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선생님, 그런 생각은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 일찍 하면 안 되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쯤에 세상놈들이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바보나 하는 짓일세. 그래서는 절대로 지혜에 도달할 수 없네. 서두르면 안 되지. 우선은 남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그러다가 마흔 살쯤에 미심쩍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고, 쉰에서 예순 살 사이에 이제까지의 생각을 수정한 다음, 백 살에 이르러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 확신에 도달하면 될걸세.

<중략>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는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존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그러다가 적절한 순간에- 미리 하면 안 되고- 그 사람 역시 바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일세.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담담하게 죽을 수 있을 걸세.」

 

-움베르트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

 

이 기호학자이자 중세 연구학자로서 <장미의 이름>을 쓴, 살아서 언어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이제 백 살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는 노작가의 이러한 재기발랄한 이야기에 오랜만에 혼자서 책을 읽다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이제 아직 다행히 마흔이 안 되었으니 아직은 남들이 나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조금 있다 미심쩍다고 생각해도 된다니, 다행이다.

 

어렸을 때에는 세상에는 온갖 정의의 사도가 난무하고 결국 해피엔딩인 이야기가 메아리치다 이윽고 당면하는 사실의 조각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선과 정의가 대세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앞으로 나이와 함께 나를 밀고 간다. 움베르트 에코가 '미심쩍다'를 마흔 언저리에 둔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마흔인 사람이 아직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전면 긍정하는 모습도 눈물의 계곡이라고 모두를 의심하는 것도 그리 적절하게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아기가 자꾸 이 책의 사진을 보고 '아빠'라고 부른다.--;; 얘야, 할아버지를 보고 아빠와 닮았다, 하면 아빠가 얼마나 슬프겠니. 안 그래도 늦둥이인데 움베르트 에코와 벌써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히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움베르트 에코 할아버지가 위대한 성취를 많이 이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아직 아빠는 세상을 조금은 긍정할 수 있는 나이라고 에코 할아버지가 말했단 말이다.

 

무심코 넘기는 온갖 사소한 불편, 부당함을 한번 비틀어 보는 그의 시선이 날카롭고 유쾌하다. 뭐, 이런 것까지, 싶다가도  우리는 이미 너무 모든 것들을 익숙하게 넘겨 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단단한 껍질 아래 진짜를 숨기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바로 움베르트 에코 덕택일 것이다.  

 

이 짧은 글들은 익살스럽지만 촉촉하거나 부드럽지는 않다. 다분히 인문학적이고  진지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말미에 덧붙인 움베르트 에코의 고향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지 여느 로맨스 소설의 저릿한 결말과 닮아 있을 정도이다. 그의 고향을 이해하려면 '안개'를 이해하여야 한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늘다는 '는개'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와 함께.

 

다행히도 알렉산드리아 평원에 안개가 끼지 않는 아침 무렵에는 우리가 <스카르네비아>라고 부르는 는개가 내린다. 부연 이슬과도 같은 이 는개는 초원을 환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애면서 우리의 뺨을 가볍게 적셔준다. 안개가 끼었을  때와는 달리 시야는 지나칠 정도로 훤하지만, 풍경은 충분히 단조롭고 모든 것이 미묘한 잿빛을 띠기 때문에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시간이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가 지방 도로 혹은 운하를 따라 곧게 뻗은 오솔길을 달려야 한다. 스카프는 두르지 말아야 하고, 재킷 속에는 가슴이 젖지 않도록 신문지를 찔러 넣는 것이 좋다.

-p.427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 스카프는 두르지 않고 그 충분한 단조로움을 만끽하면서. 세상은 아직 바보로 가득 차지 않았다는 희망과 함께 하는 나이가 다 소진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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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5-07-0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고 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알게 될거라`는 친구의 말에 이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전혀 모르겠던데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그 친구와 만나 말했어요.
네가 그렇게 말해서 읽었는데, 정말 모르겠더라고 말이죠.
그 친구는 본인이 저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더군요.

