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토니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195
윌라 캐더 지음, 전경자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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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나날들이......가장 먼저 사라진다.-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의 노래>에서 인용한 제사는 <나의 안토니아>의 정서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응축해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중년의 화자가 밀과 옥수수의 거대한 평원으로 둘러싸인 네브래스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전형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자신이 유년 시절 간직한 자연과 생명의 불꽃의 현현 같았던 소녀 안토니아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대지와 자연, 삶의 실재,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형상화했다. 소년의 성장기는 사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유럽의 이민자 처녀들의 그 약동했던 혈기와 적극성, 생의 약동하는 의지를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다 읽고 나면 알아차리게 된다. 작가 윌라 캐더가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중년 남자 짐 버든의 시선을 통과한 그 인습과 전형성에 위배되는 처녀들의 모습이었다는 깨달음은 극적인 반전 이상이다.


부모를 잃고 조부모가 사는 네브래스카로 향하는 소년의 여정은 보헤미아 이민자 쉬메르다 가족의 그것과 겹친다. 가난하고 영어를 제대로 못 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찌든 그 가족은 소년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꾼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정착하게 되고 소년은 그 집의 딸 안토니아와 대지와 자연에 대한 공통의 정서로 교감하며 서로의 삶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무엇보다 윌라 캐더의 자연의 묘사가 절창이다.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의 향연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포섭한다. 


그 시절 늦가을의 오후란 모두 같은 것이었건만 나에게 똑같은 오후는 하나도 없었다. 붉은 구릿빛 풀이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햇빛에 젖은 채 우리 시야가 닿는 곳까지 수 킬로미터나 뻗어 있었다. 노란 옥수수밭은 석양 아래에서 붉은 황금빛을 띠었고 높이 쌓아 놓은 건초 더미들은 장밋빛을 발하면서 기다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넓고 넓은 초원 전체가 꺼지지 않으면서 계속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다. 

-p.48~49


안토니아의 아버지 쉬메르다의 죽음은 소년의 성장에 결정적인 전기가 된다. 짐은 안토니아의 아버지가 안토니아와 그를 한데 묶어 놓는 하나의 구심점이 될 것을 예견한 듯 그의 죽음이 그의 존재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대지를 떠나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귀향의 길에 짐의 집이 있었다. 


짐은 성장하여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젊은 클레릭 교수를 만나 새로운 사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어느 저녁 대학생이 된 짐이 자신의 하숙집에서 <아이네이스>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간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의 "시신"을 작은 시골 농가인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기를 바란 마음을 표현한 <전원의 노래>를 읽는 대목은 절묘하게 다시 이 책의 제사로 돌아간다. 죽음 앞에서 결국 자신의 미완성의 역작을 바라보며 위대한 로마의 시인이 시의 여신을 거창하고 화려한 곳이 아닌 아버지의 작은 밭으로 데리고 돌아가기를 바랐던 마음은 소설의 화자 짐이 나이가 들어 늙고 살이 찐 안토니아와 그녀의 아이들을 만나는 마지막 대목과 겹친다.


그녀 앞에서 "난 돌아올 거야"라고 했던 약속을 짐은 충실히 지킨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과거를 함께 소유한 어린 시절의 친구와 그 친구가 낳은 아이들에게 귀환한 짐 버든의 궤적은 결국 회귀하는 작은 원이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가장 나중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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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1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처에 나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했어도 역시 짐 버든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고향에서
보낸 추억의 순간들이었나 보네요.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리뷰도
기대해 봅니다.

blanca 2021-01-21 09:44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 이 작가 참 좋아서 <로스트 레이디> 대기 중입니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2021년 새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자신의 죽음과 실존을 직시하는 게 인간으로서 얼마나 두렵고 거대한 과업인지 적나라하다. 사형 집행을 앞둔 뫼르소가 참회와 사후세계를 설득하려는 사제 앞에서 거기에 반기를 드는 모습이 절정이다.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약하고 죽음을 직시할 수 없기에 유신론자다.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악행과 이기심이 합리화되는지를 경험하고 보고 들었다. 최근 정인이 사건만 해도 그렇다. 소위 종교의 지도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이 행한 악행과 그것을 알고도 모르고도 방조했던 또 다른 그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신앙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최선의 것이 되자고 기도하는 것을 합리화는게 아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자신들과 피를 나눈 가족 안에서만 유효하고 그들의 부귀영화를 이 생에서 이루기를 기도하며 타인의 삶,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때로 온갖 편법, 폭력을 저지르는 행동도 그저 그 종교 안에서 다 사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인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써 신을 동원하는 일은 악행 중의 악행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보던 캐릭터의 전형성과 어긋난다. 정의롭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감정 과잉도 아니다. 오히려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나이도 모르고 장례식에서 돌아와서는 푹 잘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고 다음날 바로 데이트를 나가는 등 어떻게 보면 소시오패스처럼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이웃의 치정 사건에 기꺼이 연루되어 대신 복수를 해준다. 그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시로 삶의 자잘한 일상들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표현한다. 독자들은 그를 때로 불가해하다고 황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는 우리 내면의 가장 꺼내어 놓기 힘든 부분을 직설적으로 대변한다. 사회에서 기대되는 그 모든 어떤 전형들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모습.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만 생의 쾌락

