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장난감을 빨며 쓰레기통 뚜껑을 둥둥 치던 여자아이는 어느날 문득 뱅그르르 소시지컬을 한 연한 금발 머리의 어린 소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멍하니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진지한 얼굴의 아이는 칠레소나무 주위의 푸른 풀밭에서 굴렁쇠를 쥐고 서 있으리라. 두 번째 소녀는 첫 번째 소녀가 빨고 있던 플라스틱 우주선을 바라보고, 첫번째 소녀는 굴렁쇠를 바라보리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중

 

장장 십오 년에 걸쳐 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이 마침내 일흔다섯의 나이에 마무리지어질 때 덧붙여진 이 아름다운 대목은 누구나 스스로를 대입해도 유효한 부분이다. 물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놀이는 달라지겠지만 꼭 노년이 아니어도 문득 쉼없이 달려온 나의 삶의 연대기의 초입 부분에서 소녀 시절, 소년 시절의 '나'를 또 다른 시간 속의 '내'가 맞닥뜨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뭉클하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우뚝 선 이 우아한 할머니 작가는 자신의 삶 속의 수많은 파편들을 하나의 자리에 잘 통합하여 정리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그녀 자신의 이야기에서 발휘한다. 따뜻한 가정의 막내딸로 보낸 행복한 유년과 남편의 배신으로 아프게 끝나 버린 첫 결혼 생활과 연하의 고고학자와 사랑에 빠지고 어린 시절 유모가 들었으면 깜짝 놀랐을 여왕과의 만찬까지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언뜻 서로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삶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삶에 대한 애정, 겸허함과 이야기를 쓰는 일에 대한 천착으로 한데 뭉그러져 향그럽게 발효한다. 우리는 그녀가 때로 어떤 시점의 환희와 절망 속에 가라앉는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게 되지만 그녀가 결국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얼마간 좀더 현명해진다.

 

정작 우리의 삶 속에는 그럴 수 없다. 오늘 가려운 곳, 아픈 곳은 영원히 나을 것 같지가 않고 어제의 불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어제를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내일을 기대하고 때로 가망 없어 보이는 숱한 미래 앞에서 압도 당한다.

 

 

 

 

 

 

 

 

 

 

 

 

 

 

 

 

로버트 그루딘. 이 생소한 이름의 저자가 드디어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담론의 장을 조심스레이 펼친다. 프랑스 혁명력을 본따 만든 글의 목차는 간명하고 예리한  성찰의 말들과 개인의 삶에 대한 성실한 기록들이 어우러진다. 어쩌면 거들먹거리는 듯한 단정짓는 경구들에 시달려 온 우리들에게 단정하게 타이르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절로 귀기울이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군데 군데 그 자신의 삶에서의 회한과 경험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진실에 중량감을 가져오고 투명하게 아름다운 문장들이 노래처럼 울려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중요한 사건을 사진으로 찍을 때처럼, 또는 먼 훗날의 향수를 예견하면서 어린아이의 아름다움이라는 잡기 힘든 본질을 머릿속에 새겨두려 애쓸 때처럼 바로 그렇게, 현재의 모든 정신 상태를 하나의 고유한 전체로, 일시적이고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힘과 내용의 상호작용으로서 음미하고 기억해야 한다.  -p.31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 정확히 이 반대로 행동했었다. 그저 이제 밤새 숙면을 할 수 없고 종일 아기의 욕구에 맞춰 하루를 재편성하고 나의 욕구와 나의 감정을 존중할 여유를 가질 수 없다는 데에 상실감을 느꼈고 모든 낯선 과제에 너무나 압도 당해 상당 기간 이 힘든 상황이 지속될 거라는 데에 지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게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지를 미처 몰랐고아이의 성장에 있어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축복받은 찰나라는 것을 삶의 긴 시간 측면에서 관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후회가 남는다. 먼 훗날 그 시간을, 그 젊음을, 그때 그 시간 속의 아이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 지를 미처 몰랐기에 아름다운 시간들은 상당 부분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스무 살이 서른 살을 상상하지 못하듯 밤에 두 세번씩 깨는  아가가 책가방을 매고 타닥타닥 뒷모습을 보이며 혼자 걸어갈 것을 몰랐기에 그 아기 옆의 엄마는 빈곤했다. 아직도 여전히 자주 상황에 먹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상황이 전체가 아님을 알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리니 숱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어리석은 근시안의 나날들이 아쉽고 그립다. 로버트 그루딘은 "하루하루는 8만 6천 초가 넘는 작은 영원이다."라며 그 자신 언젠가는 그리워하며 돌아볼 '오늘'을 성실하게 기록한다.

