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지음, 이평래 옮김 / 소나무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지정학적 위치, 경제적 정치적 역할, 사회적 층위의 분류, 가치 정도의 차이 등 절대적인 잣대는 있을 수 없다. 너무나 가변적인 그것이지만, 무엇이 중심인가는 누가 중심으로 향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심으로의 욕망은 늘 자기 자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방향은 이미 목적을 이루고, 그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잡는다.

 

역사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인공이고, 당연하게 중심적인 시각을 가진다. 주변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하여 다락의 먼지 틈으로 사라져간다. 광활한 초원, 사막. 고원.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억척스럽게 삶을 정복해나간 유목민과 오아시스 정주민들의 역사가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의 내몽골자치구,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 부랴트공화국, 투바공화국, 바슈키르공화국, 타타르공화국이란 낯선 이름들은 낯가림을 하는 의식의 편향성을 드러내게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국가들과는 달리 이들 국가들은 세계의 주변국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세계를 호령했던 칭키스칸의 몽골, 유럽을 공포로 몰았던 아틸라의 훈족, 중국을 위협한 흉노 외 스키타이, 티무르, 선비, 유연, 돌궐 등 많은 유목, 오아시스 세계의 유산은 역사의 큰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키르기스스탄의 15년 독재를 끝낸 시민 혁명인 레몬혁명, 카자흐스탄의 풍부한 자원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에너지 전략, 티베트, 신장자치지구의 독립을 겨냥한 중국의 반분열법 등은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패권 국가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은 위구르 자치족 동요를 주시하고, 미국은 민주주의보다 이슬람 세력 확산에 우려하는 등 중앙 유라시아의 복잡한 인종, 종교, 역사적인 배경을 아는 것은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 남기위한 방법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중심과 주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역사 읽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유목민과 정주민, 과거와 근대의 역사를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따로 떼어내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이제까지 각각을 구분하여 출판되었던 책들에 비하면 총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물론 너무나 방대한 양을 다루기에 지명, 인명만 읽고 있는 듯한 지루함을 한껏 안겨주기도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을 꼽는다면, 민족, 문화의 융합과 분열, 진화를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유목민 문화가 그러하듯이 불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바람의 역사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민족문제를 슬그머니 집어낼 수 있는데, 흉노와 훈의 동족설에 대해서는 근대적 개념인 민족을 적절하지 못한 과거로의 적용을 지적하는 부분. 그리고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한 신생국들과 중국의 하나의 중국을 위한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난무한 시대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중앙 유라시아의 민족의 경계 확정 사업처럼 중앙 유라시아라는 단일체를 머리, 팔, 다리 따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이곳의 생명력은 끊임없는 문화와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적 에너지의 역동성이 아니던가. 유목민의 군사적 우월성이 화약과 대포에 의해 무력화 되었다는 점이 쇠퇴의 원인이라 하지만, 근대적 개념의 민족과 국가, 경계와 장벽들은 그들의 척박한 환경을 더욱 척박한 공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듯 하다.

 

고립된 하나가 아닌,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교류가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중앙 유라시아는 그렇게 재탄생 되어야 한다. 과거의 그들로써.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6-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읽으신 책을 보나, 이 책에 관해 쓰신 리뷰를 보나,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이런 분과 제가 한국 정치에 대해 댓글을 주고받았다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바라겠습니다. 꾸벅.

라주미힌 2005-07-0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헉... 부끄럽습니다.
마태우스님의 생각이 듣고 싶었을 뿐인데...
교수님의 글 여기저기서 조금씩 접하고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http://www.readersguide.co.kr/ 이곳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책 뿐만아니라 연극 쪽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듯 한데, 관심있으시면 회원이 되셔서 많은 공감 나누시길 바랍니다. 초청하는거에요. ㅋ.ㅋ 운빈현님도 있고, 아영엄마님, 비숍님, 물만두님도 계십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리뷰를 조건으로 신간을 받아 볼 수 있는 사이트에요. 기업이면서도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해요. 모임도 가끔 있구요.

마태우스 2005-06-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더스가이드,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리뷰계에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곳이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아마. 페이퍼로 겨룬다면 모를까^^ 제 리뷰실력은 워낙 허접해서 못가겠네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라주미힌 2005-06-2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거하고는 상관없어요. 그냥 독서 커뮤니티입니다. ^^ 사람 좋아하고, 책 좋아하면 되요.

날개 2005-07-0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에 선정되신걸 축하드려요..^^*

라주미힌 2005-07-0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너무 기뻐요. ^_^ 아마 마태우스님의 댓글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듯 해요.
날개님 감사~~ ^^

수양버들 2005-07-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저도 축하드려요. 마태우스님 리더스 가이드에 저도 있습니다.
라주미힌님이 이렇게 RG를 홍보하는 줄 몰랐네요. 공로상 주자고 강추하겠습니다.
라주미힌님은 RG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랍니다. 겁먹지 마세요.

