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된 아이에 속하였고 특히나 숫자에 둔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나눗셈 쪽지시험을 보았을 때 물론 결과는 처참했고 틀린 수대로 손바닥을 맞고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수학, 물리학, 화학 등에서는 꾸준히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영영 숫자, 과학과는 멀어질 줄 알고 기뻐했지만

 

소위 문과 속의 이과라 통칭되는 전공과 관련된(그러니까 나의 전공과는 무관한) 회사에 취업을 해서 울며불며 또 회계 공부를 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좌절할 수밖에. 솔직히 청소년 권장도서라는데도 불구하고 화학에 관련된 내용의 태반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분명 중고등학교 수준이었을 텐데.

 

 

 저자 올리버 색스는 이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신경정신과 교수로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사랑의 기적>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2004년 출간된 <엉클 텅스텐>의 개정판이다. 일종의 올리버 색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꼬마 소년의 화학에 대한 열정의 기록이라고나 할까. 중간 중간 과학과 의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장착하고 태어난 듯한 대가족에 대한 아련한 시간들에 대한 회고도 있다.

 

엉클 텅스텐은 텅스텐으로 백열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드는 일을 했던 올리버의 데이브 외삼촌을 일컫는 용어다. 18남매 중 열여섯 째로 태어난 어머니 덕분에 올리버는 이모와 삼촌 풍년을 맞는다. 삼촌들은 올리브의 화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이모들은 숫자와 자연, 애정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주로 그가 하는 이야기는 역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선적, 논리적인 순서가 아니라 도약, 분열, 수렴, 일탈, 반복, 궁지로 점철된 화학사에 대한 것이다. 돌턴의 원자론으로부터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양자의 발견까지 화학 교과서에서 줄기차게 거론되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기억의 지형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정말 낯설게 그러나 때로는 낯익게 튀어 나온다. 물론 그의 입을 빌려 나오면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각색된다. 한창 화학 교과서 주기율표에서 원소들의 위치와 특성을 암기해야 하는 현역에 있는 학생들이 읽는다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 같다. 화학을 단순히 여러 교과 중 골치 아프고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 박제한 상태에서 암기하고 끝내버린 나로서는 너무 뒤늦게 발견한 책이라 아쉬울 뿐이다. 꼬마 올리버가 이렇게 화학에 열중한 이유는

 

내가 화학을  사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화학이 '전환의 과학'이기 때문이었다. 성질 자체는 고정되어 변함없고 영원한 몇십 가지의 원소가 수많은 화합물을 탄생시키기 때문이엇다. 원소의 고정불변성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불안한 세상에서 한 자리를 지키는 일종의 닻과 같았다.

-p.323

 

라듐에 대한 장에서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받아 읽었던 퀴리부인의 전기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기억과 겹친다. 시간이 훌쩍 흘러 그가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을 때 그의 추억은 한 명의 청중을 미소짓게 한다. 바로 퀴리 부인의 딸이자 그 전기의 저자였던 에브 퀴리였다. 나도 언젠가였는 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제일 처음으로 읽은 전기가 바로 마담 퀴리에 관한 것이었다. 삽화가 아주 아름다워서 퀴리 부인이 소녀 시절에 마호가니 책상(아, 마호가니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앞에서 아버지와 나누던 교감,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던 모습, 남편의 죽음 등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장에는 흑백 사진으로 퀴리 부인과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떠났던 허니문의 기록도 있었다. 그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나도 퀴리 부인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올리버 색스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며 아련한 잔상에 잠겼다 퀴리 부인의 딸과 조우한 대목에서 나도 마치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 것처럼 반가웠다. 원자물리학, 핵물리학은 순수하고 태평했던 퀴리 부부의 시대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는 그의 슬픈 증언은 인간의 지적인 호기심, 사물의 진리를 파헤지고자 하는 연구욕이 지배욕과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욕망으로 변질되어 버릴 때 얼마나 비극적인 파국으로 치닫는 지를 보여준다.

 

자 이 정도까지 왔으면 이 책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솔직히 끝까지 못 읽었다. 주기율표의 원소 하나 하나마다 자신의 삶을 대응시킨 프리모 레비의 간이 자서전 같은 이야기. 아마 나는 우라늄부터 인내심과의 사투를 벌이다 포기해 버렸던 것같다. 올리버 색스의 책과 함께 읽었으면 완독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가을에는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냄새가 난다. 낙엽, 휴식하는 대지, 불타는 나뭇가지 더미, 즉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끝나가는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말이다.
- <주기율표> p.133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상상과 감성을 잊고 워즈워드도 말했다시피 '찬란했던 영광이 평범한 일상의 빛으로 바래가는 과정'인 걸까?

