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젖잖아요. 이리 줘요. 내가 할테니."
한 때는 참 예뻤을 그러나 지금은 삶의 고충들이 가득 괴인 눈매의 청소부 아주머니는 나의 우산을 낚아챘다.
그 축축한 우산을 꼼꼼히 잘 접어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나는 눈을 맞추고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괜히 뭉클했다. 아주머니가 너무 예뻐서 너무 친절해서. 게다가 빗방울이라니.
모든 사물을 모든 현상을 어리어리하게 그 테두리를 묘하게 번지게 해서 보여주는 빗방울이라니. 
젖어도 괜찮은 손이 있다니. 젖으면 안되는 고운 손이라도 가진 것처럼 나를 우쭐하게 해주다니.

가난한 대학생이 개구쟁이 초등학생과 투닥거리며 벌어놓은 돈에서 어버이날 선물을 택할 폭은 넓지 않았다.
삼만 원짜리 가판대 넥타이. 게다가 너희들은 구석진 곳에 삶의 신산함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하필 바로 또다른
고운 아주머니 옆에 누워있었다. 어슬렁대는 나를 아주머니는 불렀다.
"손님, 선물 고르세요?" 손님이라니. 내가 그 가판대에서 넥타이를 몇 개 헤집어 볼 명분으로 충분하다.
"네. 아빠 선물 고르려구요."
"아버님이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일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그 아주머니는 너무나 정성껏 몇 개의 넥타이를 자신의 옷 위에 대보며 어리버리한 대학생을 최고 고객으로 대우해 주었다.
아주머니와 내가 벌인 소박한 패션쇼의 끝에 낙찰된 그 황금빛 넥타이.
그 삼만 원짜리 넥타이는 아직도 가장 중요한 행사에
행운의 부적처럼 아버지와 동행한다.
 

소위 감정노동을 오년 간 하고 퇴직하면서 가장 많이 남은 아쉬움은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야 할 감정을
인위적인 틀 안에 구겨 넣어 억지로 끄집어 빼는 듯한 그 껄쩍지근한 과정에 대한 염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더 친절하지 못했음이었다.
나는 조금 더 친절해도 괜찮았다. 이 역설 앞에서 이 설명할 수 없는 회한은 내가 때로 무례함을 응징하고자 했던
과욕을 부렸음에도 결국 남은 것은 통쾌함이 아니라 항상  어쩌면 내가 무의식중에 먼저 건드렸을 수도 있을
상대의 허점에 대한 하지 못한 사과였다.  참 이상했다.
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남는 것이 항상 더 해대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아니라 
가장 무례했던 사람한테조차
넘치게 베풀지 못한 친절함에 대한 아쉬움일까.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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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0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친절하자, 좋은 글 감사해요.
3월! 비온 후라 날이 좀 흐리지만 상쾌하게 시작해요^^

blanca 2010-03-02 13:45   좋아요 0 | URL
제가 그렇게 못하니까 다짐하려고 썼어요.^^우중충한 날씨지민 프레이야님도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하셨으면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3-0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에게 가능하면 방긋 웃고 친절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르게도 생각합니다. 가끔 누군가에게 좀더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저를 짓눌어요.
너무 가까운 누군가, 조금 멀어진 누군가에게는 조금더 무심해도 좋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blanca 2010-03-02 13:47   좋아요 0 | URL
착한 사람 콤플렉스 저도 있어요. 사실 이 안에 친절에 대한 강박도 포함되는데 사실 저 친절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이것의 일환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너무 무례한 사람한테는 대응하지 않는게 나을 수도 있더라구요. 어려워요-..-

저절로 2010-03-0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들어진 신'의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타주의를 다윈주의적 실수,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라고 한 구절이 떠 오릅니다. 자연이 양육강식의 정글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타'를 인간의 유전적 경험속에 남겨둔 것은 분명 기쁘게 빗나간 실수가 아닌 '까닭' 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생존이유 말입니다.

blanca 2010-03-02 13:48   좋아요 0 | URL
아....다윈주의적 실수.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 이 용어가 참 좋네요.

