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신화를 통해 현대문명 사고하기....

신에 대한 도전
-“아테나와 아라크네 / 에리시톤 / 욥기”를 중심으로

바람구두(windshoes)


1. 아테나와 아라크네
- 신의 지혜와 인간의 기술

제우스는 티탄족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여신 메티스를 아내로 삼았는데, 메티스가 두 번째로 낳을 아들이 제우스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란 예언이 두려워 아내를 집어 삼킨다. 계속 두통을 호소하는 제우스의 두개골을 쪼개자 그 안에서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아테나가 빠져 나온다.(아테나를 직접 출산까지 한 제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부탁은 거절한 전례가 없을 만큼 총애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도시 아테나를 탐낸 해신 포세이돈과 더불어 도시 아테나를 두고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준 신이 도시 아테나를 차지하는 경쟁을 했다. 인간에게 말(馬)을 준 포세이돈(말의 신이기도 하다)과 올리브를 준 아테나의 대결에서 아테나가 승리한다. 아테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들을 관장했고, 인간에게 그것들을 나눠주었다. 베틀, 바느질, 마름질, 염색, 자수를 가르쳤고, 도자기 굽는 법, 농부들을 위해 쟁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수레를 발명했고, 조선술을 개량해 주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나팔을 발명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인간 아라크네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육체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길쌈과 수  놓는 솜씨마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라크네의 이런 솜씨가 당연히 아테나 여신의 가르침 덕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잘 나서 그런 것이라고 자랑했고, 심지어는 아테나와 겨루기를 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보였다.

참다못한 아테나가 노파로 변신해 아라크네를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아라크네(내 말은 내가 책임지겠어요)는 아테나의 분노를 사고 만다. 여신과 인간은 각자 길쌈을 해 승부를 겨루기로 했다. 아테나는 신들의 위엄이 드러나는 모습을, 아라크네는 불손한 마음을 담아 신들의 추태를 주로 담아 오만함을 드러냈다.

모욕을 느낀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천을 찢어버린다. 그제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우친 인간 아라크네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아라크네를 불쌍히 여긴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든다.

Ex 1. )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테네 사람이자 헤파이스토스의 후손인 다이달로스는 뛰어난 장인이었다. 그의 기술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헤파이스토스 이외에는 없었다. 그의 제자 탈로스 역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생선의 등뼈를 보고 톱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자 다이달로스는 이를 시기해 탈로스를 살해하고 만다. 죄를 지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로 달아나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욕정을 품은 숫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커다란 로봇 암소를 만들어 주어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탄생하도록 했다. 은혜를 배신당한 미노스왕은 화가 나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가택 연금시킨다.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날개를 밀랍으로 붙여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오만함을 닮은 아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신에게 근접한 나머지 밀랍이 녹아 추락사하고 만다.

Ex 2. ) 바벨탑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의 후손들이 다시 시날(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하여 세우기 시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기로 하였다는데, 이들의 바벨탑을 세우고자 한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탑을 쌓아올려 자신들의 이름(신의 이름이 아닌)을 떨치고 홍수와 같이 야훼의 심판이 닥치더라도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야훼는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써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고, 그 약속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세웠으나 인간은 믿지 않았다. 바벨탑은 인간이 야훼를 불신한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야훼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 시켜 멀리 흩어지게 하여 바벨탑의 건축을 중단시킨다. 그래서 이 지명을 바벨(Babel), 또는 바빌론(Babylon)이라 불렀는데 그 뜻은 ‘그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창세 11:9)는 내용이다.


2. 데메테르와 에리시톤
- 신의 사랑과 인간의 욕망

명부(冥府)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기도 한 데메테르 여신은 인류에게 최대의 은혜를 베푼다 하여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서도 특히 숭배를 받는 대상이었다. (데메테르는 풍요와 곡물의 여신으로 전율과 기아의 신과는 대면조차 금지되어 있을 만큼)

