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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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재판의 법정에 나온  유대인들을 학살한 전범들은 희대의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도 가정에서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자 자애로운 아버지인 경우가 많았다. 상부조직에서 하달 받은 명령을 기계적으로 집행했다고 항변하는 그들의 모습은 타인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도 끝내 이어나가고야 마는 생존의 가차없는 모순의 체현 그 자체였다. 살기 위해 살고자 하는 이를 죽인다는 것만큼 자기 기만적인 비극의 전형이 있을까? 타인의 숨통을 끊어야만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삶이라니... 편혜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퇴락일로인 소도시의 종합병원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곳이 아니었다.






無主空山


무주는 특별하지 않다. 무언가를 전적으로 주도하거나 집행하거나 모의할 그릇은 아니다. 그의 시계는 생존과 타협, 도덕률과 공명심이 혼재되어 있는 영역에 걸쳐 있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타의로 사직하여 이인시의 선도병원의 관리부 구매 담당으로 내려온 그는 우연찮게 내부고발의 주역이 되어 비교적 친근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던 이석과 척을 지게 되고 동료 직원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그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단단하지 않은 지반에서 허룩한 생존의 촉수를 뻗치며 그저 살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무정형의 모습이다. 그래서 언뜻 그는 일관성도 융통성도 깊이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제는 무기력하게 부정의 공모자가 되고 오늘은 친한 동료의 비리를 고발하고 내일은 병원비가 체납된 노인의 침상을 강제로 치워버리는 무자비한 모습의 혼재가 오늘날의 어쩌면 가장 실감나는 비열하고 던적스러운 인간형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주인공이면서도 사건의 직접적인 동인의 저력은 없는 배경으로 저만치 물러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무주는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때로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는 우리와 닮아 있다. 그는 생의 모순 그 자체다. 낯설지 않다. 우리는 도저히 우리의 변화를 우리의 그 무일관성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연속선상에 도열해 있지 않다. 산다는 일은 참으로 비논리적인 일이니 말이다.




利析秋毫


"이석은 평판이 좋았다."는 첫 문장은 이석을 가장 잘 요약하여 소개한다. 이석은 언뜻 두루뭉술해 보인다. 직장에서 시덥잖은 농담을 잘 던지고 수완이 좋아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람. 적당히 비겁하고 적절히 타협하는 그 지점에서 마치 삶의 기술 그 자체를 연마한 듯 보이는 능구렁이. 하지만 그는 이미 무주가 그곳에 당도하기 이전부터 삭아내리고 있었다. 이석에게는 아픈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의 숨통을 끊지 않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은 정직하게 받은 고정 급여로 충당불가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그의 횡령과 부정부패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정당화의 지점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연민은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무주에게도 혼란스럽다. 이석은 아이가 아프기 전부터 나빴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는 더 나빴다. 그러나 결론은 이석의 비리를 고발한 무주는 이석의 생의 기반을 흔들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가책에 시달린다. 이석의 삶은 무주의 그것과 고통의 대비 효과로 표면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그의 그것은 그의 행위를 헛된 공명심이자 이기심으로 폄하하는 근거가 된다. 이석의 고통은 이석의 부정을 어느 정도 용인하게 만들고 도덕률과 생존이 부딪힐 때 그 불투명한 경계는 뭉뚱그려 뭉게진다. 가치 판단과 대의는 생존 앞에서 흔들린다. 절대선과 절대악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며 읽는 이를 갈등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작가는 물러서지 않는다. 편혜영은 우리가 이미 우리 자신에서 무주와 이석을 찾아내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미 충분히 감정을 이입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상황논리를 더듬고 있는 독자를 예상한 듯하다. 작가는 마침내 이기고 만다. 때로는 생 그 자체가 가장 도덕적 판단의 준거가 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생을, 그 사람이 아이를 품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생을 뒤흔드는 결론은 엄혹한 도덕적 심판에서 빗겨간다. 아이를 살게 하는 힘 그 자체가 도덕으로 여겨질 때 부수적인 모든 행위는 용인되며 도덕적 공황, 진공 상태가 수반된다.