 

삶의 미미함, 그 오목한 자국과 새김눈 자체가 만족스럽게 길어지기를 소망하려면 실로 시시콜콜할 만큼 충만하게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 삶을 소망하는 건 이미 그런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삶을 무한히 확장하는 길이다.-p.65

 

이제 반이나마 온 것같다. 자도 자도 읽고 또 읽어도 항상 남아돌았던 청춘의 하루는 저만치 걸어가 버리고 이제 내 앞에 남은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중년이 되었다. 시간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핵심을 좌우하는 가장 큰 힘이다. 그것을 배워가는 것이 어쩌면 삶 그 자체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시간'을 통해 배우고 '시간'에 헌납하고 가야 한다. 저자의 소망처럼 이 책은 섣불리 결론으로 이끈다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고 숱한 찰나의 파편들을 원경에서 커다란 패턴 속에서 관조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 책도 나와 함께 같이 늙고 숙성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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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06-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아침마다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아이와 함께 하는 어린이집길을 소중히 즐거워하며 가고 있습니다. 물론 등원 전의 그 엄청난 소란함도요.

blanca 2015-06-04 13:08   좋아요 0 | URL
아애님, 버스를 두 번이나 타는 길이어도 아이와 더불어 아애님한테 지금 이 시간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 참 부럽네요. 이제 큰 애는 초등학생이어서 유치원 시절 추억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참 아기자기한 행사도 많고 유치원생 학부모로서 누리는 작은 즐거움들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려 해요. 오늘 오전에 고무줄 공예 도구들 주문해 달라고 책상 청소 하더라고요.
귀여워요^^

파란놀 2015-06-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곰곰이 보면, 어머니 자리에 서는 이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을 되돌아보지만,
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을 미처 돌아보지도 못하는 채
너무 빠르게 내달리기만 하지 싶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이든 모두 축복일 텐데요

blanca 2015-06-04 13:10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숲노래님이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참 더욱 값지게 다가와요. 특히 정성스럽게 차리는 밥상이 저한테는 언제나 자극을 줍니다. 천연재료들로 그득한 밥상은 양육자의 아이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바람향 2015-06-0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를 먹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네요...ㅎ

blanca 2015-06-04 13:10   좋아요 0 | URL
바람향님, 저도 여전히 두려워요. 아주 많이...

Nussbaum 2015-06-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하루하루가 비슷한 요즘 저는 어딘가에 뭔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기록하는 데 시간을 많이 두지 않고, 기록하는데 필요한 장면을 마음에 담는데까지 시간을 많이 두고 있는 점이 다르네요. 올리신 글을 보니 다시금 그 기록을 빼먹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blanca 2015-06-04 23:59   좋아요 0 | URL
기록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게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시간에 온전히 패배하지는 않을 최소한의 노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저는 다이어리를 열심히 쓰려 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상황과 기록이 어긋날 때가 있더라고요. 누스바움님은 저보다야 더 기억도 명료하고 또 기억을 남길 그림도 그리실 수 있으니 더 행운이신 게 아닐까요.

lachrimae7 2015-06-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저는 이 책을 만들 때 옆에서 일을 조금 거든 편집자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마음에 와 닿는 서평 감사합니다.^^

blanca 2015-06-05 00:00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이렇게 읽고 또 인생의 책으로 간직할 독자가 있다는 것 기억해 주시고 힘 내시기를 바랍니다. ^^

2015-06-0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에는 줄긋지 않은 문장, 지금은 내게 가장 긴요한 문장이 되어 있었다.