늦동이를 키우고 계시군요.
아직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일은 늘 힘든 일이죠.

blanca 2015-07-06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방법이 안 나와 있어서 ㅋㅋ 그래도 정말 한번씩 어찌나 기지가 번득이던지. 이래서 움베르트 에코구나, 싶더라고요. 늦둥이는 지금도 옆에서 우유 쏟고 물휴지로 닦으며 노네요 ㅡㅡ

파란놀 2015-07-0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둥이한테 아빠는 어떤 사람이려나요~ ^^

낮잠을 잔 아이들이 오늘 따라 열 시가 되어도 안 자려 하네요.
@.@
아이들보다 제가 먼저 곯아떨어져야 할 듯한 하루입니다......

blanca 2015-07-07 12:26   좋아요 0 | URL
큰 아이와 터울이 여섯 살이나 나니 여러 애환이 생기네요. 건강관리 잘 해서 든든하게 오래 지켜 주고 싶어요. 아직 두 돌도 안 됐는데 요새 낮잠 안 자려 해서 전쟁입니다.

2015-07-1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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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살, 그때 나는 보잉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착륙 전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고 이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기억의 방아쇠가 되어 와타나베를 저격한다. 그 절절하고 생동했던 것들이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아연해져 그는 그 세계를 다시 복원한다. 스무 살이 되려던 그 찰나. 모든 '나'가 모든 '너'와 대부분의 '그것'을 기꺼이 이겨버리는 그 세상으로 걸어들어간다.

 

와타나베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자살해 버린 친구의 여자친구 나오코가 있었다. 나오코는 굉장히 아릿하고 아련하게 그려진다.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그런 예쁘장한 여자애라기보다는 무언가 모든 남자들이 첫사랑의 이미지로 이상화하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한없이 마음을 타게 만드는 그런. 반면 와타나베가 '연극사' 수업을 함께 듣게 된 미도리는 대학교 교정에서 그렇게 친구로 만나 서서히 '친구'와 '연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아주 현실적인 여자친구다. 영화 와타나베는 이렇게 스무 살을 그 여자 아이들과 함께 걷고 또 걷는다.

 

공교롭게 나는 모두가 이 책에 열광할 때 설렁설렁 대충 이 책을 넘겨 보며 굉장히 야하고 이상스러운 책이구나, 라고 단정지어 버리고 어딘가에 던져버렸기에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시기를 아쉽게도 놓쳐 버렸다. 와타나베가 서른 일곱이 되어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어딘가로 다 사라져 버린 그 나날들을 하나 하나 펼쳐 말려 놓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등장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내가 싫었던 그것들은 여전히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성적인 판타지가 가미된 소녀들, 이 글을 쓸 당시에 이미 하루키도 삼십 대 후반이었음에도 삼십 대의 여자 레이코를 주름살이 그득한 이미 늙어버릴 대로 늙어버린 여자로 줄곧 묘사한 점 등은 이미 노년기로 접어든 하루키가 다시 돌아볼 때 어떻게 느꼈을까, 싶은 좀 고약한 마음? 

 

그럼에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청춘의 교본으로 이 책을 칭송하고 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 지에 대한 하루키만의 오직 하루키만이 할 수 있었던 많은 성과가 확연히 노르웨이의 숲 안에서는 빛난다. 무엇보다 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그 수많은 음악들. 그 음악들을 다 차례차례 녹음, 편집해서 그 음악이 나오는 대목마다 들어보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밝은 달빛 아래 와타나베가 소파에 드러누워 들었던 빌 에번스의 피아노 연주의 청량감과 레이코가 기타를 끌어안고 연주햇던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 <미셸>, <섬싱>이 어떻게 나오코를 진정으로 애도했는 지 십분 이해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작가가 이야기하는 젊음의 대화들이 겉돌거나 짐짓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때 바로 그 장소에서의 생생함을 띠는 것은 철저히 스무 살로 회귀하는 지점에 성실하게 근접하려는 작가의 노력과 그 마음, 그 기분, 그 시선에 충만하게 잠길 수 있는 하루키의 능력 덕택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런 대화들, 이런 느낌들에 젖을 수 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맥락없던 유치했던 그럼에도 한바탕 웃어댈 수 있었던 그 치기어린 이런 얘기들.

 

"내 헤어스타일 좋아?

"정말 좋아."

"얼마나 좋아?"