꿈꾸는섬 2010-03-0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소중한 말이에요.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자. 기억해두겠습니다.^^

blanca 2010-03-03 14:17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은 글만 봐도 친절하실 것 같아요^^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오십대의 K는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밀면 퍽 성공한 축에 속한다. 그런 그가, 무신론자에 가까운 그가 정성들여
성경을 필사하는 장면을 우연찮게 보게 된 제자는 당돌하게 물었다.
"교수님, 신이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믿고 싶으신 건가요?" 그는 후자에 가깝다고 얘기했나 보다.
카톨릭 세례를 받기 위한 예비자 교리 과정의 과제로서 성경필사를 시작한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무신론이 갑자기 신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희구로 변모하기까지야 그 세세한 사정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세속적인 성공의 마침표가 또다른 문장을 불러오는 그 길목에 선 K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의 고통에 대한 호소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 내 인생의 책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추천합니다."  나는 힘든데 누군가는 주제넘은 충고대신 책을 권한다.

이 책이 오는 길은 멀었지만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추천했고 또 누군가가 동조했을 지 모른다.
어디에선가는 꼭 불쑥 이 책의 표지가 튀어나와 뒷덜미를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멘토마냥 이 책을 찬양했다.
그래서 영적인 지도자라 자평하는 어느 사이비 교주의 설교집 정도 되는 줄 알았드랬다. 

저자 스캇 펙은 정신과 의사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경도되지도 않았고 기독교 교리로 교묘하게 자신의 얘기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과학과 기적의 그 접점 어디엔가 그는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영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독자는 이윽고 그에게 상담을 받는 한 명의 환자가 된다.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결함과 상처를 이 세상에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주치의에게 다 털어놓고 탈진한 상태에서 성장으로 향햔 도약을 내딛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반드시 무조건 읽어어 한다.
힘들다고 하면 과장이고 견딜 만 하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인 항상 그런 지점에 발 붙이고 있어야 하는 우리들이라면. 

삶은 고해다. 

이 책의 첫문장이다. 그것은 대전제다.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고해를 헤쳐나가는 실용적인 기술을 전파하겠다고 장담하지도 않는다.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인 훈련을 하라고 한다. 달콤한 마시멜로를 조금 뒤로 미루어 놓듯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고 책임을 지고 진실에 헌신하고 균형을 맞추는 기술을 얘기하는 대목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시인 실비아 플러스의 얘기처럼 진공의 병 안에서처럼 자신의 악취나는 공기를 되풀이하여 호흡하며 점점 더 깊은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지도를 내보이고 과감하게 수정해 나갈 것을 독려하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세상 전부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부모처럼 우리를 대우해 줄 것이라 여기던 바로 도수에 맞지 않는 안경으로 지금의 세상도 보고 있다. 이것이 전이다. 정신치료는 이 지도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다시 시력검사를 하고 제대로 된 안경을 맞추어 써야 하는 그 너무나 당연하지만 번거로워 미루어 두었던 그 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전언이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고 자아의 붕괴가 아니라 자아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은 사족 같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 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걸까. 사랑의 그 파괴적인 경향성은 마조키스트적인 자기희생의 망상과 맞물려 다분히 소모적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이 떠나고 간 그 자리의 흉물스러움에 몸을 떨며 이번 사랑은 가짜였으니 다음에 올 진짜 사랑을 기다리겠다고. 또 지난 번과 비슷한 경로를, 대상을 찾아 헤매며 끊임없이 사랑 그 자체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연민어린 집착에 중독된다. 그리고 나의 삶은 불운으로 가득 차 있다고 불평한다.