아영엄마 2005-07-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방금 리더스 가이드에 갔다가 님의 글 보고 알게됬어요. 축하드릴려고 부리나케 달려왔시유! 축하해요!! ^^

라주미힌 2005-07-0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양버들, 아영엄마 님/ 앗.. 두분의 지지와 축하에 세상을 얻은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별일도 아닌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ㅋㅋㅋ

서연사랑 2005-07-0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중국의 입장에서 보는 '오랑캐' 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만의 역사로서 볼 수 있는 좋은 책이군요. 머리 속에 담아둘께요.

라주미힌 2005-07-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비로그인 2005-07-0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멋진 리뷰입니다^^
리더스 가이드 만세-.-/ 라주미힌님 만세-.-/

울보 2005-07-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글을 아주 잘 쓰시는군요,,

라주미힌 2005-07-0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 울보님/ 민망합니당.... 그리고 감사합니당. ^^

마태우스 2005-07-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첫눈에 잘쓰신 리뷰라고 생각했답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영엄마 2005-06-2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히 놀라운 솜씨입니다~아니 저 중간의 컵들은 뭘로 잡고 있는건지 놀라울 따름...그러고보니 컵이 12개나 되네요! 손가락으로 하나씩 잡기도 힘들텐데...@@;;

릴케 현상 2005-06-25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레스토랑 서빙 기술이 까다롭다고 하던데...맥주도 대단하군요
예전에 레스토랑에서 서빙한 적이 있는데 좀 하다가 잘렸어요. 저정도 기술이 돼야 일하겠더라구요-_-

인간아 2005-06-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단하네요.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서빙의 달인 본 적이 있는데요, 저 정도의 무게를 다 합치면 20킬로그램이 넘는다는군요. 대단하죠. 흘리지도 않고 무게도 잘 견디고!! 표정은 좀 힘들어보이시는 듯!

2005-06-25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5-06-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개 들수 있습니다. ㅡ..ㅡ;

아영엄마님/ ... 아? 자유인님이요? 찾아봐야겠네요 ^^

날개 2005-06-2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도대체 어떻게 든걸까요? 불가사의군요..+.+

마태우스 2005-06-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네개가 한계....
 
 전출처 : 바람구두 > 알렉스 캘리니코스 -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청강연 내용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남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 투쟁의 규모와 용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투쟁이 일어난 이곳에서 연설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돼있는 분들에게 연대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인권상을 받은 나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 때문에 수감돼 있다니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한이 기쁜 일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인 민족주의를 고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한은 오늘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에 서방 세계인 유럽과 미국에서 남한은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전진하는 경제로,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하는 모범 사례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IMF 위기 전개 이후인 지난 2년간 남한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체제의 모순들을 대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한이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한다는 것이 참말일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1990년대의 풍조는, 특히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이 판을 쳤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동구권이 무너진 이래로 득의 만만한 주장은, 서방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의기양양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인 중심인 미국에서 월가의 주식 시장이 1990년대 동안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 왔다는 사실 덕분에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의기양양은 지난 주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표현했습니다. 그린스펀은 월가의 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입니다. 지난 주 '새 천 년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인들이 자유 시장에서 발휘하는 생산 능력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증거를 우리가 지난 10년가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린스펀은 지난해에는 더 나아간 말도 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미국 경제가 역사를 넘어, 그 동안 자신의 성장에 가해져 온 모든 전통적 제약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포스터모더니즘이 갑자기 월가에 자리잡기라도 한 양 매우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가 '역사를 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린스펀의 시각, 즉 신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보면 아시아 경제의 추락과 IMF위기는 영미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삼 년 전에 남한 같은 경제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정실 자본주의;'즉 재벌과 국가 관료들 사이의 부패한 연계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IMF위기는 남한 같은 경제들을 좀더 자유시장 방향으로 구조조정할 기회이자 또한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의 값싼 생산적 자산을 사들일 기회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과정에 저항하는 것은 구제 불능의 반동입니다. 경제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각 국민 국가가 자신의 경제를 통제하던 지나간 과거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묘사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세계적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을 제시하는 방식 치고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화의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불모의 논쟁을 피하려면 칼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모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변증법적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즉,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모순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예컨대<공산주의 선언>에서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관계들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형성하고 부르주아지가 생산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을 때 그는 앤써니 기든스와 여타 세계화론자들을 150년이나 앞질렀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본래부터의 결함들을 파악했습니다. 즉, 노동착취에 바탕을 둔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위기로 나아가는 본래부터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시각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그는<공산주의 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인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으로까지 인식 수준을 어떻게든 높여야 한다." 자본주의는 원리상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어지간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지점까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착취, 부당함, 환경파괴, 위기와 전쟁으로 나아가는 경향 따위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악의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시각이 새 천 년에 들어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최상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먼저 세계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의 전력을 살펴봅시다. IMF와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정책들을 전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한 지 대략 10-15년이 됐습니다. 해마다 UN이 발행하는 <인간 개발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고서가 서술하는 빈곤과 불평등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 중 최부유층 5분의 1의 소득과 최빈곤층 5분의 1의 소득 격차는 1960년 30대 1에서 1990년대 60대 1로 벌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1990년대에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1997년에 그 비율은 74대 1로 올랐습니다. 1994년과 1998년 사이에만도 세계 최상위 200대 갑부는 재산이 갑절 이상 늘어났습니다. 4천4백억달러에서 1조 4백2십억 달러로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단지 세 사람, 즉 빌게이츠와 월마트 회장 월튼과 브루나이국왕의 재산이 세계 최빈국 36개국의 소득 합친 것만 합니다. 서구의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도 똑같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면, 1973년과 1993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실질 임금은 하락했습니다. 1997년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985년보다 낮았고 최고 수준이었던 1978년 보다는 한참 낮았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처지에서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더 빈곤해질 것이라고 충분한 증거도 없이 우겨댔다는 비판에 맞서 마르크스를 변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부국인 미국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지난 25년간 더 가난해졌음을 봅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빈곤화라고 부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긋지긋하고 증대하는 불평등의 세계에 직면해 불확실성과 다원성을 창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같은 것은 제게 그저 경박하고 엉뚱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시각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이러한 현실을 다루어야 합니다. 
 

