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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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많은 기대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근사한 짧은 이야기들은 톨스토이가 체홉이 카버가 다 해버렸으니까. 대부분의 단편들은 그러한 후광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애써 왜면하며 닮아가거나 너무 멀리 튀어나가버려 버석거린다. 시작한 이야기는 마침표를 향해 어쩔 수 없이 나아가곤 했다. 어느 순간 작가가 쓴 단편에 대한 기대가 없어져버렸다. <쇼코의 미소>를 두고 진지하거나 호의적으로 출발하지 못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에 특별한 서사가 이야기의 견인력은 아니다. 화자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홈스테이를 하게 된 일본 여학생 쇼코와 펜팔을 하게 되며 그녀의 삶의 서사를 목격하게 되며 각자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한계 안에서 소통하는 이야기의 갈피짬에는 화자가 이 사회의 주류 세력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바깥에서 '꿈'을 향해 비틀거리는 외부인으로서의 소외감과 그것의 근저에 있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릿함"을 냉정하게 자인한다. 그것은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라는 공통 분모 앞에서 각자 자신의 꿈과 삶으로 신 나게 뛰어나가지 못하는 화자와 쇼코의 생래적 한계가 결국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환각이자 변명거리임을 알아차리는 지점에서도 그러하다. 공교롭게 조부의 죽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와 쇼코는 다시 만나고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민하게 포착한다. 가족 안에서 '사랑'은 때로 '체념', '구속'의 완충장치처럼 작용한다. '사랑'은 '소통'이 아니고 '삶'을 부드럽게 말랑거리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때로 이러한 객관의 시선을 가져온다. 조금 더 냉정하고 조금 더 진지하게 어느 순간 내 안의 것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독일에 체류하게 된 두 동양인 가정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류하다 과거 베트남전의 역사에서 충돌하고 소원해져버리는 이야기는 그렇게 스쳐가게 되는 관계의 한계를 형상화하면서도 남기는 것에 대한 응시가 돋보인다. 타인에게 "곁을 주는" 일은 그래서 무의미하지 않다. 정감 있고 가족조차 외면하는 상대의 존귀함을 발견해 내는 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붕괴될 만큼 연약하지만 그 둘의 삶에 긴 여운을 드리우며 영원히 남는다. 엄마들 관계에서 틀어졌지만 화자가 그 때의 엄마 나이 만큼 성장해서 길을 마주하고 다시 그 예전의 이웃 아주머니와 조우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그 희망은 유치하지 않고 미화되지 않아 더 현실적이다.

 

