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공중파를 쏘다

마포FM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엘 양장점’에서 만나는 8명의 언니들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 백수의 넋두리를 넘어 역사이야기까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대중매체에서 이반은 일반의 시선으로 ‘보여진다’. 이반은 그렇게 타자화된 존재다. 주류 미디어에서 홍석천이 누더기 같은 상처를 입으며 동성애자 최초로 ‘방송 시민권’을 획득했지만, 이반은 아직 일반화되지 못한 존재다. 신문, 방송… 주류매체라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여지기만’ 했던 레즈비언들이 스스로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레즈비언들이 만든 라디오 방송이다. 게다가 인터넷도 아닌 공중파다. 서울 하늘에 ‘레주파’가 쏘아올려진 것이다.

왜곡된 언론 보도, 대응도 지겨워라~

레주파는 ‘레즈비언 주파수’라는 뜻. 한국 최초로 레즈비언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8명의 ‘언니’들이 모인 제작팀이다. 이들은 ‘언니들의 맞춤방송’을 모토로 <엘(L·레즈비언) 양장점>이라는 1시간짜리 음악 프로그램을 만든다. 수요일 밤 12시, 마포구 일원에서 FM 주파수 100.7MHz를 맞추면, <엘 양장점>의 ‘디자이너’(DJ) 청명(27)씨의 목소리가 귀에 감긴다. <엘 양장점>은 금세 레즈비언 사회에 입소문이 퍼졌다. 수요일이면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엘 양장점>을 놓치지 말라는 글이 올라온다.

지난 9월20일 서울 마포구의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마포FM’ 녹음실. 프로듀서 치키스(29)씨가 음악을 흘리자, 청명씨가 대본 읽기를 멈추고 한마디 한다. “어쩌면 기존의 운동 방식과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왜곡된 언론 보도에 대해 하나하나 대응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이젠 당신들은 당신들 맘대로 떠들라는 거예요.”


△ 지난 9월20일 녹음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레주파 스태프들. 이날은 레즈비언의 성을 주제로 게스트인 장군(25)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레주파 제공)

그동안 동성애자들은 성적 소수자를 ‘몰이해’하는 언론에 쉬이 상처받았다. 불과 두달 전에도 문화방송 뉴스가 청소년 동성애자를 탈선한 양 묘사했다며 10여개 단체가 항의성명을 낸 터였다. 동성애자들은 알맹이 없이 선정적인 신문과 방송을 강력히 비판했지만, 미디어는 관음증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시시포스의 노동 같은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고 있다.

레주파는 지난 4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과 RTV, 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여성영상집단 움이 기획안 ‘주파수 엘을 잡아라’는 미디어 교육에서 결성됐다.

“라디오에 대한 매력이 있었어요. 라디오는 끼리끼리 모이는 커뮤니티성이 강한 매체이고, 무엇보다 아우팅의 위험이 없잖아요. 원래 영상 작업을 좀 했었는데, 라디오도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청명씨에게 14주 동안의 교육은 레즈비언의 눈으로 보고 레즈비언의 입으로 말하는 연습 기간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을 동성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실습 작품 ‘대승미’를 떠올리며 스태프들은 까르르 웃었다.

“우리가 보기엔 장금(이영애)이와 한 상궁(양미경)에서 레즈비언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우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거라고 할까. 그래서 장금이 대신 레즈비언 주인공인 승미를 내세웠죠. 하하.”

이들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마포FM에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배정받은 것이다. 8명이 스태프로 들어갔다. 이소라 못지않은 목소리를 가진 청명씨가 DJ를 맡고, 나머지 7명은 작가와 엔지니어, 프로듀서를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엘 양장점>은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전해드리는 방송입니다. 자, 그럼 우리 역사를 만들어볼까요?”

8월10일 청명씨의 청명한 목소리로 첫 전파를 띄웠다. 첫 곡은 게리 할리웰의 와뚜와리송 <라이드 잇>(ride it)이었다. 첫 방송은 무사 통과. 그러나 2주째 녹음에서 초유의 방송사고가 났다. 방송 시작 2~3시간을 앞두고 녹음을 끝냈는데, 그만 파일이 사라져버린 것. 밤 12시부터 약 10분 동안 ‘공백’이 흘렀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청명씨는 애드리브만으로 예정에 없던 생방송을 했다. 1시가 돼서야 제대로 된 방송을 내보냈다.

