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2년 2월, 여섯 살 딸아이의 콧물 감기는 좀처럼 낫지 않고 열과 기침까지 동반하게 되었다. 열이 잘 나지 않는 편이었는데 해열제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바로 39도와 40도를 넘나들기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단순 감기로 보이지 않아 평소 다니던 대학 병원에 가서 다시 딸아이의 증상을 얘기하자 폐사진을 찍어보자 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전문가가 보지 않아도 사진에 하얗게 전면을 뒤덮은 무언가가 좋은 것이 아님을 예견하게 했다. 당장 입원하라는 권고가 떨어졌고 그때까지만 해도 걸어다니며 떼도 부릴 수 있었던 터라 아이는 입원하지 않겠다고 울었다. 사실 유치원 친구들도 폐렴으로 종종 입원하는 터라 그때까지만 해도 딸아이의 입원을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틀, 사흘이 되어도 호전되지 않고 아이는 밥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고 육인실 병상에 누워 기침만 했다. 어린이 병동의 육인실은 대부분 아주 심각한 질환을 가진 아이가 장기로 입원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유독 딸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어린이 방송을 보고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형제와 놀기도 했는데 나의 아이만 불덩이 같은 몸으로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재차 아이의 폐사진을 찍어보고 의료진은 더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항생제가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 더 독한 항생제 투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폐렴은 점점 악화되었다. 아이는 일반 병동에서 더 이상 안전하게 치료받는 상태가 아니라 점점 경과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연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 하나 나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각종 상황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코감기에 걸렸을 때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외출하고 평상시 생활을 계속 했던 것,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아이를 무리하게 한 것, 빨리 입원시키지 않은 것 등 온갖 죄책감의 요소들은 난무했다. 그리고 든 생각, 하필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위중한 폐렴에 걸렸는가, 왜 내가 아니고 내 아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반문하게 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을 믿었지만 이런 각종 의구심과 반문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 사실 기도도 잘 되지 않았다. 엄마로서 결국 내 아이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 불운은 나를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정면으로 나를 가격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이었다.

 

필립 로스가 절필을 선언한 지 몰랐다. 찾아 보니 2010년 그가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네메시스>는 자신의 선언 아닌 선언을 번복하지 않는다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해 여름 첫 폴리오는..."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현재의 상황과도 겹친다. 1944년 위퀘이크 유대인 구역에서의 폴리오 대유행으로 촉발되는 이 비극은 철저하게 정제된 경제적인 문장으로 농밀하게 전달된다. 치료 약도 백신도 없던 당시에 소아마비로도 알려져 있는 폴리오의 창궐은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쓰러뜨렸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이 지역의 놀이터 감독이라는 조금은 낯선 일을 맡았던 스물세 살의 버키 캔터라는 다감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청년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조부모의 손에서 가난한 지역에서 성장한 그였지만 강인하고 생활력 강한 조부의 가르침과 다정하고 섬세한 할머니의 배려로 버키는 여러 좋은 자질을 갖춘 지도자로 성장하여 소년들의 친밀한 형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만 나쁜 시력 때문에 참전하지 못한 터라 그는 자연스럽게 놀이터 감독의 일을 맡게 된다. 폴리오의 창궐로 놀이터에 나와 놀던 소년들도 하나씩 감염되어 죽음을 맞게 되자 그는 무고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이 꾸던 꿈과 그들의 미래를 한꺼번에 탈취해가는 잔인한 그 무엇으로 생각되어 신에 대한 분노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랬다. 내가 그때 아이의 폐렴이 악화일로로 치달았을 때 느낀 감정도 어쩌면 버키가 자신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의 필연적인 설명이나 정당성을 어딘가에서 얻고 싶었던 그 무력한 느낌과도 닿아 있어 낯설지 않았다. 그의 연인 마사가 폴리오 창궐 구역에서 70마일이나 떨어진 지역의 인디언 힐 유대인 소년 소녀 캠프의 물놀이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 망설임 끝에 그가 거기에 간 것은 결국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도피이기도 했다. 슬프게도 이것은 이 선량한 청년의 이야기의 마지막이 아니다.