-<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p.354 

 

 

올리버 색스는 열네 살 때 '화학에 대한 열정이 죽었다'고 느낀다. 끝나가는 것들. 유년기의 끝과 청소년기의 시작이 맞물려 있는 지점에서 올리버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 든 할아버지가 되어 그 시간들을 다시 복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미소짓기도 하며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끝나가는 것들에서 나는 냄새를 다시 찬찬히 맡는다. 그리고 그 향기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염된다. 관심분야는 달랐지만 무언가에 대한 계산되지 않은 열정으로 하루가 짦았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책. 다 읽고 나면 태반이 화학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절반을 넘는 삶에 대한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뭉클해진다. 좋은 책. 아이가 크면 화학이 지겹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꼭 읽히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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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학과목을 싫어했던 저도 이 책을 학생때 읽었더라면 좋았겠어요. 주기율표도 전 완독 못한 상태인데 저런 구절이 있군요! 블랑카님 여긴 제법 바람이 쌀쌀해요.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blanca 2012-11-14 10:21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여긴 정말 너무 너무 추워용. 따악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 전 겨울을 안 좋아해서 벌써 봄을 기다린답니다.

다크아이즈 2012-11-1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딴 건 모르겠고, 지금 같은 가을에는 블랑카님의 글을 읽는 게 제격이란 생각밖에는...
이런 화학스런(!) 책을 어떻게 감질맛나는 블랑카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 시샘 어린 존경만...
앗, 위에는 제가 의지하는 프레이야님 등장하셨다~~ 늦가을 오후 저, 대박났어요.

blanca 2012-11-14 10:23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솔직히 제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 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이제 좀 말랑말랑한 책들로 가려고 한답니다.

댈러웨이 2012-11-1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퀴리부인을 저도 읽은 것 같은데 왜 마호가니 책상 같은 건 기억이 안날까요? --;

블랑카님, 사실 좀 일찍 댓글을 달고 싶었어요. 근데, 저도 심하게 문과였는데... 이런 책을 읽으셨네요. --; 밑에 인용하신 두 부분은 문학책 같습니다. --; 뭐에요, 이 책? 왜 이렇게 헷갈리게 하는 거에요? --; (땀만 삐질삐질 --; 그렇지만, 나중에 아이에게 읽히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하네요. ^^)

blanca 2012-11-15 09:59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책상이 너무 강렬해서^^;; 뭔가 찾아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에겐 역시나 무리수였던 것 같아요. 좋은 책들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라고요. 딱 화학 시간에 수업 받을 때 함께 읽으면, 특히나 주기율표 배울 때 너무 좋을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1-2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주기율표를 외우고, 화학과 생물의 그 무서운 결과 값에 감동했던 사람 중 1인으로서 주기율표를 아직 못 읽은 것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보면 칼슘 같기도 하고 저렇게 보면 칼륨 같기도 한데 철이 아닐까? 라는 대화는 화학에서는 불가능했어요. Ca는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칼슘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명징함. 나올 수 없는 무엇이 나오면 돌연변이라 일컫는 희극을 사랑했어요. 어쩌면 너무 많은 기준에 자신을 스스로 맞출 수 없어 한탄하다 겨우겨우 찾아낸 원칙에 기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블랑카 님의 글을 읽으니 뒤늦게 듭니다. 깨달음은 너무 늦거나 이르지 않게 찾아와야 하는 것을.

blanca 2012-11-29 10:05   좋아요 0 | URL
저는 이과와는 담쌓고 지낸 사람이라 이런 명료한 학문에 열중하고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은 또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 같아 한편 부럽답니다. 다음 생에는 좀더 명료하고 용감하게 태어나고 싶어요.쥬드님.

다락방 2012-11-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기율표]의 티타늄편이요, 블랑카님. 이 책은 티타늄에서 압권이에요!!

blanca 2012-12-02 14:3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다시 한번 <티타늄>편 차근차근 읽어볼게요!
 
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무도회가 끝난 뒤>는 마치 삶의, 청춘의 은유 같다. 제목만으로도 왠지 심호흡을 하게 된다. 삶은 몇 개의 찬란한 순간과 그 순간들의 뒷감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뒷감당이 반드시 성가시고 초라하고 처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삶의 교사 톨스토이가 교조적인 설교를 늘어 놓을 때에는 조금 멈칫하게도 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설교대신 명징한 서사를 날린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 데에 절로 수긍이 갈 정도로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딱 그대로의 완벽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눈부신 순간들이 있다. 노년에서 뒤돌아 본 그곳에 정지되어 있는 순간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평범한 이름의 이반은 젊고 활기찼던 대학생 순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의 회고담을 숨을 멈추고 듣는다. 거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소녀가 있고 그 소녀가 위무도 당당한 은빛 견장을 단 아버지와 등장하여 마주르카를 춘다. '나'의 앞에서 그 부녀는 하나로 혼재된다. 딸을 아름답게 입히기 위하여 정작 자신은 낡은 부츠를 신고 딸과 무도회에서 스텝을 밟는 아버지. '나'는 단박에 그 부녀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소박한 부츠와 딸을 닮은 다정한 미소가 함께 떠오르면서 가슴 벅차도록 정겹고 따뜻한 감정이 밀려들었지요.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뒤> 중

 

