만 이제 무언가를 준비하고 기대할 시험이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리니 이것 또한 허무하네요. 자기가 스스로 뭔가에 도전하지 않는 한 주어지는 시험은 없으니까요. 만들어서 시험이나 도전 과제라도 저 자신에게 주어야 할 까봐요.

2016-06-20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2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아노를 다시 쳐보고 싶은데, 기회를 자꾸만 미루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두 손은 책을 받쳐주는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

blanca 2016-06-21 10:18   좋아요 0 | URL
아직 늦지 않았어요. 꼭 다시 시작해 보세요. 책을 받쳐주는 노예도 좋긴 하네요.^^;;

마녀고양이 2016-06-2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새로 나온 악보집을 보면서, 정말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졌어요.
수 년 전에 디지털 피아노도 다시 사놨는데... ㅠㅠ.

블랑카님, 몸이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 제 현실입니다. 틀림없이 십 년 전에는, 아니 오륙 년 전에는 허리를 비틀어서 왼쪽 무릎이 오른쪽 바닥에 닿았던 것 같은데.......... 잃어버린 것들을 많이 생각하는 날들입니다, 물론 하고 싶은 것들과 하고 있는 것들, 해내야 할 것들로 머리가 분주하기도 한 날이기도 합니다. 머, 이래 저래 초조감이 생애를 지배하네요. ㅋ

blanca 2016-06-21 17:1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빨리 시작하세요. 이게 또 다른 말도 못하는 재미가 있어요. 저는 레슨은 아직 아이 때문에 못 받아서 그 점이 어찌나 아쉬운지... 그래도 참 신기한 게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어제보다 오늘이 분명 더 좋아요. 살면서 사실 그런 건 별로 없잖아요.


희선 2016-06-22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은 없다 해도 아주 없는 건 아닌 것도 같아요 정해지지 않은 답을 찾아야 하는 건 시험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천천히 하는 것도 괜찮죠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군요 그걸 생각하고 하시는 분을 알뿐이네요 끝은 알 수 없고 끝이 없을지 몰라도 날마다 뭔가 하면 조금씩 쌓이겠죠 그날그날 할 것을 정해두어도 괜찮겠네요 피아노도 그래야 할 듯합니다 오늘 잘 안 되면 내일은 좀 나을 거야 하고... 피아노 즐겁게 하세요


희선

blanca 2016-06-22 11:42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희선님, 더 열심히 즐겁게 피아노를 쳐야 할 것 같아요. 사는 일 자체가 어쩌면 하나 하나 시험을 치루어 내는 과정일 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처럼 그 결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건 또 나이듦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어요.

테레사 2016-07-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피아노가 집에 있다니..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직장다니면서 유일한 꿈이라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한곡이라도 칠 수 있을 정도의 피아노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바이엘40번인가에서 멈췄습니다...손은 이미...지멋대로 ..빳빳합니다.

blanca 2016-07-05 16:30   좋아요 0 | URL
언제 다시 시작하셔도 삼개월 안에 손이 다시 풀릴 거예요. 손은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테레사님의 꿈도 조만간 이루어지기를...
 
