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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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열네 살, 스무 살, 때로는 나이조차 기억나지 않는 태초의 것만 같은 기억들.

다시 나는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마흔의 철책 앞에 선다.

스무 살은 꿈꾸었지만 서른은 실감나지 않았고 마흔은 차마 상상해 내지도 못한 나이.

이제 나는 쉰도 되고 환갑도 되고 고희연도 치를 수 있기를 서글프지만 현실적으로 소망한다.

나도 늙고 늙어가고 있고 더 늙어가다가 마침내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이제는 실감한다.

삶은 스무 살이 세계 전체를 포박하고 내가 딛는 발자욱이 그려내는 지도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배워가는 과정과

다름아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이 추연한 제목 아래 처절하게 인간의 늙어감과 그것의 종말을 기술한 저자의 도저한 탐구, 모색이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못지 않은 울림을 자아냈다. 순간 아연해졌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그 어떤 위로도 위장도 에두름도 없는 그 직설적인 산재한 진실들에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모순과 덧없음과 역설에 지는 것인지를 동의해야 하는 과정임에도 저자 장 아메리의 그 담백하고 처연한 문장들에 절로 목울대가 울렸다.

 

그 앞에서 '늙어감'은 그저 세계와 환상을 잃어가고 죽음이라는 도저히 풀길없는 하지만 자명한 역설의 진리로 한 걸음씩 내딛는 초라하고 처절한 행보다. 성숙, 세계를 보는 시선의 확장, 관용, 성숙의 휘장은 그의 예리한 언어의 칼날로 난자 당한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늙어가며 죽음으로 행진하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A의 시선이 관통하는 그를 둘러싼 세계들, 그리고 그것에서 밀려나며 자신이 쌓아온 시간들로 향햐는 시선들의 흐름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다. 실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선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가 있다. 장 아메리는 자신이 실제로 만지고 느낀 것들을 충실히 자신만의 언어로 쓰다듬고 훓어내어 흩뿌린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천착했던 속물성이 횡행하는 사회의 실체는 장 아메리 앞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우리의 고향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소유의 세계이며 소유가 있어야 사회적 연령을 부여받는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의 늙음의 결이 사회가 부여하는 소유의 위계를 따라 스며듦을 간파한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도 우리는 사회적 연령의 심판 하에 쌓아놓은 재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이렇게도 희망을 깨부수는 이야기들. 한마디로 '늙음'과 '나이듦'은 인간이 직면한 '죽음'이라는 그 불합리하고 역설적인 모순의 마침표로 규정된 '존재'와 얽혀 하나의 '무의미'로 회귀해 버린다. 실제 장 아메리는 오십 대 중반에 이 저술을 하고 십년 뒤가 지나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텍스트를 위해 산화해 버린다.

 

A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

-p.211

 

A는 다름아닌 장 아메리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해냈다. 하지만 그의 인간의 삶에 대한 그 가차없는 메마르고 명징한 통찰은 또 다른 역설과 만난다. 찰나의 경건함. 그것이 꼭 대단한 의미와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날들이 쪼그라들며 비틀어지고 지나간 나날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므로 '지금', '여기'가 가지는 무게는 한층 더 한량없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보는 거울에서 나의 얼굴은 빛을 잃었지만 벚꽃비를 맞으며 향그러운 그 덧없음을 향유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가 오십 대에 마침내 육십 대에 얻은 깨달음과 사유가 삶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 밀고 나간 것이라 할지라도 남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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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4-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고 생각하면 늙으니,
`새롭게 새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면
나이가 드는 아름다움으로 가리라 느껴요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처럼 그렇게 나이들어 가야겠어요.

yureka01 2015-04-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고맙게 읽었습니다.....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시간 내서 읽어주신 게 감사하죠^^

라로 2015-04-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홀릭 리뷰 얼렁 써주세요~~~~ 안그럼 데모 할래요~~~~~ㅎㅎㅎㅎ

blanca 2015-04-10 13:58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솔직히 제가 그 책은 리뷰를 못 쓸 것 같아요.
피아노에 대한 소양이 부족해서 저자 설명 따라가기도 바빴어요.
저도 어렸을 때 레슨 받고는 최근에 다시 학원을 다니다 그만 둔 상태인데
아무래도 성실하게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다 새롭더라고요.