삶은 때로 가혹하게 교훈을 설파한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무도회에서의 아름다운 부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의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다.  반전은 잔혹하게 다가온다. '나'는 거리에서 그 다감하던 아버지의 모습 대신 도망가려던 포로를 가차없이 매질하고 학대하는 폭력의 주동자로 그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시선을 짐짓 피한다. 당당하고 부유한 아버지가가 되기 위하여 타협하여야 하는 것들,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가 이성적이고 세속적이고 그럴 듯한, 그렇고 그런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톨스토이는, '나'는 이러한 폭력의 구체화만으로도 자신의 소망, 환상, 사랑을 그 자리에서 포기해 버린다. 톨스토이가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재산, 저작권을 포기하려 했던 그 모습과도 닮아 있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깨달아 버린 그 자리에서 다시 물러서기란 쉽지 않다. 그게 뭐 어때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라고 쉽게 타협하고 체념해 버리고 침묵해 버리고 견디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두 남자는 묘하게 닮아 있다. 그렇게 인생의 비의는 벗겨진다. 정말 톨스토이다운 이야기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가난하고 비참한 농노가 주인에게 자신의 결백과 진정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한 심부름은 맡은 돈을 허무하게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가 대들보에 목을 매는 것으로 종결된다. <폴리쿠시카>. 이 불쌍하고 전혀 정당해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묘사의 천착은 눈물겹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하니 막힌다. 옮긴이가 '최상의 리얼리즘을 이루어 낸 작가'라고 그를 명명한 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삶은 그 정도로 비참하고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맥을 함께 한다.

 

<무도회가 끝난 뒤> 사랑과 정의와 대의의 환상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  그 청년과 <폴리쿠시카>의 그 비참한 농노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절망을 얘기하려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해 버렸다. 대령에게서 매질을 당하던 포로와 그 대령의 품에 안겨 사뿐히 스텝을 밟던 아름다운 소녀와 주인에게 자신의 충절을 증명해 보이려다 또다른 배신자처럼 오인받을 상황에 몰려 목을 맨 농노. 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존귀하고 눈물겨운 생명이다. 그런 얘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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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0-3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훔쳐볼 때마다 <글 잘쓰는 블랑카>라는 생각만 들게 하는 블랑카님.
첫 단락부터 장난이 아니네요.
많이 읽는다고 다 잘쓰는 건 아닐텐데, 이건 뭐... 비결은 꾸준히 쓰는 걸까요?

blanca 2012-10-31 22:1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쌀쌀한 날씨에 제 마음 따뜻해지라고 이런 댓글 달아주시는 거지요?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0-3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첫 문단부터 압도적입니다^^
블랑카님, 전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뒤늦게 읽고 있어요. 영화는 진작에 봤지만 원작을 제대로 읽질 않아서요.
언젠가 님이 쓰신 리뷰도 본 적 있는데요.
톨스토이는 절망을 얘기하려다 사랑을 외치는, 그런 작가 같아요, 정말.

blanca 2012-10-31 22:15   좋아요 0 | URL
와, 프레이야님! 안나 카레니나 읽고 계시는군요! 아 꼭 리뷰 써 주세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치기 싫어했다. 시골에서 넉넉하지 못한 집의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피아노를 그렇게나 배우고 싶었는데 그 꿈은 한참이나 어린 막내 동생 때에나 가서야 이루어질 만한 것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스물 다섯 구월에 낳은 나는 여섯 살이 되자마자 피아노 의자에 앉게 되었다. 어쩌면 가장 안 좋은 예체능 교육의 동기였는 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당시로 여유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조기 음악 교육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 동네의 가정식 피아노집에 등록하는 일이 엄마에게는 가장 급선무였다. 당시 방음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텐데 이십 평도 안 되는 아파트의 방방마다 피아노를 넣고 뚱땅거려도 주민들은 용케 참아 주었나 보다. 친구도 이웃들과의 안면도 갈등도 분란도 다 그런 피아노 학원 안방에서 비롯되었다. 의자에 앉으면 페달에 발도 닿지 않는 체구의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는 사진은 대견해 보이기보다 좀 안쓰러워 보인다. 고달프고 지루했던 기억들이다. 어찌 어찌 콩쿨까지 나가 예선에서 보란듯이 김칫국을 마시고 나서야 엄마는 나에게 피아노에 대한 소질도 열정도 없음을 어느 정도 수긍했나 보다. 그 이후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어 버렸으니.

 

중학교 때 음악 실기 시험에 긴요하게 써 먹고서는 언제나 꼬부랑 할머니였던 나의 할머니가 쌈짓돈을 모으고 모아 사 주신 피아노도 좁은 집에 짐이 된다는 이유로 팔아 버리고는

 

이제서야 다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이제는 하농의 그 단조롭고도 규칙적인 선율의 중독성도 체르니의 연습곡이 때로는 그럴 듯한 작품처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임도 소곡집의 그 유치하지만 아이에게 꼭 들려 주고 싶은 동요 연주의 즐거움도 알겠는데 말이다.