숨은 그녀 찾기, 세종실록을 읽어주다

사고는 쳤지만, <엘 양장점>은 ‘평범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애청자들은 인터넷 카페에 ‘900일을 축하해달라’며 신청곡을 올리고, DJ는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 백수의 넋두리를 전한다. 중고생들이 일반 FM 라디오에 사랑 고백 같은 편지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것은 이들이 레즈비언이라는 것, 성 정체성뿐이다.

물론 <엘 양장점>에는 레즈비언의 시선이 담겨 있다. 레즈비언에게 ‘유익한’ 정보도 가득 차 있다. <엘 양장점>이 첫 회 ‘숨은 그녀 찾기’ 코너에서 소개한 봉씨 부인은 조선시대 왕궁에서 암약하던 레즈비언이다. 청명씨가 목소리를 가라앉혀 세종실록을 읽어줬다.

“요사이 듣건대 봉씨와 궁궐의 소쌍이라는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그 보수적인 조선시대, 언니의 행각이 자자하여 역사에까지 기록되고 있는 봉씨 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종의 둘째 며느리죠.”

동성애 커뮤니티 사이트인 ‘이반시티’에서 정기적으로 퀴어뉴스를 만드는 등 인터넷 미디어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레즈비언 방송이 공중파를 타는 것은 <엘 양장점>이 처음이다. 공중파는 다르다. 인터넷은 듣고 싶은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야 들을 수 있는 미디어지만, 공중파는 무작위로 대중들에게 뿌리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캐나다·이탈리아에 이어 지난해 프랑스에서 <핑크TV>라는 유료 채널이 개국했다. 개국 첫 방송으로 동성애자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45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낸 데 이어 토크쇼,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편성하고 있다. 위성과 케이블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따로 신청한 사람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울 마포에서 라디오만 켜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엘 양장점>은 더욱 의미가 깊다. 레즈비언에게 공공적 전파송출권이 허용된 역사적 사례라고나 할까.

“공중파는 비 성적 소수자들도 들을 수 있잖아요. 우리 방송을 들으면서 ‘레즈비언이 이렇게 사는구나, ‘일반’과 다름이 없구나’ 하고 느끼겠죠. 그래서 우리가 더 공중파에 들어오려고 한 거예요.”

청명씨는 지난 8월10일 첫 전파를 쏘아올린 이래 10월5일 9번째 방송을 마쳤다. 레주파는 곧 2기 후배들을 받아 자신들이 받았던 라디오 제작 교육을 돌려줄 셈이다.


‘해적방송’에서 ‘소수자 라디오’로

공동체 라디오의 세계적 흐름에 한국도 동참

공동체 라디오는 민중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주관리 미디어’다.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는 1940년대 남미 볼리비아 광산 지역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영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타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성화돼 있다. 간단한 소출력 장비로 전파를 쉽게 쏘아올릴 수 있어, 처음에는 사회적 반항아들의 ‘해적방송’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해적방송의 ‘투쟁’으로 합법화된 미디어인지라, 공동체 라디오는 소수자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영국을 보면, 그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레체스터 지방의 ‘테이크오버 라디오’는 어른들은 최소한의 지도만 하고 8~14살의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하는 방송이다. 하번트의 노인들을 위한 ‘에인절 라디오’, 글래스고의 아시아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라디오 아와즈’도 있다. 노팅엄의 ‘라디오파자’는 민간기관인 아시아여성프로젝트와 함께 소수민족의 사회·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출력 라디오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8개 사업자가 올해 상반기부터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가청취권이 반경 1~2㎞로 소규모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라디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대구의 ‘성서FM’처럼 이주노동자 콘텐츠를 대거 편성하는 경우도 있다. ‘마포FM’은 커뮤니티 콘텐츠를 기본으로 홍익대 앞 예술인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했다. 여기에 성소수자 프로그램인 <엘 양장점>을 주 3회 곁들였다. <엘 양장점>은 수요일 밤 12시에 방송되고, 금요일 밤 12시와 토요일 밤 9시에 재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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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환영입니다. 지방은 들을 수 없겠군요, 공주파이긴 하더래두. 재밌습니다. 대장금과 봉씨 부인의 해석.
 

 

어허, ‘건설오적’ 재주 좀 봐라!