'삶의 어느 지점, 잃어버린 인연'에 대한 최은영의 천착은 계속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어머니가 어린 시절 함께 큰 친척 언니의 삶이 의도하지 않은 외부적 사건으로 하류층으로 전락하며 서서히 부담을 느끼고 그녀의 고난에 동행했던 손을 슬쩍 놓아버리며 분리되는 이야기는 냉정하지만 진실이다. 그것은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고 관계의 어긋남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놓아버렸다고 해서 함께 보내버린 시간마저 허공으로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그랬으니 그 언니의 죽음 앞에서 화자의 엄마는 다시 오해를 풀고 그녀와의 시간을 떠올리는 결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지와 영주> 또한 그렇다. 이 이야기는 좀더 젊고 많이 예쁘다. 프랑스의 수도원 봉사에서 우연히 만나 감정적 교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어긋나버리는 둘의 관계는 단순히 젊은 남녀의 치기어린 열정으로 치환될 것은 아니다. 둘의 관계는 일상성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공통의 언어로 내밀하게 소통했다고 볼 수도 없다. 모든 경계와 한계를 넘어 불완전하게 그러나 그래서 더 깊이 편견 없이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대학원생이 나이로비의 수의사와 잃어버린 꿈과 사회적 압력과 가족의 사랑과 부담을 함께 공유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둘은 어긋나지만 그 어긋남마저 그 나잇대의 아련함과 더불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잃어버리게 되는 그 타인과의 완전한 소통과 감정적 교류에 대한 완벽한 기대치에 대한 연가는 언제나 눈물겹다. 그것은 그러한 기대를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청춘에 대한 애달픈 안타까운 정서이기도 하다.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 참석을 위해 상경했던 미용사 엄마가 연락되지 않는 딸때문에 우연히 찜질방에서 만나게 된 할머니와 시위에 참석하게 되는 이야기와 키우다시피 한 손녀가 기간제 교사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날 수도 연락할 수도 없게 된 할머니의 사연은 세월호와 만난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하고 충분히 납득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앞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답답하고 슬프고 억울하다. <미카엘라>와 <비밀>은 작가가 차마 선뜻 위로하기도 힘든 이 큰 비극에 가지는 애도의 마음을 짐작케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머뭇거림이 느껴져 이야기가 멈춘 듯해 아쉽다. 우리 모두 마음 한 구석에 묻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서사로도 덮어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크고 깊은 눈물이라 그런 듯도 하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십대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 가슴이 떨렸다. 그런 스스로에게 사과하는 작가의 의연함에 위로 받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너무 가혹하고 모질었던 청춘은 또 다른 형태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언젠가는 나도 최은영 작가처럼 스스로에게 사과하고 싶었나 보다. 고마운 작가, 그녀의 건투를 빈다. <한지와 영주>에서 다른 언어를 썼던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서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던 그 작은 장면에서의 대사가 비어져 나와 나에게 도착한다. "그런데 내 말을 이해해?" ...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무용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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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6-09-12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마음과 시선이 필요하다고 그게 (내가) 바라는 바라고 그런데 그것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blanca 2016-09-12 13:41   좋아요 1 | URL
사실 이해라는 게 어쩌면 공감을 위한 조금 헛된 시도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몸짓이 중요한 거니까요. 아예 인간은 소통이 불가능하니 시도조차 말자,는 냉소보다 저에게는 더 진실에 가깝게 들리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댓글 좋네요.^^

[그장소] 2016-09-1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으로 쇼코의미소만 봐서 나머지 소설도 궁금했는데 좋은 리뷰 감사해요!^^

blanca 2016-09-12 13:43   좋아요 1 | URL
나머지 소설들도 충분히 좋았아요. 한국 문학의 미래가 어둡지 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보다 나이도 어린데 제가 한참 지나 알아차린 걸 이 작가는 이미 미리 너무 잘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장소] 2016-09-12 13:51   좋아요 0 | URL
단 한편을 젊은 작가 상 책으로 만났을 뿐었지만 매우 놀랐던 기억이어서 ㅡ이게 데뷰작이라니!!ㅡ눈이 더 가던 작가였네요! 나이도 물론 한 몫했을 거예요 . 젊은 작가라는 상에 더할 수없이 잘 부합한단 생각였어요 . 이 책 나온다고 듣곤 올게 왔구나 ㅡ했었다는!^^
흔쾌한 성장 예요!^^

다락방 2016-09-12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이 책을 좋아하실거라고, 저는 확신했어요.

blanca 2016-09-12 13:44   좋아요 1 | URL
제가 항상 뒷북을 친답니다. 아우, 너무 좋았고 작가의 말은 더 좋았어요. 아주 울컥하더라고요.

자목련 2016-09-1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집 정말 좋죠? 리뷰는 더 좋아요^^

blanca 2016-09-13 08:08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표지부터 한 편 한 편 다 진지하고 결도 곱고...어젯밤 지진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오고 가더라고요. 계신 곳은 괜찮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자목련 2016-09-14 07:47   좋아요 0 | URL
진앙지와 먼 곳이었는데도 흔들림을 느꼈어요. 그 순간 정말 무서우면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건강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cyrus 2016-09-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

blanca 2016-09-13 22:06   좋아요 0 | URL
아. 고마워요. 어제 지진은 괜찮으셨는지... 명절 잘 보내기를 바라요. ^^