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언어의 그물코는 듬성해서 때로 많은 것을 놓치고 현실과 유리된다. 그 지점부터 이야기는 공허해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야기를 원하지 않게 된다면 때로 현실이 이야기보다 더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도 이어져 나가고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도 그 사슬 고리를 결코 끊어버리지 않는다는 엄혹한 진리를 이야기가 외면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거나 만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윌리엄 트레버는 달랐다. 그의 이야기는 그런 우리 청자들의 갈급함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대응한다. 그의 이야기는 삶과 철저히 닮아 있으면서도 삶을 함부로 폄하하거나 유치하게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제 할 말을 다 하고 제 갈 길을 유유히 간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읽다가 멈춘다면 반칙 같다. 그의 이야기를 읽는 행위 자체가 삶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첫 이야기의 첫 문장은 수수께끼 같다. "바이얼릿은 피아노 조율사가 젊은 시절에 결혼했다. 벨은 그가 늙었을 때 결혼했다." 다시 돌아가 읽는다. 그러다 거의 한 대목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조율사의 아내들>의 이 첫 문장을 이해한다. 늙은 맹인 피아노 조율사는 아내 바이얼릿과 사별한 후 비로소 자신을 내도록 지켜보았던 벨과 재혼한다. 이제 이미 죽어버린 바이얼릿과 살아 있는 벨은 한 남자를 공유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바이얼릿은 남편에게 세상을 묘사하는 눈의 역할을 맡아 세상 그 자체의 인상을 자신의 눈과 언어로 만들어 조율사에게 각인시켜 놓는다. 맹인이 보는 세상은 아내 바이얼릿이 묘사한 그것이었다. 벨은 그러한 세상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섭섭하고 괴로운 일이다. 남편은 죽은 아내의 눈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는 벨을 아프게 한다. 트레버의 위트는 날카롭다. "살아 있는 사람이 늘 이기는 법"이라는 그의 말은 벨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덧붙이는 이야기는 더 젊은 더 나은 시절의 남편을 소유했던 전처 바이올렛의 이점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내들은 비로소 동등해지는 것일까.

 

트레버의 노부부들에게는 찬란한 시절, 어려운 시간들을 통과한 삶의 동지애적 유대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웬만한 일에는 놀라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하나뿐인 아들이 동성애자로 나이 든 남자가 남겨준 재산으로 먹고 살며 자신의 생일날에도 건달 같은 친구를 대신 보내 부모가 아끼는 물건들을 훔쳐가더라도 <티머시의 생일>, 딸이 아버지의 늙고 무능력한 한량 친구와 사랑에 빠져도 <데이미언과 결혼하기>, 그들은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슴앓이는 해봐야 소용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기력한 체념과도 또 다르다. 교통사고처럼 벌어지는 비보들 앞에서 시간과 세월의 무게는 때로 지혜가 된다. 아등바등 안달하고 이미 일어나버린 일들을 뒤집어 보려 억지로 삶과 겨루려 하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것에는 그들이 낳았지만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식이 포함된다.

 

실연하고 어린 시절 묵었던 숙소 '펜시오네 체사리나'에 홀로 체류하게 된 젊은 해리엇 <비온뒤> 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지만 그가 어쩌면 낳아 올지도 모를 혼외 자식이 성장하는 미래를 그려보며 저녁을 준비하는 중년의 레스웨스 부인 <하루> 도 고통스러운 상실과 결핍에 압도되는 대신 묵묵히 평범한 하루로 돌아오고 내일로 걸어들어간다. 현실의 엄혹한 진실의 핵에 가 닿을 때 비수처럼 찌르는 그 칼끝도 결국은 살아내는 일 앞에서 무뎌지는 것임을 트레버는 담담히 변주한다.

 

사는 것은 때로 비루하고 치사하고 비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결국은 그것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윌리엄 트레버의 결곡하고 간명한 음성으로 듣는 일은 그러한 삶의 막간을 채우는 아름답게 채우는 일이다. 충분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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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6-1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별 다섯을 던지시다니
읽고싶어지네요^^

blanca 2016-06-17 15:00   좋아요 0 | URL
이것은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단편의 정점은 카버,체호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트레버로 바꾸렵니다.

