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도 보고, 몇 부작으로 드라마화된 것도 보고, 심지어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만든 북클럽에 관련된 영화까지 봤지만, 정작 그녀와 거의 동일시되다시피 하는 그 유명한 '그것'은 아직이었다.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의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로 시작하는 <오만과 편견>이 그것.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문학동네)와는 다른 차원의 출발이다. 클리프턴 패디먼은 <평생독서계획>에서 이것을 "개인 생활의 행복이 걸려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로 묘사한다. 이미 귀족이었던 안나로서는 사실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의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어쩌면 여기에서부터 그녀의 사랑은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재산이 남자 후계자가 없어 먼 친척에게 상속이 되는 불합리한 제도의 피해자에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에서 다섯 자매의 차녀였던 엘리자베스가 만 파운드의 상속자 다아시와 밀당을 하다 결국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결말은 사실 속물적이고 진부하다고 폄하될 것만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이 그려 낸 백마 탄 왕자님과의 해피엔딩은 그 단순한 플롯이 본질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까지의 그 머나먼 여정 속에서의 그 섬세한 언어들의 향연 속에서 반짝이는 재치와 위트와 유머가 이백 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오백 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에 이렇다할 반전이나 급박함도 없건만 아무리 우울하고 책이 싫어지는 날에도 이 당당하고 적당히 속물적이고 재기발랄한 아가씨 엘리자베스가 무뚝뚝한 훈남 다아시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걸어가는 애정전선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임을 장담한다. <오만과 편견>을 시작한 순간, 우리는 적어도 심심하거나 무료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체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습니다."체다. 이러한 설명조의 문체가 작위적일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베넷 가의 다섯 딸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은 친절한 설명체의 어조와 한데 뭉근하게 어우러진다. 중반이 넘어가면 딱딱한 반말은 이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해프닝을 말하고 듣는 데에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게 되니 번역자의 시도는 성공한 셈이다. 제인 오스틴 특유의 해학과 유머가 시간과 공간의 차이나 한계를 넘어 우리 어휘만의 독특한 배려, 참견의 색깔이 섞인 높임말들과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이룬다고나 할까. 여튼 아쉽게도 원작의 묘미는 맛보지 못했지만 그 아쉬움도 어느 정도 희석될 정도다.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그려지기는 했지만 엘리자베스의 가족은 사실 그녀의 앞길을 막는 역할을 할 정도로 무례하고 속물적으로 그려진다. 엘리자베스는 친정가족들에게서 어떤 지지나 응원,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운 감정을 가진다. 실제 다아시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데에 친정 동생들의 어처구니 없는 방종한 행동들, 친정 엄마의 속물적이고 적나라한 언사들은 신분차 만큼이나 큰 장애로 작용한다. 제인 오스틴은 이러한 가족들의 부족함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가족들의 행각들은 어떤 인간의 속물적인 욕망과 보편적인 실수, 기만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대목이 있어 배경으로만 작용하지 않는 감이 있다. 분별,절제, 겸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러한 것들을 멀찍이 치워버리고 마음과 입에서 떠오르는 모든 감상, 욕망을 발설하고 때로는 행동에 옮기는 엘리자베스의 자매, 어머니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게도 보이지만 일말의 공감을 얻을 구석이 있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공략했다. 클리프턴 패디먼이 이야기한 것처럼 제한된 주제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그녀의 강점은 모든 인간의 적나라한 해부가 설득력을 얻을만치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독자들이 즐겁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은근히 남의 사생활에 관련된 뒷얘기, 불행 등을 안주 삼으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이웃들로 만들어진 자매의 마을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제인 오스틴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근거리에 있다. 그녀는 동화를 쓴 것이 아니다. 가벼운 소재를, 가벼운 구도로, 그러나 이렇게도 가볍지 않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제인 오스틴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오만과 편견>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누릴 즐거움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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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0-1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을 20대에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아줌마가 되어 다시 읽어 보고(제대로 읽어 보고) 위대한 작품이라는 걸 알았죠. 대단한 작가구나, 생각했죠.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손에 잡히죠.
가장 소설다운 소설 같았죠. 멋진 소설이에요.
님의 리뷰도 멋진 리뷰군요. ^^