프레이야 2015-04-1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살한 작가군요. 죽음으로 귀결하는 우리삶의 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blanca 2015-04-20 13:33   좋아요 0 | URL
아... 언제나 `죽음`은 참 어려운 문제예요. 장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요.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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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먼로에게는 단편만을 쓸 수 밖에 없는 데에 대한 일종의 무력감이 있었지만 트루먼 커포티는 단편이 현존하는 산문 중 가장 어려우면서 절제된 형태라고 칭송했다. '단편'은 분량의 압축 뿐만 아니라 고도의 응축이 일어나야 공간의 한계를 이길 수 있다. 자칫하면 회색 지대에서 부유하기 쉬운 형태, '삶의 이야기'는 멈칫하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해야 비로소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 고 한다면 <환상의 빛>의 미야모토 테루는 빛난다.

 

바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파도의 잔물결이 빛을 받아 반짝이며 <환상의 빛>의 어제 서른두 살이 된 그녀의 시아버지가 "멀리 있는 사람을 속인다."고 이야기한 그 한순간 꿈을 꾸게 하는 불온한 잔물결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어서다. 젖먹이를 두고 전차 선로 위를 스스로 걸어나가 죽어버린 남편에게 하는 혼잣말들. 그녀는 이미 쇠락한 어촌의 '새 남편' 곁이다. 이 이야기 안에는 죽은 남편, 재혼한 남편과 함께 하는 환상의 빛이 떠도는 바다, 그리고 '가난'에 사무친 어린 시절, 그 속에 노망 난 할머니의 가출이 수시로 교차하고 어긋나며 젊은 여인의 신산하고 처절한 삶의 근저에 있는 '존재'와 '삶'에 대한 이해의 비말을 분출한다. 그녀가 수시로 자문하는 남편의 자살의 이유는 구태여 정확한 '답'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와 함께 했던 삶을 해석하고 현재의 삶에 통합하기 위한 작은 여인의 몸부림이다. 보여지는 그녀의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전남편의 죽음과 비로소 화해하는 그녀의 '찰나'는 이 작품의 아름다운 마침표다. 마치 한 편의 정제된 산문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이제 곧 쉰이 되는 아야코는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다 일년 전에 아들을 사고로 잃게 된다. 하숙을 치려 했던 아들 방에 하루 묵겠다고 다짜고짜 온 청년이 다시 갓 결혼한 아내까지 데리고 왔을 때 그녀는 황망함에도 그들을 내치지 못한다. 가난한 신혼 부부가 벚꽃이 보이는 곳에서 소원대로 아늑한 초야를 치루는 건너편에서는 그녀가 밤새 밤 벚꽃에 몸을 담근다. <환상의 빛>의 어제 서른두 살이 된 그녀가 암흑의 바다 위를 떠도는 환상의 빛을 보며 알 수 없는 환희를 느꼈듯이 <밤 벚꽃>의 아야코는 꽃비를 맞으며 표현하기 힘든 찰나의 깨달음에 몸을 떤다. 비애를 머금은 환희는 아마도 우리 모두의 삶의 동력 그 자체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불량했던 친구의 여자 친구를 만나러 떠나는 원정에 동행했던 모범생은 지금 불륜 행각의 가운데에 있다. 우연히 그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그는 그 시절 그 친구의 비행의 세계에서 도망쳐 오며 느꼈던 당혹감과 지금도 무관하지 않은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다. 어둑시근한 그때 우연히 봤던 <박쥐>의 모습과 소리는 지금의 축축한 '낙엽'위에 다시 돌아온다.

