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가고 2015년이 온다. 1996년을 제외한다면 나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한 해는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난 해를 정확히 기억해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누군가 2001년을, 혹은 2009년을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시간이란 인위적인 구획으로 가두는 것이 불가능함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는 머뭇댄다. 정말 2015년이 오고야 만다.

 

서른 살이 되는 나를 1996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마흔 살이 되는 나를 2014년에는 현실감 있게 지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 내가 쉰도 심지어 여든도 될 수 있음을 안다. 이제 나는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로 간다.

 

2014년,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아침을 유모차를 굴리며 학부형이 되는 시간들을 나름 힘겹게 보내고 결혼기념일 한 학교의 한 학년 아이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거짓말 같은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창 예쁜 짓을 하는 아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더욱 더 그 부모들 마음에 감히 감정이 이입되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 게 세상사구나, 싶어 사는 게 더 한층 두렵게 느껴졌다.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더 육아서에 집착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좀 더 나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안심이 되고 어떤 방향등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많은 육아 관련 책 중 이 책은 나에게 베스트다. 무엇보다 어떤 교조적인 가르침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제 아이를 키우는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 더 나아가 그 인터뷰에 응한 부모들에 대한 강한 공감, 친밀감, 지지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공명하게 한 점이 감동적이었다. 유아기, 어린이, 사춘기를 거쳐 성장해 가는 아이들에 따라 변하는 부모의 역할과 자리에 대한 느낌, 감정 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우리가 부모가 되어 부모로 산다는 것이 우리의 긴 생애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까지 나아간 부분은 이 책의 대단원이다. 좋은 부모로 사는 것보다 좋은 인간으로 삶을 잘 사는 것과 그것을 접목시키는 지점에서 읽는 이의 지지를 끌어낼 수 밖에 없는 책.

 

소설은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재미있게 읽은 것이 많았다. 특히 브론테 자매의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시골의 목사관의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나 그런 다이나믹한 상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는 지, 정식으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닌데 문장들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 지, 요절한 자매들은 소설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 같았다.

 

 

 

 

 

 

 

 

 

 

 

 

 

 

 

 

찾아보니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톨스토이의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읽은 기록이 있다. 지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유아기부터 소녀 시절을 거쳐 이제 애거서는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힘든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아직 유명 작가가 되기 전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십 년이 훌쩍 지나 영국 여왕과 만찬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전업 작가가 되리라고도. 나도 지금으로부터 사십 년 뒤 내가 어떤 모습일 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여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그 때도 건강하게 읽고 쓰고 까페라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지금 같은 정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상식이하의 끔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도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으니 그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지금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너그러워지고 사랑이 많아지고 편견이 적어졌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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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0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블랑카님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많이 배웠어요~~~. 늘 충실하게 글쓰는 모습을 배우고 싶고요,,,2015년도 블랑카님의 서재를 즐겨 찾으며 공감을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가족이 늘 평안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5-01-01 16:57   좋아요 0 | URL
비비아롬모리님, 서재에 돌아오셔서 생생하고 즐거운 일상 남겨주어 저에게도 행복 전염이 되어 고마워요.
비비아롬모리님 가족도 또 저희 가족도 항상 건강하고 더욱 즐거운 이벤트 많이 만드는 2015년이 되어요.^^

2015-01-0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5-01-0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한 모습을 갖는 일은 생각과 달리 꽤 어렵더라구요. 요즘 들어 자주 느끼죠. 블랑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_ 더 그득한 사랑 누리시기를 바랄게요.

blanca 2015-01-03 15:08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더 즐거운 읽기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저는 아직 멀었어요. 계속 실수하고 반성하고 그러며 나이 먹는 것 같아요.

