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분명 나쁜데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의 스토너가 젊은 여자 강사 캐서린과 함께 한 시간은 그러한 기준을 빗겨간다. 스토너도 분명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녀 앞에서 욕망으로 몸이 달았던 시간이 있었지만 이미 그의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한 그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 이해받거나 용인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이별을 결심한다. 캐서린과 헤어지고 스토너는 훌쩍 늙어버린다. 그의 가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죽어버린다. 중년의 사내는 급격히 노인이 되어간다.

 

 

 

 

 

 

 

 

 

 

 

 

 

 

 

 

 

드문 드문 다시 <스토너>를 읽는다. 캐서린과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토너는 그녀가 완성한 책의 헌사의 이니셜을 통해 다시 그녀를 사랑했던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 대목은 언제나 가슴이 시리다.

 

'To W.S.'

 

둘은 많은 것을 공유했고 그 중에 학문적 성과를 함께 했다. 스토너는 캐서린의 논문에 이정표가 되어준다. 열정보다는 담담한 재발견의 시간이 그들의 사랑의 영토를 채워준다. 작별하고 늙는다. 늙다 죽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처의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입지전적인 일로 평가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삶의 궤적의 촘촘한 결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의 삶은 평범하고 때로 실망스러운 것으로 폄하된다. 한 사내의 삶을 작가 존 윌리엄스는 놀라울 정도로 사려깊게 따라간다. 그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들이 곧곧에 편재하다 보니 이것은 한 사람의 삶의 연대기를 그저 엮어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때로 오해되고 이해된다. 그 누군가의 삶도 결국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아련하고 서글프고 아름답다. 그가 살며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들 밑에 가라앉는 것에 대한 묘사는 그래서 고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니 소설은 언제나 죽지 않는다.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장치는 이럴 수밖에 없다.

 

그냥 다시 읽다 보니 <스토너>를 누가 연기하면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 혼자 이런 저런 캐스팅 작업을 하다 콜린 퍼스로 낙찰을 봤다. ^^:; 제시 홀에 입성하던 신입생의 풋풋한 연기까지 가능할 지는 콜린 퍼스의 지금 나이로 상상하기 힘들지만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로지르는 스토너의 삶은 콜린 퍼스가 충분히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캐서린 역이 잘 안 떠오르고 점점 건조해지고 냉담해지는 아내 이디스는 왠지 도도하고 귀족적인 기네스 펠트로가 떠올랐다.

 

이제 스토너가 퇴임을 저울질하며 암선고를 받는 말미에 이르렀다. 이제 스토너는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 존 윌리엄스는 철저히 스토너의 시선으로 스스로의 죽어가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침표는 나에게 주어질 것이기도 하다. 이 남자의 삶은 갸륵했지만 무의미하지는 않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패했고 학문적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끝까지 가르치고 싶었지만 병마 앞에서 좌절당했다. 그러다 마침내 홀로 죽게 된다. 모든 세부의 사항들을 개인적인 것들로 치환하면 커다란 도식은 우리 모두의 것과 닮았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다 마침내 작아져 죽을 것. 당연한 듯도 한데 이렇게 한 사람의 삶으로 형상화하면 자꾸 서럽다. <스토너>는 서러운 이야기다. 결국 서러워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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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6-08-0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란 게 참 안타까울 때가 있는 것이, 이 여자다 (혹은 남자다)라고 생각해 결혼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 여자가 아니라 저 여자인 겁니다. 이럴 때가 참 안타깝지요. 하지만 십년 넘게 잘 살아놓고 젊은 여자를 찾아가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관둬야지, 누릴 건 다 누리고 늙었다고 박대하는 거 아니겠어요.... 블랑카님 리뷰는 늘 재미와 깊이를 모두 느끼게 해줍니다.

blanca 2016-08-06 21:43   좋아요 0 | URL
다른 남자들의 불륜에는 다 부르르 떨면서 스토너는 아내가 아니라 이 남자한테 감정 이입이 되는 모순이 ㅡㅡ;; 작가의 저력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6-08-0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헌사는 정말 뭉클하죠. 감사함과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스토너가 좋은만큼 이 글도 좋으네요, 블랑카님.