 

마지막 <침대차>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무엇보다 '미생'의 직장인들의 처절한 생의 고투 현장 한복판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가 절창이었다. 기계 제조업에서 어쩔 수 없이 영업까지 해야 하는 주인공의 곁에 어느새 파트너로 상사로 내려 온 그가 사무실의 석양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은 침대차 동승객 노인이 한없이 흐느끼던 그 어깨와 닮아 있다. 뒤켠에는 누구나 나약하고 작은 인간으로 생의 가혹함을 밀고 나가며 살고 있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삶 전체를 목격한다. '나'는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친구를 우연히 사고로 잃을 뻔한 기억이 있다. 친구와는 그 일로 소원해지고 그 친구는 그렇게 힘들게 목숨을 건졌건만 젊은 시절 다른 경로로 어처구니없이 죽어버린다. 부모가 없는 그를 키워냈던 친구의 할아버지를 병원에서 환자 대 의사로 만나며 '나'는 회한에 잠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가 여기 발을 딛고 있는 생의 격류. 도시락을 먹으며 출장지로 향하는 기차 안의 담담한 '나'의 모습은 내가 또 그렇게 틈새에서 살아나갈 것임을 예고한다.

 

구체적인 것과 단정적인 것과 멀어지면 보이는 것들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들 속에 갑자기 아연해져 버렸다. 이 사람은 무언가를 알고 있구나, 하지만 그것을 선뜻 다 꺼내 보여주지는 않는구나, 그리고 그 신중한 몸짓 이면에 간직한 것들이 언뜻언뜻 속살처럼 내비칠 때 우리는 그만 쓰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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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5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26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2-2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리뷰를 보면 ˝리뷰는 이렇게 써야 하는데˝란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끝맺음을 특히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 리뷰 쓰는 게 갈수록 어렵더라고요. 줄거리를 조금은 얘기해야겠는데 스포일러를 주면 안되고.저도 님처럼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어요 그런 건 타고나는 걸까요ㅠㅠ

blanca 2015-02-26 17:3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도 아마 저만의 편견, 아집 같은 것들로 작가의 작품을 작가 의도와 다르게 파악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저는 스포일러를 너무 많이 주는 듯해요. ^^;; 그 부분도 고려를 해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15-03-02 22:30   좋아요 0 | URL
아네요 블랑카님 리뷰는 스포일러 거의 없어요 읽고싶을 만큼만 살짝 보여주는 그런 멋진 리뷰에요

Nussbaum 2015-02-2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결하면서도 의미있는 리뷰, 다른 일 하다가 좀 머리가 복잡해져서 blanca님 서재에 들렸는데 머리를 정리하고 갑니다.
마침 이 책도 관심있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고 생각도 하고 말이죠~

blanca 2015-02-26 17:40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참 좋더라고요. 원래 여행지에 들고 가기만 했는데 의외로 거기에서 흠뻑 빠져 제법 읽고 왔어요. 분명 태어나는 작가, 태어나는 작곡가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여전히 놀라고 감탄할 것들이 있다는 게 새삼 참 기쁘네요.

2015-03-0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1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1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한성에 관한 사유들
빅터 브롬버트 지음, 이민주 옮김 / 사람의무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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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책을 소장하는 데에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살아 온 시간 만큼만 더 살면 어쩌면 나는 너무 노쇠해서 그 책들을 다읽지 못할 수도 있고, 이런 상상은 지극히 슬프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 처분에 대한 번거로움이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에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막무가내로 욕망하고 쌓을 나이의 능선은 이미 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내가 죽는다','나의 삶이 유한하다'는 명제를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도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나는 영원히 이 계절의 순환을 볼 수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냄새는 때로 가슴에 아린다. 그럴 때 듣는 이러한 얘기는 좀 더 경청할 수 있다. '유한성에 관한 사유들'은 과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의 비교문학과 석좌교수. 그는 두 세계대전 사이에 태어나 실제 전쟁에 참전했고 함께 살아 남았던 동료들이 그를 제외하고 다 죽어버릴 만큼 나이가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삶의 유한성'을 의식했고 최근에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 만큼 더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 게다가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어 "우리의 무존재를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예술 중 특히 문학을 연구하고 강연한 세월이 사십 년에 이른다. 저자 빅터 브롬버트는 19,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 여덟 명의 작품들을 원어로 읽고 그들이 천착했던 삶의 유한성을 그들의 개인 이력과 그들의 언어와 조우하는 지점에 중개자로 선다. 대단히 신중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보물찾기할 때 아주 꽁꽁 숨겨 둔 보물 만큼이나 쉽게 찾을 수 없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처럼 그도 1인칭이 아닌 3인칭의 서술 시점에 서 있음으로써 이야기의 일반화에 성공했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다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미덕이다.

