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고민은

 

 

 

 

 

 

 

 

 

 

 

 

 

 

 

이 책을 방금 다 읽었는데, 줄긋기를 참고 또 참았다. 다시 또 읽지 않을 책은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좋은데 두 번 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줄을 긋고 싶다.  어쩌지?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자꾸 읽게 되는 책이라도 과거에 내가 줄을 그어 놓은 그 책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거기에 줄을 그었나, 싶은 대목들. 자를 대고 긋지 않아 울퉁불퉁한 줄들. 차라리 간지를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은 간지를 붙여야 하면 그건 그대로 또 문어발처럼 책 밖으로 나달거려 보기 싫다. 간지를 붙여 처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이렇게 참아야 할 것들 투성이지? 아, 간소하게 사는 건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이게 다 폴 오스터 때문이다. 끝까지 당겼으면 이렇게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이건 좀 애매모호한 지점이다. 솔직하고 섬세하고 유려한데 이 책만으로는 딱 그만의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나와, 모두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고백이 사실이었다. 이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자꾸 나의 그것들과 섞인다. 전부인과의 연애 시절의 편지들은 이십 대 초반의 그것들처럼 솔직히 지극히 과장되어 있고 무모하고 좀 유치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줄을 그을 색연필도 엊그제 새로 산 근사한 연필도 있는데 조금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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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3-15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블랑카님~^^
연필로 살짝 긋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구요. 지울 수 있으니까요. 전 요새 연필로 살짝 긋거나 노트에 옮겨적어요.

blanca 2016-03-16 09:09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아무래도 연필로 긋는 것이 좋겠죠? 저 예전 책 중에는 볼펜으로 완전 엉망으로 그어 놓은 것들도 있더라고요. 볼 때마다 참, 이게 과연 내가 한 짓인가, 싶고 --;; 막 잉크가 번져서 종이에 묻어 있고...노트에 옮겨 적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니 2016-03-15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포스트잇을 부쳐 놓는답니다 아니면 연필도 살짝 쓰고요 줄긋기나 표시 안 해두면 읽었던 책에서 갑자기 찾고 싶은 구절이나 중요한 부분 빨리 찾아야 할 때 멘붕이 오더라고요^^;;

blanca 2016-03-16 09:11   좋아요 1 | URL
포스트잇을 붙여 놓으면 다시 볼 때 좋더라고요. 살짝 옮겨 놓기도 하고... 맞아요. 저는 문제가 어떤 구절이 갑자기 막 떠오르는데 대체 어떤 책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 아주 괴롭다는 거예요. 맞아, 언젠가 이런 얘기가 있었지, 하면서 그런데 대체 어디서? 하고 물어보면 찾을 수가 없어요...

L.SHIN 2016-03-1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줄을 긋지 않는 편인데, 어떤 책은 미치도록 줄을 긋고 싶은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 마다 팬이 없어서, 해당 페이지를 외우죠.
그런데 다 읽고나서 그 외웠던 페이지는 왜 공중분해 되는 것일까요? (웃음)

오랜만이에요, 블랑카님.
익숙한 사진, 그대로라서 반가워요.^^

blanca 2016-03-16 09:13   좋아요 0 | URL
어머,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L.SHIN님 다시 돌아오신 거 맞아요? 너무 반가워요. 아, 외우신다니! 이것 또한 놀랍네요. 가장 좋은 방법인데 저는 안 될 것 같아요.--;; 반갑고 또 반갑네요.

L.SHIN 2016-03-21 16:21   좋아요 0 | URL
좋은 방법이긴 한데.. 외우고 책을 덮으면 잊어버린다니까요.. (웃음)
저도 반갑고 또 반가워요, 블랑카님.

