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순 여섯, 직업은 없고 이혼했고 이제라도 아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환상을 품게 했던 스물다섯 살 어린 연인은 떠나갔다. 더한 것은 그는 유명한 연극 배우여서 말 그대로 전락할 고점에서 추락 지점까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 백오십 페이지 안에 이 사내의 전락기는 충분히 담기고도 남는다. 필립 로스가 더 이상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백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최소의 공간에 최대의 것을 담는 일은 분명 사투다. 많은 언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인생의 대부분을 경험하고 이미 걸어가 버린, 그래서 이제는 전락해야 하는,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삶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작업 안에 그의 문장은 응축되고 농축되고 결집된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 , 연극계의 명사 액슬러는 어느 날 "마력을 잃고 말았다." 더 이상 "연극 무대에 서서 완벽히 배역과 결합했던 그 환희의 순간"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내와 이혼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 이유없이 일어나는 몰락의 체계없는, 덧없는 과정 속에서 그는 역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으로 고통받는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을 끝으로 그는 그녀에게서 남편을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듣고 그 충동과 고통에 공감한다. 한때 연극 무대에 함께 섰던 동료 연기자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액슬러는 삶의 재건을, 부활을, 다시 한번을 꿈꾸게 된다. 레즈비언이었던 그녀가 액슬러에게서 여자 연인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고 때로 빠지는 무모한 성적 충동과 욕망에 동참하게 되면서도 그가 꿈꾸었던 것은 가장 단순하고 모범답안 같았던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향후 오년 안에 벌어질 일들이 도약보다는 침몰에 가까운 나이에 다가가면서 그는 오히려 부활을 꿈꾼다.

 

그의 꿈은 주관적으로 심정적으로 공감받으며 진행되는 듯하다 <에브리맨>에서의 '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처럼 갑자기 객관화된다. 어처구니 없는, 그래서 산산조각 나는. 필립 로스는 그 슬픈 반전 앞에서 언제나 가차 없다. 사랑에 빠져 늙은 아버지가 되기를 꿈꾸었던 몰락한 연기자의 죽음은 어느 순간 날아든다. 결국 절망. 섣불리 희망을, 해피엔드를 노래하지 않는 작가가 포트스잇에 "쓰기에 관련된 사투는 끝났음",을 적어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의 '쓰기'는 곧 '살아나가는 행위' 그 자체였다. 기만하지 않고 함부로 속단하지 않았기에 이제 필립 로스의 펜촉은 다 닳아 버렸다.

 

말뚝처럼 그의 몸에 꽂혀 있는 당혹스러운 경력과 마찬가지로, 그 실패도 자신의 것이니까.

-p.14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5-07-2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순다섯에 이제라도 아이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blanca 2015-07-24 10:17   좋아요 0 | URL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에게는 생물학적인 자녀가 없었고 아직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소망이 충족되지 못하고 말 그대로 파멸해버리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2015-08-05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5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딜은 그야말로 괴짜 아이였습니다. 단추로 셔츠에 부착한 파란색 리넨 반바지를 입었고, 머리카락은 눈같이 하얘서 마치 오리털을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듯했습니다. 그 애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키는 내가 더 컸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푸른 눈이 연해졌다 짙어졌다 했습니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중 

 

 

 

 

 

 

 

 

 

 

 

 

 

 

 

 

 

 

앨라배마 주, 남매, 친척 집을 떠도는 이웃 아이 딜, 멀구슬 나무. 하퍼 리와 트루먼 커포티의 유년은 겹친다.<앵무새 죽이기>에서의  활달하고 당돌한 소녀 스카웃과 푸른 눈의 공상가 딜에는 실제 이웃해 살았고 청년기까지 친밀한 우정을 나누고 심지어 트루먼 커포티의 작품 취재에도 동행했을 만큼 가까웠던 둘의 관계가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조금은 찌질하게 그려지는 이웃집 소년 딜의 모습에서 실제 트루먼 커포티는 자신을 발견하고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하퍼 리가 묘사해 낸 아름다운 유년의 순간들은 트루먼 커포티의 <풀잎하프>에서도 변주된다.

