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였는지 여섯 살 때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동네 아주머니가 과실주를 담가 왔다. 우리 집에서는 시음회가 벌어졌고, 나도 아마 한 모금 졸랐던 것 같다. 예상 외로 너무 달콤해서 홀짝 홀짝 계속 먹었나 보다. 먹었던 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고 영화의 장면 전환처럼 갑자기 엄마 등에 업혀 울고 불고 하며 술기운에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의 그 출렁이던 멀미의 포격 같은 기분은 아직도 삼삼하다. 술에 참 일찍이도 취했다. 

그래서 <빨강머리 앤>에서 철저하게 감정이입이 된 대목은 앤이 라즈베리 시럽으로 착각하고 건네 준 포도주를 연거푸 마시고 술에 취한 다이애너에게 앤이 절교당하는 부분이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다이애너는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습으로 엄마 배리 부인을 경악시킨다. 이 대목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 등에 업혀 울며 주정을 했던 꼬마도 같이 생각나 기분이 묘해진다. 그 꼬마는 하여튼 커서도 술과 관련된 많은 해프닝의 주인공이 된다.-..-  

 

  

사실 그린 게이블즈의 그 주근깨투성이의 빨강머리 소녀의 얘기는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ANNE>에서는 초반에 불과하다. 무뚝뚝한 중년의 남매에게 뚝 떨어진 고아원에서 온 소녀의 얘기가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작가에게는 속편에 대한 부담과 압력이 가해진다. 이 덕택에 앤은 성장해서 유년기의 첫사랑 길버트와 결혼하여 대가족을 이루고 아들들을 전장에 내보내며 늙어간다. 앤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점차 확대되어 앤의 보금자리를 둘러싼 이웃들의 삶까지 닿는다. 이 작품은 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앤이 성장한 애번리 마을사람들의 연대기에 가깝다. 유년시절의 꿈, 청춘의 무모함과 순수, 열정,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의 쇠잔, 소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밀착된 시선과 섬세한 묘사는 삶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아우른다. 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의 유년, 청춘, 지금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망에 얽힌 가족들, 타인들의 시점까지 함께 자꾸 돌아보게 한다. 지나치게 낭만화된 결말들, 조금씩 서투른 반전들의 아쉬움까지도 다 덮어줄 정도로 이 작품이 매력을 가지는 이유는 사람과 삶을 결국은 믿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본능적 치우침을 작가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장'에 대한 얘기는 필연적으로 끌리고 만다. 뒤돌아봐도 만질 수 없는 것들. 그 애달픈 서투름. 시간을 돌려도 항상 과거의 실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몫을 고스란히 지키려 든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우유부단하고 어리버리한 청춘의 모습은 의외로 촌스럽지 않다. 육십 년대의 청춘이든, 구십 년대의 청춘이든, 21세기의 그것이든 청춘은 본질적으로 어리석음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청춘이든 그것은 시행착오, 실수와 더불어 채색되고 어느 정도 그것이 줄어들 때쯤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한다. <졸업>에서 그가 유난히도 망설이고 자신없어 하는 모습은 관객을 웃기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울리려는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성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확실한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술에 취해 본 것은 스물 다섯 언저리였다. 낙지 안주가 너무 잘 받아서 주량인 소주 세 잔의 두 배를 마시고도 거뜬하다고 생각하며 음식점을 나오자 갑자기 하늘과 땅이 붙어 버리는 경험을 했다. 놀림도 받고 위로도 받았던 그 사건의 최후는 엄마 등에 업혀 울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과 같다. 졸업해 버린 것들. 언제나 부끄럽고 가끔은 절절하게 그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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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집에서 담갔다는 포도주를 억지로 먹이고는 혼자 집에 보내는 바람에 술 기운에 비틀비틀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어요. 이틀쯤 앓아누웠었죠 아마. 이 페이퍼를 읽으니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blanca 2011-11-13 22:06   좋아요 0 | URL
후와님은 정말 다이애너와 흡사한 경험을 하셨군요. 그런데 지금 포도주 마셔보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을 정도는 아닌데 어렸을 때 어찌 그리 달콤하게 느꼈었는지 참 불가사의해요. 후와님도 아시는군요^^

poptrash 2011-11-13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술, 많이 마셨어요. 집에서 담근 포도주, 아버지 친구들이 마시던 맥주.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에... 그래서 결국 이런 어른이 되었는지도...

blanca 2011-11-13 22: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어른^^;; 저는 제가 상태가 안 좋은 게 혹시 그 때 술에 너무 취해 뇌에 약간이 손상이 가서가 아닌가 가끔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1-11-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최근에서야 포도주를 처음 마셔본 적이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포도주가 달달한 포도주스인줄 알았는데,,
마셔보니 아니더군요 ^^;; 포도주는 포도주스가 아니라 포도 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ㅎㅎ