아무개 2016-03-16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절대 팔지 않고 꼭 소장하고 싶은 책에만 박박박 밑줄을 긋습니다.
나머지 팔아야 겠다 라고 생각하는 책들은 포스트잇 사용하구요.
책장에 책이 꽉 차면 저는 죄책감 같은것이 느껴지고 숨이 막혀서
책 소장은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장 다섯칸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blanca 2016-03-16 09:15   좋아요 1 | URL
아무개님, 저랑 같네요. 저도 이게 참 제가 가진 책장을 넘어서는 책을 보면 무서운 죄책감이 엄습합니다. 제가 아주 어리거나 아주 넓은 공간을 가졌거나 하다면 책 소유가 정당화될 수 있는데... 이제 거의 삶의 반에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간소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사실 책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정말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책을 가지지 않는 것도 가지는 것도 저에게는 다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6-03-16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이라면 당연히 줄을 그어요. 삐뚤빼뚤 볼펜으로 죽죽 그어요. 하지만 읽는 책 대부분이 도서관 책이라 페이지를 메모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시 읽지 않을 책은 처분하기로 하셨다는게 마음에 와 닿아요. 저도 그래야 하는데, 아직도 솟아나는 이 욕심 ㅎㅎㅎ

blanca 2016-03-16 09:16   좋아요 0 | URL
도서관 책이 너무 좋으면 저는 참 괴로워요. ㅋㅋ 결국 도서관 책 읽고 너무 좋아서 똑같은 책을 또 산 경우가 있는데 그 책은 또 펼쳐보지도 않아서 처분해야 하나 이러고 있답니다. 생각난 김에 조만간 동네 도서관행을 해봐야 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3-1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편이고, 경제서나 잡지처럼 세월가면 낡아지는(?) 책들은 줄도치고 제 의견도 적습니다 ㅎ

그런데 저책 힘든가요? 아 읽고 싶은데 요즘 힘든것들 생략중인데 ㅠ.ㅠ

blanca 2016-03-16 09:18   좋아요 0 | URL
아, 모리군님, 이 책 좋아요. 그런데 저는 폴 오스터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솔직히 폴 오스터가 어떤 색깔의 작가인지 조금 모호했어요. 아주 개성이 뚜렷한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이제는 너무 힘들거나 지루한 책은 끝까지 안 읽기로 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잘 나가는 편이에요. 어린 시절 막상 느꼈지만 묘사하기 힘든 공통의 경험을 아주 공들여 살려내는데 그게 마치 내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 매력이 있답니다.

302moon 2016-03-1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저 책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놓았어요. 즐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책을 내놓으려고 보니까 제가 책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놨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밑줄은 안 긋고 노트에 씁니다.:)
+책을 읽고 또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면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되도록 몇 번 읽겠지 싶은 책만 사려고 노력 중입니다, 올해 3월부터 결심한!^^

blanca 2016-03-16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있어요, 형광펜 쓴 책이요.^^ 눈에 너무 잘 들어오잖아요. 아우, 그냥 맘 편하게 막 그리고 긋고 그렇게 볼까봐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장 안에 감당 가능한 책만큼만 소유하겠다는 것도 저한테는 보통 어려운 과제가 아니랍니다.

세실 2016-03-16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전 왜 모든 책에 줄을 긋는걸까요?
줄 긋고 나서 후회합니다. 굳이! 하면서요.
단순하게 살려면 책도 과감히 정리해야하는데......

도서관에 봄, 책을 봄, 미래를 봄! 요거 올해 도서관주간 표어라는데 꽤 맘에 들어요^^

blanca 2016-03-16 15:53   좋아요 0 | URL
아, 표어 너무 좋네요. 따뜻하고 꽃피는 봄날이 오면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줄 안 긋고 보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게 줄 안 그은 새 책 같은 내 책을 보는 기분이 또 묘하게 좋더라고요.

icaru 2016-03-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일본의 어떤 독서가가 책은 두번 읽어야 비로소 읽은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 읽은 인상과 시간이 지나고 재독했을 때의 그 간극이 바로 정수다! 라는 요지로 읽혔는데, 실제 삶에 적용은 요원한 일이네요. 저는요 안 읽을 책은 처분하겠다고 힘들게 결심을 하고도, 이러저러한 말들에 흔들리니, 참.. ^^

blanca 2016-03-16 15:54   좋아요 0 | URL
공감해요. 특히 서머셋 모옴의 <면도날>이 저는 특히 그래요.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워요.

like 2016-03-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밑줄긋는 대신 옆으로 줄을 그어요. ˝ (˝ 이렇게 괄호 표시를 남기는게 편하더라구요. 물론 지울수 있게 연필로..