2015-01-0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03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더..배워야 한다니..또 고쳐야 한다니.
한참..멍해서 종일 부지런 떨어 집안일을
했어요....더는 새로울 게 없다고.
저는 어디서 그런 마음이 든걸까요ㅡㅡ
이건 책 속에 있을 답이 아닌 듯 합니다.
하긴..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책엔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하는 인생의 정답 따위..없어요.그렇지요?. 또 다른 길이
있을 뿐... 음..은사님..하핫 자주 뵈야지.좀 괴롭혀 드리고..약도 좀 올려 드리고요.부쩍
노염이 많아지시더라고요..흐하하..세월의 힘이지..합니다.더 자주 가까이 뵈야지.
blanca 님..단꿈..꾸시고 또 뵈요..^^

blanca 2015-01-03 15:1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집안일 얘기하셔서 돌아보니 제 주위는 --;; 새해 벽두부터 속에 탈이 나
이것저것 다 의욕 상실이네요. 저는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나마 정답이라고
여기던 것들도 또다른 시각에서 다른 답이 보여요. 이게 지각의 한계일까요?
안 그래도 며칠 전 저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는 꿈을(미생 부작용일까요 ㅋㅋ) 꿨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힘들었던 상황을 너무 잘 풀어가고 있어서 일어나고 나니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장소] 2015-01-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합니다.저는 불면증이 심해요.잠을자도
보통 악몽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누구와 곁을 같이해 잠을 자는 것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되곤합니다. 아직 새해..잠든 시간이래야 잠시 앉아 꾸벅 존 정도..그 사이 다녀간 손님도 역시 지독하게 ..이건
좋은지 않좋은지..ㅎㅎㅎ반복해서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여러버전으로 제가 한꿈에서 수도 없이 지독하게 죽고 .죽고 또 죽고..뭐,
그럽니다..이젠 아..또 올게 왔구나..할정도..입니다.하도 여러버전으로
다양하게 죽어봐서요.
인생을..신입으로 다시 사는것.과 죽었.다
사는 것..뭐가 더 끔찍할까요?
저는 이쪽도 blanca님 쪽도 그닥 반갑진
않아요.하핫..
그래도 blanca님 꿈끝이 기분 좋으셨다니..
참 다행이고 기쁩니다.^-^

blanca 2015-01-04 10:11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아웅 힘드시겠어요. 저도 물론 악몽도 꾸긴 하지만 좋은 꿈 어쩌다가 한번 꾸고 나면 그 여운이 참 달콤하더라고요. 저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어요. 내용도 다니나믹하게요.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꿈없는 밤이 많아지네요.

[그장소] 2015-0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뭐 벌써 연장전 돌입해서요..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이 예민한 상태..
집중 못하고있죠.^^ 그래도 점점 꿈이 줄어
든다니 희망이 저...멀리 있긴 한거네요.!
비소식있더라고요..오후던가,내일즈음..감기 조심하시고요..기지개 켜고 시작할까요?^^

blanca 2015-01-05 19:2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많이 풀렸더라고요. 마무리하는 시점에 댓글을 달게 되네요.
그장소님도 오늘 하루 잘 마무리하셨기를 바라요^^

[그장소] 2015-01-0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 맛있게 드셨나요? 날씨 풀린 듯..했죠. 그치만 비 올거같아요...잠자리 드시기까지 내내 평안이 함께..
그럼.또 뵈어요*^^*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때로 이런 상상을 한다. 겨울밤이었으면 좋겠고 아주 따뜻한 실내, 밤새 나는 듣기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분위기. 살아온 이야기도 괜찮고 읽은 책 이야기면 더욱 좋을 것같다. 졸면서도 듣고 잘 듣고 있다고 이따금씩 되도 않는 이야기를 덧붙여도 되는 그런 정경. 하지만 되도록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졸렬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 하는 바람을 십분 충족시키는 그런 책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선별한 소설 일곱 편을 둘러싼 그들의 이야기다. '빨책방'은 정말 책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책 전문 팟캐스트다. 매번 챙겨듣지는 못하고 가끔씩 관심있는 책을 다루었을 경우 골라 듣는 정도였다. 영화평론가라지만 독서의 스펙트럼이나 깊이가 여느 작가 못지않은 이동진의 매끄러운 진행과 유려하지 않은 듯한 말투 뒤에 슬며시 작가다운 촌철살인과 성실하게 언어를 차곡차곡 쌓고 표현하는 김중혁의 착한 반응 들은 때로 두 사람의 친밀감에서 비롯된 재치 있는 위트와 더불어 정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한껏 주는 방송이다. 서문에도 나오지만 '독서'는 분명 아주 사교적인 행위는 아니다. 아니, 고독한 일이다. 이것에 소통이 덧대어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분명 기대이상이다. '읽는 일'을 마치 여러 사람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친밀감을 나누는 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이 방송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미처 읽지 못한 책도 아니 취향의 문제로 영원히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다. 지루하지도 낯설지도 않게 이 두 사람은 다독여준다.