세계경제 위기


이러한 현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선진 자본주의의 세 주요 지역을 봅시다. 유렵대륙은 1990년대 동안 경제가 지지부진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동안 악성 디플레 위기를 겪었는데,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로 어떤 주요 경제도 겪은 적이 없는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의 유일한 객관적 근거는 지난 이삼 년가 경제가 비교적 급성장한 미국입니다. 하지만 이 성장은 월 가 주식 시장 호황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것입니다.  

이 호황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양식 정실 자본주의의 사례라는 것입니다. 1년 전, 금융시장에 거액의 투기를 한 롱텀 캐피틀 매니지먼트(LTCM)라는 투기성단기자금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투기 금액이 하도 거액이어서 그 회사의 붕괴는 서구 금융 체제를 파멸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LTCM을 구하러 개입했습니다. 그 투기성 단기자금 회사의 대표이사가 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고위 임원이었다는 사실과 월 가 은행들이 그 회사를 투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실자본주의가 아시아의 현상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십시오. 세계 모든 곳에서 자본가들은 서로 속이고 또 서로 뒤를 돌보아 줍니다.  

미국 주식시장 호황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계급 사람들은 사치 소비재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식시장에 돈을 투자했고, 주각가 올랐고, 더 부유해졌다고 느꼈고,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에, 또 실제로 세계 경제에 유리한 일인데, 왜냐하면 소비 증대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가가 계속해서 급상승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결국 주식을 발행한 기업들의 이윤에 근거하므로 궁극적으로 주가는 이윤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현시기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바로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 즉 투자수익률의 대폭 하락이었습니다. 근래에 미국의 이윤이 회복된 것은 주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한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윤율은 현시기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 초보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이 근저의 비교적 낮은 이윤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월 가 주쇼螢 시장은 추락할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이 정확시 언제 일어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에 IMF는 그들이 "월 가의 중대한 조정국면"이라고 부른 증시 대폭락의 가능성이 지난 한 해 동안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 추락의 충격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미칠 것입니다.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지난해 아시아의 경제추락과 금융 공황을 겪는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소비 지출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미국의 수입을 흡수하는 데 일조했고, 그럼으로써 다른 경제들을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 경제학자 말마따나 미국은 세계 전체를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 소비자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월 가가 추락한다면 이 과정은 역전될 것입니다. 자기의 주가가 떨어진 중간계급 가구들은 가난해졌다고 느끼고는 돈을 덜 쓸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십중팔구 세계 경제를 경기 후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이래로 세계 경제가 겪는 네 번째 세계적 불황이 될 것입니다. 단지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의기양양의 분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 경기 후퇴라는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결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의 해결책