제게는 미래라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당장 바로 앞의 시간이 미래인 거죠. 지금부터 30년까지, 이런 식으로 집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집합적인 미래를 대비하자면, 지금 내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얼마나 벌어야만 하는지 계산이 나와요. 그래서 당장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일단 돈을 버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집합적인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순간, 지금뿐이에요.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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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 열망으로 '메리 웨스트콧'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봄에 나는 없었다>를 시작으로 <사랑을 배운다>까지 이 소설들에는 방황하거나 인생의 위기를 겪는 주인공들에게 지근거리에서 삶의 통찰과 현명한 식견을 보여주는 멘토들이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마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의 해결사 미스 마플과 에르큘 포와로 탐정이 개별적인 사건들에서 더 확대되고 심화된 생의 각종 문제들에 다른 버전으로 재등장한 듯하다. 특히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라는 촌철살인의 말로 대변되는 <딸은 딸이다>에서 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대하여 현명하고 사려 깊은 조언을 해 주는 로라 휘스터블이라는 예순네 살의 여성은 주옥 같은 그러나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비단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애거사 크리스티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과 깨달음은 이 여섯 편의 소설들 속에서 일관되게 독자들을 설복시킨다.  누구나 삶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 행복을 누리는 능력에 대한 긍정, 타인의 삶의 존중, 인간의 모순적인 본성 때문에 인간을 한 면으로 단정짓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만인 지에 대한 경고 등은 그녀 자신이 삶에서 체득한 소중한 깨달음으로 보인다.

 

여자 주인공들은 한결 같이 조금은 경솔하고 어떤 면에서는 과도하고 어느 정도 어리석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녀들은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 때문이 아니라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가졌던 겸허하고 성실한 태도에서 비롯된 생의 의지 덕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메리 웨스트콧'의 이름으로 씌어진 이야기들을 읽는 일은 그녀가 생의 후반에서도 결코 떨쳐버릴 수 없었던 희망에 감염되는 일이다.

 

짧은 오솔길이라 생각했지만 몇 킬로미터가 될 수도 있었다. 들어선 이상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다보면 어디선가는 밖으로 이어질 터였다. 그 지점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정해져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자신의 행동뿐이었다. 의지와 목적에 따라 오솔길을 밟아가는 일. 발길을 되돌리거나 계속 나아가거나. 모든 건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사랑을 배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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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5-05-24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가사여사의삶을비추어보면 추리작가로성공햇지만자신이이룬검에비해인정받지못해다고당시의문학계는추리소설을하위문화로인식햇쬬 같은시대의여류작가도로시세이어스는추리작가엿지만자신의작품보다전혀다른문학으로인정받았고녹스만해도잘팔린소설보다성경의번역은자신의큰성공이라애기하기도 성공햇지만결혼은두번이나실패하고불행앴죠
봄에나닌없었다에서표현되기도하고 장미와주목에서도 사랑때문에고통받는여자 딸은딸이다에서도
이책들은결국작가의 페르소나가아닌가하고생각됩니다

blanca 2015-05-25 08:36   좋아요 0 | URL
재는재로님, 저도 이 시리즈에 유달리 애거사 크리스티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극찬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도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은데 당시의 편견은 상상이상이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어떤 유형의 남자에 대한 불신도 꾸준히 나타나더라고요. 댓글로 많은 것을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5-05-2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편견이 많은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이분이 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았으니
비평과는 달리
사람들 사랑을 널리 받았으리라 느껴요.
`성공` 때문이 아니라,
널리 읽히는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blanca 2015-05-25 17:17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노년에 자신의 삶을 복되었다,고 이야기했으니 말씀이 맞을 듯합니다. 일반론적인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별적인 삶에 대해서도 정말 긍정적이고 희망어린 총평을 했던 작가이니까요. 죽음에 거의 다다른 시점에서 저도 그녀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요.