 

 

 

 

 

 

 

 

 

 

 

 

 

 

 

그가 묘사했듯 "어떠한 영광도 누리지 않았지만 아름답던 시절", 나무 위에 지어진 아이들의 오두막에는 실제 하퍼 리도 초대되었었다.  공교롭게도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변호사 아버지에게서 배운 공감 능력이 발휘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트루먼 커포티의 나무 위 오두막집에서도 나란히 수용된다. 아이들의 유년을 지배한 것은 '사랑'과 '교감'이었다. 스카웃의 오빠가 억울하게 강간죄로 기소된 흑인이 배심원들에게서 유죄를 받자 울음을 터뜨린 것은 남매의 아버지가 진정한 공감은 그 사람의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 걸어다니는 것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오롯이 실현된 셈이었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때로 그러한 가르침을 체득하는 듯하면서 어느새 그것을 상쇄시킬 만큼의 경계와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며 유년을 떠나 보낸다. 우리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던 이웃 아주머니들도 함께 온갖 놀이와 공상과 투쟁을 나누었던 친구들도 평생을 절실하게 영원히 매달려 있을 것 같았던 그 수많은 아름다운 가치와 이상들도 시간의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으며 삶을 그려 나간다. 잃어버린 것들과 잊혀진 것들의 흔적이 무의미하다면 가장 절절하게 살았던 것 같았던 시간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딜리트 키 앞에서 스러진다. 과연 그런 걸까.

 

일단 변하면 제자리로 도로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다. 세상은 우리를 알았다. 우리는 절대로 다시 따뜻해지지 않을 것이다.- 트루먼 커포티 <풀잎 하프> 중  

 

 

 

 

 

그러자 문득 이 늙어가는 몸뚱이 속에 아직도 그 깡마르고 상처 딱지 투성이였던 소년이 숨어 있는 것이 거의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때의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 스티븐 킹 <스탠 바이 미>

 

 

 

 

 

 

 

 

 

 

 

 

 

 

 

그러니까 말이다. 분명 "그 조그맣고 깡마르고 상처 딱지 투성이였던 아이"가 아직도 분명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어 무언가를 건드리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종종 출몰하고는 한단 얘기다. 스티븐 킹도 하퍼 리도 트루먼 커포티도 그러한 내면의 어린 아이들을 망각하지 않았기에 <앵무새 죽이기>도 <풀잎 하프>도 <스탠 바이 미>도 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직 크지 않은 아이, 결점도 미성숙도 열등감도 절대 극복할 수 없이 날것으로 다 경험하고 아파해야 했던 그 유년은 그 해 여름 밤, 가을 낮, 겨울 아침에 분명 타박 타박 걷고 있던 곱슬 머리 여자애와 함께 어딘가에 고스란히 살아 있을 것같다. 커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눈물 또르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8-05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출생연도는 1916년이고 생존해 있다. 이 책의 집필 당시는 아흔다섯이었다. 그러니 '세기의 기록'의 근거는 저자의 삶의 중량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런던태생의 그는 중동 역사에 대한 관심이 처음에는 취미에서 출발하였고 이윽고 집착을 거쳐 직업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었지만 홀로코스트도 부상도 전사도 그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스스로를 운 좋은 사내라고 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백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은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학자라는 찬사를 받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중동 정세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나 이해에도 차고 넘치는 그릇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 아랍권 국가들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이슬람교, 서양 국가들 특히 미국이 중동에 대하여 가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태도 등에 대하여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기에 그의 정제되고 간명한 언어, 직설적인 조언 등은 상당히 유용하고 귀에 잘 들어온다.

