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화살 - 작은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꿨는가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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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설날에 형제,자매, 조카들과 한데 모였다. 당시 우한이라는 생소한 중국의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봉쇄령이 내리고 며칠만에 대규모의 병상을 완공시킨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모두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때 이런 모두가 함께 모이는 가족 모임은 마지막이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에는 많은 나라들이 그랬다. 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하나의 아주 드문 운이 나쁜 경우로 봤고 국경을 그들에 닫음으로써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전염병 정도로 여겼다. 


2021년 11월 우리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지만 전세계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 팬데믹이 종식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내심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 누군가를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만나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됐다. 백신이 완료되어야 하고 큐알 코드를 찍어야 하고 막간에는 마스크를 올리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됐다. 어디에서 어떻게 걸린지 모르는 코로나로 나는 공공에 어떤 피해를 끼친 것처럼 때로 매도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들이 나의 동선을 따라오게 됐다. 그래서 사우나를 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티를 받고 싶은 마음을,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을 연기한다. 이것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다. 이제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이것이 미친 여파를 수습하는데 필요한 기간까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다. 


어떤 현상이 지나가고 그것의 영향을 분석하고 기원을 탐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을 통과하는 와중에 그것의 의미를 다각도로 점검하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미 그 여파의 당사자가 되어 있는 마당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식견을 가지는 일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 많은 미지수를 처리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시도한 책이 바로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의 <신의 화살>이다. 원제는  Apollo's Arrow다. <일리아스>에서 나오는 아폴로가 트로이에 퍼부은 그 화살로 코로나의 은유다. 우리는 아폴로가 화살을 마침내 거둔 것처럼 코로나의 종식을 염원하고 있다. 


사방의 만물이 무로 돌아가고 허물어지고 애달픔만 남았으니......매매가 그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세속적 부를 누리던 상점들과 사채업자의 거대한 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온 도시가 소멸하기라도 한 듯이 멎어버렸으니......그렇게 모든 것이 그치고 멈춰버렸다.

-pp.201


마치 2020년도의 락다운을 했던 도시들의 풍경들의 묘사 같다. 그러나 이 기록은 1500년 전 페스트가 유행할 때의 역사가 요한의 기록이라고 한다. 난생처음 맞이하는 재난 같았던 풍경이 사실 역사 속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되었던 고난의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류는 주기적으로 전쟁과 기아와 역병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 장구한 지난한 세월들의 기록이 이제는 그것을 직접 겪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이것을 통과하고도 여전히 번영하고 서로를 믿고 내일을 기대하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저자는 과학적 정보와 인문학적 지식의 통섭을 절묘하게 이뤄냈다. 각종 고대, 중세, 근대의 문헌 등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전염병의 기록과 문학적 자취를 시의적절하게 인용하고 우리가 현재 코로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과학적 발견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와 그것이 우리의 사회와 경제에 끼치는 영향과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그러나 결국 기본적으로 이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의 선의와 서로 연대하려는 노력, 과학적 진보의 결실을 통해 우리가 결국 이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전반적인 기조를 이룬다. 그것은 이 책의 긍정성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내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안이라는 것은 안도를 주지만 그것이 명쾌한 해답은 아니다. 