 

특히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그저 주어진 대로 읽기에 급급해 소설의 깊이와 완성도에 분명 경도되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나에게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사랑과 속죄의 드라마를 복기하며 제대로 깊이 있게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좋은 소설을 너무 늦게 읽어 배신감까지 느꼈다는 중혁 작가의 말, 만약 이 소설을 아직 안 읽었다면 여기서 이 책을 덮고 무조건 읽기부터 하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소설의 다양한 층위와 더불어 작가 이언 매큐언의 이력, 영화의 한계 들에 대한 이야기는 <속죄>를 미처 시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시작해버린 사람들에게도, 이미 끝낸 사람들에게도 더 풍요로운 읽기를 가능하게 할 것같다.

 

두 번째로 언급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 어떤 추천사보다 화려하다.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 중에서 이 정도로 통찰력 있는 소설도 드물 것 같다."는 이동진의 첨언은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는 독법의 제시와 더불어 당장이라도 이 책을 구하러 뛰어 나가고 싶게 만든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회한의 정서'로 돌아보는 과거로 마지막에 거론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샐린저 평전>을 읽은 중혁 작가가 작가의 은둔을 고집했던 생애와 종국에는 그를 그러한 고립으로 몰아 넣어 버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함께 이야기한 것은 작품이 결코 작가의 삶에서 떼어내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또다른 읽기의 지평을 열어준다.

 

소설과 영화의 완성도 모두 높았다고 평가되는 <파이 이야기>는 각각 작가와 감독의 색채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그 미묘한 차이와 색깔, 강점을 눈에 보이듯 보여준다.

 

읽지 않은 책이라도 다 읽어버린 책이라도 무방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도 약간의 스포일러만 감수한다면 전혀 낯설지 않게 데면데면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고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 층위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말 그대로 참 좋다. 에세이만 읽은 하루키에 대해서도 '소설도 어디 한번'을 가능케 하는 저력을 갖추었으니 믿고 따라가기만 해도 참 유쾌한 시간이었고 할 수 있다.

 

다 차치하고 이렇게 진지하게 이렇게 장시간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지면이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노골노골해지는 그러한 위안이 되는 책. 겨울밤에 읽으면 따악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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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29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저는 신형철의 팥케스트를 간간히 듣고 있을 뿐 빨간 책방까지는 진입을 못했는데...그냥 공허한 공간에 사람의 소리가 노래가 아닌..목소리가 필요할 때
좋더군요. 나즉 나즉 한 것은 그것대로 매력이고요..언젠가 청취..하겠습니다.잘 읽고 배워 갑니다. 포근한 새 해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ㅡ(^-^)v

blanca 2014-12-29 12:48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저는 아직 신형철의 팟캐스트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맞아요. 라디오에서 그냥 나직나직 사람 목소리만을 듣고 싶을 때 이런 책 관련 방송이 참 위로가 되지요. 덕분에 포근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세실 2014-12-29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정치적 상황 건너뛰고 읽으면 완벽한 러브스토리죠. 저도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 뛰었어요^^
<속죄> 읽고 싶네요.

blanca 2014-12-29 12:5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는 쿤데라 책은 <불멸>만 읽어봤어요.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어요.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렇고 세실님도 그러시고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니 ^^;; 좀 걱정이 되네요. <속죄> 정말 강추입니다! `소설은 죽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작품 같아요.