시이소오 2016-06-17 15:48   좋아요 0 | URL
저역시 단편의 정점은 카버,체홉이라고 여겼는데요. 우와,읽고시포라ㅎ ㅎ

단발머리 2016-06-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트레버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예요.
정영목 번역자님이 더 눈에 띄네요. (우리의 필립 로스^^)
진짜 별 다섯인가요?
그럼 저도..... ㅎㅎㅎㅎ

blanca 2016-06-17 15:01   좋아요 0 | URL
영미권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작가인데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로 알아요. 저도 처음 만났는데 과장 좀 해서 너무 놀라웠어요. 저도 좋아하는 번역가인데 이번 책에는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직역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트레버의 문장 자체가 그런 것인지 몇 번을 되풀이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sslmo 2016-06-1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추천인데다가 정영목 님의 번역이라니, 저도 당근 장바구니로 직행입니다.
정영목 님이라면 꼼꼼한 번역으로 출판가에서 소문이 자자하다죠.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출판사 사장님께서 이분이랑 작업을 해봤는데,
좀 대충 빨리 하자고 해도, 시종일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신답니다.
덕분에 제가 아는 사장님도, 그때 이분도 주머니가 아주 홀쭉하셨다는데...지금은 어떠시려나 모르겠네요~^^

이런 분들의 처우가 개선 되어야, 우리나라 출판, 번역 계의 앞날이 밝을텐데 말이죠~--;

blanca 2016-06-18 13:45   좋아요 0 | URL
아, 트레버 할아버지 아직 생존해 계신다고 하네요. 필립 로스와 더불어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라는 전범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이야기와 관련된 사람들이 좀 경제적으로 너무 시달리지 않아서 쓰고 번역하고 노래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으면 합니다.

자목련 2016-06-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곁에 둔 책인데, 더 빨리 읽게 만드는 리뷰네요.

blanca 2016-06-21 17:11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은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이런 작가라니, 정말 어디 숨어 있다 이제 나오셨는지... 그런데 이미 충분히 유명한 작가였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6-07-04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제가 사는 곳에서는 앤 타일러와 줄리언 반스라는 대가들의 신작이 나와 꼭 잔칫날 같아요. 앤 타일러는 작년 이맘때 푸른 실타래를 내고서 한동안 신작이 없을 것으로 알았는데 지난주에 한 권이 출간되어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는데, 그 필력이 마치 이런 것은 수천 번도 더 써보았다는 양 당당하게 스타일을 유지해서 역시나, 싶어요. 우디 알렌, 앤 타일러, 줄리언 반스, 필립 로스(더이상 신작을 쓰지 않지만..) 이 작가들의 글을 천천히 읽고 있어요. 이 책 다음에 무엇을 읽을까, 생각해 봤는데 블랑카 님의 리뷰에 아마존과 동네 서점을 뒤적일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blanca 2016-07-04 08:25   좋아요 0 | URL
저는 앤 타일러는 못 읽어봤는데 좋은지 궁금하네요. 아, 전 우디 알렌의 영화도 너무 좋아요! 쟌느님, 혹시 <블루 자스민> 보셨어요? 필립 로스는 대중 강연도 안 한다고 선언했다는데 왜 그런지 이야기 좀 들어보고 싶어요. (마치 아는 사람처럼 ) 쟌느님 어디 사시는 지 궁금하네요. 어디 살아도 잔느님 계신 곳은 여기보다 한뼘 쯤 더 근사해 보인다고요.^^;;

Jeanne_Hebuterne 2016-07-07 22:00   좋아요 0 | URL
blanca님, 앤 타일러는 제게는 미국의 박완서 같은 느낌이에요. 두 사람 다 수다를 뼈대를 가진 이야기로, 옛시절의 향수와 그분들이 살았던 무섭게 추운 겨울, 숨막히게 더운 여름을 생동감 있게 살려내곤 하거든요.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늘 창밖 어딘가에 찹쌀떡이나 군밤장수가 있을 것만 같고, 앤 타일러를 읽으면 음악소리를 내며 아이스크림 트럭이 지나가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요.
블루 자스민, 봤지요! 기본 아이템은 좋은 걸로 살수록 좋다는 교훈(샤넬 트위드 자켓을 야무지게도 돌려 입더라고요 호호)은 둘째치고, 우디 알렌 특유의 인물을 수렁에 빠져들게 하는 개미지옥같은 솜씨라니...젊은 시절 순이와의 스캔들에 대해 물어보니, 미국인들도 난감해 하더라고요. 그래, 정말 미친짓이었지..관계도 깨어버리고 여간해서는 벌일 수 없는 짓이었잖아? 용서받아선 안될 일이었어. 그런데 그게 또, 그래도 우디 알렌이잖아? 어쩌겠어. 라고 말하는 걸 보니, 이 양반의 세계가 얼마나 독보적인지가 보이더라고요. 스캔들과 영화라는 작업의 접점보다는, 한 개인의 스타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그의 영화가 정말 좋아요. 히힛

