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로 가는 차 안, 오래 된 차의 에어콘에서는 정말로 뜨거운 바람이 히터처럼 계속 나왔다. 길은 막히고 볼이 빨갛게 익은 딸 아이와 말다툼이 시작됐다. 정작 오랜만에 만화책도 사주고 좋아하는 스티커도 사 주려고 힘들게 나선 길은 거꾸로 가동된 에어콘 덕분에 둘 다 땀을 거의 눈물 수준으로 흘리며 서른 살의 나이 차를 극복한 유치한 힘 겨루기가 되었다. 게다가 길도 막힌다.이쯤 되면 대체 이 길은 누굴 위한 길인가, 왜 나선 길인가 싶다.

 

그러나 역시 에어콘 바람에 땀이 씻기고 저마다 좋아하는 구역에 서로 사이좋게 헤어져 문구 탐험 및 책 들추기가 시작되니 자연스러운 화해와 해빙의 분위기다. 저만치서 나이 든 할아버지가 바삐 책을 옮기는 북 마스터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북 마스터는 급해 보인다. 다급하게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추천한다. 할아버지는 <종의 기원>을 찾아 떠난다.

 

 

 

 

 

 

 

 

 

 

 

 

 

 

 

음, 할아버지에게 왠지 좀 언질을 드려야 할 것 같은 마음은. 나도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힘들고 때로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언어가 영상으로 덤벼들고 그 언어가 만드는 이야기의 심연이 무척 깊고 적나라해 내가 인간인 게 때로 미안하고 당황스러워지게 한다. 그녀는 책임없는 환상이나 불가능한 행복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이 날은 아주 오랜만에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와 만난 날이기도 했다. 누구에게 과연 완벽하게 존경스럽고 너그러운 아버지가 주어지겠느냐 만은 나의 아버지도 역시 한때 나와 몹시 힘겨루기를 했고 치기 어리고 미성숙한 나와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중년의 나에게 이제 아버지는 함께 할 남은 시간들이 한없이 아깝고 지나온 추억이 닳을까 두려운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웃으며 고장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가는 아버지와 헤어지는 여운이 길었다.

 

 

 

 

 

 

 

 

 

 

 

 

 

 

 

 

공교롭게 이 날 그 교보문고에서 산 <Axt>에서의 정유정 작가의 아버지가 <종의 기원>을 끝낸 다음 날 새벽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대목에서 눈물이 차 올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차게 아버지와 육사시미(그녀답다. ㅋㅋ)를 나누었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고 그녀의 '살아남기'에 대한 애착과 자신의 인생을 꿈꿀 처지가 아니었던 이십 대를 보내고 난 후의 지금의 시간에 대한 경탄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써 낸 그 이야기처럼 열정적이었고 간결했고 사족이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의 파고 만큼 그녀의 말도 참으로 강렬해서 자꾸 듣고 싶게 했다. 사람과 말과 글이 어긋나지 않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종의 기원>을 사 가지고 돌아갔을 지도 모를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러한 지점을 내가 감히 판단하고 조언하려 하다니... 역시 나는 또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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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09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정은 작가가 되기 전에 간호사였다고 그랬죠~~ 빨간 책방 나왔을 때도 얼마나 목소리가 활기차던지... 속으로 음... 진짜 작가 느낌은 아니다, 했는데 전 또 그게 좋더라구요.
항상 그렇지만 이 페이퍼도 넘 좋네요.
딸아이랑 힘겨루기도 그렇구요, 아버지 이야기도요...

blanca 2016-07-09 09:23   좋아요 0 | URL
아, 빨간 책방에 나왔었군요. 저는 김애란 작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참 좋던데...궁금하네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에혀...