섬사이 2014-12-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의 빨간 책방, 저도 매번 챙겨 듣지는 않지만, 가끔 지루한 집안일을 하게 될 때 켜놓고 듣곤 해요.
얼마전에 <다섯째 아이>를 읽고나서 빨간 책방을 들었는데,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과 다른 시각을 알게 되어 놀랍고 기뻤어요.
<속죄>, 꼭 챙겨 읽어봐야겠네요. ^^

blanca 2014-12-30 14:53   좋아요 0 | URL
아, <다섯째 아이>도 다루었군요. 아무래도 방송이 분량이 있고 그냥 흘려듣기는 힘들어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 해서 제대로 다 듣지 못해 아쉬워요. 섬사이님, <속죄> 꼭 읽어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2014-12-3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하지 않다"와 "불행하다"가 동의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온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질투심이 없어졌다,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별것 아닌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좀 밀어 둘 수 있지만 그것이 사소한 일들 모두를 쿨하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인간이 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살아온 만큼 더 살면 노인이 된다. 지금은 어떤 능선을 따라 내려오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천상병 시인은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회고할 수 있게 늙었지만 나에게 비친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하게 느껴지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비치고 나를 감싸던 안온한 포근함은 점점 더 하나의 착각처럼 느껴진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비극이 일어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기본 원칙은 수시로 무너지는 풍경, 그것이 내가 곧 사는 곳이다. 이제 더 이상 바깥은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춥지만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귤을 까먹으려 읽고 또 읽었던 '쿠오레' 같은 세상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엄혹한 현실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 불평등과 부조리, 착취와 굴종만이 삶의 조건인 것일까?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한 느낌은 늘 따듯했다. 비록 늘 지쳐 있었지만 어딘가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와 다정한 엄마, 자신이 누군가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뿌듯한 안심...... 그것은 마치 새 둥지처럼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은 다 사라지고 없는 걸까? 왜 모든 게 가혹하고 싸늘해진 걸까? 그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천명관 <퇴근> 중

 

맞다. 이런 느낌인 것같다. 미래의 사회상을 그린 극단적이고 어두운 이 <퇴근>이라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세계의 나락에서 건져 낸 이 비참한 가장의 회고는 사실 미래의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때로 너무 슬프고 너무 아프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종종 가지는 안온하고 따뜻한 그 안정감의 보루만은 명확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구체적인 풍경 때문이 아니었고 어린이만이 세상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그 아주 편협하고 자그마한 영역의 울타리가 주는 본질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중년이 되어간다는 이러한 싸늘한 느낌은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는 위로,가 분명 주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한국작가가 쓴 단편을 찾아 읽지 않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밀도 있는 찰진 서사가 뚫고 들어오던 내면의 벽이 더 두꺼워진 탓도 있을 테고 어느 순간 한국의 단편에도 어떤 '찡'하던 총기가 감하고 매력이 흘러 넘치던 전성기를 치고 내려오는 지점에서 좀 머뭇댔던 탓도(나만의 생각?) 있었던 듯 싶다. 하지만 김훈, 김연수, 은희경, 성석제, 김영하, 김언수, 천명관이 쓴 단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같았다. 그것도 이럴 줄 알았어,가 아닌 역시 산타 할아버지는 늙지 않는구나, 싶을 만큼의 재기가 여전히 반짝이는.

 

김훈의 노량진 고시텔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의 이야기는 역시 그의 정묘한 문장, 묘사 들과 어우러져 생생한 하나의 르포 같았다. 사실 나도 여기에서 재수를 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는 낯설지만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사육신의 묘지의 이야기와 공무원 시험 과목 중 국사의 쪽집개 식 강의가 펼쳐지는 풍경과의 교차는 마치 우리의 삶과 어떤 죽어 있는 이론, 상식의 대조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필요에 의해 가난한 계약 동거를 마치고 쿨하게 찢어지는 '나'와 '영자'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담담하지만 어떤 '찡'한 구석이 있다.