blanca 2014-10-13 12:5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십 대에 읽어보셨다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더 달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저도 페크님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인 오스틴은 정말 작가구나, 작가란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싶은. 왜 사람들이 그렇게 제인 오스틴에게 열광하는 지 십분 공감이 갔어요. 무엇보다 정말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읽는 내내 참 행복했어요. 이미 읽어버려 더 이상 이런 책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요. <엠마>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세실 2014-10-1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군요^^
님의 글 읽으니 막 읽고 싶어집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오만과편견, 안나 카레니나 둘다 잘 어울렸어요^^

blanca 2014-10-13 13:00   좋아요 0 | URL
키이라 나이틀리는 예전에 저랑 친했던 여직원이랑 너무 닮아서 볼 때마다 그녀가 생각나요. 좋아하는 배우예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다아시역 배우 콜린 퍼스가 맞나요? 덜 멋있었어요--;;

2014-11-10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2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 <시>에서 시창작수업을 듣는 중년의 남녀들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저마다 독백으로 고백하는 장면은연기가 아니었다. 그 중 아름다운 꽃을 볼 때 느끼는 그 절절한 아름다움과 그것을 영원히 향유할 수 없는 아쉬움을 이야기했던 부분이 기억해 남는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이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내'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나이를 넘어서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장면에 감정 이입이 되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느낌.

 

인식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내'가 사라지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각오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듦이 가지는 무게가 때로 두렵다.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지점은 분명 그곳인데...그 지점으로의 응시가 떨린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러한 인간들의 소멸에 대한 본원적 두려움에 어떤 담담한 위무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을 유난히 두려워했던 한 여성이 어떻게 그것을 넘어서는 지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게 명명된 <장미와 주목>은 T.S.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 중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순간 순간 지고 피는 찰나의 장미와 굳건이 그 장미를 이고 있는 주목의 순간이 같다는 것은 삶의 그 유한성이 가지는 그 의미와 무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어느 날 찾아온 한  비열하고 이기적이라 생각했던 사내의 죽음을 목격하며 자신이 배경으로 때로는 주인공이었던 삶의 에피소드들을 차근 차근 펼쳐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교통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는 그를 편안한 청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오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고백한다. 화자가 형부부와 함께 이주한 지역에서의 선거전에 참전 경력과 그럴듯한 말솜씨에 기대어 보수당 대표로 졸속으로 출마하게 된 게이브리얼이라는 사내와 유폐된 성 같은 곳에 노부인들과 함께 언젠가 돌아올 성의 주인인 사촌오빠를 기다리는 이사벨라라는 여인의 이야기. '나'는 그 둘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저열한 패배의식과 신분이 가지는 열등감에 함몰되어 있는 게이브리얼이 귀족 아가씨인 이사벨라와 도주하자 경악한다. 게이브리얼은 선거전의 승리를 앞두고 있었고 이사벨라에게는 정혼자가 돌아와 있었는데도 이 둘은 이 안온한 선택을 뒤로 하고 위험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곳으로 달려간다.

 

'나'는 우연히 이 둘과 재회하게 되고 예상대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남녀 앞에서 절망한다. 하지만 그렇게도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사벨라가 정식 결혼도 하지 않고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막 살고 있는 게이브리얼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모습에 나는 큰 혼란을 느낀다. 이사벨라가 자신에게 약속된 모든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이런 저열한 사내와의 비참한 삶을 택하고 마침내 그를 위해 죽음까지 마다않는 모습에서 '나'는 게이브리얼이 한 아름다운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쳤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나'에게 미스 마플처럼 현명한 직언과 조언을 서슴지 않았던 형수 테리사의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우리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근사한 조언이다.

 

"도련님은 시간을 가지고 판단하는군요. 하지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 분이나 천 년이나 의미는 똑같아요."