책으로 된 앤의 이야기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블랑카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TV에서 해주던 만화에서 술 취한 앤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나네요.
혹시 <토지>에 이어서 <앤> 시리즈를 읽고 계신가요? ^^



blanca 2011-11-13 22:08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포도주와 너무 늦게 만나셨군요. 그죠, 생각보다 맛없죠! <앤>은 다 읽었답니다. 이제 되도록 시리즈물은 안 읽으려고요. 부담감이 커서요. 중간에 읽다 그만둘 수도 없고. 그러면서 또 <임꺽정> 재미있다는 얘기에 자꾸 마음이 동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주 전에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나왔는데, 서양에서도 <빨간머리 앤>은 여자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알려졌더군요.백인남자관광객이 "남자들은 아무래도 잘 안 읽는 작품이죠.제 아내는 감명 깊게 읽었대요." 하더군요.나는 재밌던데...

blanca 2011-11-13 22:10   좋아요 0 | URL
어, 정말요? 정말 아름다운 섬이라면서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여자들이 읽는 소설 ㅋㅋㅋ 노자님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내용이 남자들이 재미있게 읽기는 힘든 요소들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노자님은 안 읽은 책이 없군요. 정말 박학다식하십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14 16:18   좋아요 0 | URL
그쪽은 애틀랜틱 캐나다라고 해서 대서양 쪽의 동부 캐나다입니다.전에도 무슨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바다경치도 좋고 산도 아름다워요.특히 캐번디시는 몽고메리 고향이면서 '빨간머리 앤'을 집필한 곳이라 관련시설이 잘 되어 있더군요.'걸어서 세계속으로' 다시 보기 하면 나올 거에요.

20여년 전에 나온 완역본 10권 짜리를 읽었는데 시간 꽤나 잡아먹었죠.

2011-11-1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1-1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 얼마전에 선물받은 포도주를 따서 홀짝 홀짝 마시다가 그만 다 마셔버렸는데, 아..어릴 때 포도주 담아둔것을 마셨던 생각이 나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1-11-13 22:13   좋아요 0 | URL
탁님 반갑습니다.^^ 저는 포도주를 한 잔 이상 마시면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어렸을 때 다들 과실주에 취한 경험들이 있군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니 괜히 반갑네요.
 
슬로우 데스 - 일상 속 내 아이를 서서히 죽이는 오리인형의 진실
릭 스미스.브루스 루리에 지음, 임지원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샤워솜에 바디샴푸를 듬뿍 바른다. 부걱부걱 거품이 피어오른다. 젖은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샴푸를 발라 헹군다. 그 머리에 다시 헤어컨디셔너를 바른다. 헹구고 다시 헤어 트리트먼트를 바른다. 나온다. 다시 바디로션을 바른다. 갈라진 발뒤꿈치에는 발전용 각질크림을 바른다. 

화장대 앞에 앉는다. 스킨, 로션만 얼굴에 바르면서 너무 피부에 소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어 굴러다니는 에센스 샘플병을 찾아 바른다. 머리를 말리기 전에 끝이 다 갈라진 머리칼에 헤어에센스를 뿌린다. 음이온이 나온다고 선전하는(믿을 수는 없지만) 헤어드라이기로 머리칼 틈새 틈새 손을 넣어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과정.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내 몸을 소흘히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주기는 한다.
그. 러. 나. 

   
 

 나는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원의 수전 듀티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실험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듀티는 2005년,400명의 남성 소변의 프탈레이트 농도와 그들이 사용하는 목욕용품의 종류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매우 명확하고 놀라운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더 많은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소변 중의 MEP 농도가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P.80

 
   

 

