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지금 내 몸에 하는 건 십 년 뒤에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어."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그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오 년 전에 한 이야기다. 난 당시 지독하게 진한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서너 잔 우습게 들이붓고 있는 중이었다. 속은 아주 가끔 쓰렸지만 받아주니 나는 개의치 않고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각성의 느낌이, 하루에 여러 번 아침을 맞는 느낌이 좋았다. 나는 내 몸에 불친절했다. 


그로부터 십 년도 흐르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처럼 나는 역습을 맞고 있다. 이젠 라떼 한 잔도 속이 쓰려 아껴 먹는다. 그렇다고 내 젊은 날들을 몸에 좋은 것만 하며 수도자처럼 살았다면 절제와 관리와 중용의 길을 걸었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좀 낭비하고 실수하고 무절제하고 그러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리화해본다.

















자기 관리가 미덕인 시대, 새벽에 일어나 모닝페이퍼를 쓰고 샐러드를 먹고 홈트를 하는 젊은이들의 브이로그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매일 진다. 무엇에? 야식에. 배달음식에. 이런 실패와 자기 관리의 좌절의 이야기는 낯설다. 낯선데 너무 공감이 가서 계속 맞아, 맞아 하며 읽게 된다. 우리는 진다. 때로 지며 살아 나간다. 살아왔다.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고 두부만 먹고 해야 할 일만 하며 그렇게 잘 살면 좋겠지만 매일 실망하고 넘어지고 낭비하고 그렇게 여기까지 온다. 그것도 삶이다. 오늘 아침에는 커피를 안 마시기로 했는데 마셔 버리고 쓰는 페이퍼다. 


그의 신간이 나왔다...
















때로 단순하고 덜 복잡하게 무념무상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싶다. 그런 면에서 제목과 표지가 좋다. 여전히 밤에는 야식을 먹고 배가 부른 채로 잠드는지 위염과 역류성식도염은  요즘 좀 어떤지 궁금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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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9-30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당분간 안 마시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 않을까요?
어제 TV에서 그러는데 공복에 커피를 마셔 보라네요.
장 운동이 활발해져서 배변에 도움이 된다고.
근데 잊기도 했거니와 기억 났어도 자신이 없더군요.
빈속에 커피 마시면 속 쓰려서.
근데 전 찬바람 나면 장이 잘 안 움직여서 연하게 마셔 볼까 생각중이어요.^^

blanca 2021-10-01 10:2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는 카페인 중독이라 그게 정말 너무너무 어려워요.--;;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scott 2021-10-12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대체 할 수 있는 음료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렇게 기온차가 큰 계절로 접어 들때는 ㅎ

blanca 2021-10-13 07:56   좋아요 0 | URL
커피 대체 음료는 정말 없어요...그 쓰디쓰면서 달콤하면서 각성을 주는 맛!
 

벨기에의 그림책 장인 키티 크라우더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서 추천한 책은 의외로 한국인 소설가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이다. 그녀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했다. 키티 크라우더의 부모로서 아이들 양육에 관련한 조언도 참 좋았지만 유럽 그림책 작가가 아시아의 그것도 한국의 소설가의 작품을 주변인에게 추천한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안 읽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난 그의 원작을 대면할 수 있지 않은가.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은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일단 이야기 자체가 단숨에 읽힐 정도로 몰입감이 좋다. 끊임없이 긴장감이 유지되고 그 사이를 촘촘하게 사유 깊은 문장들로 채워간다. 사실 사창가를 배회하는 주인공의 도입부에 좀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화자 기현이 그 사창가에 가게 된 연유를 짚어나가다 보면 작가가 여성을 도구화하기 위해 그 장면을 초반부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는 군에서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형 우현이 있었다. '나'는 매사에 나보다 뛰어난 형에게서 열등감을 느꼈고 그의 여자 순미에게 몰래 연정을 느끼게 된다. 형의 삶이 무너진 데에 나는 본의 아니게 역할을 하게 되고 그 죄의식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나는 저도 모르게 형의 삶 속으로 속죄처럼 들어가게 된다. 그의 헤어진 연인을 찾아내고 그의 진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형의 것들을 욕망했었고 그것을 가진 형을 때로 질투하다 마침내 다 잃어버린 형 앞에 채무자처럼 서게 된다. 나의 삶은 그것의 상환의 과정이 된다. 


