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책 속의 문장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그 속의 장면들을 쏟아내어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경험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열 다섯 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상과 꿈과 기대와 소망이 현실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는 그 거대한 가능성과 몽환으로 엮인 시간들을 복기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복원할 수는 없다.  

그 때는 열 다섯 살이었고 겨울 밤이었고 모든 시험이 끝난 그런 때였다. 다사로운 훈김 속 나는 요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광수의 <단종애사> 첫 장을 아마 저녁 아홉 시쯤 펴들었을 게다. 새벽 네 시 춘원의 건조한 문장들이 아무린 마무리는 가혹했다. 그저 단종의 죽음에 관한 정경 묘사. 그리고 날짜. 그 어떤 감정의 덧붙임이나 애도의 감침질 없이 춘원은 그 처절한 역사적 사실 가운데 나를 내려놓고 쓰윽 가버렸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열일곱 살 삼촌의 손에 죽임당한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 그리고 그를 위해 죽어간 그 수많은 사람들.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 성리학의 명분을 수호하고자 했던 신하들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 당시 명분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의연히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에 경도되었다. 십 대는 그런 나이였다. 현실의 이해 관계와 실리에 무게중심이 옮아가면서 수양대군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일종의 순응이자 세상에 대한 비애어린 묵인이었다. 나의 이십 대, 사육신의 명분은 투실투실한 속살을 못보고 바스라져 가는 껍질만을 주워담으려는 어리석은 자기기만으로 변질되어 인식되었다.  

그러나 삼십 대, 사육신과 단종에 대한 이해는 다시 열 다섯 살 그 시점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가치와 명분의 수호가 현실 이해에 영합하여 도리를 저버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결단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정치라는 것이 자신의 권력욕이나 현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지점에 과도한 방점을 내리찍게 될 때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체감때문이었다. 

 

역사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해가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삶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덕일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중

김종서는 <단종애사>에서 수양대군의 심복이 휘두르는 철퇴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것으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이 때 그의 나이 70세로 태종, 세종, 문종, 단종 네 임금을 섬기여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며 북방을 개척한 대호이자, 아내의 장사도 미처 다 치르지 못하고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평안도로 떠났던 그가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자 했던 것, 헌정질서에 반하는 일련의 일들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는 것만으로 수양대군의 가동이 내리친 철퇴로 머리를 맞아야 했던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비를 지키려 했던 아들 김승규도 죽임을 당한다.  남은 가족들중 남자들은 대부분 죽고 여자들은 관로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수양대군의 쿠데타의 공신들의 처첩으로 전락하기까지 하며 무려 293년이 지난 뒤에서야 공식적으로 신원된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무신의 호연한 기개가 절로 일성을 내지를 것만 같은 이 시 한 수는 김종서의 현신 같다. 하지만 그는 원래 문신 출신이다. 또한 의외로 단신으로 체수도 왜소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세종대왕의 진취적 기상과 절대적 신뢰를 등에 업고 노구를 이끌고 북방에 부임하여 4군 6진을 개쳑하는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 같다. 당시로서도 함길도 같은 북방 지역은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리는 오지였다. 백성들마저 이주를 꺼리는 지역을 개척하여 두만강 이북 공험진까지 국경을 확장하여 국경선을 확정하고 백성들의 삶의 근거지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듣는 것은 더없이 가슴벅찬 일이었다. 추상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구체화되어 스며드는 일은 나의 존재의 핵에 다가가는 일이라 감미롭고도 가슴뭉클하다.  

그러나 이런 김종서의 욱일승천하던 기세도 결국은 그를 알아주고 백성과 국가를 귀히 알았던 명군주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의 죽음과 문종의 단명에 뒤따른 어린 단종의 등극,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극은 그와 더불어 그의 후손들까지 처절하고 곤구한 삶으로 내몰게 된다.  