 

그리고 삼십칠 년이 흐른 뒤. 이야기의 서술자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해 여름, 폴리오로 친구들이 죽어 나갔던 그  지역에서 버키의 감독으로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던 소년들 중의 하나. 그 자신도 폴리오에 감염되어 다리가 마비되었지만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비극을 개인적 비극으로까지 심화하지는 않아도 되었던 비교적 운좋은 무리에 속해 직업도 갖고 어엿한 가정도 꾸릴 수 있었던, 그래서 이제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 쉰이 된 소년 시절의 놀이터 영웅 버키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그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청자가 된 것이었다. 버키가 놀이터를 뒤로 하고 떠난 곳에서 당면하게 된 더 큰 비극은 버키에게는 하나의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운명의 가혹한 힘이자 잔인한 신의 횡포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훑고 간 자리에서 버키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굴복한다.

 

1944년, 미국 뉴어크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과 그리고 내게도 일어났던 일과 닮았다. 누구도 왜,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해명하기 어려워 원인과 죄과는 여러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를 둔 엄마들은 모든 것들에서 아이들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두려움에 전염되어 놀이터에 마음껏 아이를 내보낼 수 없고 학교나 기관 같이 여러 아이들이 한데 모이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 숨이 막힌다. 1944년의 보건국과 2015년의 질병관리본부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한낱 놀이터 감독인 어린 청년에게 아이의 엄마들은 대체 누가 책임자냐고 책임자가 어디 있느냐고 절규하며 물어본다. 대답할 수 없는 버키는 그 질문의 화살들을 신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 책임론은 결국 그에게 죄의식으로 또 실제적인 비극으로 수렴된다.

 

필립 로스는 절필을 선언하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이제 쓰는 것과 관련된 사투는 끝이 났다.",는 포스트잇을 붙였다고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했다. 그는 더 이상 쓰는 것과 관련된 좌절을 견뎌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쓰는 것을 좌절과 연결한다. 그러니 그것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다,는 그의 겸손한 고백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말하는 삶과 그것을 포박하는 거대한 운명의 힘, 우연의 힘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은 공교롭게도 절망이 아니다. 이 비극적 서사시의 엔딩은 필립 로스의 마침표가 웅변한다. 다시 소년 시절로 돌아온 서술자인 '나'는 쇠락하고 무너진 버키가 아니라 한없이 아름다웠고 찬란했던 버키가 아이들 앞에서 창던지기 시범을 보이던 그 날을 묘사한다. 그 찰나 안에 가두어진 그 아름다움, 그 생생함, 생명력은 눈물겹다. 소년들의 영웅. 미래의 꿈을 간직했던 미래가 창창했던 젊은이.

 

있었으나 사라진 것도 결국 있었던 거다. 필립 로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기자와의 인터뷰의 말미에 어두워진 실내를 밝히기 위해 그가 불을 켰던 것처럼. 그는 단순히 운명에 굴복하는 무력한 인간의 패배를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아무리 비극적이어도 아름다운 공명음을 내는 이유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5-06-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아픈 모습을 지켜보기도 힘들지만,
어버이가 아플 적에 아이가 지켜보는 눈길을 받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아이도 어버이도 우리 누구도 아프지 않으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하고 비는 마음입니다..

blanca 2015-06-09 08:47   좋아요 0 | URL
병세가 호전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시간과만 싸우면 되니 견디기가 쉽지만 그런 전망이 불투명하면 여러 모로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고 참 힘들더라고요. 네,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로 2015-06-0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네메시스는 아직 못 읽었어요. 근데 내용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선뜻 손이 인 가네요. ^^;;
근데 분홍 공주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블랑카님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도 해든이 가와사키 병에 갈려서 열이 40도가 넘는데 원인을 모르고 물에 애를 담기놓고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엔 병명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입원시키고,,,, 암튼 그때 일이 어제 생긴 일처럼 생생하네요~~~ㅠㅠ 엄마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죠. 블랑카님의 표현처럼 저도 제 탓만 하게되고,,,, 그런 게 시험 일까요???

