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사수의 추천으로 김훈을 만났다. 나이는 세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그는 명철하고 기민해서 조직에 맞춤한 사람이었다. 냉정과 실리가 점령한 사회에서 상처받아
기우뚱하고 허우적대는 나에게 그는 창의력을 기르려면 책을, 특히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얘기했다. 촌스럽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당장 그 책을 샀고 꽤나 힘겹게 읽어 갔다.
솔직히 나는 그의 문장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수사도 거부한 채 문장 자체를 툭툭 휘갈겨 던져내 놓은
듯한 인상은 내내 불편했고, 현학의 과시마냥 쉽지 않았던 단어들의 조합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재미가 없어 숙제하듯 읽어냈고, 그 후 무슨 의무마냥 그의 신간을 사모았다.
간간이 그가 발표한 단편들은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그의 작품은 진중했지만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했던 <언니의 폐경>과 <화장>이었다. <남한산성>도 몰입하여 읽지는 못했다. <공무도하>에서 마침내
그의 그 건조한 문장은,그 몸으로 밀어내는 듯한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영들은,놀랍도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짧고 여전히 버석댔지만, 그 간결함과 그 응축의 미가 드디어 나를 향해
깨어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인용되어 거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그의 이런 문장.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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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이름이 주는 그 아련하고 섬세한 느낌이 문장에서도 그대로 풀려 나온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물론이고 과연 있을지 없을지 짐작조자 할 수 없는 내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의 전생과 , 그 나머지 모든 전생들까지도 아주 근사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줄줄이 비엔나 같은 표현기법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이미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약간 배신감을 느꼈다.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서려 있는 이 귀여운 문장도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에 열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의 어투를 닮게 된다. 이를테면, 을 자주 쓴다고 인터뷰했던 그의 기사를 읽고 다음날부터 나의 글들에는 부쩍 '이를테면'이 빈번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글을 쓰면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문장을 닮아가기 때문이란다. 실제 리뷰에는 흔하게 작가들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어휘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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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는 뒤늦게 읽은 <외딴방>을 더 좋아한다. 초기작인데
오히려 후속작들보다 문장들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떨었다.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생각했던 바로 그 대목이 언어로 명징하게 떠오르는 순간, 바로 이거였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녀의 문장은 섬세하고 유려하고 시적이다. 한없이 보드라운 그 속살에는 문학 소녀의 여린 감수성이 향수처럼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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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우리 모국어가 담아낼 수 있는 그 수많은 사연들의 응축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놀라웠다. 수많은 사연, 광경을 그려낸 문장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빛나는 시의 어구 같았다.  

햇빛이 교장 선생님의 안경을 가로지르고 그 뒤 흑판에 아아아아아아 떨며 금을 긋고 있었다.  

낫을 벼리듯이 치열하고 처절하게 다듬어 내어놓은 문장은 그 자체로 작가들의 투혼을 발산하기에 찬란하다.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허섭쓰레기들을 반드르르하게 치장만 해서 호사스럽게 내놓았을 때 그것에 대한 공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자신의 삶을,혹은 다른 그 누구의 공감하는 삶을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의 매개의 중추에 놓여 있는 언어를 화해시키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은 영원히 끝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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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0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페이퍼에요.
다음블로거특종으로 밀어요.^^

blanca 2010-01-02 22:58   좋아요 0 | URL
'멋지다'는 그 얘기를 순오기님한테 들으니 기분이 차암 좋아요^.....^

승주나무 2010-01-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와 그녀의 문장들 만큼이나 블랑카 님의 문장 역시 멋집니다. 제가 장담하죠. 앞으로는 원전이 아니라 원전의 해석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저자가 아니라 리뷰어들의 네트워크가 사회적 파장을 더 줄 수 있는 것처럼. (아직 그 수준은 아니지만)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을 소화해서 자기 방식으로 퍼다 나르는 아마추어 활동가들이 세상을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가지세요. "창의력을 기르려면 책을, 특히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 사수의 충고가 몹시 고마워 보입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충고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창의력이라고 하는 것은 창의력만 빼서 볼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 경제, 문화, 철학, 일상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모두 던져줄 수 있는 소설작품은 말씀하신 리스트가 견디기는 어렵고 고전소설이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의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떠받칠 수 있는 힘은 인문사회 자연과학 서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초면에 말이 무척 길고 가르치려고 한 점은 죄송합니다. 댓글도 달아주시고 글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오버를 좀 하고 갑니다^^