저도 이상하게 폴 오스터 작품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 안 든다는거, 근데 밑줄얘기나오니까 밑줄 긋는 남자가 다시 읽고 싶은데, 친구 빌려주고 안 받아 온것 같기도 하고 책장에서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ㅎㅎ

blanca 2016-03-16 15:55   좋아요 0 | URL
저도 라이크님 따라 할까봐요.^^;; 아웅, 님 얘기 들으니 이 책은 그만 쿨럭, 고민 좀 해봐야겠어요. 아직 깨끗하니까요.

cyrus 2016-03-1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줄긋는 대신에 책의 중요한 내용을 체크해서 컴퓨터 문서 파일에 입력합니다. 손으로 쓰다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서 문서로 입력하게 되었는데, 이 작업도 힘드네요. 손을 자주 움직여야 두뇌가 활성화되어서 좋다고 해서 힘들어도 문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blanca 2016-03-16 15:56   좋아요 0 | URL
cyrus님은 흑, 정말 성실하시다...는 거. 읽은 책 엑셀 작업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정말 필요한 일 같은데 그것마저 안 하게 돼요. 아이폰 앱 써서 읽은 책 목록 정도만 관리하고 있는데 이것도 백업이 필요하더라고요. 핸드폰 바꾸면서 다 삭제됐습니다.--;;

북깨비 2016-03-1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볼펜도 아닌 무려 형관펜을 가지고 스윽슥 거침없이 칠해놨어요. 크게 후회는 안 하는데 그렇게 떡칠을 해놓은 책들은 친한 사람 외에는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거실에 진열 안하고 방 책장에 넣어놔요. 뭔가 제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 기분이 들어서요.

blanca 2016-03-17 13:21   좋아요 2 | URL
어디에선가 책장을 보여주는 일이 대단히 사적인 일이라는 방송을 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 보니 책을 빌려주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것 같아요.
 

나는 열네 살이고, 그녀도 열네 살이었다. 그게 우리가 만나기에 실로 마땅한 나이였다. 우리는 사실 그렇게 만나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하루키가 사회의 시스템의 맹점을 탐사하는 방식, 시선이 비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여성을 묘사하는 그 독특한 성적 판타지가 때로 불편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의 남자들은 아내나 연인의 배신을 경험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여성은 삶에 아연한 흠이나 공백을 남기지만 그녀들이 곁에 있었을 때에 차지했던 공간은 다분히 성적이다. 여자가 떠나고 남자는 성장한다. 그 성장이 한때 여자와 함께 공유했던 시간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여자가 떠나고 남긴 그 필연적 상실감과 상처 때문인지 모호하다. 그에게서 여성은 너무 가볍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필립 로스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도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솔직함과 더불어 여성을 동등한 동반자이자 존재로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하루키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을 장식한 같은 표제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십대에 만났던, 혹은 십대의 정서와 그 순수한 사랑의 교감을 간직했던 여자가 떠난 이야기는 아련한 마침표다. 하루키는 영리하다. 이미 성장해버리고 이미 사회 시스템의 각종 억압에 길들여진 사랑의 기호를 밀고 나가 도착하고 싶은 지점을 그는 간파한다. 순수하고 어리석었던 시간들의 흔적. 소년과 소녀의 사랑.