이야기는 어머니의 좌절된 사랑과 중첩된다. 언뜻 장애인이 된 아들을 사창가에 업고 가는 그 처절한 비애의 정조로서만 자리할 것 같았던 기현의 어머니는 비극적인 사랑과 남천이라는 성소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여기에서는 신체의 훼손으로 욕망 자체에서 탈출하여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형의 마음과 좌절된 사랑의 염원과 경배를 담은 욕망의 현현으로서의 남천의 야자나무와 이 모든 것들을 초탈하여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형을 기꺼이 사랑으로 받아준 아버지의 물푸레 나무가 있다. 이 식물들의 사생활은 무력하거나 무생물적이거나 배경에 그치는 것들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좌절들을 승화시키고 포용시키는 해원의 장이자 화해의 지대를 품은 너른 수목의 품에 관한 이야기다. 이승우의 결말은 그래서 허무하거나 형식적이지 않다. 


햇살은 바다 위에 떨어져서 눈물이 된다. 보석처럼 빛나는 눈물. 그러나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마지막 문장. 극적인 화해도 재회도 없지만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서 끝을 맺는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들 앞으로 여전히 험로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현실과 분투하며 살아나가는 삶의 공통의 장을 공유하는 그 식탁에서 생은 스러지지 않는다. 작가의 그런 긍정의 여지가 자칫 어둡게 침잠하기 쉬운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키티 크라우더가 주변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시간성과 생의 온갖 질곡과 충돌하여 좌절되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다른 차원에서 승화시킨 이야기가 보편의 공감을 자아낸 듯하다. 절망하기는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밀고 나간 작가의 저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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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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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음산한 이야기를 이렇게 희망적인 결말로 완벽하게 완결 지을 수 있는 작가라니 놀랍다. 좌절된 사랑을 봉합할 수 있는 언어의 향연이 예술이다. 어떤 한계나 경계 너머로 이미 넘어가버린 작가 같다. 프랑스 작가들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또 한 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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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2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문장 좋아하는데다 블랑카 님이 별 다섯 주신 소설이니 냉큼 담아가요. 식물들의 사생활 궁금합니다. 프랑스 작가들이 좋아한 소설이라 더더욱 당기네요. 표지도 좋아라^^

blanca 2021-10-13 07: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반갑습니다. 저는 사실 이승우 작품은 별로 읽은 게 없어요. 단편집 한 권 정도와 산문집 두 권 읽었는데 외국인들이 극찬하는 작품이라 해서 <식물들의 사생활> 읽게 됐는데 이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일단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기도 하지만 뭔가 신화적인 깊이가 있는 참으로 매력적인 작품이랍니다.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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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한평생 자기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죽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그와 당신이 아는 그는 백팔십도 다를 수도 있다. 관대하고 정의로운 그가 때로는 무례하고 치졸한 인간의 면면을 다른 사람에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 정도로 다채롭고 복합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다. 그 사람 어때? 라고 묻는 일은 호기롭고 이미 거짓과 가식을 예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줄 수 없다. 오직 나에게 유난히 부각된 한 면만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몇몇의 장면만을 조각조각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케이크와 맥주>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칭송하는 노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앨로이는 동료 작가인 나 어셴든에게 드리필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그가 유명한 작가가 되기 전 첫번째 아내 로지와 블랙스터블에 살던 시절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숙부, 숙모와 사는 십대 소년이었고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그 부부와 어울려 자전거를 배우고 카드놀이를 하며 그들과 어울린 시간들이 있었다. 그 우정은 기이하고 은밀한 나의 성장통의 일부였다. 그 부부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블랙스터블을 도망치다시피 하듯 떠나고 나는 의대생이 되어 다시 그들과 재회한다. 그 재회는 드리필드의 어린 아내 로지와의 어셴든의 애정 행각으로 이어진다. 유명한 작가의 그럴듯한 부인이 되기엔 로지는 너무나 자유분방했다. 로지는 남편을 두고 뭇남자들과 어울리는 그녀를 질투하는 어셴든에게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pp.224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생을 즐긴다. 자신을 원하는 남자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준다. 누구는 그녀를 천박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은빛이 나는 여자라고도 한다. 로지는 드리필드에게서도 도망친다. 그녀는 위대한 작가의 아내로 남는 대신 유부남과 다시 미국으로 도망가는 추문을 남긴다.  어셴든은 늙고 살찐 로지와 재회하게 되지만 그녀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녀가 남들이 얘기하는 저속하고 천박한 삶이 아니라 딸을 잃은 상처와 편견을 딛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낸 사람임을 깨닫는다. 