골리앗 크레인


<죽은 자로 하여금>에 조선업의 퇴락으로 유령도시로 전락해 가는 이인시의 모습은 한때 눈부셨을 골리앗 크레인의 흉물스러움으로 환유된다. 시장의 논리가 밥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그 생에 대한 초라한 곡진함은 이미 이용 가치를 상실한 크레인의 모습 앞에서 무너진다. 그 거대한 크레인의 비극의 정점은 한때의 은성함이고 그것을 실제 경험하고 목격한 이석의 삶의 전락과도 만난다. 우리 모두는 한때 빛났다. 그러나 생의 본질은 그것은 아니고 생의 추락은 도저히 예습할 도리가 없다. 생의 내리막길은 비로소 생의 비의를 노출함으로써 더욱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살고 싶고 살아나가고야 만다. 골리앗 크레인은 거슬리지만 거기 그렇게 완강하게 스스로 버팀으로써 실재를 노출한다. 





병원


선도병원은 꺼져가는 생의 불꽃을 재점화하는 의학의 숭고한 현장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다. 노인요양시설을 지어 유령도시가 되어 버린 지역에서의 이윤의 추락을 만회하기 위하여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현장은 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놓았냐고 행패를 부리는 아들이 달겨든 곳이다. 환자가 위험한 순간에 빠질 뻔했던 주사 투약 사건도 병원의 명예 앞에서는 번거롭고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다. 생과 사가 넘나들던 소격서는 큰 판돈이 들어올수록 기대하는 한탕이 커지는 노름판이었다.





초인을 기다리다


무주도 이석도 병원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사무장도 다 떠나고 남은 병원 안 직원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다시 생을 이어나갈 수 있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워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살기 위해서 건강하지 않은 시스템에서 부정을 저지른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그 오염된 시스템의 공백을 다시 채울 또 다른 초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은 정의로운 초인은 그들이 정확히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초인은 생존의 바퀴를 부드럽게 굴러가게 할 기름칠을 마다하지 않을 이다. 적응해 왔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시스템의 틀 안에서 숨 쉬게 할 자이다.  이미 또 다른 무주, 이석, 사무장은 그렇게 다른 어딘가에서 이 자리를 메우려 이미 출발하고 있을지 모른다.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게 하려고 그 절망의 악순환은 오늘도 그렇게 끝을 모르고 계속 되고 있다. 산 자로 하여금 살게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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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1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여와 낭비가 허용되지 않는 나이듦은 참 피곤하고 서글프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낮잠을 좀 자도 낭비를 좀 해도 시간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괜찮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의 지평선이 보이기 때문에 심히 죄책감이 든다는 것. 스무 살의 하루는 길고 또 길어 하루 종일 자고 종일 친구를 만나 아무 의미 없는 동어반복적인 수다를 떨어도 다 용서가 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도 소비도 시간도 모두 딱딱한 경계로 나뉘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짜기가 있고 따라서 가치 평가가 항상 따라온다는 것. 너무 피곤하다. 낭비하고 싶지 않고 무의미하고 싶지 않다는 그 달성할 수 없는 목표 안에서 일상의 따뜻한 평안함은 멀다. 갑자기 김연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물가물하지만 청춘의 특권이 시간이라는 말. 종일 책을 읽고 쓰고 또 써도 무한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에 관련한 단상이었던 것 같다. 시인 김연수는 시를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그래도 시간은 또 남고 남았다지.















분명 스무 살의 시간과 마흔 살의 시간의 양적 실체는 다를 바 없을 텐데 이렇게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참 선뜩하다. 김연수가 사십 대가 가지는 무게에 관련해 했던 이야기도 다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오십 대는 어떤 건지 슬슬 쓰기 시작할 때가 됐는데 왜 신간 소식은 없는 것인지... 예습할 수 있게 반드시 먼저 살아보고 얘기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나는 귀가 얇고 삶은 닮기 마련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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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중에 김연수 선생님도 이름과 얼굴을 다 아는 김연수 빠가 있습니다. 김연수 선생님 일본 일정에 맞춰서 일본 놀러가는 무시무시한 친구인데요.

한참 작품이 안 나온다고 탈덕을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야 안 그럴 거 뻔히 알지만, 어쨌든 팬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네요...

blanca 2018-05-04 09: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가 분명 신부와 관련한 역사 소설 집필 중이라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었는데 소식이 없네요. 친구분 대단하시네요. 다시 돌아오셔야 할 텐데요. ^^

프레이야 2018-05-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달 전 김연수 강의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이야기의 내용도 태도도요. 백석 관련한 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하던데요.
달라진 시간의 질감, 실감해요 ^^

blanca 2018-05-05 03: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 저는 실제 강연을 들어보거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어 부럽습니다.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라니... 백석 관련된 이야기를 김연수의 문장으로 읽는 맛도 색다르겠네요.