 

"도련님은 이사벨라의 인생이 짧게 끝나버렸다고, 일그러지고 부서져버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그것 자체로 완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장미의 순간. 눈으로 보는 것만이 그 사람의 본질은 아니다. 길게 안전하게 평안하게 사는 것만이 그 사람의 삶의 그럴듯한 완성은 아니다. 찰나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부수적인 것들에 끄달리며 우리는 주목의 순간에 삶을 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우리답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을 느끼고 응시하며  유한함 안에 모든 것들을 응축하려는 시도 그 자체에 찰나에 피고 지는 장미의 아름다움이 발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한 시도와 삶을 변호하려 하는 것에 앞서 그저 여기 이렇게 지고 피어나는 저마다의 모든 삶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지를 해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시도가 이 이야기의 핵심인 것 같다.

 

고마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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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9-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영화를 차마 못 보겠어요

blanca 2014-09-30 19:20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저 이 영화 티비에서 하는 것 새벽까지 보고 잠 못 이루었던 기억이 나요. 다 보고 나면 가슴이 너무 스산해지더라고요...
 

호감을 가졌고 친밀감을 서로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착각했던) 그녀에 대한 그 생각이 얼마 전 깨어져 버렸다. 그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고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쉴 새 없이 휴대폰으로 카톡을 하고 전화를 주고 받고 했다. 마치 소개팅에서 만난 눈 앞의 남성을 차마 노골적으로 거절할 수는 없어 "나는 너한테 관심이 없어", 혹은 "너는 네 타입이 아니야"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여자인데, 아줌마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청한 만남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대화는 겉돌고 그마저도 나중에 곱씹어 보면 무언가 상대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부족한 듯한 느낌.

 

집에 들어와 결심했다. 다음에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날 테야. 그녀 앞에서 잉여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대체 휴대폰이 뭐라고 이렇게도 편하게 단칼에 그렇지만 완곡한 것처럼 눈 앞의 사람과의 만남을 부인해 버리는 것인지. 사람을 만나 사람이 아닌 것으로 거부 당한 느낌은 아주 묘했다. 그녀는 원래 스마트폰을 아주 좋아하는, 아니 좀 더 거칠게 말해 어느 자리에서든 스마트폰에 항상 시선이 가 있는 그러한 사람이었지만 어쩌면 이제 그러한 그녀의 휴대폰에 대한 사랑을 감내할 만큼 그녀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내 감정의 변질과도 관련되어 있겠지만, 여하튼 스마트폰과 그녀는 함께 저 멀리 가버렸다.

 

그러니 이런 나에게 김영하의 포문은 아주 시의적절했다. 하필 스마트폰에 대한 비판이라니. 그것이 빼앗아 가는 '시간'에 주목한 것이 내가 느낀 어떤 배려의 결여, 정의 상실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어 반가웠다.

 

 

 

 

 

 

 

 

 

 

 

 

 

 