은총에 대한 얘기는 다분히 영성에 관련된 얘기다.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한 그 노력의 지향은 하느님과 같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얘기하는 하느님이 반드시 기독교적 하느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캇 펙은 심지어 칼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을 차용해 온다. 그는 정신질환이 개인의 의식적 의지가 무의식의 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발생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에서 신은 일종의 신성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영적 고양의 그 지향점으로서 우리 인간 자체의 그 무한한 잠재 능력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서도 신은 발현된다. 그러니 그의 신은 인간의 그 완전함으로의 열린 가능성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다름아니다. 무신론이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사랑이다. 나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배려한 그 무한하고 조건없는 사랑과 믿음. 무엇보다 그 근시안적이고 순간적인 그 허약한 욕망들을 향해 뻗어 있는 촉수들을 거두고 영적인 성장을 향해 전진하려는 그 진화선상에 나를 두는 것. 끊임없이 소비적인 본능에 몸을 내맡기려는 그 관성에 역행해 성장하고 단발적인 본능들을 억제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또다른 본능에 귀기울이는 것. 전체의 일부로서의 자아의 그 연결지점을 의식하는 것.  

임상의로서 삶 전체를 영성과 연결짓는 통찰의 시선까지 나아간 그의 얘기를 듣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치유의 과정이었다. 나의 우울로 얼룩져 어룽대던 세상이 갑자기 말끔하게 닦여 그 청명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보여 줬다. 순간의 착시일지라도 이런 착시는 대환영이다.  우리는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이런 책을 반드시 어떤 길목에서 건네받아야 한다. 그래야 덜 후회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항상 더 현명하고 더 친절하니 그의 손을 잡고 걸으면 훨씬 덜 힘들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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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0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꽤 두텁던데,, 다 읽으셨단 말입니까.. ㅠㅠ
전 저 시리즈 3권 사놓은지가 어언 2년..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어요. 아우 창피.

그나저나 블랑카 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거지만, 정말 흡입력있으시군요. 부럽습니다.

blanca 2010-03-01 23:20   좋아요 0 | URL
시리즈 세 권 다 사놓으셨어요? 우와~ 근데 이거 생각보다 글자가 크고 들여쓰기를 많이 해서 잘 읽히더라구요. 상담에도 관련하여 아주 유용할 것 같아요. 덜 바쁘실 때 한 번 읽어 보세요~ 마녀 고양이님 서재로 놀러갈랍니다.

저절로 2010-03-0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님께만 오면 질러요.두텁다는 대목에서 망설였지만 지르게 해줘서 고마워요.제대루 지르면 넘 행복하단 거 벌써 알고계시죠?

글구, 제가 서재질 한거 얼마안돼 그러는데요, 어디 서재에 가보니 thanks to 해주시라 하던데, 뭐하는겐지 알아야 도움을 드리든 할거같아서요(이거, 쪽팔림 각오하고 드린 말씀이에요~)

blanca 2010-03-02 13:51   좋아요 0 | URL
저에게만 오면 지르신다니 ^^;;; 저는 중고로 구입했는데 에파타님도 한 번 찾아보세요. 알라딘 중고 서점. 그리고 Thanks To는 책 구입하실 때 그 상품의 아래 리뷰나 관련 페이퍼 하단을 클릭하시면 되요. 하는 사람은 마일리지를, 받는 사람은 적립금을 얼마 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여러 해 동안 서재가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ㅋㅋㅋ
 

 

백화점 여성 의류 코너에 풀어 놓으면 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던
연년생 여동생이 시집가고 나서 갑자기 테팔 후라이팬 행사 매장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모습.
조카에게 퍼부어 대던 물량 공세가 어느덧 수세 차원으로 바뀌는 것. ^^;;

아홉살 연하의 곱슬머리 남동생이 여친이 생기자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오던 누나집에 드문드문 와서 그마저도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 피곤해하는 모습.
핸드폰의 진동소리만 그를 일으킬 수 있다. 그의 여자친구를 싸이의 일촌평에서 찾아 따라들어가 염탐하는
매너없는 누나들의 모습.

미혼의 절친한 베프와 만나면 더이상 흥분하며 밤을 지새우던 공통의 화젯거리가 없다는 것.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마저 약간은 뜨악하게 느껴진다는 것. 

유부녀들과 만나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 얘기만 하는 그 자리.
우리는 더이상 '나'와 '너'의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구나. 

