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사람'보다 '상황'의 힘이 때로 더 힘을 발휘하게 되는구나, 싶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이성적으로 그리는 언행을 할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 앞에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내 손 안에 쥔 것들, 내가 지향하는 것들이 때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다.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모습도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듦'과 '성숙'은 동의어가 아니다.

 

 

 

 

 

 

 

 

 

 

 

 

 

 

 

 

 

장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하여'  어떤 미화나 위안의 비늘도 가차없이 벗겨낸다. 드러난 속살은 서글프다. 결국 그가 이야기하는 '늙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쪼그라듦을 향한 잔인한 노정이다. '성숙'도 '달관'도 다 헛소리다. 세상은 노인 앞에서 등을 돌린다. 그는 그 누구도 감히 발설하지 못했던 잔인한 진실들을 가감없이 내뱉는다. 말라 비틀어져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뒤에 읽는 이들은 '삶의 찰나'들을 즈려 밟으리라 결심하지만 원경에서도 근경에서도 너무 초라해져 버린 삶의 풍경 앞에서 일순 아연해진다. 모두가 극명한 진실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과장일지라도 거짓말일지라도 생은 긍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의 전진은 '나이듦'과 떨어져 이야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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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듯한 제목의 중편집을 통해 무라카미 류를 처음 만났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한없이 어여쁜 제목에 기대어 그를 만나볼까 하며 인터넷 서평을 이르집다 멈칫했다. 그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아닌 듯하다는 인상. 제목처럼 아름답고 투명한 작품들은 아니라는 평. 하루키와 같은 성을 가진 그와는 그렇게 멀어졌다, 다시 만났다.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다. 섣불리 그를 만났다면 섣불리 멀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아껴 읽을 만한 이야기들을 만나 일부러 천천히 갔다.

 

쉰네 살에 이혼한 여자는 마트나 백화점의 식품 매장 시식 코너에서 일한다. 그녀는 생계를 걱정하다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춘 남자와 재혼하기로 하고 결혼 상담소에 등록하여 나이든 남자들과 선을 본다. 물론 성공하지 못한다. 업체에서 선별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파티 참석차 간 호텔에서 우연히 위로가 필요한 젊은 남자에게 얼그레이를 권하며 그와 일회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무언가를 그녀에게 남기고 간다. 미련을 잘라내는 일. 그리고 그것은 진심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전남편과의 재회에서 그녀는 그와 보낸 긴 세월의 친밀감을 인정하지만 자신과는 다름 사람임을 절절하게 인식하고 깨끗한 이별을 한다. 미련들이 밀려나간 자리에서 그녀는 더 삶을 성실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닫는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이라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멈추지 않고는 읽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묵직하다. 작은 출판사에서 해고당하고 아직 대학 등록금을 대야 할 아들이 있는 인도 시게오라는 남자의 그 노숙자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한때는 소설가를 꿈꾸었던 그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공사 현장의 차량안전요원 일을 하며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은 그 누구도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는 읽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아무도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그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난 중학교 동창생. 한때는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했던 그들의 추억은 노숙자가 되어 병든 몸으로 나타난 그 친구 앞에서 무색해진다. 인도 시게오가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바로 그 노숙자가 되어버린 친구. 친구는 이혼해서 떠나버린 어머니가 남기고 간 반지를 돌려주는 일을 부탁하며 둘은 그 여정을 동행한다. 노숙자 냄새를 지우려 싸구려 여자 향수를 뿌리고 버스 안에서 오줌을 싸 버리는 그 친구를 부축하며 인도 시게오는 마침내 삼십 년을 떨어져 있었던 모자를 상봉하는 데 손을 보태게 된다. 그런 드라마틱한 경험 뒤에도 그는 여전히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임시직을 전전하고 일자리를 잃은 아내는 여전히 구직중이다. 하지만 어머니 옆에서 죽게 된 그 친구와의 만남은 무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것의 실체를 지척에서 목격하지만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되려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모든 불안정한 것들, 두려워했던 것들이 물러나고 남은 것은 생의 긍정이었다. 친구는 가엾고 서글픈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에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학창 시절의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생을 마감하고 인도 시게오는 그 친구의 마지막 나들이에 동행함으로써 그렇게나 끄달리던 두려워했던 것들에서 놓여난다.