김영하는 스마트폰이 야금야금 좀 먹고 들어가는 '시간'을 부자와 빈자 측면에서 주목한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2년 약정의 노예로 우리 돈을 지불하며 우리의 시간까지 함께 갈취 당하고 있다는 통찰. 거기에 덧대어 김영하는 이미 가진 자들은 이 점을 직시하고 있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시간, 자유까지 스마트폰에 헌납하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책으로 푸는 경향이 다분한 나는 내처 읽기 시작한다. 음, 맞아, 맞아. 하며. 지나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 중간 지점에서 김영하가 덧대는 텍스트들과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분석의 만남은 조금 진부한 구석도 있고 참신한 대목도 있고 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중독성은 있고, 그랬다. 그러다 가장 좋은 대목을 만났다. '죽음'과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김영하식 감상이 만나는 이야기.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선과 악은 지각에 근거하는데 , 죽음은 이러한 지각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폴커 슈피어링, <철학 옴니버스> 중) 에피쿠로스의 이야기. 아쉽게도 '그래비티'를 보지 못했는데 우주 공간에서 떠돌며 우리의 그 작아진 그 하찮은 삶들을 조망하고도 결국 그 유한한 삶으로 돌아가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이 유한하고 이 실재적인 현재의 삶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얻어 듣는 기분은 무언가 아주 장엄한 구석이 있었다. 너무 작고 하찮고 찰나의 것들이라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유의미한 순간의 가치를 얻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 가지는 그 미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안나 카레니나>가 소설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대목, 소설 읽기가 주는 그 입체적이고 생생한 간접체험의 매력을 공들여 이야기한 대목은 다시 한번 그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이들의 섬세한 내면 풍경에 대한 묘사에 압도되었던 그래서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그 시간들을 그립게 했다. 그때 분홍공주는 아기였고 나는 아주 젊었고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의 지리멸렬했던 일상과 안나 카레니나의 곡절 많은 삶이 만났던 지점은 분명 아주 의미 있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는 곧 '읽다'와 '말하다'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본 것들에 대한 찬찬한 기술, 나름대로의 분석, 감상을 듣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향해 있던 사람의 시선에서 받은 그 어떤 냉정함이 조금 삭여지는 것도 같았다. 따뜻한 소통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여전히 사람을 위로하는 구석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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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함께 있는데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면 그때는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너와 그사람`이 만난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굉장히 서운해요. 그렇지만 이런 저도 누군가를 만나면서 저도 모르게 스맛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생각해보니 엄청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는 스맛폰을 아예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요. 지금은 우리 둘다 만나면 스맛폰을 꺼내두는 걸 보니, 우린 상대에 대한 애정이 조금 식은걸까요. 나랑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도 함께 있는 느낌, 결코 유쾌하지 않죠.

저는 김영하에 대해서라면 딱히 별 생각이 없는데 블랑카님께서 김영하의 책을 읽고 쓰신 글은 참 좋으네요. 오랜만에 아주 맛깔스럽게 읽었어요.

blanca 2014-09-26 19:1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맞아요. 딱 그 표현, 불쾌하다고까지 표현하면 조금 강하고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곱씹어 보면 속상한 --;; 저는 김영하의 소설 중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의 신간은 왠지 챙겨보게 되는 그런 정도랍니다.

하이드 2014-09-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는데, 김영하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잘 쓴 소설은 읽겠는데, 에세이는 진도 안 나가네요.

blanca 2014-09-26 19:1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지금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생각보다 분량도 적은데 잘 안 넘어갔던 같아요. 이것 다 읽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 것 읽고 있는데 이것도 신기하게 안 넘어가네요-- 차라리 정말 좋아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을까, 이러고 있답니다.

icaru 2014-09-2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책으로 푸는, 이라니... 동질감 엄청 느껴요 ㅎ
지금, 바로 이 순간,, 김영하의 이 책을 읽지 않은 저조차도 맞아, 하는 느낌이 들게 써주신 글 감사해요~

이건, 딴소리 친밀감이 깨져버렸던 지인 분, 혹시 아이 친구 엄마 아닌가요? ㅎ 아 저도 비슷한 경험이 최근에 있었더래서요 푸흡...

blanca 2014-09-27 16:59   좋아요 0 | URL
icaru님, 자리 까셔도 되겠습니다. 뜨끔 했네요. ㅋㅋ

세실 2014-09-2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를 안좋아하는 분도 있구나......
전 김영하를 좋아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건조하면서 담백한 문체를 좋아합니다. 반전도 좋았구요^^

만남에서는 최소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상대방 앞에 두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을 좀비라고 표현했어요. 딱 맞죠?
저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과는 상종하기도 싫어요~~~~

blanca 2014-09-29 12:30   좋아요 0 | URL
파울로가 그런 애기를 했군요! 저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직인데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칠십프로쯤, 산문은 다 찾아 읽게 되었어요. 아직 소설에 대해서는 어떤 아쉬움들이 개인적으로 남아서요. 애정하는 작가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윤대녕, 성석제 같은 작가 요즘 진짜 잘 쓰잖아.