 

 

 

 

 

 

 

 

 

 

 

 

 

 

 

 

 

 

십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여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중략>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중 '십대 소녀'

 

 

폴란스의 시인 쉼보르스카는 더 나아가 시 습작을 하던 십대 소녀 시절의 자신을 불러낸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시인 앞에 선 그녀의 소녀는 낯설고 미숙하다. 그리고 그녀의 느낌은 반갑다기보다는 낯설고 당혹스러워 보인다. 어쭙잖은 확신들 속에 선 소녀 앞에서 그녀의 성장과 노쇠는 조금 안타까운 것도 같다. 그녀는 그녀의 소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거나 그리워하는 모습이 아니다. 언제나 삶의 비의를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 포박해 들어가려 했던 시인은 성장과 시간의 무게를 그 숱한 미숙한 실수들과 시행착오들의 도정을 다 같이 존중한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열정과 순수의 가치를 알긴 하지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또 다시 열네 살로 다시 기꺼이 갈 것같다. 미숙하지만 어설프지만 이미 잘못된 결론이 될 것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그 힘겨웠던 시간을 또 다시 살고 싶다. 이유는 그냥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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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마지막 단락, 저도 동감이에요.
그리고 하루키는 영리하기도 영악하기도 귀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 시절, 열 네살의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고 싶은 이유는 그냥 그러고 싶다,예요.^^
봄햇살에 속지 말고 아직 차가운 봄바람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6-03-13 13:2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오늘도 역시 바람이 너무 차요.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는데...
하루키 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쉽게 섞이기 힘든 것들이 한데 모여 있어서
알다가도 모를 작가인 것 같고 바로 그 점이 대중성을 띠는 것 같기도 하고..아직 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않아 사실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힘들기도 해요. 프레이야님도 꽃피는 봄 함께 기다리며 감기 조심하세요.^^

기억의집 2016-03-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그는 언제나 여자의 배신을 말하죠!!! 그러면서 시작되는 모험! 하루키는 문장도 좋은 작가같아요.

blanca 2016-03-13 13:24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하루키는 참 신기한 게 갑자기 `쨍`하는 문장이 막 나와요. 분명 스토리텔러적인 강점이 있는 작가인데도 문장까지 잘 잡고 있어서... 하지만 역시 전적으로 좋아하기에는 참 저한테는 무언가 찝찝한 작가입니다.--;; 여성을, 사랑을 그리는 방식이 거슬려요.

단발머리 2016-03-1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필립 로스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도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솔직함과 더불어 여성을 동등한 동반자이자 존재로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하루키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 문장이 너무 좋네요. 제가 필립 로스에 대해 느꼈던 지점, 그리고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걸 블랑카님이 꼭 찍어서 말씀해 주시니 너무 후련하고 시원해요.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여성이 `성행위의 대상`으로서만 느껴져서요. 사람 같지 않고요.
필립 로스 작품에서는 다르다는 걸 느끼는데,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저는 제 자신을 욕망의 주체인 남성으로 느껴요.
제 스스로가 느끼는 욕망으로 느껴진다는 거죠. 필립 로스를 사랑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예요.
제 자신을 너무 많이 보여줘야 해요.... ㅎㅎ

blanca 2016-03-13 13:28   좋아요 0 | URL
그죠, 단발머리님,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필립 로스와 하루키가 나란히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게 그 지점에서 엇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애정을 가지고 그 심연을 들여다 보는 건 같아요. 그런데 하루키는 분명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성차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있어요.

필립 로스는 정말 대단한 작가인데 절필을 선언해 버려서 너무 아쉬워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을 읽고 있다. 몽테뉴가 스스로의 게으름에 괴로워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다 이러고 살았구나. 생활 전반에 걸쳐 처리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고단해하고 도피하고도 싶어하고. 서른여덟에 자신만의 서재 안으로 들어와 은거하려 했던 그가 끝내 성공하지 못하는 장면도 그러하다.

 

 

 

 

 

 

 

 

 

 

 

 

 

 

 

 

 

 

 

 

갑자기 읽고 싶은 책들이 마구 출간되는 중이다.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은 시를 잘 모르는 내가 시를 시작하게 해 준 시집이다. 시인은 평범한 우리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간파하고 우리가 멈추는 지점에서 더 극한까지 밀고 나가서 어쩌면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고 그것들에 찔리는 천형을 지닌 선택된 자들인 듯하다. 그래서 시어에는 어떤 존귀함이 있다.