지금까지 저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기양양이 합리적 근거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지금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최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자본주의를 개혁하고자 한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남한에서 이 전통은 지금 민주노동당이라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이래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케인즈적 국가 개입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해왔습니다. 바탕에 깔린 생각은 시장이 스스로는 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시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생각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이른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가 미국 같은 나라의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사회적인 버전(변형)을 대표한다는 생각과 결부되곤 합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천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문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불합리함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시장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선구적 분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그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각각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윤 추구적 투장 행위들의 종합적인 효과는 체제 전체의 세계적인, 즉 일반적인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자본가가 행하는 합리적 행위인 개별 이윤 증대 노력은 세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효과인 전반적 이윤율의 저하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윤율저하 경향이야말로 자본주의가 흔히 겪곤 하는 위기의 숨은 원인인 것입니다. 이 위기는 실수나 우연 또는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한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용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제가 논의하고 있는 전략의 수립자인 케인즈 자신은 실제로 이러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개념은 이윤율과 얼추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그가 '투자의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달리 말해, 그는 사회가 자본가들한테서 투자에 대한 통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의 생산적 자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배력을 그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혁명을 뜻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케인즈 분석의 논리에 두려움을 느껴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본주의를 조절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처 방식의 난점들은 독일의 최근 경험이 보여주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경제적 중심입니다. 1년 전, 독일은 연방 선거를 통해 16년간의 우파 지배가 끝났습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인 '적록연정' 이 성립됐습니다. 적록정부의 선출은 이전 우파 정부가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을 뜻했습니다. 이것은 정부에서 라퐁텡이 한 역할에 반영됐습니다. 사회민주당 당수인 라퐁텐은 새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사회민주당내 좌파계 인사이고, 골수 케인즈주의자이며, <세계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책의 지은이입니다. 재무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그는 유럽 중앙은행에 반대하는 공세를 폈습니다. 그는 경기 부양과 대량실업 완화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조세 부담을 이동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 대기업들은 무지무지하게 격노했습니다. 매스 미디어는 라퐁텐을 악마처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선도적인 우파 신문은 1면톱으로 상단에 크게 라퐁텐 사진을 싣고는 헤드라인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이 사람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가?" 독일의 손꼽히는 기업들은 라퐁텐의 세법개정안이 실행된다면 본사를 독일 밖으로 옮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일단의 손꼽히는 산업체와 은행 경영자들이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드에게 압력을 넣는 공작을 했습니다. 올해 3월초에 그들의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라퐁텐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패퇴에 이어 적록 정부의 급속한 우경화가 뒤따랐습니다. 라퐁텐이 사임한지 겨우 몇 주 안에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독일 외무장관은 요슈카 피셔라는 사람인데, 그는 녹색당 당수로, 전에 혁명가였고 노련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토의 발칸 전쟁을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 안에 슈뢰더는 일연의 신자유주의적 삭감 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일괄 정책들의 골자는 부유층에게는 법인세를 삭감하고 빈곤층에게는 연금을 삭감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퐁텐 사건은 두가지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그 사건은 자기네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순전한 자본의 권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라퐁텐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고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선거로 뽑히지 않은 기업인들에 의해 직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국민이 투표하지만 기업가들이 결정합니다.  

둘째, 라퐁텐 사건은 자본이 자신의 활동에 대한 국민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신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체적인 시야를 갖고 이 두 번째 요점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의 정도를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국적 자본들을 마치 영화<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처럼 그립니다. 그 외계 우주선은 지구 위의 허공을 떠돌아 다니면서 파괴적인 광선을 아래로 세차게 퍼붓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본은 국가적 정박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자기네 국민 국가의 후원에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1년 전에 금융 시장이 심각한 공황에 사로잡혔을 때 상황을 진정시켰던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EDUXK 중앙은행들이라는 형태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여타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대폭 인하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금융 시장조차 국가의 후원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자본주의는 더욱 세계적으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은 수입억 달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시장 차원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조업 제품 수출이 미래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제의 국제 무역 차원에도 들어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갈수록 다국적 기업에 의해 국경을 가로질러 조직되고 있는 생산의 차원에도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자신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국민 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씬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퐁텐 사건은 본때를 한번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좌파의 선택


라퐁텐 케인스주의의 실패는 좌파에게 두가지 선택을 남겨 놓습니다. 첫번째 선택은 항복입니다. 이른바 제 3의 길이 이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제 3의 길 찬양자라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가 말하는 제 3의 길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제 3의 길 원조들인 빌 글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말하는 제 3의 길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제 3의 길은 국가 통제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두의 대안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국가 통제주의나 신자유주의 모두가 좋지 않으므로 그것들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 3의 길은 그러한 대안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외관상의 반대 이면에서 실천상으로 제 3의 길은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받아들립니다. 발칸 전쟁 직후에 두 명의 지도적인 제 3의 길 유럽인들인 토니 블레어와 게르하르트슈뢰더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정책들은 일단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안들로서 이른바 유연 노동 시장, 사람들한테서 각종 복지 혜택들을 뺏어가는 것을 뜻하는 사회보장 ‘계혁’따위였습니다. 그러니 제 3의 길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항복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강연 앞부분에서 제가 예증한 지긋지긋한 불평등의 증대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혁명적 사회주의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개혁 또는 조절하려 하지 말고 완전히 없애고 사회주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즉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그토록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널리 퍼져 있는 생각, 특히 서구의 통념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옛 소련과 동유럽이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가 죽은 사상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역사의 종말’을 뜻한다고 주장한 바도 바로 이것을 가리켰습니다. 미래는 그저 끝없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이 주장은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과 동유럽 또는 북한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제가 당원으로 있는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전세계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속한 자매단체들의 관점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단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마르크스주의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어 나아갈지를 규정하려는 서로 경쟁하는 시도들입니다. 특히 스탈린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전통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에 주창해서 레닌과 볼셰비키 그리고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지속시킨 전통입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