결국 낯설어진 것들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게 된 것들의 다른 이름.
난 낯설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운한 거야.
'나'와 '너'가 공명하던 그 순간의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져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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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숱하게 온갖 모임과 카페 활동, 아고라같은 커뮤니티, 학교 동기 모임 등을 했어도, <알라딘 서재>처럼 비슷한 체취를 맡은 적이 없었답니다.

(어쩜 난 사람이 아닌거 아닐까?)

blanca 2010-02-25 21:39   좋아요 0 | URL
그죠? 너무 신기해요. 책을 좋아하고 책얘기를 하는 사람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잖아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다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지금은 한창 가정에 집중할 때라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 우정을 기대하는 건 음, 서로에게 너무나 큰 부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2-2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명의 떨림, 욕심일까요. 서운함일까요. 지향일까요..

blanca 2010-02-25 21:41   좋아요 0 | URL
다일것 같아요. 특히나 저에게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아성취를 해야 하는데^^;;;

302moon 2010-02-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통의 화제가 없음과, 무엇보다도 서로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빠,
멀어진 거리는 다시 좁혀지지 않는 친구 사이도 있는 거 같아요.
난독증으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됐으니,
너와 나의 공통분모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말을 건넸던 친구도 문득 떠오르는 공감 글이었습니다.
저의 결혼한 친구들은 한창 아이 낳아 키우는 즈음이라,
더욱 못 만나게 되는 듯. T_T
윗분 말씀처럼 알라딘 서재가 있어, 참 좋아요. :)

blanca 2010-02-26 15:00   좋아요 0 | URL
302moon님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또 그 만큼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게 나이들어가는 것의 슬픈 점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이해받기를 바라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살지요^^;;

저절로 2010-02-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사장님이 친굴 알아보시고는 '접때 함께한 친구분들이 아니네요'하니,'시절따라 친구도 흘러가네요, 지금은 이 친구와 놉니다'인생 다산것처럼 살포시 웃는다.

있을수 있는 평범한 장면과 대화였는데도 가슴이 찌르르..잠깐 그랬어요. 나는 변하면서 친구는 뒷뜰 그자리 그나무이길 바라는 건 무슨 심본지.


blanca 2010-02-26 15: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항상 받기만을 바라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유년기와 결부가 되어 있는 것인지. 요즘 책들을 이런 문제를 다 걸핏하면 엄마와의 애착 문제로 설명하더라구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노력해야겠어요.
 

 

누군가의 죽음은 남는 자에게 미완의 과제를 남긴다. 누구나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위하여 스러져 가는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그들이 가고 난 빈 자리, 기다렸다는 듯 밀려들어오는 함께 한 추억들의 뿌리는 남는 자들의 가슴에 어떻게든 생채기를 내고 자리잡는다. 가고 난 당사자 대신 그들의 삶을 복습하며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자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현명해진다면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죽는다는 것,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상류층이며 지식인기도 했던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삶에 대한 얘기는 자주 회자된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 버몬트 숲으로 들어가 의식주를 몸소 해결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던(그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증언하는) 그들의 삶은 많은 도시인들의 귀농 행렬의 기폭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헬렌과 스콧의 삶 그 전체를 긍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스콧 니어링의 자발적 죽음은 어떻게 죽는 것을 배우고 죽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감으로 보인다. 죽음을 의식하고 그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분명 삶에 기대어 숨쉬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거부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 화제로 올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든 문장의 주어였던 '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근원적인 울렁증을 동반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눈을 질끈 감고 세속적인 것들로 돌아와 버린다.  

 

 그이는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하는 듯이 " 좋-아'"하며 숨을 쉬고 나서 갔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 

