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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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프랑스 제2제정의 법정에는 두 작품이 풍기문란죄로 소환되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이것이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보바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변론해 준 변호사에게 <마담 보바리>를 바친다.

 

<마담 보바리>는 '결혼 생활 만큼 진부해지'는 간통의 파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간통이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생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이 해피엔딩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삶을 지나가는 숱한 파국의 이야기가 그렇듯 그 이야기들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플로베르가 이야기하는 엠마 보바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직접적으로 혼외정사를 묘사한 대목이나 간통을 옹오하는 이야기는 발견할 수 없는데 묘한 에로티시즘을 자아내는 것은 어쩌면 플로베르의 이 이야기를 법정으로 불러내려 한 이들이 정확하게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느꼈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플로베르가 엠마가 평범하고 안온한 가정생활에서 결코 그녀의 욕망과 환상을 충족시킬 수 없어 곁길로 뛰어나가는 것들이 간통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엠마 보바리로부터가 아니다. 그녀의 남편 샤를르 보바리의 소년 시절의 동급생들이 기억도 못 할 만큼 유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모습, 창턱에 팔을 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소년은 미래의 아내의 배신과 자신의 몰락, 어이없는 죽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시골의 의사가 되어 첫 결혼에 아내와 사별하고 자신의 환자의 딸이었던 엠마에게 반해 그녀에게 구혼하는 장면,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신혼생활에 대한 묘사는 아릿할 만큼 아름답다. 단조로운 시골 생활, 과한 공상과 환상, 허위에서 허우적대다 우연히 초대받아 가게 된 귀족의 무도회에서 엠마의 허영심과 외도에 대한 욕망은 비도덕적인 출구로 향하게 된다. 그녀가 화려한 저기에 시선을 둘수록 여기에서 그녀를 둘어싸고 있는 것들은 헐벗고 초라하게 전락한다. 외도의 초입은 순간적으로 그녀가 가져왔던 환상이나 환각을 구체환 한 것같은 착각을 주지만 이윽고 그것들 역시 플로베르의 말처럼 진부함으로 지리함으로 치닫는다. 플로베르는 '여기'를 버리고 '저기'를 택하는 것 역시 '저기'를 '여기'로 변환시키는 삶의 그 가혹한 어쩌면 다행한 속성에 기초한 것임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는 작가다. 번역자의 말처럼 그렇다면 우리 모두 엠마 보바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꿈꾸는 한, 그리고 그 꿈이 어떤 착각, 환상과 만나는 지점이 있는 한 엠마 보바리 같은 패배는 남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축도처럼 집약된다. 플로베르의 인간형들은 그래서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닮지 않고는 못 배겨낸다. 특히 약제사 오메는 보바리 의사 집안 일에 뻔질나게 훈수를 두고 때로 적극적으로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리사욕을 채우고 그 부부의 불행에서 상대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속물이자 위선자로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보바리 부부가 모두 몰락하여 죽고 나서도 끝까지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자신이 바란 바의 대부분을 실현시키는 승리자는 오메이다. 하지만 플로베르가 그의 성공을 묘사하며 정말 삶에 있어 그가 성공을 거두었는 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며 은근히 조롱하는 듯한 조소하는 듯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보이는 성공 안에 진짜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신이 그런 한계 안에서 그러한 시선으로 그러한 만족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다 죽는다,는 것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는 일은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심판할 수 없는 지대다.

 

번역자 김화영의 작품 해설은 그 자신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에 기반해 한 편의 명강의를 연상시킬 정도로 값지다. 무엇보다 무심코 읽어내려갔던 것들에 대한 신중하고 사려 깊은 분석과 플로베르의 작품 창작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들이 어우러져 작품 자체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외동딸 엠마를 홀로 키우다 시집 보내고 자살로 보내야 했던 아버지 루오 영감에 애정이 갔다. 이 소박하고 따뜻한 농부는 전처와 사별한 그래서 장래에 자신의 사위가 될 보바리를 위로하며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귀중하고 다감한 조언을 남긴다. 그것은 꼭 슬픔이 아니더라도 삶의 길목마다 만나는 그 모든 떨쳐내기 힘든 부스러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서 기억해 두고 싶다.