현대의 과학, 의학의 진보가 대재앙을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케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발견은 놀랍다. 실제 오늘날의 거리두기는 이미 과거의 전염병이 올 때마다 선조들이 나서서 했던 행위라고 한다. 인류는 이미 서로 병을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했을 때 거리를 두고 격리를 하는 일들을 반복해 왔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의료인과 종교인은 나서서 병자를 치료하고 간호했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것은 인간들 간의 연민과 선의다. 이것을 뛰어 넘을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코로나는 다시금 이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의 계획은 우리의 운명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모든 진보가 양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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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불완전하다. 실제 우리처럼. 가장 사랑 받았던 캐릭터 올리브 키터리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불쑥불쑥 남의 일에 끼어들고 참견한다. 실제 주변에 이런 할머니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가셔할 것이다. 그러니 차 안에서 옛 스승을 보게 된 제자는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고 목을 움츠릴 수밖에. 그러나 이를 그냥 지나칠 올리브가 아니다. 그녀는 눈을 피하려는 구태여 제자를 불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무람 없음은 결국 타인의 삶에 끼어들고 개입함으로써 어떤 공감과 소통의 영역을 만들어 낸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는 풍경이다.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 올리브 시리즈는 아니고 루시 바턴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지독한 가난과 학대를 경험한 그 루시 바턴이다. 그녀가 노인이 되어 하는 이야기들은 전남편 윌리엄을 중심으로 엮여 있지만 결국 그녀 자신의 이야기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윌리엄은 루시 바턴의 전남편이다. 루시 바턴과는 달리 부잣집 출신이다. 과학자이고 끊임없이 외도를 했다. 심지어 루시 바턴과의 친구와도. 그러나 쿨하게도 루시와 윌리엄은 성인이 된 두 딸의 문제를 함께 상의하고 심지어 떠나간 각자의 배우자 이후의 성가신 일들을 함께 처리한다. 윌리엄의 엄마가 그를 낳기 전에 떠나온 딸, 즉 윌리엄의 이부 누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도 동행한다. 루시 바턴에게 고급한 취향을 전수하고 때로는 루시 바턴의 출신 배경을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했던 윌리엄의 어머니에 얽힌 비화와 소설가로 성공하고 난 후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여전히 간직한 그녀가 어떻게 이 여정에서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동서양의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우리에게 여전히 호소력을 지닌 것은 그녀가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기댄 어떤 근원적 고독감과 삶에 대한 갈망을 섬세하게 포착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박물관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며 그 안에서 밤을 새워 일하는 가상의 직원을 상상하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이야기 같은 것. 실제 박물관에 그런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이야기의 빛에 기대어 때로는 이 고단한 현실을 버텨나갈 힘을 얻는다는 통찰이 와 닿는다. 또한 어떤 결핍이 그 사람의 내면을 점령할지라도 그 사람이 삶을 살아나가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망가뜨리지는 않는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신뢰 또한 따스하다. 스트라우트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통해 결국 삶을 긍정하고 싶어하는 작가다. 


그녀의 인물들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올리브도 루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주인공들과 과거의 일들의 회상들을 들으며 그것의 의미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의 독서를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과거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겪어나가는 일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그때에 가 봐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하고 신화적인 존재인지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강조한다. 지금 가는 시간은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하나의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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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9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출간된 오! 윌리엄 125페이지 분량인데 루시 바턴의 출신 배경 따졌던 이 집안도 그다지 ㅎㅎ
가장 현실적인 거대한 이민자 출신 구성원으로 이룩한 미국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blanca 2021-10-29 19:24   좋아요 1 | URL
분량이 생각보다 짧아 놀랐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 신간이라 참 반가웠고 특유의 어떤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와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는데 혹평도 많더라고요. 작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대목은 많더라고요. 자전적인 내용도 많이 들어간 듯한 흔적이 보였고요.

그레이스 2021-10-30 01:46   좋아요 2 | URL
그럼 원서로 도전해 볼까요?^^

blanca 2021-10-30 08:4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분량도 그렇고 이 작가가 단문, 구어체를 많이 쓰는 편이라 가독성이 좋아서 그 어느 작가들보다 원서 추천합니다.

scott 2021-10-30 18:17   좋아요 0 | URL
저도 블랑카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스트라우트가 단문, 구어체를 많이 쓰는데
특히 루시 버튼은 스트라우트 책 중에 원서 진입 장벽이 낮고
이번에 오! 윌리엄은 솔직히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정도 어휘력이면 충분히 ^^

라로 2021-10-30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은 읽지 못했는데 그럼 루시 바턴의 이야기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장담 못하는 미래에..^^;; 일단 보브아르, 긴스버그, 메르켈,, 읽고...끙;;;

blanca 2021-10-30 18:02   좋아요 1 | URL
라로님 읽을 책이 있는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갑자기 읽고 싶은 책도 읽을 책도 없을 때 멘붕 오더라고요.