 

이밖에도 겉도는 남편 대신 반려견에 기대었던 그녀가 반려견의 죽음을 함께 하며 남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 퇴직 후에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자유로운 은퇴 이후의 삶을 꿈꾸었다 그것이 깨어진 마당에서 가족 간의 진정한 소통, 독립에 대하여 숙고하게 되는 전직 세일즈맨, 어린 시절 해녀 할머니와의 추억들과 늘그막의 사랑의 실패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되는 전직 트럭 운전사의 뒤늦은 성장.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때로는 함께 지내던 배우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마침내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잊었던 것들, 놓쳤던 것들 앞에 자연스럽게 당도하게 되며 단순한 쇠락이 아닌 또 하나의 성장의 전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그러니 이들과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기대고 싶다. 분명 지나가고 남는 것들이 있다는 믿음. '나이듦'이 반드시 '상실의 과정'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이러한 위로들이 어쩌면 와글와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캐릭터들의 일상을 통해 이야기되는 과정은 참으로 따스하다.

 

어젯밤에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대성당' 편을 마침내 다 들었다. 결국 사람 사이의 소통은 아무리 어렵고 미망일지라도 끊임없이 포기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에서 만나는 작가들 앞에 서는 것이 좋다. 너무 순진한 믿음이라고 해도 이미 태어나 만나고 사랑하고 이야기하며 살게 된 마당에서 '절망'과 '체념' 주변만을 서성거리고 싶지는 않다.

 

작지만 분명 뭔가 있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는 진부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다. 위로는 위안은 언제 받아도 넘치지 않으니까. 이야기마다 따스한 마실 것들을 나열하는 작가의 섬세함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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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몇 권 읽었었는데 정말 제게는 맞지 않는 작가라 생각하고 그간 멀리 했거든요.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제목이 살짝 괴상한 [55세부터 헬로라이프]가..소설이군요? 그것도 꽤 괜찮은? 류를 이제는 다시 만나도 되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블랑카님.
물론 저는 55세 헬로라이프 보다는 사실, [늙어감에 대하여]에 더 관심이 가긴 합니다만.

blanca 2015-04-20 16:0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이 작품이 무라카미 류 작품으로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라 사실 그의 전반적인 작풍은 잘 모르겠어요. 그에게 있어 조금 의외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인가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너무 좋아서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진짜 푹 빠져 읽었어요.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고 나면 서러워져요.

hnine 2015-04-2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저의 우울한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늙어감에 대하여>는 읽지 말고, 대신 무라카미 류의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이래놓고 어쩌면 늙어감에 대하여를 더 먼저 읽을지도 몰라요 저란 사람은 ㅠㅠ)

blanca 2015-04-21 07:14   좋아요 0 | URL
나인님, 두 책을 함께 읽으시면 *^^ 각 책이 가지는 어두움이 서로 상쇄되지 않을까요?

라로 2015-04-2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라카미 류는 하루키와 성이 같다는 것 말고는 전혀 모르는 작가인데 블랑카님의 글을 읽으니 막막 읽고 싶어요!! 저도 블랑카님 나이에 늙어가는 것이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이가 더 든 요즘은 오히려 젊어지는 얘기를 더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ㅎㅎ 어짜튼둥 저는 언제나 위로가 되는 이야기 좋아해요!! 잘 읽었어요~~~^^

blanca 2015-04-22 11:06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제 나이가 과도기라 그런 걸까요? 여기를 넘어가면 좀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아, 이 소설 정말 강추드립니다. 일단 너무 재미있어요. 주인공들의 말, 행동이 어찌나 현실적인지, 그냥 자신이 체험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쓴 것 같아요.
 
