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아주 오랜만에 거리가 좀 있는 도서관에 아이를 데려갔다. 숲이라기엔 조금 덜 한 나무들이 창으로 보이고 다보록하니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서관은 공부하는 열람실도 책을 빌려보는 자료실도 잘 되어 있지만 걸어갈 수 없는 거리인데 교통 편의성이 떨어져 아쉽다. 분량이나 내용적인 면으로 자꾸 망설이게 되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1권만 빌렸다. 생각보다 더 두껍고 무거워서 튼튼한 캔버스 천의 가방을 가져가지 않았으면 들고 오기 힘들었을 모양새다. 전창 앞의 책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에 열중하는 젊은 아이들의 시간이 부러워 살짝 등 너머로 보기도 하고... 그 아이들이 밥을 먹을 식당에서 김밥과 오뎅을 사들고 근처 공원에서 미끄럼틀도 좀 태우다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내 자의적인 생각으로 인생의 중간 정도 온 것 같다. 살면 살수록 더 사는 게 서툴고 두렵다. 이제 아무리 좋은 일들도 마냥 기뻐하기 힘들고 힘든 일들을 툭툭 털어버리는 시원함도 마냥 즐기기 힘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건 상당 부분 아직 미성숙한 내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를 기다리는 순간은 빛난다. 마냥 웃고 온순하고 귀여운 아기의 청사진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례적인 아이와 만나지는 않는다. 반항하는 사춘기 자식도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도 그러한 경우를 상정하고 부모되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직 반도 못 온 것 같은데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배반하고 때로 좌절하게 만들며 다른 차원의 고난이나 상처를 이겨나가기를 요구할 때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기분이 가라앉고 그것은 내가 이제 서른 살이 아니라 마흔 살이 된다는 것과 맞물려 앞에 남은 시간들의 전망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그만 읽을까, 싶었다. 그냥 부모가 되어 부모로 사는 것도 힘든데 어떤 의미로든 특별한 아이의 부모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례적인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애초에 나쁜 부모가 되었을 사람들은 보다 끔찍한 부모가 되고 좋은 부모가 되었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훌륭한 부모가 된다.
-p.27
일상이 무난하고 삶이 비교적 쉬울 때 좋은 사람이 되기란 쉽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고난의 돌부리가 튀어 나오면 우리는 진짜 자기와 진짜 당신을 만나게 된다. 꼭 부모 역할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긍정적 특성과 부정적 특성은 더욱 뚜렷하게 두드러지게 된다. 그게 자신을 닮은 하지만 또한 자신을 닮지 않은 한 사람의 생애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중도 장애가 있는 스무 살 자녀의 어머니가 해마다 아이를 새로 낳는 것 만큼의 고통을 겪는다고 고백한 대목은 이례적인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부모 역할의 고충을 희미하게나마 짐작하게 한다.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 자신도 난독증, 우울증, 동성애로 그의 부모에게 이례적인 기대하지 않았던 자식의 모습으로 맞서 불화한 경험을 고백한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을 기대했던 부모들이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과 만나고 그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들과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십여 년에 걸쳐 인터뷰하고 나누며 그 자신도 부모와의 불화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잔재들과 화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거나 학대한 부모는 여기에 나오지 않는다. 다 나름의 방법으로 세상의 기준에서 평범하고 정상적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아이들을 사랑하며 돌보고 성장시키는 그들의 여정은 참으로 지난하고 고통의 파편들로 가득하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때로 뭉클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성화 수술을 중증 장애인 딸에게 감행한 부모의 이야기, 위탁모에게 아이를 맡긴 어머니의 고백 등도 나온다. 저자는 이러한 행동들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가 부모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갑자기 떨어진 이 고통스러운 숙제 앞에서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때로 도망칠 수도 있음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고결하고 숭고한 지점도 비참하고 어리석고 악한 곳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그렇게 똑 떨어지는 범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할 수 없다.
고통을 제거한 삶은 허상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건 삶이 아닐 거다. 그리고 고통이 흩뿌려진 삶이 고통에 의하여 압도되고 추락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삶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경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고통이라는 거친 파편들은 절대로 부족한 법이 없다. 아무리 행복한 삶이라도 그 안에는 이런 교훈적인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히 많은 고통이 존재했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p.88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우다 둘 다 세상에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가 그럼에도 그러한 경험이 주어진다면 또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숙연해졌다. 너무 무겁고 진지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이라 차마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그 틈새, 공백, 뒤에 가라앉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미덕이, 진실이 숨어드는 지를 이렇게 찬찬히 보여주는 사람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2권에서 진행될 이야기들 역시 부모의 평범한 기대를 어떤 형태로든 배반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