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주변에 책 이야기를 할 사람은 몇 없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 아이 친구 엄마 한 명. 그래서 어제 친구가 네루다의 시를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 살짝 뭉클해졌다. 사실 이제 아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학습 진도, 영어, 학원 등으로 화제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그림을 참 잘 그렸던 친구의 이야기에 나는 당장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그러지 말고 내가 깜짝 선물을 해 주면 어떨까, 싶어 당일배송으로 주문했다.

 

 

 

 

 

 

 

 

 

 

 

 

 

 

 

 

 

 

물론 칠레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에게 정말 편지를 전해 준 배달부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픽션이니 만큼 네루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과 네루다의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네루다의 말년과 죽음은 픽션의 체를 거르고 핍진성 있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을 어렵게 하나 하나 있었던 팩트 중심으로만 요약하여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따뜻하고 대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의 슬픈 말년은 그 어떤 발언보다 작가가 어떻게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하나에 대한 유효한 대답이 될 것이다.

 

더불어 미술 선생님한테 종종 야단까지 맞았던 나의 형편없는 실력 앞에서 그저 감탄과 경탄만을 자아내던 친구의 그림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언젠가 다시 부활하기를 소망하며 나도 즐겁게 보았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도. 일러스트가 참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때 그 친구와 아주 많이 친하지는 않았다. 나는 좀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었고 그러한 구석이 친구한테 부담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드문 드문 연락이 닿고 만나기도 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남녀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때 찹쌀떡처럼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와는 오히려 소원해져서 소식도 모른다. 사람은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변화와 변전을 겪을 지 모르면서 시간의 풍화를 겪는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님의 수필집도 그랬다. 나는 박완서의 열렬한 팬이고 그 분의 소설과 에세이를 완독하고자 했었다. 돌아가셨을 때는 참으로 슬펐다. 그런데 사십 대에 쓰셨을 에세이들은 노년의 그 분의 모습과 많이 달라 있어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오늘 읽은 서재분의  글에 너무 공감이 갔다. 속된 말로 까칠한 모습이기도 했고 대단히 솔직한 내면의 어떤 어두운 곳에 대한 모습에 대한 고백도 놀라웠다. 일본의 어느 서점 바닥에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칭찬하는 관용적이고 열린 할머니의 모습이 사실 잘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그래서 글이 가식으로 흐를 위험에 대하여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글에는 삶이 그 사람의 기질이 생각이 욕망이 감정의 잔재가 비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늘의 글이 그 사람의 전부이거나 고정된 그 사람에 대한 결론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도 사람도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 핵심은 끊임없이 그 사람의 삶처럼 변화하고 진화하고 때로는 졸아들기도 한다는 것.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있는데 주인공 필립은 이제 겨우 스물 언저리다. 그의 좁은 소견, 세상에 대한 판단, 오독, 오해들이 몸의 다른 작품의 문제들과는 조금 다르게 굉장히 투박하게 그려진다. 조금이라도 나이들거나 보이는 기준에서 초라한 사람들에 대하여 한창의 나이인 사람이 느끼는 경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에 대한 회한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이 소설은 서머싯 몸의 성장과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니 주인공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면서 나의 젊음들과 어리석음, 실수들을 부끄럽게 회고한다. 어렸을 때 안타깝게 생각했던 나이와 현실에의 발디딤이 지금은 나의 것이 되었다. 지금 전부라고 여기는 것들도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 지금 가차없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도리질하는 것들도 어쩌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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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참여하면 책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블랑카님의 아이들도 책을 좋아한다면 나중에 커서 엄마와 함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blanca 2015-02-06 07:5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저도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하고 싶어요. ^^

Nussbaum 2015-02-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미술선생님은 아마도 blanca님에게 뭔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좀 확신이 들어요.. ㅎ

그리고 blanca님의 계속 이어지는 책읽기와 그 책읽기를 통해 반영된 여러 감정들을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5-02-07 15:23   좋아요 0 | URL
그래요? ^^;; 저는 지금도 참 불가사의한 면이 그리기에 있어요. 중학교까지는 잘 한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때 그렇게 추락할 수가 있는 것인지 ㅋㅋ 거기까지였던 게지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좀 가혹하다 싶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신 선생님이 고맙기도 합니다. 하기 힘든 이야기잖아요.
 