페크pek0501 2018-05-05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것이 선배 작가들이 자신이 밟아 온 길에 대해 쓴 책이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참고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직업은 그런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blanca 2018-05-06 23:4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언어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전수할 수 있다는 건 공력이 드는 만큼 그 점에서는 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8-05-1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김연수작가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잘 다가와주지 않네요. 뭔가 저하고 안 맞는건지..-_-: 제가 나이를 느끼는 건 다른 요소도 많지만 술마실 때입니다. 20대 초반엔 무한대로 들어갔는데 이젠 딱 정량이 있어서 거기서 끝나네요. 마신 다음 날 회복도 오래 걸리구요...-_-

blanca 2018-05-19 02:05   좋아요 1 | URL
호불호가 갈리지요. 저도 김연수 작가의 어떤 책은 좋고 어떤 책은 좀 안 맞고 그렇더라고요. 술은... 그렇죠. 이십 대에는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일어나면 술냄새만 났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참 묘한 게 책 선택도 어떤 흐름 같은 게 있어서 한동안은 고르는 책마다 잘 읽히고 좋은 내용이 많은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시기는 고르는 책마다 그만 읽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후자다. 벌써 두 권째 실패 중이라 곁에는 지금 읽는 책이 없는 상태. 이럴 때 새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심한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다. 이상한 강박인데 아무리 재미없고 흥미 안 가는 책이라 해도 일단 돈 주고 사면 끝가지 다 읽어야 한다는 아주 지독하고 자학스러운 독서관이 있다.--;;


새로 나온 책들은 어찌나 상큼한지... 가상으로 장바구니를 꾸려봐야겠다.



편혜영의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라 그녀를 전반적으로 평가하거나 깊이 있게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여하튼 그녀의 그 서슬 퍼런 문장이 좋다. 길게 중언부언하지 않으며 서사를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가. 일단 서사의 진폭과 심리 묘사의 결이 아주 잘 어우러져 가독성이 높은 작가다. 지루하거나 어려운 글은 그녀와 멀다. 기대되는 이야기. 어서 읽어보고 싶다. 양지로 가서 해바라기를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인간의 내면 저 깊이까지 내려가 만지는 실재의 무게를 실감하게 해주는 진지한 작가의 글이 매력적이다.











 



제목에 끌린다. 젊은 여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만 늙은 여자는 배경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미 젊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늙기 위해 공부를 좀 해야 한다. (공부가 가능한 영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자꾸 끌린다. 아이를 키우는 게 개인적인 육아관보다 그 아이를 키우는 문화권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절감한다. 이 문화권에서는 용인되는 아이의 행동이 저 문화권에서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져 훈육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분명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이러한 다른 양육 태도는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 안 가는 것이 중요한 곳이 있고 (기본적인 도덕률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참, 이것의 경계 만큼 모호하고 자의적인 것이 없다.)이 무조건 최고인 곳도 있다. 여하튼 궁금하다.






작은 아이의 영어 이름이 올리버인데 어떤 아이가 자기 올리버 안다고 이 올리버 아니냐고. 사실 개인적으로 올리버 색스 작가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에 좀 무리수를 둔 작명이긴 했지만 나는 정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발견을 했다. 찰스 디킨스는 의외로 지루하거나 읽기 어려운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문장도 쉽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도 있어 대체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제대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기다려야 하느니라... 이게 삼십 대와 사십 대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삼십 대에는 책상에 새 책을 가득 쌓아놓고 냄새 맡고 어루만지며 뿌듯해했다면 이제는 자꾸 공간과 비용과 이런것 저런것을 저울질하고 계산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서글프기도 하고 타협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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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8-04-2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아마 다음 페이퍼는 책상 또는 책장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 공감합니다. 이사하고 책을 많이 버리면서 책을 구입하는 데 인색해진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쩌면 책을 읽고 구입했던 것들이 어떤 종류의 허영이 아니었나 하는 반문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blanca 2018-04-28 02:56   좋아요 0 | URL
와, 책상, 책장, 문구 이런 거에 관련된 이야기 저 너무 너무 좋아해요. 빨리 올려주시기를... 아직도 노트, 필기구 이런 것에 관련된 욕심은 사그라들지를 않아요. 딸아이랑 싸울 정도예요. ^^;; 허영은 청춘의 특권 아닌가요? ^^;;

stella.K 2018-04-2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침 노년 성장 소설이라네요.
노년을 여전히 성장으로 보는 관점이 좀 놀랍네요.
저도 아직 그렇게는 생각 안 해봤는데.
공부는 해 두는 게 좋겠죠.

