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종말 -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통찰
데이비드 B. 아구스 지음, 김영설 옮김 / 청림Life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몸이 거기 있음을 느끼게 될 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잠잠하던 그것이 통증을 호소할 때이다. 갑자기 그 '몸'의 호소에 단단히 결박당해 때로 생사를 다툴 때 '질병'은 '존재'를 압도한다. 우리가 행복하게 죽을 수 없고 '죽음' 그 자체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도 죽음과 질병의 접점에 필연적으로 육체적 고통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한 퇴장은 남가일몽이다. 태어날 때에도 그렇게나 울었듯이 우리는 이 세상과 작별할 때에도 고통에 허덕여야 한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몸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은 불편하다. 부러 더 마음과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들과 그것들에 내재된 결핍으로 이야기 꾸러미를 뭉친다. '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근시안적이고 즉물적이고 경솔한 것 같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질병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경솔해 보인다. 오히려 진지한 내용의 미덕을 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실제로  'The end of illness'라고 붙인 제목의 직역이다. 제목처럼 실제 그가 인류의 모든 질병을 극복하고 기대수명을 한정없이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암전문의이자 연구자인 그가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이자 시선이 가 닿는 곳일 뿐이다. 그의 앞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개별화되고 역동적인 몸의 주인이 된다. 단 하나의 진단, 처치로 대상화되어 버리는 환자의 몸 대신 우리 몸은 주체성을 되찾고 세포 사이의 대화의 장으로 변환된다.

 

비타민 C 정제를 주문하려고 벼르고 있던 와중이었다. 나의 주문이 나의 몸에 대한 대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비타민은 몸의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바꿈으로써 고유한 항상성 조절을 간섭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술로 측정할 수 없는 해로운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차라리 이에 기울일 노력을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데 들이라는 이상적인 충고는 우리가 몸과 대화하는 방식이 연극적인 대우로는 마무리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더 많은 정성과 더 많은 시간을 들이라는 얘기다. 간편하게 알약 하나를 삼킴으로써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발상은 아이에게 비타민과 각종 건강식품을 먹이는 것으로 건강 관리와 양육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원했던 내가 믿고 싶었던 허구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하고 유기적이다. 하나의 자극이 하나의 반응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 정교한 시스템 전체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위협적인 면까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처방과 조언이 있다. 그러나 그게 주는 아니다. 그것은 권말 부록 같은 것이다. 몸이 예측성과 규칙성을 사랑한다는 것, 근력 운동의 효과가 기대이상이라는 것, 만성적인 염증이 치명적인 질환의 토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A형 독감도 B형 독감도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의 신체가 사실은 그 독감들이 남긴 상흔으로 혈관의 노후화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절망적 가능성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 (저자가 독감예방접종을 강력 권고하는데 아이에게 A형 독감 예방 접종을 했던 그 해에 B형이 유행했고, 또 그 반대였던 상황들의 악재에 보기좋게 걸려 들었던 경험으로는 이 대목은 크게 신뢰가 안 간다) 이 조언들은 간명하고 유용하다.

 

이 책은 서구의 의학자가 의학의 위업과 첨단 기술의 조합으로 인한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것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찰, 오늘과 내일을 영위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적이고 진지한 성찰 들이 책 자체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진중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건강에 관련된 남발되는 조언 들에 질식 상태에 있는 우리들에게 암전문의가 삶은 마라톤일 수 있지만 우리는 마치 체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달려야 한다고, 체스는 한 번에 하나씩만 움직이며 앞으로 나갈수록 게임이 바뀐다고 조언하는 데에야 절로 고개가 숙어지지 않을 수 없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언제나 조금 불편하고 기대이상으로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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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2-06-2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의 글에는 '젊었을 때에는 마음대로 되던 몸이 나이가 드니 멋대로 따로 존재한다. 몸이 상전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저는 몸의 질병을 크게 '공공의 적'과 '개인의 괴로움'으로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흰머리, 잔주름, 두통 같은 내 나이대의 사람들이면 응당 호소할 공공연한 사실과도 같은 아픔. 하지만 저에게만 찾아오는 까닭 모를 질병과 질환, 징후. 이것은 업보와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함부로 다룬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일이라고.

블랑카 님의 리뷰를 읽으니 밝고 낙관적인 부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 전체의 흐름을 바탕으로 몸과 질병을 이야기한 책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들어앉은 생각들을 바꾸어주는 것을 유쾌하다고 말씀하시니, 블랑카님은 필시 생각을 유연하게 하시는 분일 거란 추측을 해봅니다.

blanca 2012-06-27 09:22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도 그래요. 특히 위염요. 예전에 관리하지 않은 업보를 받고 있답니다. 점점 몸이 상전이 되어가고 점점 더 대우해달라고 아우성이네요. 이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답니다.

like 2012-06-2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두 나왔더라구요. 비타민씨대신 자두 드세요^^

blanca 2012-06-27 09:22   좋아요 0 | URL
like님 안 그래도 저 자두 정말 좋아해요. 일단 너무 사랑스럽게 생겼잖아요. 작고 귀엽고 오동통하고 ㅋㅋㅋ 과일 열심히 먹으려고 해요^^