서니데이 2016-09-1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blanca 2016-09-13 22:0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요^^** 고맙습니당~

2016-09-14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스트 Axt 2016.9.10 - no.00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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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옐로색 표지에 뭔가를 올려다보는 듯한 김연수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 종일 매시간 시를 써냈던 <청춘의 문장들>을 썼던 이십 대는 애저녁에 떠나 보내고 그러한 시간들을 반추하는 <청춘의 문장들+>을 쓰고도 이 년을 훌쩍 통과해 버린 중년으로 돌아왔다. 김연수가 걸어온 길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그의 소설보다 더 핍진성이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시간들은 설득력이 있다. 지나고 보면 많이 맞다. 번역가 노승영이 인터뷰했고 백다흠이 사진을 찍었고(항상 소설가 백가흠과 형제인가? 혼자 궁금해 한다.) 배수아와 정용준도 합석해서 가끔 이야기에 등장한다. 죽마고우 김중혁과 음악을 공유했던 시간, 내용 없이 에너지만으로 소설가가 되었던 시간,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가지는 내러티브로서의 힘에 대하여 그의 문장만큼 유려하고 진지하고 사려 깊게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에서 내용보다 형식에 무게가 실리는 건 결과론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의도였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 '내용은 없다'라는 그의 주장에 백퍼센트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 소설적 화자와 실제 삶에서의 자신과 거리와 낙차를 두려는 조심스러운 몸짓은 오히려 그를 더욱 소설적 화자에 가깝게 느끼게 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소설적 서사에 더 무게를 실은 듯한 느낌이 드는 정유정 작가와는 흥미로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대하고 만들어 내는 자세의 진중함과 그것을 대하는 겸손한 자세에서는 만난다. 여하튼 언제나 작가적 화자를 충실하게 뽑아 내려고 애쓰는 그 노력이 시들지 않는 인터뷰어와 <Axt>의 가장 장기가 발휘되는 코너가 아닌가 싶다.

 

최민우라는 소설가를 잘 모르지만 그를 분할해서 또 따른 그, 잔루이치 보누치라는 남자를 가상으로 만들어 내어 이야기를 끌어간 소설가 최정화의 최민우에 대한 이야기도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것을 가감없이 기술하는 작업 못지않게 그에게 어울리는 이야기의 틀 안에서 그의 인격, 성격을 소비하는 과정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누구나 얼마 만큼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안에 담긴 수 많은 인격들 중 하나를 형상화해서 그를 보여주려는 시도는 무용하지 않을 것이다.

 

권여선의 <봄밤>을 다룬 황현산의 서평은 서평의 경계를 확장시켜 풍요로웠다. 단 하나의 작가의 작품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라 그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동원한 모파상과 랭보는 황현산이 이야기하는 '현실'의 체적을 한층 두텁게 했다.

 

곽한영의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실제 그 가족적 서사에 희생당한 삶을 묘사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실제 부정이라는 미명 아래 아버지의 조수이자 거의 하인 역할을 담당했던 작가가 만들어 낸 행복한 가족적 서사는 일견 하나의 허상이자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낳은 작가의 사적 삶의 그 모순적 측면을 가감없이 전달한 측면이 흥미로웠다.

 

편집위원들의 '이런 어리석은 노력은 의미가 있다'는 자평에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어젯밤 내가 스마트 폰을 보며 잠들지 않게 한 힘을 가졌던 이런 종이 위의 활자들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 어떤 노력과 그 어떤 에너지가 들어가는 향유에는 나를 지금 여기에서보다 더 한층 나은 것으로 느끼게 하는 환각의 힘이 있다. 그것을 잡아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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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6-09-1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제 맞아요^^