이제 아홉 살이 되는 딸아이가 가까스로 정리 습관 좀 잡아가려는 찰나, 태어난 동생의 집안 어지르기 신공은 나날이 일취월장이다. 어디에선가 숨겨 놓은 면봉 하나 하나 다 꺼내어 흩어놓기, 옷장에서 가방, 옷 다 끌어내려 내동댕이치기, 없어져서 찾아 보면 좌변기에 수건을 빠는 센스까지 보여주신다.

 

집안은 난장판, 정갈하게 정리된 집에서 읽고 쓸 날은 멀었다. 참 이상한 괴벽이 생긴 게 그럴수록 정리에 관련된 책과 정리용품을 사 모으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너무 어지러우니 내가 꿈꾸는 깔끔하고 정리된 공간에 대한 염원은 커져만 가고 '수납'의 노하우만 알면 만사형통일 듯한 환각에 빠지는 것이다.

 

 

 

 

 

 

 

 

 

 

 

 

 

높은 집값과 한정된 주거 면적 때문에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데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수납 노하우에 관련된 책이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들의 집은 '나의 집'과 천양지차다. 어쩌면 물건들 사는 센스도 남다른지 흩어진 장난감도 색채와 모양이 조화를 이룬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정리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착수하는 작업은 정리함 사재기다. 그런데 막상 정리함이 오면 그 정리함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아이들은 정리함에 머리를 박고 끌고 다니며 더 가열차게 집을 어지른다.--;;

 

<깔끔 수납 인테리어>는 단순히 정리에 대한 노하우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물건과 공간에 대한 가치관도 은연중 읽을 수 있다. 정리와 공간에 대한 나름의 정비된 철학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그들은 공간과 그 공간을 무단칩입하며 점거하는 물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들을 통제하고 간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물건'에 있어 어떤 가격이나 상황과의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싸니까, 그냥 지금 여기 파니까, 사들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정말 마음에 꼭 맞는 물건이 나오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한다. '소비'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단순히 정말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긴요한 동반자적 지위가 '사물'에 부여되니 그 사물의 자리는 정갈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 물건도 그러하다. 좋은 물건을 써봐야 물건을 선택하고 소유하는 데에 대한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육아용품도 일시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보기에 유치찬란한 것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두고두고 간직하고 물려줄 수도 있는 '진짜'를 산다.

 

 

 

 

 

 

 

 

 

 

 

 

 

 

 

'버리기'라면 솔직히 좀 하는 편이다. 둘째부터는 동생, 이웃네에서 옷을 물려 입히고 그마저도 치수가 작아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로 하고 있다. 첫째 공주님은 지금 당장 너무 예뻐서 그 옷이 어른과 달리 한두 해 용이라는 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형 옷 같은 것들을 여러차례 사곤 했다. 아이는 너무나 금방 크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샬랄라한 옷들에 흘렸고, 세탁에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 그 첫눈에 반했던 옷들은 차마 남들에게도 주지 못할 정도로 추접스럽게 변하곤 했다. 이후로 이런 시행착오 덕에 아이 옷에 대한 소비욕은 거의 아예 없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안은 내가 몇 달에 한번 눈길도 주지 않는 많은 것들이 무단 점령하고 있다. 나의 소비 패턴은 '가격과의 타협'이 빈번한지라 후회로 점철된 사물들이 위무도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곤도 마리에도 도미니크 로로도 그렇게나 '버리라'고 하건만 그것은 쉽지 않다. 특히 책장의 책은 정말 몇 번을 훑어도 내 손을 떠나보낼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아,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다. 저자는 만화가 이우일의 아내이자 그 자신 그림책 작가 선현경이다. 사십대 중반이고 이제 몸에 살이 조금 올랐고 엄마와 취향이 비슷한 십대의 딸과 고양이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 그녀가 '버리기'를 시작하며 하루에 하나씩을 버리는 프로젝트와 더불어 그 사물과의 이별을 자신의 일러스트로 장식한다. 덧붙여 그 사물과의 추억, 그 날의 일상이 있다. 친정 엄마가 준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릇들, 친구들이 손수 만들어 주거나 선물로 준 것들, 한때 자신의 취향이라고 믿었던 그러나 지금 나이에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옷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거나 버려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나 자신의 일상만으로 스스로를 그려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자신이 포기하고 버리는 것들로 그 어떤 것보다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그래서 저자와 정이 푹 들어버린다. 탭댄스와 요가를 배우고 남편,딸과 함께 예전의 신혼지로 다시 리마인드 허니문을 가고 마당에 꽃모종을 심고 고양이를 돌보며 책을 쓰는 사십 대 중반의 그녀의 삶이 참 잔잔하고 행복하고 따사로워 보인다. 원래는 따라 버리려고 동행했는데 이쯤 되면 나도 빨리 아이들이 커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조그만 강아지도 키우고 여행도 좀 가고 하는 꿈을 꾸며 행복해져 버린다.

