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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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계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아니,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실제 그 세계 안에서 살아나가는 사람의 고통, 회한, 보람, 슬픔은 영영 그 깊이와 무게를 실감할 수 없다. 


여기 마산의 한 청년 용접 노동자가 있다. 또래가 교실에서 수능 공부를 할 때 실습실에서 기판을 납땜하는 연기 때문에 두통을 앓고 이미 졸업 이후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아이는 대학교 교정이 아닌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은 첫사랑을 만난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그를 다시 대학으로 돌려보낸 이도  누나 같은 이 친구다. 


우리가 상정하는 대다수의 스물 언저리의 청년이 보내는 대학 교정에서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진 청년 노동자들의 삶을 관찰자의 공허한 언어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는 일은 놀랍고 순간순간 미안해지는 일이다. 정말 이 정도였어? 산재를 당하고도 산재 신고도 하지 못하고 폭염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쐬는 에어콘 바람도 사치였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지가 때로는 죄악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한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 의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려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러나 어둡고 처절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 짬마다 나타나는 인생의 멘토 같은 아저씨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건강한 사랑, 기대하지 않았던 타인들의 따뜻한 배려. 천현우 저자가 그려내는 이 신산한 삶의 풍경이 역설적으로 가지는 온기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야 하는 의미들은 곳곳에 뿌려져 있고 저자의 입담은 그 의미를 한층 더 심오하고 빛나게 만든다.


한 달 정도 지나 마침내 완공한 징검다리를 보게 되었다. 떡갈나무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우리의 창조물에 올라섰다. 행여 볼트 하나 빠졌을까, 용접에 균열이라도 있을까 세심하게 살폈다. 아직 물이 차오르지 않은 널찍한 호숫가를 가로지르는 동안, 보람으로 가득찬 심장에서부터 사방으로 짜릿한 느낌이 퍼져나갔다. 

-천현우 <쇳밥일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회의 안전망 사각 지대에서 떨었던 청년이 만든 다리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우리는 단지 그 다리를 건너면 그뿐이었다. 익명의 노동자들이 그 다리를 만들며 용접을 해서 철 사이를 메꾸며 어떤 것을 두려워했고 어떤 것을 꿈꿨는지 그들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꿈조차 사회가 강요한 계층 사다리 안에서 꿀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에 대한 이야기. 단지 화내고 푸념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커피를 마시며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소설을 쓰고 운동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며 하루하루 더 나아갔던 이야기. 


저자는 이 청춘의 노동 일지가 사적인 경험 토로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답해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사소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니다. 내 임금이 내가 열심히 오래 일할수록 차곡차곡 오르고 어제의 불운이 결정된 미래를 몰고 오지 않는다는 믿음만 있다면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죽이지 않는 사회. 저자의 마흔 살에는 그런 내일이 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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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2-03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책 같습니다. 꿈조차 사회가 강요한 계층 사다리 안에서 꿀 수밖에 없다니...비극이네요..

blanca 2023-02-03 19:13   좋아요 0 | URL
작가 필력이 대단해요. 소설을 쓴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탁월해서 작가의 이야기가 정말 눈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읽혔어요. 재미와 깊이가 다 있는 책입니다.
 
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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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훌륭한 연기자이기에 앞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다. 작가가 되는 건 언어의 표피적 이해 이전에 결국 삶을 제대로 살아야 가능하구나. 유명인의 책에 대한 편견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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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18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유명인의 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유퀴즈의 김혜자 님 편을 보고 ‘오 이 책 읽어봐도 좋을것 같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블랑카 님 벌써 읽으셨고 이런 평을 써주셨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23-01-18 08:2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저도 유퀴즈 보고 읽은 건데요. 사실 아무래도 워낙 김혜자 배우가 유명한 연기자다 보니 책은 그냥 형식에 불과하겠지, 하고 큰 기대 없이 펼쳤다가 한 분야에서 어떤 일가를 이룬 사람은 인생에 대한 자세 자체가 남다르구나, 싶었어요. 요즘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조언들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드라마 하나하나에 대한 마음가짐이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많이 배우고 저 자신도 돌아보게 됐어요.

자목련 2023-01-18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명인의 에세이는 기피하지만 김혜자 배우의 책은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blanca 2023-01-18 18:52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나이 드는 것의 헛헛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일단 김혜자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의 스토리텔링이 기가 막혀요. <안나 카레니나> 제가 좋아했던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하는 데 와, 김혜자 배우가 책을 참 좋아하고 수시로 다시 읽고 그러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감동 받았습니다.

