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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그는 인간의 존재를 표준으로 내세워서 이 세계를 안과 밖,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사물과 풍경에
함부로 구획을 설정하지 않았으며...(중략)...그의 마음은 모든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과 친화할 수 있었고,
친화로써 비밀에 닿았고, 그 친화의 힘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통로를 열었고...
-김 훈의 <공무도하> 中
<공무도하>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여주인공 노목희가 작업했던 역사기행서의 저자 타이웨이 교수였다. 그에 대한
묘사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김훈의 천착과 그것을 담은 절제되고도 유현한 그의 문체가 어우러져 빛나고 있었기에 안구
속에 꾸욱 꾸욱 눌러 담고 싶은 것이었다.
타 이 웨 이 교수를 나는 만났다.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대명문가의 후예로서 1910년 한일합방후 지금가치로 대략 환산하여 600억 이상의 자산을 일시에 처분하고 가문전체가 중국 망명길에 올랐던 이회영 일가.
환갑이 훌쩍 넘어서도 조국을 위한 무장투쟁을 하겠다고 영국 선적의 제일 밑바닥 4등 선실에 몸을 웅크리고 떠났던 사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진부한 수식으로 그를 가두고 싶지 않다. 어떤 지향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쉽진 않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세속의 잣대로 추앙받는 가진 것들을 모두 내던지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극복해야 하는 터라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그것을 해내고 비참하게 빈민가를 떠돌다 마침내 산화했다.
국사에서 근대사는 유난히 간략하고 불친절하다. 학창시절 정력적이었던 국사 선생님도 근대사는 암기할 대목만 짚고 가버렸다. 이해와 공감이 빠진 근대사 공부는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정도만 가까스로 남기고 도망가 버렸다. 지금에서야 통탄한다. 독립운동사는 사실 민족적 자각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의 결정적인 매개의 지점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현대사는 객관적이기 힘들다는 명분을 가지고 온 식민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지 유난히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소흘해 왔다. 지금은 이미 독립운동가들이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복원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한다. 어제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예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피를 따라 흐르는 선조들의 역사의식과 투쟁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너무나 기본적인 전초작업이다.
이 책은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의 대동사회를 꿈꾸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간 이회영 일가와 더불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배계층의 독립운동사를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 양반 사대부 계층은 대체로 전근대적이고 기회주의적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복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단 이회영 일가뿐 아니라 이상설, 이건승, 홍승헌 등 수많은 이들이 가진 것들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극빈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이국만리에서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그들은 일제강점하의 고국에 자신들의 시신을
반장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당시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이라는 세 가지 이념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해방후 결국 분단으로 치닫는
하나의 촉매가 된다. 이런 이념의 구획은 극한 상황에서의 처절한 투쟁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필요불가결했지만 이 구획의 언저리에서는 동족을 불신하고 배신하고 죽이는 비극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슬픈 대목이다.
오늘의 굶주림을 참기 위해 머리 속에 채워넣어 가슴으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 그 허위의 도식에 대한 집착은 인간 본연의
한계가 아닐런지.
또한 아나키즘이 단순히 무정부주의이며 허무주의적 색채가 강하다고 회의했던 나에게 철저한 아나키스였던 그가 주장한 지방자치주의, 무상 교육에 대한 선구자적 자각은 지금의 시점에서 봐도 놀랍다. 민중이 민중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되어
차별없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그 이상주의적 이념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과 연대에 대한 희망이 본령이다.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염원, 하나의 꿈, 하나의 희망이다.
입을 옷이 없어 산책가자고 하는 지인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쌀이 없어 시아버지 밥을 못지어 슬퍼하는
며느리 앞에서 퉁소를 불며 시름을 달래는 비장한 낭만을 아는 사람, 숱한 일제의 고문 앞에서도 함구하고 결국 비참하게 간 사람. 그의 삶이 외형적으로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정받을 정도로 전락한 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비루한 인간사에서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의의 지향을 위해 투신한 이의 삶을 듣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아름답다. 삶은 찬란하다. 또다른 한 켠에서 벌어지는 그 그악스럽고 던적스러운 삶이 있음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고결한 가치로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민족주의 태내에서 무정부주의의 성장, 그 사상적 투쟁단계 그리고 전시의 전투체제로 전환 등의 과정을 우리는 우당이란
한 사람의 생에에서 읽을 수 있다. 우당의 최후는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장렬한 산화였다. -하기락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