 

물론 돌아오면 다시 아들은 화장실 변기를 휘젓고 있지만...그게 마침표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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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2-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필요한 책들인데_ 이론에만 강하고 실천에 약한 제가 과연 제대로 된 정리를 할 수 있을지가;;; 그냥 솔직한 마음으로는 읽고만 싶어요_ :)

blanca 2015-02-02 08:34   좋아요 0 | URL
야나님, 저는 그래요. ㅋㅋ 정리를 잘 하면 정리 관련 책에 관심이 없었을 텐데, 그 만큼 못하니까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도 막 샘솟고 노하우도 장착했는데 현실은 체력 미달과 귀찮음, 공간 한계 구실 등을 대며 미적거리는 중이랍니다.

마녀고양이 2015-02-0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미니크 로로의 책으로, 버리는 것 관련한 책은 충분하므로 더 이상 구매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제목은 정말 사랑스럽네요. ^^

화장실 변기를 휘젓는 아들이라니, 매번 걸레통을 향해 가열차게 걸어가던 코알라만큼 귀엽네요.
요즘 저희 집은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늘어져 있는데, 뭐 그냥 삽니다. ㅋㅋ.
점점 말이죠, 통제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blanca 2015-02-02 08:3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코알라가 그런 시절도 있었군요! 하긴 저도 분홍공주 커서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것 보면 --;; 정말 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아쉬워요. ㅋ 분명 저희 둘째도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서 나중에 `정말 그랬었지.`하는 순간이 오겠지요? 통제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에요.

cyrus 2015-02-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지저분하지 않다면 정리를 하지 않은 편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리를 말끔하게 해요. 약간 지저분한 상태여도 필요한 물건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리된 상태에서 물건을 못 찾아요. 카오스 상태가 편합니다. ^^

blanca 2015-02-02 08:36   좋아요 0 | URL
ㅋㅋ cyrus님 여기는 애당초 카오스를 넘어선 단계랍니다. 회사 다닐 때 책상 더럽게 하고 자리 비웠다 사수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나요. 애들 구실을 댈 건 아닌가 봐요.--;;

Nussbaum 2015-02-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곳곳에 물건과 아이들과의 작은 전쟁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묻어납니다. 요즘 중학생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애들은 뭔가 좀 지저분한상태가 편한가 봅니다. 근데 문제는 치울줄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ㅠㅠ

저는 1월에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두고 거기에 필요 없는 걸 버리려고 했는데 아직 1/3밖에 못채웠습니다. 좀 더 힘내야겠습니다!

blanca 2015-02-02 08:38   좋아요 0 | URL
중학생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아, nussbaum님의 이야기에는 곳곳에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서가 보이네요. ㅋㅋ 제일 더러울 때 아닌가요? 아, 아니다, 고등학교 가면 더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 딸 고등학생 되면 그 때 어떻게 견디죠? 엄마는 세상 깨끗했었다,는 식으로 또 눙을 쳐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 저에게 필요한 게 바로 백리터 쓰레기 봉투였군요. 오늘 사러가야겠어요.