에는 기꺼이 열려 있는 모습. 


거기에는 카뮈가 투영되어 있다. 
















스물두 살에 쓰인 카뮈의 에세이들은 그가 한참 지난 뒤에 다시 출판하며 붙인 서문에서 그는 이 글들이 서툴지만 여기에 다른 어떤 책들보다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원천인 "가난과 빛의 세계"가 이 <안과 겉> 속에 있다고 고백한다. 


인생이라는 꿈 속에, 여기 한 사나이가 있어, 죽음의 땅 위에서 자신의 진리를 발견했다가 다시 잃고 나서 전쟁과 아우성, 정의와 사랑의 광란, 그리고 또 고통을 거쳐, 죽음마저 행복한 침묵이 되는 이 평온한 고향으로 마친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안과 겉> 서문


여기에 있는 <아이러니>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바라본 늙음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이 떨어진 그 거리를 뚫고 노년의 고독과 소외, 권태에 대하여 마치 단편소설처럼 노인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들 자체가 되어 이미 그 초라하고 외로운 노년과 죽음을 경험한 듯하다. 자신의 역할, 자리,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고독하게 구석에서 소외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스물두 살의 청년이 들려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아랍의 까페에서 카뮈가 회상하는 어머니와의 가난한 유년,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긍정과 부정의 사이>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 위대한 소설가로 아들을 키워냈다는 것을 예감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빈민가의 한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추도사다. 아픈 어머니와 함께 누워 세상에서 격리된 두 사람만의 그 엄청난 고독, 고통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서글프다.


어떤 사나이가 고통을 당하며 거듭되는 불행을 겪는다. 그는 그 불행들을 참고 자기의 운명 속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 모든 것이 허망해진다.

-알베르 카뮈 <긍정과 부정의 사이>

그 사나이는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 모든 것을 이룬 나이에도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단순함과 투명함만을 받아들이려는 의기도 때로 꺾인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지점을 안다.


표제작인 <안과 겉>에서 카뮈는 우리가 가지고 갈 카뮈의 이야기를 응축하여 표현한다.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큰 용기란 빛을 향하여서도 죽음을 향하여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는 일이다."라고. 


그것은 여전히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빛과 죽음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 결국 인간이 평생에 걸쳐 달성해야 하는 과업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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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7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이 오는 날 병원에 갔다  시간이 남아서 이전에도 간 적이 있는 근처의 동네 서점에 갔다. 신혼 때 살던 아파트 입구의 대학가로 빠지는 모퉁이에 있는 아주 작은 서점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는 것도 편리하지만 이때의 문제는 얻어 걸리는 책이 없이 온전히 자신의 취향,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것으로 읽기가 한정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여러 책을 주인장의 선별 하에 배열해 놓은 서점의 방문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곳에서 만난 예쁜 책. 책을 사기 위해 무심코 산 책이었는데 젤다에게 한동안 푹 빠졌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 뮤즈. 가십걸.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있게 한 여자. 이런 선입견을 일거에 박살내는 책이다. 스콧의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 중 몇몇은 엄연히 아내 젤다의 것이었다. 심지어 젤다가 정신병원에서 쓴 자전적인 소설 <왈츠와 함께>는 스콧이 자신이 쓸 내용과 겹친다고 강제로 많은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녀의 정신병은 스콧이 젤다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하나의 구실이 된다. 


<젤다>에는 젤다가 스콧의 이름으로 혹은 공저로 발표한 단편소설 다섯 편과 아홉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정교한 플롯이나 대단한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공감각적 심상을 표현한 문장들의 절창은 경이로울 정도다. 또 언뜻언뜻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장들과 젤다의 그것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흡사한 대목들이 있다. 재즈시대의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던 그 낭비의 찰나적 아름다움의 묘사와 그것에서 정작 소외되는 내면의 심연의 대비들이 그러하다. 