디에틸프탈레이트(DEP)는 제품에 들어 있는 다른 성분들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한다. 로션이 피부에 잘 스며들게하고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해준다. 우리들의 집 안의 목욕용품, 각종 세제 들에 들어있다. 목욕이나 각종 접촉을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해 들어와 호르몬을 교란시킨다. 특히 아이들의 발달 장애 및 신경학적 문제와 성인 남성 기능의 생식 기능 저하, 고환암 등과 관련되어 있는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몸에서 오염물질을 씻어 내기 위하여 더 많은 화학 물질들에 내 몸을 축이고 더불어 우리가 마실 물을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목욕을 했으니 먹을 차례다. 가스 레인지 위에는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진 난스틱 후라이팬, 일명 테팔이 올려져 있다. 코팅 후라이팬을 사용하면 웬만한 요리는 초보라도 가능하다. 들러붙지 않고 뒤집개로 뒤집는 일도 간단하다. 수명은 짧다. 그 벗겨진 코팅제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스텐 후라이팬은 워낙 고가이고 관리도 어렵다는 얘기에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이 책 이후로 저렴한 스텐 후라이팬을 주문했다) 부엌 조리기구 찬장에는 이렇게 코팅이 벗겨졌지만 버리기 아까워 둔 후라이팬이 두 개나 더 있다. 이 후라이팬은 주로 튀김을 하거나 생선을 굽는 데에 사용해 왔다. 참치 통조림에서 참치를 꺼내어 전을 부친다. 아이는 가방에서 영수증을 꺼내어 그 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냥 일상이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소하고도 자잘한 일상들에서 나는 테플론과 수은을 먹고 먹이고 비스페놀A로 오염되고 있는 아이를 방치하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정작 그런 화학 물질을 방출하지도 환경을 오염시킬 의도도 없었던 무고한 남반구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 그리고 관성.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이건 쉬운 일이다. 좀더 편하기를 바라고 좀더 무감각해지기를 원한다면 인생은 쉽지만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정말 내 몸을, 내 아이의 몸을 대우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톤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나의 심장이 내 몸 밖으로 나가 바깥세상을 걸어 다니게 될 것을 영원히 결정하는일"이라고 했다.(p.326) 나의 심장만이 아니다. 무고한 수많은 어린 심장들에는 수많은 독성물질들이 쌓여가고 있다. 어떤 물질이 그 이하에서는 안전하다,는 논리로 대중들을 안심시키려는 기업들, 정부 기관. 저자는 '수용 불가능한 안전성'을 평가하지 않고 '수용 가능한 유해성'을 내세우는 그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 우윳병에서 용출되는 비스페놀A에 대적하기 위하여 아이 엄마들과 주의회로 향한다. 단단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비스페놀A에 노출되었던 생쥐에게서 태어난 암컷 생쥐의 난자는 40%나 손상되어 있었다. 단 한번의 노출이었다. 주지사 앞에서 아이들은 난장판을 만들었다. 엄마들은 젖을 먹이고 아이들을 달랬다. 캐나다는 세계 최초로 비스페놀A 노출을 제한하는 국가가 되었다. 레이첼 카슨의 본능적 직관을 칭찬했던 저자는 그 직관 앞에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뭉클했다. 

이 책의 미덕은 진정성에 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실제로 수은, 프탈레이트, 비스페놀류 등을 축적시키는 단기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 단 며칠의 조금 과장된 생활용품들에의 노출로 우리 몸 속의 독성물질은 어마어마하게 치솟는다.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우리 몸에서 좋은 향기를 내뿜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타인들에게도 얼마간은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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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11-1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바디샴푸가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 때문에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군인 시절 때 샤워하면서 처음 사용하고 난 뒤에 지금까지도 계속 사워할 때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어요. ^^;;
예전에는 비눗칠만으로 샤워를 했었는데 요즘에는 향기 나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가진 바디샴푸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비눗칠로 하는 샤워는 깨끗하지 씻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가진 사람들도 보곤 했어요.
바디샴푸를 쓴다고 해서 완전히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

blanca 2011-11-10 22:21   좋아요 0 | URL
비누로 하는 게 사실 거품도 잘 안 나고 번거로운 면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다 피부로 흡수되어 호르몬을 교란시킨다고 하니 참 난감하네요. 예전에 티비에서 샴푸 안 쓰고 머리 감는 사람도 나오긴 하더라고요. 몇 년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가 샴푸를 최소량으로 해서 한 번 감아봤는데 머리까 가렵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부터 목욕할 때 물만 끼얹고 비누도 안 쓸 때가 많아요.그래도 제 몸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난답니다.미남의 향기....

blanca 2011-11-10 22:22   좋아요 0 | URL
노자님, 인증샷 기다릴게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11-11 16:08   좋아요 0 | URL
에그머니...무슨 장면을 찍으라는 말씀이신지...19금 발언을 어찌 그리 태연하게 하시나요? 당혹 당혹~

blanca 2011-11-11 21:25   좋아요 0 | URL
노자님도 참, 제가 노자님이 하도 스스로 미남이라고 하셔서 정말 미남인지 얼굴 인증하라는 얘기였는데 19금이라니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2 16:07   좋아요 0 | URL
음...그냥 상상으로 그려보세요.이기광이 조금 더 나이 들면 저같이 될 거에요.이젠 그림이 그려지시죠?

아이리시스 2011-11-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오리인형 다리가.. 다리가.. 저렇게 예쁜 오리의 다리가..ㅜㅜ
이거 보니까 끝까지 산재가 아니라 우겨왔고, 우기고 있는 삼성이 생각나요. 난자가 손상된 생쥐처럼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바디샴푸를 안쓸 수는 없고, 대안은 안나와요, 블랑카님? 이 책, 궁금해요. 나부터 생각해야지 아이는 무슨.. 이라고 적고, 아.. 내 아이..ㅜㅜ

blanca 2011-11-10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삼성에서 이쁜 아이 두고 백혈병으로 죽어간 아버지 기사 생각나더라고요. 수많은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가슴이 답답해 오더라고요. 독성물질로 인구가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했어요. 일단 우리가 쓰는 모든 것들이 식수로 돌아오니 최대한 안 쓰거나 줄여 써야 겠는데 극소량도 전반기에 걸쳐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킨다네요. 여기에도 나오긴 하는데 소극적으로는 일단 안 쓰고 줄여 쓰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정부와 기업들에 어필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지요. 저도 저 표지의 다리 한참 있다 알았어요.--;;

비로그인 2011-12-1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블랑카님 :)

리뷰 제목이 뭔가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읽었네요 ㅎㅎ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오르는 책이에요. [침묵의 봄] 읽을 때 처음에는 오호, 그렇군. 이랬다가 점점 지루해지면서... 결국 살충제는 나쁘다! 그리고 BBT는 해롭다! 두 문장으로 정리했던 기억이... 대체 방안을 찾는게 정말 중요한데, 생활 용품은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로션/스킨도 안 바르고 머리 감을 때 린스 안 하는 걸로 나름 실천한다고 생각하지만... 꾸준히 유해한 성분을 쓰고 있을 거에요. 크- 난센스에요 난센스.