저도 마지막 문단에 공감하는데, 이젠 책 사는 게 무섭더라구요.
작년까지만 해도 중고로 그동안 못 본 책 마구 사 들였는데
이건 뭐 사 놓기만하고 읽는 속도는 느리고 그 사이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동안 괜히 책 사 들였나? 후회하고. 그러다 못 참고 사고.
책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을 뛰는 것 같습니다.ㅠ

blanca 2018-04-28 02:57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책 관련해서는 참,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또 전자책 읽어보겠다고 막 다운받아놓고 이것은 종이책보다 더 실감이 없으니 방치되고 있어요. 이런 개념이 아예 없고 읽고 싶은 책 다 사서 읽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

AgalmA 2018-05-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이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가치관을 담은 훈육 or 지적이 심한 한국에서 이 문화적 특징이 쉽게 바뀔까 싶어요... 교육, 취업, 혼사, 장례 등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속속들이 관계되니~_~;;

blanca 2018-05-06 23:44   좋아요 0 | URL
좁은 공간, 촘촘한 인구 밀도, 가족 중심 문화의 결합이 낳은 이 틀이 쉽게 바뀔 것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좀더 유연하고 느슨해지기를 바라봅니다.
 
[전자책]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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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문과계열 전공자는 제2외국어를 필수로 수강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열심히 안 하니 못하고 못하니 더 열심히 안 하는 악순환으로 이미 질려버렸던 터라 무언가 전혀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가 스페인어다. 단짝동기도 설득해서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스페인어 수강생 중 많은 학생들이 이미 스페인어를 배웠거나 스페인 체류 경험이 있었다. 교수님은 그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신 다행히도 초급자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수업 난이도를 조정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게 도움을 주셨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유사한 단어가 대부분이고 문법이나 발음 규칙이 다른 언어들보다 까다롭지 않아 대체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외국어로 느껴졌다. 차근차근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맛보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 그리고 좀 흔하지 않은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허룩한 자부심 등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전공공부보다 더 열중해서 하는 경지까지 나아갔지만 졸업 후 나는 스페인어는 전혀 쓸 일도 쓰일 일도 없는 세계에서 그 매력적인 언어의 야트막한 기초공사를 방치하다 거의 흔적도 없이 떠나오게 되는 허무한 결론을 맞게 되었지만, 지금도 나의 스페인어 공부에 관한 추억은 아스라한 대학 교정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남아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5년여 동안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초급,중급 라틴어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회법학을 공부했고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한동일 신부다. 라틴어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아니고 로마에서부터 현대 유럽의 역사, 법, 문화, 종교,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라틴어를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곁들여 라틴어의 아름다운 경구를 현실과 접목시켜 마치 강의실에서 실제 진지하고 잔잔한 강의를 하듯 엮은 책이니 만큼 잘 읽히고 쉽게 들어와 박힌다.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Prima Schola alba est.)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느 대목을 펼쳐 읽어도 좁게는 생소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노력을 경주하는 것부터 젊게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것까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는 외연을 경험할 수 있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에게 막연한 이상주의나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보다는 기성세대가 공정한 경쟁,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 가지는 책임감과 한계를 자인하고 자신이 가진 종교관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 유연함이 구태의연하지 않아 와닿았다.


막연하고 공허하고 자신의 삶과 무관한 언어로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과 보여지는 삶을 직조하기 쉬운 세태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부류에 편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인정, 겸허한 모습들은 그런 의심을 스러지게 했다. 삶과 죽음 앞에서 많은 언어의 모어가 된 라틴어의 단순하고 기본적인 명제로 돌아가 깊이 있게 천착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독자를 참여시키는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한뼘쯤 더 진지해지고 유의미에 가닿은 느낌이 든다.