"온 세상 숲의 나무가 다 쓰러질 만큼 멋져."

p.432

 

"나를 얼마나 좋아해?"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p.440

 

가장 빛날 때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젊을 때 삶의 반대편에서 죽음은 역설적으로 골똘히 그것을 응시한다. 그래서 청춘, 그 찰나 같은 아쉬움은 죽음을 떠밀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루키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했고 우리를 애달프게 청춘으로 돌려놓고는 그것의 종말을 가차없이 사방에서 떠밀려 오는 죽음의 파고 속에서 선포한다. 죽음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대극점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것도 아니라는 것, 삶 자체가 죽음 속에서 이지러지고 태어난다는 점, 이러한 추상적이고 아픈 당위성은 하필 가장 아름다운 그 날들과 어우러져 빛살처럼 내리꽂힌다.

 

그러한 이야기들. 앞에서 나의 스무 살을 추억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하고 너무나 틀에 박힌 결론. 다시 뒤돌아서 달려간다고 해도 나는 다시금 그때처럼 천만 번 실패하고 실수하고 우왕좌왕일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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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0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된다는 것은 하루키도 동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네요. ㅎㅎㅎ 인도 그림책이었는데 나중에(!) 찾아서 알려드릴게요. 아마 제가 예전에 이 책을 제 서재에 올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암튼 이젠 기억이~~~ㅠㅠ 중년에서 노년으로 진행하고 있나봐요~~~ㅠㅠ
암튼 저도 하루키의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만 읽은 터라 블랑카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은 꼭 읽고 싶네요!! 음악이 그렇게나 많이 나온다니!!!

blanca 2015-07-03 17:26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안 그래도 하루키가 컴퓨터 부팅될 동안 동화책 읽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도 같아요 ㅋㅋ 아, 음악의 향연이에요. 클랙식도 많고.. 다 찾아 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주 매력적으로 잘 끼워 넣었어요.

2015-07-18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레타 섬의 꽤 큰 마을에 사시던 내 외조부에겐 매일 저녁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혹 갓 도착한 나그네가 없나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길쭉한 터키식 장죽에 불을 붙이고는 이 나그네(이 양반에게 이제 음식 값을 치를 때가 된)를 내려다보며 지엄한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말하소!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무스토요르기 영감님?

자네 직업이 무엇이며, 자네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자네가 본 도시와 마을이 무엇무엇인지 깡그리, 그렇지, 깡그리 이야기해 주게. 자, 말을 해보소.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 

 

 

 

 

 

 

 

 

 

 

 

 

 

 

<그리스인 조르바>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 뜬금없이 그냥 막 이 대목에 매혹당한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나그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지, 모조리 깡그리 다 말하기를 청한다. 그리고는 노인은 앉아서 또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말하소! 는 요청이 아니라 흡사 호령 같다. 언어가 사람과 삶 전체를 온전히 보존할 만큼 촘촘한 그물이 될 수는 없지만 빠져나가는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떤 지향은 삶의 표현이고 소통이니 언제나 실패하는 꿈일지라도 빛난다.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로 했다. 스탠이 첫번째였다. "갈 길이 멀어." 딘이 서론을 늘어놓았다. "마음껏 즐겨.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마음속에 떠오른 건 전부 말해 봐. 그렇다 해도 다 얘기할 수 없을 테니까. 느긋하게 해, 느긋하게."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중 

 

 

 

 

 

 

 

 

 

 

 

 

 

 

 

 

 

그러고 보면 '성스러운 바보' 닉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닮았다. 언뜻 모든 금지, 형식, 금제를 탈피한 일탈의 화신 같지만 결국 둘이 가 닿으려는 것은 가장 날것의 핵심이자 실재이다. 가장 진지하고 무모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의 외할아버지가 청했던 나그네의 이야기는 이제 닉이 친구들과 공유하는 가장 개별적이고 특수하면서도 본질적인 청춘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간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 내가 생각한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꼈던, 느끼는 모든 것을 언어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지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가능한 지점에 가 있는 시선이 강타하는 곳이 이야기가 피어오르는 곳이다. 삶이 서사화되는 지점에서 삶과 생명의 한계는 조금이라도 스러진다.