사물들 마카롱 에디션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이벤트 준비는 소비로 시작된다. 휴가를 가도 기념일을 맞아도 심지어 내 자신이 너무 우울하고 지칠 때에도 작고 소소한 것들을 사게 된다. 거창하고 값비싼 것이 아닌 한 자루의 연필일지라도 사물은 신기한 착각, 잠시 위로를 준다. 샬랄라한 원피스를 입고 갈 곳도 없고 꼭 구태여 가운뎃 손가락에 포인트 반지를 끼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의 손가락에 시선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고 백화점 행사장에 목을 들이민다. 명품관은 '언젠가'는 이다. '사물'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도 '사물'을 지나치게 경멸하는 것도 다 '속물성' 지근거리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고 욕망하고 꿈꾸고 과절하는 과정에서 '사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지향이지, '지금', '여기'에서 단 하나의 흔들림 없이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지반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한때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고 거의 모든 것의 소비에서 멀어졌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또다른 결핍에서 비롯된 일이었기에 아무 사물도 남지 않은 거의 소비가 없었던 시간들은 돌이켜 볼 때 더 큰 슬픔을 남긴다. 그때는 '일'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던 시간. 그 시간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 회사에 가지고 다녔던 다 낡아빠진 가방을 보면 지금도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어쩐지 가슴 한켠이 시큰하다.

 

사물들에는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여자는 '이야기'를 꿈꾼다. 그것은 명백히 환각이자 착각이지만 그럼에도 일상이 조금은 덜 단조롭고 덜 무기력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소비를 지양하는 책을 사대는 또 다른 모순 속에서 잠시 사물에서 멀어져 보고자 하지만 그 사물들은 구심력으로 다시 여심을 당긴다.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은 아주 얇은 책이다. 하늘색 마카롱 빛깔 표지가 손안에 쏘옥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그 어떤 소설과도 다른 아주 독특한 경이로운 이야기.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설에 빠져 있는 사람도 누구나 잠시 이 책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굉장히 건조한 척 담담한 척 이야기하는 실비와 제롬의 그 사물들에 허덕이는 탐닉, 좌절의 여정이 너무나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누구나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은 있어도 너무 없어도 그것에 끄달리게 된다. '돈' 이야기 앞에서 초연하려면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도의 자립이 가능한 경제적 여유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생존의 조건에서 더 나아가 행복의 조건까지 모두 돈의 가치로 교묘하게 환원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해서 사는 물건보다 정말 가능해서 꿈꾸는 미래상보다 항상 잉여의 것들이 욕망의 언저리를 부유하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고,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집착은 대개 사소한 물건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행위로 드러났다.

-p.27

 

실비와 제롬은 파리의 사회심리 조사원이다. 프티 브루주아 출신의 젊은 남녀는 파리의 상점가, 벼룩시장이 열린 곳들을 기웃거리며 각종 사소한 것들을 사모은다. 물론 그들의 지향과 꿈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지금', '여기'는 그들에게 임시 거처, 유예된 곳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물론 더 많이 욕망했다. 조르주 페렉이 쫓는 그들의 일상은 우리가 소진해 버린 청춘들과도 닮아 있다. 찰나적인 즐거움이 난무하는 이십 대, 그만큼의 불안과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이 흘러넘치는 시간들의 묘사. 시간은 흐르고 친구들은 '안정'을 찾아 떠나간다. 실비와 제롬은 용단을 내린다. 튀니지의 교사 자리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곳은 파리 만큼 사물들이 지배력을 발휘하는 곳은 아니었다. 실비와 제롬은 마침내 욕망을 잊기 시작하고 그 지루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일상에 함몰되며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안정, 안온함, 자족과는 다르다. 그것은 권태였다. '돈'에서 탈출하여 '돈'으로 뛰어들어갔지만 '그곳'은 그들이 바라보던 곳이 아니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에필로그는 엄정한 가정법을 동원한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될 수도 있었다."