 

톨스토이, 카프카, 카뮈, 버지니아 울프,  조르지오 바사니, 쿳시, 프리모 레비. 구태여 그들을 다 알지 못해도 그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친절한 노교수의 강의는 가슴을 파고든다. 읽었다면 혹시 읽고 있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이 군데군데 있다. 왜냐하면 독서는 기본적으로 고독한 일인데 친절한 안내자가 내가 헤매거나 의아해하는 대목, 한 조각 꺼내어 주머니에 넣어 버리고 싶은 부분들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어 언어로 풀어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고찰을 죽음에 대한 묵상이나 암흑의 세계에 대한 집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맞닥뜨린다는 건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전히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인간의 유한한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도덕적인 고민을 한다는 뜻이다.

-에필로그 중

 

저자가 매료되어 있는 몽테뉴의 관심사는 본질이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이행'이었다는 것, 스스로를 "나는 지나감을 그리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것은 저자가 여덟 작가들의 작품과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과 만난다. 결론, 본질, 이데올로기, 관념이 해체되고 남은 모순, 흔들림, 스러짐에 대한 천착이 눈부시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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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간과 관련된 문화사나 과학 분야 도서를 읽는 중인데 우리에게 딱 주어진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비록 유한성의 한계가 있더라도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blanca 2015-02-18 09:17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 님은 충분히 젊고 또 제가 그 나이 때 낭비한 시간들을 생각하면(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님의 독서의 깊이와 넓이가 참 부러워요. 저도 `시간`에 관련된 책 참 좋아해요.

2015-02-1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8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2-1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글도 잘 쓰시지만 제가 느끼는(블랑카님의) 장점중 하나가 성실하시다는 거에요!!!
이 책 읽으시고 계시다고 북플에 올라온 것 봤는데 벌써 읽으시고 이렇게 멋진 리뷰도 쓰시고!!^^

blanca 2015-02-18 09:18   좋아요 0 | URL
비비아롬나비모리님, 흑, 제가 추구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오늘 아홉 시에 일어나버리고 말았어요. 지금은 망연자실, 황당 모드랍니다.--;;

세실 2015-02-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권의 책을 읽기전 또는 읽고 난후, 친절한 안내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공감하는 부분이 참 좋더라구요~~

유한한 생!
요즘은 그저 아이들이 잘 커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네요. 제 삶보다는....

blanca 2015-02-18 09:21   좋아요 1 | URL
아이들 잘 커 주는 게 이게 참 너무 많은 변수와, 나의 희생과, 각종 주변 여건의 도움이 필요한 거더라고요.
아직 아기인데도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예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장소] 2015-03-2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겨울나기전..책을 근근히 사 정말 볼정도만 사보던 제가있고..겨울나고선..
책에대해선 생각..아..이책들을 다봐야 죽을 수 있을 거같아..랄까요.
그 전엔 당장이라도 정리될 수있게 최소한의 ..살림늘리기를 주저한 반면..지금은 변했죠.남겨줄게..책밖에 없어도..그러면 놓겠다고.그럼 어떻겠냐고..

blanca 2015-03-30 10:16   좋아요 1 | URL
저도 또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마구 늘어나며 절제하려던 다짐이 무너지는 중이랍니다. ㅋ
 
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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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앨리스 먼로, 트루먼 커포티, 프리모 레비, 수전 손택,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한다. 줄리언 반스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두 권 정도 읽어보아 아직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상태다. 커트 보네거트, 잭 케루악, 돈 드릴로, 르 귄, 존 치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시 인터뷰다. 인터뷰어도 시간도 장소도 제각각이다. 작가들의 집으로 찾아간 경우가 많아 그 집, 함께 사는 사람, 채운 소품들에 대한 인상이 작가와의 만남과 더불어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아내를 잃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쓴 줄리언 반스는 여기에서 아직 아내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서 행복하다.