 

반드시 또 시가 읽히고 시를 쓰는 일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기를 올 것임을 믿고 싶다. 시를 포기하고 남는 자리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밀려온다.

 

 

 

 

 

 

 

 

 

 

 

 

 

파스칼 키냐르를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솔직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형형한 눈빛의 노작가의 인터뷰 내용은 꼭 알고 싶다. 생각해 보면 그런 작가들이 많다. 정작 그 사람이 낸 책은 읽어보지도 못하고 그 사람 자체에만 관심이 가는... 아마 폴 오스터도 그럴 거다. 김영하가 팟캐스트에서 전문을 읽어 준 그의 단편 하나만이라도 읽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머리숱이 많아 머리를 다 늘어뜨리면 붕 뜨곤 해서 항상 묶고 다녔었다. 머리숱 좀 줄었으면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어느새 내 앞에 와 있다. 이제 반묶음을 하지 않아도 머리가 뜨지 않을 정도로 머리숱이 줄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는 일년이 어린 시절 생각하던 일년의 무게의 십분지 일도 되지 않는다. 한 달은 하루 같다. 시간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달라진다. 더 가볍고 더 빠르고 더 절절하다. 영원히 읽을 수도 없다. 다 읽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제서야 좀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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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0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숱으로도 제 노화를 실감해요. 처음엔 머릿결로 노화를 실감했는데요. 그토록 찰랑이던 머리가 이젠 힘없는 머리가 되었더라고요. 최근에는 새치도 생겼어요. 최근에는 노화를 여러가지로 실감하는데, 그러면서 저 역시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느껴요.
저는 파스칼 키냐르는 두 권인가 읽었는데, 쉼보르스카를 성공하지 못했어요. [끝과 시작]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가 종국엔 팔아버리고 말았어요. `반드시 또 시가 읽히고 시를 쓰는 일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기를` 저도 바라는데, 그런데 저는 시를 여전히 잘 읽지 못하겠어요.

blanca 2016-03-08 14:09   좋아요 0 | URL
정말 나이에 따라 시간에 때한 인상, 느낌이 확연히 달라져요. 거울 앞에 서면 요새 좀 묘한 느낌이 들어요. 조금씩 천천히 얼굴에 시간이 보여요. 싫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고...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시를 써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시간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6-03-08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카락에 힘이 빠져야 어른이 됨을 실감하게 된다는 말 동감, 하고픈 일이 많은데 늘 체력이 발목을 잡았고 앞으로 더 하겠죠 ^^

blanca 2016-03-08 14:10   좋아요 1 | URL
흑, 갑자기 서글퍼집니다. 아주 묘하게 야금 야금 나이가 몸을 먹어가는 것 같아요.

cyrus 2016-03-08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가 희끗해져도 어른이 다 된거죠. 검은콩을 많이 먹어야합니다. ^^

blanca 2016-03-08 14:11   좋아요 1 | URL
에잇, cyrus님은 젊잖아요! ㅋㅋㅋ 그러고 보니 검은콩 먹은 지가 너무 오래 됐네요. ㅋ

cyrus 2016-03-08 20:12   좋아요 1 | URL
콩이 여성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여성호르몬 생성에 효과가 있습니다. 남자가 검은콩을 많이 먹으면 탈모를 방지할 수 있어요. ^^

에이바 2016-03-0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쉼보르스카 좋아해요! 파스칼 키냐르에 대한 관심도 비슷해요. 세상의 모든 아침 읽었는데 원어로 읽으면서 곱씹어야 하나,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크게 와 닿는게 없어서요... 철학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이번 악스트는 구입해야겠어요. ㅎㅎ 머리숱, 시간... ㅜㅜ 페이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공감합니다...