꿈꾸는섬 2016-07-0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블랑카님과 분홍공주의 힘 겨루기ㅎㅎ 현수도 저를 계속 이기려고 해요. 그래도 딸 아이와 교보문고 나들이 좋네요. 아버지와의 시간과 추억 정말 소중하죠.^^

할아버지는 종의 기원을 어떻게 읽으셨을지.....저도 괜한 걱정을 하네요하네요

blanca 2016-07-10 20:28   좋아요 0 | URL
이제 정말 품 안의 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이거든요. 현수도 그렇군요.^^ 할아버지 재미있게 읽고 정작 좋아하셨을 수도 ^^;; 있지 않을까요?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제법 남아 있다. 그녀가 다발성 경화증으로 겨우 마흔 언저리에 사망했고 그 즈음 가족,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 그녀 곁에 남아 있지 않았던 이야기는 그 이전에 살아 있는 동영상 속에서 긴 머리를 흩날리며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더 찬란하게 비감어린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때 그녀의 슬픈 운명은 아무도 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연을 기억하면 현재 다니엘 바렌보임의 행보가 아무리 거창하더라도 어디 한 곳이 기우뚱하게 느껴진다. 자클린 뒤 프레가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온 몸이 현과 함께 약동하는 모습이 위대하고 동시에 안쓰럽게 느껴진다. 다른 악기들과 달리 유독 첼로는 연주자와 진정으로 교감할 때 그의 생에서 그 무언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같다. 듣는 우리는 감읍하지만 연주자는 소진된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 관련된 책을 찾아보지만 절판이다. 근처 도서관에도 없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최근 것은 거의 다 들어 이제는 가만 가만 시계를 돌린다. 어젯밤에는 초창기에 방송한 '대가의 소설들'을 듣는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싱글맨> 이야기에 놀란다. 연인을 잃은 한 남자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란다. 그는 노교수이고 그의 연인은 동성이다. 구찌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콜린 퍼스를 주인공으로 영화화했다고 한다. 언뜻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과 <죽어가는 짐승>을 연상시킨다. 김중혁의 상찬을 들으니 당장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것도 절판이다.

 

 

 

 

 

 

 

 

 

 

 

 

 

 

 

 

 

괴.롭.다. 이 둘을 어떻게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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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6-07-0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의 빨책 팬으로서 저는 최신 것들은 아껴두면서 듣고 있네요.
추천받은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이 절판일 때의 절망스런(?) 심정도 이해가 되어요 ^^

blanca 2016-07-06 11:42   좋아요 0 | URL
저는 <싱글맨>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색조차 잘 안 되어서 당황스럽더라고요.
재출간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빨간책방> 방청을 꼭 하고 싶은데 거리나 시간이 다 불가능해서 너무 아쉬워요.

카스피 2016-07-0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헌책방을 검색하심 혹 나오질 않을까 싶네요^^;;;

blanca 2016-07-06 11:4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저 요새 헌책 구입하고 자꾸 실망해서... 좀 망설이게 되요. 또 절판된 책이라 그런지 가격도 새책과 거의 같거나 더 높더라고요.

단발머리 2016-07-0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아쉽네요. 블랑카님이 이 책들을 읽으셔야 근사한 리뷰를 읽을 수 있을 텐데요... ㅠㅠ

blanca 2016-07-06 11:44   좋아요 0 | URL
ㅋㅋ 고마운 말씀이네요.

보슬비 2016-07-0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이용해보세요. 저희 도서관에는 두권의 책 모두 있더라구요.^^

blanca 2016-07-08 16:17   좋아요 0 | URL
흑흑, 무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없더라고요.. 너무 부럽네요.
 

 

 

<디마프>가 끝났다. 젊은 남녀의 빈부차를 뛰어 넘은 사랑도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없어도 재벌가의 그들만의 리그가 없어도 하였다. 청춘에는 환상이 개입하지만 노년에는 착각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젊음은 찰나이고 나이듦은 태반인데 우리는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시선을 돌리곤 했다.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사춘기의 반항아를 연상하지 않듯 '삶'을 이야기할 때 거동의 자유를 잃고 소통의 기회를 박탈 당한 독거 노인을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은 흔히 이야기되지 않는 곳에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노년을 온전히 동행하는 우정에 대한 환상, 경제력 등이 현실을 닮지 않았다 비판할 지점이 있다 하더라고 이야기가 온전히 현실을 복제할 필요는 없다는 데에 변명을 보탠다. 노년도 얼마쯤 해피엔딩을 가질 자유가 있지 않은가. 가난하고 고독하고 비참하게 확대한 이야기를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얼마쯤 판타지가 덧대어진 그들의 노년의 풍경에 안심이 된다. 그러한 이야기조차 노년에는 허락되지 않았었다.