2015-05-27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7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6-26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작가는 저 시기의 본인을 따로 놓고 봐주기를 바라는데 그걸 또 아가사 하나로 통합이 되는 안타까움이..^^;
저작에선 50년이나 후에 내 달라할 만큼의 자기 스스로 죽음이후 까지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데..말이죠.
딸과 아들. 결혼과 삶 여자로의 인생을 말하는 건데..그녀 인생 자체가...작가로가 아닌 사람으로는 행복으로
나가지 못해 늘 고민이고 일로 도피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끄럽다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해요.
여성들에게 보길 원하는 책이랄까..이런 사람이었다. 나는 .. 잘난 여자 아니고..대단한 사람아니고. 한 여자일뿐
그것도 남자하나에 가정일에 여지없이 휘둘리고 고민하는 딸,아들 이 지탱케하는 부분이 있던 여자로의 생이 있던
다른 사람으로 보아주길..절실하게 바라는것 같아요.군중속에 있어도 외로운건..외롭다고..

blanca 2015-06-26 10:48   좋아요 0 | URL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히 솔직한 면이 있는 작가 같아요. 부끄러운 부분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고 그 치유의 여정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존감의 바탕은 어렸을 때 받은 풍요로운 사랑에 빚진 부분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힘든 일들도 잘 이겨나가고 노년에 담담하게 회고할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도 했어요. 맞아요. 그녀는 사실 보통 사람보다 배는 깊고 넓은 시련과 상처를 겪었을 거예요. 사랑했던 남편에게 가장 아픈 시기에 배신을 당한 경험은 두고 두고 그녀 인생에서도 지워질 수 없는 상흔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재혼한 남편이 그녀의 일과 그녀의 모든 도전들을 지지하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어 우리가 오늘날의 그녀를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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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어떤 선입견도 없이, 특정한 관심이나 지나친 기대 없이 이 자전적 에세이를 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더불어 작가로서의 그의 색채, 그가 만들어 낸 인물이 움직이는 세상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니 그가 토로하는 작가로서의 애환과 보람, 작가적 정체성으로의 더글라스 케네디에 대한 이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내는 그의 삶은 그의 이야기의 진폭을 상상하게 한다. 마흔다섯의 사내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어린 아들, 출간 거절을 당한 자신의 소설, 아내와의 불화를 뒤로 하고 폭설을 뚫고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며 느낀 희열과 거기에서 받은 위무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대담하고 솔직하고 절절하다. 그리고 그는 글을 읽고 쓰는 작가라는 본분을 잊지 않으려는 듯 군데 군데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위로를 주었던 문학작품들과의 만남, 재해석을 덧붙인다. 그것은 그가 통과하는 그의 삶의 정경들에 너무 잘 녹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절망에 빠져 조르주 심농의 소설을 읽고 아내와의 불화를 겪으며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이해하고 오지 여행을 갔다 우연히 손에 잡히는 죽음을 목도하게 된 충격을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완화하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혹은 울고 싶을 때 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들의 예증 같았다.

 

