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책을 단지 그것도 다분히 대중적인 저서를 고작 두 권 읽고 그녀의 죽음을 들여다 봐도  괜찮을까. 10대에 결혼하여 20대에 이혼하며 남편의 양육비까지 거절하고 나와 홀로 키운 외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쓴 수전의 죽음 언저리의 이야기들. 

그 자신 뉴욕타임즈에 글을 기고하는 언론인으로 필력도 훌륭하다고 함.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아무리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극단적인 경험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그녀의 얘기처럼 죽음 앞에서는 조금 덜 세련되어지는 게 인간인 것 같다. 그녀도 언제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는 순간까지 온갖 치료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데이비드는 어머니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도록 돕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고백하고 있다고 한다.  

사물에 대한 돌올한 통찰력과 현상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분석이 명쾌하고도 소박한 문장과 어우러져 '지성이란 이런 거야!'라고 시위하는 듯한 그녀의 사적인 얘기가 무척 궁금한 터라 다음 독서가 될 듯 하다.  

 

이건 또 완전 뒷북. 다 읽는다고 줄 서 있을 때 괜히 남다른 척 '주제'라는 이름이 영 무언가, 뜬금없다는 생각에 괜히 뒷짐 지고 있다 OCN 채널에서 모든 영화를 최초 공개한다는 심심한 자막을 무슨 강박처럼 내지르며 광고하던 영화중 <눈먼 자들의 도시>를 조우하게 되었고, 그저 줄거리의 파격성과 그 파격성이 무언가 공명하는 듯한 느낌에 이 책을 읽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쓰면서도 무슨 얘기인지 정리는 안되지만. 하여튼 '주제'라는 이름이 상당히 무언가. 읽지 않아도 책이 지루하고 주제만 설파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 사로잡혔던 나의 단순함이 귀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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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까지 다 읽어 버렸다. 고로. 또 책을 지를 시점이 왔다. 리뷰는 오늘 쓰고. 

대중의 무서운 관음증이 도덕적 타락과 연결되는 지점을 체험했다.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안구하더라. 도와주지도 않더라. 심지어 구경까지. 

예전 미국에서 백주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칼부림을 당하며 울부짖는데 단 한 명도 신고조차 해주려는 생각도 않고 

멀찍이 구경하다 그 희생자가 죽고 말았다는 사건을 읽은 기억이 오버랩된다.  

게다가 수전 언니의 '타인의 고통'까지 공교롭게  

이 시점에 오니 대중의 관음증과 '누군가 나대신 하겠지'라는 책임 떠넘김이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에 대한 기대는 폐기된다.  

어쩌면 파충류의 변연계 뇌만 남아서 팔딱이는 지도.  

자신이 물에 빠지거나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미디어에서처럼 정의의 사도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할 거라는 

환상은 버려라. 나부터도 그래야 겠다. 구경 대상이 안되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본 지하철 선로에서 취객을 구하다 숨진 고이수현씨와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갔다 민첩하게 중간지점에 몸을 엎드린 김대현 군이 극복한 

그 지점에의 경의는 지금 나의 몸 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팔딱이며 들어오고 있다.  단순한 미디어가 전하는 이미지상으로 

간접적으로 느꼈던 그들에 대한 그저 '대단하군.' 정도의 찬사는 비로소 생명의 숨결을 얻은 셈이다.

그들은 충분히 훌 륭 했 다 고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외친다. 

왜냐하면 다수의, 대중의 습성을, 그들은 그 망설임의 지점을 넘어버려 부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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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테제 :  헤겔의 변증법에서 정립의 반정립으로 사물의 발전에 있어 최초의 상태가 부정되고 새로이 나타난 상태.  