스콧 니어링은 백수를 누렸다. 정확히 백 살의 생일을 맞고 스스로 곡기를 서서히 줄여 나가며 죽음을 맞았다. 병이 걸려서도 사고가 나서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옮겨감의 길목에 섰다. 헬렌은 그들이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옮겨감에 대한 열린 체험으로 받아들였다고 얘기하고 있다.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변환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부재라고 받아들였으면 그렇게나 평화로이 감당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병환이나 사고를 피해가는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대중문화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오명 대신 그녀를 나는 행동하는 여전사였다고 부르고 싶다. 수전 손택의 그 맑고 섬세한 감수성의 체에 걸러진 해석의 마력에 중독되면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녀가 스콧 니어링처럼 숲 속으로 들어가 물신 숭배에 온 몸으로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음험한 제국주의를 용기있게 비난하고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의식있는 연대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그녀도 개별적 자아를 뛰어넘어 전체에 연대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는 점에서 스콧 니어링과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그녀의 최후는 그의 것처럼 평화롭지 못했다. 아들 데이비드 리프의 담담한 회고록을 읽어가다 보면 그녀가 삶을 너무 사랑해서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녀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수많은 약물들로 그녀 자신이 얘기했듯 자신의 몸이 베트남 전쟁처럼 폐허가 되어가며 그 예리했던 감수성을 잃어가는 모습은 아들 리프를 수많은 갈등과 죄책감의 순간으로 인도한다. 스콧 니어링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 모자도 완전히 화해한 다정다감한 모자는 아니었다. 특히나 어느 누구도 죽어가는 그 순간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내밀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외면하고 거부하고 때로는 투쟁하면서 고통스럽게 그러나 결국은 수긍하며 맞이하는 죽음은 황량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사후에도 끊임없이 자문한다.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를. 그리고 고백한다. 지금 자신을 지배하는 감정은 죄책감이라고. 

삶 그 자체에 대한 취향을 감히 내세운다면 수전 손택 그녀의 쪽으로 가고 싶다. 예리한 촉수로 수많은 현상들을 적시에 잡아채어 나의 이름으로 요리하여 내어 놓아 박수받는 그 역동적이고 쾌할한 삶의 생동감. 하지만 죽어가는 그 과정에서의 그 마침표와 진정으로 화해하고 함께 천천히 걸어갔던 스콧 니어링의 모습은 나에게 어쩌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 같아 이끌리게 된다.  그러니 영원히 삶과 죽음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일까. 스콧 니어링이 과연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을 살았더라도 그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삶, 사랑, 마무리>에 인용되었던 라즈니쉬의 연설처럼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은 우리를 향한 출발을 시작한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살아야 될 이유들을 수집하고 그 목록에 경도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하나씩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포기하며 몸을 비워가는 삶의 종착점에 편안하게 당도하는 것은 인간이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방증 같아 더없이 매혹적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건강과 주변을 관리하는 생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사실과의 화해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가지려 한다. 포기는 미덕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로서만 자리한다.

남는 자에게 간 자의 최후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회한과 죄책감을 던져주지 않고 가는 것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하나의 부록같다. 아름답게 죽고 싶다. 죽고 싶지 않지만. 아니 죽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대신 정말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이 나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라는 말을 언젠가는 꼭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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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2-2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의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 꼭 읽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스콧 니어링에 대한 생각은 나이가 들 수록 변해요. 뭐라고 정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릴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절실하다고나 할까요.

blanca 2010-02-25 13: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너무 동감해요. 예전에 이 책 도전했다 실패했는데 지금은 잘 넘어가더라구요. 나이가 들어가니 달라지는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나무처럼 2010-02-25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콧의 화두가 화해였다면 수전은 싸움 아니었을까요? 그런 면에서 죽음에 임하는 태도가 수전답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blanca 2010-02-25 13:18   좋아요 0 | URL
삶의 방식이 결국 죽음의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수전이 죽음까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보면 나무처럼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2-2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렌 니어링의 책 종이는 재생지를 써서 약간 두껍고 거칠했다는 기억을 우선합니다. 그들의 삶과 꼭 어울리는 갈색 표지와 종이였죠. <월든>이나 <아름다운 삶, 사랑, 마무리>, <타샤>할머니 책들을 읽으면서 내 손으로 하나하나 생필품을 만들어 쓰는 과정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blanca 2010-02-25 13: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거랍니다.-..- 이런 책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 부부 같은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지 다 망쳐 버리는 사람은 삶의 방식도 바꿀 수 없겠다는 슬픈 생각이 들어요. 쿨럭-..-