 

정말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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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6-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이야기도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특별할 것 없다해도, 일상다반사! 좋은하루 보내세요^^

blanca 2015-06-29 13:5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갑자기 이 대목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다 찾아서 옮겨 봤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다시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지금 경제 위기도 그렇고,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희선 2015-06-3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다니고 보고 들은 것을 다 말하기 어렵죠 저는 말할 게 있어야 할 텐데, 하겠군요 무엇이든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 말한 적 있는지... 없는 듯하네요 말하는 게 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겠네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편하지만, 이것도 고르는군요


희선

blanca 2015-07-01 12:42   좋아요 0 | URL
어릴 때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고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고 믿어요.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이게 얼마나 불가능하고 요원한 지점인 지를 깨닫게 되면 그게 바로 나이듦이 아닐런지,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래서 그리운가 봐요.

수이 2015-07-0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에 밑줄 쫙 긋고 갑니다.

blanca 2015-07-01 12:39   좋아요 0 | URL
제가 요새 말이 고픈가봐요--;;
 

삶의 한 시기, 일탈에 관대해지고 욕망에 솔직해지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돌아올 수도 돌아와서도 안 되지만 나이들수록 더 생생해지는 그리움을 휘감고 뒤돌아보는 정경이 된다. 소설가 김연수는 서른 이후에도, 마흔 이후에도 이렇게 살 줄 알았다면 얼마나 여유로운 20대를 보낼 수 있었을까, 라고 <청춘의 문장들+>에서 이야기했지만 뒤늦게 찾아올 깨달음과 신중함을 장착한 청춘은 진정한 의미에서 청춘이 될 수 없다. 내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새털 같은 나날들이 결국 늙음과 죽음으로 귀결될 것임을 절절하게 인식하고서야 어찌 마음껏 욕망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뒤도 안 돌아다 볼 것처럼 이별할 수 있겠는가. 청춘은 무지하고 무모해야 제맛이다.

 

 

 

 

 

 

 

 

 

 

 

 

 

 

 

 

 

 

 

그리하여 나는 해가 져 버린 미국의 어느 밤 낡고 망가진 강둑에 앉아 뉴저지 위로 펼쳐진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육지가 갑자기 믿기지 않을 만큼 크게 부풀어 태평양 연안까지 이어지고, 모든 길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중략>

누구도,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버려진 누더기처럼 늙어가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아버지, 늙은 딘 모리아티도 생각하면서,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p.197

 

 

<길 위에서>는 작가 잭 캐루악이 길 위에서 보낸 자신의 청춘을 다시 살아내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어떤 관습, 어떤 금기, 어떤 경계 들은 가뭇 없고 찰나 안에 가두어진 존재의 불꽃만이 휘황하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신비로운 바보, 잃어버린 형제 같은 딘 모리아티가 나타나면 작가의 분신인 샘 파라다이스는 다시 떠나고 또 떠난다. 미대륙을 횡단하며 뚫고 지나가는 강렬한 흔적들 갈피마다 이미 나이들어 버린 샘 파라다이스는 역설적으로 죽음과 늙음과 헐벗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 젊음은 사실 온전한 것이 이미 아니다. 이미 나이든 시선이 관조하는 청춘의 덧없는 아름다움은 눈물겹다.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 샘 파라다이스의 아버지와 이미 몰락해 버린 딘 모리아티의 아버지를 또 다른 내일의 '나'로 애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의 여정과 길이 오버랩 된 자리에 남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청춘이 이야기하는 나이듦, 몰락, 작별, 죽음이다. 가벼움으로 위장한 깊이가 가닿은 곳이 바로 이 이야기.

 

스무 살, 친한 친구에게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생각했던, 생각하는, 생각할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니 이야기는 해도 해도 줄지 않고 아무리 많이 말하여져도 들어져도 갈급했다. 다음 날이면 나는 그 아이를 또 만나 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그 시간 만큼 더 늘어난 이야기의 간극을 줄이고자 또 이야기를 시작하고 듣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샘 파라다이스와 딘 모리아티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그 아이들은 모든 것을 소통하고 나누고 싶어했다. 그 불가능한 별을 향해 쏘아 올려진 그 무모한 시도들과 노력들은 청춘과 함께 스러졌다. 이미 그럴 것을 알고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아프다. < 길 위에서>를 아쉬움 없이 편안하게 읽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것이 끝나버릴 것을 알고 듣는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청춘은 그런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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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6-2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마흔을 넘어도
쉰 줄이나 예순 줄을 지나도
우리 마음에 푸른 바람이 분다면
우리는 늘 청춘이지 싶어요.
언제나 새로운 길로 씩씩하게 나설 수 있는~

blanca 2015-06-29 08:49   좋아요 0 | URL
육체의 노화도 그렇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 현재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마음이 노화의 징후인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