그것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 근거로서 유물론적 역사 이론과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단지 지적인 도구 또는 특정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의 정치적 프로젝트(계획)입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사회주의에 대한 특정 개념입니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로써 정의됩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써만 이룰 수 있습니다. 당도, 의원도, 노동조합 지도자도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변화는 대중의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개념이 이렇다면 옛 소련 동지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권력은 아래로부터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은 사회의 맨 꼭대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셋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됩니다. 오늘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부심이 충만해 고개를 반듯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소련에서 맨 처음으로 관료가 떠올랐을 때부터 레온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스탈린에게 도전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스탈린이 몹쓸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관료 권력이라는 전체 사회 체제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스탈린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인 발전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가 1940년대 말에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썼을 때였습니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기는커녕 단지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 말로 ‘노멘클라투라’라는 관료가 노동자 계급을 집합적으로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 체제와 서방식 자본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하나, 즉 지배계급이 편제되는 방식입니다. 서방에서는 사기업을 통해서, 동구권에서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989년과 1991년의 격변, 즉 소련 등의 붕괴는 특정한 모양을 띠게 됩니다. 1989년과 1991년을 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반혁명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낙후한 사회주의에서 현대적 자본주의로 진일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어느 것도 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형태의 자본주의에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옆걸음질친 것이었습니다. 관료적 국가 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 줍니다.  

러시아인 자신들이 ‘노멘클라투라’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합니다. 바꿔 말해, 옛 관료 지배계급이 민간 자본주의 기업가로 변신함으로써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과두’에 대해 얘기합니다. 과두는 러시아 경제와 러시아 정치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 제왕들을 말합니다. 이 과두는 옛 스탈린주의 관료 출신이었던 덕분에 기업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주민 대중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자칭 민주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출신은 옛 노멘클라투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한 엘리트 집단에서 다른 엘리트 집단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과거의 혁명들은 그저 한 소수파에서 다른 소수파에게로 권력을 이전시켰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란 거대 다수를 위한 거대 다수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변혁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과 삶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저를 이 강연의 첫 부분으로 도로 데려갑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논의하는 것은 옳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최대 비판자였습니다. <자본>에서 그가 한 분석은 여전히 오늘날 세계 경제 모순들을 이해하는 최상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의 주체를 규명하지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에 직면해 절망하기가 쉽습니다.‘초국적 자본이 얼마나 강력한가’, ‘그들이 케인즈주의자인 라퐁텐을 어떻게 쉽게 제거했는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 자본과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세계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노동자 계급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임금 노동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착취당하는 조건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축적과정의 확산 덕분에 노동자 계급은 전세계 인구의 다수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사회변혁의 결정적 주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 
 

이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 문제를 다루는 잘못된 방법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정체성 정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별개인 다원적 이해관계와 투쟁으로 사회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계급의 충돌같은 중심적인 충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껏해야 그 정치는 상이한 사회운동들을 불러 모은 연합체를 건설하려 애씁니다. 정체성 정치는 현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왜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관계가 사회 변혁에 그리도 핵심적이라고 주장했는지 정체성 정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유일하게 또는 가장 억압당하는 사회 집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자본주의 생산에서 그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 덕분에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집단적으로 마비시키고 심지어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래에 일어난 비교적 부분적이고 제한된 변화에서조차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왜 남한은 근래에 부분적·제한적 정치 자유화를 겪었습니까?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로 1987년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학생 운동으로 시작돼 산업의 대중 파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둘째로 1997년 1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중 파업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계급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잘못된 방식은 ‘자율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저는 단지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율주의’는 안토니오 네그리나 질 들뢰즈 같은 일부 유럽 좌파 철학자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자율주의는 자본 노동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권력 관계로 환원시킵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착취가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입니까? 단지 그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매우 흔히 자본가들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착취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다른 요인들, 특히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이 축척하고 착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는 방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생산에서의 착취과정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에 관한 이론이라는 더 큰 틀 안에 자리 매김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출발점에서 출발해,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 다음에 이러한 권력 관계를 사회 전체로 적용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으로 됩니다. 학생도 착취당하고, 주부도 착취당하고, 실업자도 착취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취 개념을 희석시켜 마침내 그 개념은 더 이상 아무런 명확한 경제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자율주의자들은 착취에 맞서는 대중의 자생적 반란에 특권적 의의를 부여합니다. 물론 자생적 반란은 아주 좋은 것이고 사실 굉장히 멋진 것이죠. 하지만 흔히 자율주의자들은 자생적 반란의 구호를 이용해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적개심을 정당화 합니다. 물론 노동조합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조합은 보통 보수적 노동 지도자들이 득세합니다. 노동 조합은 개량주의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니 노동자 계급대중, 즉 조직이 가장 잘 돼 있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함께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노동자 계급 다수의 능동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노동자들이 있는 곳, 노동조합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율주의는 단순히 이론상으로 큰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적용된 바 있는 유럽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빚은 잘못된 정치 전략으로 끝납니다. 
 