 

교양국어 시간. 대학교 1학년. 나는 그 작가를 잘 몰랐고 그래서 그로부터 십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둘을 혼동한다. 나는 분명 수많은 강의들을 들었을 테고 수많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필기까지 했을 테지만 유독 그 시간의 이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그 공간 안에서 그 작가의 이야기나 문체의 향내와 내 청춘이 혼재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는 학생들에게도 어떤 기호나 평가를 떠나 당당하게 잘 쓰는 작가로 소개될 정도의 그런 인물이었다,로 남아있는 것이다.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는 막간의 휴식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윤대녕의 이 에세이는 마지막 장을 덮고 그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어떤 그녀와의 해피엔딩의 고백을 떠올리며 잘된 장편 소설을 읽은 후와 비슷한 감동의 여운에 가슴이 저릿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너무 솔직하고 초연하고 애절한 그의 삶에 대한 고백들, 나도 내가 떠나온 그 공간들이 하나씩 귀환하는 듯한 환상에 내내 행복했고 가슴이 뛰었다. 주저리 주저리 자기 과거의 미화에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노마드처럼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던 슬픈 유년, 청년기의 사연들에 엄살을 떨지도 않으며 삶의 갈피짬마다 쓰는 자로서 겪어야 했던 에피소드들이 그의 소설의 결처럼 섬세하고 생생하고 추연하게 복기된다.

 

쓰기 위해 자신의 공간이 장소로 고착화되고 저물게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유랑하는 그의 삶이 참으로 고단해 보이면서 다시 한 번 '작가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했다. 어쩌면 작가란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의 제물로 바쳐야 검은 활자로 이야기를 받아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참으로 슬픈 직업일런지 모르겠다. 아니, 윤대녕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고문이자 하나의 운명 같다. 

 

한때 출가를 꿈꿨다는 그가 소개하는 '사원들'은 기억해 두고 언젠가 한번 꼭 방문해 보고 싶다. 이를테면 그가 하나 하나 소개했던 "봄의 선암사, 가을의 내소사, 출가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부여 부석사 무량수전, 사과나무 길을 통과해야만 닿을 수 있다는 영주 부석사, 마룻구멍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절정은(그렇다, 이 에세이들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까지 구비한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에 상응한다) 대한극장이 고전을 재상영하던 시기 밤새 함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자신한테 과하다고 느껴 이별을 선고하고 유럽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헝가리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거리에서 괴로워하며 다시 전화기를 들어 재회를 기약한 여인과의 결말이다. 군데 군데 그를 현실로 내려오게 하는 아내에 대한 간간의 언급은 이 여인과의 에피소드의 솔직함에 아내가 기분나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했던 그의 대담함의 이유가 결말이다. 아내. 바로 중년 부인이 된 샴고양이라고 묘사한 아내가 된 그 비장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이 참으로 궁금하다. 이 해피엔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 삶의 비의를 탐구하기 위해 더이상 인간 관계를 확장하지 않고 도통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방랑벽의 이 사내의 지상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의 아내가 돌연 존경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윤대녕'이라는 작가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언급한 숱한 공간들과 나의 공간들은 일치하는 구석이 없었다. 아쉽게도. 그런데 마지막 단락. 마침내 못 만날 듯 못 만날 듯 했던 만남이 이루어졌다. 손만두집. 두 번 정도 가 본 그곳. 아름다웠지만 막상 맛은 심심했던 그곳을 이 작가 덕택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의 존재를 스물 언저리에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이제 어쩌면 마흔으로 가고 있는 나는 쉰 살의 문턱을 넘은 작가가 풀어 낸 자신이 거쳐온 공간들에 대한 사유에 절로 잠기고 말았다. 누구의 인생도 닮아 있는 구석이 있고 만날 대목이 있는 법이니 이러한 유려하고 솔직하고 아름다운 고백들은 절로 아름다운, 때로는 슬픈, 때로는 부끄러운 추억들로 타박타박 걸어들어가게 한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행복이 가능할까. 사는 게 지루하지 않을까. 한자에 약하니 도통 집중이 안 되네. 창밖을 내다본다. 화창한 교정. 나는 청춘을 소진하고 있었다. 늙음으로 가는 길. 그것이 삶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구나. 이제 곧 나는 마흔의 나를 대면하게 될 것인데. 윤대녕을 이 때에서야 만나게 될 터인데. 그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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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09-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윤대녕 작가와 잘못 만났어서 그런지 그 이후로 그분의 책이 나와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네요,,
블랑카님 글 읽으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핑크 공주는 여전히 핑크 좋아해요??ㅎㅎㅎ 저희 막내는 많이 변했어요,,,쬐끔 귀여운 구석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ㅋ