2012-06-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인용하신 책 내용에 대부분 공감이 가네요. 근데 예방접종 권유는 책 전체의 흐름과 안 맞는 것 같은데, 저자는 왜 권했을까요. 저의 경우, 평생 딱 한 번 독감 예방접종을 했는데, 딱 그해에 엄청 심한 독감을 앓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 주사 때문인가 싶기도 한데, 타이밍이 일치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초6때였지요.
제가 아는 분은 신종플루 접종으로 뇌의 일부가 죽어서 엄청난 후유증을 감당하고 있어요. 언어와 행동이 둔해지고 등등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요.

blanca 2012-06-29 10:37   좋아요 0 | URL
저희 아이도 징크스가 있어요. 독감 예방접종을 맞은 해에는 꼭 다른 형의 독감을 심하게 앓더라고요. 두 번이나 그러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처세술이나 어떤 방법론적인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책과 석별한지 좀 됐다. 그러니까 그런 책들에 열광했던 시기도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 방법에 관련된 책들을(합격수기 참 많이도 읽었다), 아이를 낳고는 육아서를, 마음이 허할 때는 인간 관계나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뜬구름을 잡으려다 엉뚱한 설교를 해대는 책들을 사 모았다. 그 책들이 다 무용지물이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힘들었을 때 그 엉뚱한 낙관론을 설파한 책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그러한 책들이 비교적 생명이 짧고 때로는 지극히 위선적이고 빈약하다고 해도, 이제는 더이상 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지 않다고 해도 그 시기에는 나름의 역할들을 했고 책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책들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제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지 않고 개개인의 상황을 도식화하고 정답을 눈앞에 들이미는 듯한 그 태도에 별로 솔깃하지 않게 된다는 게 답변이 될 것 같다. 살면 살수록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그렇게 답을 내재하지 않은 질문들이 그득한 게 그 자체로 삶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어쭙잖은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 아는 동생이 혹시 정리법에 관련된 책이 있냐고 물어왔다. 작년에 유명 블로거가 쓴 책을 읽었던 게 기억이 나 그 책을 추천해줬지만 사실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 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여전히 청소는 스트레스고 서랍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위안이라면 나보다 더한 옆지기가 모든 것을 관용으로 감싸준다는 사실 뿐. 대체적으로 정리정돈은 잘 된 상태에서 사람들을 맞게 되지만 그 과정이 더없이 피곤하고 체계도 없고 물건은 항상 없어지고 사야 할 것들은 끊임없이 튀어 나온다. 그러니까 정리, 수납에 관련된 노하우는 여전히 나를 매혹한다.

 

 

사실 정말 기대가 없었다. 뻔한 얘기겠거니 싶었고 손 안에 거의 일주일은 있었나 싶게 지지부진한 독서였다. 그럼에도 이 책을 강추한다. 수납에 관련된 책에 흔한 사진도 그림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을 문자 텍스트로 설명하려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수납 노하우를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정리'와 그 정리의 대상이 되는 '물건'에 대한 감성적 접근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다면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다. 물건을 하나 하나 만져보며 지금 당장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 물건과는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적절한 처분은 그 물건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물건의 소유 방식이 삶의 가치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같다.
-p.227 

 

 물건을 통해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마주하면 지금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

-p.229

아무리 정리에 대한 자잘한 노하우와 수납 도구들을 만드는 기막힌 방법을 제시한다고 해도 내가 막상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당장 옷장을 열고 서랍을 열고 버리기를 실행해 보고 싶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지 않으려 했던 이 책을 다시 가지고 싶게 만든 것도 이 책의 마력인 것 같다. 노하우를 설교하려는 듯한 외양 속에 의외의 보석을 숨겨둔 것 같아 다시금 가벼운 책에 대한 이유없는 거부감을 반성하게 되었다. 부작용이라면 끊임없이 '버려라'라는 환청 같은 강박이 생긴다는 것.

 

 

 

 

사실 이 책의 저자 노라 에프런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줄리&줄리아>를 연출했단다. 게다가 두 번째 남편은(현재는 세 번째 남편과 살고 있다고) 워터 게이트 특종 기자 칼 번스타인이다.

 

 

나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믿었다.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었다. <중략>

나는 기자와 결혼했는데, 그 결말이 좋지는 않았다. 나중에 또 기자랑 재혼했는데, 그 결말은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들의 말은 늘 잘못 인용된다. 언론계는 음로론으로 가득 차 있다.