세조가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등극하며 불거진 문제는 그가 백성을 위한 치세를 펴는 것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여 실리 그 자체의 기반도 빈약하게 만든다. 즉 그의 비정상적인 왕위 찬탈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 수많은 공신들을 책봉하고 그들에게 권력과 물질적 포상을 해야 했던 것은 끝끝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왕위를 계승한 후손들도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는 데 두고두고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세조가 국가 권력을 공신집단의 사적 이익실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저자의 지적은 국가 권력이 제대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뼈아픈 계도의 지침이 될 것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둘째이며, 군왕은 그보다 가벼운 것"이라 했던 김종서의 웅변을 머금고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삶 자체를 바친 잊혀져간  그들을 마음으로 다시 신원하며 나의 삶에도 지킬 만한 마땅한 가치 하나를 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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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0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이 맘에 듭니다. 잃어버린 가치를 위하여.
처절할만큼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주인공, 신념을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는 주인공.. 이도 저도 아니고 방황하며 납작 엎드려서 사는 나.. 진화학적으로 본다면, 제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ㅎㅎ

blanca 2010-04-06 18: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엎드려 삽니다.
 

걸어가다 비를 맞을 때가 있다. 우산도 동행도 없이 가랑비가 아닌 폭우로 몸이 젖어들 때 우리는 사위를 둘러보게 된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 꼭 그 누군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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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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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생 2학년 268명의 삶 72년간의 추적 보고. 누군가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반추하고 짐작하는 데에 중요한 참조점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들의 인생이 어떤 요인에 의하여 행불행으로 나뉘어지는 지를 지켜보다 보면 나의 삶 속에서 고통과 상실이 가지는 의미를 찾아 낼 수 있다.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픽션이 아니라 사람의 삶일 수 있다는 것도 더불어 느낄 수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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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글쓰기? 아니다. 이 책은 창작기법을 강론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스티븐 킹의 자서전에 가깝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인 그가 정작 자신의 삶을 최후의 소재로 숨겨 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다. 그 정도로 그의 삶은 다이나믹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싱글마더 밑에서 형과 함께 저지르는 과격한 장난 스토리를 읽다 보면 너무 웃다 사래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직면한 삶의 고난들에 대처한 자세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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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조증 환자라고 진단한 그녀의 얘기는 삶 그자체로 대변된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 그녀의 도발적 삶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유쾌해진다. 지도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도 그녀가 주는 보너스다. 언제나 재미있고 언제나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힘을 내게 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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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과잉 어느 한 쪽이다. 내가 힘든 이유를 더듬어 보면 그렇다. 신경과 전문의의 올리버 색스는 이 모자람과 넘침에 기발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그 자체로 오히려 가치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발견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 또한 다른 프리즘을 통과해서 보게 한다. 병든 사람들의 얘기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놀라운 적응과 거기에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한 번 들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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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0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가야할 길, 그러잖아도 서재친구 어느 분이 권하시더군요.
참 좋았다고요. 마음의 위로나 힘이 될 수 있다면
블랑카님의 추천으로도 또 담아갈게요.^^

blanca 2010-04-05 13:42   좋아요 0 | URL
책장 한 켠에 두고 두고두고 읽게 되는 책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4-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도 스캇펫 박사 책들 못 읽고 서재 한쪽에 있어요.. 흑흑.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가볍게 읽기 좋았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그 앞선편인 <화성의 인류학자>에 홀랑 반해서 사놓고는 아직도 고히 모셔져있고. ㅠㅠ 김형경 님의 천개의 공감, 사람풍경, 좋은이별을 참 좋아합니다. 행복의 조건도 제 바로 옆에 고히 모셔져있군요.. 대체 책을 얼마나 사놓고 못 읽은거람.. ㅉㅉ

blanca 2010-04-06 18:56   좋아요 0 | URL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더 좋았어요. 그러니 꼬옥 읽으세요! 제가 읽고 싶어라 하는 책 다 사셨네요^^;;
 
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p.118 

2003년 4월, 13대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과의 대담에서 법정스님이 남긴 말이다. 결말을 알고 있는 소설을 읽어 나가는 일은 시시하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하나하나와 자잘한 동선 마다마다에 스미는 의미를 해독해 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피천득 선생과 법정 스님이 가신 자리, 그 안을 밀고들어온 그들의 말 음절 하나 하나가 만들어 나가는 유언장은 삶의 이정표마다 세워둔 거울 같다.