Nussbaum 2015-06-2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상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의 20대 초반은 나름 기억할 것이 많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 주사바늘을 꽂으며 열심히 책장을 넘기던 그 기억이 무릇 파랗게 다가오네요 !

blanca 2015-06-29 08:50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안 그래도 저 이 책 너무 늦게 읽은 것 같아요. 이십 대 초반에 읽었더라면 더 흠뻑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moonnight 2015-06-2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매우 충격으로 느껴졌던 책이었어요@_@; <길 위에서> 라고 하면 우선 두근두근하는 이 마음.;; blanca님의 글로 다시 만나니 참 좋습니다.^^

blanca 2015-06-29 08:52   좋아요 0 | URL
저도요, 달밤님. 지금까지 접해 오던 소설들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어요. 논픽션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어떤 틀이나 형식이 해체되는 느낌이 신선했어요.

에이바 2015-06-2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은 무지하고 무모해야 제맛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그거예요. 조금 더 무모했더라면,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 비트 제너레이션의 글을 두고 중2병이라고들 하던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비트닉에게는 매력, 날 것의 무언가가 있어요. 저도 이 책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blanca 2015-06-29 14:01   좋아요 0 | URL
중2병 ㅋㅋ 재미있는 조합이네요. 그러기엔 좀 많이 늙은 나이가 아닐런지. 언제 한번 이렇게 살아 보겠어요. 어른들 말씀 잘 안 들어도 좀 넘어가 주는 시기, 어느 정도 누려야지요. 하지만 참 모순적인 게 제 딸이 저처럼 열심히 논다면 머리 좀 아플 것 같아요--;

희선 2015-06-30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나이 들수록 여러가지를 알기도 하지만,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잘 안 되면 어쩌나, 잘 못하면 어쩌나... 나이는 청춘이 아니라 해도 마음은 청춘이면 좋을 텐데, 그렇게 살기도 어려울 듯하네요 하지만 철은 잘 안 들 것 같습니다 이런 말도 있군요 철들면 죽는다는... 어느 때는 지금 아는 걸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기도 하잖아요 지나간 시간 그리워하는 것이 나쁘지 않지만,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좀 낫겠죠


희선

blanca 2015-07-01 12:40   좋아요 0 | URL
네, 나이들수록 겁쟁이가 되는 면이 많아요. 저는 이제 수영도 자전거 타기,도 배울 수 없게 되어버린 건가, 가끔 좌절합니다. 때로는 무모하기도 한 면이 있어야 좀 삶이 다이내믹해질 텐데 아쉬워요.^^;;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고 차마 언어로 다 담아내기 힘든 참혹한 인간성의 추락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를 살게 한 것도 결국 인간이었다. 이탈리아인 민간 노동자 중 한 명인 로렌초가 대가 없이 나누어 준 빵, 배려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참으로 읽기 힘겨운 소설이었다.  이 이야기 전에는 영문도 모르는 체 자신의 땅에서 끌려나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박탈 당하고 동물처럼 부림을 당했던 흑인 노예의 역사적 사실들은 사실 개별성이나 구체성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의 말미에 덧붙인 이야기처럼 그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해나 공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형제보다 더 사랑했던 동료가 자신의 눈 앞에서 불타 죽고, 입에 재갈을 물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생생하게 절절하게 떠올리고 이해하고 아파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너무 광활하고 길조차 없어 차마 독자라는 권리를 가지고 발을 들여놓기도 힘든 것이었다. 모성마저 노예 제도 안에서는 사치였던 한 여인이 너무 짙게사랑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고통의 편린들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아팠다. 흑인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가 가지는 가치는 그 아픈 역사 속에 사라져 간 숱한 익명의 삶들에 이름을 붙이고 감히 무화되지 않게 붙잡으려는 그 처절한 노력 속에 있었을 것이다. 자식이 다시 백인 주인에게 붙잡혀 동물처럼 특징을 관찰당하고 관리되는 그 대장 안에서 익명화되고 계량화되느니 부모의 권력 남용이자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 해도 생명을 끊으려 했던 어미의 애닳는 심정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수용소 안에서 짐승 같이 짓밟혔던 프리모 레비가 인간 로렌초에게서 받은 관심과 배려로 삶을 포기하지 않았듯 여기에서도 만삭의 몸으로 주인에게서 도망나온 흑인 노예 세서를 도와 준 백인 소녀 에이미가 구원이다. 토니 모리슨의 언어들은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다채로운 빛깔처럼 그 어색한 조합이 이루어 낸 아름다운 성과를 담아낸다. 푸른 고사리의 포자들에 둘러싸여 백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은 흑인 여인의 넷째 아이를 받아내며 당돌하게 묻는다. 이 아이한테 나를 이야기해 줄 거냐고.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 인연은 아이의 이름으로 남는다. 덴버. 에이미 덴버. 프리모 레비가 인간 로렌초를 절규했듯 세서는 딸의 이름에 그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인간의 몸짓을 각인한다.