라로 2023-01-1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예전에 이 책 나왔을 때 읽고 싶다는 글을 썼어요. 그땐 종이책이라 마음만 있었는데 블랑카님의 200자평이 그날 제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생각이라 넘 똑같아서 저 지금 손이 떨릴 지경이에요!!!

blanca 2023-01-18 18:53   좋아요 0 | URL
보통 기대보다 못하잖아요. 이 책은 정확히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정말 신성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자신을 포장하고 변호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은 노년의 명연기자에게 참 배울 것이 많더라고요.
 
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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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T와 KTX를 구별하지 못했다. 당연히 열차가 지상으로 달릴 것이라 여기고 앉았는데 전광석화처럼 지하로 통과하면서 이따금씩 요동치는 느낌과 번쩍이는 불빛 등에 당황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카프카의 <소송>을 펴들었다. <소송>과 시속 300킬로미터의 고속열차는 이제 뇌리에 깊이 남을 것이다. 둘 다 인생의 거대 은유로.


첫 장부터 '체포'로 출발한다. 은행의 간부로 근무하는 요제프 K는 서른 살 생일에 영문도 모르는 채로 체포된다. <소송>은 그가 이 소송에서 자신을 소명하고 변호하기 위해 1년 간 법원을 찾아다니며 변호사와 화가, 신부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이 허무하게 처형으로 마무리지어지는 이야기다. 끝까지 그는 누가 대체 왜 자신에게 소송을 했는지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 당연히 자신이 무죄라 확신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카프카는 무수한 질문들을 제기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그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호함이 가지는 기이한 매력이 이 한없이 안개 속 미로를 헤매는 것만 같은 불친절한 이야기의 동력 그 자체다. 대체 이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요제프 K의 비극은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직장에서의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 상담을 해야 하고 심지어 이탈리아 고객의 관광에도 동행해야 한다. 자신이 이유도 알 수 없는 체포와 소송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해야만 하는 그 질곡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를 방기할 수 없는 게 생존의 비극이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들과 시급한 일들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카프카는 이 지점의 묘한 아이러니를 포착한 것이다. 요제프 K의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려 드는 주변인들의 모습의 묘사는 다분히 희극적이다. 내가 쓰러지면 그런 나를 짓밟으려는 무리들. 그 무리들 앞에서 어떻게든 나의 정상성을 연기해야 하는 압박감. 거대한 사회 체제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우리 인간들이 가지는 고뇌의 상황이다.



소송이란 무엇인가



요제프 K는 이 소송이 무결한 자신에게 제기된 불합리한 것으로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런 그의 기대를 일거에 깨뜨리는 이 일에 도움을 주겠다는 화가의 말은 언뜻 모순처럼 보이면서 인간 실존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그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석방이 우리의 삶 안에서 불가능함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죄가 될 수 없으므로 "외견상의 무죄 판결", "판결 지연" 등의 미봉책으로 그 심판을 유예하는 것이지 결코 소송 그 자체에서 해방될 수는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소송'은 결국 인간의 실존의 한계, 필멸자로서의 숙명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온한 일상이 영원할 수 없다. 생로병사의 기본 전제 안에 갇혀 있는 우리의 실존은 그 자체로 유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한계, 공허함에서 우리는 어떤 순간이든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카프카는 그것을 직시하지 않고는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요제프 K의 소송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의 인식은 자의적인 것도 개인적인 것도 아니다. 그 보편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요제프 K가 욕설을 하며 처형 당하는 장면에서는 몸이 떨리는 것이다. 우리도 결국 그런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카프카의 마침표다.


<소송>은 우리가 일상의 지엽적인 문제들로 괴로움을 느낄 때 우리가 정작 중시해야 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아픈 각성의 순간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이미 지리멸렬한 소송의 피고가 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만든 체제가 될 수도 있고 가치 규범일 수 있다. 연약한 육체에 갇혀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기본 명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들과 마찰하고 때로 복종하고 종종 반역을 꾀할 것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 다른 유흥거리들로 잠시 눌러 놓을 수도 있다. 그러다 대체 누가 왜 어떻게 그 소송을 제기했는지 알지 못한 채로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이 비관적인 숙명 속에 인간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 사랑할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일 것이다. 염세적인 세계관이 절망으로 가지 않는 유일한 출구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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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2-07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3-02-08 10:2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2022년 좋은 책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책 몇 권만 추려 본다. 


-에세이



사적인 글이 범람하는 시대다. 구태여 책을 읽지 않아도 SNS 검색만으로 충분히 독서를 했다는 환각을 줄 정도다. 그러나 내 개인적 경험이 독자에게 가 닿아 의미를 가지려면 다른 차원의 심화와 확장이 필요하다. 내 욕망, 내 회한, 내 해석, 내 주장이 부수어야 하는 경계가 있다. 대부분은 나를 포함해서 거기에 머무른다. 디디에 에리봉이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는 읽는 자들이 듣는 자들이 기대하는 최적화의 그 지점에서 과감히 탈주한다. 자신이 떠나온 가족이 가지는 의미, 마침내 탈출했다고 여긴 계급이 끝내 남긴 잔상과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회귀하는 부끄러운 지점에 대한 고백은 내가 말하고 싶었으나 끝내 말하여지지 못한 부분들을 마침내 환기한다. 