나의 스페인어는 그렇게 스러져갔지만 아직도 어떤 언어를 통해 미지의 세계로 가는 하나의 경로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다면 이 책은 올바른 선택이 될 듯하다. 꼭 언어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데에 대한 호기심이 줄지 않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간직한 채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소중한 지침들을 < 라틴어 수업> 청강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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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5 0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어폰을 꽂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는 찰나, 중년의 아저씨가 내 건너편의 안쓰는 의자를 좀 써도 되겠냐고 미안해했다. 혼자였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어 흔쾌히 응하고 테이블을 살짝 훔쳐보니 이미 커피 두 잔이 준비되어 있다. 나머지 약속한 사람들이 나타나자 세 남자의 시끄러운 커피타임이 시작된다. 이것은 흡사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저녁 술 자리 같은 강도. 마지막엔 커피잔으로 건배까지 하며 좋아한다. 이어폰으로 들으려던 내용은 흡사 딴 세상에서 꿈결에나 들리는 듯해 도통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포기해버리고 책을 보기로 한다.

















솔직히 언어에 대한 욕심이 있다. 한국어도 영어도 유창하게 잘 말하고 쓰고 싶고 더불어 제2외국어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둘 다 점점 언어의 표현, 인식의 날이 무뎌지고 있다. 내가 말하면 상대가 난감해하는 경우, 나는 제대로 말하거나 쓰지 못한 것이다. 어떤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를 완전한 내 것으로 소유하는 일은 사람을 그렇게 하려는 욕심보다 작지 않다. 그러니 실현 불가능한 영역은 점점 넓어져만 간다. 발은 현실을 딛어도 시선은 별을 보라지만 그것은 자칫 도를 넘다보면 지치게 된다. 이제 내가 딛고 있는 땅은 지평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전진하는 것이니 만큼 고개를 한없이 위로만 향하다가는 자칫 넘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라틴어 경구들은 또 그런 욕심을 다시 생겨나게 한다. 아, 하나 하나 다 기록하고 싶고 외우고도 싶고 그런데 책장이 넘어가면 바로 전에 감동을 주었던 라틴어 문장은 이미 저 멀리 쫓겨나 있다. 저자가 이탈리아에 유학가서 공부할 때 수업 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어 절망해서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대목은 그래서 반갑다. 그럼에도 버티어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그의 근성은 그래서 더 와닿는다. 라틴어를 언어학적으로 집중해서 가르쳐 주는 책은 아니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라틴어 경구들을 하나의 챕터에 각각 담아 대학 강의를 하듯 친절하게 현실에 접목시켜 풀어줘 더 좋다. 


어머니의 죽음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 난감했다. 이탈리아 유학 당시 쓴 손편지가 실려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진지하게 접근하며 소개한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의 울림이 크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음은 지극히 개별적이면서 또 지극히 보편적이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도 분명 닥칠 일이다. 사소한 끌탕은 슬며시 자리를 감추게 된다. 몰랐는데 바깥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난감하지만 그 속을 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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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4-20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숨마 쿰 라우데...
저도 언어의 욕심뿐. 영어도 참 어려워요..
아저씨들의 수다가 더 심할때 많아요.ㅎㅎ
나이들수록 목소리는 더 커지는든요.

blanca 2018-04-21 02:4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제 목소리도 점점 커지나 봐요. 조심하긴 하는데 그 아저씨들도 너무 신나서 미처 목소리를 챙기지 못하신듯 ㅋㅋ 그래도 나중에 커피 잔으로 건배까지 하며 즐거워하다 갑자기 해산하는 모습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학창시절부터 수학에 취약해서 더 반대급부로 언어에 집착했던 것도 있어요. 그런데 이젠 이것마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의기소침해진답니다.

다락방 2018-04-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막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읽기를 마쳤는데, 블랑카님은 [라틴어 수업] 읽기를 마치셨네요.
외국어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는가 봅니다. 저 역시 그러한데, 그러나 어느 외국어도 하질 못해요.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좋아요, 블랑카님. 읽다가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라틴어 수업을 읽어도 그럴 것 같네요.

blanca 2018-04-21 02:42   좋아요 0 | URL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지금 당장 검색 들어갈게요.^^ 흑, 타일러 보면 진짜 부러워요. 그 나라의 언어를 성인기에 배워 토론까지 할 경지까지 나간다는 건 정말 근사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라틴어 수업>도 참 좋네요. 진짜 다시 이십 대가 되면 이 교수님 수업 청강하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미 그만두셨다지만요. 요새는 별 일에 다 눈물이 나서... 그냥 순간 순간 뭉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