특히 그가 끝내 화해할 수 없었던 완고한 아버지와 냉정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들은 언어들 사이를 건너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부정도 모정과도 무관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기본적인 애착 관계는 물론, 부모로부터 기대되는 지지나 격려도 전혀 받지 못했다. 대신 아들 앞에서 끊임없이 불화하고 요구하고 아들을 거부하는 부모를 용서하는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 자신도 아내와의 관계가 끝나고 가족이 해체되는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유달리 굴곡이 많은 인생과 중요한 위기 대목마다 그를 응원해 주기는 커녕 돈을 요구하고 아들의 행동들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부모, 장애를 가진 아들은 그가 인간의 삶 자체를 다분히 비극적인 것으로, 절망과 위기를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거나 해체되기 직전에 다시 일어선다. 그것은 조물주에 대한 믿음도 삶 자체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반문하고 거창한 것을 덧대기 이전에 그는 그저 현존 자체의 경이로움에 설득되는 것같다. 다시금 일어나고 부활하는 생의 의지는 그의 두 아이가 그에게 가지는 의미 덕분이기도 하다.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기울이는 그의 노력은 탄복할 만한 수준이다. 자신은 받지 못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사랑과 헌신이 그에게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갈되지 않는다. 최악의 순간마다 그는 그 상황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부터 물러나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진다. 내일을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더글라스 케네디가 "어디, 다시 한번 때려 봐!"라는 듯 다시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그의 정체성 그 자체다.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가 아들에게 자주 읽어 주었던 책이다. 간질 발작으로 언어를 잃어버린 아들에게 그는 마지막에 이야기 속의 괴물들이 맥스라는 아이를 붙잡는 장면에서 실제 이름이 똑같이 맥스인 아들이 "싫어!"라고 외치던 기억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읽어 준다. 맥스는 반응이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싫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절대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던 맥스는 이제 미대를 다니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는 결말을 마침내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결혼생활과 부부관계를 회의했던 그는 다시 사랑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가 인용했던 새뮤얼 버틀러의 말 "인생은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말로 다시 돌아오는 결론, 그는 내일을 결코 낙관하지 않지만 삶의 그 미묘한 행로를 여전히 배우며 걸어갈 것을 이야기한다. 초로의 사내가 작가로서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까지 전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그가 살아내며 깨달은 것들이다. 때로는 편견이나 아집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 솔직함 아래 쌓아올린 그 성실한 삶의 편린들이 빛나는 이유다. 힘들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 섣불리 조언을 남발하지 않는 책, 그래서 곁에 두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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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5-21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아이 가슴에는 늘 사랑이 있기에
아이가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얼마든지 새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으로만 보아도
사랑을 받아서 태어났구나 하고 느껴요.

저 스스로 어버이로 지내면서 느끼는 대목입니다..

blanca 2015-05-21 09:10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이 자녀분들한테 주시는 사랑도 참 따사롭게 느껴집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2015-05-21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1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크사카 2018-03-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빙 더 월드‘라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 그의 현신이 아닐까 합니다. 무척 실존적인 삶을 사는 작가인 것 같아요.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blanca 2018-04-02 06:01   좋아요 0 | URL
예전 글에 달린 댓글을 보는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좋네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타그사카님이 얘기해 주신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의 눈 - 빗소리가 어떻게 풍경을 보여주는가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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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가 시작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같다. 칠판에 판서한 글씨를 알아보기 힘겨워졌다. 시력 검사를 통해 0.3정도 된다는 얘기에 안경을 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주 기뻐했던 철없는 기억 이후로 근시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3디옵터까지 떨어졌다. 대학 합격 소식에 제일 먼저 렌즈를 시도했고 결막염과 각막염이 번갈아 오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좀 더 예뻐 보이고자 두꺼운 안경을 감추어 두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영 렌즈착용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심지어 낀 채로 잠이 들기도 해서 토끼눈으로 기상하기도 하며 눈건강은 더욱더 나빠졌다. 그러다 드디어 라식수술이 해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이 걱정되어 여러 번 망설이다 결국 수술을 받았고 거기에 따른 경미한 부작용도 감수하리라 다짐했다. 지금도 수술을 받고 안경 없이 핸드폰의 문자가 너무 또렷하게 보이던 그 첫 느낌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심봉사가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고 눈을 뜨는 기분 만큼은 아니었지만 거의 그 근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근사한 느낌이었다.

 

'읽기'에 중독된 나로서는 사실 눈이 나빠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노안도 그렇고 고도 근시가 있었기에 거기에 따른 각종 합병증도 두렵다. 보르헤스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시간이 죽기 전에 올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나의 바람은 늙어서도 죽음을 앞두고서도 제발 보고 읽는 능력 만큼은 보존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과 계통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의 문장은 나를 거의 항상 압도한다. 수와 언어에 대한 능력은 같이 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그 둘이 한데 모인 지점에서 빚어내는 그의 이야기들의 진지함과 섬세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최근에 안구 흑색종의 전이로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슬프다.