blanca 2010-01-03 22:4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의 댓글을 두 번 읽었습니다. 승주나무님의 얘기가 구구절절이 와닿네요. 안그래도 소설에 편중된 독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곁가지로 인문사회서적들을 읽지만 그 이해의 폭이 너무 협소합니다. 정작 다 읽고나도 승주나무님처럼 누군가에게 풀어 나의 해석, 감상과 설명이 도통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은 토론이나 공부의 형태로 병행이 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리뷰어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님의 장담은 저를 가슴뛰게 하네요^^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하고 해석 비판만 하는 것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승주나무 2010-01-0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워서 몇 자 더 적고 갑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읽는 것과 쓰는 것을 함께 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요? 오랫동안 이 부분을 고민했어요. 책을 읽고 나면 모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니까 자꾸 페이지를 넘겨 보게 되고 그러면 생각을 또 놓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독서메모장 같은 것을 끼워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저의 경우는 세 가지로 구분하죠. 검은색 볼펜은 내가 요약한 부분, 파란색은 직접인용한 부분, 빨간색은 나의 그때그때의 감상. A4를 반으로 접으면 책에 대충 들어가더군요. 독서에 시간은 좀 걸리지만 메모의 힘은 글을 쓸 때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해 주고 나름대로 독서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엑셀에 DB화를 하고 있어요. 2. 알라딘에서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강좌를 열었지요. 저는 알라딘 마을의 분위기라면 저마다 자신 있는 주제를 가지고 와서 발제를 모으는 식으로 서재지기 토론회 같은 것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앞으로 공부해보자는 분위기가 더 만들어지면 실제 성사도 가능할 듯해요. 이렇게 댓글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피드백은 블랑카 님의 개운치 않은 속을 해소해주는 강력한 효험이 있답니다^^

blanca 2010-01-03 23:35   좋아요 0 | URL
실시간입니다.^^ 책갈피 대신 승주나무님의 방법을 따라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옛날 읽는다는 것에만 집중하던 시절 읽어치워낸 책들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도 심지어 읽었는 지도 모르는 책들이 한가득입니다. 이런 독서는 근시와 교묘하게 잘난 척 하는 기술만 키워준 것 같아요. 알라딘 마을에 와서 부쩍 크는 느낌이 소중합니다. 승주나무님께 종종 질문도 드릴께요^^
 

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줄 거예요!
두둥.  두 돌 딸아이는 문화센터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열린 문에서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어설프게 뒤집어쓴
산타 복장에서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황급히 백에서 작은 쇼핑백을 빼내어 딸아이 앞에서 선생님께 건네었고(이것부터가 무성의했다.)
선생님은 그 쇼핑백을 옆의 산타학생에게 건네었다.
솔직히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내가 쇼핑백에 성의없이 집어넣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딸아이의 작은 눈사람 인형이었고
아직 뭘 잘 모르거라는 단견은 딸아이가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것을 만나서 되레 반가워할 수도 있을 거라는
비겁한 자기기대였다.
나와는 달리 다른 엄마들은 준비가 호사로웠다. 특히나 딸아이가 한창 빠져있는 뽀로로 관련 장난감들이 전문 포장인의
손길을 빌린 듯 화려한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건네졌다. 그 때마다 딸아이는 고개를 쭈욱 빼내어 자신이 누릴 기쁨과
미리 비교해 보는 듯했다. 이윽고 어색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산타학생이 건넨 쇼핑백에서 자신의 눈사람을
발견하고는 딸아이의 얼굴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슬픈 표정들이 지나갔다.
예쁜 드레스를 갖춰 입고 값비싼 뽀로로 장난감을 안고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하필이면 치수도 안맞는 길거리표 청바지
속에 싸여 있던 작은 아이는 얼굴 가득 실망감과 무언가 속았다는 듯한 느낌을 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아이를 나처럼 감정과 인격을 가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못했다.
그저 눙치려 들면 다 속고 넘어가 주는 어린 나의 부속물 정도로 여겼나 보다.
 