 

김연수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여전히 김연수적인 아름다움과 또 거기에 덧대어진 약간의 권태, 하지만 은은한 여운이 길게 남는 이야기였다. 한국의 포크 여가수가 일본에 공연 초대를 받아 간 사연, 또 그 사연이 서술되는 방식인 이미 끝난 사랑에게 보내지는 이메일, 자신은 미처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성의가 익명의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는 감동, 김연수의 시선은 여전히 별을 향해 있어 반갑기도 하고 안심이 된다.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는 섬뜩했다. 마트에서 우연히 아이를 잃게 되고 그 아이를 찾아 헤매며 흘러가는 십년 남짓한 세월이 파괴하는 일상, 그 일상을 다시 뚫고 들어오는 실종된 아이의 귀환이 행복이라는 마침표 대신 더한 비극과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의 진폭은 소설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앓던 이가 빠진다,는 표현. 어쩌면 우리는 어느새 '앓던 이'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미결로 남아 나를 규정하고 내가 그것을 하소연하는 데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민했던 모든 문제가 풀리고 남는 것은 명쾌함과 행복이 아니라 어떤 황망함과 또다른 상실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그러한 예리한 간파.

 

천명관의 <퇴근>은 놀라웠다. 회사에 정식으로 출퇴근하는 정규직들은 극소수의 상류층으로 고착화되고 대다수는 '담요'라는 너절하고 초라한 '환유' 아래에서 하루 하루 힘겹게 생존을 위하여 투쟁해야 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일말의 진실은 사실 우리가 지금 오늘 애써 외면하는 지대에 있다. 미 모든 역겨운 일들의 중심에는 사실 사람마저 도구화 부속화시키는 천민자본주의의 횡행이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제 욕할 정부마저 슈퍼리치들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들이 철저히 돈의 논리에 종속되는 황량한 풍경을 눈에 보이듯 그린다. 천식에 걸려 암시장에서 약을 구해야 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해매던 무능한 아버지가 어린 시절 집을 나갔던 아버지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압권이다.

 

토마 피케티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 터라 그와 함께한 좌담 자리의 기록이 반가웠다. 자본주의의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그의 대안적 관점은 실현 가능성이나 한계 등을 차치하고라도 오늘날 누구나 느끼고 있는 물질에 의한 삶과 생명의 소외,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하나의 출구를 진지하고 젠체하지 하고 모색하는 움직임이라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자주 인용하는 발자크의 소설에서의 인물들의 '돈'을 매개로 혹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반가웠다. 발자크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 '돈'에 시달렸던 '돈'에 집착했던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지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 같다. 기회가 된다면 토마 피케티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게 결국은 삶을 기록하는 데 끝내 실패하는 행위잖아요. 중요한 건 실패하면서도 끝까지 기록한다는 거죠.

-리뷰 좌담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의 곁에서' 중 양재훈 

 

이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 손에 만져지는 것들만으로 효율성으로 수익성으로만 무언가를 인정하고 평가하는 세태에서 실패하는 게 당연한 무용한 시도들을 밀고 나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가지는 무게와 가치, 아름다움이 있다. 응원을 보내주고 싶고 오랜만에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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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네 살 어린 테오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형제는 서로에게 무척이나 각별했다. 둘에게서 오고 간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고흐는 죽어갈 때에도 동생의 품 안에 있었고, 형이 죽고 육개월 뒤 테오도 형 옆에 묻히게 된다. 고흐는 생전에 그 위대함을 인정받지 못했고 경제적인 능력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가 절망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데에는 동생 테오의 지지,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 두 형제가 사랑과 신뢰로 현실을 이겨나가는 그 처절함과 절절함이 녹아 있는 편지는 시간의 풍화에도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고 서글프다. 간질성 발작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물감값을 요구하는 형, 그림 한 점 팔리지 않는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형에게 아낌없는 신뢰와 존중, 존경을 보내는 테오의 모습은 오늘날 남아 있는 고흐의 위대한 작품들 못지 않게 그 어떤 현실을 뛰어넘는 장대한 미덕이 있다. 그것은 위대한 예술 못지 않은 과업이다.

