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상은 유럽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던 시기에 태동되었다.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는 생산의 중심을 가정에서 공공장소로 옮기고 남성의 노동력만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은 생산활동에서 배제도니 채 가사만을 전담하게 되었고 특히 새로 생성되기 시작한 부르주아 여성들은 어떠한 노동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 윌스톤크래프트는 '여성옹호론'에서 18세기 부르주아 여성들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덕목이 사실상 가부장적 사회의 요구와 훈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의 행복이라는 개념도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줄 것을 주장하였다.
19세기에 들어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뿐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경제적 기회도 똑같이 제공할 것을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과 줄리엣 테일러는 그들의 합리성에 개념에 근거하여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한다는 도덕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자아 실현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든, 없든 간에 여성에게도 모든 가능성을 갖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의 고립된 사상이었던 페미니즘은 20세기에 들어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60-1970년대는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특히 서구에서 여성의 지위에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여성의 행복이나 진정한 해방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유명한 베티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슈퍼우면이 되기를 요구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백인여성을 대상으로하여 국한되었다는 점과 성적차이를 전적으로 환경적인 것으로 돌리고 동시에 남성적인 가치에 대해 우월성을 부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또한 성별을 구별하는 페미니즘보다 성별에 중립적인 인본주의를 도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도적이고 법적인 성차별을 점진적으로 폐지해 나감으로써 여성의 법적 지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의식개혁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을 자본주의 제도에서의 계급적 착취구조로 설명한다. 여성을 하나의 종속적 계급으로 보고 지배계급인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여성을 가정에서 공적 산업으로 재투입시키고 육아를 사회화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그 분석의 대상이 노동에 제한되어 있고, 여성억압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또한 여성해방의 선결 조건인 자본주의 체제의 타파와 변혁운동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이 현실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문제가 단지 성에 의한 지배가 아닌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임을 환기시키고, 여성의 생산활동, 가족과 사회내 위치, 결혼제도가 역사적으로 변화되어야함을 강조하여 현재의 여성을 억압해 온 제도와 관행의 변화에 대해 환기시켜 주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어서 등장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뿐 아니라 가부장제의 성차별에서도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급진주의에서 말하는 가부장제와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체제가 상호결합되어 성차별적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상호결합하여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가가 주요 관심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논의가 여성의 압박을 자본에 의한 것으로만 들리고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압박에 의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세가지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첫째, 일원론으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상호결합해서 하나의 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둘째, 이원론으로 가부장제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경제구조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셋째, 다원론으로 여성 억압은 생산, 노동, 성, 가족 등 각 영역에서 여성억압의 기제들이 다르게 작동되어진다고 본다.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의 문제를 생산적 작업, 재생산, 성관계, 자녀양육으로 보고 이것들의 변황벗이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성별분업 철폐 투쟁과 계급관계를 폐지하는 투쟁 간의 구조적 연결이 체계화되지 못한채 열거되고만 있어, 여성억압을 가중시키고, 무엇이 여성운동의 선결과제인지 혼란을 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억압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 생태, 출산과 어머니의 역할, 성차와 성 활동들에 대해여 논하고 여성의 예술, 종교, 과학, 시, 문학, 노래, 춤, 활동 등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여성의 억압을 가장 근본적인 인간 억압이라고 보고 그것을 어떤 형태의 불평등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틀 태에 끼워놓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낸다고 비판하면서, 현재의 체제 자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정면도전하고 전체적으로 바꿔보겠다는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성억압은 단지 법률제도상의 차별이나 계급억압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지배집단이 여성이라는 집단을 지배하는 권력구조로 인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남녀 간의 신체적인 차이가 성불평 등의 핵심요인으로 보았다. 따라서 초기에는 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해방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는데, 여성해방의 목표를 출산을 둘러싼 남녀간의 성차가 존재하는 않는 사회로 보고 이성애를 거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였다. 대표적으로 케이트 밀레트는 양성을 주장하였다. 메리 데일리, 매키넌 등은 동성애를 주장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후기 급진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였다. 즉, 여성적 가치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여성문화를 남성문화의 대안적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드리안 리치, 메리 오브리엔은 출산, 양육경험, 모성역할이 여성을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보호하는 감각을 갖게 하며 창조성과 직관력, 감각을 지니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지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립구도로 풀어냈으나 실제로 여성억압의 양상은 성 이외의 계급, 민족차별 등이 혼합되어 보다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함께 이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하는데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강간, 가정 내 폭력, 포르노 등의 성문제를 본격적으로 폭로하고 가시화하였고, 성차별 문제를 여성운동 내로 끌어들여 실천활동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이 페미니즘에 도입되면서 여성해방에 관한 논의는 더욱 차원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들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구조적 접근보다는 개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서 찾으려 하였다. 즉, 여성성이 어떠한 심리 기제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내면화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치중한 것이다. 대표적인 연구자로 초드로우와 디너슈타인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여성과 남성이 다른 심성을 갖는 근원은 여성의 체험(삶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양육의 부모 공동부담을 주장하면서 남성과 여성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름에서 시작해서 여성문제에 접근하였다.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개인의 심리구조에서 찾으려 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남성과 여성간의 인성차이에 돌려 버렸다는데 비판을 받는다. 그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족구조, 사회제도 등에서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문제를 보는 영역과 실천적 전략의 범위를 넓혀 보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고, 남녀 간의 성차이를 단지 사회화 과정에서 찾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개인 심리 속에서 각인되어진 보다 뿌리깊은 곳에서 문체를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가장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일한 요소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구조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접근을 비판하고 여성이라는 범주가 남성과 대비되는 이원화된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해체'를 강조한다. 여성의 보편적 특성은 없으며, 지위 경제조건, 정치상황,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맥락에서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론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중화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성성, 여성범주의 해체 전략이 종국에 가서는 여성집단을 부정하게 될 때 여성문제 해결의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에코페미니즘(생태 페미니즘)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태여성론으로,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또한 지금까지 남성중심·서구중심·이성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뒤바꾸려는 실천지침이기도 하다.
이것은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위기가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남성이 곧 문명이고, 여성이 자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남성과 인간문명을 타도 대상이 아닌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문명은을 처음부터 하나였다고 보고,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해 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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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의 고혹적인 목소리에 스르르 눈이 감긴 영화.