blanca 2016-03-09 10:03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시인 노년의 사진도 다 참 `그녀답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파스칼 키냐르는 언젠가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른 작품으로 만나면 또 다시 친해지기도 하더라고요.^^;

기억의집 2016-03-10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숱... 정말 고민이죠. 저는 이제 파마를 해도 힘이 안 생겨서 파마를 하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머리칼도 너무 많이 빠져 젊었을 때 숱많은 사진 보면... 저의 친정엄마가 젊을 땐 머리카락이 돼지털같이 뻣뻣하고 굵더니.. 나이 드니 어쩔 수 없구나 하시더라구요. 블랑카님 그냥 탈모약 드세요. 저는 샴퓨니 먹는 거 다 해봤는데, 판토가가 젤 효과 있었어요. 지금도 복용중~

츠바이크 좋아요~ 예전에 그의 소설도, 사람 탐구 들도 읽었는데... 안 읽으니 까 먹더라구요!


blanca 2016-03-10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머리털이 엄청 두꺼웠어요. 남들의 세배의 숱이라고 할 정도였고요.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머리숱이 많겠구나, 착각했는데, 흑, 애 둘 낳고 나니... 그 어떤 것보다 제 머리를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영원한 건 없더라고요. 저희 친정 엄마는 제 나이를 듣고 계속 놀라세요 ㅋㅋㅋ 딸 나이 먹는 게 너무 실감이 안 나시는 듯... 아, 츠바이크 너무 좋아요. 왜 다 완성 못하고 죽음을 택했는지...정말 본인 말마따나 성급한 사내 맞아요.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살고 보고 듣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도피나 휴식으로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읽는 일은 나에게 위로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차마 읽어나가기 힘든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그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때로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읽으려 했다.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려고도 했다. 누가 읽으라고 숙제라고 종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멈추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도저히 멈추지 못하고 계속 괴로워하며 끝까지 밀고 나갔다. 이 차마 전하기도 힘든 슬픈 가족의 유랑기와 그것의 그 비참한 말로를, 그것도 그것을 직접 겪은 막내 아이가 자라나서 회고하는 목소리는 구슬픈 만가였다. 비단 그 아이의 사형수 형을 중심으로 죽고 흩어지고 사라져 버린 가족의 회고담이 아니라 이것은 결국 인간이 가족, 정의, 질서라는 외연 아래 숱하게 놓쳐 버리고 왜곡하고 묵과하고 외면해 버리는 것들이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슬픈 예증이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그런 죽음이 되풀이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기 위해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 마이클 길모어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독실한 몰몬교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여자는  아버지뻘의 정체가 불분명한 사기꾼 남자를 만나 미전역을 유랑하다시피 다니며 아들 넷을 낳는다. 늙은 아버지는 습관처럼 아들들을 때리고 그 앞에서 아내를 폭행한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서 선물 포장 리본을 풀며 따뜻하게 익은 칠면조 고기를 먹는 헐리우드 영화 속의 행복한 아이들과는 달리 길모어 집안 아이들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친구를 때리고 마약에 중독되고 감옥을 드나든다. 아버지가 육십이 넘어 태어난 막내 아들 마이클은 유일하게 감옥을 드나들지 않아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이 책의 저자가 된다. 사실 마이클은 길모어 집안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태어난 막내이기에 위에 세 형들이 겪은 그 비참한 경제난과 아버지의 학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감이 있다. 그래서 때로 그는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는 소외감을 느낀다. 특히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형 게리는 감옥에서 출소하여 자신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주려 했던 몰몬교 외가가 있는 유타주로 돌아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사형 집행을 종용하여 1977년 부활된 사형제에 의하여 잔인하게 총살을 당하게 된다. 저자 마이클은 <롤링 스톤>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언론인으로 졸지에 살인자이자 사형수의 동생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미 이러한 과정은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묘사되었다. 십수 년이 흐르고 연락이 끊겼던 맏형과 재회하고 그에게서 숨겨진 잊혀진 가족사를 찬찬히 짚어가며 마이클 길모어는 가슴 깊이 가라앉아 있던 숱한 상처와 눈물의 기록을 하나 하나 꺼내어 놓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때로 경직되고 보수적이고 가차 없는  몰몬교의 피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남편에게 학대받고 아들 둘을 먼저 죽음으로 떠냐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걸핏하면 떠나고 때리고 외면하고 체념하는 데에 익숙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매를 맞으며 증오와 복수심을 배워야 했던 형들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의와 만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결말로 치닫는 비가다. 남아있는 형제들 마저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가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악운과 저주의 늪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댄다. 맏형 프랭크와 막내 마이클은 그렇게 남아 가족의 이야기를 복기하는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불확실성의 세상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한다. 인간이란 연약하기 짝이 없는 허울 밑에서 선량해지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악행들을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시도된다.