그런데 인간 에리시톤은 신앙심이라는 것을 우습게 알고, 신을 업신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는 데메테르에게 봉헌된 숲을 모조리 도끼로 제거하려 했고, 위엄 있는 나무를 찍어 없애라고 하인에게 명령하여 하인이 불복종하며 이를 가로막자 하인을 죽이고, 직접 도끼질을 한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기아의 여신으로 하여금 에리시톤에게 들어가도록 해 계속되는 허기로 모든 재산을 팔고, 마침내 딸까지 팔아치우려 들게 만든다. 에리시톤의 기아는 결국 자기 팔과 다리를 잘라 먹는 파멸의 과정에 이르러 목숨을 잃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Ex ) 탄탈로스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는 올림포스를 드나들며 신과 교류하고, 신들과 함께 “넥타르와 암브로시아(신들의 음료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 그런데 탄탈로스는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음료와 음식을 훔쳐 지상으로 가져오거나 제우스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떠벌이고 다녔다. 스스로를 신과 유사한 존재로 생각했고, 그럴수록 더욱더 교만해졌다. 그는 자신을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인물로 생각했고,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도둑 판다레오스가 제우스에게서 훔쳐 온 황금 개를 제 집에 숨겨두고도 제우스의 이름을 걸고 황금 개를 숨겨두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제 아들인 펠롭스를 토막내 음식으로 만든 뒤 신들에게 음식으로 내놓기까지 한다. 분노한 제우스는 그를 명부의 호수에서 목만 내밀고 있게 한 뒤 타는 듯한 갈증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호숫물이 빠져버리고, 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그가 손을 내밀기만 해도 바람이 불어 가지를 높이 들어올리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탄탈로스는 너무 많은 행복을 누렸으나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한 죄로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3. 야훼와 욥
- 신의 결정과 인간의 의지

신실한 믿음을 지닌 욥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많은 아들, 딸을 두어 가정이 화목하고,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야훼조차 사탄에게 욥의 신실함을 자랑할 정도로 그의 믿음은 두터웠다. 사탄은 하느님이 주신 넉넉한 것들 때문에 당연히 하느님을 칭송한다며 욥을 시험에 들게 하도록 한다. 야훼는 욥의 몸에 해를 가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시험을 허락한다. 사탄에 의해 모근 것을 빼앗기는 고통 속에서도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다.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자 욥은 감히 신을 원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저주한다. 엘리바즈, 빌닷, 소바르의 거듭되는 충고에 욥은 계속 자기 자신만을 저주(비난)하며 하느님께 기도한다. 세 친구들과 말(입)으로 논쟁하여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욥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엘리후는 하느님보다 옳은 체 하는 그를 비난하여 하느님은 온전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건 (무조건) 옳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야훼 하느님이 나서 말하길 모든 것은 가치 판단(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능하신 이와 변론하는 자야, 어찌 물러서려느냐?"(40장 2절) 야훼는 욥의 친구들은 하느님의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했다며 욥에게 전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돌려준다. 인간(욥)이 무엇인가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결정이 아닌 신(자연)의 결정이다.

Ex ) 시쉬포스
시쉬포스는 타르타로스에서 엄청난 바위 덩어리를 그가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산 밑으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무의미한 작업을 반복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물론 시쉬포스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교활한(지혜로운) 자라는 표현을 얻을 만큼 영리한 인간이었다. 그는 대도(大盜) 아우톨뤼코스보다도 영리해 잃어버린 소떼를 되찾고, 소떼 이외에 대도의 딸까지도 납치해 훗날 오디세우스를 낳는다. 그러나 시쉬포스는 프로메테우스, 탄탈로스 만큼 큰 죄를 지은 적은 없었다. 다만 그의 동생 살모네우스가 제우스의 모습을 변장해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천지를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유혹하다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적은 있었다. 물론 죄가 있다면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려 했을 때, 이를 아소포스에게 알려줘 제우스의 욕망을 방해한 적은 있었다. 그의 영리함은 너무나 뛰어났기에 제우스는 시쉬포스를 타르타로스에 가둬두려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낸다. 시쉬포스는 타르타로스를 속여 도리어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두었다. 타르타로스가 묶여 있게 되자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게 되어 신들은 전쟁의 신 아레스를 보내 죽음의 신을 구출하게 만든다. 결국 시쉬포스는 죽어 저승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러자 시쉬포스는 아내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도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말한다. 지옥에 내려간 시쉬포스는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자신의 아내가 장례를 치러주지 않으니 잠시 말미를 주면 아내에게 장례를 치르도록 야단치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지상으로 올라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신들 가운데 가장 영리한 헤르메스가 나선 뒤에야 그는 지옥으로 끌려가 바위를 짊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알베르 까뮈는 이런 시쉬포스에게서 인생의 부조리를 끌어내, 정당한 이유가 결여된 삶에서 모든 것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절망하지 않고, 항상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4.  결론: 신화의 서사구조를 통해본 신과 인간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 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계몽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노아의 홍수라는 자연 혹은 신의 징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인간은 바벨탑을 세우려 했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죽음의 신 타르타로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혜택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숲을 개간하고, 자연으로부터 얻은 사랑(자원과 기술)을 망각하고 욕보였다.