그러면 이 책에는 구체적인 대안 같은 것도 들어있는 건가요?

blanca 2011-12-12 22:03   좋아요 0 | URL
말없는 수다쟁이님, 저도 환경운동하는 사람들한테 고전이 되어버린 레이첼 카슨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빌려보려고 잠시 들춰보고 말았어요. 요새는 조금 지루해 보인다 싶으면 선뜻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아, 대안이요! 물론 구체적이거나 실질적인 것은 많이 없지만 그냥 저 개인적으로 좀 달라지긴 했어요. 프라이팬도 코팅은 안 쓰고 되도록 세제, 화장품은 멀리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들은 되도록 사지도 먹지도 않으려고 하고요. 참, 환경운동하시는 분들 중에 샴푸 없이 머리 감고 화장 아예 안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샴푸 없이 머리 감는 것 그건 저도 아직--;; 그런데 신기한 게 하다 보면 머리가 적응을 한다고는 하더라고요.

비로그인 2012-01-0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홀함과 치밀함의 접점이 오락가락입니다. 한동안은 모든 화학약품을 끊어내 버리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였건만 지금은 화학약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상한다는 말에 나의 이번 여름이 오싹해지고(맨얼굴로 땡볕 아래를 한두시간 걷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으니)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허전하여 계속계속 뿌리고, 지금은 손에는 핸드크림 입술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앉았습니다. 결국 모든 물질은 피부를 통해 흡수되거나 쌓일 것인데 흡수되지 않도록 차단하면 다른 식의 변이가 일어나게 되어요. 결국은, 결국은, 결국은, 이것은 시거를 피우며 구강암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벼운 레종이나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며 폐를 한바퀴 연기로 돌려 폐암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댓글을 쓰다 보니 왼쪽에 제 닉네임이, `미천한 사람 주드'로 눈에 확 들어오지 뭡니까(알아요, 토마스 하디!). 결론은,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블랑카님!

blanca 2012-01-08 10:23   좋아요 0 | URL
쥬드님, 그럼요. 제가 한동안 암것도 안하고 얼굴을 내버려 두니까 각질이 말도 못하더라고요. 저는 향수를 안뿌리지만 저는 향수를 뿌린 사람의 반경 안에 들어가 그 냄새를 맡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지만 항상 딜레마를 느낀답니다. 섬유유연제 안 쓰려고 구연산을 쓰다 섬유 유연제만 못한 그 느낌에 실망하기도 하고.

저는 미천한 사람 쥬드를 아직도 읽지 못했어요. 읽을까요, 쥬드님? 자꾸 망설이네요....

비로그인 2012-01-10 12:27   좋아요 0 | URL
오락가락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생각하며이젠 이쯤 된 거 뭘 어쩌겠어, 하며, 그나마 머릿결을 좀 더 보호해 준다는 샴푸에 한 달가량을 의탁하기로 했어요.

몸은 썩을테지만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어요. 입맛은 가버릴텐지만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것 아닐까요.

미천한 사람 주드, 어찌 읽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디의 남녀들이 그러하듯 나락으로 늪지로 사면초가의 어둠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것을 읽어버리면다시 돌아올 길을 찾기가 좀 힘들어 지실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한 추천이지요? 제 추천이 좀 이렇습니다. 간단히 '일독을 권합니다' 라고 말하지를 않지요.
 

나는 노빠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데에는 그 어떤 논리적인 근거도 없다. 그의 하회탈 같은 미소,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 금방이라도 손을 내밀 것 같은 수더분한 느낌. 그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었다. 그의 가치관, 정치행보에 대하여 솔직히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언론이 그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진보진영에서도 그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퇴임즈음, 퇴임 이후, 그는 형편없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혔다.  

그의 죽음까지. 그에 대한 사랑 그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좀먹었다. 이유는 내가 무식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그의 죽음은 꿈결처럼 들려왔다. 울면서 그를 다시 알아갔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내어 놓았던 각종 정책들, 마지막까지 꿈꾸었던 비전들.  

그는 우리를 꿈꾸게 했지만 그의 죽음과 이후 벌어진 상황들은 희망을 앗아갔다. 과연 정치라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 그 시도 자체가 무익하고 무용한 것이고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결국 인간은 자기 앞의 밥그릇 앞에서 대의를 걷어차도록 내몰리지 않는가?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고 자위하며 어제는 투표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기대가 유린당하는 과정은 학습된 무력감을 불러왔다. 그래, 안 할래.  

