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사수의 추천으로 김훈을 만났다. 나이는 세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그는 명철하고 기민해서 조직에 맞춤한 사람이었다. 냉정과 실리가 점령한 사회에서 상처받아
기우뚱하고 허우적대는 나에게 그는 창의력을 기르려면 책을, 특히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얘기했다. 촌스럽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당장 그 책을 샀고 꽤나 힘겹게 읽어 갔다.
솔직히 나는 그의 문장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수사도 거부한 채 문장 자체를 툭툭 휘갈겨 던져내 놓은
듯한 인상은 내내 불편했고, 현학의 과시마냥 쉽지 않았던 단어들의 조합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재미가 없어 숙제하듯 읽어냈고, 그 후 무슨 의무마냥 그의 신간을 사모았다.
간간이 그가 발표한 단편들은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그의 작품은 진중했지만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했던 <언니의 폐경>과 <화장>이었다. <남한산성>도 몰입하여 읽지는 못했다. <공무도하>에서 마침내
그의 그 건조한 문장은,그 몸으로 밀어내는 듯한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영들은,놀랍도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짧고 여전히 버석댔지만, 그 간결함과 그 응축의 미가 드디어 나를 향해
깨어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인용되어 거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그의 이런 문장.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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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이름이 주는 그 아련하고 섬세한 느낌이 문장에서도 그대로 풀려 나온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물론이고 과연 있을지 없을지 짐작조자 할 수 없는 내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의 전생과 , 그 나머지 모든 전생들까지도 아주 근사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줄줄이 비엔나 같은 표현기법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이미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약간 배신감을 느꼈다.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서려 있는 이 귀여운 문장도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에 열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의 어투를 닮게 된다. 이를테면, 을 자주 쓴다고 인터뷰했던 그의 기사를 읽고 다음날부터 나의 글들에는 부쩍 '이를테면'이 빈번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글을 쓰면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문장을 닮아가기 때문이란다. 실제 리뷰에는 흔하게 작가들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어휘들이 나온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98/84/coveroff/895460398X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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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는 뒤늦게 읽은 <외딴방>을 더 좋아한다. 초기작인데
오히려 후속작들보다 문장들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떨었다.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생각했던 바로 그 대목이 언어로 명징하게 떠오르는 순간, 바로 이거였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녀의 문장은 섬세하고 유려하고 시적이다. 한없이 보드라운 그 속살에는 문학 소녀의 여린 감수성이 향수처럼 배어 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272/78/coveroff/8936433679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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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우리 모국어가 담아낼 수 있는 그 수많은 사연들의 응축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놀라웠다. 수많은 사연, 광경을 그려낸 문장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빛나는 시의 어구 같았다.
햇빛이 교장 선생님의 안경을 가로지르고 그 뒤 흑판에 아아아아아아 떨며 금을 긋고 있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32/99/coveroff/8932009872_1.jpg)
낫을 벼리듯이 치열하고 처절하게 다듬어 내어놓은 문장은 그 자체로 작가들의 투혼을 발산하기에 찬란하다.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허섭쓰레기들을 반드르르하게 치장만 해서 호사스럽게 내놓았을 때 그것에 대한 공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자신의 삶을,혹은 다른 그 누구의 공감하는 삶을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의 매개의 중추에 놓여 있는 언어를 화해시키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은 영원히 끝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