blanca 2016-08-08 10:38   좋아요 0 | URL
언제 봐도 뭉클해요. 다락방님의 여행기 기다립니다. 여기는 정말 가마솥이에요. 흑

앤의다락방 2016-08-1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엔 엉엉 울면서 마지막페이지를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ㅜ 또 다시 읽고픈 책이었는데..
다시 읽어야지 하곤 실천하진 못했어요.
꼭 한번 다시 읽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답니다.
오랜만에 북플와서 이런 리뷰보니 정말 반가워요.
그리고 요즘 책읽기를 게을리 했었는데 다시금 불끈! 하게 하네요^.^

blanca 2016-08-18 15:13   좋아요 0 | URL
앤의 다락방님, 저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 베스트였는데 밀어내는 중) 원서로 천천히 둘을 같이 놓고 다시 읽었어요. 역시나 좋았어요. 그리고 작가가 어쩌면 소설을 가장한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완전히 고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완전히 만들어 낸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싶은.

앤의다락방 2016-08-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다가 나중엔 작가의 이야기라고 믿게 되어버렸어요. 저만 그런생각을 했던게 아니었군요! 지금 blanca님의 댓글을 읽고선 제가 이때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알았네요. ^.^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당장!ㅋ

blanca 2016-08-19 13:25   좋아요 0 | URL
<아우구스투스>가 나왔다니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죽음을 가기 싫은 여행이지만 또 가고 싶어지는 그런 초조감으로 그린 대목에서 무릎을 쳤어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사랑도, 헤어짐도 죽음도 이 작가는 픽션이라는 장치를 뛰어넘은 것 같아요. 이미 넘어가 버리면 다시는 넘어올 수 없는..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그가 그린 죽음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요.
 

몇달 전 가수 요조가 서점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동네 서점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에 소액을 후원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약속했던 동네서점 지도 링크가 왔지만 챙기지 않았다. 대학가인 여기에도 동네 서점은 전무하다. 동네 서점은 이미 동네 서점이 아닐 거라는 체념. 지도를 나는 쓸 수 없을 테니까.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상용화되기 전의 유년기, 청소년기 친정 동네에는 버스 종점 근처 나란히 두 개의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책을 구경하러 갈 수 있었다. 사지 않고 나오는 마음은 어린 나도 불편했다. 머리가 벗겨진 주인 아저씨는 괜찮다고 의자까지 내어주었다. 그 괜찮다는 마음도 왠지 책을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미안했다. 그래서 어쩌다 아버지가 교보문고에 데려가 주면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마음껏 책을 둘러보고 한참을 머물러도 부책감이 없는 그 자유가 너무 좋았다.

 

아직 지은서점은 친정 동네에 남아 있다. 오롯이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 반갑지만 왠지 힘들어 보여 짠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마음껏 책을 들춰보고 할인,적립금 혜택에 하루만에 배송받을 수 있는 온라인 서점, 대형 서점의 틈바구니와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 다수의 사람들을 잠재고객층으로 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네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라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서평가 금정연과 책 얘기를 마치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친근하게 해서 자신의 소설보다 더 사람들을(나 포함) 사로잡는 소설가 김중혁이 듣고 옮겼다.

 

 

 

 

 

 

 

 

 

 

 

 

 

 

 

 

 

 

정말 <유어마인드> www.your-mind.com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 서점에 가려면 무려 오층을 올라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기대를 너무 안 하고 문을 열어 기대보다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란다. 이 서점에 가면 책만 보다 사지 않아도 (물론 권장되는 상황은 아니다) 큰 부담은 없을 듯하다. 주인장이 쿨하다. 과잉 친절로 고객을 얽매지 않는다. 적어도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설픈 커뮤니티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더위에 오층 계단을 밟아 이 서점을 탐방해 보고 싶게 한다. 너무 많은 관계과 형식적인 친절이 권장되는 과잉의 시대에 더위를 식혀 줄 듯하다. 주인장이 서점을 닫는 그 살풍경을 아직 상상하지 않음으로 이 서점은 건재한다.