 

이미 빈약한 대우를 받으며 멀리 떠나가 버린 나의 그 피아노도 다시 들여놓고 싶고 옆에서 매의 눈으로 나의 연습 상황을 감시했던 그 엄격한 피아노 선생님도 곁에서 나를 다시 채근해 주었으면 싶고 좋은 성적표보다 이선희의 'J에게'를 안 틀리고 치면 더 감격해 했던 엄마의 그 음악 교육에 대한 열정도 다시 찾고 싶다. 자식에게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되고 싶었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은 언제나 시행 착오를 거쳐야 교정될 수밖에 없는 실수이고 자식은 또 그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의 실수가 이기심과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것도 또 하나의 성장의 과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같다.

 

 

이 영화를 제대로 처음부터 보았는 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이 영화 속 미소년들에 열광했고 키팅 선생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을 때 학생들이 시위하듯 책상 위에 모두 올라갔던 장면만은 무언가 뭉클하고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남아 있다.

 

원작이 소설이 아니라 이 작품 자체가 아마 영화를 기반으로 다시 소설 형식으로 쓰여진 것 같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영화 대본을 읽는 현장감이 있다. 풍경이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내내 나는 다시 그 자그맙고 추운 교실로 다시 돌아가 아이들과 끊임없이 흥분하고 이야기하고 졸던 나날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 소설이란, 영화란 참 대단한 것같다. 과거를 소환한다. 그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어도 그것을 처음 만났던 당시의 정경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온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키팅 선생이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는 것. 모든 것을 깨닫고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보이는 그가 삼십 대 초반에 불과했다는 것. 키팅 선생도 아니고 여전히 난 죽은 시인의 사회 서클의 회원들 정도의 정신 연령인 것 같은데 이제 삼십 대 중반에서도 밀려나려고 준비중이라는 것.

 

그. 리. 고. 저도 모르게 벌써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들의 청사진을 그려 보이려 한다는 것.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벌써 제명당하고도 남을 만큼 이 만큼 와 버렸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을, 꿈을,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소비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또다시 하고 있다는 것.

 

설거지를 하는데 요새 한창 '나가수'에 흠뻑 빠져 있는 딸아이가 "엄마, 난 가수가 될래"라고 한다. 나는 "음...그것보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하며 멈칫한다. 닐은 연극을 하고 싶어했다. 아버지는 그러한 닐의 꿈을 폄하하고 짓밟는다. 그러한 아버지에게도 키팅 선생의 얘기처럼 꿈을 꾸던 닐과 비슷한 나날들을 보냈던 소년기가 있었을 터이다. 나이가 들고 사는 데에 부대끼게 되면서 우리는 절대 저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모습을 닮아간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러나고 닐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아버지 말을 처음으로 거역했던 닐이 자신의 열정이 단순한 치기에 불과하다는 아버지의 얘기와 아버지가 차곡차곡 그려 놓은 소위 엘리트 코스의 청사진을 보고는 절망했던 모습. 열일곱. 그 영향받기 쉬운 나이. 폄하되기 쉬운 열정, 소망.

 

아이는 어른의 훈육과 말로 자라지 않는다. 모든 깨달음은 결국 몸으로 부딪혀야 공명한다. 서른 다섯이 넘어서야 비로소 피아노를 치는 즐거움을 알았듯이 여섯 살 때에는 열 여섯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까먹지 말아야겠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전언이다. 언젠가는 사춘기가 될 아이에게 실수하고 싶지 않다. 아이의 꿈을 내가 재단하지 않으려면 이 페이퍼를 꼭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나이듦은 반드시 성장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너에겐 나에겐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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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난감 피아노
    from 처녀자리의 책방 2012-10-25 19:20 
    그때는 미처 몰랐던 걸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한 기회에 깨닫게 되다니. 블랑카님의 피아노와 어머니에 얽힌 기억를 쓴 페이퍼를 읽고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아직도 다 못 헤아린 엄마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디까지였을까. 내가 11살 때 엄마는 오르간을 사들이셨다. 딱히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이었다. 알뜰살뜰한 엄마가 중고도 아닌 새 것으로 오르간을 들이시다니 놀랍고도 설렜다. 내가 오르간을 치기를 원하신 것 같은데 나는 애
 
 
다락방 2012-10-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듯이 멋진 글이네요, 블랑카님. 9월달에 한창 피아노학원을 알아봤거든요. 저도 다시 배우고 싶어서요. 그런데 알아보기만 하고 역시나 실행에 옮기진 않는 게으른 영혼이에요, 저는.

하농의 단조롭고 규칙적인게, 이제는 즐겁나요, 블랑카님? 저는 어릴적에 피아노 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녀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됐거든요. 그리고 하농을 배우기 전까지는 피아노 치는게 몹시도 즐거웠고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꿈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농을 배우면서부터 학원을 빠지고 연습도 안하고 결국은 피아니스트가 될 거란 꿈조차도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그런 하농이, 이제와 다시 배우게 된다면, 즐거워질까요? 피아노는 제게 풀지 못할 숙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다시 배우리라,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되리라, 매번 생각만 하고 있는데 블랑카님의 이 페이퍼는 제게 그걸 당장 실행에 옮기라고 말해주는 듯해요.