스스로를 신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한 인간은 로봇 암소를 만들어 짐승과 결합하도록 하여 반인반수를 만들어 냈고, 그 교만함은 하늘을 찔러 태양신의 영역까지 날아올랐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본성과 행복한 결합을 이룰 수 없도록 방해했다. 지식의 목표는 ‘방법’,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으로 변질되었다.

1) 신성이 깃든 자연(아테나와 야훼 등, 즉 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으나 인간은 이를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2) 인간(아라크네, 다이달로스, 바벨탑의 인간)은 자연이 베풀어준 원료와 자연으로부터 깨우친 지혜를 통해 길쌈과 기술을 익혔으나 교만하여 신에게 저항하거나,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고, 신과의 약속을 부정하고, 다른 인간의 은혜에 배반을 일삼았다. 3)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지혜를 얻고, 무리를 지어 기술을 전수했으나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사회를 일구고, 자연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계몽의 합리성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인간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부정하는 탈신화화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어쩌면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 신화는 모든 가르침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적 상상력에 반대하는 계몽의 원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하늘 아래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던 인간은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 이미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으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화한다.(신화의 세계, 자연, 사물을 생명을 지닌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계몽은 자연을 죽은 것으로 취급하여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대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entropy)』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리와의 합일을 도모하여 여기서 얻는 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해방감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에서 말하는 ‘열역학의 제2법칙’을 말하는데,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외부와 에너지의 출입이 없는 경우 어떤 물리계의 전체적 에너지는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전환되더라도 변하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은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기만 할 뿐 줄어들지 않으며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만, 또한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400여 년 전 베이컨과 데카르트, 뉴턴에 의해 구축된 ‘객관적 지식이 있으면 인간은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세계관(패러다임)을 통해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끊임없는 성장과  한계 없는 진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리프킨은 이와 같은 세계관에 의한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은 엔트로피(entropy)를 증가시켜 각종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과 지각변동에 의한 기후변화 등 심각한 문제들을 빚어내고 그 결과 자연은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리프킨은 문명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것을 제의한다.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 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화적 사고와 세계관이 중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5. 질문들
1) 야만적 상태(자연에 대한 공포 등)를 벗어나고자 한 인간의 지식(기술)은 새로운 야만적 상황을 만들어내는가?

2) 인간의 욕망은 이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가?

3) 자연의 본성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자연과의 합일을 해치는 방향으로만 나가는가?

4) 인간의 행복은 물질문명, 기술적 진보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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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만난 이에게 신화를 과학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단 이야기를 했는데, 많이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화의 서사구조를 해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많이 있었으나 대개는 예술과 결부시키거나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에서 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현대 사회와 문명 그리고 생태학적 사고와 더불어 물질문명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과학적 시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은, 즉 세계관의 변환을 가져올 무엇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은 발제를 위해 대충 쓴 것이긴 하지만... 그 분께 나의 대답 혹은 내가 신화를 공부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보여주는 글은 될 수 있을 듯 싶어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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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신자유주의’ 탈출구 없는가

‘신자유주의’ 탈출구 없는가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
김수행 교수

국경을 넘어 퍼부어지는 자본의 융탄폭격. 온 세계를 무한경쟁으로 휘몰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와 직장은 물론 우리 안방에까지 침투해 있다. 삶을 초토화시키는 그 기세는 마치 대지를 휩쓰는 메뚜기떼의 공격같다. 자본은 자꾸 부자가 되어가지만, 노동자와 서민대중은 대량해고·비정규직·실업 등으로 빈곤과 불안의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벽을 뚫을 탈출구는 없는가? 홍세화 기획위원이 지난 11일 목련꽃이 피기 시작한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수행(62)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그 가능성을 찾아봤다.

홍 기획위원은 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비판해 왔고, 김 교수는 그동안 강단과 미디어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예고해왔다. 진보적 운동가와 백발의 노교수의 이날 대담은 ‘마주보기’라기 보다는 어쩌면 ‘함께보기’에 더 가까웠다.