너무나 매력적인 여성이다.

만화같은 영화... 총알은 알아서 피해가고, 알아서 맞춘다.

제작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돈이 아깝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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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이가 하나 둘 쓰러질 때마다 내 가슴이 시리다..
그 시리즈의 마지막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필적할 만한  비극이었다.
마지막이라니... 

그런데 다른 시리즈 만들어질 것 같다. 루카스 죽은 후에...
돈이 되걸랑.

 

에피소드 1,2,3의 치명적인 약점은 영화를 장악 할만한 캐릭터가 없다는 점.
요다라는 가상의 캐릭터는 제외....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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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약탈에서 과시적 소비에 이르는 여정(旅程)
유한계급론
토르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2005년 초판을 손에 쥐고 있는 감흥은 약간 남다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978년 “정수용”이 옮기고, “광민사”에서 펴낸 것이었다. 출간되고 얼마 뒤 이 책은 금서(禁書)가 되었고, 1987년 해금되기까지 법적으로는 읽는 것이 금지 당했다. 오늘날엔 경제학 전공자들보다는 인문 ․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더 많이 읽히는 고전이 금서가 될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했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내가 너무 둔하여 혹시 이 책에서 금지될 만한 어떤 사유(思惟)들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존 K. 갤브레이스는 『갤브레이스가 들려 주는 경제학의 역사』(2002년)에서 베블런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노르웨이 이민 가정의 후손이었던 베블런은 부유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한계급론』에서 그가 유한계급(leisure class)에 대해 보이고 있는 냉소적인 독설과 상관없이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다만 그의 부친인 토마스 베블런은 매우 검소한 사람으로 자식을 이웃한 칼턴 칼리지에 입학시키는데, 이것은 자식의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베블런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과시적 여가” 활동에 대해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이런 그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한계급론』2005년판은 1980년판에 실렸던 존 K. 갤브레이스의 서문이 빠진 대신, 앨런 울프의 “『유한계급론』의 현대적 의미”가 새롭게 수록되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혁명적이기 보다는 훨씬 냉소적이었던 베블런은 부자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파하고자 했다. 적어도 19세기부터 부자들은 자신들을 가치 있는 계급으로 믿기 시작했고 또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은 - 가난한 자들은 소유하지 못했다고 믿은 어떤 - 대단한 가치는 근검절약이었다. <앨런 울프, 본문 8쪽>