이 페이퍼는 블랑카님에게도 꼭 기록해두어야 할 것이었지만, 제게도 꼭 읽어야할 것이었네요.

blanca 2012-10-25 09: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 하농 정말 싫어했어요. 울면서 쳤던 기억이 ㅋㅋ 그 다라라라 라라라라 트라우마까지 남아 있답니다. 그런데요. 다시 치니까 너무 달라요. 그 순간 만큼은 온갖 스트레스 잡념 다 없어지더라고요. 꼭 다시 시작하세요. 저는 1주일에 고작 두 번 하는데도 제가 막 달라지는 것 같아요. 피아노 연주가 들어간 음악을 들으면 불끈 저것 꼭 나중에 쳐야지, 이렇게 자극도 되고요. 저도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망설였어요. 그냥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농밀한 한 시간이 가능할까 싶더라고요. 성인은 아이들과 달라서 진도가 확 확 나갑니다.^^;;

2012-10-2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5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12-10-2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키우다보니 내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인간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 면에서 블랑카님이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하신 일은 부럽고도 멋진 일이네요.

제가 엄마라는 사실이, 교사라는 사실이, 가슴 한켠에 엄청난 부담으로 밀려올 때가 많아요.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부끄럽지 않게 살고픈데 때로는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될 때도 있고. 첩첩산중이에요. 몸으로 부딪혀 공명하기 전에 먼저 지혜로워지고 싶은데 잘 안되겠지요? ^^

blanca 2012-10-25 09:30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저도 그런 생각해요. 한참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던 때도 있고요. 엄마 되는 것은 엄마가 되어 가는 것인 것 같아요. 영원한 시행착오와 후회.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다고 그렇게 믿어요, 우리.

oren 2012-10-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글을 읽어보니 예전에 제 딸아이도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마다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심지어 레슨을 받을 때조차도 피아노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봤었는데, 결국 제 오빠보다 훨씬 일찍 피아노 배우기를 그만두게 되었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토록 배우기 싫어하던 피아노를 그때 왜 그리 가르치려 들었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저는 어릴 때 피아노 레슨은 커녕 피아노를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시골의 자그마한 분교의 교실 안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낡은 풍금'을 보고 자랐지요), 나이 오십을 넘기다 보니 피아노 연주도 정말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어제도 밤늦게까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각각 두번씩 듣고 잤는데, 사실은 오늘 저녁 8시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을 예습 차원에서 들은 거랍니다. blanca님의 이 글 제목대로 저 역시 늘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절실하게 느끼며 살고 싶은데, 오늘 저녁 공연이 또다른 '멋진 순간'이길 고대하고 있답니다.(마침 KBS 제1FM에서도 실황 생중계를 한다고 하니 시간 되시면 blanca님께서도 직접 들어보셔요~)

blanca 2012-10-25 09:33   좋아요 0 | URL
oren님, 저도 여섯 살 꼬맹이 수영 시키면서 싫다 얘기에도 끝까지 시키려고 무던히 구슬리고 그랬어요. 이제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저도 어지간히 피아노 치는 것 싫어했어요.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일명 '눈물의 피아노'라고 울면서 피아노 많이 쳤답니다. 고양 아람누리의 문화적 혜택을 누리실 수 있어서 참 부럽습니다. 한 발 늦게 댓글을 달게 됐는데 어젯밤은 정말 행복하셨겠어요!

감은빛 2012-10-2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당시 남자아이 치고는 드물고 피아노를 잠깐(아주 잠깐) 배웠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귀찮고, 지겹고, 싫어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우리 큰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다닙니다.
그 녀석에게는 어떨까 궁금해서 물어보면,
어떤 날은 가기 싫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재미있다고 하네요.
그 당시의 저도 어쩌면 칭찬을 듣거나,
스스로 생각해도 좋았던 날에는 재미있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2-10-25 09:35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큰 아이가 몇 살이에요? 아, 그래요. 저도 분명 좋았더 날이 있었을 거예요.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겠지요? 악기 하나를 제대로 배우고 연주한다는 것은 평생의 자산이 될 거예요. 그 땐 정말 몰랐거든요.