 

파리로의 귀환, 다시 '사물'과 '욕망'이 조우하는 지점으로의 끊임없는 내달림. 그리고 또 다른 '그곳'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여기 지금 우리와 얼마쯤 닮아 있어 섬뜩하다. 에필로그는 마치 우리 모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카를 마르크스 p.139

 

에필로그 뒤의 첨언. 이야기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솔직히 납득이 잘 안 가면서도 삶의 모든 추구의 과정 자체에 대한 무게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작금의 어지러운 상황들에 가하는 엄중한 경고 같아 더 와닿았다. 조르주 페렉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들켜버리고 만다. 예리한 문장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대 앞에서 읽는 이들은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다시 한번 멈추고 심호흡 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나의 삶을 모두 좌지우지 해버리고 말것이라는 깨달음. 그가 기획한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우리 삶의 흐름을 축약해 놓은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가정법들. 그러니 "~ㄹ수도 있었다"의 무게를 항상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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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4-1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언제나 부자일 수 있는데
막상 `부자`는 저 멀리,
아주 아득한 곳에만 있다고 여겨...
그만 오늘 이곳에서 내가 어떠한 부자인가를 미처 못 보고
그냥 달리고 또 달리는구나 싶기도 해요...

blanca 2015-04-16 13: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가끔씩 멈추어 서면 보이는데 또 달리다 보면 그런 헛된 끄달림에 시달리고 있고...
지금 여기에서 `나`인 것으로 충분히 행복해 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cyrus 2015-04-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돈이 없는데도 돈으로 원하는 것을 소유하려고 하죠.

blanca 2015-04-16 13:14   좋아요 0 | URL
죽기 직전에도 다 해탈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니까. 평생을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듯해요.
어떤 강렬한 감정의 기저를 들여다 보면 대부분이 어떤 욕망, 결핍이 있더라고요.
그럼 아직 멀었구나,하며 또 한숨쉬고. 그래도 cyrus님은 제가 그 나이 때 몰랐던 많은 것들을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습이 참 부럽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5-04-1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굴데굴 굴러서 구렁텅이 안에 쏙 빠지는 것이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하고 눈을 치켜뜨던 순간.
그 두 순간이 한끝 차이라는 것을 조르주 페렉은 참 쉽고 간단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문제는 자성과 자각, 생각은 늘 그것이 남의 것일 때에만 쉽다는 것. (제겐 그랬어요ㅠㅠ 저 그리고 오늘 후레쉬베리 사서 블랑카님의 이 좋은 리뷰를 읽으며 그만 한번에 여섯 개 `마셨`어요ㅠㅠㅠㅠ 누굴 탓하겠어요 그냥 다 내가 많이 먹어서......)

blanca 2015-04-16 13:16   좋아요 0 | URL
`한끝 차이` 이 말 좋네요.^^ 맞아요, 어느 책에서 인간들이 사실은 대부분 아주 비슷한 평균적 대응, 반응을 보이는데 자기만은 특별할 거라 생각한다는 지적이 떠올라요.

후레쉬 베리. 저도 그래요. 한 개로 절대 끝나지 않아요.--;; 여섯 개는 좀 과한대요 ㅋㅋ 저는 며칠 전에 아이가 베란다에 던져 놓은 후레쉬 베리 두 개를 발견하고 원샷했지요. ㅋㅋ

프레이야 2015-04-1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좋은 리뷰가 그리웠어요. ^^

blanca 2015-04-20 13:32   좋아요 0 | URL
저도 프레이야님이 그리웠답니다. 돌아오신 거 맞죠!
 
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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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열네 살, 스무 살, 때로는 나이조차 기억나지 않는 태초의 것만 같은 기억들.

다시 나는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마흔의 철책 앞에 선다.

스무 살은 꿈꾸었지만 서른은 실감나지 않았고 마흔은 차마 상상해 내지도 못한 나이.

이제 나는 쉰도 되고 환갑도 되고 고희연도 치를 수 있기를 서글프지만 현실적으로 소망한다.

나도 늙고 늙어가고 있고 더 늙어가다가 마침내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이제는 실감한다.

삶은 스무 살이 세계 전체를 포박하고 내가 딛는 발자욱이 그려내는 지도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배워가는 과정과

다름아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이 추연한 제목 아래 처절하게 인간의 늙어감과 그것의 종말을 기술한 저자의 도저한 탐구, 모색이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못지 않은 울림을 자아냈다. 순간 아연해졌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그 어떤 위로도 위장도 에두름도 없는 그 직설적인 산재한 진실들에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모순과 덧없음과 역설에 지는 것인지를 동의해야 하는 과정임에도 저자 장 아메리의 그 담백하고 처연한 문장들에 절로 목울대가 울렸다.