건교부·건설업체·토공과 주공·언론·투기꾼 등 서민 울리는 현대판 오적
택지개발촉진법을 무기로 광활한 논밭 갈아엎어 끼리끼리 나눠먹는다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집이 모자라다고 해서, 아파트를 지어 공급을 확대하면 집값이 되레 오른다. 주택 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는데, 정부에서는 “아직도 집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아파트 숲이 올라가는 속도에 견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의 수는 많지 않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의 올해 국감자료를 보면, 도시근로자 가구가 돈을 모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33평짜리는 30년, 25평짜리는 23.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참여정부 들어서만 전국의 아파트 평당 가격은 14.0%, 강남에서는 43% 올랐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건교부 퇴직자, 로비스트로 재취업

정부는 (그렇기 때문에) “집을 더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토공·주공은 열심히 논밭을 갈아엎어 택지를 만든다. 건설자본은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폭리를 취하는데, 언론은 그 광경을 뻔히 바라보면서 애써 침묵을 지키거나 자본 역성을 든다. 그 틈바구니에서 폭리를 취하는 것은 투기꾼들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주택시장의 왜곡을 틈타 ‘건설오적’들만 살맛 나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설오적이란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는 건교부(재경부) 등 ‘경제관료’, 이들의 총애를 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건설업체’,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법률을 통해 이들에게 싼 가격에 택지를 팔아치우는 ‘한국토지공사·대한주택공사’, 이들에 기생해 광고를 따먹으며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 ‘전문 투기꾼’ 등이다.

건설오적들은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이해를 하나로 맞춘다. 가장 쉬운 방법이 인적 교류다. <한겨레21>은 1995년부터 지난 3월까지 건교부에서 퇴직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명단(177명)의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들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봤다. 분석 결과, 전체 퇴직자 177명 가운데 134명이 건교부 관련 단체와 산하 기관 74곳에 골고루 흡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취업하지 않은 간부 43명은 △사망 △선거 출마 △개인 사업 등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성기수(관리관), 김진열(이사관), 손순룡(이사관), 윤오수(부이사관), 박영준(이사관)씨 등 6명은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재취업률 75.7%. 확실히 건교부 낙하산의 위력이 셌다.


△ 판교 택지개발예정지구 안에 있는 남수금씨의 집이 강제철거된 것은 8월23일 새벽 4시께다. 그는 천막을 쳐놓고 위태로운 삶의 끈을 잇고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건교부 간부들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수자원공사(2명)·고속철도건설공단(3명)·대한주택공사(2명) 등 정부 산하기관의 임원으로 재취업되기도 했지만, 주위의 보는 눈이 많아져서인지, 더 강력한 낙하산 때문에 엄두를 못 내서인지,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은 다소 줄어들었다. 그들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곳은 건설·교통 등 ‘나와바리’(구역) 업계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협회·조합 등이다. 그들은 이들 단체에서 이사장·상임부회장·감사·상임이사 등을 하나씩 꿰차게 된다.

<한겨레21>은 이들이 흡수된 74개 기관 가운데 대한건설협회·한국주택협회·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건설공제조합·한국건설감리협회·전문건설공제조합·한국건설CALS협회·대한전문건설협회·대한설비건설협회·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등 10개 기관을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라고 판단했다. 이곳에 취업한 건교부 출신 고위 공직자는 모두 30명이다. 박정식 경실련 공공예산감시팀장은 “이들은 업계의 이익을 건교부에 전달하기 위해 고용된 로비스트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표 참조).

꼽은 단체 가운데 한국주택협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국주택협회는 건설업계 내부에서도 건교부에 ‘청탁성 로비’를 가장 세게 하는 기관으로 꼽힌다. 이 단체의 상근 부회장 자리는 연봉 1억원, 판공비 연 2억5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택협회는 2003년부터 불거진 분양원가 공개 논란에서 ‘원가 공개 절대 반대’ 입장을 밀고 나갔고, 결국 논란은 소형 평형에 원가연동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을 지낸 김종철씨가 5년째 협회의 상임부회장 자리를 맡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도 만만치 않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소형주택 의무비율 폐지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높이제한 폐지 등 정부의 각종 규제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택지개발 독점권 보장된 토공·주공


△ 재개발 예정인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 저층 아파트 단지. 택지개발촉진법은 전 국토를 아파트 숲으로 바꿔버렸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건교부와 토공, 주공, 건설업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축은 택촉법이다. 1980년 12월 전두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택촉법의 뼈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어디에 있는 누구의 땅이든 건설교통부 장관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땅은 강제 수용돼 택지로 개발된다(이 과정에서 땅 주인과 협의할 필요는 없다). 둘째, 건교부 장관에게 지구 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은 국가·지자체·토지공사·주택공사뿐이다. 따라서 주공·토공이 택지를 개발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는다. 즉, 토공·주공의 택지개발 독점권이 보장된다. 셋째, 지구로 지정되면 사업 시행자는 도시계획법을 비롯한 19개 법률이 정한 결정·인가·허가·협의·면허 등 32개에 달하는 처분을 받지 않아도 된다. 개발의 각 단계마다 적당히 조절해줄 견제장치들을 무력화한 셈이다. 건교부가 주공·토공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활한 논밭과 평야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민간 건설회사들은 이 땅을 분양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로 어마어마한 돈을 거둬들인다. 민간 건설회사들이 그 땅을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넘겨받는다.