 

버나드 루이스의 학문적 성과와 그가 중동의 역사, 언어 등에 기울인 성실하고 겸허한 노력 그 자체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자문이 때로 실책을 낳은 비판 지점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신이 중동학 분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 추종자들 무리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발끈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러한 첨예한 논란의 가운데에서 나름 고통을 겪었는 지를 보여준다. 실제 현지 언어를 습득하고 현지를 방문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최대한 공감어린 자세로 중동의 역사를 연구하고 저술하여 세상에 내어놓으려 했던 자신의 노력들은 어떤 힘의 행사나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도 전락할 수도 없다,고 항변하는 그의 모습은 현실이 가지는 그 모호함, 불확실성,가변성 앞에서 역사학자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지난한 고민, 노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아랍인들의 자생 능력과 민주화,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언변은 때로 공격적이었다 관용적이었다 상충되는 부분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와 무게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분석, 설명, 급격한 서구화 이전의 아랍 세계의 협의 문화에 대한 애정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을 잘못 이해하고 읽고 있는 지 깨닫게 한다.

 

역사학자로서의 그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결혼 실패와 예루살렘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의 교유,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진 '그녀'와의 사연 등은 넘치지 않게 역사의 갈피마다 스며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제 그는 아흔다섯 살이다. 그리고 처음 스스로를 운이 좋았다,고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지금도 여전히 운이 좋다,고 마무리한다. 아랍의 시들을 자신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고 역사의 저술에도 우아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노학자의 삶, 그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 비판받을 지점이 있어도 그 성실하고 진지한 학문에의 천착과 삶에 대한 열정, 경탄, 사랑은 자연스럽게 감동을 자아낸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자신이 변주하는 것은 변호일 수도 있고 변명이 될 수도 있고 때로 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마침표가 가지는 중량감은 그 연주조차도 삶 그 자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리라.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5-07-1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소개로 생소한 책을 알게 되겠네요. 읽고싶어집니다. 성실하고 미려한 리뷰 고마워요. 아흔다섯에 쓴 저서라니‥학자다운 생의 무게를 미리 짐작해봅니다

blanca 2015-07-19 21:59   좋아요 0 | URL
한편으로 참 부럽더라고요.
자신의 분야에 일생을 매진해서 일가를 이룬 모습이 지나간 시간들에 가치와 무게를 더한 것 같아서요. 학자의 삶이 그런 면에서는 참 보람된 것 같아요.

라로 2015-07-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걸요~~~^^;;;; 리뷰에 대란 건 프야님과 같은 생각요~~~~^^*

blanca 2015-07-19 22:00   좋아요 0 | URL
저도요, 나비님. 여자친구도 비슷한 연배로 보였어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며 따뜻하게 노년을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cyrus 2015-07-1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학자의 사생활이 시시콜콜하게 느꼈어요.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부분이 젊은 시절, 학자가 정보병으로 참전했던 시절이랑 사이드가 자신을 비판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었어요.

blanca 2015-07-19 22:02   좋아요 0 | URL
에드워드 사이드에 아주 감정이 많더라고요. 학계에서는 상당히 반목하는 관계로 보였어요. 중간 중간 사생활이 좀 건조하게 덧붙어져 있어 숨고르기가 되는 면도 있고 부조화스런 부분도 있고 했던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5-07-1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백 해를 살면 기나긴 이야기가 나올 테지요.
백 해를 살아온 동안 본 것을 쓸 테고
그동안 못 보고 지나친 것은 못 쓸 테고,
보고서 생각한 것은 쓸 테며
보고도 느끼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한 대목은 못 쓸 테고...

blanca 2015-07-19 22:0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랜 시간 삶을 누려도 세상만사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요. 곱씹어 보게 되는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07-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저자가 정보부대로 전출된 부분인데요, 공직자비밀엄수법 때문에 업무에 대해 자세히 말 할 수 없다고 하네요 ^^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어쨋든 나름 재밌게 보고 있어요^^

blanca 2015-07-19 22:05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읽고 계시군요!! 저도 이 대목은 좀 김 빠지더라고요. 언급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부분에서도 나와요. 궁금증만 자극하고 감질나게요^^;;

희선 2015-08-0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취미였다니... 그런 사람이 하나를 오랫동안 알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가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동의 역사와 자신의 삶을 함께 쓰다니, 어떨까 싶군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 역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하고 쓰는 건 더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흔다섯에 책을 썼다는 게 대단하게 보입니다