 

그런데 말씀이죠, 아주 서서히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한 조각 한 조각, 한 알 한 알, 흘러가더군요. 사라졌달까 떠나갔달까 아니 가라앉았다고 할까요, 여기 가슴 밑바닥에, 글쎄 뭐랄까......여전히 뭔가 묵직한 것이 남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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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2-1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내영화로 본데다 최근 읽은 김영하 작가의 산문에도 언급되어있어서 조만간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블랑카님의 리뷰에 조급해집니다.ㅜㅜ 미미여사 책을 후딱 읽고 바로ㅠㅠ;

blanca 2015-12-19 22:33   좋아요 0 | URL
아, 달밤님은 영화도 보셨군요. 아, 꼭 읽으셔야 해요. 후회 없으실 겁니다.^^;; 책장은 가볍게 넘어가고 감동은 묵직합니다. 이러니 책 선전 같네요.

2015-12-21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1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5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7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년 연말에 쓴 페이퍼를 읽으니 기분이 묘하다. 지금은 2015년이고 이제 곧 2016년이 온다. 조금만 더 시간을 늘여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잠시 내려도 보고 싶은데...시간의 속도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또 이렇게 읽었던 것들을 갈무리 해두려 한다.

 

 

 

 

<길 위에서>는 산문 형식인데 마치 아름다운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다. 작가 잭 케루악의 경험이 태반이라 그 내밀한 청춘의 방랑의 고백은 그 누구의 그것과도 공명하는 아련한 순간이 될 것같다. 너무 가볍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젠체하지도 않는 딱 그 지점의 젊은 우리들의 이야기.

 

돌아올 것을 알고 떠나는 길의 굽이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은 내가 놓쳐버린 것들을 톺아 보고 잃어버린 것들을 만나게 한다. 즐겁고 그리운 읽기였다.

 

 

 

 

 

 

 

 

 

 

 

카버의 단편들은 정말  별 것 아니지만 항상 뭔가가 있어 찡하게 한다. 그 '뭔가'가 결국 그의 힘겨웠던 삶 속에 있었다는 발견은 '어느 작가의 생'을 통해 온다. 성실하고 아름다운 평전이다.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지만 작가에게 애정을 가진 시선은 그를 한 작가로서 한 아버지로 청춘을 다 바쳤던 첫 결혼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전처에게 의리를 지키려 했던 우직한 사내로 살려 놓는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의 생애를 이렇게 촘촘하게 엮어 나가다 보면 누구나 뭉클한 이야기로 재평가 될 것같다.

 

 

 

 

 

 

 

 

 

 

 

 

필립 로스는 '쓰는 일'과 언어에 영원히 기대를 가져도 무방함을 보여주는 작가다. <에브리맨>에서의 그의 통찰력은 삶의 굽이마다 발휘된다. <네메시스>는  더 이상 나이 든 사람의 쇠락에 집중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누구나 한때 지나치는 그 찬란한 시간, 그 비상에 대한 찬탄과 그 뒤안길을 놀라울 정도의 대비감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놀이터를 지키던 그 모두의 형이자 오빠였던 그의 몰락은 대미를 장식하지 않는다. 무너져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여전히 빛나던 그 영웅의 어깨가 눈부시다.

 

 

 

 

 

 

 

 

 

 

 

 

 

 

 

 

 

 

 

 

 

 

꼭 대단히 진지하거나 분석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책들이다. 각각 시간과 늙어감과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잘 읽히고 일상에 몰아닥치는 그 수많은 고충과 고난들 사이에서 조금 더 삶을 길고 큰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제목이 평이하다고 내용까지 진부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 아툴 가완디가 실제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로서 병환에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는 이야기는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즉답은 될 수 없어도 적어도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진지하게 최선을 찾아 나아갈 가능성과 길의 전범을 보여준다.

 

 

 

 

 

 

 

 

좋아하고 존경했던 작가 올리버 색스가 올해 타계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글의 약속을 그는 정말 지켰다. 태어나는 과정을 통제할 수 없듯이 삶 속으로 파고드는 죽음 앞에서도 한없이 작아지고 무력해지는 인간이지만 적어도 어떤 고귀함을 지키려는 노력은 허무한 것이 아니었다. 열정적이었던 그의 삶을 스스로가 정리한 자서전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언제 읽어도 이 대목은 정말 사는 게 좋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2015년 말미에 이렇게 갈무리해 둔다.

