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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9-1922=87+1=88
1995-1922=73+1=74
이 연산을 처음 책 날개를 펼쳐 주제 사라마구의 이력을 읽을 때 한 번 했고, 또 중간에 두 번 정도 더하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 했다.
그의 나이, 한국나이로 여든 여덟이다. 이 작품을 쓴 나이는 이른 넷이다.
물론, 단순히 수리상의 노화가 창작의욕과 일에 대한 정력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딱딱한 선입견과 어설픈 관념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의 나이는 상상력이 고갈까지는 아니어도 그 파고가 약해지고,
대중과의 감응도가 약해지는 여정의 끝자락이 아닌가.
지금에 와서야 언젠가는 읽어야지, 의 과제를 완결한 것에 대하여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마르께스에게 달라붙어 있던 그 고귀한 어구를
나는 주제씨에게 당장 훈장처럼 달아주고 싶다.
문장부호를 쳐내고 화법도 마구 섞어 버리는 그의 불친절한 문체는 그저 수사가 아니라
그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들의 본질인 것 같다. 모든 관념, 형식, 사회적 담론들의 철책을 마구 허물어뜨리고
내외적으로 알몸이 된 인간들의 본질에 가 닿는 것. 그 본질에는 단순한 생존의 욕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간의 기본적 연대에 대한 희망이 아스라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한 것일까.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을 읽다 보면 실명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당자들에게 극한의 고통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뇌의 지형도를 변형시켜 시각으로 인지하는 세계 자체를 망각하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다시 세계를 재구성 인지하여 적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름대로 살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의 실명은 백색 실명으로 특성화되었고, 전염병화되어 실명한 자들을 배척하고 격리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대치되었지만. 그 세계에서의 나름대로 진화되는 생존 방식은 결국 인간은 살아지게 된다는
끈질긴 명제를 증명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 실명의 세계에서는 약탈과 폭력과 속임이 난무하지만, 젊은 매춘부 출신의 아가씨가 노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즉, 보이지 않은 것의 가치가 불쑥 디밀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단 한명만 남기고 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세계를 공간화하고
또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마치 영화 장면 처럼 기막히게 시각화하는 그의 능력.
담뱃재 털며 마구 참견해 대는 싫지 않은 전지적 작가 시점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맥 빠지지 않는
반전이 있는 결론까지 어디 하나 감탄이 안 나올 구석이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어느 정도 다운되어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갑자기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맹인들이 어우러져 절규하는 장면들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일상의 수많은 것들에 뻔뻔하게 집착하는 스스로가 염증스럽게 느껴지고,
박팀장이, 김과장이, 혹은 그 누군가의 목에 난 털 하나까지도 얄미워질 지경이라면,
이 소설을 시작해야 한다. 당장.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423쪽)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4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