맺음말


저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중요한 정치 쟁점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변혁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이 하는 중심적 역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근래에는 이 계급, 노동자 계급이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주요한 투쟁을 치렀습니다. 앞에서 저는 1997년 1월 남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예들도 있습니다. 1995년 11∼12월 프랑스 공공부문 대중 파업은 프랑스 지배계급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려다 실패한 주된 경험입니다. 저는 21세기는 자본과 노동이 이제 진짜로 세계적인 규모로 위대한 대결을 계속할 세기라고 믿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는 이 투쟁과 연계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21세기에 위대한 미래를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문 : http://www.reltih.com.ne.kr/reading/alex2.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알고싶다 > 네그리, <제국> 中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

인상깊은 부분이라 생각되어 페이퍼로 남긴다. 혹시 푸코의 철학에 생소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몇 마디 앞에 써 두겠다. 레비-스트로스의 계보를 이어가는 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의 법칙에 용해시키는 세계관 위에서 작업하게 된다. 흔히 구조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미셸 푸코도 그러하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등의 그의 저작에서 인간을 사회-문화적인 구조의 생산물로 본다. 이를테면 근대인은 근대적 위계 질서 하에서 그들의 생활 양식(아비투스)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베르그송 등 실존주의자들의 사상과는 달리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네그리가 지적하고 있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네그리의 말대로 푸코는 <성의 역사> 이후 반인본주의적인 인본주의를 역설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찬찬히 뜯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푸코와 스피노자를 연계해서 알아두면 좋겠다. 스피노자는 익히 알려진대로 범신론자이다. 돌멩이나 시냇물을 인간과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스피노자의 철학 속에서는 우주 만물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윤리학은 자연의 윤리학, 바로 우주의 에티카이다. 스피노자도 인간을 자연 법칙에 용해시켰다. 그의 철학에서 내재성이란, 개념, 언어, 이념 등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들 속에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쓰인 용어이다. 외부에서 부과된 어떤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글의 흐름에서 내재성과 초월성은 반대로 쓰이는 개념이다.

[  성의 역사에 관한 미셸 푸코의 마지막 저작들은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활성화했던 동일한 혁명적 충동을 다시 한번 살려낸다. 윤리적인 자기에의 배려는 자기 창조의 구성 권력으로 재등장한다. 우리에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저자, 자신의 전생애 동안 반인본주의의 기치를 들었던 사상가가 어떻게 마침내 인본주의 전통의 이러한 중심 교리들을 옹호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푸코가 자신과 모순되거나 자신의 초기 입장을 뒤집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담론의 지속성에 매우 집착했다. 오히려 푸코는 자신의 마지막 저작에서 역설적이고 긴급한 질문을 던진다. 즉,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혹은 반인본주의적인(혹은 탈인간적인)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두 개의 뚜렷한 인본주의 관념 간의 용어상의 혼동에서 생긴 외관상의 역설일 뿐이다. 1960년대의 푸코와 알튀세르에게 매우 중요한 기획이었던 반인본주의는 스피노자가 300년 전에 싸웠던 전투와 효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이해를 제국 속의 제국[고립된 영토]이라고 비난했다. 달리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전체로서 자연의 법칙과는 다른 인간 본성에 관한 어떤 법칙도 허용하기를 거부했다. 도나 하러웨이는 인간, 동물, 기계 사이에 우리가 설정하는 장벽들을 무너뜨리자고 주장하면서, 우리 시대에 스피노자의 기획을 수행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려 한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정확히 <인간>의 죽음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인본주의는 우리가 쿠사노에서부터 마르실리우스까지 앞에서 개괄한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혁명 정신과 충돌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이러한 반인본주의는 직접적으로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세속화 기획을, 보다 정확히는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내재성의 구도의 발견을 뒤따른다. 두 기획들은 초월성에 대한 공격에 근거해 있다. 자연을 넘어선 권력을 신에게 부여하는 종교적인 사상과, 자연을 넘어선 그 동일한 권력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근대의 "세속적인" 사상 사이에 엄밀한 지속성이 있다. 신의 초월성은 간단히 <인간>으로 이전된다. <인간> 이전의 신처럼,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이러한 <인간>은 내재성의 철학에서 자리를 갖지 못한다. 신처럼, 이러한 초월적인 <인간> 모습도 재빨리 사회적 위계와 지배를 부과하는 데에 이른다. 그렇다면 모든 초월성에 대한 거부로 인식되는 반인본주의를 결코 활력의 부정과, 즉 근대적 전통의 혁명적 흐름을 고무하는 창조적인 생활력에 대한 부정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초월성에 대한 거부는 이러한 내재적 권력, 아나키적인 철학 기반, 즉 "신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푸코의 마지막 저작들에서의 인본주의를 모순적인 것으로, 심지어 그가 20년 전에 주장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조차 보지 말아야 한다. 일단 우리가 우리의 탈인간적 신체와 정신을 인식한다면, 일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유인원과 사이보그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활력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자연을 활성화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현실화하듯이 우리를 활성화하는 창조적 역능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이다. 즉, 푸코가 "자기에 대한 자기의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 즉 자기 자신과 우리의 세계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지속적인 구성 기획이다.  ]  