김수행 신자유주의 횡포 극심 선진국부터 머잖아 붕괴

홍세화 ‘시장주의 우파’ 집권뒤 노동운동 갈수록 외면당해

홍세화 기획위원=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인간 본래의 탐욕을 공공성이나 양심 같은 것들로서 적절히 제어해 왔지요. 그런데 요즘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는 그런 제어장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교수님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것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수행 교수=신자유주의라는 게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에요. 20세기 들어 두번째 대불황을 겪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서구 자본주의에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됐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가에게 이익을 많이 주고, 그 이익으로 재투자를 하게 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죠.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복지사회다, 사회보장제도다 하는게 사회적 합의였고, 완전고용이나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게 정부의 몫이자 목표였지만, 그 후로는 불황극복을 위해 이런 합의와 구실이 축소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일어났습니다. 기업가·자본가에게 이익을 더 주려면 세금을 낮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제도나 완전고용, 노조 권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다른 나라 시장을 뺏으러 나가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면 남들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첨병이 바로 국제통화기금이니 세계무역기구니 하는 것들입니다. 세계 각 나라가 투자한 주식회사인 국제통화기금에서는 미국이 거부권을 쥐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꼼짝 못하게 되어있어요. 요즘은 ‘세계화’보다는 ‘제국주의화’라는 말을 경제학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홍/ ‘작은 정부’ 계속 들고 나오는데 민족국가 약화·제국주의 확장 의도
김/ 대량해고 하고나서 사회복지라니? 현 정부 복지어책 한계 드러난 것

=우리나라에서는 세계화란 말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는데, 결국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관철을 아주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해 놓은 수사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미국은 군사력에서 세계 1위잖아요?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이 바로 ‘제국’이예요.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모든 나라가 미국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그러니까 다국적기업들은 모두 자기 모국의 힘을 믿고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겁니다. 세계화가 이뤄지면 개인의 자율성이 늘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그보다는 거대한 나라의 기업과 시민들만이 세계를 마음대로 누비게 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작은정부론’을 들고 나옵니다. 다국적기업이 제국주의적 힘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면, ‘작은정부론’이란 게 결국 민족국가의 틀을 약화시키고 제국의 힘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국적기업의 힘이 강해지면 국민국가의 힘을 능가해서, 정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나 영국같은 국민국가가 다국적기업을 뒤에서 엄청나게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국가가 사라진다, 약화된다’하는 얘기는 후진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작은정부’라고 해도 우리와 외국(선진국) 사이에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금도 안 거두고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 실체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앞서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도 나름대로의 소임을 갖고 있었죠. 김영삼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든가,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주석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들입니다. 노 정권은 사회의 기본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를 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이걸 해내려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 조직의 힘을 빌려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노 정권은 생각보다 노동자계급을 적대시하는 것같습니다.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고나서 무슨 사회복지가 있겠습니까? 노 정권의 복지정책의 한계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죠. 홍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기업 쪽에 기울어져 있던 노사관계의 균형을 임기 마칠 때까지는 잡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도·물류 파업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변하더군요. 노 정권의 권력 자체가 민중적이지 못했다는 점, 노 정권을 떠받치는 지지세력의 계급적 한계 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수구 언론과 미국의 입김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동안 역대 정권이 내세운 복지정책의 기본은 ‘경제성장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란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죠. 복지는 가족이 담당해라… 이런 식이었는데, 복지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담당해야하는 것입니다. 노 정권의 복지정책도 이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나라가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도 늘리고 그렇게 해서 고용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수출 늘리고 경쟁력 높이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노동자 임금 깎고 사회보장제도 줄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국내 시장을 엄청나게 줄이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죠. 모든 나라에서 국내 수요가 줄고 국내 시장이 좁아지면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신자유주의로 성공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노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고소득층한테서 세금을 많이 거두고 군사비는 줄여서 못사는 사람에게 혜택을 넓히자,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키우는 것이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토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답답합니다.” 홍 기획위원은 신자유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 비관적 우려를 나타냈다. “신자유주의 붕괴는 피할 수 없습니다.” 김 교수는 힘있는 어조로 낙관론을 폈다. 같은 지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였다.