blanca 2015-06-09 11:21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해든이가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가와사키도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병인데 아주 잘 이겨내서 다행이에요. 자식을 키운다는 게 나날이 더한 도전에 당면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더 성장하는 거겠지만 참 쉽지가 않네요.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남아서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면 최악의 상황이 자꾸 상상이 되서 힘들어요.

세실 2015-06-0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라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그저 아이 아프지않고 씩씩하게 커주는 기쁨이 제일인데 클수록 욕심이 생깁니다.
좀 더 겸손해야겠어요.

blanca 2015-06-09 11:22   좋아요 0 | URL
세실님, 당시는 자꾸 극단적인 상황이 자꾸 가정이 되서 너무 괴롭더라고요. 참, 건강이라는 게 잃으면 전부 같은데 유지되면 금세 잊어버리게 되니 또 다른 것들에 끄달리고 아이를 혼내게 되고 저도 그렇더라고요.

Nussbaum 2015-06-0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긋는 한 줄. 멋진 리뷰 감사히 읽고 갑니다.

blanca 2015-06-10 13:40   좋아요 0 | URL
읽고 댓글 주시니 감사하지요...

2015-06-14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4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5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빨며 쓰레기통 뚜껑을 둥둥 치던 여자아이는 어느날 문득 뱅그르르 소시지컬을 한 연한 금발 머리의 어린 소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멍하니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진지한 얼굴의 아이는 칠레소나무 주위의 푸른 풀밭에서 굴렁쇠를 쥐고 서 있으리라. 두 번째 소녀는 첫 번째 소녀가 빨고 있던 플라스틱 우주선을 바라보고, 첫번째 소녀는 굴렁쇠를 바라보리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중

 

장장 십오 년에 걸쳐 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이 마침내 일흔다섯의 나이에 마무리지어질 때 덧붙여진 이 아름다운 대목은 누구나 스스로를 대입해도 유효한 부분이다. 물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놀이는 달라지겠지만 꼭 노년이 아니어도 문득 쉼없이 달려온 나의 삶의 연대기의 초입 부분에서 소녀 시절, 소년 시절의 '나'를 또 다른 시간 속의 '내'가 맞닥뜨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뭉클하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우뚝 선 이 우아한 할머니 작가는 자신의 삶 속의 수많은 파편들을 하나의 자리에 잘 통합하여 정리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그녀 자신의 이야기에서 발휘한다. 따뜻한 가정의 막내딸로 보낸 행복한 유년과 남편의 배신으로 아프게 끝나 버린 첫 결혼 생활과 연하의 고고학자와 사랑에 빠지고 어린 시절 유모가 들었으면 깜짝 놀랐을 여왕과의 만찬까지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언뜻 서로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삶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삶에 대한 애정, 겸허함과 이야기를 쓰는 일에 대한 천착으로 한데 뭉그러져 향그럽게 발효한다. 우리는 그녀가 때로 어떤 시점의 환희와 절망 속에 가라앉는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게 되지만 그녀가 결국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얼마간 좀더 현명해진다.

 

정작 우리의 삶 속에는 그럴 수 없다. 오늘 가려운 곳, 아픈 곳은 영원히 나을 것 같지가 않고 어제의 불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어제를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내일을 기대하고 때로 가망 없어 보이는 숱한 미래 앞에서 압도 당한다.

