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읽다>를 읽다 보니 자꾸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특히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 그의 팟캐스트처럼 그대로 책 대목을 군데 군데 인용해 주는데 마치 담담한 그의 어조로 다시 책을 읽는 느낌. 무심코 지나쳤던 문장들이 돋을새김처럼 확 눈에 들어온다. <읽다>를 읽다보면 정말 읽고 싶어진다. 분명 자꾸 듣다 잠이 드는데도 그의 팟캐스트 업데이트를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전혀 상관 없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는다. 서른 초반에 다시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초입에 있던 그 책에서 제목에서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부각됐던 안나 카레니나보다 그녀와 큰 관련성도 없지만 이야기 내내 커다란 중량감을 가지는 레빈이라는 사내와 아내에게 배신 당한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에게 초점이 옮겨 갔다. 특히 레빈에게는 톨스토이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자기 외모에 대한 열등감, 내부에서 싸우는 여러 가지 대의, 이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뇌, 첫사랑, 농민, 육체 노동에 대한 이상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천착. 유독 레빈을 묘사할 때 톨스토이는 어떤 거리감 조절에 실패하고 그 실패가 오히려 이 남자에 대한 애정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여러 가지 사회적 이상, 대의, 죽음의 허무감에서 허우적대다 연정을 품고 있던 어린 아가씨 키티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아내고 방방 뛰는 그의 모습이 참 귀엽게 그려져 있다. 갑자기 적대적이었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경험. 바로 여기까지 읽었다.

 

앞으로 레빈은 키티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다시 그가 고민했던 주제들로 돌아올 것이다. 열정이 훑고 간 자리에는 다시 살면서 겪는 자잘한 고민들과 고뇌들이 제자리를 찾아 비집고 들어온다. 안나는 끝내 브론스키와 지리멸렬한 관계를 유지하다 죽음을 택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모든 결론, 즉 스포일러를 알고 되짚는 읽기는 근경과 원경을 적절한 거리감으로 가늠하며 더 찬찬히 그들을 스쳐간 감정들, 풍경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재독이 가지는 의미는 또 남다르다. 결론을 궁금하게 하는 초조감이나 재미는 덜하지만 이미 완성된 풍경 안에서 그려 가는 저마다의 삶의 경로를 관찰하며 느끼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인물들을 더 친근감 있게 마치 살아 있는 주변 인물들처럼 느끼게 되고 그들에게 이입하게 된다. 너무 빨리 헤어지기 싫어 붙들고 있고 싶어질 정도로.

 

 

 

동쪽과 서쪽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는지 일몰을 볼 줄 알았던 곳에서 뜬금없이 일출광경을 보게 됐다. 기다렸던 것도 아니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을 갑자기 보게 되어 얼떨떨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언어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묘사했던 일출 광경의 문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묘사된 일출 대목을 필사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그 광경에 맞닥뜨렸을 때에 떠오른 것은 필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광경을 그대로 마음에 눈에 담기로 했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대체로 이러한 것 같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결론이 지어질지 모르고 걸어가는 길은 때로 두렵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같다. 다 알고 듣는 이야기 같은 인생을 직접 살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 말이다. 또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6년 새로운 해가 뜨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렇게 이 풍경으로 갈음하려 한다.

 

다시 책을 읽고 또 쓰고. 그리고 라디오를 듣고 그렇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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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5-12-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담 보봐리는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그 누가 뭐래도..플로베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blanca 2015-12-09 14:34   좋아요 0 | URL
저는 고등학교 때 읽고 최근에 다시 민음사 번역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역시 독서에도 어떤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적확하게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그게 전혀 지루하게 안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로도 개봉한다고 하니 더욱 기다려지지만 볼 수 있을지... 다시 제대로 읽을까 고민중이랍니다.
 

오늘 아침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이러했다. 세계 최장기간 투병 메르스 환자 사망. 아래에는 추모 게시판. 혹여 그의 것일까 싶어 확인해 보지만 이것은 공과가 분명한 비교적 장수한 전직 대통령의 자리였다. 그의 죽음 앞에 망연하고 원통할 가족들의 심정이 상상되어 마음이 괴로웠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이 자명한 명제가 구체화될 때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회한이나 억울함이 게재되면 남은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수만번 복기되어 할 수 있었거나 했어야만 하는 일들은 끊임없이 들고 일어나 왕왕댄다.