제가 사는 곳은요, 길에 사슴도 다니고 아이스크림 트럭도 다녀요. 스컹크, 너구리, 엄마 사슴, 아기 사슴, 고양이도 길에서 봤지 뭐여요. 햇빛이 타들어가고 밤은 서늘하죠. 그치만 언제나 일상은 무채색이고 반짝임은 찰나같아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그리운 블랑카님? 늘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6-07-08 16:16   좋아요 0 | URL
호옥시...텍사스 주 오스틴 아닌가요? 두근두근 ㅋㅋ 아, 쟌느님이 박완서에 비유해 주시니 앤 타일러의 색깔이 확 와닿으면서 빨리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자냥 2016-07-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히려 번역이 별로인 것 같더군요. 트레버 팬이 되셨다면 이 책보다는 현대문학 세계단편 15번째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을 추천합니다. 저는 현대문학 버전으로 트레버를 먼저 만나고 최근에 이 책을 읽었는데....<비 온 뒤>에서는 이상하게 문장이 읭? 스러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blanca 2016-07-23 19:34   좋아요 0 | URL
아, 잠자냥님, 꼭 읽어볼게요. 안 그래도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있었는데 곧 주문해야겠습니다.
 

박완서 작가와 하루키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31년 생이고 하루키는 49년 생이니 열다섯 살이 넘는 나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박완서 작가는 이미 삶의 비의를 알아버린 노년의 성숙하고 세상사에 초연한 모습으로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에서 언제나 돌아가곤 하는 청년의 미성숙하지만 생동하는 모습이 남아 있어 어쩐지 두 작가가 함께 하는 모습은 잘 연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완서 작가는 일본 삿포로에 갔다 우연히 근처의 대형 서점에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던 소회를 고백한 적이 있다. 더불어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두 작가가 실제로 만나 문학과 소설가로서의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상상하면 재미있다. 당신의 삶이 겪은 풍상을 주로 이야기화한 박완서 작가와 자신의 내면의 심연으로 하강하여 상상의 이야기를 펼쳐나간 하루키는 분명 작품을 빚어내는 지점 그 자체는 어긋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로서 삶에 대하여 가지는 자세나 태도 가치관 등에서는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친구가 되기 위하여 꼭 닮아 있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너무 달라서 그 다른 부분에 이끌려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쇼팽과 리스트의 교분도 그러하다. 리스트는 그 시대의  아이돌 같은 존재로 수많은 여성팬들의 지지와 열광을 받았던 '차도남' 이미지였다면 쇼팽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인간 관계도 협소한 편이어서 둘은 언뜻 반대되는 성향처럼 보이지만 한 살의 나이 차이로 친구 사이였다. 게다가 프란츠 리스트는 친구에 대한 다감하고 더없이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쇼팽의 삶과 음악을 다룬 글을 남겼다. 문장 하나 하나에는 최후의 경계까지 넘어가 그 사람과 합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하고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후원자이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 결국 불화하고 여동생의 옆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던 쇼팽이지만 이런 지기지우가 프란츠 리스트였다니 음악적 성취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의미에서 그의 짧은 삶이 헛되지 않다. 누군가 내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특별한 교감은 분명 쉽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니다. 리스트는 친구보다 거의 갑절에 가까운 삶을 살아내며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친구의 음악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경의를 이어받았다.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그 친구가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친구의 성취나 환희의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을 넘어서야 타인과의 결국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소통의 경계가 무너지고 확장된다. 그것을 뛰어넘은 자리의 시선의 마주침은 삶과 죽음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한 우정에의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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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6-06-0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와 하루키, 그리고 쇼팽과 리스트를 연결시키는 님의 글솜씨는 정말 멋집니다. 님이야말로 책을 냈어도 여러권 내셨어야 하는데.... 님의 서재를 방문할 때마다 많은 영감을 얻고 갑니다. 맨날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미안한 맘이 드는데요 보답으로 좋아요 누를게용