 

 

 

 

 

 

 

 

 

 

 

 

 

 

 

 

로버트 그루딘. 이 생소한 이름의 저자가 드디어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담론의 장을 조심스레이 펼친다. 프랑스 혁명력을 본따 만든 글의 목차는 간명하고 예리한  성찰의 말들과 개인의 삶에 대한 성실한 기록들이 어우러진다. 어쩌면 거들먹거리는 듯한 단정짓는 경구들에 시달려 온 우리들에게 단정하게 타이르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절로 귀기울이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군데 군데 그 자신의 삶에서의 회한과 경험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진실에 중량감을 가져오고 투명하게 아름다운 문장들이 노래처럼 울려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중요한 사건을 사진으로 찍을 때처럼, 또는 먼 훗날의 향수를 예견하면서 어린아이의 아름다움이라는 잡기 힘든 본질을 머릿속에 새겨두려 애쓸 때처럼 바로 그렇게, 현재의 모든 정신 상태를 하나의 고유한 전체로, 일시적이고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힘과 내용의 상호작용으로서 음미하고 기억해야 한다.  -p.31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 정확히 이 반대로 행동했었다. 그저 이제 밤새 숙면을 할 수 없고 종일 아기의 욕구에 맞춰 하루를 재편성하고 나의 욕구와 나의 감정을 존중할 여유를 가질 수 없다는 데에 상실감을 느꼈고 모든 낯선 과제에 너무나 압도 당해 상당 기간 이 힘든 상황이 지속될 거라는 데에 지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게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지를 미처 몰랐고아이의 성장에 있어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축복받은 찰나라는 것을 삶의 긴 시간 측면에서 관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후회가 남는다. 먼 훗날 그 시간을, 그 젊음을, 그때 그 시간 속의 아이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 지를 미처 몰랐기에 아름다운 시간들은 상당 부분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스무 살이 서른 살을 상상하지 못하듯 밤에 두 세번씩 깨는  아가가 책가방을 매고 타닥타닥 뒷모습을 보이며 혼자 걸어갈 것을 몰랐기에 그 아기 옆의 엄마는 빈곤했다. 아직도 여전히 자주 상황에 먹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상황이 전체가 아님을 알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리니 숱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어리석은 근시안의 나날들이 아쉽고 그립다. 로버트 그루딘은 "하루하루는 8만 6천 초가 넘는 작은 영원이다."라며 그 자신 언젠가는 그리워하며 돌아볼 '오늘'을 성실하게 기록한다.

 

삶의 미미함, 그 오목한 자국과 새김눈 자체가 만족스럽게 길어지기를 소망하려면 실로 시시콜콜할 만큼 충만하게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 삶을 소망하는 건 이미 그런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삶을 무한히 확장하는 길이다.-p.65

 

이제 반이나마 온 것같다. 자도 자도 읽고 또 읽어도 항상 남아돌았던 청춘의 하루는 저만치 걸어가 버리고 이제 내 앞에 남은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중년이 되었다. 시간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핵심을 좌우하는 가장 큰 힘이다. 그것을 배워가는 것이 어쩌면 삶 그 자체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시간'을 통해 배우고 '시간'에 헌납하고 가야 한다. 저자의 소망처럼 이 책은 섣불리 결론으로 이끈다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고 숱한 찰나의 파편들을 원경에서 커다란 패턴 속에서 관조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 책도 나와 함께 같이 늙고 숙성해 가기를...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애 2015-06-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아침마다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아이와 함께 하는 어린이집길을 소중히 즐거워하며 가고 있습니다. 물론 등원 전의 그 엄청난 소란함도요.

blanca 2015-06-04 13:08   좋아요 0 | URL
아애님, 버스를 두 번이나 타는 길이어도 아이와 더불어 아애님한테 지금 이 시간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 참 부럽네요. 이제 큰 애는 초등학생이어서 유치원 시절 추억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참 아기자기한 행사도 많고 유치원생 학부모로서 누리는 작은 즐거움들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려 해요. 오늘 오전에 고무줄 공예 도구들 주문해 달라고 책상 청소 하더라고요.
귀여워요^^

파란놀 2015-06-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곰곰이 보면, 어머니 자리에 서는 이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을 되돌아보지만,
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을 미처 돌아보지도 못하는 채
너무 빠르게 내달리기만 하지 싶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이든 모두 축복일 텐데요

blanca 2015-06-04 13:10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숲노래님이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참 더욱 값지게 다가와요. 특히 정성스럽게 차리는 밥상이 저한테는 언제나 자극을 줍니다. 천연재료들로 그득한 밥상은 양육자의 아이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바람향 2015-06-0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를 먹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네요...ㅎ

blanca 2015-06-04 13:10   좋아요 0 | URL
바람향님, 저도 여전히 두려워요. 아주 많이...