월간 <샘터>의 400호 기념으로 2003년 4월 이루어졌던 피천득과 김재순, 최인호와 법정 스님의 대담을 채록한 이 책이 내 손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사실 법정 스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90대(피천득)와 80대(김재순), 70대(법정)와 60대(최인호)의 시선으로  걸러진 삶의 화두들이 궁금했기에 기다림이 초조했다. 이 전아하고 정갈한 책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향내가 풍겨내는 아취에 빚진 바가 클 것이다. 표지의 하얀 바탕에 어우러진 매화 꽃잎 띄어진 차에서 은은하게 피어날 것만 같은 그 향내에 취하고 그 속의 말들에 취해 금아 선생의 서재에서, 길상사에서 그 분들을 모시고 고언들을 듣는 듯한 착각도 행복했다. 

특히 환생에 대한 진중한 얘기들은 울림이 컸다. 피천득 선생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이 생활을 반복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금생에서 받은 행복의 다사로움이 이 한마디로 축약된다. 죽음이 가까워 올 무렵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처칠은 90회 생일에 기자들에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다시 그를 낳아준다면 이 생을 꼭 그대로 가감없이 살고 싶다고 했단다. 다시 살고 싶은 시간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삶 전체를 덮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네들이야 다시 내생에서 그 나날들을 재현해 내어야 한다는 가정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 온다. 그렇지 않은 삶이란 드물고도 특별하게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법정 스님은 이 다음 생에도 다시 수도승으로 그 어떤 틀에도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금생에서 누려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수도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수도하는 자, 구도의 삶의 전범이 된다. 세속적 욕망을 죽이고 엄격한 절제와 억제로 포박하여 심신을 단련하는 고행의 틀 안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자유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와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과정의 부수적인 것들과 미망에 사로잡히고 법정 스님 같은 이들은 자신을 심오하게 응시하고 자잘한 욕망들을 떨어내는 과정에서 받는 선물 같은 자유의 지평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상을 받는다.  

어쩌면 소설가 최인호의 얘기가 우리 같은 범속한 이들에게는 더 와닿을 지도 모른다. 

도를 이루거나 성인이 되면 윤회가 끝나니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가장 좋은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죠. 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고,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p.116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 부족하다,는 말.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다는 소설가 김연수의 말. 정념에 이끌린 열정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두고 발효시켜가야 하는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와 신뢰의 나이테. 사랑의 역사를 쓰는 일은 그래서 달콤하지 않고 그러니까 싫증나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미완으로 남는 그 사랑의 이야기들은 죽음이 단순한 종결이 아님을 예언해 주는 것 같아 가슴뿌듯하다.  

진지한 얘기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책상에 언제나 놓여 있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 얘기와 강원도 오두막 벽에 붙여져 있는 법정 스님의 봉순이 그림은 작고 귀여운 여백 같다. 특히나 법정 스님이 외로움이 옆구리로 스쳐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한 대목과 봉순이 그림을 앞에 두고 "봉순아!"하고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경이 맞물리며 애잔한 느낌이 든다. 구도와 수도의 길목마다 서리 틀고 앉아 있는 외로움을 그림 한 장으로 달래는 풍경. 그 바람을 맞으며 장삼 자락을 떨치고 가버리신 그 분의 단아한 웃음이 그립다. 