라로 2015-02-07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미리보기를 보니 이 분 버리는 게 대부분 양말로 보여요~~~~.ㅋ

blanca 2015-02-07 11: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ㅋㅋ 양말 엄청 나더라고요. 오히려 그거 보니 양말이 사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ㅋㅋㅋ
 

선생님은 젊어?

아니요, 나이들었어요.

몇 살인데?

마흔여덟.

젊네.

 

사십대 초반의 s언니의 '젊다'는 표현에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아직 그 영역에 들어가지 않은 나로서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를 젊다고 표현할 생각은 못해봤는데. 아마도 내가 언니의 나이가 되어 바라보는 마흔여덟은 더이상 늙음으로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지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정작 마음을 빼앗긴 소설은 대상 수상작 대신 말미에 실린 이장욱의 <크리스마스캐럴>. 외견상으로 성공한 중년의 사내를 어느 날 찾아온 어린 아내의 전남자친구. 그와 함께 앉아 의미 없는 얘기들을 나누는 순간 주점에 우연히 들어온 노인. 그 날은 하필 크리스마스이브, 게다가 하얀 눈발까지 흩날렸다. 셋 사이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껌을 팔러 온 듯한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와 사랑 운운하는 서투른 애송이와 알 것 다 알고 체념할 것도 다 수긍하는 중년의 사내가 어떤 '순간' 우연히 함께 하는 정경을 그렸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고 그는 술에 취해 추적추적 자신의 번듯한 집으로 돌아와 어린 아내 곁으로 간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젊은 부인의 얼굴은 그 새 노파로 변해 있다.  청년, 노인은 모두 '나'의 모습이 단지 시공간의 흐름 속에 투영되어 나타난 모습일런 지도 모른다. '나'는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필 주인공이 다녔던 대학교 앞의 허름했던 주점 안에서 조우한 '젊음'과 '늙음'이 응시하는 '현재'가 바로 나다. 내가 진짜라고 여기며 향유했던 것의 추악한 실재를 목도하며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진다.

 

조경란의 <기도에 가까운>에도 전성태의 <소풍>에도 이러한 '늙음'이 있다. 작가들의 연배는 대체로 중년이다. 우리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면 어느덧 파도처럼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을 원하든 원치 않든 응시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러니 많은 작가들이 이에 천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런 지도 모른다. 과거는 나의 소년, 소녀 시절로 대치될 수 있지만 나의 '늙음'은 대부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으로 대치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마르셀도 소년 시절 회고의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그에게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주던 레오니 아주머니의 늙은 모습에서 그것을 찾는다. 나는 이미 늙어버렸는데도 나의 늙음은 외부에 있다는 이 모순의 중심에는 어쩌면 '늙음' 그 자체를 직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늙음'은 이렇게 끊임없이 타자화된다.

 

과연 정말 그렇기만 한 걸까? 이제 우체국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몰래 훔쳐본다고 아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여든두 살의 커트 보니것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쉬운 점은 이미 이 유쾌한 독설가 할아버지는 이 지구상에 없다.

 

 

 

 

 

 

 

 

 

 

 

 

 

 

 