마녀고양이 2010-02-25 13:47   좋아요 0 | URL
저두 시도하면 항상 2% 모자라요. 울 신랑은 더 심해서, 전기 공사, 못박기 그렇게 못 하는 남자는 처음 봤어요!! ㅠㅠㅠㅠ, 손재주 좋은 사람이 부러워라~
 

 

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언급하기 좀 뭣한 그것을 하고 그 다음에도 인간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결국 소통이라는 미명 하에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항상 시작되는 그 매력적인 화제는 바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뒷담화되겠다. 물론 자제심과 절제의 미덕을 가진 아주 세련된 포장술에 익숙한 이들은 그 뒷담화를 듣기만 함으로써 주동하거나 공모하지 않았다고 합리화한다.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의 상처를 자극하는 기제는 다양하다. 그런 결핍이 과하게 노출된 사람도 그런 결핍 자체가 없는 사람도 결국 비난하고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우리는 항상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지만 온전하게 그럴 수 없는 부분을
남들에 대한 비난 내지 거론으로 갈음하려 한다.  

서머싯 몸은 세속적인 성공과 예술적인 성취를 어느 정도 양립하여 이루어 낸 작가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그의 앙분에 찬 독설의 향연이 그의 여성에 대한 혐오감, 비평가들에 대한 적의, 문장력에 대한 머뭇거림 등과 머물려 아주 질펀하게 펼쳐진다.  

제인 오스틴, 스탕달, 발자크, 찰스 디킨드, 플로베르, 에밀리 브론테, 도스토예프스키, 심지어 톨스토이까지 그 앞에서는 아주 난자하게 해부된다. 온갖 추문과 작품의 허술한 부분이 다 들춰진다. 천재가 가지는 치명적 결함과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듣는 재미는 또 색다르다. 다만 이 뒷담화에 탐닉하다 보면 결국 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가 가진 가장 큰 결함이 인간에 대한 절망어린 시선과 교묘한 위장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전염되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결국 서머싯 몸은 이 일단의 불멸의 작가들을 칭송하는 듯 하면서 결론적으로 교묘하게 폄하하고 있는 작업에 성공했다.

 

작가들의 사생활이 출생 배경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증에 의하여 세세하게 펼쳐지고 다음에는 그 작가들의 대표작의 구리고 허술한 틈새에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댄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방금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중독에 빠져 허우적댄 것도 결국 그의 예술적 광기와 유약한 심성 탓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었던 나에게 기실 그는 미천한 계급 출신들을 그 면전에서 면박주고 비하했으며, 하층 계급 여자를 강간한 것을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다는 대목을 들이댄다면 멈칫할 수밖에 없다.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은 악덕덕택이고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지배하려는 욕구와 굴종하려는 욕망, 부드러움이 결여된 사랑과 악의에 가득 찬 증오로만 구성되어 있는 단순함의 극치라는 평가에 이르러서는 몸이 주는 것 없이 미운 인간이라고 지목했던 대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리뷰에서 대화문의 압박이라는 평을 읽고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바로 도스토예스프키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끌고 가는 버릇을 자기 스스로도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에 한번 빠졌다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단다. 

 

 

 

 

 

 

 

 

그리고 <보봐리 부인>의 플로베르. 무슨 ~부인 시리즈가 주는 끈적한 기대에 기대어 읽었었지만 단조롭고 힘든 독서였다. 몸의 해설 덕택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몸이 낭만주의자이자 리얼리스트라 칭한 그는 아주 성실한 작가여서 자신의 문체를 다듬고 또 다듬는 데 열성이었다고 하니 원서가 아닌 번역서로 그의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몸 자신도 플로베르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며 그 한계를 수긍하고 있다.플로베르에게는 아주 절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아주 독점욕이 강했다고 한다. 두 친구 부이예와 뒤 캉은 그가 낭독하는 작품을 며칠에 걸쳐 듣고 함께 토론하고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두 친구가 눈을 지그시 감고 플로베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바로 그 장면과 며칠에 걸친 그 세 친구의 변주가 막을 내리고 함께 노곤한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이 다가와 앉는다.