blanca 2016-06-09 15:15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은 사람 기분 좋게 하시는 재주가 있네요^^;; 댓글 하나로 덥지만 기운 나는 하루 선물해 주셔서 감사해요. ^^
 

2008년 30년을 함께 한 아내 팻 캐바나가 쓰러지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죽는다. 그녀는 문학 에이전트였다. 감정적 지지 뿐만 아니라 줄리언 반스가 글을 쓰는 데에 있어도 동료 이상의 역할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한 아내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의 농도는 다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슬픔을 견녀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은 그러나 그가 이미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이야기하고 난 이후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랬다고 해서 그의 예상처럼 더 견딜만한 것이 되지는 않았다.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해도 결국 우리는 울 수밖에 없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오십 년 뒤에는 대부분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이것을 항상 볼테르처럼 의식한다면 분명 지금 이 순간이 가지는 중량감은 커지겠지만 만성적인 우울증과 허무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테면 어차피 죽을 텐데 오늘 책을 사고 무언가를 주문하고 읽고 미래를 계획하고 약속을 하는 이 사소한 일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늘 아침 나와 웃으며 다음 약속을 이야기했던 사람이 오늘 오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경우, 내년까지만 어찌 어찌 지금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유예하자 했던 사람이 그 내년이 왔을 때에는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가장 엄중한 죽음의 경고를 맞게 되는 경우가 다 남의 것이자 이야기로만 소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멸이라 믿으며 오늘을 습관적으로 소비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줄리언 반스식의 천착이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프랑스의 작가들, 음악가들, 철학자인 반스의 형과의 '죽음'을 둘러싼 대화와 어우러지는 그의 솔직한 위트와 함께 결국은 삶을 내러티브화하며 허약한 의미를 힘들여 얻어내려 하는 그 무의미한 우리들의 분투와 치기,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해체는 때로 섬뜩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건조하고 걍팍하게 무의미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역자의 말처럼 줄리언 반스는 자기현시적이지 않아 언제라도 어떻게라도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격파해 줄 조언이라면 그것이 진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기꺼이 승복할 자세다. 거만한 작가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학자연하는 태도가 아닌 자신이 채집한 수많은 죽음에 관한 예술가들의 실제 사례와 조언, 깨달음 등을 기꺼이 독자와 나누며 결국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지어진다 하여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종말이 지나치게 허무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기를 희구하는 평범한 소망에 솔직한 자세가 공명한다.

 

'마그니 만찬'은 플로베르, 투르게네프, 공쿠르, 알퐁스 도데, 에밀 졸라가 모여 만든 저녁 식사 모임이었다. 듣기만 해도 화려한 작가 군단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 저녁 식사에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묘하게도 '죽음'이었다고 반스는 이야기한다. 가장 화려한 시기를 통과하며 가장 나다운 이야기와 나의 성취를 누리던 바로 그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은 필멸을 의식하고 두려워했다. 그들이라고 더 나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나 결론, 실제 그들이 그러한 죽음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때때로 의심한다. 죽음에 대하여 더 이야기하고 더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의기소침해한다.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도 또 잊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필연적인 무의미와 허무를 떨치기도 힘들다. 막상 그것이 다가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하는 것도 과연 내가 받아들이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다가왔을 때 경험할 공포도 두렵다. 아니,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해도 그것과 화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런것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전혀 위안이 안 된다는 게 사실 더 절망적이다. 필연적이었구나. 출구는 없구나, 싶은 답답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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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화기애애한 만찬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분위기가 엄청 이상할 겁니다. 잘 먹던 음식이 입에 안 들어갈 거고요. ㅎㅎㅎ