blanca 2016-09-10 13:16   좋아요 0 | URL
어머, 어머!! 그런 거죠? 역시 너무 이름이 비슷하다, 했어요.^^

[그장소] 2016-09-10 13:47   좋아요 1 | URL
백나흠은....없나요? 가나다,이래야 할것 같잖나요? 전 1인2역인줄 알았어요. 사진찍는 필명은 다흠, 글쓰는 필명은 가흠, 아...그럼 본명은 나흠인..^^ㅋㅋㅋ 시답잖게 죄송합니다!^^;

stella.K 2016-09-1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김연수라 저도 사서 읽어보려구요. 김연수 좋은 줄 모르겠던데 작년인가? 소설가의 일 재밌게 읽어 생각을 좀 바꿔보려구요.

그런데 백가흠에겐 동생이 둘이 있지 않을까요? 다흠과 그 사이에 낀 동생 나흠. 그런 상상력도 하게되요.ㅋㅋ

blanca 2016-09-10 13:17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역시 재치 구단이시네요. ㅋㅋ 나흠 ㅋㅋㅋ 괜찮네요.

[그장소] 2016-09-10 13:48   좋아요 1 | URL
아, 같은 생각!! ㅎㅎㅎ

clavis 2016-09-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 쓰리ㅋ

blanca 2016-09-10 21:28   좋아요 0 | URL
이 댓글들이 다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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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과연 공부를 다 마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죽음을 더 안다고 해서 죽음이 덜 두려워지거나 삶이 더 의미 있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동갑인 이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도 결국 삶의 일부이고 내 안에 쌓여 가고 있고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건 그 종결의 무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들, 담대하고 따뜻하고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 그 만큼이나 성숙하고 진중한 아내의 후기까지 아련한 여운이 오래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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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8-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분과 동갑이라 더 읽고싶었는데 blanca님도 닭띠?^^리뷰 감사합니다

blanca 2016-08-29 10:32   좋아요 0 | URL
아...clavis님 제가 지금 서른여섯이라면 흠, 너무 좋겠지만 이 책 출간 당시의 나이인 듯해요. --;; 과거형이랍니다. 나이가 들통나네요. ㅋ

cyrus 2016-08-29 13:46   좋아요 0 | URL
글을 쓸 때 나이와 관련된 간접적인 언급을 해도 쉽게 들통나는군요.. ^^;;

수이 2016-08-28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막 펼쳐요_

blanca 2016-08-29 10:34   좋아요 0 | URL
아, 야나님도 이 책 보고 계세요? 솔직히 너무 다운되는 책은 읽지 않으려 하는데 결국 이 책 읽고 어젯밤에 눈물을 줄줄...요새는 생로병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막막해져요. 어른들이 죽고 나면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은 거라는 불교적 윤회관도 이제는 수긍이 갑니다. 삶에는 반드시 소멸과 종결이 있으니까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야나문에 가보고 싶게 만드네요...언젠가 용기내어 꼭 가보고 싶어요.

자목련 2016-08-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쯤 도착할 것 같아요. 펼치기가 두렵기도 하고, 그 아름다운 문장에 궁금하기고 하고...

blanca 2016-08-29 10:59   좋아요 0 | URL
저자가 학부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어요. 문학적 소양이나 삶에 대한 통찰이 정말 놀라워요. 너무 아까운 사람이지만 또 어쩌면 그렇게 불꽃처럼 자신의 재능을 순간에 발산하고 간 것 같기도 해요. `죽음`에 대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렇게 사려 깊고 예리하게 응시하며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 싶어요. 자목련님의 리뷰 기다릴게요...

stella.K 2016-08-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읽고 싶은 책은 쌓여만가고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ㅠ

blanca 2016-08-30 12:42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 스텔라님도 좋아하실 듯해요.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힘든 일 중 하나가 `책참기` 아닐까요?^^;;