 

이 책의 헌사가 바쳐진 이는 그의 안구 흑색종을 진단하고 수술한 한때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올리버 색스는 '뇌의 가소성'을 이야기한다. 삶을 살다 갑자기 맞닦뜨린 불운, 그것이 하필 우리의 지각 체계를 망가뜨리거나 교란시켜 보고 듣고 말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과연 우리가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대답들은 하나 하나의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사례다. 어느 날 갑자기 악보를 보지 못하게 된 피아니스트, 항상 사람들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던 여인이 언어를 상실 했을 때, 읽고 쓰는 게 주업인 작가가 갑자기 읽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 앞에는 절망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가 인용한 찰스 디킨스의 표현인 '부활'의 세례가 그들에게도 내려진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가족들의 혹은 지인들의 지지와 격려, 삶에 대한 사랑과 애착 등이 뇌의 지형도를 변화시켜 다른 지각 기능의 강화와 보조로 잃어버린 것들을 대체하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말을 할 수 없어도 그러한 이들을 위해 저자가 본인의 장애를 딛고 만들어 낸 어휘집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친구들과 대화하고 세상과 교류하고, 이제는 눈으로 언어를 읽어내는 대신 오디오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새로운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은 상실이 아니라 기존까지 가져왔던 온갖 선입견, 허위 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자아, 새로운 가치관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올리버 색스 자신이 암 선고를 받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경험에 대한 솔직한 일기도 나온다. 이제 환자의 입장에 서게 된 그는 그렇게나 세상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보며 즐거워하고 읽는 기쁨이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었던 나날들을 포기해야 하는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체험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제 그는 세상을 3차원이 아닌 2차원으로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갖 사각지대가 생기고 눈으로 보며 즐거워했던 공간은 그에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다가온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착각하는 나날들 앞에서도 그의 위트는 이제 세상을 정물화처럼 인식하게 된 새로운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가 서신을 교환했던, 제대로 교정되지 않은 사시 때문에 세상을 평면적으로 인식하다 드디어 내리는 눈 가운데에서 3차원의 세상을 경험하며 전율했던 한 여인과는 정반대의 경로에 선 그의 솔직한 투병기는 서글프기도 하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어떤 지점을 넘어서서 그 체험들을 온전히 껴안고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언어화하려는 그의 노력 덕택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한 걸음씩 뚜벅 뚜벅 걸어나가고 마침내 슬픈 종지부 앞에 섰음을 가감없이 고백하는 그의 담대함이 존경스럽고 뭉클했다.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자신의 자서전 표지를 장식했던 근육질의 청년이 오토바이 위에 위용도 당당하게 타고 있는 근사한 사진이 떠 있다. 이제 그 용감하고 건장했던 청년은 시력을 잃고 생을 사랑과 신뢰로 채웠음에 감사하며 퇴장하려는 길목에 서 있는 노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던 것은 행운이었다는 고백은 그가 우리들에게 남기고 가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메시지가 될 것같다. 지뢰밭 같은 삶을 겁쟁이처럼 미리 땡겨 걱정하고 초조해하며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던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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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몇 십 년 후에 노안이 찾아오면 책을 못 읽을까봐 걱정이에요. 제가 대학생 때 렌즈를 잘못 착용해서 시력이 심하게 나빠진 적이 있었어요. 안과에 검사를 받았는데 만약에 렌즈를 장시간 착용했으면 각막이 손상했을 거예요. 안경을 껴도 책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니까 정말 아찔했어요. 하필 그때가 시험 시간이라서 공부가 잘 되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시력이 회복되지 못할까봐 걱정만 했어요. 그 이후로 시력 건강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lanca 2015-05-17 10:32   좋아요 0 | URL
저도 렌즈로 각막이 손상된 적이 있어요. 사실 눈건강에는 안경만한 것이 없지만 아무래도 불편하기도 하도 잘 안 어울리는 경우도 있어서 렌즈나 수술을 고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건강한 눈, 좋은 시력은 당연시되면서도 조금이라도 손상이 오면 생활 자체를 흔드니 정말 중요하지요.