-p.48 

 

그녀는 당시 보기 드문 슈퍼우먼이었던 작가였던 어머니와 낭만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여 대학 졸업 후 <뉴스위크>, <뉴욕 포스트>에서 일하게 된다. 헐리우드에서 로맨틴 코미디의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녀의 커리어와 삶은 더없이 역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이백 페이지도 안 되는 이 에세이집이 사랑스러운 이유다. 자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늙었다"라는 냉소적인 고백 앞에서도 이 귀여운 할머니의 여담들은 빛을 잃지 않는다. 결코 무겁지도 아주 진지하지도 않은 책이지만 녹록지 않았던 자신의 직장 생활과 이혼, 속과 겉이 다른 유명인들에 대한 회고담, 언론에 대한 가감없는 비평, 죽은 친구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들이 작고 가벼운 책에 중량감을 준다. 그녀 영화 속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결국 그녀의 성격,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나왔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철들면 버려야 할 환상 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철들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회고담이라고 보는 게 낫겠다. 여기에는 저널리즘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도 포함된다.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버리지 않은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다. 나는 궁금하다. 그녀가 죽음과는 어떻게 마주할지. 맛있는 것들을 참지 못하는 그녀가 마침내 그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에 어떻게 근사한 작별을 고할지. 요새는 자꾸 삶의 교사를 만나고 싶어지는 게 또다시 약해지고 있나 보다. 이러한 책들과 재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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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18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웬디님, 그리고 블랑카님의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정리의 마법 저 책은, 내가 쳐박아 놓은 물건들이나 생활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에세이 같은 분위기인듯 해요.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I remember nothing and other reflections), 저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땡스투 할 데가 생겼어요! ^^ 이 책 이전에 나온 노라 애프런 에세이 안보셨어요? 원제는 I feel bad about my neck 으로 책표지도 예쁜 에세이였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표지도 제목도 진짜 엉망으로 나와버렸던...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가 뭐냐구요...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60181 (직접 확인하세요 흑흑)

다락방 2012-06-18 10:35   좋아요 0 | URL
저는 내 인생은 로맨틱 코메디 읽고 방출했었어요. 목주름 얘기말고는 딱히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는 글이 없더라구요.

blanca 2012-06-18 22:08   좋아요 0 | URL
아, 읽어보지 못했어요! 목주름에 관련된 어떤 얘기를 했는지 궁금한데요? 이 책 읽으면 목주름 안 생기는 법이라도 알 수 있는건지요 ㅋㅋ 낮은 베개 베고 자는 습관 들였다 다 포기하고 푹신한 베개에 엎드려 자고 있거든요.^^

잘잘라 2012-06-26 10:16   좋아요 0 | URL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표지! 우와우~~~~ 브론테님의 '흑흑'이 너무나 와닿습니다. 저도 흑흑ㅠㅠ

LAYLA 2012-06-1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호평이 많네요. 저 같은 애를 위한 책이에요. 사야겠어요.

blanca 2012-06-18 22:08   좋아요 0 | URL
정리, 수납에 관련된 책을 몇 번 읽었던 것 같은데 무언가 실행력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는 이 책이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2-06-1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의마법, 호평이 많으네요.
저는 오래전 캐런 킹스턴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을 읽고 때로 들춰보고 잠시 실천도 하지만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 뒤엉키는, 뭐 그렇답니다.ㅎㅎ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 자꾸 쌓이고 ㅎㅎ
블랑카님, 뭔가 제대로 못 버려서이겠지요, 제가요? ^^
감성적 접근, 공감되고 좋으네요. 또 한 주의 시작, 신명나게 보내자구요.^^

blanca 2012-06-18 22:09   좋아요 0 | URL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ㅋㅋ 저는 한번씩 버리기는 하는데 자꾸 서랍을 휘저어 놓게 돼요. 아우 요새 너무 너무 더워요, 프레이야님.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1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 feel bad about my neck에서 노라 애프런은 여자들의 가방, 주름, 옷 등에 대해 이야기해요. 흔한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주관적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에르노와 아주 다르지요. 장르와 소재와 문체가 다르고 결정적으로 이 두 사람은 표정 주름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이 두 여자들 처럼 나이드는 것은 부러웠습니다. 부럽다는 것은 아직 젊다는 것.

정리의 마법, 저도 얼마 전에 서점 구경을 하며 읽었어요. 그리고 50 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사와서 물건들을 버렸던 기억. 그 안에는 안입는 옷, 책, 장신구, 화장품, 가방 등이 들어갔어요. 구입할 때 미래의 어느 시점을 예약하는 일이라며 설레어 했던 순간들이 정리되었음으니 이제 다시 구입할 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어요. 가짜를 버려야 진짜를 살 수 있다고. 가짜 명품 가방을 샀는데 가짜임에도 꽤 비쌌대요. 그걸 갖고 있는 내도록 진짜 명품 가방을 살 수가 없었다는 고백. 마침내 버리고서야 진짜 갖고 싶었던 가방을 살 수가 있었대요. 이런 일,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blanca 2012-06-18 22:13   좋아요 0 | URL
아, 여자들의 가방, 주름, 옷에 관련된 책. 또다시 궁금해지는데요. 아니 에르노와는 정말 다르죠. 그런데도 무언가 독특한 시간의 매력을 선물받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무겁지 않은 척 하지만 자못 진지한 사람 같기도 하고요. 가방에 관련된 얘기는 정말 와닿는 은유 같아요.

2012-06-18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8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6-1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워낙 게을러서 이 책을 읽어도 아마 이 책 역시 박스안에 고이 간직해질것 같네요ㅜ.ㅜ

blanca 2012-06-19 21:58   좋아요 0 | URL
저도 천성이 나무늘보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정리해 놓은 그대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에게느 관건이랍니다.ㅋㅋ

잘잘라 2012-06-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실용서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노라 에프런 땡스투! 공감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blanca 2012-06-27 09:20   좋아요 0 | URL
저도 실용서 완전 좋아해요. 메리포핀스님. 메리포핀스님의 추천해 주신 요리책 도움 잘 받고 있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27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의 핸드폰에 20초 전, 뉴욕 타임즈 알람으로 이런 메세지가 떴어요.