Jeanne_Hebuterne 2016-09-04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느 정신분석의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묻더라고요. 죽는 게 두렵냐고.
전 단박에 아니요, 전 지금 죽어도 좋아요. 했더니 그가 다시 묻지 뭡니까.
그럼, 오랫동안 안죽고 많이 아픈건요? 가령 치매, 반신불수, 그런 걸로 늙어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죽는 건요?
말문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의 핵심이 너무나도 단호하고 간결해서요.

blanca 2016-09-05 11: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저는 죽음의 주체로 저를 상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랬더라도 그건 지극히 추상적이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아프고 죽기도 하고 이런 구체적인 죽음을 목도하게 되니까 이제 자꾸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또 `죽음`은 결국 `죽기까지의 그 지난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나오는 결론이라는 것에 이르니 너무 두렵고 이 생의 모든 일들이 좀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쟌느님이 얘기하신 그 의사의 핵심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봅니다.
 
The Vegetarian : A Novel (Paperback) - 『채식주의자』영문판
Han Kang / Granta Books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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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것이 유별나게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다. 먹는 것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닌 조금 더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관리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별안간 그 앞에서 고기를 먹는 나는 어떤 폭력성에 둔감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단지 인간을 위해 대량으로 사육되고 죽임을 당하는 그 동물들의 비명을 망각하지 않고는 사실 그것을 무감하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사는 일은 어떤 둔감함과도 화해해야 견딜 수 있는 지점들과 자주 만난다. 이것은 비극이기도 하고 숙명이기도 하다. 늙어 죽는 일도 사실 대단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적어도 감내하거나 피하거나 하지 않고 견디기 힘들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있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 영헤의 남편, 하루 하루 꾸역꾸역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혜의 언니 인혜, 그리고 인혜의 남편인 예술가다. 지극히 평범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돌발 행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선은 따뜻하지도 애정을 담고 있지도 않다. 지극히 건조한 바깥의 시선이다. 회사 임원들 식사 자리에서의 불유쾌한 아내의 의상, 행동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 친정 식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장인 어른의 폭력적인 행동에 자해로 대응하는 아내의 모습은 그가 아내를 떠나게 되는 변곡점이 된다. 표제작 <The Vegetarian>은 건조하고 소통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돌연한 영혜의 변신도 거기에 대한 지리멸렬한 남편의 반응도 언뜻 언급되는 영혜의 어린 시절의 폭력성도 그저 잠깐씩 엿볼 수 있을 뿐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역부족임을 깨닫게 된다.

 

<Mongolian Mark>는 영혜의 형부, 즉 인혜의 남편이 성적 금기를 넘어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결론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던 가정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처제 영혜를 향한 그의 욕망은 복잡하다. 예술적 욕망과 금기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이끌림과 욕정은 깔끔하게 분리할 수 없다. 자매의 남편들은 모두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

 

<Flaming Tree>는 언니 인혜의 시선의 이야기다. 무너진 가정, 정신병원에 가서도 음식을 거부하며 무너져가는 여동생 영혜 앞에서 모든 공고하다고 여겼던 삶의 지축이 흔들리며 자매의 파멸은 섞인다. 음식을 거부하며 죽어가는 영혜가 이 세상의 모든 강압과 폭력적인 것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듯,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도 기실은 하나의 교묘한 위장이었음을 깨닫게 되며 인혜는 절규한다. 누구의 시선보다 인혜의 시선은 깊고 공감 지대가 넓다. 우리 모두가 견디고 있다고 여기던 것들이 어느 한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각성은 슬프지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존재는 깊지만 도저히 단단해질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다고 여기며 토닥이며 속이며 나아갈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데보라 스미스가 원작을 영국인의 시선으로 변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미묘한 것들을 충실히 이해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강의 목소리는 두 언어 사이를 왕복하며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충분히 살지 않았는데도 삶이 훓고 가며 남기는 그 상흔과 삶이 품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그 자비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다르면 약하면 결국 견딜 수 없는 지점에서 방황하는 모두에게 이 이야기는 헌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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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psan 2016-07-2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1인이라 책 내용이 많이 궁금합니다. 전 고기 달걀 우유 일부 생선 이런 것만 안 먹어요 ^^