  

 

 

 

 

  

 

<고리오 영감>의 발자크는 몸이 주저없이 천재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빚독촉에 시달릴 때라만 글 쓸 생각을 했다는 발자크의 땅딸보 체격의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잠깐 서기로 일했던 법률사무소에서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까 사무실에 나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몸이 과연 발자크의 천재성을 기탄없이 인정한 까닭을 알게 될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은 현대 로맨스 영화들의 그 밀고 땡기는 도식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아니다. 독신으로 살았던 이 재기발랄한 작가 아가씨에 대한 얘기는 그 자체로 예쁜 칙릿 소설 같다.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들은 재치있는 뒷담화들로 가득하다.  

독신녀들이 가난해진다는 무서운 경향이 있어. 이것이 결혼을 추구하는 매우 강력한 이유중 하나야. 

홀더 부인이 돌아가시다니! 불쌍한 사람 같으니, 세상 사람들이 더이상 험담을 늘어놓기 못하게 할 유일한 방법이 그 길뿐이었던 게야. -p.80

 

톨스토이 아내 소냐는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처럼 알려져 있다. 귀족 출신 톨스토이가 만년의 물적 소유물들과 각종 저작권들을 사회로 환원하려 했던 시도에 그녀는 반발한다. 그녀에 대한 톨스토이의 미움이 너무 커서 임종시 입회조차 못했다고 들었는데 몸의 얘기는 또 다르다. 여기에서 그가 어느 정도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녀와 톨스토이 사이에는 무려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고 이들은 다 경제력이 없었다. 무일푼으로 가족들을 방기하려는 의도를 소냐가 납득할 수 없었음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몸은 톨스토이가 스스로 던진 메시지에 갇혔다고 표현했는데 아주 예리한 지적 같다. 이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에게 그들의 비대해진 고상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투사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것을 버리고 기부하고 성자처럼 살기를 바랐다. 몸은 톨스토이가 주저주저한 것은 그가 충분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귀족 출신의 세계적으로 추앙받게 된 작가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가족까지 내던지고 고결한 가치를 위하여 살아주기를 바랐던 동시대인들 모두가 치사한 공범자 같다. 왜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그 누군가에게 잔인하리만치 해 주기를 조르게 되는 걸까.  

그가 아내에게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모유수유하기를 고집했다는 사실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젖을 주는 여자의 심리와 육체적 변화를 어쩌면 그토록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묘한 근거가 된다. 그것은 그가 진정으로 여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그 예리한 눈으로 가차없이 그것에 대한 집착적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농노의 아내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자신의 아들의 마부로 부리는 엽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저질렀다고 한다. 인간의 비루한 품성은 극복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지, 온전히 선하게 타고 나지 못했다고 비하하고 체념할 일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작중 인물인 레빈이 무신경하고 이기적이었던 과거를 회개하고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하여 애정어린 천착을 하는 대목에 압도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결국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회개하고 있다. 몸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작가의 삶과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은 위대한 작가가 문장력도 겸비한 것은 아니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작가에게 있어 특히 소설가에게 문장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그것보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력과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혐오하기 때문에 그것의 묘사에 성공했던 사례를 몸은 여러 번 제시한다. 몸은 인간과 삶에 대하여 냉소적이고 어느 정도 절망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시선이라고 해서 속살을 드러내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가지고 가고 싶은 얘기들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 다음과 같은 얘기들은 철학적 식견을 전파하는 소설가로서의 역할을 거부했지만 그 자신이 가장 완벽하게 수행한 것 같다.

만약 타인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으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처음부터 깨닫도록 가르칠 수 있다면, 또한 재산 명예 사랑 명성 등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 대한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리고 이에 더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본래의 가치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데 지혜의 대부분을 발휘하도록 가르칠 수 있다면<중략>-P.70

서머싯 몸의 뒷담화를 듣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누구나 염증스런 부분이 조금씩 있다. 그것이 전체를 압도해서 그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덜 기대해도 된다. 그게 삶이다. 그게 삶에 대한 관용이다. 그러니 이 독서는 참으로 유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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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2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겠는데요.. 지금 다시 도전하려고 책을 사놓았지만, 예전에 <카라마조프->를 도전한 적이 있었죠. 한사람이 떠들기 시작하면, 몇페이지는 혼자 이야기 합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쿡하고 웃었네요..