 

 

 

정말 문학만 취급한다고? 고요한 서사가 있는 <고요서사> blog.naver.com/goyo_bookshop

 

해방촌 언덕에서 문을 연지 일 년이 되지 않았다. 편집자 출신의 주인장은 고즈넉하다. 한강 작가의 팬이었는데 강연회에 가서 인사를 나눈 후 우연히 정말 한강 작가가 이 언덕의 서점을 방문해 주었다. 재정적으로 유연하게 서점이 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점을 연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만일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이러한 책들을 읽어준다면 <만일>

 

'기본적으로 인간답게 먹고사는 방식'을 테마로 한 인문 서적 전문 서점의 주인장은 단아한 인상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이 '만일'에 와서 많이 나갔다.

 

 

 

나를 위해 먼저 멈춘다, <일단멈춤> stopfornow.blog.me

 

여행 전문 서점은 내일도 문을 열리라는 보장이 없다. 주인장은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자신을 잘 추스른다. 여행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니 떠나고 머물다 그 다음을 섣불리 장담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잘 지키는 모습에 소설가 김중혁은 칭찬을 보낸다. 당연히 누구나 자기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사는 일은 그러한 장력을 때로 허물어뜨린다.

 

 

아직도 건재한다, <한강문고>

 

한강문고는 망원동에 위치한 우리가 어린 시절 가던 바로 그런 중형 서점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깐깐하기도 하고 인자하기도 하다. 주로 문제집을 사고 시험이 끝나면 어린이 문고 코너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최낙범 대표는 연륜 만큼 현 출판계와 시장에 대한 해석이 날카롭고 무게가 있다. 서점 뿐 아니라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조언이 많다.

 

 

고마워요 <땡스북스>www.thanksbooks.com

 

홍대 앞에 있다는 소규모 서점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회자된다는 <땡스북스>도 녹록한 사정은 아니다. 책판매만으로는 서점을 유지할 수 없다. 주인장들은 글을 쓰거나 북디자인을 하거나 각종 가외의 일들로 서점을 유지한다. 이것은 슬프지만 오늘날 자영업의 수익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내일을 전망케 한다. 어떤 것을 표방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복합적인 시대를 통과하는 나날들. '망설여진다면 하자'는 주인장의 신념이 서점의 성격을 보여준다. 부럽다. 진짜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인지 변명거리가 많은 것인지 엉덩이가 무거운 많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작은 서점들은 처절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마진율은 형편 없고 그마저 잘 팔리지 않는다. 조언을 하고 충고하고 간섭하려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하고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이 시대를 통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조금 세속적이고 디테일한 얘기들도 부끄럼 없이 나눌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이 눈부셨다. 김중혁 작가의 '천천히 잘 소멸하자는 건데, 우리는 비겁하고 품위 없고 비루하게 소멸해 가고 싶지 않으니까요'라는 말은 우리 모두의 가슴 밑바닥의 그것을 건드린다. 당연한 건데 당연하게 취급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일본 서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들과의 이야기, 부록처럼 덧붙인 서점 용어 코너도 모두 이색적으로 좋았다. 서점 뿐 아니라 그 어떤 것을 시작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찰떡처럼 붙을 이야기들이 웅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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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07-3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서하는 일은 처절함도 달큰한 향이 돌지 않을까. 글 잘 보았습니다-.

blanca 2016-07-31 10:03   좋아요 0 | URL
분명 어떤 포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얻는 힘이나 보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수이 2016-07-3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갱지님의 댓글에도 절대공감이고_ 잘 소멸하자는 김중혁 작가의 저 말도 좋네요. 그 어디에서건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응원을.

blanca 2016-07-31 10:03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며 <야나문>도 떠올렸습니다. 야나문이 더욱 더 번창하기를 바라 봅니다.

마녀고양이 2016-07-3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사가 아닌 맘으로 서점을 운영해야 하는 시대네요. ㅠㅠ
저희 동네 서점도 하나 있는데, 교과서 중심으로, 참고서가 아니었다면 그 조차도 망했을 것 같아요.