=우리나라는 총소득에서 사회구성원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장 분담비의 비율이 27%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 나라들은 45%에 이르고, 미국도 30%가 넘죠. 우리는 그조차 간접세 비중이 높습니다. 이걸 보면 우리 사회에는 분배정의·조세정의조차 제도화되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디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역사 과정에서 국민들 사이에 ‘똘레랑스’나 동정, 연대의식 같은 것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6·25라는 동족상잔과 수십년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서로 ‘불쌍하다, 도와주자’하는 개념이 안 잡혀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사실은 사회보장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기본정신이거든요. 저는 요즘 굉장히 기분나쁜 게 하나 있는데, 삼성같은 기업이 큰 이익을 내고는 그걸 윗사람들끼리 갈라먹더라고요. 말이 안됩니다. 우리 역사나 문화·전통에 대해 근본적으로 한번 고찰해 봐야 해요. 2차 대전 때 영국 런던이 폭격을 당하자 영국 정부는 부잣집 자녀든 가난한 집 아이든 똑같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돌봐주었어요. 이게 상징하는 게 뭡니까?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고요,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생각을 해야 사회보장 개념이 굳건해 지는 겁니다.

=노 정권이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라든지, 공공성과 사회정의의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는데, 이걸 저버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거죠.

=노 정권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신자유주의 사상을 굉장히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사회보장이란 게 없었죠. 상황이 다릅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이 우리 시장에 많이 침투했습니다. 배당을 통해 우리 부가 국외로 많이 유출된다는 우려도 있고요.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재벌’이 있는데요, 재벌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자본 혹은 우리 기업으로 보고, 이를 안고 가야할지….

=저는 재벌이 한국계 자본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재벌의 소유와 지배구조는 개혁해야 합니다. 총수의 후계자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 큰 기업을 운영하도록 두는 것은 나라 경제를 망치는 거예요. 미국 지이(GE)의 자회사 중에 금융회사들이 있는데, 지이의 총수익의 49%를 이들 금융회사들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어떻습니까? 생명·투신·카드회사 같은 금융 자회사들이 내는 수익은 삼성 총수익의 1% 정도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삼성에 자금 문제가 생기면 늘 계열 금융회사들이 돈 막아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삼성의 금융업 자체가 수익성도, 효율성도 없는 거죠.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을 보면, 우리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조건으로 금융시장 개방을 급속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런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핵심 정책 운영자들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거든요. 그러니 참여정부 역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방식 아닙니까? 교수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인데, 노 정권을 ‘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쏠려있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노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당혹스럽더군요. 노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저는, 분단 이후에 ‘반공주의 우파’가 집권했다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시장주의 우파’가 집권한 것이라고 봅니다. 반공주의 우파 집권기에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인식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죠. 그런데 시장주의 우파정부 아래서는 노동운동이 오히려 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 분신이라니…”라고 말하더군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우리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화 운동 세력이 노동자 대투쟁에 엄청나게 반대를 한 거예요. 그들의 반노동자 정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빈민·농민들이 갖고 있는 자기 정체성 인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구호에 대해 당연히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 의식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김수행 ‘빵을 키워놓고 난뒤 갈라먹자’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갈라줍니까?
노동자·시민 참여하는 자본주의 올 것
노정권, 서민대중 파트너로 안고가야

=우선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출신 10명이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고, 거대 보수 언론의 힘도 조금씩 약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독도 문제로 일본과 마찰이 있는데, 이런 대외적인 문제 제기가 국내에서도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에 힘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미국의 이라크 파병·방위비 분담 요구로 인해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면 이와 맞물려 국내 질서를 조금 더 공정하게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날 거라고 봐요. 이런 움직임이 모두 사회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것이 결국엔 성장중심을 말하는 것이죠. 국민들이 이런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선순환’이니 ‘소득 2만불’이니 하는 데에 현혹되고 있는 거죠. 실제로는 삶이 아주 팍팍해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자꾸 커지고 있거든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인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들이 자아실현 같은 데에는 관심도 못 가지고, 심지어 젊은 대학생들도 취업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결국 경제동물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퍼지고, 계층 상승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고 사회는 더욱 험악해지는 겁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좀 비관적인 편이예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말할 때 자꾸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분배에 치중하다보면 성장을 못한다,’‘빵을 우선 키워놓고 난 뒤에 갈라먹어야 한다’라고요. 이런 얘기는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그걸 갈라줍니까? 아무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호만 나오는 거죠. 사실, 지금 같은 생산 수준에서 분배를 잘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소득이 1만달러라고 하면, 한달에 한사람의 소득이 대략 100만원이란 얘기고, 한가족이 4명이라고 할 때 4백만원이 되죠. 이렇게 계산하면 모두 먹고살 만한 소득이잖아요. 문제는 부가 집중되어있다는 겁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 보세요,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자살하고 노인들은 외롭고…. 은행에 앉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봐도, 일은 정규직보다 더 많이 하면서 봉급은 반인데다 사회보험 혜택도 못받잖아요.