이 노작가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기득권과 정부를 욕할 수 있다. 솔직하게 조소할 것들이 널려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냉소적이지만 왠지 따뜻하다. 분명 다 욕인데 불쾌하지 않다. 그것은 분명 그가 제대로 늙는다는 것이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 남을 지구를 제발 지켜달라고 보호해달라고 진심어린 호소를 어떻게 하면 가장 호소력 있게 할 수 있는지 그는 알 만큼 늙었다. <크리스마스캐럴>에서 사내가 목도한 끔찍하고 초라한 늙음은 그 앞에서 뻥 하고 지구 밖으로 꺼져 버린다. 그 사내처럼, 보이는 것들과 가질 수 있는 것들에만 끄달리다 이내 손안에 남는 그 '늙음'에의 경고의 또다른 방식을 커트 보니것은 알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아직 많이 늙지는 않았다고 느낀 쉰둘의 나이. "이 아침 속에, 모든 지난 아침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고 이야기한 그 반세기의 시간을 지날 쯔음을 기대해 본다. 그때의 삶의 풍경은 또다른 깊이와 넓이로 다가오기를...마흔여덟은 젊은 나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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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장욱 어떤 소설도 다시 찾아간 대학 호프집이었는데, 뭔가 이장욱 소설은 거기가 타임리프 지점인 듯....
이장욱, 보네거트 ...소설이 자칫하면 후일담 소설이 되기 쉬운데 그 SF 장치들을 정말 잘 쓴다는 공통점도^^

blanca 2015-01-29 17:2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공통점이 있군요! 저는 이장욱이라는 소설가는 아직 잘 몰라서 신선하게 느꼈는데 대학교 앞 주점이 단골이군요 ^^;;

stella.K 2015-01-2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나이를 아직 지나오지 않으면 늙은 거고
그 나이를 지났으면 젊은 거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전 50대까지는 그래도 아직은 젊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옛날의 50대랑 요즘의 50대랑은 다르거든요.
곧 50을 바라보는 연예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죠.
그리고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4, 50대는 젊다고 봐야죠.
적어도 아직 늙지는 않았다. 정도.
옛날 저 10대 때는 25이 넘으면 어떻게 사나 막 그랬어요.ㅋㅋㅋ

blanca 2015-01-29 17: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스무 살엔 서른이 과연 올까, 했는데 벌써 마흔이 저기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네요. ㅋ

Jeanne_Hebuterne 2015-01-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부시와 아버지 부시, 사라 페일린 반대편 시소에 커트 보네거트와 데이비드 시다리스, 필립 로스가 있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용케 균형을 유지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blanca 2015-01-29 17:24   좋아요 0 | URL
쟌느님. 저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판을 할 수 있는 그 분위기도 미국의 근저에 있는 힘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요즘의 미국은 무언가 온건주의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다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해요.

순오기 2015-01-2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고 늙음은 주관적 기준일 거 같아요. 쉰 중반이 넘어서 바라보니 숫자로 젊고 늙음을 나눌 수 없다는 개념정리에 손들어주고 싶더라는...^^

blanca 2015-01-29 17: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충분히 젊으세요. 저보다요. 나이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점이 분명 있어요.

마태우스 2015-01-2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참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제가 박지훈한테 이런 말을 해요. ˝마흔, 젊네. 내가 너 정도 나이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방송에 올인하는데, 내 나이엔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 그래서 관두는 거야.˝ 근데 제가 박지훈의 나이인 마흔살 땐 어땠냐면,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했던 거죠. 마흔여덟이 젊을 때가 저한테도 오겠죠ㅠㅠ

마태우스 2015-01-2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델라웨이 부인, 언젠가 흥국생명 아래서 영화로 봤어요. 보고나서 그거 보자고 한 여자분한테 무지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blanca 2015-01-29 17:26   좋아요 0 | URL
영화로도 나왔군요. 뭐라 하실 만하네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영화화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세실 2015-01-3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습관적으로 구입만 해놓았어요.
나이는 주관적이죠.
저를 시점으로 젊다, 늙었다.ㅎ
나이를 의식하는, 이제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실히 합니다.

blanca 2015-02-01 11: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실님. 정말 주관적이 되는 게 대학생 때는 복학생들이 그렇게 늙어보였는데 저번에 동기 결혼식 갔을 때 복학생들을 보고 다들 아기라고 부르더라고요 --;;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지금, 여기에 나는 또 있다. 하지만 2055년 1월 27일에도 여전히 여기에 또 이렇게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때 런던은 풀이 웃자란 오솔길일 것이고, 이 수요일 아침 인도를 따라 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결혼반지를 낀 뼈다귀와 금이빨밖에 남지 않은 채, 먼지에 덮여 있으리라.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중