Nora Ephron, Filmmaker and Writer, Dies at 71.

블랑카 님이 떠올랐습니다.

blanca 2012-06-27 09:19   좋아요 0 | URL
아! 쥬드님................ 어떻게...눈물이 핑 돌아요.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2012-06-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을 노라 애프런이 썼다니 놀라워요. 근데 또 부고가 함께이니 더.. (사실 부고는 나비님 서재에서 먼저 접했지요.) 저는 노라 애프런을 <유브 갓 메일>로 기억하고 있어요. 아마 그녀는 그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사랑스럽고 즐겁게 살았을 것 같아요...

blanca 2012-06-29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어요. 지금도 이 책이 옆에 있는데 백혈병으로 갑자기. 슬프더라고요.
 

"<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라고 얘기했던 '너'와 나는 멀어졌다. 온갖 얘기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우리는 예전의 관계가 이미 화석이 됐음을 씁쓸하게 깨닫고 비껴갔다. 그래도 나는 또 그 시절의 '너'가 있어 참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추억한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하는 거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목로주점>이 아니라 <목로주검>인 줄 알았다. 파리 외곽의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같은 상류층 여성들의 욕망을 레이스 결처럼 섬세하게 다루었던 에밀 졸라가 과연 하층민들의 삶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도 있었다. 오해로부터 시작한 독서는 오독으로 마감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 역자의 해설을 읽으며 눈물이 고였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이야기는 작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작가에게 파도처럼 덮쳐와 그 작가는 그저 받아쓰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가 나에게 <목로주점>을 각인시켜 준 일은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다시 여고시절처럼 마음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오해들과 서로에 대한 오독을 떠나 그 아이를 만나 얻은 것이 많다. 꼭 현재 진행형의 소통이 아니더라도 찰나의 소통은 많은 것을 남긴다.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목로주점> 역자 해설 중

에밀 졸라의 무덤 앞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조서. 역자의 얘기를 빌리자면 플로베르에게 헌정됐다는 이 작품은 현대적 대량 인쇄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라고 한다. 4년동안 91판을 찍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작가의 서문은 이 작품이 가져온 파급력을 암시한다. 노동자의 은어, 욕설 등이 난무하는 <목로주점>은 사회적으로 수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졸라는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작품이 자신을 변호해 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신뢰는 시간의 검증을 받고 마침내 실현된다. 극도의 가난 앞에서 파멸하는 세탁부 제르베즈의 이야기는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의 가능성을 무력화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이 어떻게 환경과 운명에 의하여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실적이고 조금은 비관주의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 모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또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그녀는 길을 걸으며 옛꿈을 떠올리곤 했다. 일하고, 빵을 먹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이제 그녀는 꿈을 넘어섰다.

 -p.198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둘을 홀로 건사해야 했던 제르베즈는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하여 구트도르 가에 자신만의 세탁소를 가지게 된다. 일하다 지붕에서 떨어진 남편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고 하여도 그녀는 "양처럼 온순했고, 빵처럼 부드러웠다." 굶지 않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만 남은 것은 이제 자기 침대에서 죽는 최후를 가지는 것이었다. 꿈을 넘어섰으니 나머지의 소망은 차라리 소박하고 쉬운 것이었다. 삶은 때로 무척이나 관대하게 우리를 대접해 준다고 착각하게 한다. <목로주점>에서 술에 절인 자두를 남편과 연애 시절 나누어 먹던 제르베즈는 자신이 그 <목로주점>에서 만취한 남편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스스로가 슬픔 때문에 취하게 될 미래를 미처 알지 못했다. 부지런하고 명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즐겼던 이 아름다운 금발의 생활력 강한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파고를 용기 있고 끈기 있게 헤쳐 나간다. 순박하고 성실한 대장장이 구제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 투박하고 거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그저 민들레 꽃을 그녀의 바구니에 던져 넣어 바구니에 민들레 꽃이 가득 차게 되는 장면은 어리석고도 아름답다. 자잘한 꿈들이 실현되는 나날들에 취할 무렵 에밀 졸라는 잔인한 삶의 면면을 들이밀기 시작한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는 고주망태가 되어 가고 지붕 위에서 아내와 딸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던 지난 날들을 자조하기 시작한다. 그는 제르베즈를 파먹고 살기 시작한다. 여자는 점점 지치기 시작하고 무기력과 무능력에 포섭되기 시작한다.

 

전락이 이 정도에 이르면,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옛날의 긍지도, 애교도, 애정과 예의와 존경에 대한 욕구도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어디를 차여도, 앞을 차여도 뒤를 차여도 도무지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무감각해졌고, 무기력해졌다.

