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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서른일곱 살, 그때 나는 보잉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착륙 전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고 이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기억의 방아쇠가 되어 와타나베를 저격한다. 그 절절하고 생동했던 것들이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아연해져 그는 그 세계를 다시 복원한다. 스무 살이 되려던 그 찰나. 모든 '나'가 모든 '너'와 대부분의 '그것'을 기꺼이 이겨버리는 그 세상으로 걸어들어간다.
와타나베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자살해 버린 친구의 여자친구 나오코가 있었다. 나오코는 굉장히 아릿하고 아련하게 그려진다.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그런 예쁘장한 여자애라기보다는 무언가 모든 남자들이 첫사랑의 이미지로 이상화하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한없이 마음을 타게 만드는 그런. 반면 와타나베가 '연극사' 수업을 함께 듣게 된 미도리는 대학교 교정에서 그렇게 친구로 만나 서서히 '친구'와 '연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아주 현실적인 여자친구다. 영화 와타나베는 이렇게 스무 살을 그 여자 아이들과 함께 걷고 또 걷는다.
공교롭게 나는 모두가 이 책에 열광할 때 설렁설렁 대충 이 책을 넘겨 보며 굉장히 야하고 이상스러운 책이구나, 라고 단정지어 버리고 어딘가에 던져버렸기에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시기를 아쉽게도 놓쳐 버렸다. 와타나베가 서른 일곱이 되어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어딘가로 다 사라져 버린 그 나날들을 하나 하나 펼쳐 말려 놓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등장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내가 싫었던 그것들은 여전히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성적인 판타지가 가미된 소녀들, 이 글을 쓸 당시에 이미 하루키도 삼십 대 후반이었음에도 삼십 대의 여자 레이코를 주름살이 그득한 이미 늙어버릴 대로 늙어버린 여자로 줄곧 묘사한 점 등은 이미 노년기로 접어든 하루키가 다시 돌아볼 때 어떻게 느꼈을까, 싶은 좀 고약한 마음?
그럼에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청춘의 교본으로 이 책을 칭송하고 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 지에 대한 하루키만의 오직 하루키만이 할 수 있었던 많은 성과가 확연히 노르웨이의 숲 안에서는 빛난다. 무엇보다 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그 수많은 음악들. 그 음악들을 다 차례차례 녹음, 편집해서 그 음악이 나오는 대목마다 들어보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밝은 달빛 아래 와타나베가 소파에 드러누워 들었던 빌 에번스의 피아노 연주의 청량감과 레이코가 기타를 끌어안고 연주햇던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 <미셸>, <섬싱>이 어떻게 나오코를 진정으로 애도했는 지 십분 이해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작가가 이야기하는 젊음의 대화들이 겉돌거나 짐짓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때 바로 그 장소에서의 생생함을 띠는 것은 철저히 스무 살로 회귀하는 지점에 성실하게 근접하려는 작가의 노력과 그 마음, 그 기분, 그 시선에 충만하게 잠길 수 있는 하루키의 능력 덕택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런 대화들, 이런 느낌들에 젖을 수 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맥락없던 유치했던 그럼에도 한바탕 웃어댈 수 있었던 그 치기어린 이런 얘기들.
"내 헤어스타일 좋아?
"정말 좋아."
"얼마나 좋아?"
"온 세상 숲의 나무가 다 쓰러질 만큼 멋져."
p.432
"나를 얼마나 좋아해?"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p.440
가장 빛날 때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젊을 때 삶의 반대편에서 죽음은 역설적으로 골똘히 그것을 응시한다. 그래서 청춘, 그 찰나 같은 아쉬움은 죽음을 떠밀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루키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했고 우리를 애달프게 청춘으로 돌려놓고는 그것의 종말을 가차없이 사방에서 떠밀려 오는 죽음의 파고 속에서 선포한다. 죽음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대극점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것도 아니라는 것, 삶 자체가 죽음 속에서 이지러지고 태어난다는 점, 이러한 추상적이고 아픈 당위성은 하필 가장 아름다운 그 날들과 어우러져 빛살처럼 내리꽂힌다.
그러한 이야기들. 앞에서 나의 스무 살을 추억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하고 너무나 틀에 박힌 결론. 다시 뒤돌아서 달려간다고 해도 나는 다시금 그때처럼 천만 번 실패하고 실수하고 우왕좌왕일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