희선

blanca 2015-08-05 14: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 책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 중동 역사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자신의 삶과 그 삶을 관통해 온 중동 역사에 대한 애정, 관심, 흥미를 끌 만한 에피소드 들이 나옵니다. 네, 큰 풍파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룬 노학자가 부럽더라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충만한 느낌, 아주 가끔 일어나는 행운들 앞에서 이 일들이 내 삶에서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슬그머니 머리 속을 파고드는 느낌은 섬뜩하다. 그러니 그리 마냥 좋아하지 마시라,는 듯한 약간 악의섞인 조언이 벌써 파고드는 순간부터 손가락 사이로 행복은 빠져나간다. 이거구나, 산다는 건 이렇게도 허무한 거구나,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행복도 절대 하나 하나 다져 쌓아올리지 못하는 곳에 발을 딛고 그렇게 하루 하루 소멸해 가는 거구나. 추억들도 그리고 그 추억들 속의 사람들도 어딘가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리라는 희망은 자기기만이자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순진한 착각처럼 느껴질 때 역설적으로 지금은 더 생생하고 차분하게 다가온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거의 연일 사람들한테 회자될 때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만나게 될 것임을 몰랐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환호하지 않을 때 항상 이미 밟히고 해석되고 분해되고 해체되고 다시 재조립까지 된 곳을 딛는 우스꽝스러운 버릇이 있다.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도 사실 잘 몰랐다. 그러니 첫장에서 작가가 이야기의 얼개를 세우는 대신 삶의 그 일회성에 니체의 영원회귀 이야기를 대치시켜 무게를 더한 것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건 분명 연애소설이라고 했는데 왜 이리 진지하게 삶과 존재를 이야기하지?  삶의 잔혹성과 아름다움은 그 일회성 앞에서 가벼워지고 당연히 그것을 이끌어 나간다고 착각하는 존재의 무게는 없어진다. 그리고 토마시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연히 만난 시골 술집 웨이트리스 테레자가 어느 날 토마시가 있는 프라하로 짐을 싸서 오며 그들은 함께 살게 된다. 토마시는 이미 한번의 이혼 전력이 있고 전략적으로 다양한 여자들의 그 미묘한 다양성을 체감하기 위해 바람을 핀다,는 논리 하에 자유로운 만남을 가지는 외과의다. 테레자는 그런 그를 참아낼 수 없다. 그리고 토마시는 자신의 그런 바람기를 잠재울 수 없다. 그들이 있는 곳은 정치가 사람의 일상까지 좌지우지하는, 소련이 지배하는 나라 체코다. 밀란 쿤데라는 단순한 연애사로 삶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토마시와 테레자를 흔드는 것은 이러한 사회, 국가다. 전체주의 키치 아래 자유 발언은 일종의 배반으로 간주된다. 토마시는 그 발언을 철회할 것을 종용받지만 그러는 대신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유리닦이를 택한다. 체코가 단 한번밖에 택할 수 없었던 길은 무수한 지식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고 서로를 밀고자로 의심하게 했고 자신의 진정성과 용기를 반문하게 했다. 역사는 삶의 무수한 은유다. 다시 반복될 수 없기에 가벼워지고 마침표를 부여받는다. 다른 길을 택했을 때 어떻게 되었을 지, 우리는 살아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기에 하나의 길과 하나의 결론에 속박된다.

 