-p.526,527

 

눈이 오던 날, 그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거리로 나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았고 물건을 잡혀 술을 마셨고 그녀를 때렸다. 딸 나나는 집을 나가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된다. 더이상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기로 하고 남자들을 붙잡는다.  하필 여기에서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 같았던 구제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장미꽃 같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구제는 늙고 망가진 그녀를 서글프게 응시한다. 구제의 수염에 데이지 꽃잎처럼 달라붙는 눈발에 대한 묘사는 그가 그렇게도 억제하려 했던 그 고결한 그녀에 대한 외경, 사랑의 덧없음을 추억하게 한다. 제르베즈의 소박했던 그 마지막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그런데 그녀의 이 소망이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 그럴 거라고 미처 의심도 의문도 가져보지 못하는 명제에 대한 환기는 불편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니 그 나머지의 것들. 그 최소한의 소박한 소망들도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사수되리라는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갑자기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차 올랐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읽기가 괴로웠다. 경제적인 약자가 미덕까지 망실한다는 것은 최악의 가정임을 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때로 현실이 되는 정경이 현실이다. 에밀 졸라는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도 공격을 당했었나 보다. 작가는 감히 질문할 수 없는 것들을 질문하고 답을 내어 주지는 않는다. 역자의 해설에서 인용된 바르트의 얘기로 귀결된다. 진정한 문학적 참여는 문제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증언과 진술에 있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참여는 이해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또한 절망을 함께 가지고 온다. <목로주점>을 읽고 한없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대안과 해법과 희망 대신 적나라한 절망과 체념에 대한 보고서. 쉽게 읽고 힘겹게 덮는다. 내가 오독했던 제목은 한편 유용했나 보다. 온기 없이 식어간 목로주검. 넌센스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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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9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0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2-06-0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목로주점 읽으셨네요. 에밀 졸라 정주행중이신가요? ^^
이전 페이퍼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저도 저 열린책 두 권을 사두고선.. 흑.

목로주검인줄 아셨다고 하시니 떠오르는 이야기- 프랑스어 원제목에 딱 맞으면서 작품을 제대로 대표할만한 영어단어가 없더래요. 펭귄클래식에선 Drinking Den 이라고도 번역했는데 그것도 마땅찮게 생각했던 번역가들은 제목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L'Assommoir를 영어번역본에도 그냥 쓴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선 목로주점으로 굳어진듯 하죠?

blanca 2012-06-10 22:5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 또 지금 열린책들 세계문학 두 권 주문해서 받았는데 한 권 활자가 너무 작아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포기할까도--;; 에밀 졸라는 사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게 일어서 연거푸 읽게 되었어요. 브론테님 얘기처럼 저도 <작품> 읽어보고 싶어요. <나나>를 읽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아이리시스 2012-06-1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랑카님이 <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 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ㅜㅜ 어제 염상섭의 <삼대>를 들추다가 에밀 졸라가 생각났는데 '프랑스 자연주의'에 갇히는 그 사조가 좀 멀게만 느껴졌는데 브론테님 말씀도 그렇고 우와, 그래도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역시-_-;(한숨) 사놓고 못 읽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천지라서요.. 추천 누르고 쓸어담고(!) 늘 그렇듯 또 미루고..흑..

blanca 2012-06-13 23:3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진심 재미있어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조금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저도 지금 사실 열린책들의 한 책을 결국 포기하고 보내려고 생각중이라 아이리시스님 마음 공감갑니다.^^;;

2012-06-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 아마 평생가야 관심밖의 책이었겠지요. 이 페이퍼를 접하지 않은 저라면.. 근시일 내에 읽지는 못 하겠지만, 마음 속에 적어두었어요. 그나저나 <목로주점>을 보며, '너'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그리움이겠지요.^^

blanca 2012-06-29 10:35   좋아요 0 | URL
섬님, 아주 나중에라도 읽어보세요. 일단 재미있더라고요. 그 친구는 제가 고등학교 때 참 좋아했던 친구인데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 고정되어 있기를 바랐나 봐요. 그 시절의 그 친구가 그리워요.
 
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 만나서 이야기하자."

삐삐의 음성 사서함에서 다음 만남의 기약을 들었다. 그래, 그럼 만날 수 있는 거구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걱정하기 전에 다음 만남의 기약이 주는 안도와 기쁨에 겨워 버렸다. 그런데 그 만남은 불발로 끝났다. 나는 찌질하게 채였다. 그렇게 울며불며 열광했던 스무 살의 첫사랑은 비겁하고 부끄럽게 막을 내렸다.

 

그것은 너무나 미숙했고 자기 도취적이었고 과잉이었기 때문에 지나고 나니 사랑으로도 욕망으로도 취합이 안 되었다. 차라리 중학교 때 혼자서 러브레터를 쓰며 언젠가는 만나 전해줄 거라 믿었던 뉴키즈언더블럭의 조 메킨타이어에 대한 열광의 시즌2  정도라고 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실망하고 또 넘어지고 그리고 또 끊임없이 헛꿈을 꾸고. 괴로워할 이유와 눈물 흘릴 이유는 깨알처럼 많았다. 수많은 결핍을 모아 과잉으로 만들었다. 목이 마르고 또 말랐다.