=일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 10%는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권리 옹호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들은 나머지 90%를 위해 뭔가 해낼 방법이 없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이 자기 봉급 깎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지난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 논란 때 민주노총 사람에게 “자꾸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어떻게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연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조직률 10%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이 대기업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문제에서는 힘이 안됩니다. 또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들지 않겠어요?

줄담배와 줄커피로 이어진 2시간30분의 대담 끝에,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제시했다. ‘노동자·시민·자본가가 함께 참여하는, 좀더 평등한 자본주의.’ 이런 세상은 언제쯤 오게 될까?

=민주노총으로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거론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더군요.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잘 안 이뤄지고, 현재 법체계에서도 어렵고… 그래서 가능한 어떤 틀이라도 얻어내려고 한 것이 노사정위 복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서는 노조가 힘이 셀 때에만 무언가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노동정책을 펼치면서 노조하고 상의하는 것 봤습니까? 그건 노조가 힘이 약하다는 뜻이예요. 힘이 약할 땐 타협으로는 별 소득이 없어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상층부가 이 문제를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 분배냐 성장이냐하는 틀거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입니다. 이 부가가치를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는데, 임금도 분배의 문제이고 이윤도 마찬가지예요. 이윤 중에서 사내유보와 배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배입니다. 그런데 분배를 얘기할 때 항상 임금만 가지고 말합니다. 임금이 너무 많으니 깎자고요.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은 노동생산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고 있습니다.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를 좀더 합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당을 줄여서 사내유보로 돌리고 재투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임금을 말할 때, 기업이 직접 노동자에게 주는 부분을 ‘직접적 임금’이라고 하고, 사회보장을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간접적 임금’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노동자들이 병원비·교육비·연금 등 얼마나 많은 간접적 임금을 받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간접적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적 임금으로 커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이 높다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세금 잘 내서 사회복지를 늘리면 직접적 임금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죠.

홍세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 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 인 것 같아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교수님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변혁을 낙관적으로 보시는군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낙관하십니까?

=신자유주의로 인해 유럽에서는 실업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사회복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졌어요. 5월에 있을 영국 총선에서는 아마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사회보장제도를 더 축소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거예요. 외국도 이런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쪽에서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진국으로 신자유주의 해체가 넘어오겠죠. 그래서 우리가 자꾸 현재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잡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후진국에서는 선진국보다 더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자는 많고, 외국 자본의 횡포는 심해서,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요. 결국 세계적인 민중연대가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후진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면, 신자유주의는 수년내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봐요. 신자유주의를 이끄는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죠. 그래서 반전운동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자본 쪽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예요. 자본 이동을 너무 자유롭게 해서 금융공황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규제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쪽이 힘을 얻을 것이고요. 또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요구할 거예요.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그 안에서 수익성 위주로만 가는 방식에 규제를 가하게 될 것이고, 생태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결정에 더 많은 사람이 주체로 참여하는 경제형태로 갈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되살아나면서 좀더 평등하고, 좀더 많이 참여하고, 계획성이 더 많이 도입되는 자본주의입니다. 복지국가의 개념에서, 기본적으로는 자본가가 주도권을 갖겠지만,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해결되고,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랍니다. 경제학자로서, 이런 개선을 위해 노 대통령에게 충고 한마디를 던지신다면요?

=노 정권의 정치적 기반은 사실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평화롭고 공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 정권이 서민 대중을 자기 파트너로 삼을 수 밖에 없어요. 노동자 계급,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을 안고 가야합니다. 그들과 함께 기업도 개혁해 나가고, 전체 사회도 바꿔나가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노 정권이 한국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수행 교수는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이 성서처럼 읽었던 마르크스 경제학의 고전 <자본론>의 국내 첫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61~67년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석사과정을 마쳤다. 외환은행에 입사해 런던지점에서 일하다, 당시 국내에서는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접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런던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비주류 경제학’ 연구에 들어갔다. 7년만에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82년부터 한신대에서 교수직을 시작했다가 학장 불신임안 사태로 해직됐다. 89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옮겨 지금까지 강단에 서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마르크스 경제학’‘마르크스경제학 특수연구’ 등 학부·대학원에서 3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제변동론> <정치경제학 원론> <알기쉬운 정치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 등이 있다. <자본론>은 89~90년 3권이 번역·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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