프레이야 2015-05-1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시력이 좋지않군요. 읽기중독인 사람으로선 몹시 불편하시겠지만 수술로 나아지신 듯하니 다행이에요. 저는 이제 노안이 오는 나이라 할 수 있지만 시력자체는 좋거든요. 시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는, 그래서 난 행복하단 생각이 들 때는 낭독녹음하고 나올 때에요^^ 눈은 좀 침침해져도‥

blanca 2015-05-17 10:3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부럽습니다. 지금은 좋은 시력으로 교정되긴 했는데 눈 자체가 고도근시 상황인 것은 같다고 해서 문득문득 걱정이 돼요. 원래 좋은 사람과는 다른 상황이니까요. 제발 할머니가 되어도 책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물고기자리 2015-05-1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 님이 투병 중이신 걸 몰랐네요. 아내를.. 이랑 색맹의 섬을 읽고 존경하게 되었었는데 안타깝기도, 더더욱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안그래도 요즘 새삼 눈의 고마움을 느끼며 다른 모든 것들처럼 언젠가는 시력도 상실될 거란 생각에 겁이 덜컥 났었는데 이래저래 마음을 더 키우며 살아야 겠습니다.. 책도 읽어봐야 겠어요.

blanca 2015-05-17 10:35   좋아요 0 | URL
아, 물고기자리님도 그러셨군요!! 올리버 색스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했는데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워요.

라로 2015-05-17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스틸 앨리스를 보며 적으신 부분을 생각했더랬어요. 지성적인 그녀가 치매라니,,,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리던 것을 하나씩 잃어가며 분투하는 모습,,, 더구나 책을 읽어도 계속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고,,,,,시력만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더군요,, 저는 막내를 낳고 급속도로 노안이 와서 이제는 안경이 없으면 책을 못 읽어요. 그래서 책을 더 안 읽게 되는 것 같은데,,,,저도 올리버 섹스처럼 비록 노안경을 쓰더라도 죽을 때까지 읽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래요. 오늘도 좋은 글,,고마와요. ^^

blanca 2015-05-17 10:36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저도 스틸 앨리스 보고 싶은데 아직은 아이가 어려 여건이 안 되어서 아쉬워요. 다들 많이 얘기하더라고요.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무너질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일상을 수습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 순간에 집중하며 항상 충만함을 누려야겠어요.

세실 2015-05-1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거나, 글을 쓸수 없다거나, 암에 걸린다면 청천벽력 같겠지만, 누구에게나 올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겨내는 긍정 마인드가 참으로 중요한듯요^^

가끔, 노안이 와서 책을 읽지 못할때 가장 서글프겠다는 생각해요. 저도 고도 근시인데 무서워서 수술도 못하고 지금까지 렌즈로 살고 있어요. 더 나이 들어 빙글거리는 안경 끼는것도 으악?

blanca 2015-05-17 10:39   좋아요 0 | URL
친구들이 이제 렌즈 대신 슬슬 안경을 다시 끼는데 그 모습도 이지적으로 보이던 걸요. 세실님도 잘 어울리실듯 해요. 그렇죠. 저도 다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죽을 때까지 그런 일들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요즘 절감합니다.

stella.K 2015-05-1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없던 시절 안경이 로망이었던 때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내 나이 정도면 노안들이 와서 안경을 낄 때
아직은 버티고 있는 게 감사할 뿐이죠.