blanca 2014-09-26 00:03   좋아요 0 | URL
아롬님, 핑크 공주는 이제 핑크를 좋아했던 자신을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ㅋㅋ 귀여운 구석이 점점 사라져 가서 슬퍼요. 아기 때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괜시리 코끝이 찡하더라고요. 내 자신은 시간의 흐름을 잘 실감 못하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흘렀구나, 해요.
 

읽을 책이 한 권이라도 없으면 초조하다. 대체로 사서 읽는 편이니 책은 나날이 늘어간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단에 스무 권 남짓 들어가는 오 단 정도짜리 책장이 차는 정도였고 그나마 아버지가 조용히 처분하셨고 신혼집에서 서울로 이사 오기 전 또 그 정도 가량의 책을 기증하고 다시 시작했음에도 그리고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바로바로 중고로 팔고 있음에도 새로운 책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애초 아이를 위해 구입한 오 단 책장은 천장 부분만 아이 것으로 채워지고 나머지는 또다시 나의 것으로 그것도 앞 뒤로 빼곡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 정도 되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심히 눈치가 보인다. 먼지가 앉고 햇빛에 바래 두 번 다시 들춰지지 않은 책들. 책등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펼쳐도 보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기증할 대상을 선별해 보기도 하고 때로 너무 낡은 것은 분리수거날 폐지류로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끝이 안 보인다. 이제 나도 마흔이 멀지 않았으니 욕망대로 내달릴 수만은 없다. 그리고 활자욕도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해도 또 하나의 사회적으로 좀 덜 비난받는 개인의 욕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 결국은 사실은 나도 욕심쟁이였다.

 

 

 

이 책을 읽으며 줄을 긋지 않았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며 나는 이 책도 처분의 대상이 될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줄 긋고 싶은 대목이 군데군데 나온다. 결정적으로 괴로운 것은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의 의견에 끊임없이 동조하게 된다는 것. 그러니 이 책은 좀 더 가지고 있으려 한다.

 

2013년 봄 나는 쉰여섯이 되었다. <중략> 지적 욕구로 허세를 부리는 일은 어지간히 쇠했다. 슬슬 장서를 엄선하고 응축하는 데 마음을 써야할 때가 아닌다.

-p.37

나도 그렇지만 사실 자신이 어떤 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같다. 저자도 예외가 아니다. 있는 책도 또 사고 분명 가지고 있는 책인데 찾을 수 없어 도서관에 그 책을 빌리러 가는 지경이다. 헌책방 업자가 직접 출장을 와서 이천 권 가량을 사갔음에도 꿈쩍도 안 하는 서재. 이 정도면 '장서의 괴로움'을 호소할 만하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책을 처분하는 이야기, 소문난 장서가들의 책의 보관, 이동, 처분에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갈피짬마다 어우러져 지금 여기에서의 관심사가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흠뻑 빠져 경청할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꾸 나의 책장을 돌아보게 된다. 일본은 지리학적 특성상 지진이 빈번하고 목조 가옥이 많아 책의 무게로 집의 바닥이나 천장이 기울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장서 처분이나 이동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재미있다. 그러나 저자나 저자가 다루는 사람들에게 전자책이나 문서책을 전자화하는 '자취'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노시인이 자신이 가진 책들을 전자화하여 아이패드로 보관하고 그것으로 장서량을 간소화하는 이야기가 유일하다. 아이튠스에서 <채링크로스 84번지> 영화를 내려받아 본다는 그의 고백이 왠지 뭉클하다. 고서점의 주인과 고객이 주고받는 편지 내용으로 이루어진 영화. 그의 '자취'가 종이책 그 자체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사랑마저 희석시키지는 못했나 보다.