슬픈 일이지요.

blanca 2016-08-01 09:55   좋아요 0 | URL
동네 소형 서점은 특히나 참고서 의존도가 높다고 하는데 이게 마진율이 너무 낮아서 전체 수익성에 정말 안 좋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희 동네는 아예 서점이 없어요. 대학교 안에 영풍문고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철수하고 다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너무 아쉬워요.

transient-guest 2016-08-04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 아닐까요? 책나뭄도 그렇지만, 자영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대인데, 서점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래도 유명한 곳들이라도 이렇게 남아 명맥을 이어주고, 언젠가 다시 서점의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책읽는 문화도, 작은 서점들이 개성있게 존재하는 문화도.

blanca 2016-08-04 15:09   좋아요 0 | URL
여기에 나온 작은 동네 서점들도 공통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얘기해서 안타까웠어요.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서점에 다가가긴 힘들 정도로요. 그럼에도 동네 서점의 명맥을 유지하고 때로는 이러한 어려운 와중에도 새로운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한편 부러운 점은 힘들긴 하지만 어떤 경지의 희열이 있어 보였어요.

2016-09-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3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의 가치 판단 기준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필립 로스는 이러한 사회적 금지, 금제의 틀을 흔들고 넘어서는 고독한 투쟁을 종종 그린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 모두가 머무는 지점이 아니라 대부분이 떠나가고 홀로 그 변방을 기웃거리거나 경계를 넘어가야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1998년 여름, '부적절한 관계'라는 그 모호한 표현에 상상 가능한 모든 불순하고 불온한 것들을 우겨 넣었던 전대미문의  대통령 스캔들로 미전역이 달아 있었던 그 여름에 '나' 전업작가인 네이선의 이웃인 콜먼 실크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도 그러하다. 콜먼은  지역 대학의 고전학과 교수로 학장직을 맡아 정체된 대학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고 학장직에서 물러나서도 강의를 하다 무심코 강의 시간에 던진 말 한마디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며 추방당한 일흔한 살의 남자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작가인 화자에게 토로하며 어느덧 지나온 자신의 삶을 복기하게 된다. 콜먼은 분명 자신의 출신의 한계를 극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남은 생이 이제 거의 헤아려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자기'를 찾는 여정을 걷게 된다. 거대한 체계와 고정 관념, 인습,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짜 자기를 확인하고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대면하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다. 그것은 추방에서 시작해서 영원한 추방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필립 로스의 인물은 그 어떤 인물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 사회에서 콜먼에게 극렬한 반감을 드러내고 콜먼이 막상 떠나오고도 그가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젊은 여자와 만나는 것에 강한 분노를 드러내는 젊은 여교수의 시점을 따라간 이야기도 그렇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상류층 출신의 아름다운 여자다. 그녀는 콜먼과의 첫만남에서부터 묘한 긴장감과 부담을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이 나이든 정력적인 교수에 대한 끌림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결국 둘은 적이 되고 콜먼이 떠나고 나서도 그 대학의 젊은 여자와 정사를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된 후 그녀는 강한 반감과 혐오를 느끼게 되어 콜먼에게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품고 다니게 된다. 그녀가 그 편지를 부치지 않은 것은 후에 자신이 걷게 될 길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보신주의적인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녀가 마침내 분별 없이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게 되는 계기가 흥미롭다.

 

그녀는 남자를 그리워하고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는 젊은 교수는 로맨스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여자이기도 했다. 필립 로스는 이러한 복합적인 어쩌면 당연한데 언뜻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그 양면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그려낸다. 누군가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거나 느낄 때 우리는 수많은 모순과 충돌, 불합리가 섞여 있는 그 우물을 헤치고 마치 표면의 그 잔잔한 모습을 전부인 것처럼 오해한다. 그녀는 뉴욕시립도서관에 책을 보러 갔고 마침내 근사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약속이나 한듯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의 남편이 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상대로 로맨스를 상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막간의 공상은 갑자기 그녀보다 한참 어린 그 남자의 연인이 등장함으로써 깨지고 그녀는 항상 품고 다녔지만 결코 부칠 거라 여기진 않았던 그 콜먼의 사생활을 협박하는 그 비겁하고 치졸한 편지를 우체통에 던져 버린다. 그것은 그렇게 일어난 일이었다. 이 작은 사소한 로맨스에의 기대의 결렬로 그녀는 다시 작아진다. 이러한 일들. 어떤 일들은 너무나 어이없이 사소하게 일어난다. 어떤 말은 그 어떤 맥락 없이 성찰 없이 그대로 행해지고 망각된다. 필립 로스, 그는 징그럽게 이러한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나에게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은...