프레이야 2012-10-2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 페이퍼 읽다가 제 엄마가 사주신 장난감 피아노 생각이 나서 울컥합니다.
악기를 하나쯤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풍요한 삶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전 끈기 부족이라 못한답니다.^^ 그렇다고 제 딸들에게 그런 걸 강요한 적은 없는데 다행이 아이들이
알아서 배우려하고 잘 하더라구요. 작은딸은 특히 더 그래요. 뭐든 누구의 권유나 강요로 억지로 되는 건 아니겠죠.^^
먼댓글로 페이퍼 쓸게요^^

blanca 2012-10-25 09:3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어머니가 사주신 장난감 피아노에 어떤 추억이 얽혀 있을까요? 아, 맞아요. 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악기를 다룬다는 것의 의미. 조금 더 즐겁게 열심히 했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이제는 솔직히 손목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2012-10-25 0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5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0-2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도 먼댓글 달고 싶어져서 어젯밤 몇 자 써보다가 포기했어요. 발랄하게 톤을 잡아야하는데 자꾸 축축 쳐져서요. ㅠㅠ 그래도 혹 갑자기 먼댓글이 달릴지도. '이제서야' 우리가 무엇에 대한 진가를,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듯이, 다 제 각각의 시기라는 게 있듯이... 그나저나 아이가 이쁜 6살이군요. ^^ (오타 지금 봤어요. 죄송. 고쳤어요. ^^;;)

blanca 2012-10-25 09:41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먼댓글 기다리겠습니다. ^^ 말대꾸 많이 하는 여섯 살이랍니다.--;;

라로 2012-10-2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프레이야님 글을 읽고 프님의 먼댓글을 따라와서 읽었어요!!
저도 먼댓글 달고 싶어요. 그런데 두 기라성의 글에 제 초라한 먼댓글을 단다는게,,,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우리 모두 다른 경험들이 만나 비슷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블랑카님,,,,갑자기 둘째는 언제???가 묻고 싶어지다니~~~^^;;

blanca 2012-10-28 12:46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저 먼댓글 받고 싶어요! 둘째를 저도 기다립니다 ㅋㅋ 나이차가 벌써 얼마나 벌어지는지 흑흑.

잘잘라 2012-10-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피아노 치는 블라카님~~~ ^^♪

blanca 2012-10-28 12:47   좋아요 0 | URL
요새 같이 연습 열심히 했으면 전공도 가능했을 것 같아요--;;

2012-10-2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8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여튼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으면서 그의 에세이는 나오는 족족 챙겨 읽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단은 재미있고 적어도 공허하지 않고 호흡이 짧아 부담이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어도 좋고 자투리 시간에 들입다 한 편만 읽어도 무언가 독서를 했다는 포만감으로 배가 부르다.

 

에세이적 자아로서의 하루키는 그의 소설과는 다르게(사실 이렇게 쓰면서 그의 소설이 무언가 아주 비범하고 다소 잔혹할 거라는 쉬운 판단을 내려 버린다.) 지극히 평범하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많은데 감성은 지금 나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신기해하는데 후기를 읽으니 역시나 서른넷에서 서른아홉까지 쓴 에세이를 추린 거란다. 지금의 하루키가 아니라 과거의 하루키의 복기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라는 글은 내가 나의 스무 살에 느끼는 감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며칠 전 화장품 코너의 아름다웠던 이십 대의 점원에 대하여 가진 묘한 느낌과 맞물려 '청춘이 끝났다'는 것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그 뒷맛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반가웠다. 그리고 청춘의 종결에 대한 자각이 삼십 대 중반부에서부터 다가온다는 서글픈 공감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청춘이 끝났다'고 깨닫게 된 것은 청춘 시절 좋아했던 여자와 비슷한 용모를 가진 여자에게 그것을 이야기하자 그녀의 너무나 시큰둥하고 남자들이 그런 말을 잘한다는 식의 전혀 진지하지 않은 반응에서 어떤 소중한 것이 훼손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던 찰나였다.

 

물론 나는 과거의 그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은, 정확히 말해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에 부수되는 나의 어떤 심적 상황이었다. 어떤 시기의 어떤 상황에서만 주어지는 어떤 유의 심적 상황-그것이 실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 중

 

그러니까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고 울음보가 터졌던 것은 스무 살 좌절된 짝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그렇게도 그 사람때문에 설레어 하고 하루 상간에도 천국과 지옥을 쉽게 넘나들던 그 감정의 파고를 떠안고도 견뎌야 했던 그 나약하고도 청승맞았던 나의 심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연민때문이 아니었을까.

 

짐 모리슨에 대한 이야기도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치는 글도 팝음악을 그저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왠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고 하루키가 직접 추천한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을 당장 사러 나가서 턴테이블에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부책감이 들 만큼 달콤하고 끌리는 찬사들이었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젊었을 때는 숨을 죽이고 수없이 들어봐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이, 지금은 이렇게 와인잔을 기울이며 느긋하게 들어도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시원하게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LEFT ALONE-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침> 중

 

나도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적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싱그럽고, 또한 완벽하다. 위태롭고, 확고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그리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프다.'는 느낌을 그가 얘기한 빌리 홀리데이의 미국 컬럼비아 사에서 나온 <The Golden Years VOL. 1>이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가져보고 싶다.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음악을 들으며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펐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억해 낼 수 없고 기록해 낼 수 없다면 그 찰나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런 순간들을 채집해서 눈앞에 보여주는 하루키라니. 그는 부정하겠지만 하루키는 친절하고 다감한 사람같다.