 

그 앞에서 '늙어감'은 그저 세계와 환상을 잃어가고 죽음이라는 도저히 풀길없는 하지만 자명한 역설의 진리로 한 걸음씩 내딛는 초라하고 처절한 행보다. 성숙, 세계를 보는 시선의 확장, 관용, 성숙의 휘장은 그의 예리한 언어의 칼날로 난자 당한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늙어가며 죽음으로 행진하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A의 시선이 관통하는 그를 둘러싼 세계들, 그리고 그것에서 밀려나며 자신이 쌓아온 시간들로 향햐는 시선들의 흐름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다. 실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선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가 있다. 장 아메리는 자신이 실제로 만지고 느낀 것들을 충실히 자신만의 언어로 쓰다듬고 훓어내어 흩뿌린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천착했던 속물성이 횡행하는 사회의 실체는 장 아메리 앞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우리의 고향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소유의 세계이며 소유가 있어야 사회적 연령을 부여받는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의 늙음의 결이 사회가 부여하는 소유의 위계를 따라 스며듦을 간파한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도 우리는 사회적 연령의 심판 하에 쌓아놓은 재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이렇게도 희망을 깨부수는 이야기들. 한마디로 '늙음'과 '나이듦'은 인간이 직면한 '죽음'이라는 그 불합리하고 역설적인 모순의 마침표로 규정된 '존재'와 얽혀 하나의 '무의미'로 회귀해 버린다. 실제 장 아메리는 오십 대 중반에 이 저술을 하고 십년 뒤가 지나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텍스트를 위해 산화해 버린다.

 

A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

-p.211

 

A는 다름아닌 장 아메리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해냈다. 하지만 그의 인간의 삶에 대한 그 가차없는 메마르고 명징한 통찰은 또 다른 역설과 만난다. 찰나의 경건함. 그것이 꼭 대단한 의미와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날들이 쪼그라들며 비틀어지고 지나간 나날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므로 '지금', '여기'가 가지는 무게는 한층 더 한량없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보는 거울에서 나의 얼굴은 빛을 잃었지만 벚꽃비를 맞으며 향그러운 그 덧없음을 향유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가 오십 대에 마침내 육십 대에 얻은 깨달음과 사유가 삶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 밀고 나간 것이라 할지라도 남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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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4-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고 생각하면 늙으니,
`새롭게 새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면
나이가 드는 아름다움으로 가리라 느껴요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처럼 그렇게 나이들어 가야겠어요.

yureka01 2015-04-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고맙게 읽었습니다.....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시간 내서 읽어주신 게 감사하죠^^

라로 2015-04-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홀릭 리뷰 얼렁 써주세요~~~~ 안그럼 데모 할래요~~~~~ㅎㅎㅎㅎ

blanca 2015-04-10 13:58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솔직히 제가 그 책은 리뷰를 못 쓸 것 같아요.
피아노에 대한 소양이 부족해서 저자 설명 따라가기도 바빴어요.
저도 어렸을 때 레슨 받고는 최근에 다시 학원을 다니다 그만 둔 상태인데
아무래도 성실하게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다 새롭더라고요.

프레이야 2015-04-1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살한 작가군요. 죽음으로 귀결하는 우리삶의 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blanca 2015-04-20 13:33   좋아요 0 | URL
아... 언제나 `죽음`은 참 어려운 문제예요. 장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요.
 