서머싯 몸이 <케이크와 맥주>를 통해 드리필드의 신화를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 드리필드가 연상하는 작가가 토마스 하디라고 추측했다. 불멸의 신화가 되어버린 작가가 사실 가장 좋아했던 일은 소박한 펍에서 노동자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었다는 것, 자유분방한 어린 아내가 뭇남자들과 바람을 펴도 눈감아줬던 무능력한 남편이 아니라 어떤 상실을 치유하는 데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존중했다는 것은 그 작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의 이해였다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케이크와 맥주>는 폄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환희로서의 가치,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그 찰나적 경탄 또한 인생의 한 측면임을 간과하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나에게는 들렸다. 이것은 도덕적인 교훈이나 훈계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이제 곧 유명해지겠지만 또 헤어질 한 중년의 부부에게서 자전거를 배워 함께 날듯이 바람을 가르며 잊기 힘든 환희를 느꼈던 소년의 시간이 남는다. 어셴든에게 남은 드리필드의 이야기는 그러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십이 될 수 없는 찬란한 추억이다. 그러한 이야기는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서머싯 몸이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셴든은 서머싯 몸 자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케이크와 맥주>를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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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2 1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설마 드리필드가 토마스 하디 !

하디가 굉장한 성실한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아내로 인해 맘 고생은 많이 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하디의 생애를 모옴이 이렇게 작품으로 남겼던 이유는 ??


blanca 2021-09-22 19:46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서머싯 모옴 작품은 좋아하는데 인간 자체로는 근처에 있었으면 참으로 싫었겠다 싶어요. ^^;;; 하디의 아이가 어렸을 때 죽은 일을 작품화해서 난리가 난 것도 다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이 작품 관련한 자세한 비화를 알고 싶어요. 작품만 놓고 볼 땐 저는 정말 너무 좋았어요. 흥미와 깊이를 다 갖춘 이야기더라고요. 그런데 서머싯 모옴뿐만 아니라 유독 토마스 하디 관련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1-09-23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책 읽고 있습니다.

다만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책
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스러
운 샘의 책이 나오는 바람에 그만...

모옴의 돌려까기가 진정 -

blanca 2021-09-24 10:01   좋아요 1 | URL
아, 반가워요. 재미있죠. 모옴이 좀 그래요^^;;
 

아마 교보문고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나는 거기에 서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물론 중역본이었고(당시는 그랬다), 축약본이었다. 무척 지루했고 음울했지만 나는 "읽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허영으로 서서 온전치 않은 <죄와 벌>을 말 그대로 활자만 읽었다. 이후로 나는 내가 <죄와 벌>을 읽었다고 착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학생 청년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창녀와 유형을 가는 이야기로 그렇게 기억하면서...





다시 <죄와 벌>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팟캐스트를 듣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죄와 벌>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이렇게 활자가 폄하되는 시대에 1800년대의 러시아어로 쓰인 분량도 적지 않은 책이 여전히 읽힌다는 건 분명 그걸 읽음으로써 얻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죄와 벌>의 완역본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다시 읽은, 아니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죄와 벌>은 놀라웠다. 놀라운 현재적 가치를 지닌 그야말로 위대한 작품이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고답적이지 않았고 몰입이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청년 라스콜니코프가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는 점. 가난한 법대생이 아니라 정말 처절할 정도로 극한 빈곤에 시달려 대학 생활도 지속할 수 없었던 비참한 상황이었다는 점.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바로 뛰어들어 도와주고야 말았던 내적 선함을 간직했던 청년이었다는 점. 끝까지 자백과 은폐 사이에서 갈등했다는 점. 그러한 점들이 새롭게 읽혔다. 그리고 친구 라주미힌. 라스콜니코프 곁을 끝까지 지키고 그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책임지는 그의 우정이 감동적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점은 그가 창조하는 캐릭터가 가지는 설득력이다. 많은 작가들이 죽어 있는 전형적인 인물을 자신의 각본대로 움직이기 위해 활용한다. 잠깐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스토리 자체에 몰입하거나 재미를 느꼈다는 착각을 할 수는 있지만 진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이 하나의 성취로 가는 경계가 나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모두 살아서 지면을 뚫고 나온다. 특히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네치카에게 흑심을 품고 덤볐다 자살을 택하게 되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죽음 전 행적은 인상적이다. 여자를 탐하고 아내를 독살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그가 죽기 전 택한 일은 놀랍게도 자선이었다.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 없어진 소냐의 동생들이 살아나갈 방도를 세심하게 마련해 준다. 유들유들하게 라스콜니코프를 압박해 오는 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 또한 의외의 면을 보여준다. 그는 언뜻 라스콜니코프의 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에게 삶 그 자체의 가치를 깨닫도록 주도면밀하게 이 청년에게 접근해서 감형을 유도해 낸다. 이 둘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내면을 지니고 궁극의 영향을 주인공에게 끼치게 된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을 고백할 수 없지만 결국 지금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껴안고 어머니 앞에 선 아들의 장면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저릿했다. 