스콧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시간들을 그린 것만 같은 <남부 아가씨>는 마치 그 둘과 함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읽기를 만드는 감각적인 작품이었다. 


모든 곳에는 그곳만의 시간이 있다. 겨울철 한낮 유리 같은 햇살 아래의 로마, 푸른 거즈 같은 봄날 석양에 덮인 파리, 그리고 뉴욕의 새벽 틈새로 흘러드는 붉은 태양, 따라서 당시의 제퍼슨빌에도, 내 생각에는 지금도, 다른 곳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길모퉁이 가로등들이 깜빡대고 칙칙대며 켜지는 초여름 밤 여섯 시 반쯤에 시작해서, 공 같은 백열전구들이 나방과 딱정벌레로 까매지고 먼지 자욱한 거리에서 놀던 아이들이 잠자리로 불려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젤라 피츠제럴드 <젤다> 남부 아가씨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에서는 스콧이 젤라의 일기나 편지글을 표절하여 자신의 책을 낸 것을 익살스럽게 지적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참으로 서글프게 느껴진다. 아내의 편지글, 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껴 써서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세상에 내어놓고 유명세를 누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 발레,그림, 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그 어느 분야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나 지지를 받을 수 없었고 정신 분열증으로 전기자극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서 대기하다 잠긴 문 안에서 화재로 죽어버려야 했던 젤다의 운명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게이도 여전히 살아 있다. 모든 정처 없는 영혼들 속에. 상류층의 풍속대로 계절을 따라 순례에 나서고, 퀴퀴한 대성당들에서 구릿빛 몸과 여름 해변의 사라진 마법을 찾고, 안정과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리츠를 지금의 리츠답게 만들고, 대양 횡단 여행을 이브닝드레스와 다이아몬드 팔찌의 비공식적 업무로 만드는 모두의 마음속에.

-젤라 피츠제럴드 <젤다> 오리지널 폴리스 걸



<오리지널 폴리스 걸>의 어느 날 죽음으로 표표히 화려한 사교계에서 퇴장해 버린 게이라는 여자를 얘기하는 화자에는 엄연히 젤다가 있다. 젤다는 게이에 대한 사람들의 표면적 이해와 오해들, 게이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욕망과 결핍을 마치 스스로를 변호하듯 이야기한다. 게이가 "언제나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서 낭만이 달아날까 봐 걱정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젤다 자신의 것이다. 대중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소위 그 시대의 셀럽으로 온갖 억측과 가십의 대상이 되었던 젤다의 내면에는 남편의 유명세에 가려 스스로의 재능과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좌절감과 함께 언젠가 반드시 스러지고 말 그 시대의 번영과 낭만의 최첨단을 향유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공존했다.


젤다는 우리에게 찰나처럼 지나가 버리는 그 모든 젊은 한 순간의 아름다움과 낭비와 순수와 열정의 가운데에 거기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 그 모든 오해와 실패와 망각과 죽음도 함께 있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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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1-06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젤다의 인생을 소설로 쓴 거 읽었어요. 드라마로도 나왔고요. (드라마는 못 봤어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피츠 제럴드 욕도 했습니다. 특히 ‘밤은 아름다워라‘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blanca 2021-01-07 09:06   좋아요 1 | URL
아, 어떤 소설일까요? 피츠제럴드는 당시의 시대관을 반영한 나쁜 남자의 전형인 것 같아요. 아내의 재능을 가로채고 질투하고 글쎄, 이게 아직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어렵겠지만요. 저는 젤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와 거의 겹치는 존재라고 생각했었어요. 부잣집 딸에 철 없고 향락과 사치만 일삼는. 그런데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문장력이 아주 탁월해요. 발레도 이십 대에 다시 시작해서 입단 제의까지 받을 정도였다니. 그래도 그녀의 사후 그녀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다행입니다.

유부만두 2021-01-07 09:20   좋아요 1 | URL
<Z: A Novel of Zelda Fitzgerald> by Therese Anne Fowler 예요.
 

개인적으로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습작 등을 통해 기량을 닦아도 시 만큼은 쉽사리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시적 기량은 평생을 통해 한정된 값 안에 있는 것이라 어떤 위대한 시인은 나이가 들어 젊을 때와는 다른 완성도를 가진 시를 쓰기도 하고 때로 쇠퇴의 길을 걷기도 한다. 