 

이제는 늙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글을 쓰게 만드는 설레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나이가 된 앨리스 먼로는 기대 만큼 따뜻하고 솔직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열여덟 살때 그녀를 홀딱 반하게 한, 하지만 그때는 응답하지 않았던 남자가 지금 그녀 곁에서 그녀와는 또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라난 곳에 함께 돌아와 있다. 한창 아이를 키우며 때로는 아이를 재우고, 때로는 학교에 보낸 시간에 열정을 쏟았던 이야기들은 그녀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 다 커버린 아이들 만큼이나 회한을 남기기도 한다. 이야기에는 실패하는 부분이 있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가 써 낸 이야기 만큼이나 가슴을 뚫고 들어온다.

 

트루먼 커포티는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패션 모델 출신의 기자를 맞는다. 앨리스 먼로가 장편을 남기지 못하는 데에 느낌 아쉬움이 트루먼 커포티 앞에서는 가장 어려우면서 절제된 형태로서의 단편의 찬양으로 변주된다.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글은 절대 쓰지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이 놀랍다. 온갖 불길한 전조에 물러서는 모습은 그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찬란한 젊음을, 비참한 최후의 텍스트를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낸다. 그의 몰락을 알고 듣는 그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어떤 처연함을 내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드레스덴의 폭격을 관통했던 커트 보네거트의 신랄한 유머는 웅변적이다. 그는 전쟁의 무용함, 아무리 선으로 포장해도 그것은 학살임을 자신이 <제5도살장>을 써서 유일하게 드레스덴 폭격으로 이익을 본 이 지구상의 한 사람이라고 자조적으로 고백하며 역설한다. 훌륭한 작가는 부족하지 않고 오직 신뢰가는 독자가 부족하다며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복지수표를 수령하기 이전에 독서록을 제출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위트 앞에서는 이 진지하고 사려 깊은 작가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책에 엄격해야 한다"면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을 읽는다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관계로부터는 거리를 두지만 세상 그 자체에 대하여서는 멀어지지 않는다. 수전 또한 그렇다. 인간의 잔혹성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엄정한 묘사는 낭비를 싫어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열정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상을 수상했다는 돈 드릴로의 일과의 고백은 하나의 아름다운 단편 같아 옮겨적었다.

 

아침에 수동타자기로 일을 합니다. 네 시간쯤 일한 뒤 달리기를 하러 나가지요. 그러면 한 세계를 떨쳐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요. 나무와 새들, 이슬비. 멋진 간주와 같죠. -p.351

 

그리고 그는 보르헤스의 사진을 본다.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무기력과 표류 상태에서 벗어나 마법과 예술, 예언이라는 별세계로 데려갈 안내자로 그를 삼으려고. 마치 르 귄이 베토벤이 자신이 향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거기에 이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내다보이는 작업실 창문 앞에서 진지하고 사랑스럽고 신비한 독자들이 있는 상상을 하고 글을 쓴다는 존 치버의 고백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지막으로 한창 젊고 예뻤던 사강이 라디오 녹음이 있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여학생처럼 달려나간다. 여기에 그녀의 쇠락과 늙음은 없다. '삶'이 세 명의 인물이 엮어가는 일종의 리드미컬한 진행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제멋대로라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극히 사강다운 이야기가 남는다.