 -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 떠올랐다. 그도 가족사를 통하여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흐르는 악한 본성의 극복 가능성에 그가 돌연 갖다 놓은 '사랑'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던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마지막 말은 이 무모한 사랑의 언어와 또 만나고 만다. "그래도 아버지란 존재는 늘 남아 있겠지."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은 하나의 삶을 완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두려운 일이다. 문이 닫히면 그 안에서는 한 생을 직조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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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6-03-08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리뷰는 언제나 탁월합니다. 캬, 하는 감탄이 나오죠. 특히 제가 부러운 건 글 앞부분입니다. 시작을 참 멋지게 하십니다. 글구...님이 쓰신 글 앞부분을 읽다보니 옛 추억이 떠오르더군요.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갔는데, 레일을 달리는 무서운 열차를 타자는 우리의 제안에 한 친구가 반문합니다. ˝왜 돈내고 무서워야 해?˝

blanca 2016-03-08 14:13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친구분 얘기는 바로 저의 얘기네요. ㅋ 저는 놀이공원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사람이에요. 친구들 다 즐겁게 타는데 저는 너무 무서워서 가방을 들고 아래에서 구경하던 기억이 나요.

단발머리 2016-03-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공원에서 핫바 사먹고 커피 마시고 기념품 구경하고 놀이기구 안 타고 집으로 오는 사람, 여기 하나 추가합니다. ^^

blanca 2016-03-21 17:48   좋아요 0 | URL
왜, 돈 주고 그 무서운 걸 타야 하는지 ㅋㅋ 문제는 이제 애가 크니 놀이공원 가서 바이킹 타자고 하네요. 듣기만 해도 어지러워요.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진지한 깨달음은

 