 

네 살 아이의 아버지, 늦깎이로 새로운 분야 공부를 하고 직장에 출근했던 가장은 메르스 80번 환자가 됐다.메르스 초기 대응에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던 학습된 공포감은 암투병 중인 젊은 아버지 앞에서 과도하게 관료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해할 수 없는 메르스 양성 반응과 음성 반응 사이의 자리는 제대로 된 검사, 치료에 소극적이게 했다. 간병인과 가족의 집중 케어를 받으며 이겨나가야 할 암투병은 격리병동에서 힘겹게 이어져 나갔다.

 

누구나 불확실성 앞에서 두렵다. 게다가 학습된 것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여러 전문가들, 심지어 WHO에서도 이 환자의 메르스 전염력은 거의 없다,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초기에 그렇게 했어야 할 행동이 하필 암투병 중인 이 젊은 아버지에게 가혹하게 발휘되었다. 가족들은 격리 병동에서 제대로 된 항암도 검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늘 네 살 아이에게 돌아왔어야 할 아버지는 떠나고 말았다. 그는 이름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80번 환자로 마지막 환자로 언론에서 요약되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시간들, 꿈꾸었던 것들은 저만치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잿빛 하늘 아래서 먹먹했다. 그 가족의 자리, 그의 자리, 질병관리본부,정부의 자리를 상상해 본다. 나의 대응은 어땠을까. 나의 자유의 권한, 나의 결정의 범위, 나의 재량을 넘어서는 자리에 정말 해야 하는 일, 진실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나는 그냥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밀려나가는 것일까. 이 모든 불확실성 앞에서 두려움과 비겁함을 때로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쳐 버리면 이렇게 된다. 신중함은 이런 곳에서 발휘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메르스는 종식된 게 아니다. 그냥 단순히 한 줄로 80번 환자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을 게 아니다. 그 뒤에서 놓친 숱한 것들이 정말 중시해야 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존엄에 있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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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11-2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자에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다시 이야기하는 거라는 것도 잊지 않으렵니다.

blanca 2015-11-25 23:14   좋아요 0 | URL
네, 아애님 말씀처럼 더욱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유가족들한테 누가 안 되고 그 분을 추모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게 되었으면 합니다...

헤르미온느 2015-11-2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jtbc에서 미망인의 울먹이는 음성을 들었어요. 아픈 사람들의 더 아픈 이야기를 어찌해야 할까요.

blanca 2015-11-25 23:16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저는 차마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가족분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그분이 어떻게 힘들게 가셨는 지를 기억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미약한 의미나마 있기를 바라 봅니다.

웽스북스 2015-11-26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환자 사망, 메르스 종식. 이라는 워딩은 진짜 끔찍했어요 ㅠㅠ

blanca 2015-11-26 14:47   좋아요 0 | URL
.... 때로는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게 굉장히 두렵게 느껴져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7 어려운 대화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 용기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목차를 본다. 마지막에 이르러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그것은 힘들게 묻어버린 기억들을 들추어 낸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논한다는 건 머리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감내하기 힘들다. 늙어가고 기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독립된 생활을 하기 힘들어질 노부모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는 쉽게 꺼내지 않는다. 진심으로 달갑지 않은 주제다. 저자 아툴 가완디도 이것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주제일 수도 있다,고 시작한다. 더 많은 희망과 낙관을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생은 때로 과대평가되어 왔다. 그 자명한 유한성은 예술이나 우리가 소비하는 각종 영상들의 마디마다 활용되어야 할 일이지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시인 필립 라킨의 "결국 그들의 방문을 받지 않은 거리는 없다."<앰뷸런스>, 이 단 하나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는 초입에서 머뭇거렸다. 대단히 불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쉽지 않은 나날들에 이러한 이야기까지 사실 듣고 의식하며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은 망설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사실 중간 중간 계속 대면하고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어야 하는 데에서 더한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때로 후회가 들기도 했다. 정말 이런거야? 사는 게 이런 거야? 그럴 거면 왜 태어나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거야...결국 이런 거면서...