인간에게 순수한 금맥과도 같은 자유로운 의지가 없다고 해서 맥빠지신 분들, 기운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과학지식 상업적 독점의 벽을 깨라


△ 상업 저널의 ‘지식 상업화’에 맞서 2000년 과학자들 스스로 만든 무료저널인 ‘공중과학도서관’(PLoS)의 포스터. 그림 안 영문은 “저널, 당신은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심사했는데…. 왜 논문을 읽기 위해 돈을 내야 합니까?”라는 의미이다. 제공


과학자들에겐 두가지 고민이 있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날은 1996년 7월5일,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7년 2월27일이다. 국내 첫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가 태어난 것은 1999년 2월12일, 탄생이 알려진 것은 2월19일이었다. 왜 공표기간이 영롱이는 7일 만이고, 돌리는 7개월일까?

돌리의 ‘아버지’ 이언 윌머트 박사는 돌리의 탄생을 <네이처>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곧바로 알렸다.

과학자들의 첫번째 고민은 저널이나 학회지를 통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는 두달 동안 전자저널을 볼 수 없었다.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저널 구입비용을 학교 예산이 따라가지 못해서다. 카이스트가 지난해 구입한 학술논문 비용은 1100여종의 인쇄저널에 11억원, 5천여종의 전자저널에 6억원이었다.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평균 도서구입비용은 연간 7억여원이다. 카이스트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인 셈이다. 실제로 유명 저널인 <사이언스> <셀>은 비영리 학술기관의 경우 인쇄본 구독료를 지난해에 비해 올해 각각 5%, 10%씩 올렸다. <네이처>는 무려 121%가 올랐다. <사이언스>의 전자저널 연간 구독료는 지난해 1380달러에서 올해는 1791달러로 30%가 비싸졌다. 과학자들의 두번째 고민이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지식의 상업화’에 맞선 ‘카피 레프트’ 바람이 과학자들에게 고충 해결의 희망을 주고 있다.

17세기 중반 이래 과학자들은 저널이나 학회지를 통해 논문을 배포하고, 주로 도서관과 다른 연구자들이 이를 구독해왔다. 영화나 책, 음악과 달리 학술논문은 생산자와 이용자가 동일하다. 일반 저작자들과 달리 연구자들은 저작물을 통해 영리를 얻기보다 가능한 한 널리 이용되고 인용되기를 바란다. 과학자들이 저널이나 학회지에 게재료를 내가며 기고를 하는 이유다.

연구자들은 여러 사람에게 배포할 목적으로 학회나 출판사에 논문을 넘기지만, ‘저작권 이양 동의서’는 논문의 자유로운 이용에 족쇄를 채우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상업저널들은 자신들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자들에게 이른바 ‘잉겔핑거의 법칙’이라는 이중 게재 금지와 엠바고 등에 대한 각서까지 받는다.