 

<유명하다는 것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소회는 더없이 솔직하고 놀랍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가 유명해지면서 겪게 되었던 소란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감정은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유명해지면 전혀 파악이 불가능한 세계로부터 파악이 불가능한 유의 호의와 악의를 동시에 받게 된다.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매도당하고,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치켜세워진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얽힌 적이 없는 없는, 이름도 모르는 상대로부터.

-<ON BEING FAMOUS> 중

 

이러한 것이라면 글쎄다. 별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하루키는 작가로서의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함으로써 유명세에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나의 가설이라고. 가설은 자기 자신은 아니다,라고. 아, 이러한 대처는 상당히 유연하고 건강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절하게 통합이 가능한 것이 또 하루키만의 강점이겠지만. 괜찮은 대처법인 것같다.

 

번역가로서의 그가 영어 회화 자체를 능수능란하게 하지 못해도 전혀 괘념치 않아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공개하고 괜찮아할 수 있는 하루키의 모습도 부럽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육십 대의 하루키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육십 대의 하루키 속에 편재하는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고 납득할 만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나머지의 에세이들이 시간의 연대기순으로 그의 나이듦을 반영하고 있다면 모조리 갖고 싶어질 정도로.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어느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 그 소중한 이야기들은 칠십 대의 시선과 깨달음과 회한을 반영하고 있겠지만 삼십 대의 청춘과 사랑을 포함하고 있기에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하루키의 저물어 가는 청춘에 대한 단상은 꼭 그 만큼의 깨달음과 치우침을 가지고 있어 뒤돌아 보아도 앞서 보아도 어떤 애틋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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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2012-10-08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제 느낌에는 blanca님의 글이 딱 그렇습니다^^; (그런 분에게 상찬을 받는 작가라면. 읽어보고 싶네요)

한남자 2012-10-0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blanca님 뭐 한가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페이퍼 쓰실 때 혹시 글씨체가 뭔가요? 굴림? 돋음? 이것저것 해 봤는데 왠지 다르게 반듯해 보여서요

blanca 2012-10-08 09:13   좋아요 0 | URL
니코니코님 안녕하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니코니코님 덕분에 제 페이퍼의 글씨체를 지금 확인해 봤어요. 굴림체가 맞아요^^;

프레이야 2012-10-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 책을 읽고싶어 선물 받아놓고는 읽고있는 게 있어 아직 소중히 옆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요. 책도 참 아담하니 예쁘지요. 님의 리뷰에 어서 읽어보고싶어 안달 나요. 맛깔스런 리뷰! 오늘하루도 평안히 보내요, 우리^^

blanca 2012-10-08 09:14   좋아요 0 | URL
아, 선물받으셨군요! 저는 솔직히 착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읽게 될 줄 알았는데 이거 한 권 읽으니 모조리 다 읽고 싶어졌어요--;; 여전히 오늘 하늘도 참 이뻐요^^

다락방 2012-10-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참(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감수하고) 리뷰를 잘 쓰세요. 에세이는 그보다 더 잘쓰시지만요.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으면 참 질투나요.

blanca 2012-10-09 09: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ㅋㅋ 건방지게 안 들리고 황송하게 들려요. 다락방님은 일상에서 책 얘기를 너무나 부드럽게 잘 풀어내시잖아요. 다락방님만의 스타일. 그게 딱 확립되어 있어서 저는 그 점이 참 부러운 걸요.

2012-10-17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년 8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완서 선생님의 부고를 핸드폰으로 확인했던 그 날 아침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 날은 2011년 1월 21일, 아이를 가지고 낳고 이제 누군가에게 맡겨도 울며 엄마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키워냈던 집을 마음의 준비없이 떠나야 했던 날이었다. 당연히 내 소유의 집이 아니니 여러가지로 사정이 안 맞으면 자연스럽게 떠나야 하는 집이었지만 추운 겨울 급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마음은 참 시렸다. 아침부터 눈이 흩날렸고 이삿짐을 열심히 옮기는 인부들 옆에서 왠지 내가 걸리적거리는 것만 같아서 괜히 어슬렁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써낸 전부를 읽고 싶었던 마치 나의 지인 같았던 작가의 부고를 들었다. 바깥에 흩날리는 눈발과 아이가 기어다녔던 방이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분과의 작별. 작가와 독자의 이별은 만남만큼 큰 파란이다. 읽어내는 이야기들은 일종의 만남이다. 그 만남은 텍스트 안에서 읽는 이들의 삶 속으로 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니 작가의 죽음만큼 슬픈 작별은 없다.

 

전쟁이 남긴 상흔, 소소한 일상, 지인들과의 추억담이 역시나 소담한 그 분의 손 안에 담긴 따뜻한 밥처럼 다가온다. 예전에 들은 것도 같고 내가 짐작하기도 했던 이야기들도 언제나 새롭고 다감하게 들리는 것도 그 분만의 저력이리라.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

-<내 기억의 창고> 중

나이가 듦은 기억과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어떤 어두운 기억도 세월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원만하게 깎아 버린다. 찬란한 환희의 그 빛나던 모습도 세월의 무게 속에서는 적절하게 빛이 바랜다. 그러고 보면 오늘 밑에 가라앉는 어제들은 다 하향 평준화되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내일을 기다리게 되나 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찬란하기를 고대하면서.