 

 

 

고흐의 삶은 신산 그 자체였지만 그에게는 이런 보물 같은 동생이 항상 곁에 있었으니 따사롭다. 형의 강직함을 선망해 자신의 아들에 그 이름을 붙여준 동생에게 형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 조카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현실로 돌아와서 가난하고 무능력하고 정신병에 때로 충동적인 언사를 내뱉는 형에게 자신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동생이 한결같이 지지와 지원을 보낼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 없는 일이다. 이 지점에 또 하나의 비슷한 상황, 이야기,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카미유 클로델은 위대한 조각가 로댕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던 모델이자 연인, 조각가였다. 그녀는 천재였다. 점토로 이런 저런 형상을 빚던 여섯 살부터 그녀의 영감, 열정, 재기가 번득였던 시기는 찰나였다. 그녀는 후에 잘 나가는 외교관에 시인, 극작가로 노벨상 후보에도 회자되었던 폴 클로델의 누나이기도 했다. 남매 역시 젊고 각자의 열정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서로에게 각별했다. 함께 시인 말라르메의 화요 모임에서 각 분야의 저명한 예술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고 카미유의 조각과 폴의 시는 서로를 독려하고 위로하고 지지했다. 하지만 그녀가 스물네 살이나 많은 이미 위대해질 때로 위대해지고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조각가 로댕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숨어 내조하고 그의 아이를 낳아 길렀던 로즈 뵈레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에 카미유가 이별을 결심하고 점차 파멸해 가는 모습 앞에서 폴은 자신의 꿈이었던 세상을 누비는 자유를 누리는 대사관 영사직으로 부임하고 누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데 일종의 방관, 동의를 보냄으로써 남매는 예전의 결속에서 풀려나게 된다. 누이는 유배되고 남동생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사랑에도 빠지며 대조되는 삶을 살게 된다. 카미유는 사랑했던  남동생을 잊지 못한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점점 더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 사회적 명망을 얻게 됨으로써 또한 자신만의 어떤 편견, 아집으로 덧쒸워진 종교에 탐닉함으로써 누이에 대해 더욱 더 비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나 집에 돌아오고 싶어했던 누이는 병세가 호전되어도 가족 중 누구 하나 그녀를 잠시라도 외출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려 하지 않고 외면한다. 그녀는 삼십 년간 갇혔고 삼십 년간 흙에 손도 대지 않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죽음에 이르고 무연고 무덤에 안장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남동생의 이름이었다.

 

 

 

전기작가 도미니크 보다는 폴 클로델이 말년에 한 인터뷰에 분개하고 중립성을 버린다. 카미유와 폴의 교차하는 삶을 충실히 그려내었던 이 섬세한 작가는 폴이 자신의 삶을 충실한 것으로 누이의 그것을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실패한 것으로 규정짓는 데에서 그가 노년을 통해 이루어낸 생의 과업들이 보이는 측면에서는 다복한 가정, 정치적 외교적 입지 구축, 작품들의 평가 등으로 장식되었을 지 모르지만 어떤 독선, 아집, 냉정함 등으로 사실 오만한 편견으로 얼룩졌음을 간파한다. 그의 마침표는 누이에게서 멀어져 갔다. 누이가 끝까지 동생을 찾으며 그리워했던 모습은 비록 폴이 유일하게 누이를 가끔이나마 찾아갔던 가족으로 남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과 슬픈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이 어두움에 묻혀 있었던 한 위대한 예술가의 사장을 방지하는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폴의 자손들이 손을 보태게 된다.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던 카미유의 후원자 외젠 블로의 이야기는 맞았다. 그녀는 어둠의 장막을 걷고 걸어 나온다. 어느 순간 그녀의 모든 상실, 체념, 분노, 원망의 집약체였던 로댕은 늙어가면서도 그녀를 잊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의 전시 공간을 부탁했다. 생전 외면되었던 카미유의 작품들은 이제 자신들이 있을 곳을 천천히 찾아 간다.