 

갑자기 사춘기 때와 똑같은 서글픔을 느낀다. 마흔여덟 살에서 쉰두 살 사이의 중년의 여자가 사춘기 때와 얼마나 비슷한 것을 느끼는지에 대해 언젠가 말해야겠다. 똑같은 기다림, 똑같은 욕망. 그러나 여름으로 가는 대신 겨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실은 너무 잘 모른다. 다만 사춘기 때만큼 괴로워하지 않는 몇 가지 하찮은 방법만 알고 있을 뿐이다.

-p.318,319

 

나는 또 착각하고 있었다.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고. 이 책에 대한 솔직한 리뷰를 과연 쓸 수 있을까? 마흔 여덟의 여자가 서른 다섯의 유부남에 탐닉하는 얘기를?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작가가 아니다) 무려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공언하는 아니 에르노다. 지독하게 솔직한 고백 앞에서는 그 내용과는 관련없이 그냥 져 주고 싶은 무력감이 차오른다. 도덕적인 잣대, 사회적인 통념, 상식을 들이밀기 이전에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그 간명한 호소 앞에서 나마저 고고한 심판관 역할을 자처하고 싶진 않다. 자신의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할 가치도 없는 별로 지적이지도 않은 미숙하고 거만하고 속물적인 젊은 남자 앞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물주가 되고 욕망의 배설구가 된다. 그녀의 얘기다. 그 유치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고 전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걸인에게 적선을 한다. 사춘기를 지나도 오지 않는 전화 때문에 밤새 울고 가위에 눌릴 수 있다. 어쩌면 삼류 신파 영화 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나의 사춘기를, 스무 살을, 그녀의 마흔 여덟 살에 대입하며 공감했다. 세상은 단 하나의 경계로 나뉜다. 그의 전화와 기다림. 후에는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짜였을지도. 로맹가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노년이 '배워 알고' 있는 것은 실상 그것이 잊어버린 모든 것"일런지도. 나이가 들어가며 편안해지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완전하게 기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니 에르노의 처절할 만큼 솔직하고 잔인한 고백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처음으로 다시 회귀한다. 나쁜 애송이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아니 에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타입이었지만 그럴 가치는 없었던 한 남자"를 스무 살이 아닌 마흔여덟 살에 만나도 결론은 항상 눈물이다. 사춘기의 아이는 저만치 걸어가 버린 게 아니다. 항상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 기지개를 켤 틈을 엿본다. 돌아오면 또다시 울면서 맞을 수밖에 없을까. 인간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성숙한다고 착각하며 죽을 때까지 미숙하고 유치한, 하지만 가장 절절한 그 시기를 재연할 기회를 엿보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속아주고 만다.

 

 

넉 달. 아직은 추억 때문에 운다. 아직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를 위한 것이다.-p.330

 

 

그녀의 고백은 위험하면서도 슬프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춘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사랑과 욕망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지를 고백하는 애가는 죽을 때까지 부를 수밖에 없다.

 

p.s.  이 책을 그녀를 위하여 소설로 분류해야 했을까? 아니,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도 교묘한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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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강렬하네요. 아니 에르노.
블랑카님의 첫사랑 고백이 좋은걸요. 결핍을 모아 만드는 과잉에 대한 이야기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흔여덟이 되니까요.
완전할 수 없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서툴고 불발이고 그런 점에서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2:5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덕택에 편안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욜 저녁에 갑자기 배탈이 난 건지. 지금은 몸이 영 안 좋네요. 고통을 항상 망각하고 모든 고통을 처음처럼 다시 아프게 겪는다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이 갔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인가 봅니다.

다락방 2012-06-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는 아니 에르노를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이젠 그녀의 소설(이라고 부를게요)을 이제는 소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블랑카님의 이 리뷰가 거기에 불을 당기네요. 리뷰가 무척 좋아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3: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저는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요. 정말 너무 솔직해서 책을 읽다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해요. 그런데 그 속에 어떤 진실에 대한 강력한 환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참 묘한 책이에요. 모든 '척'을 벗어던지고 나면 그 속살이 어떤지의 유무를 떠나 그냥 어떤 공감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놀라웠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질 때 마다 읽었던 유일한 글.
좋이 죽으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알려준 점쟁이 같은 글.

blanca 2012-06-03 23:0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책을 통한 간접 소통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2012-06-28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 없고 감각 없던 대학생이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 잠시 멈춘 곳은 백화점 정식 매장이 아닌,  엘리베이터 귀퉁이에 마련된 넥타이 가판대였다. 어머니뻘의 판매사원은 그런 나를 홀대하지 않았었다. 삼만 원짜리 넥타이들을 하나 하나 같이 판매하고 있는 와이셔츠에 대어 주면서 아버지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고려하여 여러 선택지를 제시해 주었다. 마침내 황금빛 바탕에 사선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들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던 젊은 나는 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었다. 그 넥타이는 아직도 아버지가 가끔 매신다. 끝이 다 해어진 그 넥타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행운을 가져 온다고 아버지는 믿고 계신다. 아직도 나는 그 백화점 판매 사원 아주머니의 정성과 존중이 그 넥타이에 주술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구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백화점은 어느 정도 위압적인 공간이다. 취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백화점에 들어가 무언가를 내 카드로 사고 그 물품을 걸친 일이었다는 것은 그러한 공간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그 공간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얻고 싶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생에서의 결핍은 물질 소비 욕구와 자주 혼동되고 그 혼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성적으로 권장된다. 소비하는 능력과 삶을 영위하는 능력은 같지 않을진대 자주 그런 것으로 오해되고 곡해된다.