봄은 왔는데 게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까지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 셀리아가 두번째 봄을 맞은 나이는 나와 같다. 물론 서양식으로 한다면 아직 나에겐 이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도 불구하고 요즘 종종 우울하다. 이것은 내가 나로 태어나서 나의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또 당면하게 될 우울감이라 도망갈 수도 없다. 그래도 역시 나에게 힐링은 책에 관련된 것들. 아주 오랜만에 이동진의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찾아 들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하여 이야기한다지 않는가.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중혁 작가와의 그 주저리주저리가 너무 좋아 그 순간 만큼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나는 '카버'에 대하여 좀 각별한 기억들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 마치 친분이 있는 것처럼 들려 더 좋다. 분홍공주가 아기였을 때 아기가 잠에서 깨기 전 그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었다. 빈속에 꼭 믹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아마존에서 한 달이나 걸려 내 손에 온 중고책은 카버의 단편집. 물론 전체를 다 제대로 읽어낼 역량은 되지 않았다. 드문 드문, 어쩌면 철저한 오독과 몰이해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카버가 쓴 그 언어 자체를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부부에게 어느덧 벼락처럼 아이의 사고와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카버의 이야기는 분홍공주가 많이 아팠을 때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카버는 분명 이런 종류의 상실이나 고통을 직접 겪어본 후에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거라는 심증이 들 정도로 그 담담한 듯하면서도 핵을 건드리는 정황 설명, 감정의 변화는 나의 그것들과 만났다. 소름이 끼쳤다. 작년 사월 이동진은 이 작품을 낭독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고저나 강약이 강조되지 않은 읊조리는 듯한 잠긴 그의 목소리로 듣는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삶의 가혹한 반전은 영락없이 또다시 나를 흔들었다. 빵집 주인의 그 따뜻한 위로의 결말은 어쩌면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 거라는 의혹. 난 언제나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평온한 일상이 해체되는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평범한 부부의 가슴을 저미는 고통에 전염된다. 언젠가 느꼈던 바로 그 고통의 흔적은 다시 거스러미를 뚫고 돌아오고 만다.

 

카버의 편집자와의 스캔들,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이고 주장인 지에 대한 그 모호한 지점에 대한 갑론을박은 카버의 이야기들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 이렇게 우리 손에 주어진 그 가난하고 항상 돈에 급급해야 했던 신산한 삶 속에서나마 한 자, 한 자,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그 처절한 시도들의 주인공인 거구의 사내가 남기고 간 이야기들, 그것들로 충분한 것이 아닌지. 김연수의 번역은 되도록 카버의 그 직설적이고 짧고 과장되지 않은 문장 그대로를 살리려는 노력에 닿아 있다.

 

 

 

 

 

 

 

 

 

 

 

 

 

김영하는 김연수와 대척점에 있는 작가라고 나는 종종 느낀다. 김연수가 삶에 대한 소통에 대한 희망, 낭만에 대한 그 어떤 희구에 언어를 어루만진다면, 김영하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그의 언어는 그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친절하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살의, 의심, 망설임, 비정함 들이 난무하는 현실 앞에 그는 일말의 희망마저 단칼에 베어 버린 그 지점에 독자들을 불러 세운다. 그는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 데에 가깝고 언어의 조탁에 크게 괘념치 않아 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런 추측들이 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정말 김영하가 말한 내용들. 강연회, 인터뷰, 대담.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꼭 작가로서가 아닌 일반 생활인으로서의 김영하에 대한 많은 것들을 듣고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지만 여하튼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어떤 경계나 거리낌, 가식을 치워버리고 덤벼든 그의 진정성에서 비롯된 면이 있을 것이다. 비관적 현실주의자. 하지만 그러한 현실 안에서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그것이 일상의 경건함을 만들어 간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 굉장히 호소력 있게 들린다. 나는 그가 추구하는 단단함과는 멀리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지향은 역설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급하게 만난다. 그가 이야기하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분명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나의 못남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편견, 아집들은 결국 나의 나의 약함과 만나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도 분명 걸림돌이 된다. 소비에도 관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쓰면서 그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행복을 누리는 작가의 삶이 일견 참 부러웠다.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금고에 넣어둔 샐린저를 몇 번이나 언급하며 사실 소설가는 이미 쓰는 과정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며 치유를 받는 것과 닮아 있다. 읽고 쓰고 듣고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끼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절절하고 친밀하다. 어떤 게 진짜 삶인지는 섣불리 단정짓지 않으려 한다. 다 살아 내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낼 수 있을까, 확답하기 힘든 문제다. 레이먼드 카버의 알콜 중독에 평생 시달렸던 그 삶과 자신의 작품 <대성당>에서 주인공 남자가 아내의 맹인친구에게 티비의 대성당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함께 대성당을 그리며 느낀 감동과 전율의 대목 어떤 것이 더 진짜인 지를 우리가 판단해 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정하고 확신하지 않고 한번 더 질문하고 회의하는 지점에 바로 '이야기'와 '작가'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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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3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comi 2015-04-03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와 김연수를 대비하신 점 격하게 동감해요. 저도 이렇게 생각하곤 했는데 잘 정리해주셨네요.^^

