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방정식에 넣는다면
조지 머서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공지능에 대한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원론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의 의식을 제대로 읽어내는 과정이 다가올지도 모를 인공지능 특이점을 가장 현명하게 예측, 방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국의 음모 채석장 시리즈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임재철 옮김, 이리에 데츠로 해설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의 어느 한 장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창 화제인 인공지능의 가장 큰 취약점은 인공 신경망의 학습을 통한 창발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의 기원을 제대로 밝혀내기 힘든 지점과 맞물려 있다. 우리의 몸 안에 담긴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의식과 마음이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심리학자, 뇌신경학자, 물리학자들이 오랜 세월 여러 가지 이론으로 밝혀내 보려 애썼지만 결국 우리 앞에 놓인 건 우리의 신경망을 닮은 물리적인 기계의 출현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면, AI의 특이점 도래 앞에서도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조지 머서의 이 책은 이런 우리 의식의 기원을 다양한 시각에서 탐사한다. 마음의 물리학, 뇌와 양자론, 우주론까지 확장되는 스펙트럼은 경이롭다. 우리의 머릿속 신경망이 AI의 인공 신경망, 더 나아가 우주의 모습까지 닮았다는 발견은 결국 지금의 기술 발달이 우리의 자유 의지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 또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론과 결국 실재가 아닌 관찰자인 우리 자신을 포함한 관계의 파악이 의식의 핵심에 있음을 언급한다. 

우리 자신을 관찰하는 일은 우리를 관찰하는 관찰자인 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재귀성과 결국 AI 또한 그런 한계 안에서 작동함을 암시한다. 인간의 의식의 기원을 탐사하며 결국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그것이 가지는 함의에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불문학자이자 영화 비평가인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 제목을 연상시키는 <제국의 음모>는 프랑스의 제2제정,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과 의붓동생 내무대신 드 모르니의 쿠데타를  드 모르니가 남긴 두 개의 문서로 독해하는 이야기다. 하나는 국민들 앞으로 쓴 인쇄물 <포고>,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입법원 의장이 된 그가 오펜바흐까지 동원해 만든 오페레타 부파의 각본이다. 십 년의 시차를 두고 우유부단한 의붓형에게 쿠데타를 종용해 '제국'을 설립한 그가 미련 없이 그 권력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일종의 희가극을 만들고 상영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농담처럼 보인다. 저자 하스미는 사생아로 태어나 자신의 신분을 발명해 낸 드 모르니의 이 행적 자체가 "역사적으로 조금도 본질적으로 여기기 어려운 것들을 형태짓는 냉소적인 역사성"이라 명명한다. 대단한 의도도 역사 의식의 자각도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저지른 권력 탈취의 종말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연락 한번 거의 않던 두 형제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이 불법적인 권력 탈취의 쿠데타를 통해  "애매하고 희박한" 역사적 우연의 격동을 만드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우애랄 것도 없는 나폴레옹 형제는 근대국가에서 일어난 최초의 쿠데타의 주역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본질적이고 의도적인 주류의 흐름에 의한 도식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두 책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와 의식적인 결단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식도 환각일 수 있다. 각자 다른 시점에서 세상의 실재를 읽어나가려는 시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두 책은 만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이 자본주의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 죽음의 현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한계 안에서 가장 인간다운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생한 현장의 육성으로 들려준다. 사랑하는 친구, 가족이 죽었을 때, 더 나아가 내가 죽은 다음 따라올 진심 어린 의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사안에 공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민감한 일이다. 자칫 논란에 휩싸이거나 공격을 받게 된다. 어느 입장을 취하든 상대편 진영에서는 비판할 거리가 된다.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의무는 없다. 작품으로서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작품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게 과연 정치만의 문제일까?















오에 겐자부로는 대표적인 반전주의자다. 어떤 명분의 폭력도 혐오한다. 일본의 패전 후 학교에서 도망쳐 숲속으로 들어가 혼자 나무와 교감했던 소년은 얼마 전까지 숭배하라 가르쳤던 천황이 일으킨 전쟁과 그 패배, 동네에 들어온 미군 지프 차를 화해시킬 수 없었다. 열병을 앓고 죽음 직전까지 갔던 오에가 자신이 죽어도 다시 또 낳아주겠다는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은 소설보다 더 감동적이다. 오에는 이 책에서 소년 시절의 이야기들 속에 십대 아이들을 상대로 한 경어체로 자신이 깨닫게 된 삶의 지혜들을 들려준다. 겸허하고 자애로운 노교사가 교실에 십대 아이들을 불러모아 쉽고 아름다운 말로 강의를 하는 듯한 책이다. 거만하지 않고 교조적이지 않고 따분하지 않다. 특히 자살 충동을 느끼는 십대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넘길 수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은 그 어느 조언보다 와닿는다. 어른이 읽어도 좋지만, 중고생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대중적인 과학서를 추천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문학적 표현력과 과학적 사고의 절묘한 균형 지점을 찾아내는 데 그 어떤 작가보다 특화된 작가가 아닌가 싶다. 호수의 다리를 걷다 물고기를 통해 의식의 본질과 주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전쟁과 패권 갈등으로 얼룩진 현 세계 정세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물의 실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관계를 통한 과정이라는 이야기와 앎의 주체가 '세계의 일부'로 우리 또한 그 '부분의 부분'에 불과하다는 마지막 이야기는 다시 초입 장자의 인식의 주체와 수미상관으로 만난다. 


오에 겐자부로도 카를로 로벨리도 서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손을 잡는다. 이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일 뿐이며 인식의 전능한 주체가 아니라 단지 이 생을 잠시잠깐 경험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이야기다. 관계 그 자체가 실재이면 그 어떤 형태의 폭력도 타인에 대한 위해가 된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연민할 수 있는 힘 그 자체가 실재인 셈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6-0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에 책도 반갑지만 카를로 로벨리 신작 나온 건 블랑카님 리뷰를 읽고 알았어요.
리뷰 올려주셨을 때 읽고 이번에 다시 읽어도 역시 좋네요^^ 믿고 읽는 블랑카님~ 좋은 주말 되시길요!

blanca 2025-06-07 17:08   좋아요 1 | URL
카르로 로벨리 책 너무 좋죠. 철학적인 물리학자라 그 이론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뭔가 여운이 남는 게 저는 참 좋더라고요. 단발머리님도 좋은 주말 보내고 계시겠죠? 초여름 날씨가 환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