 

우리는 저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초대받은 것이라는 스님의 고언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저마다 진귀하고 한없이 소중한 생명들이 낙화처럼 지고 있는 갈피짬 사이로 스며든 이야기들에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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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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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언덕을 넘으면서 더이상 나의 시선은 앞으로만 전진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삶들을 복기해 보고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하지 말걸, 하면서 수정도 하고 가감도 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의 나이는 이런 시간들을 쌓아가는 징검다리였다. 내일에 대한 전망이나 아슴한 기대대신 걸아온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는 일들이 나의 시간들을 채우며 살아나간다는 것은 더없는 아이러니다. 이게 사는 건가, 정말 생을 호흡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과거의 반추가 덮어버린 시간들이 생의 통찰을 가져온다면 더없이 좋겠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하나의 소설이지만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극적 재미나 묘사의 섬세한 매력은 떨어지지만 줄치며 읽는 소설이라는 얘기처럼 이야기 속 화자들에게서 미끄러져 나오는 얘기들이 하나의 경구 같다. 또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한 특질들이 개개의 상징처럼 느껴져 결국 쿤데라의 생에 대한 깨달음을 구체화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여기에는 기억의 왜곡에 대한 가슴아픈 체념이 가닿는 망각의 힘에 대한 겸손한 수긍과 시간이 무화시켜버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고쳐지지 않은 채 잊혀지고 기억된다 하더라도 나름의 왜곡으로 변형된다. 시간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원형이 보존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p.399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고향에 와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여러 명의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루드빅의 귀향이 더듬어나가는 과거의 시간들의 길목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또 그 나름의 시선으로 똑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회고하고 이해하고 고백한다. 공감과 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이자 허구의 개념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이 장치는 그 구성 자체로 작가의 의도를 웅변한다. 주인공 루드빅은 여자친구에게 농담을 적어보낸 엽서가 문제가 되어 공산당에서 축출되어 무기를 맡지 않고 사회주의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병사로 징집된다. 이 시기에 만나게 되는 우수어린 느림 그 자체인 루치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끝내 그녀에게 거부당하고 실패한 사랑에 헛된 환상을 덧칠하게 된다. 대학재학시절 그를 축출하는 판정을 내린 학내 조직 차기 위원장 제마넥에게 복수하고자 수년이 흐르고 난 후 제마넥의 아내를 유혹하지만 루드빅은 이미 예전에 자신을 당에서 축출했던 제마넥이 지금의 제마넥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더군다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므로 복수의 매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루치아와의 관계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폭력의 연장이었음을 전해듣고는 절망하게 된다. 

자기 밖에 놓인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끼인 그런 나이, 또한 다른 사람들은(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보 같은 열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p.344 

나의 스무살을 루드빅도 통과했다. 젊음이란 찬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참담한 것이었다. 그 미숙함과 그 미진함이 그 어리숙함이 과장된 허위 밖으로 미친듯이 튀어 나오려 함에도 끊임없이 억눌러 가며 나는 찬란하며 성숙하다고 거짓말하며 다니던 그 시간들의 반추는 부끄러울 정도다. 그 때 만난 사람들. 사랑들. 쌓인 분노들. 그것들을 추리고 수정하고 음미하는 이 행위들의 덧없음에 대한 자각은 루드빅의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 살아봄으로써 가능해진다. 기억의 왜곡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 자의식이 난도질해서 구겨놓은 그 밑그림들은 또다른 개인들에 의하여 개별화된다. 예전의 사람은 지금의 그와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고 내가 그 과거를 우격다짐으로 구겨넣어 나의 감정과 의지로 세탁하여 내어 놓아봤댔자 그것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다 농담 같은.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쾌한 농담 같이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나 공유하게 된다. 농담은 가볍지만 상큼한 뒷맛대신 눅눅한 미진함을 남긴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것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시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일런지도 모른다.
 