그 순간 문자가 왔다. 한창 아프고 힘들었을 때 그 아이는 나에게 밥을 먹게 해 주었던 아이다.
언니, 나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  

그 문자는 졸던 나를 내리치는 죽비 같았다. 일부러 아이를 데리고 투표장에 갔다. 정치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대단하고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칸막이가 된 내밀한 공간에서 내가 오해로든, 이해로든 지지하는 사람에게 꾸욱 도장을 내리누를 수 있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던가,를 잊었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투표장은 근처 중학교였다. 운동장에서 사내애들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몰려 다니고 있고 하늘은 더없이 새파랗게 몸을 떨고 있었다. 작은 도서실은 주민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큰 기대 없이 그 도서관에 들어갔다.  

아, 그 도서관은 숲 속에 숨어있다 느닷없이 튀어 나온 작은 과자집 같았다. 중년의 명랑한 사서는 아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자신이 만든 지도를 따라 그 집을 안내했다.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 왜 진작 몰랐을까 안타까웠다. 아이 책을 대출하려 서니 사서는 아이를 곁으로 부른다. 몸소 책의 바코드를 스캔하는 영광을 아이에게 하사한다. 핑크빛 회원증을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당신이 너무 부러워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나는 책이 너무 고팠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항상 의심했다. 돈을 의식했던 것도 아마 책과 관련된 결핍 때문이었던 것같다. 복지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욕구들에 바로 결핍과 돈이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 그 여백에는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 그렇다면 정치는 유효하다. 무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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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메아리 칩니다. 너무 자주 기권,했던 접니다. 후회합니다.
이번엔 서울 시민 아니어서 기권,할 기회조차 없었지만요.^^;;

'중년의 명랑한 사서'를 만날 수 있어서 저도 싱긋- 웃어봅니다.
오늘 날씨 정말 화창합니다.^___^

blanca 2011-10-27 23:04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그 사서분이 눈에 밟혀요. 날잡아 또 가보려 합니다. 아이 책도 읽어 주셨는데 정말 저와 다른 시각에서 질문들을 던지면서 읽어 주시더라고요. 공부를 정말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날씨 너무 아까워서 밖에 계속 있고 싶었어요...가는 가을의 날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saint236 2011-10-2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권도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장 비겁하고 가장 대가가 비싼 선택이지요.

blanca 2011-10-27 23:05   좋아요 0 | URL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하던 찰나에 문자 하나가 저를 투표장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다행이지요.

마녀고양이 2011-10-2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투표하셨어요,
어제 하루 흥미진진했죠... 머, 나름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아우, 책과 관련된 결핍, 어제 주문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언제 다 읽을까요? 미쳐.

blanca 2011-10-27 23:0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도 지금 책이 잔뜩 밀려 있어요. 보기만 해도 한숨이. 일단 앤을 다 읽어야 하는데 스티브 잡스 전기도 넘 보고 싶은데 천 페이지라면서요? 임꺽정도 보고 싶고. 무슨 숙제처럼 일단 있는 것 다 떨고 욕심 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1-10-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도 소중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저 자신에게 바라야겠어요.
내리치는 죽비에 번쩍 정신이 든 블랑카님, 책에 대한 허기는 늘 채워지지가 않죠? ^^;;

오늘은 신간 평가단에서 두 권의 책이 날아왔는데 아주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이 드네요.
이것도 금세 허기로 변하겠지만요 ㅎㅎ

blanca 2011-10-29 22:3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아마 죽을 때까정 '나는 아직 배고프다' 이러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이 읽을 책이 주르륵 놓여 있으면 행복한 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참, 알 수 없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님이 퇴임하고 나서 현 정부 집권 초기엔 인기가 많았죠.그때 방송에서 김해 고향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즉석연설하는 노무현 님을 방영해주고...대단한 인기였죠.그러다 1년이 안 되어 저세상으로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특히 2009년 3월부터 박연차 사건으로 모든 언론에서 물어뜯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이 그 어떤 언론사도 다 싫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blanca 2011-10-30 22:23   좋아요 0 | URL
언론이 양날의 칼인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인데 이제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반대로 자꾸 받아들이면 되겠구나, 하는 체념이 생겨 서글픕니다.

sjoome 2011-11-2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 언니 일기의 조연된거야?
우하하~~ 기뻐기뻐~~ 정말 기뻐!~
자꾸 언니랑 얘기하면 언니 일기의 주연도 시켜줄꺼지?
 