blanca 2015-04-03 18:57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써놓고 항상 좀 뭣한데 힘이 되네요.

AgalmA 2015-04-0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blanca님이나 cocomi님처럼 공감.
좋은? 선호되는 작가는, 시대를 사는 독자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계속 제시해주는 것일 거라 생각합니다. 대중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그자신 또한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에 공감을 낳는 접점을. 김연수, 김영하 두 작가가 그래서 나란히 환호받는 것이기도 할테고,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영원할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걸 담보하지 못하는 작가는 밀려나는 거죠.(코드가 맞는 소수의 마니아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뛰어난 소설이나 시는 인간의 그런 면을 언제나 대변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작가들을, 시인들을 내내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하겠죠.

blanca 2015-04-03 19:00   좋아요 1 | URL
Agalma님의 댓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대중에 영합하고 무언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배신하기 시작하면 작가는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어떤 직업이든 누군가의 반응이 결과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유혹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요. 그래서 위대한 작가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은 장장 십오 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일흔 다섯에 찍은 자서전의 마침표는 수많은 곡절들을 거쳐 비교적 행복했던 시절들의 잔향들로 어떤 충만감 속에 찍힌다. 방대한 양이지만 추리소설의 여왕이 회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찬란하여 어떤 문학적 가치나 사회적, 정치적 성취에 지지 않는다. 그녀의 추리 소설이 단순한 서스펜스나 반전들로 폄하되지 않을 수 있었던 근저에는 분명 그녀가 이렇게나 진심으로 성실하게 줄곧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 낸 근면성과 진정성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포와로와 그녀의 마플이 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사건 해결사 이상으로 오래 잔잔하게 살아 남은 힘이기도 하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이 아닌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펴낸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얻어낸 많은 것들을 진지하게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탐정 에르큘 포와로나 귀여운 해결사 할머니 미스 마플이 나오지는 않지만 대신 하나 같이 이 이야기들에는 주인공들의 방황과 괴로움에 천금 같은 조언을 던져 주는 멘토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은 금과옥조 같다. 그들의 탄생의 든든한 뒷배는 애거서의 어머니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작품. <두번째 봄>이다.

 

 

 

 

 

 

 

 

 

 

 

 

 

 