엘리베이터 안에 하필 값비산 뽀로로 장난감과 에디 인형까지 안고 같이 탄 사내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우울해 보였다. 그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간 출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작은 나의 아이는
집에 가려들지 않았다. 대신 울먹였다. 자신의 감정을 또박또박 표현할 수 없는 그 한계 속에서 나의 아이는
울음으로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어. 엄마는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나의 장난감으로 나를 속이려 했어.
집에 오는 길에도 딸아이는 계속 뽀로로 트럭 타령을 했다.
아빠가 사줄거라고 다둑거리자 기사는 여자아이는 트럭 같은 거 가지고 노는 거 아니라고 한 마디 거들어 주셨다.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에는 아이들의 선물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혹시나 해서 택배 온 거 없냐고 확인하는 와중에
딸아이는 자신의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드디어 길바닥에 드러누워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울음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 당시도 나는 딸아이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 부끄러운
상황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우격다짐으로 아이를 끌고 왔다. 집에 와서도 아이는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부모는 때로 자식을 존중하지 않고 부리려 한다. 유년시절 너무나 아꼈던 뽀송이라는 원숭이 인형을 헤졌다고
우리 자매에게 얘기도 안하고 버린 엄마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기억은 이미 저 한켠으로 밀린 듯 나는 그런 어른의
배려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떤 것은 목숨만큼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몫은 부모의 것일테다.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갖고온다는 그 기대로 몇 달을 산 아이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대신 건네준
엄마는 어쩌면 어른이 되서도 용서가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정말 미.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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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5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12-2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삼남매에게 이거 읽어주며 울었어요.
우리 애들도 '너.무.해' 라고...

blanca 2009-12-25 22:41   좋아요 0 | URL
정말 너무하지요?--;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순오기님과 삼남매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계시나요? 여기는 펑펑 눈이 내려서 딸애를 안고 눈구경을 시켜주었답니다. 눈을 보더니 "조오타~"고 하네요 ㅋㅋㅋ 예쁜 선물로 용서를 빌어야 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blanca님도 마음이 많이 쓰이셨겠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부러움을 느끼며 살아가기 마련이니,
한편으로는 유년때라도 온전한 기쁨을 주어야지 싶기도 하다가,
그걸 이길 힘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blanca 2009-12-28 12:59   좋아요 0 | URL
살다 보니 생명 하나를 온전한 사회의 성원으로 제대로 키워내는 게 참 얼마나 힘들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참 벅차다는 생각을 해봐요. 저도 어린 시절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엄마 역할이라는게 공부하듯히 일하듯이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휘모리님 일본 여행기 구경갑니다. 휘리릭~

진달래 2009-12-3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넘 속상한...
아이의 마음도 그걸 보는 엄마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니 아이가 금방 마음을 푼 모양이군요.
넘 다행이네요. ^^;; 행복하세요~

blanca 2009-12-30 20:57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의 댓글만으로 벌써 행복해졌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완서의 '미망'을 읽으며 간간이 질러 놓은 책들은 각종 사정으로 더듬더듬 집을 찾아 오지 못하고 있었다. 
판매자의 사정으로, 혹은 배송폭주로, 이제 '미망' 下권을 집어들며 백만년 만의 홀가분한 일요일 외출에 동행할 책인
'롤리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폭발하고 말았다. 

분명 22일 그렇게나 위무도 당당하게 연거푸 두 번이나 문자로 오늘 배송될 예정 어쩌구 저쩌구 하며 설레발 치던
그 위용은 간데없고 오후에는 급기야  경비실로 갔다고 그러더니 이틀에 걸쳐 경비실이며 택배사한테 전화도 하고, 심지어 소화전까지 열어보며 그 책의 행방을 모색했는데 간 곳이 없었다. 평소 택배 기사 욕하는 재미로 스트레스 푸시는 경비아저씨께서는 심지어 택배기사 훈련좀 시키라는 말까정 하시며 혼자 열이 올라 괜히 신이 나시고. 남욕할 때는 왜 있잖은가. 갑자기 의욕충천하여 생동하는 그 느낌. 그래서 뒷담화는 계속되나 보다.  