그와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통과해 성장했지만 내가 버리고 온 나를 불러오는 작가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가 끝까지 내려가고 끝까지 파고들어 쓴 자신의 그것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백 때문일까. 보편성에서 개별성을 환기하는 필력이 놀랍다. 





-교육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어도 그냥 여기에서 내가 어쩔 수 없는 삶의 난제들에 고통당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를 덮쳐오는 사건들, 관계에서의 고통, 모든 통제권을 상실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면 이 책이 큰 위안이자 지침이 될 것이다. 내가 삶 앞에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 것인지, 내가 사랑하지만 내가 끔찍해 하는 어떤 면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그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깨어서 인생을 사는 태도를 갖추는 데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읽기가 될 것이다. 특히 십대 사춘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성장한 나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대면해야 하는 순간과도 같으니까.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정수는 사실 마지막 권에 있다. 마르셀이 '되찾은 시간'의 의미는 결국 그가 잃어버린 시간으로 통한다. 우리는 시간의 궤적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랑하고 성취하고 이별하고 아프고 죽고 사라진다. 이 궤적이 모여 삶의 서사를 이룬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르셀이 말했던 오전에 라떼를 앞에 두고 한없이 뻗어나갈 것만 같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결국 스러지고 사라진다. 단 사물에 내재한 그 실재만은 둔 채로. 시간을 언어로 경험하는 신비로운 경험과 다름 아니다. 끝내 붙잡을 듯 붙잡히지 않는 그 수많은 아름다움에 대한 처절한 구도의 길에서 프루스트가 죽기 직전까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의 조각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철학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는 삶의 여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천착. 이 젊은 두 철학자는 삶의 부조리

와 불합리에 구태여 대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며 결국 죽어가는 그 여정에 동참할 뿐이다. 삶의 덧없음을 상기하면서도 그것이 무의미에 굴복하지 않는 방법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빛난다" 어떻게? 찬찬히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미약한 빛이 새어 들어온다. 2022년의 마지막에 맞춤하게 만난 책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철학과 실생활을 접목시키려 시도한 여러 과제들도 해볼만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일을 나누는 부분 같은 것들. 가독성과 깊이를 모두 갖춘 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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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8 1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 님은 올해 정리도 정말 기막히게 근사하게 하시네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제 저도 읽을 때가 된걸까요.

블랑카 님, 올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요, 우리 내년에도 즐겁게 보내도록 합시다!

blanca 2022-12-28 18: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교류합시다. 삼십 년 뒤에도 오케이?

라로 2022-12-28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바타 보셨어요?? 저 방금 가족들과 보고 왔는데 먼저 본 사람들이 울었다고 해서 나는 안 울 줄 알았는데 저도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물이 흐르더라구요. 아이들과 함께 보시길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난 안 읽을거야 했는데 블랑카님 때문에 읽고 싶어져요.^^;;

blanca 2022-12-28 18:04   좋아요 0 | URL
라로님, 저 둘째랑 아빠랑만 보냈어요. 제 취향 아니라고 안 봤는데 후회되네요. 솔직히 ‘잃시찾‘ 재미는...그런데 울컥울컥해요. 내가 나이, 시간에 대해 느끼는 걸 콕 집어서 다 표현해 놓았더라고요. 읽으며 감탄했어요. 그리고 프루스트가 죽기 직전까지 이거 다 못 쓰고 죽을까 얼마나 노심초사인지 느껴졌어요. 예술이란 그런 건가봐요.

새파랑 2022-12-28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정수는 되찾은 시간이군요 ㅋ 딱 되찾은 시간만 남겨놨는데 기대가 됩니다~!!

blanca 2022-12-28 18:05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부럽습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 마지막 권은 완전 술술 넘어가고 줄 긋다 책이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껴두었다 마들렌 한 조각, 홍차에 적셔 드시면서 천천히 읽으시기를...

하이드 2022-12-28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은 이런 책들도 좋아하고, 저런 책들도 좋아하고, 참 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올해의 책들로 꼽은 것들을 보면, 아, 이런 책들이 가장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는 시간이에요. ㅎㅎ 좋았던 책들과 올해의 책들로 꼽는 것의 차이. 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은지 이유들에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구요.

blanca 2022-12-28 18:06   좋아요 0 | URL
정말 좋았던 책들 많았지만 하이드님이 딱 적어주신 그 이유로 이 책들을 꼽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셨군요! 역시 서재 친구들은 다릅니다.