이 책이 짙은 서정성과 깊은 진지함을 두루 겸비한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하는 대목은 의외의 곳이었다. 토마시와 테레자가 키우던 개 카레닌. 그들이 모든 환멸을 뒤로 하고 내려 간 시골에서 카레닌은 죽어간다. 반려견은 그 존재에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수많은 하찮은 일들을 차곡차곡 담아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가져간다. 죽어가는 카레닌 앞에서 슬퍼하는 테레자는 니체가 채찍에 맞는 말을 보고 울부짖던 그 광기의 출발에서 그와 만난다. 밀란 쿤데라는 이 둘이 동물 앞에서 보인 연민과 애정이 대다수가 걸었던 그 길에서 벗어났음을, 그렇기에 그 둘을 한데 사랑함을 작가적 개입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객관화의 시선에서 그들이 그것을 경험하기 직전의 그 처연한 행복으로 옮겨간다. 작가의 변주는 의미심장하다. 일어난 일도 보여지는 그대로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일회성과 유한함으로 폄하된다고 해도 그 안에 농축되는 의미와 무게는 단순한 가벼움 이상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가엾은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삶을 등에 지고 가는 모든 우리들이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명제다. 너무나 가벼워서 우리는 수많은 의미와 이야기와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는 그 허무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icare 2015-07-0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풍이 지나간 후 다소 희미해진 명소를 밟는 것은 독특한 울림을 주곤 하죠.
저도 수십년만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젊을 때에만 그 맛을 알 수 있는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이 책은 전자는 아닐 듯 해요.

blanca 2015-07-08 16: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저는 이상하게 그 시기를 놓쳐 읽는 책들이 많아서 아쉬웠어요. 한편 한때 정말 감동받으며 읽었던 책이 지금 펼쳐 보니 감흥이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요.

페크pek0501 2015-07-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하지만 리뷰를 쓰라고 하면 못 쓸 거예요.ㅋ

저 역시 남들이 많이 읽고 난 뒤에 나중에서야 읽는, 뒷북칠 때가 많은 1인이에요.
어떤 면에선 그게 좋더라고요. 검증된 책 같거든요. 신문으로 신간 소개 보고
책을 사서 실망한 적이 몇 번 있던 터라, 그것에 비하면 뒷북치는 게 안전한 면이 있어 좋아요.
요즘도 뒷북을 치고 있어요. ^^

blanca 2015-07-09 13:04   좋아요 0 | URL
페크님, 뒷북의 장점은 검증된 것,일까요? ㅋㅋ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읽고 칭찬하고 비난하기도 한 책은 어떤 무게, 깊이, 넓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전 역시 서머셋 몸의 <면도날>이 제일 좋아요...페크님은 서머셋 몸을 생각나게 합니다.

세실 2015-07-0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우리 인문학모임에서 다뤘어요.
이 책을 읽는 적기는 30대 후반에서 40대더라구요^^
한때 저는 불륜으로 치부했다는.....
테레사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니 참으로 아름답네요!

blanca 2015-07-09 13:0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그럼 저 적기에 읽은 건가요? ^^ 아주 묘한 책이더라고요. 군데 군데 쿤데라의 철학이 나오는데 이게 참 이야기랑 잘 어우러져 맛깔스럽더라고요. 인문학 모임, 듣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transient-guest 2015-07-1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 아직도 조금 어렵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어느 날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어요. 한번 읽었는데 특별하게 다가오는건 없었기 때문에...

blanca 2015-07-18 09:2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처음에 접했을 때는 구성이나 시점 이동이 참 쉽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있더라고요. 아직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고, 나중에 언젠가 또 다시 읽어봐야 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그런 생각은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 일찍 하면 안 되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쯤에 세상놈들이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바보나 하는 짓일세. 그래서는 절대로 지혜에 도달할 수 없네. 서두르면 안 되지. 우선은 남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그러다가 마흔 살쯤에 미심쩍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고, 쉰에서 예순 살 사이에 이제까지의 생각을 수정한 다음, 백 살에 이르러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 확신에 도달하면 될걸세.

<중략>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는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존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그러다가 적절한 순간에- 미리 하면 안 되고- 그 사람 역시 바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일세.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담담하게 죽을 수 있을 걸세.」

 

-움베르트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

 

이 기호학자이자 중세 연구학자로서 <장미의 이름>을 쓴, 살아서 언어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이제 백 살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는 노작가의 이러한 재기발랄한 이야기에 오랜만에 혼자서 책을 읽다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이제 아직 다행히 마흔이 안 되었으니 아직은 남들이 나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조금 있다 미심쩍다고 생각해도 된다니, 다행이다.