Nussbaum 2015-06-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하루하루가 비슷한 요즘 저는 어딘가에 뭔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기록하는 데 시간을 많이 두지 않고, 기록하는데 필요한 장면을 마음에 담는데까지 시간을 많이 두고 있는 점이 다르네요. 올리신 글을 보니 다시금 그 기록을 빼먹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blanca 2015-06-04 23:59   좋아요 0 | URL
기록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게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시간에 온전히 패배하지는 않을 최소한의 노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저는 다이어리를 열심히 쓰려 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상황과 기록이 어긋날 때가 있더라고요. 누스바움님은 저보다야 더 기억도 명료하고 또 기억을 남길 그림도 그리실 수 있으니 더 행운이신 게 아닐까요.

lachrimae7 2015-06-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저는 이 책을 만들 때 옆에서 일을 조금 거든 편집자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마음에 와 닿는 서평 감사합니다.^^

blanca 2015-06-05 00:00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이렇게 읽고 또 인생의 책으로 간직할 독자가 있다는 것 기억해 주시고 힘 내시기를 바랍니다. ^^

2015-06-0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에는 줄긋지 않은 문장, 지금은 내게 가장 긴요한 문장이 되어 있었다.

제게는 미래라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당장 바로 앞의 시간이 미래인 거죠. 지금부터 30년까지, 이런 식으로 집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집합적인 미래를 대비하자면, 지금 내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얼마나 벌어야만 하는지 계산이 나와요. 그래서 당장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일단 돈을 버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집합적인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순간, 지금뿐이에요.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 열망으로 '메리 웨스트콧'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봄에 나는 없었다>를 시작으로 <사랑을 배운다>까지 이 소설들에는 방황하거나 인생의 위기를 겪는 주인공들에게 지근거리에서 삶의 통찰과 현명한 식견을 보여주는 멘토들이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마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의 해결사 미스 마플과 에르큘 포와로 탐정이 개별적인 사건들에서 더 확대되고 심화된 생의 각종 문제들에 다른 버전으로 재등장한 듯하다. 특히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라는 촌철살인의 말로 대변되는 <딸은 딸이다>에서 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대하여 현명하고 사려 깊은 조언을 해 주는 로라 휘스터블이라는 예순네 살의 여성은 주옥 같은 그러나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비단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애거사 크리스티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과 깨달음은 이 여섯 편의 소설들 속에서 일관되게 독자들을 설복시킨다.  누구나 삶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 행복을 누리는 능력에 대한 긍정, 타인의 삶의 존중, 인간의 모순적인 본성 때문에 인간을 한 면으로 단정짓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만인 지에 대한 경고 등은 그녀 자신이 삶에서 체득한 소중한 깨달음으로 보인다.

 

여자 주인공들은 한결 같이 조금은 경솔하고 어떤 면에서는 과도하고 어느 정도 어리석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녀들은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 때문이 아니라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가졌던 겸허하고 성실한 태도에서 비롯된 생의 의지 덕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메리 웨스트콧'의 이름으로 씌어진 이야기들을 읽는 일은 그녀가 생의 후반에서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었던 희망에 감염되는 일이다.