약속시간 강박 같은 것이 있는 나로서는 항상 약속장소에 홀로 당도하기 마련이라  텅빈 시간을 우두망찰 허공에 혹은 사람들에 시선을 던지며 분침이 스치고 가는 그 허무한 공백으로 가슴까지 뻥 뚫려 버리는 듯한 느낌을 못견뎌하다 결국 십분이나 혹은 삼십 분 정도 늦는 친구들의 지난 날들 나를 서운하게 했던 일까지 더듬게 되는 병폐를 가장 못견뎌한다. 약속 늦는 친구들만 그것도 심지어 한시간 늦고도 되레 큰 소리 치는 배짱이 두둑한 아이들로만 선별해서 그러안고 있는 나의 인간관계도 그닥 평범하진 않지만, 고로 책이 꼭 있어야 한다. 책 없이 길을 나서다 보면 더불어 자꾸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혹은 흘려 버리게 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악취미까지 있으니.  이런 나에게 위의 두 책은 심부름 보낸 다섯살 사내아이처럼 이리 저리 참견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엉뚱한 짓만 하다 빈 손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아니, 그마저도 아닌게 오지도 않고 있으니 나를 부대끼게 하고 있다. 자꾸 오지 않은 녀석들을 더듬다 보면 새로 불러들일 녀석들이 괜히 치일 것 같아 주춤주춤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안왔다. 남한테 항의하는 것에 울떡증이 있어 잔뜩 날선 각오까지 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하자마자 괜히 막 흥분하여 단어들 지들끼리 막 서로 엉키는 와중에 "고객님, 주소가 서울시 동작구........ 맞으시죠?"에 뻥 터졌다. 거기는 나의 친정집 주소다. 그렇다. 배송지에 떡하니 친정집과 부재시 엄마 이름까지 써논 주소를 선택하여 입력해 놓고 안온다고 난리난리 치며 괜히 택배사들의 배송날짜 맞추기 강박의 희생자인 것처럼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드는 연극 무대에서 내려오며 나는 자아성찰을,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이 솔직히 두번째다. 롤리타는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천대 받으며 웅숭그리고 있겠지. 아놔, 나 어떡해야 되는 거얌? 그리고 제발 토요일까지 최영미의 책만큼이라도 왔으면 싶다. 그리고, 연말이 가기 전에 되도록이면 참으려고 했는데 다시 책을 한 권 더 사야 될 명분을 얻었다. 친정 부모님보고 '롤리타' 들고 오시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나저나 자기 계발서로 책장 한 칸을 다 채우고 뿌듯해하시는 아버지가 나의 '롤리타'를 펼쳐 보시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김영하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는 원전을 뛰어넘는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것을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에 빚진 바가 크다. 그의 번역은 원전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남이 써 놓은 이국의 언어들을 자신의 언어에 맞춤하게 대응시켜 펼쳐내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다. 고통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이덕일의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엄청난 재력가 집안에서 거의 재산 전부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써버리고 여섯 형제들까지 바친 드라마틱한 얘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천상의 별처럼 누군가는 그 별에 손을 뻗쳐 그 눈부심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처럼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위 두 권을 연말 마무리용으로 데리고 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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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2-2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군요.
아 잘어울린다. 이젠 나이든 김영하지만 그의 문체는 젊음과 잘 어울리는 짝인듯해요. 저도 가지고 싶네요.

blanca 2009-12-24 22:40   좋아요 0 | URL
오늘 한겨레21을 보니까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가 재미없게 읽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나오네요. 그렇담 그만큼 번역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니까 기대해 보아요^^
 