 

 

 

 솔직히 무엇에 관한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는 유명한 초입부에 역시 감탄하며 줄을 긋고 과연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며 출발했다.

 

프랑스 혁명기,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진자처럼 왕복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기막히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는 기묘한 흡인력을 자랑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찰스 디킨스의 다른 작품이라고는 그 지독한 스쿠르지 영감 얘기 정도를 접해 본 나로서는 이래서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프랑스 혁명이라면 고등학교 때 지엽적인 연대기 정도로 달달 외우고 마감했던 기억이 전부였다. 혁명이라니 용기 있는 것이고 시민들의 손에 권력이 이양되었으니 바람직한 역사의 격변이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하늘과 땅만큼 먼 간극 속에 대치한 두 인간 군상은 찰스 디킨스 앞에서 가차없이 발가벗겨진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느냐.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여자들이 임신을 못하게 해서 우리처럼 비참한 생명이 아예 멸족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절규했던 아버지를 둔 사람들, 단지 귀족의 태생이라는 것만으로 기요틴에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결국 다 같은 고뇌에 찬 인간들이다. 복수심에 불타 이미 혁명 자체의 명분도 취지도 망각한 채 집단 살육에 이성을 잃은 '애국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거친 사내의 희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찰스 디킨스의 펜은 오히려 가혹하게 느껴진다. 결국 그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희망 그 자체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언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제대로 <두 도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일런지도 모른다. 이야기만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여명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의 가차없는 뒷골목을 헤매다 결국 집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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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0-03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촌의 팔촌 소식 듣는 마냥 지나쳤던 박완서 작가님의 부고 소식, 일 년이 훌쩍 넘어서 저는 다시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있답니다. 제 친구가 박완서 작가님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못한 게 내심 걸리네요. 이 글을 읽으니 내일이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걸요. 걱정도 앞서고, 괜시리 불안해지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내일이니까! :)

blanca 2012-10-04 09:39   좋아요 0 | URL
아, 수다쟁이님, 그 친구를 오늘 만나시는 건가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저도 박완서 작가를 정말 좋아해서 여동생과 서로 책을 바꾸어 읽으며 전작주의를 시도했었답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이 있지만요.

순오기 2012-10-0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잘 지내셨죠?
박완서 선생님 책 사두고 쓰다듬기만 하다가 이번 추석에 읽었어요.
전날 큰집에서 음식 해놓고 잠이 안와서 읽다가 다음날 집에 돌아와 다 읽었어요.
나도 그분의 책은 다 읽고 싶은 독자거든요.^^


blanca 2012-10-04 09:4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한가위 잘 보내셨지요? 저도 무언가 숙제를 마친 기분으로 이제 밀린 일들을 하려고요. 올해는 철 들어서 큰집 며느리인 저희 친정 엄마께 "엄마, 고생 많다."며 설겆이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너무 늦게 철이 들어서 아쉽지만요--;; 일교차가 심해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프레이야 2012-10-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예쁜 박완서 님 미소^^ 블랑카님, 전 저 책은 담아만 두고 아직이고 친절한복희씨 이후 멈춰있어요. 그 소설집이 너무좋았어요. 디킨슨도 그렇고 세상엔 읽을책이 이리 많으니 해피한거죠ㅎㅎ

blanca 2012-10-04 09: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 다시 책의 지름신이 강림하여 오늘 택배가 두 건이--;; 대기 중입니다. 갑자기 또 책이 너무 막 좋아져서 있는 책들도 이고 있을 지경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제가 사는 건 책의 힘덕분이랍니다 ㅋㅋ

2012-10-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을 읽자고 결심할 만큼의 박완서 샘의 팬이 생각보다 많군요. 저는 이 책의 리뷰들을 통해 박완서 샘의 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 반해서,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두어 권 더 산, 초보독자..^^
앞으로 더 많이 시도하게 될 것 같아요. 박완서 선생님 책읽기. 읽다 보면 거의 전작을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할만큼 반하기도 했어요.^^

<두 도시 이야기>.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넘 재밌게 읽었었지요. 아직도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물론 주니어 세계문학,이라는 축약판으로 경험했으니, 원작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지만요.)

blanca 2012-10-23 17:34   좋아요 0 | URL
섬님, 정말 신기해요. 제가 아이 임신 중에 어떤 식당에 박완서 선생님 책을 들고 갔는데 낯선 아주머니가 말 걸어오더라고요. 박완서 작가 좋아한다면서요. 그 만큼 고정 독자가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재미있어서 흠뻑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아, <두 도시 이야기>를 고등학교 때 읽으셨군요! 그 시절 읽은 책들은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성으로 녹아 남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