 

고흐, 테오, 카미유, 폴은 누구라도 처할 좌표이자 상황이다. 또 어떤 지점에 서도 필연적으로 상황이 가지는 속박의 힘은 대단할 것이다. 누군들 폴처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테오처럼 할 자신이 있을까, 카미유처럼 자신의 열정, 일을 놓아버릴 위기 앞에 담대할 수 있을까. 이 넷이 그리는 삶의 궤적은 좀더 극단으로 치우쳤을 뿐 현실의 그것과 멀지 않다. 고흐와 테오가 저 머나먼 곳의 별을 향한 시선을 공유했듯, 카미유과 폴이 함께 바라봤던 별이 스쳐 지나간 지점에서 멀어져 버린 피붙이들의 모습은 또 우리의 삶이 교차하는 그것과도 닮아 있다. 더 위대한 더 아름다운 그 무엇보다 더 실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눈앞의 그것들에 침잠할 때 삶은 조금 더 편해지겠지만 조금 더 역겨워진다. 나는 그래도 아직 고흐와 테오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더 위대해 보인다. 어떤 특수성의 한계로 폴의 선택을 합리화한다고 해도 지금은 역겹고 실망스럽게 느끼는 대로 놓아두려 한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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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1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느 델베가 쓴 카미유 평전이나 카미유의 편지글을 모은 <카미유 클로델>도 읽어보면 좋습니다. 만약에 카미유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로댕의 실력을 능가하는 조각가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카미유의 삶을 그린 오래된 영화도 보고 싶군요.

blanca 2014-12-19 13:57   좋아요 0 | URL
cyrus님, 언급하신 책 미처 몰랐어요.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자벨 아자니가 나왔던 영화 어렸을 때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요. 그 영화가 카미유를 세상 밖으로 내어 놓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이 책에도 나오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제대로 봐야겠어요.

qualia 2014-12-19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 님 윗글 읽고 뭉클했네요.

blanca 2014-12-19 13:59   좋아요 0 | URL
저는 고흐가 그림 못지 않게 읽기와 쓰기에 보인 열정, 깊이가 참 놀라웠어요.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남동생을 임종 직전까지 찾았다는 카미유의 이야기도 너무 가슴 아팠어요. 요새는 참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꼭 필멸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다 비참한 일면을 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책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대단히 솔직한 사람을 대면하면 그 미덕의 무게만큼 다소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태여 의식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나열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이나 의견까지 요구한다면 더더욱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시간, 장소는 어느새 어떤 공모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미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책이다. 플롯이 있고 창작 의도가 명료한 장대한 이야기들을 써서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핵심에 가닿으려 하는 그 지난한 노력이 주도하는 문학은 그 앞에서 절멸하고 만다. 데이비드 실즈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의 주인공이자 매개체였던 구순이 훌쩍 넘었던 노장 아버지도 그 필멸의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는 이 말더듬이였던 그래서 도리어 더 언어에 천착했던 작가는 그 '죽음'이라는 간명한 화두 밑에 모든 것들을 허무화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어차피 죽는 우리들은 왜 그것을 항상 의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대척점에 놓인 삶이 지속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분명한 명제를 가끔씩 놓쳐야 하고 이따금씩 이러한 글쟁이들 앞에서 또 그 잊어버렸던 슬픈, 어쩌면 다행인 마침표를 환기한다.