 

행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쇼핑,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조경란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 사람> 중

 

 

불완전하며 부족한 나는 결코 사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의 순간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그것은 확실하고 분명한 즐거움이다. 나는 구매했다. 여기에 필수적인 요건은 '나는 선택했다'라는 감정이다. 나는 선택했고 그것은 즐거움으로 남는다. 소비에 당위성은 없다. 소비의 이유도 소비의 기쁨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 우리는 행복했다.

- 조경란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 사람> 중

 

생일 선물로 받은 지갑이 마침내 구멍이 났을 때 솔직히 많이 기뻤다. 소비의 당위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지갑을 죄책감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다. 어떤 지갑을 살까, 이리 저리 재고 구경할 수 있는 나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도 덤으로 얻는다. 드디어 구멍 난 지갑이 들어가고 새로운 핑크빛 가두리의 지갑이 손 안에 들어오자 기대 만큼 뛸듯이 기쁘지는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의 소비는 이윽고 잊혀진다. 나는 다시 나의 새로운 지갑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진다. 심지어 내가 왜 이렇게 동전을 넣고 빼는 것이 불편한 지갑을 선택했는지 후회마저 밀려온다. 새로운 지갑을 살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지갑도 이모저모 살펴보고 했던 시간들보다 지금 새로운 지갑을 가진 내가 덜 행복한 것은 삶의 아이러니와 닮아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을 사도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도 결국은 비슷해지는 것을 보면 소비는 사기성이 농후한 행위인 것 같다. 현명한 소비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인 것인 지도 모르겠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회자되는 에밀 졸라가 19세기 중반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미끼상품, 반품 조치, 세일, 문화강좌 등의 백화점 판촉전략이 1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의 백화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백화점과 지역 소상인 간의 갈등, 지역 재래 시장의 붕괴, 판매원들 간의 살벌한 경쟁, 여성들의 쇼핑 중독, 물품 도난 등도 그러하다. 두 남동생을 데리고 몰락해 가는 큰아버지의 나사 상점에 도착하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판매 사원이 되는 드니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류층 여성들의 백화점 소비 행태, 소유주 무레의 주도면밀한 마케팅 전략, 그 안에서의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반목, 스캔들 등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유려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난한 소녀 드니즈와 백화점 소유주의 로맨스는 그간 드라마에서 꾸준히 차용된 것이 아닌가 싶게 진부하기는 하다. ^^

 

 

 

여인들은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의 백화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보냈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그곳에서 죽여나갔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이었다.
- 에밀 졸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2 중>

 

 

살롱에 모인 부인네들이 백화점에서 구입한 레이스를 서로 돌려 보며 백화점의 각종 상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에서 남성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한켠에서 백화점 소유주 옥타브 무레는 여자들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팔아치울 수 있다는 자신의 신앙에 기대어 연적과사업적 제휴를 도모하고 부인네들의 남편 중 하나는 그 여인의 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이 작품에서 남녀의 역할은 철저하게 소비자와 생산자로 대별되어 있다. 에밀 졸라는 그 접점에 여주인공 드니즈를 투입한다. 드니즈는 옥타브 무레의 무자비한 사업 확장과 소상공인들의 탄압에 제동을 건다. 그녀도 근본적으로는 재래 경제의 붕괴와 대량 생산, 소비의 혁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간에서 스러져가는 가치에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자 한다. 도식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의 행태는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고 에밀 졸라의 이상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의 이상은 세기를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 착각도 연민도 아쉬움도 진보와는 무관하게 반복된다는 것이 하나의 가르침 같기도 하고 삶 그 자체인 것도 같다.

 

백화점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레깅스의 색깔을 고르고 가판대에서 스타킹 두 개를 사도 소비는 소비다. 환각과 착각을 사고 파는 거대한 기만의 장이라고 해도 에밀 졸라의 말처럼 여기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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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이 책 진짜 궁금했는데 이미 사둔 에밀 졸라 책이 몇 권 있어서 차마....ㅜㅜ 에밀 졸라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고....블랑카님 페이퍼보니 또 보관함을 들추게 되네요 ㅎ 루공-마카르 총서가 계속 출간되는 건지도 궁금하고....저도 이
책 보자마자 조경란의 백화점을 같이 떠올렸어요^^*

blanca 2012-05-15 21:5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혹시 <목로주점> 읽으셨어요? 저는 에밀 졸라 작품이 처음이에요. 추천해 주신다면 도전해 보려고요. 이 책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로 만들어져도 너무 근사할 것 같아요. 루공-마카르 총서의 11권이 이 책이라고 하는데 책 만듦새도 좋고 여기에서 계속 출판되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조경란 책에서 추천된 다른 백화점 관련 책들도 읽고 싶어요.