책읽는나무 2022-12-28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시찾의 리뷰는 정말 책을 읽고 싶게 만드십니다. 저는 이제 1 권만 읽었는데 만연체에 적응하여 13 권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싶던데, 블랑카님의 완독 소식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기대하게 만들었죠.
이젠 리뷰마저 황홀하구요^^
일단 철학서를 담아갑니다.
며칠 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blanca 2022-12-29 08:19   좋아요 1 | URL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읽으시면 어느덧 완독에 가까워 있을 겁니다. 마지막 권을 꼭 읽으셔야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더라고요.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출간 순서 대로 따라 읽어서 사실 전체 얘기가 잘 연결은 안 돼요. 한번에 다 읽으려 했으면 포기했을 것도 같아요. 책읽는나무님도 2023년도 소망하신 모든 것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stella.K 2022-12-31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꼭 1권부터 읽어야 할까요?
브랑카님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ㅋ

올해도 수고 많이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blanca 2022-12-31 18:06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이게 계속 앞 전 내용들이 언급돼서 차례대로 읽어야 이해가 되는 대목들이 있어요. 저도 계속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결국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서요. 스텔라님도 2023년도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 릴케의 로댕, 그 절대성과 상실에 관하여
레이첼 코벳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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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대의 거장 조각가 로댕과 이십대의 낭만파 시인 릴케가 함께 있는 모습은 언뜻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둘의 관계는 거의 부자 관계에 비견될 정도로 친밀했고 서로 주고 받은 영향의 파급 정도가 크다. 릴케가 오늘날의 릴케가 된 데에 로댕과의 교류는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작용을 했다. 릴케가 이십대에 로댕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릴케는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저자 레이첼 코벳은 스무 살의 어느 날 어머니가 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됨으로써 차후 만개할 이 책의 씨앗을 품게 된다. 릴케 자신도 아직 자리 잡은 시인이 아니었을 때 시인 지망생으로부터 받은 하나의 편지로부터 출발하여 한 청년의 삶을 예기치 않은 곳으로 인도하게 되었듯 릴케의 이 책 또한 저자에게 그런 작용을 하게 된다. 코벳이 로댕으로부터 그런 인도자의 손길을 발견한 릴케의 이야기에 매혹당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듯이.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 앞에 앉아 그 그림들의 붓질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십대 시절의 로댕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는 한 해 전 딸을 잃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릴케의 삶의 출발에 대한 것으로 연결된다. 마침내 파리에 와서 로댕에게 밀려드는 서신을 처리하는 조수가 되어 로댕과 한적한 전원 뫼동에서 함께 살게 된 릴케의 이야기는 아직은 무명의 시인이었던 청년이 이미 엄청난 업적을 이룬 노예술가에게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림으로써 위대한 시인의 길을 걷게 되는지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연대기의 복원이다. 


릴케는 로댕을 숭배한다. 사소한 오해로 로댕이 거의 릴케를 쫓아내다시피 한 이후에도 릴케는 로댕에 대한 마음을 쉽사리 접지 않는다. 릴케에게 로댕은 아버지이자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하나의 장애물이기도 했다. 로댕의 스승이 "예술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다"라고 했던 이야기는 릴케에게 와서 비로소 실현되었다. 로댕이 늘그막에 추락하는 노추의 모습을 릴케에게 들킴으로써 릴케에게 죽음 앞에서 어떻게 의연해야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반면교사가 되었다는 결말은 서글프다.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에는 이 책의 제목이 된 시구가 나온다. 로댕과의 애증의 관계에서 마침내 릴케가 얻어낸 삶과 예술의 교훈은 애틋하고 의미심장하다. 예술가가 되는 것보다 삶을 먼저 살아야 한다는 뒤늦은 깨달음은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간직한 릴케의 아름다운 시들에 대한 하나의 대가였을지 모른다. 


릴케와 로댕이 흡사 사랑하는 부자처럼 친밀했던 날들. 로댕은 릴케와의 하루를 마감하며 침실로 떠나려는 그에게 '잘 자' 대신 항상 '봉 쿠라주'라고 했다. 릴케는 처음에 그런 그의 '힘 내!'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마침내 늙은 아버지가 아직 젊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이해했다. 삶에도 예술에도 가장 필요한 건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을 그러모으는 것이라는 얘기는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공명하는 메시지다. 릴케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건 그러지 못했지만 그랬던 날들 로댕이 해줬던 마지막 인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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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23-01-09 18: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덕분에 따뜻한 주말 보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