  음. 안티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함. 그러나 단순히 반대의 상황을 얘기한다고 단순히 이해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공부가 필요한 부분임. 하루키가 자주 쓰는 용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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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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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을 떴는데, 그녀는 그 눈빛에서 아침에 보았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어떤 우수였다. 그녀는 그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울음이 그녀의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그녀는 서재를 나와 그녀의 방으로 가서 고개를 작업용 탁자에 떨어뜨린 채 눈물이 흘러나오도록 잠시 두었다. <중략> 

그러나 이제 슬픔 자체가 되어버린 여자는 무릎을 꿇고 이 내방객들의 숨소리를 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중략> 

아,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풀어가야 하나.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교보문고에서 서서 '죄와 벌'을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친구들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한 원죄가 섞인 기억만 있을 뿐, 별다르게 그 작품에 대한 감동도 기억도 없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고등학교 때 노총각 문학 선생님이 약간 변태스러운 눈빛(우리들은 대체로 그렇게 느꼈다)을 번득이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위대함을 강변했던 기억 정도가 덧붙여질 수 있겠다. 그는 줄치며 읽는 소설이란 이런 것이라고 몸을 떨며 외쳐댔었지. 그 후로 그 선생님과는 별개로 줄치며 읽어야 하는 그 소설에 대한 일종의 꼭 읽어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줄곧 따라다녔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의무감이 그 작품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은, 아직 그것을 읽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절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픽션과 사실이 혼재하는 메타픽션 장르라고 한다. 그 기법이 대단히 도발적이고 문체가 세련되서 전문적으로 소설작법을 치열하게 공부한 작가의 작품인 듯 보이나, 기실은 유대계 러시아인으로서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소설을 출판해 보지 못한 치프킨이라는 불운한 작가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의사이다. 20세기의 작가(화자)는 레닌그라드로 가는 기차 안에 앉아 재혼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페테르부크를 떠나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가는 여정에 3인칭 시점으로 동참한다. 이 경계는 굉장히 모호해서 작가의 자전적 얘기와 페쟈(도스토예프스키의 애칭 이하)의 얘기가 혼재되어 흔히 말하는 '서술의 일탈'(해설 인용)을 노출함에도 그것은 어떤 오류로 보인다기보다는 몽환적인 시의 잔영을 떨치는 듯한 마력이 있다. 이것은 나의 얘기, 저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얘기라고 친절하게 구획을 지어주는 대신 그는 끊임없이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왕복하면서 어쩌면 그 둘의 삶을 의도적으로 섞어 버린다. 이런 서술은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치프킨의 유대인을 경멸했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경배의 노래는 이렇게 둘의 비애어린 삶을 결국은 한데 뭉뚱그림으로써 완결되었다고 보여진다면 무리일까.  

페쟈의 여정은 그의 다혈질적이고 나약한 성격에서 비롯된 도박에의 중독, 간질발작, 러시아의 주류문단에 대한 소외감에서 비롯된 분노, 거기에 더한 안나에의 집착어리고 열등감어린 애정들이 사물과 사건들에 투영되는 과정이다. 수전 손택은 무엇보다 이 여정이 부부애로 집약된다고 결론지었는데, 페쟈의 속기사로 들어왔다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된 안나의 유약한 성격과 남편의 파멸에의 은근한 방관자로서의 모습은 무언가 아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비애가 서려있는 것이며,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녀의 옷가지까지 저당잡히는 페쟈를 그저 울면서 지켜보는 이 여인의 모습은 앞서 인용한 폐자의 임종 앞에서 슬픔 그 자체로 화한다.  

모스크바의 박물관의 '시스틴의 마돈나'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며 주위의 경악어린 시선을  끌어모으는 페쟈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화랑의 방문객들이 앉아서 쉬거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는 다른 의자들과는 달리, 왠지 거기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의자는 화랑의 직원을 위한 것이거나, 어쩌면 의자 자체에 뭔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페쟈는 뻔뻔스럽고 터무니없게 그 의자에 척하니 두 발을 올려 놓고 직원이 제지하든, 또 거기에서 파생되는  어떤 굴욕감이든 이겨내고 그 한계를 넘어야 했다. 그것은 폐자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다수의 관념, 그것에서 파생된 관습, 그 관습이 만들어낸 말, 말, 말. 상징적으로 소묘된 이 대목은 그 내포한 많은 의미들을 차치하더라도 페쟈의 귀여운 오기가 상상되어 웃음짓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상상해 보라. 머리가 까진 중년의 눈이 퀭한 남자가 갑자기 푹신한 안락의자를 끌어다 그 위에 번쩍 올라가 고작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을 모습이라니. 