바보처럼 <휴먼 스테인>1권을 중고로 두 권 주문한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그녀와 콜먼이 어떤 대치극을 벌이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지는 게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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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7-24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소설을 읽거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솔직한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면, 정나미 떨어질만큼 내가 징그러울 때가 있어요.ㅠ
마지막 어처구니 없는 일에 공감의 미소를~~^^

blanca 2016-07-25 09: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일단 두 권이 된 1권 중 하나는 처분하고 2권은 근처 도서관에서 빌리던지 하려고요. 서울은 아주 거대한 찜질방 수준의 더위라 힘드네요...

비연 2016-07-2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참 잘 쓰는 작가인데, 그 표현이 가끔 힘들 때가 있어서 잘 읽혀지지 않는 것 같아요.
<휴먼 스테인>은 사놓고 안 읽은 책 중의 하나인데, blanca님 글 보니 한번 읽어볼까 싶네요^^

blanca 2016-07-25 09:15   좋아요 0 | URL
비연님, 또 유독 이 책이 필립 로스의 그 거대한 만연체 문장 덕택인지 쉽게 읽히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다 읽고 나면 반드시 무언가 의미 있는 앎이 남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The Vegetarian : A Novel (Paperback)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채식주의자』영문판
Han Kang / Granta Books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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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것이 유별나게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다. 먹는 것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닌 조금 더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관리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별안간 그 앞에서 고기를 먹는 나는 어떤 폭력성에 둔감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단지 인간을 위해 대량으로 사육되고 죽임을 당하는 그 동물들의 비명을 망각하지 않고는 사실 그것을 무감하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사는 일은 어떤 둔감함과도 화해해야 견딜 수 있는 지점들과 자주 만난다. 이것은 비극이기도 하고 숙명이기도 하다. 늙어 죽는 일도 사실 대단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적어도 감내하거나 피하거나 하지 않고 견디기 힘들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있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 영헤의 남편, 하루 하루 꾸역꾸역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혜의 언니 인혜, 그리고 인혜의 남편인 예술가다. 지극히 평범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돌발 행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선은 따뜻하지도 애정을 담고 있지도 않다. 지극히 건조한 바깥의 시선이다. 회사 임원들 식사 자리에서의 불유쾌한 아내의 의상, 행동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 친정 식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장인 어른의 폭력적인 행동에 자해로 대응하는 아내의 모습은 그가 아내를 떠나게 되는 변곡점이 된다. 표제작 <The Vegetarian>은 건조하고 소통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돌연한 영혜의 변신도 거기에 대한 지리멸렬한 남편의 반응도 언뜻 언급되는 영혜의 어린 시절의 폭력성도 그저 잠깐씩 엿볼 수 있을 뿐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역부족임을 깨닫게 된다.

 

<Mongolian Mark>는 영혜의 형부, 즉 인혜의 남편이 성적 금기를 넘어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결론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던 가정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처제 영혜를 향한 그의 욕망은 복잡하다. 예술적 욕망과 금기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이끌림과 욕정은 깔끔하게 분리할 수 없다. 자매의 남편들은 모두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

 