 

미국인 의사 아툴 가완디는 그 이국적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도 출신의 이민 2세대다. 아버지, 어머니, 그 자신이 다 의사다. 이러한 가족적 배경은 현대 서구 의학이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결론적으로 어떠한 실수와 실패를 저지르고 있는지와 난립하는 요양 병원, 요양원이 노인들의 어떠한 핵심적인 바람을 놓치고 있는지 비판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늙고 병약해져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가족적 지지 안에서 경험하는 전통적인 동양 사회의 모습은 그의 할아버지대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었다. 물론 그 자신 또한 나머지 가족들의 희생과 다툼 등을 들어 그게 최선이라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현대의 죽음이 어떻게 최신의료기술이라는 미명 아래 과도하게 관리, 제어 당하며 그것을 겪는 인간의 존엄을 앗아가는지에 대한 자신의 환자, 심지어 아툴 가완디의 아버지와의 그 힘들었던 마지막 시간들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 불편하고 너무 두려워서 마냥 다 맡겨놓았던 그것들을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다시 찾아오는 과정을 이 이야기를 통해 대리경험할 수밖에 없다. 딸과 떨어져 낯선 사람들과 자신의 의사와는 관련 없는 그 일과들을 강제로 수행해야 하는 요양원에 들어가기 두려워했던 아흔네 살의 루 할아버지의 이야기, 만삭에 폐암 말기임을 알고 아이를 조기 출산하고 아무 성과 없었던 암치료로 마지막까지 고통 당해야 했던 새라, 그 자신이 유능한 의사였지만 생의 말기에 아들을 붙잡고 울먹이며 내가 고통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달렸던 아툴 가완디 자신의 아버지.  그가 여러번 강조했듯이 생의 말기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이들은 비록 고통스럽고 슬펐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한계'와 '끝'을 직시하는 것은 뼈아프다. 하지만 분명 의미가 있다는 믿음은 소중하다. 단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숱하게 그들에게서 그 자신을 빼앗아 왔다. 이제 그들은 치료받고 관리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철저한 객체가 되어버린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들이 원하고 편안해하는 곳보다 내 마음이 편할 곳으로 요양원을 생각한다는 요양원의 대안적인 기관인 어시스티드 리빙 설립자의 이야기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아툴 가완디가 힘들게 시작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의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가치 있는 이야기였다. 이제 환자의 사례가 아니라 그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 죽음 앞에서의 어렵고 때로는 잔인하고 숭고한 대화들은 사실 우리를 예습 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데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묻고 어떻게 당신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라는지를 되물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나고 남는 것들은 사실 그러한 것들일지 모른다. 현대의료행위가 그 수많은 인공장치로 그 시간을 계속 지연시키며 끝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나 갈무리도 하지 못한채 아직도 우리는 그 수많은 석별들을 당하고 만다.

 

그의 아버지가 존재하기를 멈추는 대목은 차마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용기가 부족하니까. 아흔네 살의 루 할아버지가 저자를 앞에 놓고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지."라고 했던 이야기가 겹친다. 아툴 가완디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 내내 밤새 곁에서 책을 읽으며 그 처절한 소진 과정을 지킨다. 그리고 아버지의 당부대로 아버지 유골의 일부를 수천 년 간 그들의 조상이 그래왔던 것처럼 갠지스 강에 뿌린다. 아들은 갠지스 강에서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의 마침표를 성의 있게 찍는다. 당신이 원했던 일이다.

 

노력을 멈추고 '한계'를 인정해고 수용해야 하는 시기는 고통스럽게 온다. 태어나는 힘보다 더 끈질기게 엉겨붙어 그것은 죽음을 학습시킨다. 모두가 기피하는 바로 그 힘겨운 이야기를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분명 나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나라고 특별할 리 없으니 말이다. 덜 늙고 더 오래 살아도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마침내 나까지 저마다의 삶의 충실한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제대로 완결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도 역시 그것을 의식하는 일은 힘들다. 버티는 게 때로 포기하는 것보다 더 쉽다. 무언가를 하는 게 하지 않는 것보다 덜 가책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돌아보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관성에 저항하는 것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야 나아가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나이가 들어 배워야 하는 것들은 어쩌면 다 이렇게 절절하고 엄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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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1-20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툴 가완디의<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나오자마자 사놨는데 아직도 못 읽었어요. 왠지 두렵ㅜㅜ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열심히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겠지요.