 

 

 

을씨년스러운 늙음의 풍경은 난무한다.

 

 

 

 

 

 

 

 

 

 

 

 

 

 

 

 

 

 

여기, 사람들이 앉아 서로 토해내는 신음을 듣는 곳,

중풍 환자가 몇 가닥 남지 않은 마지막 을씨년스런 머리카락을 흔드는 곳,

젊은이가 창백해지고 유령처럼 마르다가 이내 죽는 곳,

무슨 생각만 해도 곧 그득한 슬픔이 밀려오는 곳......

 

존 키츠 , <나이팅게일>

 

- 필립 로스 <에브리맨> 중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러한 쓸쓸하고 고적하고 황량한 노년의 풍경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은 특이한 소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에브리맨'의 것이다. 장 아메리는 시간의 무게를 감지하고 이제 자신 앞에 남은 삶을 더 이상 삶이 펼쳐지는 공간이 아닌 죽음이 유예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노년의 그 비참한 인식을 강조한다. 노화는 불치의 병이라 역설한다.

 

모든 삶의 당연한 명제를 비관을 냉철한 인식으로 변주하는 것에 저항감이 느껴진다. 당연하다. 태어나고 죽는 그 공간 안에 담긴 삶의 풍경과 무게는 엄혹하고 지난하다. 그렇다고 매일 울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항상 젊음만 칭송하고 그들의 이야기만 말하고 들으며 어제보다 분명 늙어가고 있는 우리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분명 나의 다크서클은 나날이 짙어지고 그 면적을 확대하며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몸에 아로새기고 있다. 거꾸로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나친 동안 열풍도 그래서 때로 불편하다. 그 안의 몸은 온전히 시간을 품고 있다.

 

따뜻하고 견딜 만한 노인의 삶들이 비록 환상일지라도 그러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래서 속고 만다. 그게 더 견디기 낫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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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7-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한 노년, 좋아요.
제가 요새 연세 지긋하신 분들을 뵙는데 젊은 시절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 노년의 생활도 적극 즐기시더라구요.
신체와 연령을 극복하는 건 역시 정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고가 유연하고 깨어 있더라구요.
우리도 곧 노년이 다가오겠죠. 그래도 정신은 청춘으로 살아가자구요.^^

blanca 2016-07-04 08:20   좋아요 0 | URL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조언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나이들면서 쉽게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실을 키우고 꿈섬님 말씀처럼 사고를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웅, 잘 늙어가고 싶어요.

카스피 2016-07-0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어마이 프렌드의 노년정도라면 참 해피한 편이지요.국내 노인의 약 50%가 가난하다고 하는데 폐지줍는 노인만 175만명이라고 하는군요 ㅜ.ㅜ

blanca 2016-07-04 08:23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노인 빈곤 비율이 훨씬 높군요. 세계에서 노인 우울증 수준도 거의 수위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노인 복지가 가족의 부담으로 전가되어 있는 경우가 우리나라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녀들과의 갈등도 많고.... <디어마이프렌드>의 노년은 경제적 곤란 문제와는 살짝 떨어져 있는 게 한계 같기도 하고 또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같고...모든 것들을 잘 책임지면서 늙어간다는 게 참 말처럼 쉬운 노릇이 아닌 듯합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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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시판에서 우연히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슬프고 절망적이라는 이야기에 끌려  유진 오닐이 아내 칼로타에게 쓴 눈물 어린 헌사를 시작으로 티론 가족 네 사람이 각자의 절망이 소통하지 못하고 한없이 반목하고 빗겨가는 그 자리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열두 번째 결혼 기념일에 유진 오닐은 차마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표현해 내기 어려울 만큼 슬프고 비참했던 가족사를 자신이 가장 잘 형상화할 수 있었던 희곡의 형태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로 바친다. 실제 유명한 연극배우였고 극단을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던 유진 오닐 아버지의 이야기가 극중 티론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티론의 여름별장의 거실에 모인 부부와 두 아들의 4막으로 이어진 대화로 슬픈 가족사와 서로 간의 갈등, 상처를 짐작할 수 있다.