 

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날 약국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들어서기전 마지막 구간의 가시덤불에서 야생 라즈베리가 송알송알 맺힐 때나,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으로 차를 몰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예전에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발밑에서 타이어가 부드럽게 구르고 햇살이 이른 아침 안개를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오른쪽으로 만이, 그다음엔 키 크고 늘씬한 소나무들이 잠시 보였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 <올리브 키터리지> 중

 

 

그런 아침들로 이루어진 삶. 그게 사는 일의 전부는 아니지만 뼈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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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1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 아메리인가요..늙어감에대하여..올해 저도 읽었던 책이 있어서 반갑네요..

blanca 2015-12-16 13:3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 <늙어감에 대하여>가 좀 지나치게 냉소적인 감도 있어서 읽고 나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도저히 아니라고는 말하기 힘든 대목이 많더라고요.

파란놀 2015-12-1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갈무리하신 글월을 보니, 문득 <행운아>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행운아>를 읽을 때 느낀 바람 한 줄기가 비슷하게 흐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행운아>는 존 버거와 장 모르 두 분이 엮은 `어느 시골 의사` 다큐멘터리입니다. 아름다운 십이월로 즐겁게 갈무리하셔요 ^^

blanca 2015-12-16 13:32   좋아요 0 | URL
아, <행운아>는 못 읽어 봤어요. 그런 분위기라면 읽고 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yureka01 2015-12-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보니까 장아메리는 유태인으로 독일의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더군요.그런데 늙어서는 벨기에서인가 자살했다고 하더군요.아!~~~~

blanca 2015-12-17 13:36   좋아요 0 | URL
역시...그랬군요. 삶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의 글을 읽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가라앉게 되는 것 같아요.

희선 2015-12-1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새해를 맞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십이월이면 늘 이 생각을 하는군요 기억에 남는 책을 정리해두는 것도 좋겠네요 한해 동안 어떤 책을 만났는지 알 수도 있고... 이렇게 말하면서 저는 하지 않겠다 생각하는군요 날마다 같은 날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희선

blanca 2015-12-17 13:37   좋아요 0 | URL
시간이 정말 너무 빨리 가서 이제는 작년에 했던 일이 올해 했던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예요. 나이들수록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데 기억만 자꾸 늘어 큰 일입니다.

테레사 2015-12-1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블랑카님...마지막 인용 문단은 참말 평이하면서도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져요...저도 그의 작품을 좋아해요^^; 전체적으로 이번 포스팅은, 좋네요..ㅎㅎ 대부분 그렇듯이

blanca 2015-12-17 13:3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가 요새 든 생각이 그냥 별 것 아닌 아주 작은, 자잘한 것들이 어쩌면 사는 일의 본질일런지도 모른다는 거, 그래서 단순해지는 것도 때로 참 좋다,는 거예요.
 
Patrimony : A True Story (Paperback)
Roth, Philip / Vintage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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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에서 필립 로스가 "노년은 대학살"이라 했던 연원은 그 자신이 여든 일곱 살에 죽어가는 아버지의 여정에 통절하게 동참했던 체험에 있었다. 삼백 페이지가 안 되는 이 이야기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기억의 복기가 일상에  괴팍하고 독선적이면서도 열 살도 더 차이 나는 이웃의 할머니와 연애를 하는 정력적인 그의 아버지의 그 대학살의 전장에서의 투쟁, 그리고 그것에 함께 동참하여 그 지난하고 참혹한 노쇠와 소멸의 과정을 절절하게 체험하며 삶에 내재되어 있는 그 근원적 비극성을 생생하게 하나 하나 형상화하는 작가 자신의 고백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유일하게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결정판을 출간하게 되는 작가적 성과는 그의 본질이 아니다. 뇌 속에 종양을 가지고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아버지는 유대인으로서 미국에 자리잡기 위해 평생을 분투했던 기억을 무한히 반복 재생한다. 그의 삶은 차라리 기억 그 자체였다. 성장기에 필립 로스는 이러한 아버지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종양 생검을 앞두고 탄 택시에서 만난 기사가 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을 때 필립 로스 또한 그를 전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찬찬히 그 감정의 뿌리를 탐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독선적이었고 그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타인의 실수에 때로 가혹해서 필립을 숨막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면면의 반대편에는 또 여느 서구적인 자식과 부모와의 다소 건조한 관계와는 다른 끈끈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투병은 필립 로스가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할 만큼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는 저편에서 커져가는 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홀로 여기에 있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의 아버지가 생의 투지를 불태웠던 만큼 급격히 소멸로 가는 과정의 가혹함은 그를 어리둥절케 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허덕이다 그와 통화한 여자 친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로 그를 위로한다. "나는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어."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비로소 그는 잠을 청할 수 있게 된다.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질서나 명확한 인과 관계를 요구하는 일은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 "왜?"가 시작되고 나면 모든 것은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해 보이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견뎌나갈 도리가 없게 되기도 한다.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를 그대로 두어도 공격적인 치료를 해도 그 어느 지점에서도 갈등하고 회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식의 번민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러한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버석거렸다. 그는 몇 번에 걸친 의사들과의 상담으로 아버지에게 장시간의 무리가 가는 뇌수술을 권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과 처분에 경과를 맡기게 되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하게 된다. 뇌의 종양 조직 검사에서도 제대로 회복되지 못해 힘들어하던 아버지가 참던 대변을 아들의 잘 꾸며진 집에서 실수하게 되는 장면에서 그는 삶의 정면을 맞닥뜨린다. 그게 바로 삶의 실재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 준 유산은 돈도 아니고 소중히 여기던 유물들도 아니다. 아들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눈과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수습해 보려던 아버지의 똥을 대신 닦고 청소하며 이게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의 유대의 정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별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아들을 들어올리고 평생 강건할 것처럼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와 몸은 졸아들고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그 자신이 이제는 자신의 용변마저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져서 아들 앞에 서는 순간 비로소 아들은 생이 가지는 그 처절한 비극성과 부자의 긴밀한 유대를 응시하게 된다. 어쩌지 못하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면 그냥 무릎을 굽히는 것도 때로 답이 되기도 한다.