지난 주 책과 함께 주문한 나가사키면을 밤 열한 시경 내리 끓여먹는 기염을 토하고, 주말밤마다 EBS에서 상영하는 명화들로 주를 항상 두통과 께적지근한 컨디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젯밤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봤다. 1960년의 흑백 영화로 화질도 성우들의 더빙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중간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여공들의 음악교사. 배우 김진아의 아버지 김진규가 연기한 적당히 느끼하고 매력적이고 결단력 없어 보이는 중산층의 가장이 임신한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할 하녀를 들임으로써 전개되는 일종의 스릴러 치정극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고 쥐를 생포하는 엽기적인 팜므파탈을 연기한 배우 이은심의 연기가 놀라웠다. 당시 신인이었다는데 이 역할을 한 이후로 역할이 한정되어 결혼하여 은퇴하는 수순을 밟아 후기작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피아노를 배우러 집안을 드나들고 결정적으로 이 하녀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 배우 엄앵란의 통통 튀는 연기도 볼 수 있다. 짓궂은 아역으로 등장해 장애가 있는 누나를 괴롭히는 안성기의 소싯적 모습도 엿볼 수 있는 즐거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그 밖의 타인들에게 직간접으로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는 남자의 욕망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긴박한 전개, 계단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을 적절히 활용한 모습,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투영되는 과장된 표정 들이 언뜻 히치콕 감독을 연상케 한다. 결말의 반전도 기대이상이었다. 관객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다양한 욕망들의 변주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 버전은 상대적으로 호평을 못 받고 있는 것같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새벽 한 시 반. 그 욕망을 연기했던 배우들은 이미 죽거나 은퇴하고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욕망은 더 진화하고 더 젊어져서 삶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순간 <빨간 머리 앤> 전권 주문이 후회됐다. 그냥 왠지 그랬다.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이 고민. 하늘을 보고 누우면 또다른 고민.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또 한 살을 먹게 되는구나, 하면서 한숨 한 줌.  

침대에 누울 때마다 삶이 조금씩 더 줄어드는 것같다. 그리고 얼마간은 진실이다. 시간의 바로미터는 지척에서 요 바깥에 나가 배를 다 드러내고 쌕쌕대며 꿈나라게 가 있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결국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이 결국은 자신의 욕망의 분출 이상이 아닐 때도 많다.  

 

이런 류의 책에 대한 일종의 체념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한다는 말은 진부해서 더 많은 의미를 가진 얘기이다. 성장통은 사춘기만큼 아프고 뒤돌아 보면 훌쩍 커있다. 오른손에는 내 아이, 왼손에는 어릴 적 작고 아픈 나의 손을 잡고 아주 무거운 도움닫기를 하는 일이다. 한꺼번에 두 아이를 데리고 저만치 걸어가야 하는 일. 힘들지만 어느덧 셋이 이만큼이나 와 있다.  

나가사키면, 꼬꼬면은 쟁여두지 않으면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밤마다 어쩌다 보게 되어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들은 어찌 끊는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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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것들... 그래도 [빨간 머리 앤] 전권 주문은 잘 하신 선택 같은데요? 저는 1권만 하나 책장에 꽂아놓았답니다 ㅎㅎ 이 책이 미래의 조카들 혹은 내 아이들에게 갈 생각을 하면 흐뭇해요. 밤 늦게 영화 보는 것도 좋지만, 다음 날을 생각하면 좀 주저하게 되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화 보기에는... 뭔가 기분이 안 나고! 저도 [하녀] 흥미로웠어요. 기대 이상은 아니었지만 ㅠ ㅠ

blanca 2011-10-17 22:55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하여튼 밤늦게 무슨 일을 하는 것은 다음 날 아침 처절한 후회를 불러오더라고요--;; <하녀> 보셨군요! 저는 흑백영화고 성우 더빙이라 아예 기대 없이 봐서 재미있게 봤어요. 리메이크 버전은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있더라고요.

stella.K 2011-10-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가사키면 괜찮죠? 그런데 그것을 11시에 끊여 잡수시다닛!
아, 브랑카님 왜 그러셨어요?ㅠㅠ
그래도 신라면이 강해서 그것도 그렇고 꼬꼬면도 그렇고 신라면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요.
점심엔 저도 라면을 끊여 먹어보고 싶군요.ㅎ
하녀를 다시 방영해줬군요.
저도 작년에 봤는데.
옛날 배우가 나오고 소품이 옛날거라 그렇지 디테일은 정말 뛰어나요.
진짜 히치콕을 연상시키기도 하구.
전, <료마가 간다> 반값에 나왔던데 사고 싶은 충동이 마구 생겨요.ㅠㅠ

blanca 2011-10-17 22:5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나가사키면 저는 기대이상이었어요. 그래서 한 팩을 일주일 안에 다 소화해버리고 말았어요. 신라면, 외국에 나갔던 친구가 외국인이 훔쳐가서 깜놀했다고 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신라면의 명성이 그 정도였다고요 ㅋㅋ아, 반값으로 나오면 저는 망설이다 결국 지르게 되더라고요. 저는 라면이 있으면 자꾸 밤에 끓여 먹고 싶어져서 아예 안 사다 놓아야 해요--

2011-10-17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사르 2011-10-1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상수 감독의 하녀도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하더라구요. 보면서 이전 작품도 봤으면..생각했더랬어요. 엄앵란 씨가 나오는군요.