 

 

1912년 8월,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의 거실에 나타난 어머니 메리는 진통제 처방이 우연히 마약 중독으로 이어진 상태로 마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가족에게 다시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는 여전히 마약에 오염되어 있는 모습이다. 선병질적인 모습과 연극적인 자기 고백, 과거로의 끊임없는 귀환은 그녀가 방탕한 큰 아들과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들, 가족들에게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남편이 만들어 내는 건조하고 차가운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아내는 현실을 부정하고 아버지는 절망과 삶에 대한 탐욕스러운 애착을 묘하게 섞어 아들들을 괴롭힌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사람과 아이를 낳았을 때에 이러한 미래를 감안하거나 꿈꾸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보다 앞질러 정거장에 당도해 있는 미래는 얼마쯤 우리가 삶에 기대했던 그 자비와 관용, 환상을 여지없이 박살내어 버린다. 유진 오닐은 먼저 이 정거장에 도착해 자신의 원가족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반목하는 아들들. 어쩌면 내일이면 완전히 헤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이 위태위태한 가족의 모습에는 인간이 삶이라는 그물에 걸리는 한 어쩌지 못하는 그 필멸의 명제가 살아 있다.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유진은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 이 작품이 발표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혼기념일에 이 희곡을 이미 자신의 것으로 받은 아내 칼로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네 번째 퓰리처 상을 받게 한다.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라 칭했던 그녀와의 결혼 생활도 결국은 '밤으로의 긴 여로'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모든 삶의 보편적인 은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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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6-07-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인용하신 구절을 제가 다시 인용했습니다...그래도 되었을까요? 문득....이 책을 저도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당시 유진 오닐의 희곡을 여럿 읽었지요. 일부러 찾아 읽진 않았고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지요. ..그런데..이 구절은.....아무튼....

blanca 2016-07-08 16:15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어차피 저의 문장이 아닌걸요. 혹시 유진 오닐의 다른 희곡 중 좋았던 것 추천해 주세요.

테레사 2016-07-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좀 오래전 그러니까, 1900년대에 읽었어요..ㅜㅜ ㅋㅋ 1990년대 후반에요..생각해 보니,,많진 않았네요..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기억나네요...그건 잘 알려진 것이라..블랑카님도 ..아실터...
 
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사전을 다 씹어 먹으면 그 단어들을 다 외울 수 있어. 그 사람은 정말 다 씹어먹었다니까.

 

정말 한번 한 장만 먹어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종이를 장난으로 가끔 먹어보기도 했지만 사전의 그 얇은 지질의 종이를 몇 백장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으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친구와 맞바꾼 영어 사전을 부지런히 찾았다. 그러면서 사전은 내 손에 길이 들어 모르는 단어를 어느날 한번에 펼쳐 찾는 그 사소한 행운에 놀라기도 했다. 이제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대신 인터넷 검색을 한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 손으로 내가 찾던 단어를 지목하며 그 주변부의 숱한 단어들을 우연히 맞닥뜨리는 그런 묘한 경험은 과거가 되었다. 딱 내가 궁금한 그 단어만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내 본위로 좁아져 간다.