 

짧은 오솔길이라 생각했지만 몇 킬로미터가 될 수도 있었다. 들어선 이상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다보면 어디선가는 밖으로 이어질 터였다. 그 지점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정해져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자신의 행동뿐이었다. 의지와 목적에 따라 오솔길을 밟아가는 일. 발길을 되돌리거나 계속 나아가거나. 모든 건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사랑을 배운다> 중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는재로 2015-05-24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가사여사의삶을비추어보면 추리작가로성공햇지만자신이이룬검에비해인정받지못해다고당시의문학계는추리소설을하위문화로인식햇쬬 같은시대의여류작가도로시세이어스는추리작가엿지만자신의작품보다전혀다른문학으로인정받았고녹스만해도잘팔린소설보다성경의번역은자신의큰성공이라애기하기도 성공햇지만결혼은두번이나실패하고불행앴죠
봄에나닌없었다에서표현되기도하고 장미와주목에서도 사랑때문에고통받는여자 딸은딸이다에서도
이책들은결국작가의 페르소나가아닌가하고생각됩니다

blanca 2015-05-25 08:36   좋아요 0 | URL
재는재로님, 저도 이 시리즈에 유달리 애거사 크리스티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극찬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도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은데 당시의 편견은 상상이상이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어떤 유형의 남자에 대한 불신도 꾸준히 나타나더라고요. 댓글로 많은 것을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5-05-2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편견이 많은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이분이 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았으니
비평과는 달리
사람들 사랑을 널리 받았으리라 느껴요.
`성공` 때문이 아니라,
널리 읽히는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blanca 2015-05-25 17:17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노년에 자신의 삶을 복되었다,고 이야기했으니 말씀이 맞을 듯합니다. 일반론적인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별적인 삶에 대해서도 정말 긍정적이고 희망어린 총평을 했던 작가이니까요. 죽음에 거의 다다른 시점에서 저도 그녀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요.

2015-05-27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7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6-26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작가는 저 시기의 본인을 따로 놓고 봐주기를 바라는데 그걸 또 아가사 하나로 통합이 되는 안타까움이..^^;
저작에선 50년이나 후에 내 달라할 만큼의 자기 스스로 죽음이후 까지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데..말이죠.
딸과 아들. 결혼과 삶 여자로의 인생을 말하는 건데..그녀 인생 자체가...작가로가 아닌 사람으로는 행복으로
나가지 못해 늘 고민이고 일로 도피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끄럽다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해요.
여성들에게 보길 원하는 책이랄까..이런 사람이었다. 나는 .. 잘난 여자 아니고..대단한 사람아니고. 한 여자일뿐
그것도 남자하나에 가정일에 여지없이 휘둘리고 고민하는 딸,아들 이 지탱케하는 부분이 있던 여자로의 생이 있던
다른 사람으로 보아주길..절실하게 바라는것 같아요.군중속에 있어도 외로운건..외롭다고..

blanca 2015-06-26 10:48   좋아요 0 | URL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히 솔직한 면이 있는 작가 같아요. 부끄러운 부분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고 그 치유의 여정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존감의 바탕은 어렸을 때 받은 풍요로운 사랑에 빚진 부분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힘든 일들도 잘 이겨나가고 노년에 담담하게 회고할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도 했어요. 맞아요. 그녀는 사실 보통 사람보다 배는 깊고 넓은 시련과 상처를 겪었을 거예요. 사랑했던 남편에게 가장 아픈 시기에 배신을 당한 경험은 두고 두고 그녀 인생에서도 지워질 수 없는 상흔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재혼한 남편이 그녀의 일과 그녀의 모든 도전들을 지지하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어 우리가 오늘날의 그녀를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어떤 선입견도 없이, 특정한 관심이나 지나친 기대 없이 이 자전적 에세이를 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더불어 작가로서의 그의 색채, 그가 만들어 낸 인물이 움직이는 세상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니 그가 토로하는 작가로서의 애환과 보람, 작가적 정체성으로의 더글라스 케네디에 대한 이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내는 그의 삶은 그의 이야기의 진폭을 상상하게 한다. 마흔다섯의 사내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어린 아들, 출간 거절을 당한 자신의 소설, 아내와의 불화를 뒤로 하고 폭설을 뚫고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며 느낀 희열과 거기에서 받은 위무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대담하고 솔직하고 절절하다. 그리고 그는 글을 읽고 쓰는 작가라는 본분을 잊지 않으려는 듯 군데 군데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위로를 주었던 문학작품들과의 만남, 재해석을 덧붙인다. 그것은 그가 통과하는 그의 삶의 정경들에 너무 잘 녹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절망에 빠져 조르주 심농의 소설을 읽고 아내와의 불화를 겪으며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이해하고 오지 여행을 갔다 우연히 손에 잡히는 죽음을 목도하게 된 충격을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완화하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혹은 울고 싶을 때 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들의 예증 같았다.