blanca 2016-06-02 10:12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마그니 만찬에는 그냥 객원 멤버로 참석만 해도 영광일 듯해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로라 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모여 정작 죽음에 대하여 고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니 의외기도 하고 역시 그렇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단발머리 2016-06-0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죽음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겪는 과정이 두려워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 과정이요.
스스로의 삶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그런 순간이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읽어봐야겠어요.
줄리언 반스니까요.^^

blanca 2016-06-03 11:07   좋아요 0 | URL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사실 더 불안하고 두려워졌어요. 굉장히 솔직하게 줄리언 반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듣고 나니 이렇게 많이 읽고 쓰고 깨달은 사람도 이렇다면 `죽음`이란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종결이구나, 싶어서요. 독특한 반스 식의 글쓰기에 매료 당하는 중입니다. 훌쩍 나이 든 필립 로스도 한번 이런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글도 안 쓰고 이제 강연도 안 한다니...그답기도 하고 섭섭하네요.
 

작가의 이력에 이끌려 그의 책을 찾아 읽는 건 묘한 경험이다. '그'는 이 책을 아니, 문학을 칠십이 넘어 시작하고 완성했다.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 되었고 생전에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녹아있는 이 이야기의 영화화를 반대하다 유언으로 승낙하게 된다. 그는 4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그 아름다운 강의 정경과 생소하지만 묘하게 어떤 그리움을 자아내는 플라이 낚시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작가의 가르치는 자로서의 성실함과 시간의 두께는 <스토너>의 남자 주인공과 닮아 있다. 둘 다 화려하진 않지만 설명하기 힘든 비범하고 아름다운 생을 성실하게 살아냈다. 그 둘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언어는 대단히 정묘하고 생생하다. 장로교 목사 아버지와 어딘지 이 세상에 굳건하게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할 것 같은 반항아적 동생과 함께 플라이 낚시를 떠난 '나'의 시선을 통과해 오는 그 모든 순간들은 강과 낚시를 둘러싸고 한 가족의 역사와 사랑과 추억을 아로새겨 놓은 절창이다. 그가 '강'을 앞에 두고 하는 생각들은 '삶'을 숙고하는 자세의 메타포다. 그 '읽기'는 건조하지만 깊고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버지는 형제가 읽고 쓰는 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갑작스런 동생의 죽음은 동생이 '플라이 낚시'에 보이는 재능, 열정이 극대화됨으로써 복선이 되고 또한 아버지와 내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를 구태여 소설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때로 불친절하고 거친 듯한 필체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읽는 일을 하찮은 일로 폄하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왜 해야 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묘하게 짐작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애니 프루의 서문은 좋은 지침이 된다. 공항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난 애니 프루는 깊어지는 황혼속 베란다에서 이 책과 완전히 결합하는 환상적인 경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서문을 쓰게 된다.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은 "나는 언제나 생에 사로잡힌다."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아름답고 독특하고 애조띤 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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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2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흐르는 강물처럼을 두 번쯤 본 것 같습니다. 정말 멋진 영화죠. 빵 피트가 신인으로 나왔을 때 제2의 로버트 레드포드라고 난리도 아니었죠. 매디슨 카운트의 다리와 가히 비견될만하지 않을까 합니다.ㅋ

blanca 2016-05-29 12:38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매번 티비에서 방영할 때마다 놓쳐서 너무 아쉬워요. 아, 그랬군요! 로버트 레드포드도 참 멋진 배우인데...메디슨카우티의 다리, 저 이 영화 너무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