위와 같은 이야기는 베블런과 동시대를 살았던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오직 경건한 신앙심만으로 신의 영광을 추구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자본주의 혁명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음을 묘파한 이래 지속된 이데올로기였다. 베블런과 베버 보다 앞선 세대였던 고전파 경제학자 로버트 맬더스(Robert Malthus)는 그의 대표작인『인구론』에서 “빈민에게는 청결함을 권고하지 말고 그 반대의 습관을 기르도록 장려해야 한다. 도시의 거리는 좀 더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고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베버의 관점을 맬더스의 그것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이 누리는 부의 원천을 신의 은총과 동일시하고, 빈민 계급을 선천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구제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계급으로 취급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자본가 계급, 그의 용어를 빌자면 풍요로운 소비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유한계급”의 이런 근거 없는 도덕적 자부심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블런은 경제학자로 분류되지만 경제학자 계보 가운데 특정 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특이한 인물이다. 『유한계급론』에서도 역시 경제학적 방법론 보다는 사회학적인 연구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경제학 전공자들보다 사회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찾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베블런은 종종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되곤 했는데, 그 까닭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한계급제도는 봉건시대 유럽이나 일본처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발달했던 야만문화에서 가장 잘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계급간의 구별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러한 계급적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요인이었다. <본문 23쪽>

문화의 진화과정에서 유한계급제도와 소유권제도의 발생시점은 일치한다. 이 두 제도는 경제력이 동일한 상황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발생시점 역시 필연적으로 일치될 수밖에 없다. <본문 43쪽>

『유한계급론』은 제1장 「유한계급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제14장 「금력과시문화를 표현하는 고등학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당대 유한계급의 기원과 현시적 소비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한계급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학문들 - 인류학·역사학·심리학 - 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론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방법론과 매우 흡사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베블런을 문화연구의 선구자로 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더해 베블런이 노동계급과 여성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막 여성 참정권 운동이 시작될 무렵이었던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때 그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에 대한 소유권은 좀더 원시적인 야만문화에서 여성 포로나 노예를 강탈하면서 생겨난 것이 확실하다. 여자를 강탈하여 전유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여자들이 전리품으로 유용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리품인 여자를 적으로부터 강탈하는 관행은 소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관례를 낳았고, 그로부터 남성이 가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여자들을 비롯한 다른 포로들이나 하층민들까지 노예화되는 과정, 그리고 적으로부터 강탈해온 여자들 이외의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까지 소유 - 결혼 관례가 확대되는 과정을 동반했다. <본문 44쪽>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행동 양식이 본질적으로는 과거 야만 시대의 약탈문화로부터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더 이상 공동체의 일상적인 삶이 약탈 활동에 의존하지 않게 된 뒤로도 축적된 금전이 약탈 활동의 명예와 우월함, 성공을 대표하는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어떤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필수적으로 일정한 부를 축적해야 하며, 명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를 획득하고 축적한 것 못지않은 소비가 필요해진다. 베블런은 이를 "금력과시문화(pecuniary culture)"라 불렀다. 그러나 재화를 개인의 단독 소유물로 인정하는 모든 사회에서 한 개인이 정신적 안정감,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친숙한 부류보다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탈과 사냥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약탈이 아닌 생산 활동, 육체노동은 상대적으로 비천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고, 여성과 여성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로 취급을 받게 된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서준식의 생각』에서 “일찍부터 땀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깨우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 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도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말부터 근육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서준식(2003년),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중에서

베블런은 남자들(유한계급)이 존경을 얻고 유지하려면 단순히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 낭비에 가까운 풍요로운 소비는 우아하고 고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베블런이 주장하는 유한계급의 여가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無爲)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비생산적인 용도로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물질적 소비를 동반한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예의범절은 인간의 탁월함, 가치 있는 영혼의 소유자임을 드러내는 방편에서 전도되어 허례허식으로 흐를수록 더욱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유한계급의 상징이 된다.

『유한계급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IMF한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2000년 2월 18일자 <한국일보>는 대우경제연구소의 「소득불평등의 심화에 따른 소비의 왜곡현상」란 보고서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고소득층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며, 중산층은 이들을 「모방」하고 저소득층은 아예 「자포자기」심정으로 과소비 대열에 끼어든다.”고 보도하고 있다. 베블런은 필요(need)와 욕구(want)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보석이다. 보석이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그것이 결국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는 단지 투명하고 반짝이는 돌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가장 로맨틱한 사랑의 상징(혼인 예물)으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과시적 낭비라는 명예로운 목적에 이바지함으로써 아름다운 물건(명품)이란 명성을 획득한다.

