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가장 쉽게 울릴 수 있는 화제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읽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오열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아주 드물게...
"너는 영웅이 될 것이다. 너는 장군이 되고, 가브리엘 단눈치오가 되고 프랑스 대사가 될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담배를 물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보석을, 모자를 팔고 때로는 시장에서 야채를 팔았던 이 늙은 유대인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 외아들의 식탁 위에 비프스테이크를 대령하고 부잣집 도련님 부럽지 않은 입성을 갖추게 했다. 그리고 뭇사람들의 멸시와 비아냥거림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예언처럼 아들의 미래를 읊조리곤 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자라서 2차 대전 종전 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규정과 어긋나긴 하지만), 프랑스의 대사가 된다. 그는 물론 로맹가리다. <자기 앞의 생>의 에밀 아자르이기도 하며,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하여 시대의 아이콘이 된 배우 진 세버그의 남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당치 않은 예언이 발포되는 순간이면 가장 어머니를 미워했다던 바다 같은 눈을 지녔던 소년은 그것을 몸소 구현해 냄으로써 생애의 걸작을 스스로 완성한 셈이 되었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제 어머니를 잃고 바다 앞에 엎드린 마흔을 넘은 사내가 복기하는 어머니와의 유년, 청년기는 그 특유의 익살과 재치, 사물과 현상을 예리하게 꿰뚫는 예민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장대한 서사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로맹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의 니스에 정착하기까지 난민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이 늙고 병든 여자의 노동에 의지하여 성장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과목마다 과외교사를 붙이고, 어린 아들이 위대한 작가로 성장했을 때를 대비해 멋들어진 필명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 극성 어머니의 거의 신앙 같은 아들에 대한 애정과 숭배는 로맹가리를 인간의 존엄과 정의에의 굳건한 신뢰와 인간됨의 명예에 대해 말하는 작가로 키우게 된다. 그것은 이토록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해피엔드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자 그가 쓰는 일을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영국의 비행 기지에서 새벽 서너 시까지 털장화를 신고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중편이라도 쓰겠다고 버둥거렸던 그의 열정은 어머니의 헌신에 대한 하나의 의리였다. 그의 삶은 아들을 위해 비어내어 바스러지고 만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 삶에 대한 하나의 대리 재건이었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죽는 날까지 찬밥을 먹어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여자가 당신을 안아서 가슴에 품어준다고 해도 조사에 불과할 뿐. 우리는 버림받은 개처럼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무덤으로 돌아와 짖어대는 것이다.
2차 대전 공군에 복무하던 그는 삼년 간 어머니와 편지로 대화한다. 프랑스를 대표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언제나 전진하기를 독려하고 적들 앞에서의 굴복을 경계하는 어머니의 날선 조언, 충고들은 하늘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동료들을 목도하며 그 자신 죽을 고비를 수차례나 넘기면서도 언제나 고질병인 절망하지 않는 낙관으로 그를 버티게 한다.
마침내 개선 장군이 되어 영토 해방 훈장과 레지옹 도뇌르와 무공 훈장, 메달들을 주렁주렁 달고 주머니에는 자신의 소설의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담고 금의환향한 그를 맞아준 것은 어머니가 삼 년 동안 전장에 보낸 이백오십 통의 편지가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한꺼번에 써서 친구에게 맡겨 규칙적으로 아들에게 당도하도록 한 어머니의 슬픈 깜짝쇼였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삼 년 전 아들과의 이승에서의 탯줄만을 남긴 채 용서받지 못할 반전을 준비하고 죽어버렸던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나는 살아냈다.'다. 로맹가리는 화자(어쩌면 그 자신)의 입을 빌려 자신이 죽은 뒤 하늘을 유심히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새로운 별자리. 어떤 신의 코를 이빨 전체로 악물고 있는 인간 개의 별자리를. 개개인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낙관주의가 무너지고 난 마지막에 대한 자신의 답편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어머니의 해피엔드이기를 소망했던 그가 그 아름다운 결론을 마땅히 보아야 할 사람의 시선에 고정시켜 주지 못하고 마침내 권총자살로 자신의 삶을 맺은 것을 그의 결론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 한다. 오리온 자리 옆에 결국 삶은, 존재는 의미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신 앞에 으름장을 놓으며 빛나는 마침표를 첨언한 로맹가리가 내려다보고 있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