화가 세잔과 소설가 에밀 졸라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의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전학온 에밀 졸라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자
세잔이 종종 에밀 졸라의 편을 들어 사태를 해결해 주어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에밀 졸라가 사과 한 바구니를
선물하는 것으로 그들의 우정은 시작된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뒤집어져서 에밀졸라는 <목로주점> 등으로 유명 작가의
길을 걷게 되고 화가 세잔은 그리 큰 명성을 얻지 못하게 되고 만다.
한편 에밀졸라는 세잔의 정물화에 대한 열중을 폄하하는 얘기로 세잔의 기분을 상하게 하다 결국 <작품>이라는 소설에서 자살로 마감하는 비참한 화가의 생애를 그림으로써 세잔과 완전히 절연하게 된다. 세잔은 이 화가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그것에서 더 나아가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혹적인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글이, 자신의 목소리가 혼자만의 고독한 중얼거림에 그치고 마는 결론에 남는
그 미진한 아쉬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기 고백의 장인 일기장마저 때로는 누군가 읽을 것을 의식하며 문장을 다듬고 고백의 강도를 낮추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글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 재생산 되었을 때 그 글이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의 생명으로 꿈틀대고, 나름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변환 또는 변질되었을 때, 물론 긍정적인 영향으로 귀결되었을 때는 제외하더라도, 어느 사람의 가슴의 가장 연한 부분을 뚫고 상처를 남기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말로 남긴 상처와는 달리 글로 남긴 상처는 세기를 뛰어넘어 남는다, 는 얘기는 무서운 전언 같다.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내뱉는 글보다 어쩌면 내러티브를 통해 구성되는 소설적 장치가 더 무서운 파급력을 낳을 수도 있다.
허구라는 장치 속에 마음껏 자기 고백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 모호성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은 소설 속에서
깐죽거리는 친구 지희가 마치 자기를 얘기한 것 같고, 빌빌대며 주인공 주위를 맴도는 호식이 얘기가 자신의 삶 전반을
부정하고 비난한 것이라고 속단해 버린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지적은 그 명쾌함과 명료함이 규정지어 주는 그 어떤 확실성때문에 차라리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 쉽다면, 모호하고 광범위한 터치는 모두를 쓸고 갈 수 있는 붓처럼 더 위험하고 도발적이다. 

바로 너야,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위보다
나랑 닮은 어떤 사람의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 나에게는 더 견디기 힘든 확인사살인 것이다. 
이것은 내 삶에 대한 심판과도 같다. 과거와 오늘에 대한 설명과 해석은 감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를 견디게 해주는
미래까지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무서운 예고 속에 나의 전체를 옥죄어 버리는 행위로 증폭될 수 있다.
글쟁이가 되는 것은 특히나 소설가가 되는 것은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어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인물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행위는 상상력의 풍요로움 속에 현실을 망각할 수 있는
호기일 수도 있지만, 나를, 나의 삶을 어떤 틀 안에 넣어 섣불리 규정지어 버리고 마는 낭떠러지 위로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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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2-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그 유명한 얘기를 몰랐을까요! 잘 읽고, 또 제 무식함에 좌절하고 갑니다. ㅎㅎ

blanca 2009-12-21 13:19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라디오에서 들어 알았는 걸요^^ 이 우정에 얽힌 사연이 참 의미심장하더라구요.

순오기 2009-12-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좋은 글을 써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에밀졸라와 세잔의 우정은 그게 한계였군요.

blanca 2009-12-24 16:59   좋아요 0 | URL
우정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어렵고도 힘든 부분이 상대의 성취에 진정한 박수를 보낼 수 있는가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 지점에 한계가 생기는 것 같구요. 유명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순오기님 크리스마스 행복하게 보내세요!

노이에자이트 2009-12-2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을 통해서 복수하고픈 마음을 자제해야 한다는데 역시 작가들은 그런 유혹을 벗어나기 힘든가 봅니다.서머싯 모옴<면도날>에는 헨리 제임스를 요상하게 그려서 논란이 있었죠.

blanca 2009-12-28 21:31   좋아요 0 | URL
아, 면도날 읽으셨군요. 읽고 싶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잊고 있었네요. 반갑습니다.^^ 작가도 인간이니까요. 사람은 결국 본질적으로는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12-28 23:39   좋아요 0 | URL
모옴이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가 있었는데 <면도날>은 인기가 없지요.에밀 졸라도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없는 편입니다.

blanca 2009-12-29 12:28   좋아요 0 | URL
일단 모옴 책은 재미가 있으니까요. 달과 6펜스 완전 축약 번역한 거 고등학교 때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명작 축약본이라니 경악스럽지만서도. 에밀 졸라는 사실 저도 목로주점이 목로주검인줄 알았을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런데 노이에자이트님이 우리나라라고 하니까 괜히 외국 같이 들려요.