 

 

 

 

 

 

 

 

 

 

불타 죽은 남자 노예가 떠나 보낸 여인은 사랑의 결실을 품고 있었다. 모든 가없는 절망을 성토하고 남은 것은 토니 모리슨의 애가였다.

 

 

"그 여자는 내 마음의 친구야. 그 여자는 나를 하나로 모아줘.

조각난 나를 모아서 제대로 맞춘 다음 돌려주지. 얼마나 좋은지 몰라. 마음의 친구인 여자가 있으면."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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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6-2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블랑카님. 블랑카님의 글도 좋고 마지막의 인용문도 기가 막히네요. 너무 좋아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blanca 2015-06-21 10: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눈이 부신 책입니다. 어쩌면 문장 하나, 하나가 이렇게 영롱한지 몰라요.

파란놀 2015-06-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땅에서 붙잡히면서 죽고,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너면서 죽고, 노예로 부려지면서 죽고, 얻어맞거나 학대받으면서 죽고... 참으로 많은 흑인이 노예로 뒹굴면서 죽어야 한 이야기는 차마 글이나 말로 담아내지 못하겠지요..

blanca 2015-06-21 10:53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맞아요. 어떤 인종, 민족이 핍박 받은 역사를 어찌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해나 공감도 어쩌면 만용이겠지요. 어제 흑인을 난사한 백인 아이를 용서한다며 오열하는 그들을 보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희선 2015-06-2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만이 희망이다, 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피부색이나 문맹이라는 것 때문에 백인이 흑인을 사람이 아닌 물건처럼 다뤘지만, 모든 백인이 그런 건 아니겠죠 그 안에는 그 사람들도 사람이다 생각하고 자유를 갖게 해주기 위해 애쓴 사람도 있죠 이런 이야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군요 백인 여자아이가 보여준 친절 때문에 살기도 하는군요 사람은 아주 작은 것으로도 살자고 마음먹죠 아이를 낳게 도와준 건 작은 일은 아니지만... 누구한테든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싶네요


희선

blanca 2015-06-22 13:30   좋아요 0 | URL
네. 사실 같은 피해자나 약자의 입장에서 돕는 것은 공감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지만 가해자 집단에서도 용감하게 돕는 행위를 한 사람들이 실제 있었더라고요. 인간으로 절망하고 인간 덕분에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게 또 사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15-06-2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내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한 책 중의 하나가 이 책이거든요.
blanca님 리뷰 읽고 나니까, 꼭 읽어야할 것 같아서,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그러면서 약간 떨리고 그러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제가 님의 리뷰를 감탄하며 꼼꼼히, 아쉬워하며 천천히 읽는다는... *^^*

blanca 2015-06-26 11:1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이 책 분량도 많고 여러 가지로 쉽게 못 읽겠다, 생각했는데 웬걸요, 일단 재미있고 서사의 폭이 깊고 넓어서 정말 흠뻑 빠져 금세 읽었어요.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덤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