김희준 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녀는 올해 요절한 시인이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시인이다. 천상계와 신화와 현실의 핍진한 삶을 종횡무진하는 시어들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집을 펼치면 그녀의 천문에 흠뻑 빠지게 된다. 시란 이렇게나 신비롭고 곡진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그 기본적인 인식으로 다시 돌아가 이 시대에 배고픈 시인이 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구나, 함부로 절대 폄하될 일이 아니구가 싶어진다.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김희준 <친애하는 언니> 중


그녀의 시어들은 작위적이지 않고 진부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고 매끄럽지 않다. 생경하고 신비롭고 형형하고 절절하다. 어떤 문장도 남용되지 않고 빈 틈이 없이 촘촘해서 몇 번이고 되뇌어도 역시 청신하다. 빛나는 나이에 생의 마침표를 찍어버린 것을 이미 알고 시작하는 독법은 시어들을 예언적으로 만든다.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란 시어에서 그만 먹먹해져버린다. 자신과 함께 사물을 읽고 시를 읽고 썼던 이 빛나는 아이를 잃은 시인의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아릿해진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김희준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중

마치 시인의 시를 묘사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정갈한 여백, 쉼표마다 쏟아지는 소나기에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완성도 있는 시들을 써주었으면 하는 독자의 마음과 이 시인은 이미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시의 절창을 완결하여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수긍이 함께 한다. 그녀를 읽으면서도 그녀가 그립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은 어떤가. 그녀 또한 한때 수도사를 꿈꿨던 시인이다. 자신이 읽은 시들과 자신이 보내는 나날들과 또 그 자체로 시 같은 문장들이 어우러진 이 책 또한 절창이다.


















사람의 색이 바래거나 사라지지 않고, 순록의 눈동자나 호수의 가슴처럼 그저 색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 나이에 따라, 슬픔에 따라. 그러면 삶의 꺾임에도 우리의 용기는 죽지 않고, 무엇을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서로에게서 아름다움을 목격하며 너르게 살아가지 않을까.

-한정원 <시와 산책>


호숫가에서 노인의 굽은 등을 보며 나이듦을 성찰하는 시인의 언어들이 하나하나 다 온전히 와닿아서 움찔했다. 구태여 서로의 사생활을 캐묻지 않고도 우정을 나누게 된 과일행상 아저씨와의 사연이 너무 반가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모든 갑작스런 불행과 삶의 난관들을 타인의 것으로 박제된 것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그 스무 살의 무지에 대한 회상이 너무 낯익어서 놀랐다. 


수도자가 되려 했지만 결국 시인으로 돌아온 저자의 삶의 행로의 모서리가 저절로 그려져 고개가 수그러졌다. 


시인으로 태어나 기꺼이 시를 쓴 젊은 그녀들에게 늦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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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23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와 산책은 평점이 꽤 높네요. 근데 책값이 좀 센데요?ㅋ

blanca 2020-12-23 17:02   좋아요 1 | URL
^^ 제가 이제서야 읽은 이유입니다. 책값이 비싸서 도서관에 몇 번이나 예약하고 상호대차 신청도 했었는데 코로나로 다 취소되어버리더라고요. 중고로도 기다려도 한 권도 안 나오고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이건 소장하고 싶어지는 책이더라고요. --;; 책값이 요새 자꾸 올라요. 아주 얇은 책도 만사천 원을 훌쩍 넘어버려서 넘겨보다가 못 사게 되더라고요. 도서관도 닫고요.

scott 2020-12-24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집 가격 보고 깜놀 !!ㅋ

이출판사가 출간하는 책들 끝말 잇기로 제목을 정한데요.
주르륵 책장에 꽂아두면 한문장이 되도록 ㅎㅎ

블랑카님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카드 한장 놓고 가여 ㅋㅋ

*MerryChristMas*
┏━━━┓행복한
┃※☆※ ┃메리크리스마스★
┗━━━┛

blanca 2020-12-24 13:19   좋아요 0 | URL
어머, 메리크리스마스 너무 예쁘네요. Scott님도 메리크리스마스^^

scott 2020-12-3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2021년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blanca 2020-12-31 19:33   좋아요 1 | URL
대체 이런 이쁜 이모티콘은 어떻게 만드는 거랍니까? scott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감사해요. 더 가열차게 읽고 쓰는 한 해가 되기를...

2021-01-02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세련된 것도 아니고 말수완이 좋은 것도 아닌데 은근한 매력이 있어서 끌리는 사람. 표현하는 것보다 내면에 충실하게 쌓인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이. 


우연히 만난 제임스  A. 미치너가 그랬다. 



