blanca 2015-11-20 13:40   좋아요 0 | URL
저도 개인적으로 이 저자 책들이 참 좋더라고요. 이과적 지식과 문과적 글쓰기 소양을 고루 갖춘 작가인 듯해요. 사실 읽고 나면 자꾸 생각나고 우울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2015-11-21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2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르마 행려 세계문학의 숲 46
잭 케루악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히치하이크로 미대륙을 횡단하는 <길 위에서>의 잭 케루악은 언뜻 불교의 윤회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비추었었다. 약과 여자, 방랑, 재즈에 취해 있던 젊은이의 목소리로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일면이 여기에서는 전면에 부각된다. 여기에서도 작가인 그와의 경계가 거의 희미한 작가 레이 스미스, 그의 불교 수행의 동반자이자 가이드의 역할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 제피 라이더가 등장하여 마치 <길 위에서>의 불교 수행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더 농축되어 있고 군데 군데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얘기했듯이 하이쿠 같은 간명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잭 케루악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젊은 시절의 방황, 우정, 꿈을 소환해 내어 손을 맞잡게 한다. 참으로 영묘한 지점이다. 분명 누구나 대학을 그만두고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산정에서 산불 감시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님에도 그의 여정은 무언가 낯설지 않은 것들을 환기한다.

 

 

하지만 제피, 너와 나, 우리는 영원히 알고 있지. 오, 언제나 젊고, 언제나 눈물겨운 무언가를.

-p.347

 

 

지나간 것들은 특히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간 눈물겨운 것이 사실이겠지만 사실 가장 비실제적으로 살아도 통과가 되는 젊은 시절의 모든 그 무용하거나 헛된 시도들은 더욱 그러하다. 책의 뒷편으로 가 그가 이 책을 쓴 나이를 확인해 본다. 삶의 철학자가 되고 눈 앞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것들의 그 얄팍한 휘장을 걷어내는 게 과연 젊음과 만날 수 있을런지. 오히려 젊기에 더 가능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서른 다섯 정도. 스물은 아니고 아직 마흔도 아닌 나이. 그럼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 어리면 이 이야기 속의 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랗고 맛있는 허쉬 초콜릿 바"를 포기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늙어버리면 그것을 포기하고 더 큰 의미와 본질에 전적으로 삶을 바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기 힘들테니 말이다.

 

우리는 무가 곧 무라는 게 믿기 싫어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들인 걸까.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잃고, 마침내 자기의 인생마저 잃어버린 뒤에야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걸까?

-p.340

 

아버지의 생신, 식사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담담히 부지런히 하는 당신의 모습이 왠지 눈물겨웠다.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순간 순간 의식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도 당연히 '무'로 갈 것이다. 여기 지금에서 오십 년의 시간만 흘러도 많은 것들은 달라지고 스러질 것이다. 당연히 믿어야 하는데 사는 일은 그런 것과 쉽게 불화한다. 아직 자신 안의 이상, 신뢰에 크게 배신당하지 않은 레이 스미스 무리들의 항상 허무와 무를 의식하며 그럼에도 삶과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귀엽게 때로 지나치게 순진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냥 믿어버리고 싶어지는 건 나도 사실은 이 모든 게 무라는 걸 머리로는 인정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이 결국 무로 가더라도 그 존재 존재마다 의미가 있고 지금도 지나가는 시간들이 충만하다고 그래서 내가 사는 일이 내가 태어난 것이 참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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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1-1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새벽인데.. 와인 한 잔 하면서 blanca님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사는 일이 내가 태어난 것이 참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라는 대목에서 그만 뭉클ㅜㅜ 정말 그럴까요? 정말 의미있는 일이겠지요?ㅜㅜ

blanca 2015-11-16 20:50   좋아요 0 | URL
달밤님, 아, 어디였을까요? 저는 오늘 와인 일잔을 위해 치즈를 미리 사두었답니다. ^^ 그래서 무슨 느낌인 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저는 이런 생각까지 해 봤어요. 제가 필립 로스를 좋아하는데 이미 그는 완연히 노년이고 절필을 선언했잖아요, 그 나이까지 살아보니 삶이 어떠한지, 죽는 게 두렵지는 않은 지 물어보고 싶어진다니까요.
 