 

정확한 인터뷰의 일시가 누락되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의 작가의 이야기인 지를 정확히 추정하기 힘들 게 한 것은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의도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한때 어느 한곳의 그들의 찰나적인 모습과 생각,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삶의 찰나의 거대한 은유의 집적 같기도 하다. 다만 언어를 주무르고 이야기를 퍼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이들의 응축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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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트 보네거트 책보고 울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래서 전작을 다 찾아보고 싶어졌죠. 돈 드릴로는 화이트노이즈 한 권밖에 못 봤는데 그 한권만으로도 그의 전작을 다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읽을 책이 많아 차일피일이긴 합니다만; 르 귄, 잭 케루악, 존 치버는 그 명성에 비해 제 취향이 아니라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며 계속 시도 중이에요;;
blance님은 그들을 접하신 뒤 리뷰 어떠하실 지 궁금하네요.

blanca 2015-01-23 17:25   좋아요 0 | URL
아, agalma님 얘기 들으니 꼭 읽고 싶어집니다. 커트 보네거트 어떤 책 추천하세요?

AgalmA 2015-01-2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작)제5도살장-(마지막장편)타임퀘이크 둘 중 선택하기 까다롭네요; 전 타임퀘이크가 더 감동적이긴 했어요. 보네거트 위트를 재밌어하셨으니 (에세이)나라없는 사람부터 읽으셔도 좋겠죠^^

blanca 2015-01-24 09:46   좋아요 1 | URL
<나라없는 사람> 오고 있어요. ^^ 이상하게 거의 다 절판이에요. 제5도살장도 절판이고요.

AgalmA 2015-01-24 10:31   좋아요 0 | URL
네, 작년에 제5도살장 반값할인 때 사람들이 엄청 사대면서 전반적으로 그리 된 듯; 저는 다 도서관에서 빌려봤어요.으힉; 읽고 나신 뒤의 리뷰 기대합니당^^

다크아이즈 2015-01-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덕에 보관함에 담습니다. 고맙습니다.
앨리스 먼로 좋아하시면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도 좋아하실 듯.
그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라디오 녹음이 있다고 뛰어가는 사강이라.... 영화나 그림 같은 이미지네요.
50년대말이나 60년대 초의 사강일랑가 ㅋ

blanca 2015-01-24 09:48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 <올리브키터리지> 완전 좋아해요, 다크아이즈님! 그런데 왜 다른 책은 전혀 번역이 안 되는 건지, 너무 아쉬워요. 소개에도 화려한 젊음, 황폐한 노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띠더라고요. 비단 사강 뿐 아니라 원래 젊음은 찬란하고 노년은 슬픈 건지...

Nussbaum 2015-01-24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소설가. 제가 오늘 조금 고민했던 부분의 책이라 관심이 갑니다. 그간 한참이나 소설을 멀리했는데 이제는 좀 소설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얼마전 제 노트북에 타자기 소리가 나는 앱을 깔았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타자를 치니 뭔가 새롭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도 타자를 치면 한 세계를 떨쳐 내고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blanca 2015-01-24 09:48   좋아요 1 | URL
타자소리가 나는 앱이 있어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저도 타자기 써 보고 싶어요!

AgalmA 2015-01-24 10:24   좋아요 1 | URL
저도 써봤는데 바탕 화면, 글자도 색깔별로 쓸 수 있고 어떤 앱은 눈내리는 화면에 서걱서걱 소리까지 나죠^^
포맷하고 다 날아갔는데 가끔 생각나요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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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로서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소설가로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기에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조목조목 댈 말은 없다. 어느 날 여동생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고 들어왔다. 누군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며 읽어보라 했단다. 이윽고 나는 동생 대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었지만... 끝내 완독하지 못한 소설로 남았다. 그 다음부터 막연히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청춘에 그의 작품과 조우했던 극적인 순간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너무 젊어서 그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서들, 느낌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 어떤 휑한 간극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야기하는 하루키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다. 대인관계도 활발하지 않고 그저 규칙적으로 일어나 근육을 단련하듯 필력을 연마하는 겸손한 생활인이다. 그런데 그가 썼다는 이야기들에는 흔히 방황하는 청춘이 있고 꿈틀대는 심연의 욕망이 있고 때로 미처 실현되지 않은 좌절된 꿈들이 있단다. 그는 나의 엄마 연배이다. 그러한 그가 썼다는 이야기가 정말 그 어떤 젊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나는 의심했다. 그러니 내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의구심이 항상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쩌다가 이동진과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색깔 없는 사내 다자키 쓰쿠루와 엮여 버리고 말았는 지. 만약 이번에 다자키 쓰쿠루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영영 하루키의 소설과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매혹된 지점은 읽기도 전에 서른여섯이 스무 살로 돌아가서 푸는 어떤 실타래라는 것이다. 종종 아니 이제는 가끔 나는 그 비슷한 연배에서 스무 살로 곧잘 돌아가서 움직이고 느끼고 사랑하고 울고 좌절하는 나를 무연히 지켜본다. 그 나이의 나는 지금의 '나'와 백만년보다 더 떨어져 있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지금의 깨달음과 노쇠함을 가지고는 그 시절의 나를 곱게 지켜볼 도리가 없다. 아마 그런 아이가 내 주변에 지금 있다면 나는 참 황당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잔소리와 훈계를 해댈 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었다.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스쿠루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