"아, 어쩜 이렇게 더러워졌니."

"어제 비를 맞았어요, 어머니......"


이 짧은 대화만으로 모든 것을 모자는 소통한 것처럼 보인다. 둘이 미처 주고받지 못한 말들 사이로 엄청난 고통의 시간들이 지나간다. 어머니는 전도유망했지만 가난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들에게 이루지 못할 희망을 끝내 환각처럼 간직한다. 살인자로 유형을 떠난 아들. 


결국 자백하고 소냐와 함께 유형을 떠난 라스콜니코프의 엔딩. 마침표는 사랑의 발아다. 나는 이런 결말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비관적인 결말을 예정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 줄 오해했다. 이런 아름다운 아쉬운 결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살인자의 이야기를 삶으로 사랑에 대한 기대로 끝낼 수 있는 작가가 이 지구상에 이 작가 말고 또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끝까지 참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지도 않으면서 읽는 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도.


하지만 여기에서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점차 옮겨가고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을 알아가며 점차 다시 태어나는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을 맺는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선과 악의 경계, 죄와 벌의 간극, 생과 죽음의 거리, 이 모든 걸 기꺼이 해체하여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의 지형도를 펼쳐낼 수 있는 그러한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은 읽는 일이 가지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나는 오늘 비로소 제대로 <죄와 벌>을 처음으로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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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15 19: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두 올해안 죄와 벌은 꼭 다시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도끼쌤 탄생 200주년이라 해서 나름 추모하려구요!ㅎ 30대에 읽은 어설픈 감정만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이해할수 있는 좋은 키워드를 많이 던져 주셨네요! 감사드리구요, 즐건 독서하시구요!ㅎ

blanca 2021-09-16 10:26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왜 사람들이 도끼, 도끼 하는지 벌써 태어난 지 200년이 된 작가의 책을 여전히 이야기하고 읽는지 저는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이 사람은 뭔가 경계를 넘어서 훨훨 날아간 사람인 것 같아요. 책의 문장들이 살아 있어요.

다락방 2021-09-15 1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죄와 벌 다시 읽겠습니다. 저는 열린책들 읽었었는데 아 열린책들로 다시 읽을까요(가지고 있습니다) 블랑카 님처럼 문동으로 읽을까요. 아 너무 빨리 읽고 싶어요!!

막시무스 2021-09-15 19:51   좋아요 2 | URL
책을 읽겠다는 강한 의지는 구매로서 완성된다는 신념을 가진 1인으로서 문동판 구매를 적극 권장드립니다!ㅎ

다락방 2021-09-15 20:05   좋아요 2 | URL
아아.. 왜 이러시는 겁니까……. 흑흑 ㅜㅜ 그게 낫겠죠? 🙄

blanca 2021-09-16 10:27   좋아요 1 | URL
ㅋㅋㅋ 다락방님, 우리의 재독은 소비를 합리화한다. 저는 요새 이렇게 새로 나온 버전으로 다시 고전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답니다. 새 종이의 감촉을 느껴 보시죠. 가독성이 정말 좋더라고요.

새파랑 2021-09-15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까 죄와벌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 이 책 너무 좋더라구요. 좋은 책은 다시 읽을수록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blanca 2021-09-16 10:28   좋아요 1 | URL
고전이 왜 고전인지 알겠더라고요. 진짜 마지막 장 읽는데 더워 죽겠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작가는 그냥 태어나는 것 같아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접신들린 작가 같아요. 인물들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냥 도스토옙스키한테 쏟아져 들어온 느낌....

라로 2021-09-15 2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으니 다시 제대로 읽고 싶어져요!!! 저도 열린책으로 읽었는데 문동으로 다시 읽어볼까요? 그런데 전자책이 없네,, 철푸덕

blanca 2021-09-16 10:30   좋아요 0 | URL
이미 읽으셨군요! 저는 한 권짜리(말도 안 되는 축약본이죠) 완전 오독한 상태에서 제대로 처음 읽으니 정말 너무 너무 좋더라고요. 너무 짧아서 화가 날 정도였어요. 고전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새로운 감상이...아, 그런데 왜 전자책이 없을까요? 조금 기다리시면 나오지 않을까요? 보니까 세문은 거의 전자책으로 나와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