 

이 문학적 자서전은 문학에 대해 별 기대가 없는 아니,이제는 그 기대의 몸짓조차 허무로 환원해 버리는 편린들의 무작위적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를 흔들었던 수많은 작가들의 경구들이 편재하고 이제 정말 솔직히 삶과 문학의 기만을 응시하는 명민한 작가들의 조언을 적극 차용한 저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실즈는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그에게 있어 조지 부시는 그의 부정적 기질들이 구현된 존재이고 몰락한 타이거 우즈는 그 모습에서 은근히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시기심의 가운데에 있다. 대학 시절 그가 벌인 그 어설픈 연애들은 가장 못난 구석까지 가감없이 머리를 들이밀고 조이스의 단편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이제 그 비슷한 것을 쓰는 데에 더이상 흥미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 짜임새 있고 유의미한 척 하는 것에 대놓고 역겨움을 표시하는 오십대 후반의 "우리 자기 자신에게만 쌓이게 되는" 그 어떤 나이를 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시각이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정말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빠져나가는 길은 더 깊이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은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다.

-p.112

 

열네 살 아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으로 읽다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한 어머니를 둔 그런 사람은 언제나 드잡이해도 백전백패할 것 같던 아버지와의 애증으로 '죽음'을 '존재'를 응시했었다. 이제 그는 삶을 향해, 그 삶의 환각을 향해 그리고 그 삶의 구조화를 꿈꾸는 문학을 향해 냉소적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망과 허무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더욱 의기소침해지게 된다. 거짓말을 과장을 허구를 연기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그래서 건조하지만 무게가 있다. 당자에게는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 때로는 청자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는 다음에 또 그와 만날 날을 꿈꾸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존재의 방점'이 있기 때문에. 일말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외면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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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이 궁금했는데 더 궁금해지네요. 다음주에 주문할 때는 반드시 이 책을 넣어야 겠어요.

blanca 2014-12-13 11: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은 뭐랄까, 기존의 책에 관련된 책과는 조금 달랐어요. 어떤 고정된 틀이나 선입견을 해체한다고나 할까요, 그 시선이 좀 불편할 수는 있는데 흥미로웠습니다.

icaru 2014-12-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게도 주문한 이 책이 도착했는데요~ 화제의 글에 님 글이 떠서 득달같이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혼자만의 책 읽는 시간과 같은 맥락의 책일거라고 짐작했는데,,, 음.. 정면으로 삶을 응시할 거 같은,, 바람부는 적막한 사막에서 존재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느낌 들거 같네요..헛,,, 혼자 멀리갔나요?? ㅎ

blanca 2014-12-13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icaru님은 이미 시작하셨겠지요? 저보다 더 저자와 잘 소통하실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제가 기대했거나 예상한 방향과 좀 어긋나서 중간부터는 좀 헤매고 그랬답니다. 저는 아직 어떤 진실이나 실체와 마주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나 봐요.

Jeanne_Hebuterne 2014-12-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늘 가장 밖으로 오픈된 것이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how are you?` 같은 것이오.

그럴 때는 배운 대로 fine, thank you. 가 나와야 하는데 살아있는 게, 꼭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블랑카님의 다가서기 쉬운 길잡이를 접하고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달달 외운 그 공식과도 같은 대화문이 떠올라요.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이어 이번에도 이러한 진리를 다시 끄집어들고 나왔군요. 늘 그랬듯이, 그것이 가장 자명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blanca 2014-12-15 19:48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영어권에서 무슨 인사처럼 상대 기분을 알아내려 하는 게 참 허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분 안 좋다고 이야기할 것도 아닌데 ^^;; 말이에요. 아, 누구나 죽는다,는 게 너무나 확실한 명제지만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을까요? 너무 선뜩해요. 나이가 들수록 삶에 생명에 자꾸 연연하게 되네요. 차라리 어렸을 때는 그 명제를 더 겁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제 이런 함박눈도 영원히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맞으면 더 기쁘기도 하고 더 슬프기도 해요, 쟌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