△ 택지개발촉진법으로 '건설오적'은 떼돈을 벌지만, 철거민 신세로 전락한 세입자들은 갈곳이 없다. 1989년 일산 농민들의 신도시 반대 시위. (사진/ 한겨레)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교부는 2002년 초 분양가 자율화 이후 공공택지를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아 폭리를 취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택촉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쟁입찰제도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인다. 건교부의 배신에 한국주택협회 등 관련 이익단체의 반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택지 가격이 상승하면 결국 분양가가 인상돼 수요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시행령 개정은 업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됐고, 경쟁입찰제가 도입되면 오를 것이라던 분양가는 수의계약제도가 유지됐는데도 폭등했다.

내집마련정보사가 2000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에서 동시분양된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0년 663만원에서 올해 1205만원으로 8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폭은 대부분 2002년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2002년 793만원, 2003년 1070만원, 2004년 1169만원으로 늘었다. 업계는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꼴이다.

건설업계 눈치보며 택촉법 시행규칙 바꿔

이에 앞서 건교부는 2001년 7월18일 택촉법 시행령을 바꿔 노골적인 건설업계 편들기에 나섰다. 수의계약을 인정하는 기준 시점을 택지개발예정지구 공람공고일 1년 이전에서 예정지구 지정일 현재 소유권 이전 계약을 맺은 상태로 완화한 것이다. <한겨레21>이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에게서 입수한 ‘파주운정신도시 협의양도사업자 현황’을 보면, 이전 기준으로는 업체쪽에 수의계약으로 넘어가는 물량이 3만5천평밖에 안 되지만, 바뀐 기준을 대입해보면 이보다 14.9배나 넓은 53만평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은 2000년 이후 수도권에서 분양된 28개 택지개발지구(174만874평) 가운데 61%인 106만6548평이 수의계약으로 건설업체에 넘어간 것으로 본다.

건교부는 업계의 이익을 위해 ‘묘기’까지 부린다. 올해 3월9일 택촉법 시행규칙 11조를 바꿀 때 입법예고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무상 공급’이라는 넉자를 더 넣어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분양해주는 땅의 넓이를 대폭 늘렸다. 이를 판교지구에 대입해보면, 수의계약으로 땅을 분양받을 수 있는 6개 업체가 가져가는 땅의 전체 넓이는 1만5678평에서 2만7738평으로 늘어난다. 사람들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시행규칙에, 입법예고에는 없었던 넉자를 기어코 집어넣은 집요함이 놀라운 뿐이다. 김학송 의원은 “이는 참여정부와 건교부의 밀실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했지만, 건교부는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의미를 좀더 명확하게 만들어 혼란을 피하려고 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입을 씻었다.


△ 건설오적들이 땅 나워먹기를 한 파주 운정지구에서는 문화재 시굴 조사가 한창이다. 파주 와동초등학교 학생들은 포클레인의 굉음을 아침 저녁으로 들으며 등하교한다. (사진/ 윤운식 기자)

건설오적의 네 번째 축인 언론은 짭짤한 광고 수입에 길들여져 건설업체들의 천문학적 폭리를 알고도 눈감는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2003년 9월25일부터 10월25일까지 한달 동안 조·중·동 3개 신문의 광고를 모니터링한 결과 이들 신문의 지면 대비 광고 비중은 평균 48.2%, 건설업계의 광고 비중은 23.7%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에게 배달되는 신문 4장 가운데 1장이 건설업체의 광고인 셈이다. 이들 메이저 신문과 건설업체 광고에 목을 매는 경제신문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표현 대신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표현을 써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성달 경실련 시민감시국 간사는 “분양원가 공개에서부터 판교 개발까지 아무리 보도자료를 뿌려대도 이를 제대로 보도하는 신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배를 불리는 것은 건설업자와 부동산 투기꾼들이다. 경실련은 지난 6월 택촉법으로 개발된 ‘판교 열풍’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6달 동안 분당·용인 죽전·수원 영통·용인 동백·화성 동탄 등 판교 신도시 주변 지역의 집값이 11조120억원이나 폭등했다고 분석했다. 경실련은 또 판교발 태풍은 서초·강남·송파·강동 등 서울 강남권 4개구의 집값을 끌어올려 같은 기간에 이들 지역의 집값 총액도 23조4034억원이나 불어났다고 밝혔다.