<소설>의 원제는 실제 'The Novel'이다. 각각 독일계 미국인 소설가 루카스 요더, 편집자 이본 마멜,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독자 제인 갈런드의 시점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노년에 접어든 작가 요더가 펜실베니아 독일인 거주 지역을 배경으로 한 <그렌즐러 8부작>을 완성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가 독자의 호응을 얻기까지의 연대기와 출판사 안에서의 편집자의 전략적인 지원, 비평가의 혹평, 신진 소설가의 육성을 둘러싼 태피스트리다. 이는 각자의 시점을 중심으로 똑같은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하며 하나의 읽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특히나 남자아이들과 골목에서 함께 뛰어놀며 그들의 세계에 전투적으로 들어가려했으나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는 유대인 소녀 이본 마멜이 소위 나쁜 남자를 만나 허덕이다 결국 편집자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 편집자로 자리를 잡기까지의 투쟁사는 약간 도식적인 면이 있고 그녀의 열기, 적극성과 상치되는 가정 폭력에 대한 대처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소설이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이라며 그녀에게 그 꿈의 현장에서 날아오르기를 응원한 삼촌의 존재는 여자아이들이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입성할 때 어떤 보편의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제시해주고 독려해 줄 수 있는 멘토의 가치를 의미 있게 보여준다. 


비평가 스트라이버트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예창작을 가르칠 때 제우스를 시작으로 하는 그리스의 아트레우스가의 계보도를 중심으로 인간의 희비극의 원형을 제시하고 인물들에 철저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모습은 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모든 이야기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이미 다 제공된 셈이다. 이것이 비틀어지고 겹치고 쌓이며 태어난 이야기들이 소설이 되어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쓰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원형을 철저하게 탐구하고 연구하고 내면화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비평가 스트라이버트와 소설가 요더의 관계는 미묘하다. 그가 쓰고 싶었던 바로 그 소설을 선점한 자에 대한 시기의 마음,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거액의 기부금을 약속한 것에 대한 불평등한 역학, 그럼에도 남는 인간적인 끌림. 여기에는 실제 작가 미치너도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소설가와 비평가의 관계는 어느 한 단면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여러 중층의 감정을 통과해야 이 언뜻 적대적으로 보이는 관계의 색깔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투박하고 거친 부분들이 있다. 서사보다 작가의 소설에 대한 관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의욕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런데 그것이 몰입을 방해한다기보다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의 나이가 무려 여든넷이었다는 것을 알고나면 이야기는 다르게 읽힌다. 


이야기를 읽는 일마저 어떤 꿈을 꾸는 것마저 포기하고 싶어질 나이에 어떤 이야기를 다시 만들고 인물을 표현하고 이야기의 힘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 의지를 확인하는 건 도저히 말로 표현 못 다할 만큼 근사하고 빛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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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2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작품은 소설을 쓰고 싶은 지망생들이 필독 리스트에 꼭들어가는 작품이에요
우와 작가가 여든넷에 이런 작품을 썼다니 .....

모든 이야기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나온다는 말 동감합니다
셰익스피어 희비극도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출발했죠.

허구를 창작한 픽션일지라도 그 허구속 이야기에 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을 줄수 있는 이야기를 고대하게 만드는 작품들,,,
끊임없이 펼쳐져있는 광활한 우주속을 헤메도 인생에 나침판이 되어주는 책한권만 있다면
삶에 큰 위로가 될것 같네요 ^@^

blanca 2020-12-22 16:18   좋아요 1 | URL
제임스 미치너의 연표를 읽고 나면 말 그대로 리스펙트가 나와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을 했더라고요. 누구나 정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게 사람들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삼십대 중반 정도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요즘 작가들 연표를 보면 다 제각각이에요. 이십대에는 천재였다가 완전 추락하는 사람도 있고요. 제임스 미치너 자서전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stella.K 2020-12-22 1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고 참 좋아했는데 아직도 다시 못 읽고 있네요.
처음 읽었을 때는 되게 신선하고 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투박했나요?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겠네요.
이책말고 <작가는 왜 쓰는가>도 좋았는데.
중고샵에 나가면 항상 꽂혀 있던데 다음에 나가면 엎어와야겠습니다.^^

blanca 2020-12-23 10:21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이게 아주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게 문장 연결이나 서사의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대목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또 잘 읽혀요.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어요. 재미와는 또다른 흡인력이에요. 참, 출판사에서 특별판으로 상하 합본으로 낸 게 9천원이면 살 수 있어 가성비가 좋더라고요. 저는 그걸로 구입했어요. 책도 참 예쁘고 활자도 잘 읽히고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