 

 

 

 

 

 

 

 

 

 

 

 

 

 

 

 

 

일단 지금 내가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산적해 있고, 내가 듣고 말해야 할 관계들, 아직 욕심내고 때로는 질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는 마당에 정작 '내'가 사라지고도 남을 것들의 그 굳건함에 시선을 돌리기란 쉽지 않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내고 때로 절망하고 그럼에도 영원하지 않음이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면서 그렇게 오늘은 또 어제가 되고 내일은 끊임없이 오늘이 되며  시간 앞에 무력하게 침몰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온전하게 좀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그나마 이야기를 읽을 때이다. 주인공들은 시간에 지고 때로는 시간을 이기면서 삶을 사는 정경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도 안 그럴 리가 없다. 오십 대의 댈러웨이 부인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런던 풍경이 이윽고 곧 간곳 없이 허무하게 스러져 버릴 것이라는 것에 대한 언질은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줄곧 모든 생생함이 유한성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함을 유한성 앞에 결국 굴복할 것임을 일깨운다. 그 자신이 시간 앞에서 죽음 앞에 삶이 속박되는 것을 못견딘 탓인지 그녀는 스스로 시간의 종결, 삶의 마침표로 걸어들어가며 자신의 삶으로 마지막 텍스트를, 마지막 조언을 남긴다.

 

이십 대를 눈부시게 긋고 지나갔던 수많은 과거의 노래들을 이제는 나이들어버린 가수들이 재현하는 모습에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절절한 막막함을 느꼈다. 그것은 언제든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뿐만 아니라 조금은 건조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시대에 청춘을 맛보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애절해했다. 결국은 '시간' 앞에 모든 것들이 무력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인식과 지각의 틈새에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것들이 온전하게 남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김연수가 어느 포탈의 서재에서 권한 책. 소설가가 권하는 소설이 아닌 책은 언제나 주의를 끈다. '무경계'라니. 게다가 저자는 겨우 이십 대 중반에 존재와 생과 삶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행했다. 모든 궁금했던 것들이 모든 애매했던 것들이 이 얼마 안되는 책 안에 다 담겨 있었다. '내'가 '나'를 수많은 경계의 철책으로 얼마나 재단하고 속박하고 승산없는 전투를 했는 지에 대한 깨달음. 우리가 무심코 생각하고 끄달리는 모든 것들이 저도 모르게 어떤 경계와의 전투의 전장에 있었다는 것. 이것은 여든을 넘고 삶을 다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인식과 지각의 지평이 넓어질 때 돌연 만개하는 듯한 내면의 확대와 심화의 정경이다. 도교, 불교, 기독교, 힌두교, 프로이트, 융의 이야기와 사상들은 더이상 대립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과거와 미래라는 환상 속에 현재를 끊임없이 소모하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따뜻한 연민으로 화해한다.

 

백 년 전에는 아마도 다른 남자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 당신과 마찬가지로 빙하 위로 스러져 가는 빛을 경외심과 동경심을 갖고 바라보았을 것이다.-p.227

 

저자는 언어조차도 실재의 지도에 불과하다며 경계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앎을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체, 합일의 개념에 대한 이상이 지나친 신비주의로 흘러가지 않도록 절제하는 그 균형감도.

 

수만번 고쳐살고 싶은 지점이 있다. 수만번 돌아가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음' 그 자체에 탐닉했던 댈러웨이 부인보다 훨씬 못한 것이다.

 

<무경계>의 켄 윌버가 인용한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에르빈 슈뢰딩거의 말을 재인용한다.