투기는 보상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월 발표한 ‘판교신도시 토지 보상자·보상금 현황’에서 토공·주공·성남시 등 3개 기관이 판교신도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불한 보상금 2조5189억원 가운데 64.1%인 1조6154억원이 서울 강남, 성남 분당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삼부토건·신구종합건설·한성 등 6개 건설회사는 판교 지역의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이전에 땅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땅 보상을 노린 명백한 투기다.


25년 동안 여의도 178배 넓이에 아파트 건설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은 9월에 나온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에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발을 잡은 것은 “일본형 공황 도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적었다. 가뜩이나 내수경기 침체로 경제가 위태로운 판에 분양원가를 공개해 아파트값이 뚝 떨어지면 아파트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재산이 줄어든 사람들의 소비가 줄면서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 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는 8·31 대책에서 △강남 송파에 200만평을 비롯해 앞으로 5년 동안 수도권에 4500만평의 주택용지를 추가 공급하고 △강북의 층고제한을 해제해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참여정부가 건설족의 논리에 완전히 발목이 잡혔음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이 혼란 속에서 웃는 것은 건설오적이고, 우는 것은 집없는 대다수 서민이다.

1999년 경기 남부지역에서 개발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공공택지는 178만평이다. 주택 200만호 건설을 외치며 노태우 정권 때 만든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보다 1.4배나 넓은 면적이다. 그뿐인가. 파주 운정지구 등 4곳에서는 2기 신도시 56만평을 개발 중이다. 법 도입 이후 25년 동안 택촉법은 1억5861만7천평의 땅(여의도의 178배 넓이)을 아파트 숲으로 바꿔버렸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공기’처럼 돼버린 택촉법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택촉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금준미주는 천인혈’이라고 했던 춘향전의 한 글귀가 생각난다”며 “그 공과는 머잖은 장래에 반드시 재검토·재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이 모자라서 지어댄다고?

서울 주택보급률 89.2%라는 정부 주장도 소유권 기준으로 한 통계 때문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거칠게 말하면 딱 하나다. 과연 집이 모자란가요?

건설오적은 “집이 모자라다”는 논리를 앞세워 온 국토를 아파트 숲으로 바꿀 태세다. 공급 위주의 주택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공급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집을 투기 수단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주택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지난 몇해 동안 아파트값이 폭등한 것은 분양가 자율화를 틈탄 건설업체의 높은 분양가 책정과 판교 열풍과 같은 투기 수요 때문이었지, 주택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통계는 서울·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이다. 2004년 현재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102.2%로 100%를 넘겼지만, 수도권과 서울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2004년 현재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89.2%, 수도권은 93.9%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건교부는 올해 3월 발표한 ‘2005년도 주택종합계획’에서 “올 한해 동안에만 전국에 분양주택 37만 가구와 임대주택 15만 가구 등 총 52만 가구의 집을 짓고, 1300만평의 택지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2004년 10월5일 건교위 국감에서 “건교부는 2003년도 주택보급률을 86.3%로 발표하지만, 서울시는 103%로 잡고 있다”며 “건교부 통계가 실제 주택보급률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서울시가 빌라·오피스텔·상가주택 등 새로운 주택 유형을 포함해 ‘거주 기준’으로 주택 수를 계산한 반면, 건교부는 ‘소유권’ 기준으로 통계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 통계대로 하면 오피스텔에 10가구가 실제 거주하고 있어도 주인이 한명이면 1채로 계산되는 것이다. 박은호 군포YMCA 시민사업부장은 “국민들의 주거의 질 개선을 위해 주택 공급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건설자본의 배만 채우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화를 가져오는 지금과 같은 대규모 택지개발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지적도 소용없다