blanca 2016-07-21 14:26   좋아요 0 | URL
채식주의자도 단계가 세분화되어 있더라고요. 달걀,우유까지 안 드신다면 거의 채식주의라 하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에서 채식주의는 세상의 폭력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그려져 있어요. 나중에는 음식 그 자체까지 거부하게 된답니다. 사실 걷고 먹고 살아나가는 과장 자체가 작든 크든 어떤 형태의 폭력이 끼어들지 않고는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 부분이 극대화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mipsan 2016-07-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음식 거부는 안 할거 같아요 ^^ 애초 꺼리게 된 이유가 동물사랑이나 폭력거부, 이런 거창한 게 아니었구요. 술 담배도 안하는걸요 ㅎㅎ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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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시판에서 우연히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슬프고 절망적이라는 이야기에 끌려  유진 오닐이 아내 칼로타에게 쓴 눈물 어린 헌사를 시작으로 티론 가족 네 사람이 각자의 절망이 소통하지 못하고 한없이 반목하고 빗겨가는 그 자리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열두 번째 결혼 기념일에 유진 오닐은 차마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표현해 내기 어려울 만큼 슬프고 비참했던 가족사를 자신이 가장 잘 형상화할 수 있었던 희곡의 형태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로 바친다. 실제 유명한 연극배우였고 극단을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던 유진 오닐 아버지의 이야기가 극중 티론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티론의 여름별장의 거실에 모인 부부와 두 아들의 4막으로 이어진 대화로 슬픈 가족사와 서로 간의 갈등, 상처를 짐작할 수 있다.

 

 

1912년 8월,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의 거실에 나타난 어머니 메리는 진통제 처방이 우연히 마약 중독으로 이어진 상태로 마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가족에게 다시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는 여전히 마약에 오염되어 있는 모습이다. 선병질적인 모습과 연극적인 자기 고백, 과거로의 끊임없는 귀환은 그녀가 방탕한 큰 아들과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들, 가족들에게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남편이 만들어 내는 건조하고 차가운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아내는 현실을 부정하고 아버지는 절망과 삶에 대한 탐욕스러운 애착을 묘하게 섞어 아들들을 괴롭힌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사람과 아이를 낳았을 때에 이러한 미래를 감안하거나 꿈꾸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보다 앞질러 정거장에 당도해 있는 미래는 얼마쯤 우리가 삶에 기대했던 그 자비와 관용, 환상을 여지없이 박살내어 버린다. 유진 오닐은 먼저 이 정거장에 도착해 자신의 원가족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반목하는 아들들. 어쩌면 내일이면 완전히 헤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이 위태위태한 가족의 모습에는 인간이 삶이라는 그물에 걸리는 한 어쩌지 못하는 그 필멸의 명제가 살아 있다.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유진은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 이 작품이 발표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혼기념일에 이 희곡을 이미 자신의 것으로 받은 아내 칼로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네 번째 퓰리처 상을 받게 한다.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라 칭했던 그녀와의 결혼 생활도 결국은 '밤으로의 긴 여로'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모든 삶의 보편적인 은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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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6-07-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인용하신 구절을 제가 다시 인용했습니다...그래도 되었을까요? 문득....이 책을 저도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당시 유진 오닐의 희곡을 여럿 읽었지요. 일부러 찾아 읽진 않았고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지요. ..그런데..이 구절은.....아무튼....

blanca 2016-07-08 16:15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어차피 저의 문장이 아닌걸요. 혹시 유진 오닐의 다른 희곡 중 좋았던 것 추천해 주세요.

테레사 2016-07-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좀 오래전 그러니까, 1900년대에 읽었어요..ㅜㅜ ㅋㅋ 1990년대 후반에요..생각해 보니,,많진 않았네요..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기억나네요...그건 잘 알려진 것이라..블랑카님도 ..아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