옆의 그림이 페쟈가 그렇게 쇼를 하며 감상한 그림이고 죽기 얼마전 지인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 생각해 복사본을 선물하고 지금까지 그의 임종을 맞은 그 소파 위에 걸려있다. 

사실 이 그림이 의미하는 상징과 페쟈의 선호를 연결지어 분석할 만한 지적 소양이 없기에 그저 이 그림을 들여다 보고 그가 임종 직전에도 무신론적 삶과는 달리 복음서를 애타게 찾아 안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던 사실과 견주어 그가 신을 조롱할 거리를 찾지는 않았다는 정도로 마무리 짓고 싶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서두에 인용한 페쟈의 죽음 대목이다. 안나는 페쟈가 그녀에게 어렵게 구해줘 함께 먹었던 포도를 그 때 그처럼 어렵게 구해 그의 입 안에 한 송이 한 송이 넣어주며 그의 회복을 염원한다. 마치 그 한 송이 한 송이에 생명줄이 달린 듯이 눈물을 목 안으로 넘기며 그랬을 안나의 환영이 떠오르고 페쟈의 거친 숨과 계속되는 각혈로 물들은 목언저리의 피들과 그리고. 그리고. 또 눈물 흘리는 나. 그는 알았을까? 평생을 빚과 도박과 따돌림과 간질로 시달렸던 그가 사후에 그렇게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을 줄을. 또 그는 알았을까? 이렇게 폐자의 궤적을 따라가는 쓸쓸한 여정을 그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치루어 냈던 그의 책이 결국 사후에 발간되고 문단의 극찬을 받았을 줄을. 결국 이 둘의 삶은 하나인 것이다. 현실적 한계를 딛고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냄으로써 지고의 진리에 합치되는 그 지점에이 처절한 희구. 그것은 둘 다 공교롭게 사후에 완결된다.  

수전 손택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극찬했던 이 유명하지 않은 소설에 나는 지극한 찬탄과 감동어린 눈물을 바친다. 그리고. 페쟈의 예술을 대가로 처절하게 휘저어진 정돈되지 못한, 정당화되지 못하는 그의 삶에도 후대의 독자들을 대신해 진심어린 공감과 이해의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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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i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 ... 만일 당신이 러시아 문학의 깊이와 매혹을 경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택하려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만일 당신이 영혼을 단련하고 당신의 감각과 호흡에 더 넓은 지평을 제공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수잔 손택,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서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숭배로 바쳐진 작품이며 그와 불운한 작가 치프킨의 소설적 만남을 담은 두 개의 서사가 얽힌 작품이라는 해설 하나로 대체 왜 이런 책을 이제야 발견한 거야?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주문하고 만다.  또한 수잔 손택의 서문의 발췌 부분은 또 얼마나 도발적인가?  기대가 너무 크다.  재미도 있을까?

 

아울러 이 책도 더불어 go! go!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가독성이 좋다 하니 또 기다리는 마음이 더 흡족하다. 서문으로 얽힌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들고 9월달의 독서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아니, 10월달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사실 퇴행해 가는 머리 속에 마구 꾹꾹 눌러 디밀어 넣고 있는 독서의 속도를 조금 제어하고, 이제는 정말 제대로 머리에도 심장에도 심지어 손 끝에도 꼭꼭 여며넣는 독서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음... 그래야지. 수잔 손택이 나를 못마땅한 듯이 보고 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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