아..자식을 키우는 것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에 심히 공감합니다. 아직 아가씨지만 저희 언니를 보면서, 그리고 조카를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그게 무엇이든지 욕망을 갈구하고 갈등하는 그런 일은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겠구나, 싶기도 했구요.

빨간머리앤 전권은 욕심내도 될 부류 같애요. 히히. 저도 조카 보라고 질렀는데요. 아직 조카는 보지 않고 제가 여러 번 봤답니다. 다음에 조카가 더 크면 보겠지, 생각하면서 이번에 조카 방으로 옮겨놨습니다. ^^

blanca 2011-10-17 23:01   좋아요 0 | URL
아, 임상수 감독의 <하녀>도 했었어요? 케이블이겠지요? 아쉽네요. 비교하며 볼 기회를 놓쳐서요. 저도 청소년도 볼 수 있겠다 싶은 책들은 아이 명분으로 지른답니다. 멀고 멀었지만요. 달사르님의 아가씨라는 어감이 참 이쁘네요.

icaru 2011-10-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그제(금요일밤) 11시 나가사키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래서?) 그렇다구요~ ㅎ
전도연이 나오던 하녀는 봤었는데..호평을 못 받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blanca 2011-10-17 23:02   좋아요 0 | URL
찌찌뿡! 저는 주로 그 시간 언저리에 꼭 라면 생각이 나서. 십 분 갈등하다 끓여먹은 직후 땅을 치며 후회하고 다음날 아침에 쓰린 속과 부은 얼굴로 일어난답니다.^^;; 아, 안 그래도 리메이크 버전 평들을 읽어보니 칭찬이 없더라고요.

잘잘라 2011-10-1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밀가루 끊었는데 라면,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날씨 쌀쌀해지니까 후후 불며 먹는 라면,이 생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너무나 그리워서..
아.. 그리움이 욕망으로 변하는 순간,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거의 다 왔습니다.
라면 사러 휘릭~

blanca 2011-10-17 23:10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정말 밀가루 끊으셨어요? 사실 저야말로 끊어야 하는데. 라면은 정말 못 참겠어요. 저번 주 일욜날도 책상에 앉아 있으니 아랫층에서 어찌나 격렬하게 라면 냄새가 올라오던지. 당장 한 젓가락 거들고 싶더라고요^^;;

2011-10-17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10-1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빨강머리앤]이 도착해서 [토지] 때처럼 블랑카님이 또 안 나타나시고 숨으실까봐(그렇게 겨울 나실까봐) 완전 걱정이예요. 히히히히히. 그럼 너무 보고싶잖아요.^^

blanca 2011-10-17 23:1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이리시스님, 저의 성향을 어찌나 그렇게 잘 파악하셨어요. 단권 아니면 푹 파묻혀서 겨울잠 자는 수준으로 가는 성향을 들켜버렸네요. 청소년대상 도서이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 보고 싶다,는 말이 참 좋아요.

2011-10-17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가방 2011-10-1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이나 니코틴처럼 밀가루도 중독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요.
저도 야행성이라 한동안 야밤에 라면, 과자, 빵 이런 것들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먹었던 적이 있었지요.
아침이면 어김없이 속이 불편했구요.
그런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그런 습관이 사라졌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럴까요...????
한참 그런 게 땡길 나이가 있는걸까요..????
요즘은 오히려 속이 비어야 맘도 편해요.
그런데도 살은 안빠지고.. (다행히 더 찌지도 않아요..^^)

문득.. 뜨끈뜨끈하게 잘 끓인 멸치국수가 먹고 싶어졌어요... 어쩔...

blanca 2011-10-18 21:48   좋아요 0 | URL
저는 카페인이랑 밀가루 중독이에요. 위가 정말 안 좋아요. 빨리 고쳐야 할 습관인데 쉽지가 않네요. 뜨끈뜨끈하게 잘 끓인 멸치국수,라는 책가방님의 말씀에 또 그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게다가 저희 집 주변에 또 유명한 멸치국수집이 있어서요.

책가방 2011-10-19 11:41   좋아요 0 | URL
결국... 어제 애들이랑 멸치국수 먹고 왔어요..^^
항상 붐비는 집인데.. 곱배기랑 보통이랑 가격이 같아서 너무 좋아요.ㅋ
짜장면 곱배기는 느끼해서 다 못 먹어도 국수 곱배기는 먹어지더라구요.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거리라.. 걸어가면서 속을 비우고 먹고 걸어오면서 소화시켜요..^^
또 먹고 싶어요~~~~

감은빛 2011-10-1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가사키면 좀 매운 느낌이던데, 물론 저는 매운라면을 좋아해서 잘 먹었지만,
아내와 큰애는 매운 걸 못먹어서 혼자 몰래 먹을 때에만 가능한 메뉴가 되겠네요.
장안의 화제라는 꼬꼬면은 아직 구경도 못해봤어요.
어디 파는 가게나 있기나 한지 궁금하네요.