 

필립 로스는 대단히 솔직하다.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했던 데에 대한 회한, 연명장치 중단 서류를 은근히 아버지엑 종용하는 모습의 고백 등은 그가 언어 뒤에 실체를 숨기려는 본능을 이겨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이야기가 언어의 장막을 뚫고 호흡하는 지점에는 이러한 솔직한 과단, 진정성이 있다. 한편 때때로 계속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천착은 좀 아쉽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정체성이 가지는 무게를 감히 쉽게 이해하거나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그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를 가두는 데에도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그 일을 지키며 필립은 아버지가 죽어도 영원히 자신의 내부에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로맹 가리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우리의 내면의 증인이 된다. 어떤 판단, 느낌의 준거점으로 기억의 거점으로 눈물로 남는 것이다.

 

표지 안쪽에는 세 부자가 수영복을 입고 일렬로 서 있는 아름다운 사진이 실려 있다. 서른 여섯의 젊은 아버지, 아홉 살의 필립, 네 살의 남동생의 아름다운 찰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빛난다. 아, 사는 일은 어찌 이다지도 대조적이고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도 또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한 생을 꾸려가는 일은 어찌 이다지도 끝나지 않는 것인지... 이 모든 이상스럽고 신비한 것들의 원리를 모두 알고 이해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을 계속 꾸려가고 계속 읽고 쓰고 사랑하고 표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게 삶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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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12-1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서 다시 아기로 돌아가니,
아기가 된 어버이(아버지 어머니)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선 내 모습도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나아갈 모습도
함께 되새길 수 있을 테지요.
아기가 된 어버이를 마주하고 껴안으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구나 싶어요

blanca 2015-12-14 14:44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는 길은 아마 죽을 때까지 또 배우고 돌아보는 과정인 듯해요. 거진 다 배웠다고 생각해도 또 튀어나오고 또 나오고 그러네요.

2015-12-14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5-12-1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 작가는 굉장히 솔직하구나하고 깜짝 놀라곤 했는데 역시@_@; 읽고싶은데 번역되어있지 않은가봐요. 블랑카님 존경합니다♡

blanca 2015-12-14 14:47   좋아요 0 | URL
아, 필립 로스의 솔직함이라니, 정말 놀라고 또 놀라요. 어느 인터뷰를 보니 `~척` 안 하고 산다고 얘기한 게 빈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또 일견 자신감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해요.
 