<Flaming Tree>는 언니 인혜의 시선의 이야기다. 무너진 가정, 정신병원에 가서도 음식을 거부하며 무너져가는 여동생 영혜 앞에서 모든 공고하다고 여겼던 삶의 지축이 흔들리며 자매의 파멸은 섞인다. 음식을 거부하며 죽어가는 영혜가 이 세상의 모든 강압과 폭력적인 것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듯,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도 기실은 하나의 교묘한 위장이었음을 깨닫게 되며 인혜는 절규한다. 누구의 시선보다 인혜의 시선은 깊고 공감 지대가 넓다. 우리 모두가 견디고 있다고 여기던 것들이 어느 한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각성은 슬프지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존재는 깊지만 도저히 단단해질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다고 여기며 토닥이며 속이며 나아갈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데보라 스미스가 원작을 영국인의 시선으로 변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미묘한 것들을 충실히 이해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강의 목소리는 두 언어 사이를 왕복하며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충분히 살지 않았는데도 삶이 훓고 가며 남기는 그 상흔과 삶이 품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그 자비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다르면 약하면 결국 견딜 수 없는 지점에서 방황하는 모두에게 이 이야기는 헌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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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psan 2016-07-2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1인이라 책 내용이 많이 궁금합니다. 전 고기 달걀 우유 일부 생선 이런 것만 안 먹어요 ^^

blanca 2016-07-21 14:26   좋아요 0 | URL
채식주의자도 단계가 세분화되어 있더라고요. 달걀,우유까지 안 드신다면 거의 채식주의라 하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에서 채식주의는 세상의 폭력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그려져 있어요. 나중에는 음식 그 자체까지 거부하게 된답니다. 사실 걷고 먹고 살아나가는 과장 자체가 작든 크든 어떤 형태의 폭력이 끼어들지 않고는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 부분이 극대화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mipsan 2016-07-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음식 거부는 안 할거 같아요 ^^ 애초 꺼리게 된 이유가 동물사랑이나 폭력거부, 이런 거창한 게 아니었구요. 술 담배도 안하는걸요 ㅎㅎ
 

 

 

모든 사람은 늙는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이 당연한 명제를 항상 실감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이 죽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사람도 별로 없다. 사실 이삼십 대만 해도 그 숱한 늙음과 죽음은 대부분 풍경일 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연한 타자다. 중년을 넘어서면 그 타자는 이제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때로 수긍한다. 비오는 날. 보조 보행기에 우비까지 쓰고 두 딸까지 옆에 두고도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의 모습이 아프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니까.

 

 

 

 

 

 

 

 

 

 

 

 

 

 

 

 

생물학자인 저자 조너선 실버타운이 그러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종이 노화에서 절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 준다. 450년을 사는 대양백합조개도 2000년을 산다는 자이언트세쿼이아도 결국은 죽는다. 그 생물들이 오래 사는 노하우를 우리가 빌려와서 우리의 생을 흡족할 만큼 늘리는 것은 아직 무리다. 설사 그것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행복으로 더 가까이 가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화는 신체 유지의 실패에서 비롯하고 진화는 이것을 허용하고 어쩌면 더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의 추측은 영원한 젊음과 영생이 전존재적 측면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암시를 품고 있는 것도 같다. 각 장마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여는 관문으로 사용하는 시인들의 시가 그 어떤 이야기의 전경보다 더욱 극적이고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것은 결국 필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사라진다. 아무리 과학이 진보하고 우리를 둘러싼 우리보다 오래 버티는 생물들의 노하우를 들여다본다고 해도 결국 마침표를 피할 수는 없다는 근본적인 회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뭉클하다. 그것은 힘겨운 역설, 아이러니로 향하는 지난한 인간들의 투쟁사니까. 이 모든 수고는 조금씩 앞으로 힘겹게 밀고 나가지만 그래도 궁극에 도달하려먼 멀었으니까. 조너선 실버타운이 첫장부터 에밀리 디킨슨의 이 역설의 시를 인용한 것은 결국 그런 이유에서다.

 

 

밤은 아침의 캔버스

절도는 증여

죽음이 가리키는 것은 불멸

-에밀리 디킨슨

 

조너선 실버타운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중

 

 

불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멸을 희구한다는 것은 우리는 필멸의 존재임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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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7-1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한 독서와 리뷰~ 반가워요 블랑카님!^^

blanca 2016-07-18 22:3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인사는 언제나 참 따뜻해요...

stella.K 2016-07-1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맘에 들어요.^^

blanca 2016-07-18 22:37   좋아요 0 | URL
정말요? 신나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