-p.421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스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로 시작하는 다자키 스쿠루의 이야기.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 그룹에서 제명당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 모두 그의 연락을 피한다.  그는 고향 친구들의 왕따에 여린 속살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파한다. 이후로 그는 대학을 마치고 철도기업의 지하철역을 설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것처럼 보이며 그 일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며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의 제안과 독려로 스무 살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옛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그는 함께 했던 친구들이 때로는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남고 때로는 부적응자가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모습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 우정의 펜타곤이 무너진 지점에 그룹의 일원인 시로가 자신을 그녀의 삶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한 것을 발견한다. 도저히 그럴 캐릭터가 아니었던 그였지만 친구들은 저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그녀의 위증 아닌 위증을 수용한다. 하루키가 주목한 지점은 이곳이었다. 남녀가 섞여 있던 친구 집단에 그 어떤 이성적 호기심도 허락하지 않았던 암묵적 동의 밑에 깔려 있던 저마다의 어두운 욕망, 질투가 마침내 옅은 속살을 뚫고 나온 곳. 누구나 비뚤어지고 어그러진 욕망이 해소되지 못한 지점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통찰. 만약 그랬더라면,의 가정들이 난무하는 추억으로의 회귀 지점에서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똑같은 오늘에 대한 긍정. 여기에는 매일 아무리 힘들어도 육체 단련을, 글쓰기를 미뤄두지 않는 성실한 절제력을 가진 하루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욕망을 응시하지만 그 욕망에 함몰되는 인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 욕망을 억지로 비끄러매고 숨기면서 때로 불거지는 비극으로 인간의 삶 전체를 포박하지 않는다.

 

쓰쿠루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연하의 친구와 그를 그룹에서 내치게 만든 여자 친구 시로와 쓰쿠루를 연결하는 지점에 리스트의 피아노곡 <르 말 뒤 페이>가 있다. 그 자신이 재즈바를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소설적 정서와 장면의 여운을 고조시키는 데 아주 절묘한 역할을 한다. 그 어떤 부속이 아니라 순간 핵심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개별의 이야기를 보편의 그것으로 확대시키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단지 무미건조한 쓰쿠루가 겪은 왕따의 아픈 추억에 대한 치유의 여정이 아니다. 직업병에서 비롯된 면도 있겠지만 쓰쿠루가 지하철역에서 관찰하는 그 수많은 출퇴근에 지친 직장인들의 정경, 특이한 유실물들에 대한 역직원들과의 대화, 아버지의 방황기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대학 후배와의 대화 들은 내러티브를 뛰어넘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지한 철학이 있다. 사람의 내면에는 아무리 친밀한 타인도 심지어 그 자신도 응시하기 힘든 어두운 심연이 있다. 그 심연에 조약돌을 던져 생기는 파문이 번져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자리에 하루키가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함몰되지 않는 미덕에 그가 거는 타인과의 공명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한 '너'와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삶에 대한 책무라는 것을 하루키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이제서야 온전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냈다. 그것은 분명 이십 대의 나로부터 내가 걸어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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