원제는 <Unfinished portrait>. 전도유망했던 초상화가 래러비는 전쟁중 손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끝나지 않은 초상화는 붓 대신 펜을 빌리게 된다. 우연히 만난 서른아홉 살의 여인. 래러비는 셀리아의 삶의 '인간 녹음기'를 자처하게 된다. 그녀는 또다른 애거서 크리스티다. 세밀하고 방대한 자서전 대신 조금은 축약되고 조금은 전개가 빠른 또다른 자서전을 읽게 된다. 많은 부분 셀리아의 삶은 실제 애거서가 자서전에서 고백한 에피소드들과 겹친다. 아기방의 연보라색 아이리스 벽지. 친절하고 푸근했던 유모. 언제나 놀이 동무가 되어주고 수많은 이야기들과 꿈, 공상을 진지하게 공유해 주었던 엄마, 느긋하고 너그러웠던 아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남자들의 수면양말을 떠주었던 에너지가 넘쳤던 윔블던의 할머니. 너무나 아름답고 생생하고 사랑스러웠던 어린시절의 파노라마 앞에서 점점 성장해 가는 셀리아의 모습에는 우리들이 잃어버려 언제나 찾아 헤매며 방황했던 바로 그 조각들도 흩어져 있다. 셀리아가 세상의 거친 풍랑을 막아주었던 안온한 방벽 아래에서 보낸 유년은 그녀의 내면 속의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가 찾아 만난 남편과의 가슴 아픈 파경 앞에서 그녀를 거의 해체시킨다. 실제 애거서는 그녀에게 크리스티라는 성을 준 첫남편의 외도로 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죽을 때까지 해명되지 않은 실종 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참혹한 고통을 겪는다.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 준 화가 래러비는 "그녀가 성장하기 위해 서른아홉에 돌아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구개월도 아홉 살도 열아홉도 아닌 서른아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성장에 다다른 셀리아라는 여인의 삶은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의 처절했던 성장통에 대한 또다른 내밀한 고백이다. 그 고백은 삶 속에 온전히 빠져 있을 때에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삶의 원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패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애거서는 여러 작품에서 줄곧 '삶의 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삶에서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면 자신이 그려온 삶의 궤적이 나름대로의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때 일어났었던 일들은 그 일들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밑그림의 한 귀퉁이였던 경우가 많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실제 첫결혼의 실패 후 연하의 따뜻한 고고학자를 만나 재혼하게 되고 죽을 때까지 해로하게 된다. 수많은 회한은 어쩌면 전체를 보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의 창조한 인물들에게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혹은 생각하는 대로 인물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인물들이 도리어 작가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지요. 진짜 신 역시 인간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두번째 봄> 중

 

위엄 있게 단호히 삶을 떠나는 것을 꿈꾸었던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서전을 마무리하고 십 년 후에 그 꿈에 거의 다다른다. 삶에 관한 한 말해야 할 것은 모두 말했다고 느꼈던 일흔다섯의 나이 앞에는 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선물로 주어져 있었다. '여기', '지금'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잠정적이다. 결국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답 대신 질문의 무게가 주어질 것이다. 믿고 걸어가는 데 삶의 매력이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처럼 크고 진지한 것들보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어리석게 끄달리면서도 가끔은 저만치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나의 궤적을 가만가만 들여다 보고 싶다. 그 순간의 감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도 성장하기 위해 이야기를 여기 떨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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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5-03-3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그래도 이 시리즈 신간을 기다렸는데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5-03-31 07:57   좋아요 0 | URL
쟌느님도 이 시리즈 좋아하시는군요!! 추리소설도 좋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이야기들도 참 좋아요. 이렇게 순차적으로 번역하여 펴내어 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

다락방 2015-03-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신간 소식에 쫑긋했는데 블랑카님의 반가운 리뷰로군요!

blanca 2015-03-31 07: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그러시구나!! 반갑네요. 좋아하고 기다리는 게 겹치면 참 행복해져요^^

moonnight 2015-03-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기다리고 있던 시리즈예요. 감사합니다. 블랑카님^^

blanca 2015-03-31 07:58   좋아요 0 | URL
이 책들 읽고 나시면 더욱 행복해지실 겁니다.

라로 2015-03-3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한꺼번에 다 지르려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blanca 2015-03-31 08:00   좋아요 0 | URL
아웅, 한꺼번에 다 지르고 읽어내실 그 기쁨도 못지않죠!! 저는 나올 때마다 챙겼는데 이게 또 감질나더라고요. 이 시리즈는 한 권의 번역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아쉽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transient-guest 2015-04-0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시티는 삶 자체도 종종 소설 같다고 느낄때가 있어요. 나중에 꼭 구해서 봐야겠습니다.

blanca 2015-04-07 18:52   좋아요 0 | URL
저는 그녀의
광팬인데 자서전이랑 다른 필명으로 쓴 이 책 읽고 더 빠져들게 되었어요. 강추드려요.

파란놀 2015-04-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쓸 때에도
내 삶을 누릴 때에도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새로운 하느님(신)이 되어서
하루를 보내는구나 하고 느끼곤 해요

blanca 2015-04-08 23:34   좋아요 0 | URL
요새 들어 더욱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