증오의 대상인 제마넥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루드빅의 귀향이 사랑하면서도 피했던 옛친구 야로슬라브를 두 팔에 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모호하지만 진중한 진실의 화두를 던져준다. 인간 간의 관계는 의지와 이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연대로 가능한 것임을. 좀더 가벼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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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의 심리를 토막질하여 분석하는 서양 사상을 배우면서, 결국 동양 사상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 흐르는 대로,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거. 뱅뱅 돌아서 오게 되더라도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보다 견고한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요?
찬란하지만 잔인한 20대를 보내는게 밋밋한 20대를 보내는 것보다 확실히 나은것인지...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blanca 2010-04-01 22:35   좋아요 0 | URL
혼불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얘기처럼 동양의 그 윤회와 업에 관한 생각들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저는 나름대로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이 있는데 중반까지는 그 기억과 화해를 못하다가 서른이 넘으니 다시 그 시간이 온다고 해도 또 그렇게 살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나를 죽이면서 살아왔으니 그 짧은 시간이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답니다.^^;;

기억의집 2010-04-0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언덕을 넘으면서~~ 이 앞 대목 참 좋네요. 전 사실 그렇게 행복한 어린시절이나 20대 시절을 못 보내서 그런지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때가 있어요.
블랑카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는 한때 쿤데라의 열성팬이었는데,,,,
전 몰랐는데 불멸이 절판이라고 하더라구요. 브론테님 방에 가서 글 읽다가 놀랬어요.
아, 그 책이 절판이었구나 싶은게... 전 그 책 쿤데라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거든요. 프라하도 좋았지만
나중에 나온 불멸이 더 좋았고 저의 천주교 세례명이 아네스인데(지금은 무신론이지만) 불멸에 나온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아네스라고 할 정도로 말이에요. 전 10월 생이라서 아네스는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우겼거든요.
하핫, 별 걸 다 고백하죠!

blanca 2010-04-01 22:38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아네스.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냉담중입니다. 개종까지 해서 냉담이라니 할 말 없죠. 쿤데라를 좋아하셨군요. 저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고 조금 더 알아가야 할까 생각중입니다. 안그래도 불멸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별 걸 다 고백하는 것을 참 좋아라 한답니다.^^;;

아 그리고 천주교에서 무신론으로 나아간 기억의집님 사연이 살짝 궁금해집니다.

기억의집 2010-04-02 11:30   좋아요 0 | URL
천주교 다닐 때부터 종교인들이 이익집단으로 보였고, 더 큰 영향은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었어요. 그 이후 계속해서 자연과학책들만 읽으면서 더 확고해지는 거 같아요.
 

 

그러나 막상 계집아이 입에다 미음을 넣어 주자 그만 구멍 난 볼때기로 주루룩 흘러 버려, 아이의 어미를 다시 한번 대성 통곡하게 하였다. 넣는 대로 흐르는 미음을 어미는 손바닥으로 쓸어 담아 잇바디 드러난 뺨 구멍으로 밀어 넣어 주다가, 아예 틀어막고 앉아 "먹어라아.......먹고 가아......이놈의 새끼야......내 새끼야, 먹고 가아, 아이고, 아이고오, 내 새끼." 산발을 하여 부르짖는다.                                                                                                                      - 최명희 <혼불> 중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혹한을 뚫고 배를 곯으며 북만주까지 걷고 또 걸어 온 가족. 마침내 또다른 곤궁한 삶이 예비된 그 곳에 이르렀지만 어린 딸내미는 동상과 천연두로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가난하고 무지한 아비는 그런 딸내미의 그 볼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열에 들떠 죽어가는 어린 딸에게 마지막으로 미음이라도 먹여 떠나 보내려고 어미는 산발을 하고 절규한다. 어미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 돌아왔을 때 의외로 그의 모친은 슬픔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빨랫감 속에서 그의 셔츠가 나오자 그녀는 산비탈에서 몇 번이고 몸을 굴러내리며 절규한다.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어도 내 몸과 피를 나누어 만든 또 다른 작은 나의 죽음은 감내할 수가 없다. 내가 내 몸을 풀어 헤치고 내 안의 내장을 다 끄집어 내어도 그 슬픔과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한 그 끔찍스러움은 가실 길이 없다. 자식의 죽음은 견디면서 사는 것이지 망각하거나 화해할 수 없다. 