노이에자이트 2009-12-29 16: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우리나라에선 <달과 6펜스>가 인기있죠.그다지 두툼하지도 않고.이 소설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대서 화제가 되었구요.사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인간의 굴레>는 읽기엔 꽤 길죠.
목로주검...음...
실제로 독어는 거의 못하는 수준입니다.독일사,독일소설을 읽는 편이라(물론 번역판) 제가 독어를 잘한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가수 호란이 인터뷰중 마구 칭찬해 준 덕택에 읽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에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까지 수여받은 그의 냉철하지만 다정다감한 시선이 너무 좋아 닥치는 대로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신경외과의사인 그는 주로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통해 결함,장애, 질병이 개개인에게 어떻게 역설적으로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갑자기 눈이 멀어도, 반신불수가 되어도, 기억을 잃어버려도 그들의 혹은 우리들의 삶은 비관적인 상상과는 다르게  변화 진보해 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화성의 인류학자'에서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연장선상에서 임상사례를 통한 그의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꾸려가는 삶에 대한, 명쾌한 긍정은 계속된다. 다만 후자가 약간 임팩트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색맹의 섬'은 일종의 여행기다. 전색맹과 신경퇴행장애가 풍토병화되어있는 미크로네시아를 두 번 방문한 기록이다. 사적인 감상과 과학적인 성찰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양치식물, 소철에 대한 지질학적 이야기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수전 손택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려있는 해설에 차용된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대중문화계의 퍼스트레이디'(이런 거 보면 미국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관념적이고 선정적인 범주 안에 가두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문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심미가에서 더 나아가 조국인 미국의 패권주의를 용기있게 고백하고 성토하는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진화했다. 그녀의 문장은 현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재조합되어 평범하고 무딘 사람들의 감수성을 일깨운다. 어려운 내용일 것도 같은데 그녀의 펜에서는 명쾌하고 간결하게 재해석되어 나온다. 가독성이 좋다. 

일종의 사회 제반 현상에 만연되어 있는 정서에 대한 통찰로 집약되는 내용들이다. '타인의 고통'이 좀더 읽기 쉽지만 이제까지 타인의고통을 은연중 즐기고 있었다는 못된 관음증을 깨닫게 되는 불편한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연민으로 연결되지 않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그 불편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사회에서 펼쳐지는 거대 담론의 중심에 도사리고 있는 그 헤게모니를 질병(결핵, 암, 에이즈)에 붙이는 각종 표식들과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다. 실제 암투병을 여러 번 하였던 그녀는 암이 생각만큼 무서운 병이 아니라 그 병에 걸린 사람에 낙인을 찍는 사회의 횡포가 더 무서운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후에 그녀의 투병기에서는 이것은 일부 수정된다.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그녀의 죽음 앞에서 펼쳐진 그녀를 둘러싼 풍경과 그녀의 그 처절한 투쟁을 담담하게 회한에 젖은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사실 수전 손택이 절대로 평범해지지 않을거라 절규했던 그 장면이 끊임없이 오버랩되어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추스려야 할 만큼 그녀답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녀는 끝까지 죽음과 불화하다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번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과연 삶을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사는 것과 결국 오고 말 죽음과 화해하고 평화스럽게 가기 위해 조금 덜 집착하고 더 포기하는 것이 나은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나 경멸했던 타인의 고통에 대한 뻔뻔한 연민과 연루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연결은 우리도 공통의 그 피할 수 없는 종결을 공유하고 있다는 자각의 고리가 있기에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따라온다. 유명인의 최후에 대한 선정적인 보고가 아니라 데면데면해서 더 담백했던 그 모자 관계 만큼 투박하지만 진지하고 특별한 책이다.  

 

기억은 이미 죽은 사람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라고 그녀는 말했지. 우리가 그녀를 기억하는 한, 모든 제반 현상의 가운데에 있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책임감 있는 연민을 가졌던 그녀와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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