어딘가 아프면 우울하기도 하지만 새삼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하게 되요.
그렇지 않아도 올리버 색스가 시안부 인생을 산다고 했을 때 지금 그의 마음은 어떨까
문득문득 생각해 보게 되곤 했죠. 역시 색스도 괴로워 했군요.ㅠ

눈 나빠질 것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오늘 책을 읽을 수 있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구요.
그때 되면 또 살아갈 놀라운 방법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눈이 버틸만 하다고는 했지만 예전 같지 않아 인터넷 폰트가 작은 글은 잘 안 읽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블랑카님 글을 제가 못 읽게 되더라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주세요.
가끔은 이렇게 읽는 답니다.ㅋㅋ

blanca 2015-05-17 15:02   좋아요 1 | URL
노안도 개인차가 있어서 삼십대 후반에 오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스텔라님 눈 좋으시군요. 부러워요. 저는 벌써 자간이 좁거나 글자가 작은 책은 피로해서 못 읽겠어요. 스마트폰을 너무 해서 그런지 걱정입니다.
맞아요. 제가 좀 걱정이 많은 유형이라 고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고마워요^^

2015-05-19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9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5-20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의 건강이 가장 염려됩니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쓰고 자료찾아 읽는게 직업이라서 라식은 꿈도 못꾸고 있구요.ㅎㅎ 대학교 1학년 때 100명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시작해서 4학년 때 맨 앞자리에서 졸업했네요.ㅎㅎ 무서워요.ㅎㅎ

blanca 2015-05-20 13:23   좋아요 1 | URL
제가 한 십사 년 정도 전에 수술을 할 때도 의사 선생님이 조언하시더라고요. 정말 정밀한 작업을 많이 하거나 눈을 많이 쓸 예정이거나 밤운전 많이 할 거면 권하지 않는다,고 신중하라고. 다 감수하고 했고 역시 시력의 질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게 미세하게 떨어지는 걸 느껴요. 그런데 성인 될 때까지 좋은 시력 유지하셨다가 떨어뜨리신 것은 정말 안타깝네요.

Nussbaum 2015-06-02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저히 렌즈는 불편해 쓸 수 없어서 그냥 안경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괜찮은 안경을 착용하고 있죠~ 문득 페이퍼를 읽으면서 어느날 아침 뭔가를 볼 수 없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상상하기 어렵고, 또 상상하기도 싫으네요. 전 시력이 -7디옵타 정도 되는데 가끔 안경만 벗어도 암흑 같습니다. ㅠㅠ


blanca 2015-06-03 13:09   좋아요 1 | URL
제가 -3디옵터일 때에도 거울 앞의 제 얼굴이 명확히 안 보였는데 Nussbaum님의 암흑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옵니다. 눈이니 가장 가치 있는 소비가 아닐런지요.

아, 이것저것 정말 흉흉한 뉴스가 너무 많네요. 그냥 편안하고 아무런 일이 없는 일상이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요즈음입니다.

[그장소] 2015-09-0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학생들이 안경을일찍쓰는걸보면 정말 속상하죠. 남일아닌까닭에.

blanca 2015-09-03 23:20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근시여서 더욱 예사롭게 보이지 않네요. 참 불편한 점이 많았거든요. 더운 여름 안경에 눌리는 콧잔등, 귀도 아팠고, 온도차에 따라 뿌옇게 김이 서리는 모습도 부끄러웠고요. 시력은 단순히 보이는 풍경의 선명함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장소] 2015-09-0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아직 얼굴형태도 다 안잡힌 어린애들이 두꺼운 안경을쓰고. 맨얼굴의자유를 모른다 하니 속상해요. 저는 난시가심한데 안경 쓰기 싫어라해서 . 그냥 밖에 나가면 죄일그러져 뵈는데 도. 바람이 닿는게 좋아서 걍다니고 그래요. 시력은 정말 그 사람 인상을 죄지우지하잖아요. 안경이 어릴때야 관심의대상인지 몰라도 커가며 얼마나 불편한지 , 단지 패션 이기만한
사람들 은 절대 모르죠. 그것까지 인상이 된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