다락방 2021-11-02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번역되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블랑카님의 이 글 읽으니 원서로 한 번 도전해볼까 봐요. 그러다 안되면 포기하고 번역본 기다리죠, 뭐. 후훗.

땡투 누르고 구매했습니다, 블랑카 님. 부자되세요! ㅋㅋㅋㅋㅋ

blanca 2021-11-02 18:1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팬이라 이래도 저래도 좋더라고요. 이미 객관적 판단은 불가한 상태이고요. 좀 뭐랄까 너무 수필 같은 면은 있는데 그래서 더 좋기도 하고 그랬어요. 일단 분량이나 문장이 짧아 원서로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는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의 엄마인 수 클리블랜드의 인터뷰가 나온다. 수는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지금의 남편과 댄스 파티에서 춤을 추고 사랑에 빠져 딜런을 낳을 거라는 취지의 얘기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얘기다. 가해자로서의 죄책감, 책임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 고통스러운 일들을 다시 반복할 거라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키운 아이가 친구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이야기를 다시 살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 예전에는 여러 번 나의 선택지를 곱씹고 시간을 되돌리는 상상들을 하곤 했다. 그걸 택했더라면, 이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회한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삶보다 더 좋은 삶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설사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해서 여기에서 느끼는 만족감, 아쉬움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어쩌면 결론은 같았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로 풀어 설명하기 힘든 느낌인데 설사 평행우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다지 궁금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가능성으로 직조된 세계에 나를 넣어봤자 나는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과잉되어 있고 다른 면에서는 부족한 나일 뿐이다.



















테드 창의 <숨>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세월의 문'을 통과하면 이십 년 전의 나와 이십 년 후의 나를 대면할 수 있다. 내가 개입하여 어떤 상황을 바꾼다고 해도 실제 내가 누리는 삶의 내면적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의미와 잔향. 테드 창은 우리가 만드는 삶의 서사에 주목한다. 그것은 내용이 달라도 결국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의 무게로 수렴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특히나 우리가 선별하는 과거의 기억의 서사의 임의성을 부각시킨다. 내가 '나'라고 믿고 만든 과거의 이야기들은 사실의 집약체가 아니라 '감정적 진실의 조합'이다. 이것이 거짓이라거나 허구라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테드 창은 좋은 싱글 파더라고 믿었던 화자가 사실은 딸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과거를 소환하게 한다. 그 틈새에 티브족의 부족 간의 갈등의 이야기가 파고든다. 진실과 사실, 구전과 문자 기록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삶의 서사로서의 이야기의 진실의 힘으로 압축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지어내게 되고 이것은 때로는 진실인 것처럼 호도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처럼 과연 모든 정확하고 극명한 사실들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기억 보조장치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일까? 정확한 기억이 미화된, 혹은 연화된 기억들보다 더 가치로운 것일까? 테드 창은 연신 이런 심오한 질문들을 구체적으로 서사화한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는 드디어 평행우주가 등장한다. 두 갈래의 우주가 공유하고 있는 메모패드인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다른 선택을 내린 세계를 경험한다. 그 세계는 획기적으로 다른 곳이 아니다. 여전히 범죄가 배신이 실수와 실패가 산재하는 삶이다. 다른 양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지금 여기의 현실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듣는다. 설사 현실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우리의 갈라진 자아들은 여전히 거대한 유사성을 공유한다. 그것은 내가 막연하게만 느꼈던 어떤 만족, 무기력과도 닮아 있다. 획기적으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나'를 이제 나는 더이상 상상할 수 없다. 그럴 에너지가 소진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은 가능성의 문을 하나씩 닫아 나간다. 그러나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소실점이 없는 대로를 언제까지나 걸어야 한다면 그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가능성의 무한창고인 젊음은 한시적일 때 빛난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건 영원히 재귀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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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5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 낮의 우울 저의 최애 책중 한권!