저도 밤 늦게 라면 먹고, 영화보는거 좋아하는데,
아침이면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죠. ^^

blanca 2011-10-20 09:4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정말 먹는 순간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차라리 그래서 라면을 안 보면 나을 것 같아 보관함을 비워두었답니다.ㅋㅋ 하여튼 저녁 여섯 시 이후에는 주전부리 안 먹고 열두 시 전에는 취침하는 것이 다음 날을 위해 제일 건전한 행동인 것 같아요.

yamoo 2011-10-2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녀의 감상을 블랑카님의 페이퍼에서 다 보네요^^ 이거 시나리오 쓰는 친구가 <하녀>의 시나리오에 대해 엄청난 상찬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이런 쓰릴러를 쓸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라웠다는군요. 저는 이 흑백 영화를 아직 못 보았지만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블랑카님의 짧은 글을 보니 마구 보고 싶어 지는데요^^

빨강머리 앤...이건 명작이라 후회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blanca 2011-10-23 22:1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도 시나리오 좋다는 얘기만 듣고 정말 우연찮게 보았는데 물론 설정이나 대사 같은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면들은 있지만 히치콕 못지 않더라고요. 일단 아주 재미있어서 중간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답니다.빨간머리 앤 지금 읽는 중인데 3권부터 좀 지루하네요.-..-
 

형. 성. 평. 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이리 저리 뒤척이다 문득 중학교 윤리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 화들짝 잠이 깼다. 콧날이 오똑하고 눈이 서글서글했던 여선생님의 특유의 억양이 생생했다. 한 차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핵심 내용을 뽑아 질문을 만들고 답도 주셨다. 단 하나의 문제였는데도 소위 임팩트가 대단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윤리를 잘 했다. 선생님은 더욱더 기분이 좋아지셔서 수업 말미에 이르면 '형. 성. 평. 가'를 부르짖었다. 우리는 이미 답이 주어지는 문제를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대체 몇 번을 봤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티비에서 해 줄 때마다 봤던 것 같다. 그런데 기어코 또 보고 말았다. 일요일 새벽. 너무 늦어서 찰리가 학교에 돌아가는 씬까지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지만 봐도 봐도 멋진 탱고장면은 제대로 봤다. 삶의 후반부에서 청춘을 동행하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삶과 시간을 조감하게 해 줄 수 있어 대부분 성공한다.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의 미덕은 관객이 나이들어가며 시점이 고등학생 찰리에게서 알파치노가 연기한 프랭크로 서서히 이동해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질릴래야 그럴 수가 없다. 나는 마치 찰리와 프랭크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찰리를 봐도 프랭크를 봐도 가슴이 저릿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마침내 당도할 시간들. 얼마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퇴역중령 프랭크. 그의 자살 여행에 동행하게 되는 사립고등학생 찰리. 세상은 온전하게 똑같이 놓여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나이들어가며 저마다의 프리즘으로 굴절된 바깥을 전부로 인식하며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때로 답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찰리의 눈에는 아직 수많은 물음표가 있고 프랭크의 눈에는 미처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삭아서 비늘처럼 벗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손을 잡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형성평가의 답처럼 명쾌하지 못한 수많은 질문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때로 그 질문을 밀어두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극중 프랭크의 말처럼 인생과는 달리 실수해도 괜찮은 탱고 스텝처럼 너그러운 영화다. 처음 봤을 때는 프랭크와 함께 탱고를 췄던 여배우 미라 소르비노가 이쁜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정말 눈이 부시다. 이런 관점의 변화도 나이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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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파치노가 화를 내기 전에 그렇게 말하죠. 후와~ㅎㅎ^^

blanca 2011-10-10 13:2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무슨 얘기인가 하다 뻥 터졌어요

마녀고양이 2011-10-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고를 추는 장면, 정말 찡하잖아요......... 미치도록 찡하죠.
그리고 학교에서 변호하는 장면도 멋지구요, 저두 그렇게 늙어갔으면. ^^

blanca 2011-10-11 11:3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참 이상한 게 어렸을 때 봤을 때는 탱고씬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요전번에 보니까 확 와닿더라고요. 아, 넘 멋져요. 크리스 오도넬도 찾아 보니 가정을 일구고 대가족을 잘 이끌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도 넘 인상적이에요.

비로그인 2011-10-1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리 선생님 하니, 저는 꽥 스러운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주 날카로운 칼이 스치는 느낌이 드네요~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영화. 꼭 여인의 향기가 아니더라도 왠지 blanca님의 얘기는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습니다.

blanca 2011-10-17 10:2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꽥스럽다,고 하니 저도 고등학교 때 윤리샘이 떠올라서 갑자기 웃음이 나네요. ㅋㅋ 요새 자꾸 EBS에서 야심한 시각에 해주는 영화들이 빠져 잠이 모자라 죽겠습니다.^^

감은빛 2011-10-1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래전에 봤는데도 춤추는 장면만큼은 잊혀지지 않네요.
덕분에 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blanca 2011-10-20 09:43   좋아요 0 | URL
저는 볼 때마다 좋더라고요. 전도연의 <인어공주>와 함께 한 세 번씩은 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