삼십 대를 거진 다 보내고 나며 달라진 것은 책에 대한 마음가짐도 해당된다. 이제 다 소유하고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한번 읽었다, 해서 '읽었다'고 단정짓지 말고 정말 단촐하게 소유하고 제대로 읽어서 내가 늙어 남은 사람들이 나의 책 처분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해서(물론 아닐 때도 있다) 읽는 것도 가지는 것도 처분하는 것도 조금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얼마 전 고전에 대한 재미를 처음 일깨워 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처음 세 권을 다 읽고 덮었을 때에는 톨스토이의 필력에 압도당해 할 말을 잃을 정도의 감동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감동이 또 다시 오지는 않았고 대신 처음 읽을 때에는 놓쳤던 좀더 디테일한 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안나보다는 안나를 떠나보낸 그녀의 남편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정점보다는 그들의 사랑이 일상으로 가라앉으며 각자 겪게 되는 그 지루한 일상과 지리멸렬한 다툼들이, 레빈의 신중함과 검소함보다는 융통성 없는 면과 모순된 면면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톨스토이 그 자신이 평생 가진 것들과 가져야만 한다는 것 사이의 괴리에서 괴로워했던 것 만큼 수많은 상충하는 인간들의 수많은 그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언행들이 대단히 핍진성 있게 다가왔다. 이것은 정말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톨스토이 주변에서 살아갔던 인간들의 모습을 그대로 적어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생생해서 이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마다 그들 모두가 다시 일어나 그 비극적인 삶을 다시 살아내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톨스토이의 인간들은 우리 현실에서 쉽사리 만나는, 하지만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가당착, 위선, 위악, 자기기만, 고결함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어제는 불우이웃 돕기를 이야기했던 사람이 오늘은 슬척 새치기를 하는 모습, 분명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고결한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는데 눈 앞에 아른거리는 예쁜 옷이나 가방 앞에서 괴로운 마음이 나의 것이거나 그의 것이라고는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언제나 옳은 사람은 언제나 고결하고 야비한 인간은 내도록 그러기를 저도 모르게 예상하고 바라기도 하는 게 조금 더 쉬운 길이니까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미묘한 지점을 톨스토이는 얄미울 만큼 잘 포착하고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대부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거나 미워하기에도 적절한 인간형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이기도 하고 '그'와 '그녀'의 이야기다.

 

불륜에 빠져 아이와 남편을 떠나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서마저 떠나 버린 안나는 그래서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전적으로 이해하거나 사랑하기 힘든 인간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애써 담담하게 가장하는 다소 냉혈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 알렉세이의 마음 속에서는 한없이 많은 번민과 고통이 오고 간다. 사랑의 열정에 호응했던 젊은 귀족 브론스키는 그것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자리에서 점차 자신의 것들을 기억해 내고 찾아 나가며 결과론적으로 안나를 고문하게 되지만 그러한 모습 또한 사실적이다. 사랑을 택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추구하고 받들여지는 가치를 전적으로 등지고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톨스토이는 단선적이거나 단편적인 삶의 경로는 실제적이지 않다는 점을 간파하여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이 두번째에서야 겨우 보였으니 나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이 책들 어느 하난들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다시 읽으면 또다른 것들이 보이고 놓쳤던 그 수많은 것들이 하나씩 돌아올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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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09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세번은 읽으라 하나봐요 .^^
읽을 적마다 뭔가 캐내어지는 기쁨 ㅡ

blanca 2015-12-10 14:07   좋아요 1 | URL
아, 한번 더 읽어야겠군요.^^ 사실 저는 기억력 자체가 별로 안 좋아서 두번째 읽어도 영 처음 읽는 느낌 받는 책도 종종 있더라고요...

[그장소] 2015-12-10 19:48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좋은것 같아요..전혀 새롭다고나 할까요.
분명 읽었는데 ..억울하긴해도..또 새로운!

물고기자리 2015-12-09 1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는 걸 참 좋아해요. 새로운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같은 이야기 속의 재발견에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해엔 오직 재독만 해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아직 읽지 않은 책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완전한 실천을 할 순 없었어요ㅎ 소장하고 있는 책의 양도 되도록 일정량을 넘기지 말자며 해마다 한 번씩 정리하고는 있는데 좀 더 나이가 지긋해지면 세 번이상 읽었던 책들만 간직하겠단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그때 제게 남은 책들을 보면 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ㅎ

blanca 2015-12-10 14:12   좋아요 2 | URL
아, 물고기자리님은 이미 이런 생각 하셨군요! 그런데 또 책 욕심은 덜어지지 않는 게 나이들어 자그마한 서재라도 확보해 다 잘 꽂아두고 톺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서요...