엄마가 몹시 아팠을 때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했을 때 외할머니는 어린 손녀들 앞에서 몸부림쳤다.
"생떼 같은 내자슥! 생떼 같은 내 자슥! 내 자슥아! 자슥아!" 당신의 절규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한 삽화로 남아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나는 그 때 그렇게 이성을 잃고 펄펄 뛰는 할머니의 모습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종이조각처럼 쪼그라들어버린 지금의 할머니 앞에서 과거의 그 포효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마치 열에 들뜬 듯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울부짖었던 그 모습은 열 달을 품고 몸 전체를 분해시킬 것 같은 진통 속에
그렇게 세상에 내어놓고 가정을 이루어 솔가시켜 놓고도 새끼와 묶은 그 끈질긴 공생의 끈을 놓지 못함이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아니 죽고 나서도 이 세상에 내가 뼈와 살을 발라 주어 내보낸 자식의 안녕을
어찌 걸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가운 물에서 삽십대, 사십대를 누려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이 저린다.
그들의 어미들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견디고 있을까.
그 기다림의 끝에 제발 안도와 기쁨의 웃음이 걸리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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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2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요즘 천안호 침몰 뉴스 접하면서 열불이 납니다.
어찌 저 따위로 구조작업을 하는지... 지들 자식이 그 속에 갇혔으면 저 따위로 할까 싶어 화가 나요.ㅜㅜ

blanca 2010-03-29 16:41   좋아요 0 | URL
아...정말 슬픈 소식이 너무 많이 들려요. 최진영씨도 그렇고 생존자 소식도 없고...가슴이 너무 아파요...

프레이야 2010-03-2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사 위치를 잡았다고 하죠.
제발제발 구조작업이 잘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얼마나 애가 탈까,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겠어요.

blanca 2010-03-29 16: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산다는게 참 날 위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 느낌까지 듭니다.

꿈꾸는섬 2010-03-2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떼깥은 내 자슥......정말 그렇죠. 내 속으로 난 자식이니 그 아픔을 이루 말할 수 없을거에요.ㅠ.ㅠ
구조작업이 잘 이뤄져야할텐데 말이죠.

blanca 2010-03-29 21:13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 가망이 없는 쪽으로 기울고 있네요...너무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한 하루입니다.

기억의집 2010-04-0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죽음은 망각할 수도 화해할 수도 없죠. 제가 새끼를 기르다보니 예전에 몰랐는데 어린 자식이 아니 청춘의 자식이 죽었을 때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동네에 한 할머니중에서 거의 매일 술 드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아들을 군대에서 잃었어요. 제대 가까울 때 트럭에 치였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 후로 술로 의지하면 세월을 보내시다가 손주 태어나니깐 좀 나아지시더라구요.
지금 정부가 하는 짓보면 참 용서 못하겠지요. 오늘은 속보로 북한이 했다고 하던데요. 아, 정말 눈물겨워요. 시나리오 만드느냐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죽은 장병들의 부모한테 또 한번의 못을 박네요.

blanca 2010-04-01 22:32   좋아요 0 | URL
방금 아이를 재우면서도 참 슬프고 화가 나더라구요. 다 큰 청년들에게도 이렇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안고 어루만지고 재우고 했던 아기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는 또 그런 아빠이기도 한 그 사람들이 이런 죽음을 당하고 그냥 하나의 재난으로 잊혀져 갈 거라는 생각에. 진짜 안좋은 머리로 나름대로 고도의 시나리오 짠다고 욕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