주말 테드 창의 숨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해피 프라이 데이 ~*

blanca 2021-11-06 0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 책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난소암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설거지가 하기 싫어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설거지 하기 싫을 때마다 생각납니다. ) 등등

그레이스 2021-11-05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lanca 2021-11-06 08: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쁜 소식이네요.

새파랑 2021-11-05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당선 축하드려요 ^^ 🎂 🥳

blanca 2021-11-06 08:46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책을 살 수 있는 명문이 ㅋㅋ 생겨서 좋네요.

서니데이 2021-11-05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1-06 08:4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초딩 2021-11-07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blanca 2021-11-09 10:57   좋아요 0 | URL
이미 지나버렸네요. 감사합니다.^^
 

태어나니 부모가 부자에 너그럽고 전적으로 '나'를 신뢰한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오빠를 더없이 존경하고 사랑한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나를 사랑한다. 우연히 방문한 아름다운 저택의 교양 있고 친절한 주인은 나를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있고 싶을 만큼 있으며 내부의 온갖 예술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라 한다. 마침 그곳을 방문했던 그의 수양딸과 나는 동시에 서로에게 반한다. 마침내 우리 둘은 맺어지며 양가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는다.


언뜻 들으면 웹소설 저리가라 할 만한 단편적이고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스토리다.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주인공에게 이렇게까지 끝까지 호의적인 경우는 사실 웹소설도 잘 없다. 어떤 갈등도 분란도 상실도 없다. 우연히 만난 여자와의 가약에도 양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그런데 기이하게 매력적인 깊이를 자랑한다. 심지어 괴테를 계승한 성장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처음에는 저자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잘 풀려 이야기도 그런가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저자는 자살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성장에 대한 대한 짙은 신뢰가 큰 몫을 한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장미로 뒤덮인 리자흐 남작의 아스퍼호프 대저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물과 예술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게 되고 성장을 이루어 낸다. 리자흐는 젊은 시절 자신이 가정교사로 일했던 집안의 딸인 마틸데와의 실패한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으나 노년에 다시 남편을 잃은 그녀와 재회하여 그녀의 아들과 딸을 함께 양육하고 가산을 공동으로 돌본다. 주인공은 리자흐의 상실에 대한 하나의 이상적인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리자흐처럼 사랑에 실패하지도 그것으로 인한 절망을 경험하지도 않지만 리자흐 남작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대리로 체험한다. 반드시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이 생에서 일어나야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통과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리자흐 남작이 살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시절의 합일을 이루어 낸다. 


결국 젊은 나는 리자흐 남작의 잃어버린 초여름이 아닌 다시 찾은 "늦여름"을 형상화하는 존재로써 자리한다. 그 모든 순탄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싶었지만 끝내 누릴 수 없었던 삶의 평행우주적 이상화인지도 모른다. '내'가 뇌우를 기다리며 만났던 리자흐 남작이 결국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 지점이다. 


<늦여름>은 대자연과 온갖 예술 작품에 대한 심미안에서 나온 묘사의 절창이 백미인 작품이다. 인물들이 경험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인물 간의 갈등 요소가 아니라 예술과 경이로운 자연의 풍광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전면으로 부각된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배경이고 부수적인 배경이라 여긴 것들이 중심으로 나오는 그 자체를 즐기는 읽기는 어떨까. 이런 삶은 머리로만 상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기면서도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절망에 함몰되기보다는 미약한 희망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존재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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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0-18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서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 이 페이퍼가 더욱 반가웠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서사는 별개로 하고, 아달베르트 슈티프터가 자연 - 꽃, 나무, 숲, 암석, 화석 등과 예술품을 바라보는 미학적 시선이 정말 좋았었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멈추지 않는군요.
점심 잘 먹고와서 블랑카 님 덕분에 한 번 더 기억 속의 호사를 합니다.

blanca 2021-10-18 13:32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중간에 지루해서 덮고 싶어지는 걸 풀스타프님 페이퍼 읽으며 참고 읽었어요^^;; 그런데 이 책 참 묘해요. 재미는 없는데 맞아요, 그냥 다 잘 풀리니까 읽는 내내 행복해져요. 판타지와는 다른 차원의 힐링이었어요. 고상한 것, 이상주의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이렇게 마음껏 누리는 세계가 독서 아니면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읽는 시간 참 행복했습니다. 말씀 대로 저도 덕분에 호사를 누렸습니다...너무 우아한 읽기였어요.
 
