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7
윌리엄 제랄드 골딩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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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페이지만을 읽으면, 아이들이 읽는 동화처럼 느껴진다. 무인도에 갇혀있으면서도 마냥 천진난만하게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놀 줄만 알았다. 사이먼이 죽기 전까지... 뒤로 가면 갈수록 피에 물들어 점점 그 야만성을 들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인류의 역사를 보는 듯 하다. 편을 가르고,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며 힘을 과시하는 장면 하나하나에서 문명과 이성은 가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피의 축제를 벌이고, 살육의 춤을 추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개인의 이름과 아이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멧돼지를 사냥하듯 랄프를 몰아가는 장면은 웬만한 공포영화 못지않게 소름이 돋게 한다. 마지막 해군장교와 아이들이 조우했을 때 난 해군도 위험에 처할 줄 알았다. 그만큼 변해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파리대왕'이라는 제목 그대로 악마의 모습이었다. 하긴 전쟁을 위한 해군이나 무인도에서 창을 휘두르는 아이들이나 다를 건 없다.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 시선은 너무나 살벌했다. 마지막 아이들의 울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순수로의 회귀? 인간에의 갈망? 야만성에 대한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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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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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생이 78년도에 출간된 책을 2003년에 읽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어린이답게 뛰어 놀고, 학생답게 선생 말 잘 들으면서 성장한 것이 죄라면 죄. 70년대의 노동환경에 관한 정보는 얼핏 들어왔다. 노랫말에도 있지 않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변해도 미싱은 멈추지 않던 그 시절.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여공들이 데모하다가 전경에 뚜드려맞는 장면이 담긴 빛바랜 신문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무척이나 읽기 어려운 책 같다. 그 당시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어서 구체적인 상황 파악이 잘 안된다. 주제 의식도 너무 무거워 감히 해석하기가 망설여진다. 문학성과 시대성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까. 기법이나 문체는 접어두고, 인상깊은 것만 추스린다면 너무나 리얼한 소외계층과 지배계층의 단절을 꼽겠다. 소외된 계층, 빈민층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부유층의 더러운 돈벌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거 같다.

8개의 손가락을 가진 지섭을 보면 재외국인 노동자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호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의 단절된 시각은 뉴스를 보면 흔히 느끼는 것들이다. 난쟁이와 거인의 끝없는 대립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악이다. 소설에서는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상사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항상 새기고 있어야 하겠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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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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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그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s.버틀러-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오히려 손이 언뜻 가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갈 책인듯 싶다. 나는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법정스님을 읽었고, 그의 삶의 대한 통찰을 보았다. 그를 통하여 나를 재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벅차게 감격적이다. 진리는 역시나 멀지 않은 것이었다. 딴 곳에 시선이 팔려 주의깊지 않았을 뿐 우리 주위에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다. 수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내가 중심이 아닌 주변을 살피게 만드는 것.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법정 스님은 참으로 재미 있는 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승려에 대한 이미지를 산산히 부순다. 어린 왕자가 사는 곳을 동경하고, 승복을 아니 부끄러이 여기며 극장의 조조할인을 애용하는 그는, 산 속의 승려가 아닌 우리 주위의 사람으로 다가선다. 그만큼 이 책에는 종교적 색체가 적어서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바라보기. 바꾸어서 생각하기. <무소유>에서는 증오와 화가 없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여도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나를 변화하는 힘, 세상이 바뀌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말 속에 진리가 담겨 있고, 글 속에 우주가 담겨 있으니,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의 끝은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 우리에게는 우리 이웃의 기쁨과 아픔에 대해서 나누어 가질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의 탈종교적 사고, 모든 진리는 하나의 나무와 같다는 그의 세계관에서 건전한 지성인의 한 모습이 엿보인다. 자기만의 오해의 세계에 빠져서 이웃을 경외시하며, 사색이 없고, 행동이 없는 지식인이 판을 치는 요즘에 그는 옥석과 같다. 소음과 악취가 넘치는 이 세상, 치졸한 소유욕만 양손에 쥐고 있는 내 모습은 그의 앞에서 너무나 초라하다. 버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거늘....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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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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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쌓아 올리듯, 하늘을 향해 서로 경쟁하듯 긴 목을 뻗은 아파트들...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같은 땅을 디디고 있지만, 이웃은 없다. 네모난 공간에서 마음까지도 네모나게 서로의 모서리를 맞데고 사는 우리의 일상은 콘크리트 만큼 차가워라.

시선이 가지 않는 곳에 마음도 가지 않는다지만, 우리는 폐쇄된 공간에서 영혼의 메마름으로 미이라처럼 박제되어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버린다. 그것의 이름은 고독. 우리는 사회속에서 혼자가 아님에도 혼자가 되어감을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차가워라.

모자, 오이, 2...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태생부터 다른 저 셋이 호텔 선인장에서 갖는 평범한 교류에는 '아파트의 벽'이 없다. 오히려 사라지는 아파트에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허물어진 벽은 다시 세워지지 않기에 그들의 헤어짐은 또 다른 관계의 연속이 되어라. 인연과 인연은 진한 향으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남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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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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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테고, 그 책을 싫어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의미심장하고, 아포리즘 성격을 가진 문구 하나하나를 가벼이 넘길 수 없었던 셍택쥐페리의 그 어린왕자를 페러디 한 작품인데, 역시나 전편보다 못하다. 못 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평이해서 그렇게 와 닿지가 않는다. 셍택쥐페리에게 답장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고는 하지만, 등장인물이 바뀐 것과 상황이 조금 바뀐 것 빼고는 똑같다. 페러디라서?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속담처럼 의미를 캐내고, 해석을 하면서 멋있게 이 책을 부풀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맛이 없다. 아~ 참을 수 없는 이 밋밋함~. 호랑이를 피해 호랑이 사냥꾼을 찾아 이 별 저 별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지구에 와서 홀연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에서 얻은 것은 '이 꼬마가 그 어린왕자 맞나? 또 다시 떠나는구나 그때처럼' 이 말 뿐이니... 영화나 책이나 속편, 페러디는 안 나오는 것이 난거 같다. 전작의 감흥을 깍아 먹는다. 생텍쥐페리가 원하던 답장이 과연 이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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