 

사전을 만든 사람들. 듣기만 해도 설명하기 힘든 묘한 친근감, 경외감이 든다.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끌어당긴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어휘를 다 설명하려 했던 그 지난한 시도와 여정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정복해 나가며 가능한 최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이었다. 19세기 중반 시작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은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낸 작가들이 문학 작품에서 사용한 어휘의 인용문 수집 과정을 통한 것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돈을 받거나 어떤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닌데도 수많은 지원자들이 속출했고 물론 중간에 그만둬 버리거나 책임감 없이 행동한 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그 지난한 편찬 과정에 무보수로 동행한 많은 이들이 있었고 언어학자보다 더 심도 있고 적확하게 그 어휘가 최초로 쓰인 문학 작품을 찾아 인용하여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완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원봉사자 닥터 마이너와 사전의 편찬 작업을 전두 지휘했던 편집인 제임스 머리의 우정이 있었다. 그 둘은 닮은 외모, 비슷한 연배였지만 국적도 성격도 삶의 여정도 천양지차여서 사전 편찬이라는 공통된 화두가 없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전의 자원봉사자와 편집인으로 만난 둘은 서신 교환으로만 접촉하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나서야 서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의날실과 씨실에 파고든 공적인 역사보다 더 끈질기고 드라마틱하고 비참하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적인 연대기가 얽혀 있다.

 

충실하게 사전의 편찬 역사에 동행했던 자원 봉사자 닥터 사이먼에게는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상류층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 북군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후에 정신병이 발병하여 전역한 후 건너간  런던에서 망상에 사로잡혀 가난한 한 집안의 가장을 살해하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사회와 격리되어 정신 병원의 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고 여기에서 그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로 얻은 독특한 자유와 장서로 영국의 영어 사전 편찬에 성실히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장서를 동원하여 성실하게 본인이 직접 만든 작은 어휘집에 제임스 머리가 요청한 어휘들의 용례를 충실히 수집해 주옥 같은 자료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보내게 된다. 끊임없이 성적 망상에 사로잡히면서도 그의 성실함, 언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천착의 깊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완성하는 데에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된다. 편집인 제임스 머리는 이 성실하고 명민한 자원 봉사자에 대한 깊은 경탄과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고 그가 정신병자에 살인까지 저질러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면회와 서신 교환을 중단하지 않고 심지어 노년기에 접어든 닥터 사이먼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데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죽음이 그들을 갈라 놓을 때까지 충실한 친구의 역할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70년도 넘는 세월에 걸쳐 50만 개가 넘는 어휘의 정의와 역사, 용례를 담아 내어 '영어'의 위상을 재정립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이런 두 사내의 우정과 상호존중, 신뢰가 있었기게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더불어 닥터 마이어가 죽인 젊은 아버지 조지 메리트의 잊혀진 삶을 추적하고 이 책의 제사를 그에게 바침으로써 이 익명의 희생자가 될 뻔한 사전 편찬의 사연에 숨어 든 한 남자를 살려낸다.

 

일어났던 모든 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 윌리엄이 런던에 건너가 살인을 저지르고 수용소에 감금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우리 앞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편지를 제임스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사전 작업에 활용하지 않았다면, 혹은 후에 그의 무서운 배경을 알아차리고 그와의 접촉을 끊었더라면, 그 작은 하나의 가정들이 모여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슬 고리마다 저자의 사려 깊고 세심한 시선은 가 닿아 그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춤하게 맞아 떨어져 그려 낸 그림을 그려낸다. 한 가여운 남자의 죽음, 그리고 두 남자의 편견과 계급을 뛰어 넘은 우정을 가로질러 마침내 그 모든 언어들의 태어나 자라 살고 죽은 그 유장한 역사가 남게 된 것이다.

 

사전을 다 먹어버리고 마침내 그 모든 언어를 다 머릿속에 넣어버렸다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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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6-2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시 새로 나왔나 봐요. 예전에 나왔었는데...
블랑카님 <행복한 사전>이란 영화 보셨나요?
혹시 안 봤으면 한번 보세요.
진짜 사전 만드는 사람 보면 존경스러워요.
줄리언 반즈도 사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잖아요.^^

blanca 2016-06-27 18: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안 그래도 그 영화 좋다 해서 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이 참에 봐야겠어요. 안 그래도 이 책이 개정판이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