‘오픈 액세스’ 98년 미국서 시작

상업 저널에 대한 저항운동은 미국 대학에서 시작됐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학도서관 연맹체인 스팍(SPARC)은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논문에 대한 저작권 양도를 유보하고 출판사에는 이용 허락(라이센스)만을 주도록 권고하고 나섰다. 이 자유로운 학술정보 유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칭해 ‘오픈 액세스’(정보공유)라고 불린다. 이상호 한국과학정보연구원 정보포털실장은 “국가에서 연구자들에게 연구하라고 돈을 주고, 연구결과물을 보라고 또다시 돈을 주는 상황에 대한 반성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픈 액세스 활동은 2002년 2월 ‘부다페스트 선언’(BOAI), 2003년 6월 ‘베데스다 선언’, 같은해 10월 ‘베를린 선언’ 등이 잇따라 공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들 선언의 공통점은 출판 때 온라인 상에서 정보를 즉시, 무료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공공저장소에서 영구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 의회에는 ‘과학에 대한 공중접근’ 법안이 제출됐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04년 공공기금으로 제작된 연구데이터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을 장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네이처’ ‘사이언스’등 유명한 저널들은
과학자들한테 게재료를 받으면서
구독료까지 매년 크게 올리고 있다
이중게재 금지와 엠바고 각서까지 받는다
‘지식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이 불붙고 있다
과학논문은 인류 전체의 업적이므로
모두가 거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픈 액세스 운동의 실천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무료 저널이다. 1989년 노벨 의학상 수장자인 해롤드 바무스 박사와 미국 스탠퍼드대의 패트릭 브라운 박사, <셀> 편집인 출신 비비안 시겔 박사는 2000년 10월 ‘공중과학도서관’(PLoS)을 온라인 상에 설립해 모든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창간사에서 “인류 전체의 업적인 과학논문은 혈액처럼 유통돼야 하며 과학의 성과를 모든 과학자 및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들은 과학잡지 산업이 연간 100억달러의 막대한 이윤을 올리며 과학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아 이익을 취하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공중과학도서관은 2003년 과 2004년 을 잇따라 창간했다.

무료저널 · 셀프아카이빙 추구

대표적 오픈 액세스 저널 출판사인 ‘바이오메드 센트럴’(BMC)은 생물학·의학 등 154종의 저널을 발행하고 있다. 스웨덴 룬드대학도서관이 운영하는 오픈 액세스형 저널 디렉토리(DOAJ)에는 1380종의 무료 저널이 알파벳 순과 주제별로 정리돼 있다.

오픈 액세스의 두번째 형태는 지식저장소(디시플리너리 레포지토리)다. 연구자의 ‘셀프아카이빙’에 의해 지식이 저장되는 방식이다. 셀프아카이빙이란 연구자가 기관저장소나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OAI) 기반 저장소에 자신의 저작물을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지식저장소의 가장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것은 ‘아카이브’(arXiv.org)다.

아카이브는 1991년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폴 진스파그 박사(현 코넬대 교수)가 처음 시작한 오픈 액세스 인터넷 전자서고다.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출발해 지금은 물리학 전반과 수학, 컴퓨터과학, 비선형과학, 생물학 쪽으로 분야가 확대됐다. 아카이브는 코넬대가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11일 현재 32만3142건의 논문이 실려 있다. 하루 접속 건수가 11만~13만회에 연간 1300만건의 논문이 다운로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물리학연구정보센터가 1996년부터 아카이브서버의 미러사이트를 운용하고 있으며, 국내 물리학자들도 한달에 1천여건의 논문을 기고하고 있다.

미러사이트 운영을 처음 시작한 민동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한국학술진흥재단 본부장)는 “‘정통파’ 물리학계에서는 7~8년 전까지만 해도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에 논문을 내지 않았다”며 “많은 물리학자들이 연구실에 들어서면 아카이브 접속부터 시작해 전세계에서 진행되는 연구상황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디스페이스(Dspace)는 대학 구성원들이 생산한 연구 및 강의콘텐츠를 보관하는 디지털 서고로,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라도 모든 강의 내용을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영향력 점점 커져

오픈 액세스 저널은 전세계 학술지 2만여종의 6%에 불과하고,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에 등록된 8700여 종의 학술지 가운데 191종(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향력은 작지 않다. 네덜란드 엘스비어출판사의 유료 디렉토리인 ‘사이언스 디렉토리’에서는 논문의 연간평균 다운로드 건수가 28건인 데 비해 ‘바이오메드 센트럴’은 89배인 25000건이 다운로드되고 있다. 무료 저널인 <저널 오브 메디슨 러닝 리서치>의 영향력 지수(IF·임팩트 팩터)는 3.818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1위, <비엠시 퍼블릭 헬스>는 0.294로 공중보건분야의 87로, 저널의 유·무료와 임팩트 팩터에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용어설명

●잉겔핑거의 법칙=<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의 편집자였던 프란츠 잉겔핑거가 다른 곳에 이미 게재됐던 논문은 자신의 잡지에 실을 수 없다고 공표한 데서 비롯된 학계의 불문율.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미국 학술정보전문 민간기관인 과학정보연구소(ISI)가 해마다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과학기술분야 학술지를 엄선해 이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데이타베이스다. 국내에서는 20여개의 저널이 등록돼 있다.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어떤 저널에 게재된 논문들이 SCI급 저널에 실린 다른 논문들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지수. 계산은 ㄱ저널에 2002~2003년 2년 동안 논문이 1000편 발표되고, 이 논문들이 2004년 한해 동안 2000번 인용됐다면 ㄱ저널의 임팩트 팩터는 2000/1000=2.0이 된다.


도움말 주신 분=민동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정현식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상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포털실장, 황혜경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지식정보센터 선임연구원,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대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