이는 다시 명품(名品) 소위 “럭셔리 신드롬(luxury syndrome)”으로 이어진다. 베블런은 제5장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금력」에서 현대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육체적 안락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과시적 소비에 지출하는 비용을 늘리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아니라 인습적인 체면치레의 기준에 맞추어 소비하는 재화의 양과 질을 높이려는 욕망에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인정하는 명예롭고 품위 있는 생활양식의 일반적인 수준이 최상류계급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명품 소비 열풍은 이렇듯 자기 자신을 - 실제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지위의 인간으로 -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개념미술가(conceptual art) 제니 홀저는 과시적 소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인 도시의 한 전광판에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 욕망으로부터 날 좀 지켜줘)”란 문구를 내보내는 실험적 작품을 전시한다. 홀저는 베블런과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삶, 그 핵심에 놓인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필요(need)’가 아닌 ‘욕망(want)’이라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습관적으로 비싼 물건을 찾게 되고 아름다움과 명성을 습관적으로 동일시할수록 아름답지만 비싸지 않은 물건은 아름답게 평가되지 않기에 이른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의 모 백화점에서 가격을 올리자 물건이 좀더 잘 팔리더라는 일화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경제학자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 리카도와 같은 고전학파나 시카고학파 같은 신고전학파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인 이기주의자로 간주하고, 이런 원리에 따라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베블런은 고전적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반하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소비의 원인은 단시 필요만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여 현대 대중사회에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자랑하고 싶은 이들에 의해 과시적으로 일어난다. 그들은 소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시간이든 낭비를 일삼는데, 이런 과시적 소비는 유한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다시금 모방된다. 이런 현상을 오늘날 우리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진다.”- 라 부른다. 즉,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분명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러시아 10월 혁명과 함께 출발해 지난 1991년 무렵 구소 연방의 해체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으로 지난 18세기 무렵 서구 유럽이 제국주의를 통해 축적한 자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이며 이것을 가능하도록 한 토대엔 인간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안락함의 기억이 얼마나 질긴지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그 기억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종교적 가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인류는 이미 단일 종파, 단일 종교로 통합되었는데,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물신(物神)”이다.

베블런은 인간의 소비 혹은 욕망을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한 고전학파나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경제이론을 완전히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블런의 비판이 날카롭긴 했으나 그가 경제학에 새로운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마크르스처럼 유한(자본가)계급에 대해 혁명을 주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베블런의 공적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가 유한계급에 대해 던졌던 냉소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베블런의 지적들은 이후 정치적인 측면에서 C.W.밀즈(『파워엘리트』), 사회학적인 측면에선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선 제임스 트위첼(『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럭셔리 신드롬』)에 의해 오늘날 좀더 세부적인 측면으로 분화되어 풍요롭게 계승되고 있다.

『유한계급론』의 2005년판 역자는 베블런의 비판을 “슬픈 냉소”라 말한다.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문화”를 공부하면서 “문화연구”란 학문이 현실 사회를 변화시킬 대안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계몽의 기획)을 모색하는 학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어야 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물론, 본질적으로는 변화가 없다손 치더라도) 변하는데, 학문하는 자의 발걸음은 이리도 느리기만 한 현실 자체가 사회와 시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냉소는 아닐까 라는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구여! 바로 보마!”란 다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느려터진 한 인간의 세상사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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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그 흔해 빠진 것 가운데 하나인 gum도 100원짜리는
찾기 힘들다.
그야말로 요즘 gum값은 gum값이 아니다.
10,000원
한 장 가지고 장에 가면 살 게 없다는 요즘...
어느 고등학교
앞 문구가게에서 파는100원짜리 과자들.
오늘처럼 100원이 이렇게
커 보인 적이 없었다.

 

100원짜리
100어치가 이만큼.
오징어 냄새, 오징어 맛 조금 그리고 매운
맛 조금
식품의 유형 : 스낵과자류(유처리 식품)
주성분 :
소맥분(미국산) 51%
- 미국산 보릿가루가 반 넘게 들었다는

 

팜유,
옥수수 전분, 오징어 엑기스, 백설탕
- 엑기스 ...아직도 이런
일본스러운 말을 쓰다니...