공공택지 경쟁입찰에 맡기라는 권고안, 차관회의에서 유보 결론

‘건설오적’은 감사원의 지적에도 안하무인이다. 택지개발촉진법으로 조성된 공공택지(공동주택용지)가 처리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일부 물량은 사전에 정해진 업체에게 수의계약으로 팔리고, 남는 물량은 추첨을 통해 감정가격 수준에서 매각된다. 공공택지를 경쟁입찰에 맡겨 정부가 개발이익을 환수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건설자본의 반대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업체들은 헐값에 땅을 분양받아 아파트를 지은 뒤 원하는 가격만큼 받고 팔아 폭리를 챙기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보다 못한 감사원이 칼을 빼들고 나섰다. 감사원은 2003년 12월 건설교통부에 보낸 ‘공동주택 건설용지 공급제도 불합리’란 제목의 통보문에서 “공동주택 용지를 감정가격 이내에서 추첨 방식을 통해 공급한 취지는 택지를 주택건설 업체에 싸게 공급해 아파트 분양가격의 상승을 막고 주택 수용자에서 값이 싼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25.8평)를 넘는 공동주택 용지를 공급할 때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만들라”고 권고했다. 감사원은 용인 죽전지구에서 4개 업체가 2226가구를 공급하면서 1603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건교부는 이를 받아들여 관련 법 개정에 나섰다.

2003년 5월21일 개최된 차관회의는 건설오적의 힘에 밀린 개혁 정책의 후퇴였다. 이날 회의에서 각 부처 차관들은 “공동주택 용지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규정은 부동산 안정대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당분간 개정을 유보하는 게 좋겠다는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용해 이를 유보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개정안에 제동을 건 ‘관계부처’는 재경부, 당시 장관은 김진표 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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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두부김치



어젯밤 출출하기도 해서 간단하게 두부김치를 만들어 '보리차' 랑 먹었다 ^^
김치랑 양파등 야채를 섞어 볶는 동안
두부는 뜨거운 물에 데친다.
평소 과일을 먹을 일이 적은 남편을 위해
억지로라도 먹이기 위해 토마토를 썰어넣었다.
김치가 매우면 저절로 먹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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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간아 > 오히려 아름다운 경지

  아름다운 존재는 만나지 않아도 -아주 멀리,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하고만 있어도- 선하고 신실한 가치로 다가옵니다. 말하기 이전에 들리는 부드러운 사랑의 속삭임처럼, 드문드문 떨림과 은밀한 보드라움으로만 전달되는 사무치는 행복처럼, 눈으로 악보를 읽어나가지만 음악은 이미 심장의 박동과 달콤하게 리듬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멀리서, 때로는 멀리서 그리는 것이 미쁘고 종요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네요. 흐벅지고 살갑고도 푼더분한 로드무비님의 사람 냄새는 순식간에 지나치는 바쁜 시간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땅바닥의 그림자를 돌아보는 것처럼 제 자신을 뉘우치게 하고 연민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로드무비님의 맛난 글들을 읽을 때마다 자꾸만 어떠한 형용사를 덧대고 싶어집니다. 형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느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불구같이! 살아가는 나름의 척박함과 혼자만 알 수 있는 물 밑의 사정은 까무룩 잊고, 잃어버리게 되고 어찌어찌 어둠을 짚어나가는 눈 어두운 장님의 손끝마냥 저 아름답고 순박한 형상을 내 깜냥으로 되살리고 싶은 욕심 탓입니다. 말하는 건 쉬워도 살아가면서 몸으로 부대껴 얻어낸 걸 겸손하게 고백하는 건 힘들고 버거운 것이기에 그냥저냥 말하기는 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네요. 그렇다고 해도 나뭇잎에 새겨지는 온전한 세계의 무늬를 생각하면, 엽서라고 가벼이 여길 수도 없네요.

 

  존경은 아니어도 존중할 수 있는, 경배는 아니어도 믿음은 가질 수 있는, 혈맹은 아니어도 따스한 온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때때로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공간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의 깊이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낯설고도 기이한 인연들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내 몸에 새겨지는 기묘한 무늬의 주름들을 쳐다봅니다. 가까이서 우러르게 되는 주름들의 형상이 없었더라면 이미 제 몸은 외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찟어발겨졌을 겁니다. 제게, 자세히 봐야만 아름다운 무늬를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어준 사람이 없어도 찾아내어 받은 사람은 있으니 저 혼자 고즈넉하기도 합니다.