 

" <중략>영원히 그리고 언제나, 오직 하나이며 동일한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끝없이 영원한 것이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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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소설가가 무경계 추천했을 때... 그 시대 20대는 누구나 한번쯤 <정신세계사>의 도움을 받았겠구나 싶었던...어제도 헌책방 가서 정신세계사와 류시화 책들을 발견하며...

blanca 2015-01-27 17:50   좋아요 0 | URL
아.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었군요. 저는 사실 이 책 추천이 좀 뜬금없다, 여겼는데 읽어보니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 시원했어요.

AgalmA 2015-01-28 02:51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 안목은 믿지만 기존 리뷰 반응이 좋지 않아 갸웃했는데 blanca님 리뷰가 독자들에게 도움될 듯 하네요. 워낙 이런 사유의 책은 모냐, 도냐 식으로 취향을 많이 타다보니...
 
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앨리스 먼로, 트루먼 커포티, 프리모 레비, 수전 손택,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한다. 줄리언 반스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두 권 정도 읽어보아 아직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상태다. 커트 보네거트, 잭 케루악, 돈 드릴로, 르 귄, 존 치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시 인터뷰다. 인터뷰어도 시간도 장소도 제각각이다. 작가들의 집으로 찾아간 경우가 많아 그 집, 함께 사는 사람, 채운 소품들에 대한 인상이 작가와의 만남과 더불어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아내를 잃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쓴 줄리언 반스는 여기에서 아직 아내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서 행복하다.

 

이제는 늙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글을 쓰게 만드는 설레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나이가 된 앨리스 먼로는 기대 만큼 따뜻하고 솔직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열여덟 살때 그녀를 홀딱 반하게 한, 하지만 그때는 응답하지 않았던 남자가 지금 그녀 곁에서 그녀와는 또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라난 곳에 함께 돌아와 있다. 한창 아이를 키우며 때로는 아이를 재우고, 때로는 학교에 보낸 시간에 열정을 쏟았던 이야기들은 그녀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 다 커버린 아이들 만큼이나 회한을 남기기도 한다. 이야기에는 실패하는 부분이 있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가 써 낸 이야기 만큼이나 가슴을 뚫고 들어온다.

 

트루먼 커포티는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패션 모델 출신의 기자를 맞는다. 앨리스 먼로가 장편을 남기지 못하는 데에 느낌 아쉬움이 트루먼 커포티 앞에서는 가장 어려우면서 절제된 형태로서의 단편의 찬양으로 변주된다.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글은 절대 쓰지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이 놀랍다. 온갖 불길한 전조에 물러서는 모습은 그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찬란한 젊음을, 비참한 최후의 텍스트를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낸다. 그의 몰락을 알고 듣는 그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어떤 처연함을 내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드레스덴의 폭격을 관통했던 커트 보네거트의 신랄한 유머는 웅변적이다. 그는 전쟁의 무용함, 아무리 선으로 포장해도 그것은 학살임을 자신이 <제5도살장>을 써서 유일하게 드레스덴 폭격으로 이익을 본 이 지구상의 한 사람이라고 자조적으로 고백하며 역설한다. 훌륭한 작가는 부족하지 않고 오직 신뢰가는 독자가 부족하다며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복지수표를 수령하기 이전에 독서록을 제출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위트 앞에서는 이 진지하고 사려 깊은 작가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책에 엄격해야 한다"면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을 읽는다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관계로부터는 거리를 두지만 세상 그 자체에 대하여서는 멀어지지 않는다. 수전 또한 그렇다. 인간의 잔혹성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엄정한 묘사는 낭비를 싫어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열정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상을 수상했다는 돈 드릴로의 일과의 고백은 하나의 아름다운 단편 같아 옮겨적었다.

 

아침에 수동타자기로 일을 합니다. 네 시간쯤 일한 뒤 달리기를 하러 나가지요. 그러면 한 세계를 떨쳐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요. 나무와 새들, 이슬비. 멋진 간주와 같죠. -p.351

 

그리고 그는 보르헤스의 사진을 본다.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무기력과 표류 상태에서 벗어나 마법과 예술, 예언이라는 별세계로 데려갈 안내자로 그를 삼으려고. 마치 르 귄이 베토벤이 자신이 향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거기에 이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내다보이는 작업실 창문 앞에서 진지하고 사랑스럽고 신비한 독자들이 있는 상상을 하고 글을 쓴다는 존 치버의 고백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지막으로 한창 젊고 예뻤던 사강이 라디오 녹음이 있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여학생처럼 달려나간다. 여기에 그녀의 쇠락과 늙음은 없다. '삶'이 세 명의 인물이 엮어가는 일종의 리드미컬한 진행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제멋대로라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극히 사강다운 이야기가 남는다.