[그장소] 2015-12-10 19:52   좋아요 1 | URL
아 ㅡ세번이상 읽은 책만 ...그런데 책은 있으면 늘 꺼내보게되요.어떤 확인이든 ㅡ뭐 그런 걸 필요로해서든 ..작은 계기로든 ..늘 손닿는 곳에 두는게 관건인것 같아요..

후에 ㅡ자신의 모습을 책으로 돌아본다는 생각은
참 근사해요~^^

물고기자리 2015-12-10 21: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은 부분만 재독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완독하진 않더라도 부분부분 늘 확인하는 책들이 있어요. 그마저도 아닌 책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눈도 침침해지고(상상해보니 슬프네요ㅜㅜ) 더 이상 독서랄만한 행위를 못 하게 될 때가오면 읽고 또 읽어서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아진 책들만을 제 곁에 두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을 왜 하게 됐냐면요, 책을 좋아하시던 제 아버지께서 어느 날부턴가 가져다 드리는 책들을 더 이상 읽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젠 읽는 게 힘들어지신 거였어요. 그리고 책장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책들을 보니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의 일기 같은 그 책들은 언젠가 제가 가져오려고 해요..)

그래서 전 어떤 시기가 오면 읽지 않은 책엔 미련을 거두고 재독을 하며 마지막까지 곁에 두고 싶은 책들만을 간직하겠단 생각을 해봤어요. 언젠가 더 이상 읽는 것이 힘들어지면 만져보고 넘겨보기만 해도 좋을, 정말 내 것 같은 책들로만 제 책장을 채우고 싶어서요. 그래서 지금도 채우고, 비우고를 계속해서 하는 것 같아요. 잘 비워야 잘 남길 것도 같거든요.. 제 머릿속도 그래야 할 텐데 말입니다ㅎㅎ / 근데 블랑카님의 글에서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blanca 2015-12-11 13:09   좋아요 1 | URL
ㅋㅋ 좋죠. 왠지 집에 초대한 기분이 드네요.

cyrus 2015-12-10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나 까레니나》를 두 번 완독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예전에도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이 소설에 관한 글을 본 것 같아요. ^^

blanca 2015-12-11 13:08   좋아요 1 | URL
톨스토이가 이야기하고 싶은것들을 인물로 표현하려 할 때 좀 지루하거나 거친 대목들이 있긴 한데 또 그게 톨스토이의 매력인 듯도 해요. 러시아 작가들 특유의 색깔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십 대 때에는 그냥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기에 바빠서 읽거나 곱씹을 여유를 못 낸 게 너무 아쉬워요. 그런 점에서 cyrus님이 참 부럽습니다...

[그장소] 2015-12-10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ㅡ아버지의 일기와도 같은 책들 ㅡ이라니..
참 좋네요..제가 살던 곳은 어릴때 수해가 잘 나는 곳여서 그랬는지 아버지는 책을 모아두지 않으셨는데..어디서오는지 몰라도 많은 책들이 보이다 자취를 감추곤 했어요.
그걸 안계실때 ㅡ몰래 훔쳐보는게 제 낙이었고요.
아마 나중엔 신변 정리를 늘 해오신 거란 생각을 하게되었지만 그게 참 서운했어요.아무것도 남긴게 없어서요.

제가 일찍부터 모아온 책들은 이제 아껴도 책등이 바랬어요.
이십년 넘는시간..가까이 같이 다녀서..^^
해가 더할수록 단상들이 빼곡해..함부로 버릴수도 없죠.
누굴 빌려주지도못하고요.
나중엔 제 딸이 보면 싶어요.저는..


희선 2015-12-11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책이 별로 없어서 읽은 책 여러 번 보고 외우기도 했겠습니다 톨스토이 책도 그러지 않았을지... 지금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 여러 번 보는 사람 있겠네요 저는 아직 이 책 못 봤습니다 언제 볼 수 있을지... 세권이나 되니 마음먹고 봐야 하겠네요 첫번째, 두번째 볼 때 다르겠죠 그런 것을 느끼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텐데, 지금 세상은 책이 많네요 곁에 두고 보고 싶은 책을 찾은 사람은 기쁘겠습니다(블랑카 님은 그런 책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희선

blanca 2015-12-11 13:11   좋아요 1 | URL
이러다 또 갑자기 막 다 새로 읽고 사모으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어요. ^^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에릭 포토리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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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 날이 저물 무렵, 라 로셸 북쪽 어느 구역에서 아버지는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p.7