빵을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케이크를 이야기해 빈축을 샀다고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기도 하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늘 운명에 의하여 쓰러진 자"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가 로코코의 여왕이라 명명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장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최고와 최악만을 몸소 구현한 인물이다. 인생에서의 성공이라는 척도가 지금 자본주의의 그것으로 한정된다 하더라도 그녀는 최고를 누려봤으며 파멸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 가장 극악무도하게 운명의 손아귀에서 형상화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다면 그 극한의 마침표를 찍은 것도 그녀의 삶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려내는 마리의 삶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모두의 기대를 상회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그녀의 이야기의 만가의 대목에 이르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도 그가 어떻게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신화, 오해의 휘장을 벗겨내고 인간에 밀착하여 그 내면의 심리, 감정, 욕망을 세밀하게 언어로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는가의 능력의 지평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진실과는 너무나 먼 것이었다.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 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p.10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범했다. 위대하지도 그렇다고 비열하거나 간악하지도 않은 하지만 자신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것들의 댓가를 고려하지 못하는 둔감함에 굴복했을 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녀가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주고받은 편지를 자주 인용한다.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딸의 아둔함과 무절제함을 간파하고 걱정하여 몇 번이나 그러한 우려와 충고들을 했고 심지어 측근을 파견하여 멀리 떨어져서도 제대로 훈육하려 애썼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딸의 개과천선도 비참한 말로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성장통은 혁명의 압력이 왕가에 직접 가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녀의 불행이 그녀를 결국 제대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음을 간파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통해서 자신이 학습했던 그 수많은 가치들이 이 평범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지대하게 주어진 물질적 풍요로 타락일로를 걸으려 했던 한 여인이 어떻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 앞에서 그것을 수긍하고 마침내 그것을 박차고 더 높은 경지로 뛰어오를 수 있었는 지에 대한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삶을 통해 어떻게 단련되며 타락하거나 침몰하지 않고 고귀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를 제시해 준다. 그녀의 사치행각은 일부였고 억지로 파리로 끌려가 유폐되며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최소한의 불빛조차 빼앗겼을 때 그녀가 어떻게 동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비극들을 감수하고 죽음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었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제 미래 세대와 역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자신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고 자신을 단두대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혁명이 달성하려 했던 명분의 뒤안에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 순간부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렇게나 마리아 테레지아가 한탄하며 되뇌었던 "도대체 넌 언제 너 자신이 될 거냐!"라는 어머니의 탄식에 응답하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호사가들의 입방정은 없다. 좀 빈약하더라도 진위가 분명한 자료들만으로 슈테판 츠바이크는 사치스러운 인형을 한 명의 평범한 어머니로 사랑하는 남자의 가문의 문장을 새겨놓은 반지를 감옥 안에서까지 끼고 있었던 여인으로, 마지막에는 역사에 남겨질 위대한 여제의 막내딸로 살려 놓는다. 그 틈새에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그 내면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고찰이 더욱더 풍요롭게 이야기들을 낳는다. 특히나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스웨덴 백작 페르센과의 이야기는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환상이라 할지라도 결국 우리가 꿈꾸는 불멸의 가치와 만나 빛난다. 그녀가 추락할 때 이 남자는 전면에 등장한다.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 버린 지점에서 숨어 있던 사랑은 걸어 나온다. 그녀가 사라지자 이 선량했던 미남자는 냉정해지고 불우해지고 비관적이 된다. 그녀를 위해 죽지 못했던 날짜는 자신이 마침내 죽은 날짜와 만나 드디어  완성된다. 시종일관 담담했던 문장들은 이 둘의 사랑 앞에서 흥분하고 떨린다.

 

누구나 운명에 의하여 농락당할 수 있다. 표면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성장이나 그 인간의 내면의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국면은 달라진다. 진정한 자기가 되는 것은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가장 평온하고 안정되어 있을 때가 아니다. 불행은 아프지만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암초임을 그는 이야기한다.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 되고 만다. 그게 삶임을 슈테판 츠바이크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이 언젠가는 한없이 고귀해질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그가 삶과 인간에 절망해서가 아니다. 그의 말들은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는 포기하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극단의 지점에서도 날아오를 수 있는 그 잠재력을 이미 보아 버린 다음에야 순전한 포기와 절망은 절대 뒤따라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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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 2016-03-0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blanca 2016-03-03 18: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Jeanne_Hebuterne 2016-03-14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판정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던 것 만큼이나 탁월한 자기변론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어요. 불굴의 정신을 보았다는 느낌이랄까요. 탕플 이후에야 이 사람은 진실한 자기 자신을 본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면 어제와 오늘이 같은 다른 이들보다 이 사람은 여러모로 압축된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행운을, 그럼에도 그 압축된 삶이 하필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프리즘을 지나쳐야만 했다는 점에서는 불운을 지녔던 게 아닐까. 그저 안타까웠어요. 츠바이크의 말대로 당시 보통의 귀족 딸로 태어났더라면, 아니면 그저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훨씬 더 평온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요.

blanca 2016-03-14 14:58   좋아요 0 | URL
쟌느님은 며칠 전에 이 책을 읽은 저보다 더 세세하게 깊이 있게 내용을 잘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 저에게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세상을 보는 그 숱한 주어진 시선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 만큼 충격이었어요. 항상 사치스럽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여인이 삶의 비극 앞에서 보인 태도와 말들이 츠바이크의 말처럼 삶의 불행 그 자체가 사람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