2015년을 시작하는 다이어리에는 몇 개의 개인적인 목표가 적혀 있다. 아이를 재우고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나름대로의 의식을 그런 식으로 행한 것일 거다. 시간의 흐름의 인위적인 구획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올해가 가기 전에 또 나는 2016년에 이루고 싶은, 혹은 소망하는 일들의 목록을 만들 것이다. 대학 새내기가 되었거나,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은 해는 연도의 표지 만큼이나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그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은 마치 무형질의 그것처럼 혼재되어 있다. 어떤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해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소망을 품었는 지를 기록하지 않는 한 그 해에 나를 스치고 혹은 뚫고 지나간 일들을 생생히 기억해 내기 힘들다. 누군가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추린다고 해도 그것으로 내 삶을 온전히 복원해 내기는 힘들 것이다.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때로 나는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913년, 대부분은 전운을 감지하지 못한 그 한 해에 역사, 예술사, 문화사에서 과연 어떤 족적을 얼마만한 깊이와 넓이로 남길 지 미처 모르는 루이 암스트롱, 피카소, 카프카, 스탈린, 히틀러, 토마스 만, 헤세, 릴케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들여다 보는 일은 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때로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간 시간을 공유하는 측면에서 색다른 의미와 흥미를 지닌다. 한 세기가 훌쩍 흘러 우리는 고작 그들을 둘러싸고 흐른 1년을 월별로 스케치한 풍경을 볼 뿐인데도 개인적으로 카프카의 실패한 사랑의 흔적들을, 이십 대 중반의 좌절한 화가 히틀러가 어떻게 역사적 비극의 단초를 품게 되는 지를, 토마스 만이 이루어 낸 문학적 성과들에 어떤 희생이 따랐는 지를, 구도자적 모습이었던 릴케와 헤세가 실제 사생활에서 얼마나 보여지는 이미지와 달랐는 지를 엿봄으로써 놓친 진실에 가 닿은 듯한 청량감을 느낀다. 미처 변명도 변호도 하지 못하는 곳에서 펼쳐지는 그 무수한 일상들은 역사의 한 구절 대신 삶의 한 장을 이룬다는 동류 의식 때문이다. 이 유명 인사들이 시간 속에 남긴 족적들은 각각의 분야에서의 중량감으로만 측정될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살아냈던, 고뇌했던, 시간들을 채웠던 그 사소한 것들로부터 일종의 위안, 공감을 느낀다. 횡단을 가로지르는 절단면은 이미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종단의 삶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

 

"어쨌든 1913년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죽지도 않고, 무기력하지도 않고, 상당히 내면적인 삶이었다."

-케테 콜비츠

p.352

 

 

어떤 한 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 힘든 시대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도 늙어가는 한 기본적으로 겪게 되는 '생로병사'도 '별 탈'에 때로 들어가니 더욱 그러하다. 에른스트 융거는 소년 시절 아프리카를 꿈꾸다 정말 아프리카에 다다라 외인부대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본국으로 돌아오며 1913년을 마감한다. 그랬다고 해서 그의 아프리카행이 무의미했을까. 모든 시도의 끝이 외형적으로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꿈과 선의와 연결되는 한 어떤 족적을 적어도 개인의 삶에서는 남긴다고 믿고 싶다. 그러니 무기력에 굴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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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1-0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때로 나는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 너무 좋네요. 마지막도요

그러니 무기력에 굴복하지 말자.

올해의 남은 시간들에도 그렇게 해야겠어요. 무기력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내면적으로 충실한 삶으로...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blanca님~~~~~~~~

blanca 2015-11-09 16:51   좋아요 0 | URL
아웅, 댓글이 더 좋네요.^^;;

자목련 2015-11-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지녔어요.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한 번씩 손에 닿는 부분만 읽어요. 2016년은 또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우선은 남은 2015년을 잘 보내야 할 텐데. 비 오는 금요일, 멍하니 Pale Blue Eyes 를 들어요.

blanca 2015-11-13 13:12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저자가 다른 연도도 좀 이런 식으로 써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 생기더라고요...가을비가 추적추적,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싱숭생숭해지면서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고 그러네요.

희선 2015-11-19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무기력에 지고 사는 듯하네요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시간이 좀 지나야 괜찮습니다 한해가 끝나가고 있다니...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이 담긴 듯해서 앞부분만 보다 말았네요 그냥 봐도 괜찮았을지도 모를 텐데... 작가는 많은 사람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많은 것을 찾아봤겠네요


희선

blanca 2015-11-20 00:06   좋아요 0 | URL
놀라운 건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들을 어떻게 그렇게 현란하게 교차시키는지. 한 명 한 명 제대로 삶 전체를 알고 있지 않고서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점에서 정말 경탄스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