  아침 여섯 시에 잠들어 열두 시가 넘어 일어나는 창백한 흡혈의 시간을 보낸 지도 꽤나 되는군요. 제 시간은 오로지 밤에만 흐르고 있습니다. 오로지 제 자신을 위해 탕진하는 시간이야말로 제가 살아 있는 시간이네요. 요즘 저는 책을 잘 읽지 않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제가 바쁘고 성급하게 읽어나간 책들을 다시금 읽어보고 있습니다. 새삼 알았다고 여겼던 것에서 다시 배우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제 기억이란 망각의 바다에 떠있는 아주 조그마한 빙산의 좁은 부분일 뿐입니다. 기억하려고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가치들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겠어요. 기억하는 행위야말로 사랑에 대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았던 시간들과 만나왔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억하렵니다.


  요즈음 저는 영화 보는 재미와 음악을 듣는 쾌락에 담겨 있습니다. 새로이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낯선 언어들을 알아가는 더듬거림이 제게는 아가의 옹알이처럼 기쁘고 즐겁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밤의 시간은 정말 빨리도 흘러가버리곤 해서 쾌락으로 늘상 새벽을 하얗게 표백해버리고 있습니다. 별로 놀지도 못했는데 늘상 날은 서둘러 밝아버리고 버스가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첫사랑의 기억처럼 촉촉한 치맛자락을 끌고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의 앞일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있을 수는 있으니 로드무비님과의 만남을 내내 ‘어떠한 의미’로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가장 비인간적일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고, 저는 인간이니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극단을 확장하고 인간의 영역을 좀더 분탕질쳐보려 합니다. 극단이 오히려 아름다운, 인간을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지랄이 도리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벗고 자꾸만 인간이 되려는 몸짓이 도저한 아름다움인 경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이탁오 평전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를 옮깁니다. 제 심난하고 조잡한 글을 반성하는 회개의 의미입니다.



  이지는 말했다.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의 입에 또한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알릴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려 씻어내고 마음속의 불공평함을 호소하여 기이한 것을 찾는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뿜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은하수가 빛을 발하면서 맴돌아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마침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여겨서 발광하여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니,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보거나 듣는 사람들이 격분하여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글을 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게 할지언정, 차마 끝내 명산에 감추거나 물이나 불 속에 던져 사장시킬 수는 없다.”

 

 

  *


  이 그림은 케테 콜비츠의 <죽음의 부름>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그림이 도리어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에 위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죽음의 손길에 부드럽게 몸을 기울이고 얼굴을 맡기는 퀭한 표정의 인간을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희망이라는 걸 생각해내게 됩니다. 핏줄이 도드라진 손이 죽음의 손인지 알 수 없고, 아니면 인간 형상의 죽음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미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저 손의 정체는 죽음으로 보는 게 옳겠지요. 죽음에게 힘을 얻고 죽음으로 인해 삶을 견디는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는 모순에 대해 한류와 난류가 뒤엉키는 혼돈에 가장 많은 물고기떼들이 살 수 있다는 걸 또한 떠올립니다. 경계가 흐릿해지는 극치,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경계를 찾아보겠습니다. 찾으면 다시금 처음인 듯 연락드리겠습니다. 무지개는 원래 '물의 문'이라는 의미가 변형된 것이라 하더군요. 동그란 물의 문을 열고 다른 세상에 들어갑니다. 로드무비님도 부디 꿈꾸시는 무지개 찾으시고, '물의 문' 열고 행복과 사랑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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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회찬 의원 “민노, 소중한 시간 성과있게 못써”
서울시장 출마하라는 건
전교 1등에게 학교 관두라는 것
당내 경선으로 대선후보 뽑아야
이태희 기자

올해 국정감사 스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당내에서 서울시장 출마 요구가 적지 않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을 만났다. 노 의원은 서울시장에 나설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2007년 대선에는 관심이 있음을 내비쳤다.

국회 의원회관 712호실에서 만난 노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각종 강연을 미뤘더니 벌써 32건이 밀려 있다”며 “최근 1년간 150차례 정도 강연을 한 것 같다”고 최근의 바쁜 일정을 털어놨다.

특유의 감칠맛나는 말솜씨 때문에 노 의원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즐겁다. 이번에도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포수의 글러브 속에 정통으로 꽂힌 스크라이크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노 의원의 ‘말맛’나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인터뷰는 이른바 ‘삼성국감’으로 표현된 이번 국정감사와 당의 위기, 최근 많은 말이 나오는 서울시장과 대선 출마 등 여러 부분에 걸쳐 있다.