 

대미를 장식하는 '1인 헌책시장'의 묘사가 너무 아름답고 따사로워 접어두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다소 생소한 분위기의 헌책처분 광경이다. 옛날식 민가 갤러리를 빌려 책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개인의 장서를 처분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 책의 저자 자신이다. 사흘 동안 열린 이 축제에 손님이 와 줄까 걱정했던 지은이의 우려는 기우였다. 축제는 성황리에 끝난다. 비록 여기에서 처분한 책은 겨우 자신이 가진 책의 3% 정도라고 이야기했던 주변 사람도 있었지만. 책을 다 팔고 난 수익금으로 뒤풀이 비용을 대는 것을 어떨까, 하는 조언도 따뜻하다. 고등학교 시절 동창과 재회하는 풍경도 정답다. 질투날 정도로 예쁜 날씨들이 소중한 요즘 나도 이런 시장을 열거나 가보고 싶은 꿈을 꾼다.

 

여하튼 책을 사랑하는, 그래서 책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얼마나 들어도 지겹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또 나의 책장 한켠을 위무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또한 사실이다. 책을 처분하라,고 독려하는 이 책이 또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러니. 사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모순, 아이러니로 채워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책장 앞을 서성인다. 무언가 반드시 처분하거나 기증하거나 해서 제발 책장을 깔끔하게 만들고 앞으로 올 또다른 책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로. 볕이 잘 들고 먼지가 앉지 않도록 관리되는 깔끔하고 널찍한 서재.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책상 같은 허무맹랑한 꿈도 좀 꿔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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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9-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군가 빌려주고는 생각나지 않아 재구입한 경우가 몇번 있어요. 빌려주고 후회하고의 반복입니다.
먼지 뽀얗게 앉고 빛바랜 책들은 버려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않네요. 책좀 그만 사야겠죠?ㅎ

blanca 2014-09-11 11:21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그래도 명분이 있잖아요. 사서님이시니까요. 저는 사실 책을 사들이는 명분이 빈약해서요. ㅋㅋ 책을 빌려주고 받는 과정 참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빌려주고 못 받은 책들 몇 권이 기억나기는 해요. 무언가를 '빌려준다'는 것은 '안 돌려받아도 된다'는 전제가 안 되면 속상하게 되는 일인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9-1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면서 2백권 정도 버린 것 같아요. 이삿짐 센터에서 기증할 데가 있다며 수거해 갔어요.
아마 고마원 같은 곳에 주는 것 같아요.
천 권을 넘기지 말자, 하고 결정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천 권인 상태에서 구입한 책이 50권이 되면 헌 책 50권을 버리면서 책이 늘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책이 늘어났다고 느낄 때마다 늘어난 만큼의 수만큼 버리는 거죠. 일단 이렇게 결정했어요.
책을 살 때 꼭 사야 할 것만 사자고, 신중해지자고 결심하지만 책의 유혹은 어찌나 강렬하던지
매번 제가 지고 말아요. 괜히 샀어, 하는 책이 있곤 합니다. ㅋㅋ
저자의 고민이 와닿습니다.

blanca 2014-09-12 11:40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몇 권을 가지고 있는 지 파악도 못하고 있어요. 이제 좀 파악해 보려구요. 막연히 한 이백 원 있나 했더니 이미 이백 권은 애저녁에 돌파한 지도 모르고...아, 페크님은 전체 장서량도 파악하고 계시고 오십 권 체제, 그것 괜찮네요. 살짝 따라해 볼까요? 지금도 책 사고 싶은데 계속 참고 있어요. 이 인내가 참 쓰네요^^;;

마태우스 2014-09-1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안읽으려고 제껴놨는데요 블랑카님 리뷰 보니까 꼭 읽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조용히 처분,이란 대목과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인다는 대목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제 아내는 책을 얼마나 갖고있건 신경쓰지 않는데, 전 행운아네요

blanca 2014-09-17 11:32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ㅋㅋ 저희 아버지는 그러시면서 당신의 책을 사서 모아놓으셨더군요. 알라딘에서 제가 책선물을 보내드린 적도 있고요. 이게 아무래도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나와 있는 게 다 내 책이다 보니 괜히 제가 찔려서요. ^^ 행운아 맞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