 

이 책의 첫문장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저자 에릭 포토리노의 체험이다.  평생 남을 돕는 일에서 보람을 찾던 물리치료사 일마저 뇌경색 휴유증에 의하여 그만둬야 했던, 그리고 마침내 개인파산까지 했던 늙은 아버지는 아들 셋에게 나란히 유서를 남긴다. 그 유서를 전해주는 책임은 자신의 성을 주었던 큰 아들 에릭에게 남긴다.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왜 '은밀하게'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러한 표현은 부모와 자식 간에 상용되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세상에 가장 드러내 놓고 천명할 수 있는 애정이 아니었던가. 비교적 성공한 언론인이자 작가의 아버지였음에도 끝내 스스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사내에 대한 복기는 왜 작가가 그러한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는 지를 고백한다. 그의 아버지는 생부가 아니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은 아홉 살이 넘어서야 수줍게 들어서는 새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 끊임없이 언론에서 회자되는 가혹하거나 파렴치한 계부와 계모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척점에 오연하게 서서 생명을 준 아버지보다 더 아들의 인생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보호하다 때 맞추어 망설이지 않고 독립시켜 보낸 훌륭한 아버지가, 심지어 배 안으로 열 달을 품어 낳은 나의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작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모가 서 있다. 자전거로 인생을 가르쳐 준 아버지. 운동을 마친 아들의 근육을 손수 다 마사지하며 부드럽게 풀어주는 아버지. 생부를 찾아 만나겠다는 아들을 운전해서 데려다 주는 아버지.

 

당신은 마음속으로 나를 사랑했다. 마치 사물들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낮게 속삭이는 것처럼, 애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느끼지 않으면서. 그 사랑은 너무 강해서-명명백백한 사실의 힘-당신은 그걸 동네방네 떠들어대지 않았을 것이다.

-p.123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뒤에 든든하게 지켜서서 그를 응원하는 자리에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서서히 홀로 죽음을 준비했던 것같다. 아들은 점점 약해져 가는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끝내 실행하지 못하고 다시 첫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버지는 죽는다. 그와 쌓았던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들, 애정, 신뢰는 시간에 허물어져 간다. 견딜 수 없는 망각에서 작가의 언어로 구원 받은 젊고 정력적이고 가장 아버지다웠던 모습들은 주춤 주춤 눈물겹게 아련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때로 짓이기고 묻어버린다. 거기에 대항하려는 글쓰는 이들의 언어들이 뭉클하면서도 때로 무력하게 느껴지며 가슴에 스민다. 대체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빛나게 생동하던 젊은 아빠의 눈망울은 움푹 패이고 아들의 자전거를 밀던 든든한 뒷배는 정작 자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스러져 버렸다. 어쩌면 작가가 미처 하지 못한 그 수많은 눈물 스민 감정의 편린들은 아버지를 둔 그래서 언제나 불효를 했고 불효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식들 모두에게 이미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도저히 눈물 없이는 열 수도 닫을 수도 없다.

 

아버지를 '그'라 칭하며 객관화하려는 시도는 무용한 것이다. 이미 '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려고 들어선 순간부터 우리 둘의 삶은 혼재되고 우리 둘의 이야기는 섞인다. 아무리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여 우뚝 선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그들과의 연결은 숨을 다하는 날까지 우리의 삶 속에 스민다. 그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시간, 노화, 병마, 죽음, 앞에서 점점 종말로 다가가는 그 삶의 경로에 동행하며 내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 각오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 들어도 자꾸 가슴이 먹먹해진다. 삶에서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덧대어질 때 비장해진다. 끝이 있는 이야기에 영원을 꿈꾸는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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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2-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버렸어요.ㅠㅠ 블랑카님의 명품리뷰ㅠㅠ;; 어제 책을(다이어리를-_-;) 주문하면서 넣었다 뺏거든요. 다시 주문해야겠어요. 눈물없이는 열수도 닫을 수도 없다니. 두렵습니다ㅠㅠ;

blanca 2015-12-05 13:01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저 공교롭게 요새 읽는 책마다 그렇게 눈물 쏙 빼는 내용이라 자꾸 가라앉아 고민입니다. 다이어리. 이미 새 다이어리 증정 받은 거 사용중인데 알라딘 거 보고 흑심이 들어 그것 또한 고민이에요.

2015-12-06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7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