[eBook]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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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되도록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죽음을 더이상 추상적 관념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유한한 삶을 거의 매일 인식한다. 나보다 어리거나 나보다 나이 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음을 의식한다. 몇 년 사이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다. 유한함을 알기에 이 생이 더 소중하다는 식의 논리에 별로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죽음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다. 나는 더이상 지금 이 순간 감각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다. 영원할 거라 생각하고 추구했던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무화된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러고도 세상은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제대로 잘 돌아갈 것이다라는 점이다. 잊고 나아간다. 이러한 명확하고 냉정한 진실에 인간은 그리 쉽게 포섭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관련한 여느 책들과 조금 다르다. 저자 레이첼 클라크는 그 자신이 영국의 호스피스 의사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생의 연장도 힘겹게 시도하지 않고 그 패배를, 마지막을 인정하고 최대한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완화의료 전문가다. 그러니 그녀는 지척에서 세상의 온갖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다. 삶의 모습처럼 죽음도 어떤 큰 패턴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로를 그린다. 나이가 어리든 젊든 심지어 백 살 가까이 되어도 죽음은 생에서 많은 것들을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앗아간다. 흔히 이 과정은 잔인하고 고통스럽고 악몽 같을 줄만 알았다. 레이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생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은 언제나 예정된 승리를 가지고 포복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까지 의식하고 누리는 관계가 주는 위로를 누리는 장면들은 경이로웠다. 그곳에서는 소위 생에서 이룬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칭송되는 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었고 진정 실재에 가닿을 수 있는 농축된 응시의 시간이 왔다. 그녀가 나누는 에피소드들은 그러한 것들이다.


어느 노인 환자가 마지막으로 레이첼에게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세상 누구도 모르는 게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재에 얽힌 마지막 비밀을 고백하고 편안히 눈을 감는 장면, 불편하고 노쇠한 몸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며 오는 할아버지가 자신이 떠나고도 챙겨먹을 수 있도록 온갖 음식을 냉동고에 꽈꽉 채워놓은 할머니. 이 공간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우리 인간"이 레이첼을 늘 감동시켜 눈물짓게 했다. 죽음은 인간의 무기력함과 왜소함과 한계를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지적으로 서로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떠나 보내고 떠나려는 연결에 대한 감동적인 소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레이첼 본인의 아버지의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녀도 의사 가운을 벗고 아버지와의 작별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딸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암과의 투병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산행, 마지막 음악회, 마지막 운전 등 그토록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모든 일상의 행위들을 리추얼처럼 절절하게 받아들인다. 마지막이기에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그러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의지를 발휘하며 작별의 방식을 택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부인하며 몸부림치는 게 죽음의 일상적 풍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큰 위로와 메시지를 동시에 준다. 


애도는 사랑의 대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두려워 사랑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 태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순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허용된 자유가 아니고 가치로운 일도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와중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죽음의 별에서 일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스민 아름다운 문장들을 유려하게 번역한 번역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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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0-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지 딱 알아보게 리뷰를 잘 쓰셨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또 슬펐답니다.

blanca 2021-10-13 15:40   좋아요 2 | URL
페크님 그러셨군요. 저도 꿈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면 꿈에서 다 잊고 만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없다는 생각을 꼭 하게 되어 너무 슬프더라고요. 사랑의 대가가 애도라는 말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너무 아파요.

그레이스 2021-11-05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사 리뷰를 읽어보네요 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lanca 2021-11-06 08:48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1-06 08: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초딩 2021-11-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멋지세요~

blanca 2021-11-09 1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초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