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한 성격이고 신도 금방 나는 타입인데 요새는 계속 꾸준히 침울하다.
달라진 정황도 크게 없고 나를 크게 고통스럽게 할 외부적 요인도 없는데 이런게 우울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치고 내려갈 때는 참 답답하다.
왜 그런고 짚어보니 가까운 데는 나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없고(왜 책을 사서 읽냐, 책읽을 시간이 있냐. 이런 이야기들)
무언가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자 했는데 옆지기의 시니컬한 반응과 녹록지 않은 현실들.
현모양처 운운하며 올가미를 옭아매는 사람들. 속물근성이야 인간의 본질이지만 그것을 자랑처럼
떠벌여 대는 인간들. 낮잠을 생략해주려 하시는 따님. 따위의 이유거리들이 떠올랐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우울로 기우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서는
의지로 만드는 거라 했다지만 그 의지를 끄집어낼 힘도 없을 정도다.
지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알라딘 서재와^^;; 자비로 책을 출간하라고 부추기고 대학을 한 번 더 같이 가자고(그럼 도합 세번인데 이건 좀) 바람넣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이쁜이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배 속에 천원을 끼고 날라온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처음 받아봤을 때는 기대보다 더 헐어 있고 낙서 자국도 있어 좀 뜨악했지만 판매자의 천원과 사과메모를 꾸욱꾸욱 작성하여 넣어주신 그 귀염성과 익살에 압도당해 기분이 괜찮아졌다.
이 무식쟁이는 스티븐 킹이 <미저리> 작가인 줄도 몰랐다는.
지금 자서전격인 이력서 부분을 막 다 읽었는데 나를 우울의 늪에서 완전히 끌어내어 줬다. 진짜 정말 우와 진짜 너무 웃기다. 읽다가 뿜다가 이런 식이다. 이거 이거 이태준의 <문장강화> 같은 책 절대 아니다. 내가 다 못읽은 몇안되는 책. 내용은 좋다지만 지루했던 <문장강화> 스티븐 킹의 창작론이라지만 그 부분까지는 미처 못갔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 유명작가가 되기까지의 그 신산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았던 과거사에 푸욱 젖어 있다. 특히 유년시절 얘기들은 티비 개그프로 한 다섯 편은 봐야 쏟아낼 수 있는 깔깔거림이 일시에 터져 나올 정도다.
그리고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의 반전. 알코올과 마약 중독을 고백하는 대목은 그 자체로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더이상 아내가 던킨도너츠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그 자신 세탁소에서 구더기 끓는 시트를 세탁기에 디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 그 시점에서 빠진 중독들. 그 속에서 인생이 자신을 따돌리는 듯했다고 고백하는 대목. 킹 아저씨. 지금은 아픈 사람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 느껴지는 지금은 당신의 손을 잡고 싶군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저는 당신에게 완전히 매혹당했답니다. 그게 중독자들의 특징이라고 하셨지만.
요즘들어 대중이 원하는 작가는 그리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작가는 예전처럼 문장을 추상성과 기교로 감치고 서사의 속살은 거칠한 고상한 작가가 아니라 속어와 은어도 적당히 기지있게 활용하고 문장 그자체의 완성도는 좀 미숙하더라도 넘치는 상상력과 다이나믹한 서사의 속살을 드러낼 수 있는 스토리지향적인 작가가 아닌가 한다.
이제 모든 서사는 문자로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즉물적인 형상화로 몸전체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지점으로까지 와버렸다.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장의 흐름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가들의 판도도 뒤바뀌어질 수밖에 없다. 스티븐 킹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의 넘치는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좀 무엄할 수도 있는 문장들이 빚어낸 단상들이다.
상상의 여지가 많을수록 더 부담스러워하고 그 상상력으로 그릴 수 있는 지도까지 아예 통째로 들고나와주기를 바라는
상상하기를 두려워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차근차근 상상력이 들이밀 수 있는 행간을 만들어 주는 지루한 작가보다는
그저 하나하나 도달할 수 있는 상상력의 천장까지 닦아서 만들어 주는 친절한 작가에 흥분할 수밖에.
주저리주저리 우울하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참 엉뚱한 길로 잘도 비약해서 오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