 

정확한 인터뷰의 일시가 누락되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의 작가의 이야기인 지를 정확히 추정하기 힘들 게 한 것은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의도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한때 어느 한곳의 그들의 찰나적인 모습과 생각,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삶의 찰나의 거대한 은유의 집적 같기도 하다. 다만 언어를 주무르고 이야기를 퍼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이들의 응축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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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트 보네거트 책보고 울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래서 전작을 다 찾아보고 싶어졌죠. 돈 드릴로는 화이트노이즈 한 권밖에 못 봤는데 그 한권만으로도 그의 전작을 다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읽을 책이 많아 차일피일이긴 합니다만; 르 귄, 잭 케루악, 존 치버는 그 명성에 비해 제 취향이 아니라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며 계속 시도 중이에요;;
blance님은 그들을 접하신 뒤 리뷰 어떠하실 지 궁금하네요.

blanca 2015-01-23 17:25   좋아요 0 | URL
아, agalma님 얘기 들으니 꼭 읽고 싶어집니다. 커트 보네거트 어떤 책 추천하세요?

AgalmA 2015-01-2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작)제5도살장-(마지막장편)타임퀘이크 둘 중 선택하기 까다롭네요; 전 타임퀘이크가 더 감동적이긴 했어요. 보네거트 위트를 재밌어하셨으니 (에세이)나라없는 사람부터 읽으셔도 좋겠죠^^

blanca 2015-01-24 09:46   좋아요 1 | URL
<나라없는 사람> 오고 있어요. ^^ 이상하게 거의 다 절판이에요. 제5도살장도 절판이고요.

AgalmA 2015-01-24 10:31   좋아요 0 | URL
네, 작년에 제5도살장 반값할인 때 사람들이 엄청 사대면서 전반적으로 그리 된 듯; 저는 다 도서관에서 빌려봤어요.으힉; 읽고 나신 뒤의 리뷰 기대합니당^^

다크아이즈 2015-01-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덕에 보관함에 담습니다. 고맙습니다.
앨리스 먼로 좋아하시면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도 좋아하실 듯.
그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라디오 녹음이 있다고 뛰어가는 사강이라.... 영화나 그림 같은 이미지네요.
50년대말이나 60년대 초의 사강일랑가 ㅋ

blanca 2015-01-24 09:48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 <올리브키터리지> 완전 좋아해요, 다크아이즈님! 그런데 왜 다른 책은 전혀 번역이 안 되는 건지, 너무 아쉬워요. 소개에도 화려한 젊음, 황폐한 노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띠더라고요. 비단 사강 뿐 아니라 원래 젊음은 찬란하고 노년은 슬픈 건지...

Nussbaum 2015-01-24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소설가. 제가 오늘 조금 고민했던 부분의 책이라 관심이 갑니다. 그간 한참이나 소설을 멀리했는데 이제는 좀 소설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얼마전 제 노트북에 타자기 소리가 나는 앱을 깔았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타자를 치니 뭔가 새롭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도 타자를 치면 한 세계를 떨쳐 내고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blanca 2015-01-24 09:48   좋아요 1 | URL
타자소리가 나는 앱이 있어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저도 타자기 써 보고 싶어요!

AgalmA 2015-01-24 10:24   좋아요 1 | URL
저도 써봤는데 바탕 화면, 글자도 색깔별로 쓸 수 있고 어떤 앱은 눈내리는 화면에 서걱서걱 소리까지 나죠^^
포맷하고 다 날아갔는데 가끔 생각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