 

특히 그가 끝내 화해할 수 없었던 완고한 아버지와 냉정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들은 언어들 사이를 건너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부정도 모정과도 무관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기본적인 애착 관계는 물론, 부모로부터 기대되는 지지나 격려도 전혀 받지 못했다. 대신 아들 앞에서 끊임없이 불화하고 요구하고 아들을 거부하는 부모를 용서하는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 자신도 아내와의 관계가 끝나고 가족이 해체되는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유달리 굴곡이 많은 인생과 중요한 위기 대목마다 그를 응원해 주기는 커녕 돈을 요구하고 아들의 행동들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부모, 장애를 가진 아들은 그가 인간의 삶 자체를 다분히 비극적인 것으로, 절망과 위기를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거나 해체되기 직전에 다시 일어선다. 그것은 조물주에 대한 믿음도 삶 자체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반문하고 거창한 것을 덧대기 이전에 그는 그저 현존 자체의 경이로움에 설득되는 것같다. 다시금 일어나고 부활하는 생의 의지는 그의 두 아이가 그에게 가지는 의미 덕분이기도 하다.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기울이는 그의 노력은 탄복할 만한 수준이다. 자신은 받지 못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사랑과 헌신이 그에게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갈되지 않는다. 최악의 순간마다 그는 그 상황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부터 물러나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진다. 내일을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더글라스 케네디가 "어디, 다시 한번 때려 봐!"라는 듯 다시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그의 정체성 그 자체다.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가 아들에게 자주 읽어 주었던 책이다. 간질 발작으로 언어를 잃어버린 아들에게 그는 마지막에 이야기 속의 괴물들이 맥스라는 아이를 붙잡는 장면에서 실제 이름이 똑같이 맥스인 아들이 "싫어!"라고 외치던 기억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읽어 준다. 맥스는 반응이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싫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절대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던 맥스는 이제 미대를 다니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는 결말을 마침내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결혼생활과 부부관계를 회의했던 그는 다시 사랑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가 인용했던 새뮤얼 버틀러의 말 "인생은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말로 다시 돌아오는 결론, 그는 내일을 결코 낙관하지 않지만 삶의 그 미묘한 행로를 여전히 배우며 걸어갈 것을 이야기한다. 초로의 사내가 작가로서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까지 전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그가 살아내며 깨달은 것들이다. 때로는 편견이나 아집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 솔직함 아래 쌓아올린 그 성실한 삶의 편린들이 빛나는 이유다. 힘들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 섣불리 조언을 남발하지 않는 책, 그래서 곁에 두고 싶어지는 책.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5-05-21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아이 가슴에는 늘 사랑이 있기에
아이가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얼마든지 새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으로만 보아도
사랑을 받아서 태어났구나 하고 느껴요.

저 스스로 어버이로 지내면서 느끼는 대목입니다..

blanca 2015-05-21 09:10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이 자녀분들한테 주시는 사랑도 참 따사롭게 느껴집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2015-05-21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크사카 2018-03-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빙 더 월드‘라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 그의 현신이 아닐까 합니다. 무척 실존적인 삶을 사는 작가인 것 같아요.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blanca 2018-04-02 06:01   좋아요 0 | URL
예전 글에 달린 댓글을 보는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좋네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타그사카님이 얘기해 주신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