뒷담화.. 술자리의 윤활유죠. 그러나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뒷목이 서늘해지며 제가 형편없는 인간이라는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후회가 들고는 했습니다. 그걸 공개적으로 책으로까지 낸 서머셋 몸에게 박수를.

blanca 2010-02-23 22:1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몇 번이나 사려고 했는데 리뷰가 좀, 읽기 힘들다는 평이 많아서 나중으로 미루어 뒀어요. 대화문의 압박이 정말 사실이군요 ㅋㅋ 그래도 언젠까는 꼭 읽을 거라고 다짐하고 있답니다.

뒷담화.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돌려서 완곡하게 아닌 것처럼 다 하더라구요^^;; 저는 사실 서머싯 몸 다시 봤어요. 아주 걸쭉하게 하던걸요. 못생기고 배나왔다는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더라구요. ㅋㅋㅋ

프레이야 2010-02-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참 좋아요.
담아갑니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관용을 베풀 여유를 조금 갖게 될까요?^^

blanca 2010-02-23 22:14   좋아요 0 | URL
아이쿠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요즘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고 다 그 나름대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좋아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더라구요.

stella.K 2010-02-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책 딱 내 꽈군요.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서머셋 몸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0-02-23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책인줄 몰랐는데 읽다보니 포복절도하게 되더라구요. 남의 얘기는 언제나 재미있는 것 같아요.^^

L.SHIN 2010-02-2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군요.^^

blanca 2010-02-23 22: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참 인상적으로 읽어서 꼭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로그인 2010-02-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히터의 자서전이 생각나는군요. 무지막지하게, 거침없이, 주변 동료들 이야기를 했지요. 뒷이야기를요. 문제는 그 동료들이 하나같이 우리가 우러러보는 거장-이를테면 카라얀 포함-이라는 것.
어지간하면 요즘은 빌려 읽는데,(도서관) 이 책은 사서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저랬다니 저랬다니 저랬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blanca 2010-02-23 22:18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부분은 저도 충격받았답니다. 완전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더라구요. 심지어 그의 작품까지도. 그래놓고 그래도 위대한 작품이라고 덧붙여 주는 센스까지 ㅋㅋㅋ 사실 욕먹는 사람보다 욕하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놀라움이 더 크더라구요. 예전의 피아노 선생님이 카라얀을 존경한다고 하셨는데....사람을 욕하려고 들면 소재가 무궁무궁하지요.

순오기 2010-02-2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뒷담화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군요.ㅋㅋ
도스토옙스키를 톨스토이와 비교한 책도 있는데, 그는 여러가지로 썩 괜찮은 인간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의 작품이 썩 괜찮은 것이지요. 돈이 필요할때면 순식간에 휘갈겨 썼다니, 그는 확실히 천재영역에 속한 사람 같아요.

blanca 2010-02-24 14:41   좋아요 0 | URL
무릎팍 도사에서 윤여정씨가 나와서도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가 잘 된다고 하더라구요. 무언가를 아주 대단하게 잘 하는 사람이 그럴 듯한 명분으로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아요.

후애(厚愛) 2010-02-2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 책들을 보관함에 담아 두었다가 삭제를 했었는데 다시 보관함에 담아 두어야겠어요. ㅎㅎ 그리고 <마담 보바리>도요.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종종 놀러 오겠습니다.^^

blanca 2010-02-24 14:4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오셨군요. 보봐리 부인은 재미는 없더라구요--;; 하지만 민음사 번역본이 정말 훌륭하다고 하니 다시 읽어 볼까 생각중입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저절로 2010-02-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르고 싶은건 질러줘야 한다. 고로, 시방 지릅니다요.

blanca 2010-02-24 14:43   좋아요 0 | URL
책은 좀 질러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저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