 

어렸을 때에는 세상에는 온갖 정의의 사도가 난무하고 결국 해피엔딩인 이야기가 메아리치다 이윽고 당면하는 사실의 조각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선과 정의가 대세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앞으로 나이와 함께 나를 밀고 간다. 움베르트 에코가 '미심쩍다'를 마흔 언저리에 둔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마흔인 사람이 아직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전면 긍정하는 모습도 눈물의 계곡이라고 모두를 의심하는 것도 그리 적절하게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아기가 자꾸 이 책의 사진을 보고 '아빠'라고 부른다.--;; 얘야, 할아버지를 보고 아빠와 닮았다, 하면 아빠가 얼마나 슬프겠니. 안 그래도 늦둥이인데 움베르트 에코와 벌써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히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움베르트 에코 할아버지가 위대한 성취를 많이 이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아직 아빠는 세상을 조금은 긍정할 수 있는 나이라고 에코 할아버지가 말했단 말이다.

 

무심코 넘기는 온갖 사소한 불편, 부당함을 한번 비틀어 보는 그의 시선이 날카롭고 유쾌하다. 뭐, 이런 것까지, 싶다가도  우리는 이미 너무 모든 것들을 익숙하게 넘겨 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단단한 껍질 아래 진짜를 숨기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바로 움베르트 에코 덕택일 것이다.  

 

이 짧은 글들은 익살스럽지만 촉촉하거나 부드럽지는 않다. 다분히 인문학적이고  진지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말미에 덧붙인 움베르트 에코의 고향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지 여느 로맨스 소설의 저릿한 결말과 닮아 있을 정도이다. 그의 고향을 이해하려면 '안개'를 이해하여야 한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늘다는 '는개'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와 함께.

 

다행히도 알렉산드리아 평원에 안개가 끼지 않는 아침 무렵에는 우리가 <스카르네비아>라고 부르는 는개가 내린다. 부연 이슬과도 같은 이 는개는 초원을 환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애면서 우리의 뺨을 가볍게 적셔준다. 안개가 끼었을  때와는 달리 시야는 지나칠 정도로 훤하지만, 풍경은 충분히 단조롭고 모든 것이 미묘한 잿빛을 띠기 때문에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시간이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가 지방 도로 혹은 운하를 따라 곧게 뻗은 오솔길을 달려야 한다. 스카프는 두르지 말아야 하고, 재킷 속에는 가슴이 젖지 않도록 신문지를 찔러 넣는 것이 좋다.

-p.427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 스카프는 두르지 않고 그 충분한 단조로움을 만끽하면서. 세상은 아직 바보로 가득 차지 않았다는 희망과 함께 하는 나이가 다 소진되기 전에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5-07-0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고 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알게 될거라`는 친구의 말에 이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전혀 모르겠던데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그 친구와 만나 말했어요.
네가 그렇게 말해서 읽었는데, 정말 모르겠더라고 말이죠.
그 친구는 본인이 저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더군요.

늦동이를 키우고 계시군요.
아직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일은 늘 힘든 일이죠.

blanca 2015-07-06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방법이 안 나와 있어서 ㅋㅋ 그래도 정말 한번씩 어찌나 기지가 번득이던지. 이래서 움베르트 에코구나, 싶더라고요. 늦둥이는 지금도 옆에서 우유 쏟고 물휴지로 닦으며 노네요 ㅡㅡ

파란놀 2015-07-0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둥이한테 아빠는 어떤 사람이려나요~ ^^

낮잠을 잔 아이들이 오늘 따라 열 시가 되어도 안 자려 하네요.
@.@
아이들보다 제가 먼저 곯아떨어져야 할 듯한 하루입니다......

blanca 2015-07-07 12:26   좋아요 0 | URL
큰 아이와 터울이 여섯 살이나 나니 여러 애환이 생기네요. 건강관리 잘 해서 든든하게 오래 지켜 주고 싶어요. 아직 두 돌도 안 됐는데 요새 낮잠 안 자려 해서 전쟁입니다.

2015-07-1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