 

그냥
배 고프면 먹어 줄만한데 요즘 초등학생들도 이런 것은
안 먹을텐데
중고등학교 앞에서 이런 과자가 팔리다니...

 

이것은
널리 알려진 회사 제품, 상자에 몇 개씩 넣어 파는데
여기서는
그 상자를 뜯어서 낱개로 100원에 팔고 있다.
한쪽은 과자 다른
쪽은 Schokolade(chocolate)를 씌워 놓았다.
Schokolade 맛이
진해서 과자 맛은 잘 모르겠다.

 

대만에서
들여와 파는 것
유형 : 사탕 (젤리)
원료 : 과당, 코코넛,
설탕, 카라기난, 곤약 등, 합성 착색료

몇 해 전 이런 것을
먹던 아이가 이런 게 숨구멍을 막아 숨졌음.


세개로 나눌 수 있다.
수입품이라 그런지 불량식품스러운 분위기는
안 난다.
원료
밀가루, 식물성 유지(팜유), 설탕, 코코아
파우더, 소금, 탄산수소나트륨
이스트, 소야레시틴(대두), 초콜릿
향, 옥수수 시럽, 말트시럽.....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먹을만한데
화학약품 냄새가 좀 나는 듯.

 

팥 같기도 하고 옥수수 같기도 하고....
비둘기 모이로 쓰면 딱
좋을 것 같다. 이만큼이 100원
한 줌 입에 툭 털어 넣고 우물거리면
끝.....
이것은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 낸 것.

 

14g

주원료 : 가공 초코렛 (국내산), 설탕, 물엿, 퍼핑볼 스낵
먹을만
하다.

 

널리
알려진 회사에서 나온 것.
여러개가 한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인데
상자를 뜯어서 낱개로
팔고 있다. 달큼, 짭짤....

 

오늘
산 과자 가운데 가장 맛 없다. 불량식품 등급
튀김기름냄새가
짙게 나며 양파가 들어있어 달착지근.
바삭거리지 않음.미국산
옥수수가루 65%

 

이름이
마음에 든다. 쌀대롱. 대롱이라는 말도 이제는 pipe나
horse
따위에 밀려 사라져 가는 듯.
그러나 쌀은 5%밖에 안 들었단다.대부분은
미국산 소맥분
생김새부터 먹음직스럽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다.

 

소맥분
25% (미국, 호주 수입산)
프랑스풍의 고급과자라고 적혀있음.
싸구려,
불량식품 티는 안 남. 먹을만 함.
과자 사이에 발라 놓은 Schokolade
맛은 나지 않음. 너무 적어서.

 

Pizza맛이
나는 사탕이라는데 좀 시큼털털
불량식품등급에서 겨우 빠져
나옴.

 

12g,
28알, 빛깔만 좀 점잖다면 약으로 보기 쉬움.
백설탕과 포도당이
주성분, 구연산 첨가.복숭아, 사과향....
싱거운 듯,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

 

포장이
만만치 않다. 포도맛도 난다. 수업시간에 한 알씩 꺼내
먹으면
되겠다. 서른 알쯤 들어있다. 한 입에 다 털어 넣으면
알맞을만큼...

 

이건 가장 비싸다. 120원
포장도 제법 비싼 티를 낸다. 이것 또한
미국산 소맥분이 주 재료.
같은 종류 다른 과자들이 평균 12g인데
이것은 15g이나 된다.
3g 더 많아서 20원 더 비싼가보다.
그리고
이름...산도가 뭔가, 산도가....
sand를 제대로 읽지 못한 일본
사람들이 [산도]라고 읽었을테고
멋 모르는 어느 한국사람이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오늘 날 이렇게
널리 [산도]를 퍼뜨린 것이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서른 해 전 쯤, 생각나는 물가는
연필, 문구용칼, 공책...10원
어지간한
문구는 100원 안에서 살 수 있었다.
쮸*바 50원, 부라*콘 150원,
라면 50원
건빵 30원, 오징어 다리 50원
설탕 녹여 먹는 것,
달고나 10원씩
옥수수 한 방 튀기는데 250원
gum 1통(5개
들이) 30원


이제
백원은 뷁원이 되어간다.
은행에서조차도 백원짜리는 골치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100원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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