... 2012-05-16 00:1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목로주점>이 대기순위 1위에 있어요 ^^ 열린책들에서 나오자 마자 샀는데, 그 이후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주르륵 나오더군요. 거의 대부분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목로주점>으로 에밀 졸라를 시작하지 않나요?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모티브가 되었다해서 <테레즈 라캥>도 많이 읽는 것 같긴 하던데... 제가 알기론, 에밀 졸라의 대표작을 말할 땐, <목로주점>-<나나>-<제르미날> 이렇게 추천하는 것 같아요. 모두다 루공마카르 총서에 들어가 있어서, 루공마카르 총서가 20권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표작만이라도 나오면 좋겠어요. 제가 가장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마네와 모네를 모델로 했다는 <작품>인데, 여기까진 나와줘야 하는데...

다락방 2012-05-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 엄청 좋아요, 블랑카님. 처음부터 고개 끄덕여가며 읽었네요. 언젠가 블랑카님의 페이퍼들을 엮어서 책으로 한 권 내어도 많은 여성분들의 공감을 얻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 에밀 졸라의 책은 패쓰하고 대신에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겟할래요.

그러고보니 블랑카님도 브론테님도 명품 페이퍼를 쓰시는 분들. 닉네임을 ㅂ 로 시작하면 명품 페이퍼를 쓸 수 있을까요? (이건 갑자기 무슨 엉뚱한 댓글 ㅎㅎ)

blanca 2012-05-15 21:5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ㅋㅋ 저는 제가 쓴 페이퍼 다시 읽으면 괴로워서--;; 책이 된다는 상상은 감히 못하겠어요. 여하튼 칭찬해 주시니 이런 기회로 또 한번 뿌듯해 보렵니다.ㅋㅋ

레와 2012-05-1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한 소비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인 것인 지도 모르겠다.'는 블랑카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에게 소비의 기쁨은 뭔가를 사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인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영원이 되면 참 좋겠는데..^^;

blanca 2012-05-15 21:57   좋아요 0 | URL
레와님, 저도 그래요. 딱 돈 내고 사기 전까지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이것 살까, 저것 살까 고민하는 시간들과 함께요. 인생에 있어 모든 선택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moonnight 2012-05-1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명품페이퍼. 라는 다락방님 말씀에도 추천 ^^
대학생 블랑카님이 선물하신 넥타이를 여전히 소중하게 매시는 아버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따뜻합니다.

에밀 졸라의 책은,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에세이 비슷한 걸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 때문일까요?;;) 소설이었군요. -0-;;;;;;

blanca 2012-05-15 21:5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참 신기하게도 그 넥타이는 참 오래 오래 저희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어요. 다른 선물들도 드렸었는데 유독 그것을 고르고 사던 저의 시간들과 그 판매사원 아주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답니다.

감은빛 2012-05-1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돈 없고 감각없고 게다가 사교성없고 고집까지 쎈
저는 백화점 판매원의 그런 친절도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블랑카님의 경우 그분 덕분에 아버님께서 오래도록 아끼는 넥타이를 갖게 되셨군요.
사소하지만 그런 느낌의 물건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블랑카님 덕분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2-05-15 22:01   좋아요 0 | URL
ㅋㅋ 감은빛님. 어떤 기억이었을까요? 다시 떠올리셨을 때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기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진 2012-05-1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 이라며 손가락을 치켜들래요. 블랑카님의 페이퍼는 언제 읽어도 알뜰살뜰(?) 꽉 뭉쳐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여자도 아니건만 처음부터 다락방님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답니다. 그래도 여성분들보다 공감은 덜 가네요. 다만 블랑카님의 글 실력에 감탄하며 물러납니다. 추천 백만개!

blanca 2012-05-15 22:03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고마워요. 시험도 끝나고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12-05-1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늘 좋은 페이퍼 꾸욱^^
저는 문득 소설 '화차'에서 말한 그 거울이 생각나요.
뱀에게 다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이는 착각의 거울, 결국 그 거울을 구매하려고 돈을 벌고 쓰고 아둥바둥.
정말 현명한 소비란 애초에 없었던 걸까요? 우리는 만족을 모른다는 점에서^^

blanca 2012-05-15 22:05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화차>도 연결될 수 있겠군요. 마음이 허할 때 소비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더 강렬해지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소비할 힘을 갖추기 위해 하루 하루를 또 소비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참 씁쓸하게도 느껴지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딜레마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6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님이 말씀하신 <작품>은 10년 전에 번역되었어요.아직 절판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재미있기로는 <제르미날>이 제일 낫더군요.단 광산노동자들의 참상을 처절할 정도로 사실주의 수법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읽으면 안 됩니다.

blanca 2012-05-17 09:41   좋아요 0 | URL
아, 혹시 그것 영화로도 만들어지지 않았나요? 어렴풋이 제럴드 빠라디유인가 그 코가 특이하게 생긴 남자 배우가 나왔던 영화로 기억에 남는데. 아, 좋은 책 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20   좋아요 0 | URL
예.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순오기 2012-05-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 마실 왔어요.^^
서재 마실도 오랜만이지만 백화점 나들이는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요, 아마도 7`8년은 되지 않을까...

blanca 2012-05-31 10: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우아, 정말요? 저는 몇년 전 전주에 결혼식이 있어 갔다가 거기 백화점 갔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백화점이 욕망을 자꾸 자극하고 추동하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도록 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