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0년을 함께 한 아내 팻 캐바나가 쓰러지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죽는다. 그녀는 문학 에이전트였다. 감정적 지지 뿐만 아니라 줄리언 반스가 글을 쓰는 데에 있어도 동료 이상의 역할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한 아내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의 농도는 다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슬픔을 견녀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은 그러나 그가 이미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이야기하고 난 이후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랬다고 해서 그의 예상처럼 더 견딜만한 것이 되지는 않았다.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해도 결국 우리는 울 수밖에 없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오십 년 뒤에는 대부분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이것을 항상 볼테르처럼 의식한다면 분명 지금 이 순간이 가지는 중량감은 커지겠지만 만성적인 우울증과 허무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테면 어차피 죽을 텐데 오늘 책을 사고 무언가를 주문하고 읽고 미래를 계획하고 약속을 하는 이 사소한 일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늘 아침 나와 웃으며 다음 약속을 이야기했던 사람이 오늘 오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경우, 내년까지만 어찌 어찌 지금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유예하자 했던 사람이 그 내년이 왔을 때에는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가장 엄중한 죽음의 경고를 맞게 되는 경우가 다 남의 것이자 이야기로만 소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멸이라 믿으며 오늘을 습관적으로 소비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줄리언 반스식의 천착이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프랑스의 작가들, 음악가들, 철학자인 반스의 형과의 '죽음'을 둘러싼 대화와 어우러지는 그의 솔직한 위트와 함께 결국은 삶을 내러티브화하며 허약한 의미를 힘들여 얻어내려 하는 그 무의미한 우리들의 분투와 치기,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해체는 때로 섬뜩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건조하고 걍팍하게 무의미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역자의 말처럼 줄리언 반스는 자기현시적이지 않아 언제라도 어떻게라도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격파해 줄 조언이라면 그것이 진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기꺼이 승복할 자세다. 거만한 작가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학자연하는 태도가 아닌 자신이 채집한 수많은 죽음에 관한 예술가들의 실제 사례와 조언, 깨달음 등을 기꺼이 독자와 나누며 결국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지어진다 하여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종말이 지나치게 허무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기를 희구하는 평범한 소망에 솔직한 자세가 공명한다.
'마그니 만찬'은 플로베르, 투르게네프, 공쿠르, 알퐁스 도데, 에밀 졸라가 모여 만든 저녁 식사 모임이었다. 듣기만 해도 화려한 작가 군단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 저녁 식사에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묘하게도 '죽음'이었다고 반스는 이야기한다. 가장 화려한 시기를 통과하며 가장 나다운 이야기와 나의 성취를 누리던 바로 그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은 필멸을 의식하고 두려워했다. 그들이라고 더 나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나 결론, 실제 그들이 그러한 죽음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때때로 의심한다. 죽음에 대하여 더 이야기하고 더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의기소침해한다.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도 또 잊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필연적인 무의미와 허무를 떨치기도 힘들다. 막상 그것이 다가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하는 것도 과연 내가 받아들이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다가왔을 때 경험할 공포도 두렵다. 아니,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해도 그것과 화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런것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전혀 위안이 안 된다는 게 사실 더 절망적이다. 필연적이었구나. 출구는 없구나, 싶은 답답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