-최근 강연으로 바쁘신 것 같습니다.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이 요 며칠 전 봉은사에서 한 강연입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삼성동 코엑스 건너편에 있는 봉은사는, 강남 한가운데 있는 불당으로, ‘럭셔리’하다.) 처음에 초청을 받았을 때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할 지. 봉은사에서 요식절차로 각 당마다 한명씩 초청한 것도 아니고, 저를 정식으로 초청한 것이라 내심 걱정했습니다.
강남쪽의 신도분들을 앞에 두고 정공법으로 부유세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최쪽에서는 “좋았다. 에둘러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구호로만 들었던 민주노동당과 부유세에 대해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구요. 부유세의 취지가 부자들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좀더 나누자는 취지라는 것을 이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강연은 얼마나 자주 나가십니까. 최근에는 경찰대학도 가셨던데.

=지금 국정감사 마치고 바로 해달라는 것이 32건이라고 하데요. 아마 (강연 스케줄이) 1년에 150개 정도 되지 싶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2개도 합니다. 가끔 “내가 보따리 장사(시간강사를 일컫는 말)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강연은 서울보다 지방이 많습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완전히 알려진 당이 아니니까, 그래서 당을 알려야 하니까 갑니다. 우리 당의 생각을 알려야 하고, 우리가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교육이나 주택, 의료에 대한 정책이 무엇이냐,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주노동당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니까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경찰대학에서 총경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무조건 갔습니다. 경찰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 경찰이 공권력으로, 인권을 억압한 권력이었는데, 지금은 변하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과거처럼 고문만 안하면 되느냐, 몽둥이 찜질 안하면 끝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권은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되야 한다, 복지문제도 해결되야 인권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둘이 싸우는 판이 잘못됐다, 이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 편에서 보고 해야 풀린다고 말했죠.

-이번 국감 결과를 좀 평가해 주시죠.

=당장 중간결산을 하면 문제제기는 괜찮았지만,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수는 있겠습니다. 성적이 나쁠 수도 있지만,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사회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작년 이야기를 하면 이학수(본부장)보다 계급 낮은 사람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불렀는데, 결국에는 증인채택도 안됐습니다. 삼성 로비 때문이었죠. 옆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문자찍힌 것을 보여줬습니다. ‘노 의원이 주장하는 증인채택에 반대해 주시라’는 취지였습니다. 삼성이 끝까지 압력을 넣은거죠.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증인 채택이 안됐고, 결국 국회가 삼성 직원 한 명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렀습니다.

삼성을 부른 것은 삼성이 가진 이중적 측면 때문입니다. 삼성은 우리 고도성장의 대명사, 일류기업의 대명사이면서 기업비리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에게는 삼성이 공공의 적일 수도 있다, 삼성 자체가 공공의 적은 아니지만, 삼성의 또다른 측면이, 잘못된 경영형태가 공공의 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공식화시킨 겁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감이 끝나자 마자, 검찰에서 홍석현씨가 출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 들어온다고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태는 진행 중입니다.

지금 삼성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청문회도 있고, 국정조사권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1막1장이 이제 시작된 것이고, 이 무대는 계속될 겁니다.

-이른바 엑스파일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복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엑스파일 문제는 11월까지는 특검법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국감 도중에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이 문제 때문에 열렸습니다. 이미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이번 국감에서 확인된 것은, 검찰이 법이 만들어지면 수사할 수 있다, 그러니 국민적 합의를 이뤄달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도 공인이고, 사회적 책임이 있고, 자부심이 있습니다. 과거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엄정한, 합당한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발생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겁니다. 부패정치에 대한 제도적인 방지대책이 필요한 거죠.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 국민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간 우리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삼성에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삼성의 영속을 위해 뭔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겁니다.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을 얻은 겁니다. 그간 이 문제는 극소수의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는데, 이제는 국민적 의제가 됐습니다.

-얼마전에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당직-공직 겸직안’이라는 일종의 개혁안이 부결됐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당직-공직 겸직 금지란, 공직을 맡은 의원은 당 대표나 사무총장 등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민주노동당이 지난해 도입한 제도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직공직 겸직 문제는 그 필수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데, 의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듣는 것과 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듣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나는 반대했습니다. 제가 지지한 것은 당대표는 최소한 의원이 겸임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 보지도 않고, 1년만에 포기하면 바른 일이 아닙니다.

물론 대중적인 대표성과 당 대표성이 일치하며 좋죠. 동의는 합니다. 문제는 지난 1년간 민주노동당이 해온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겁니다.

김혜경 대표가 의원이 아니라서 당이 ‘개판’된 것은 아닙니다. 더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내의)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 할당제 등에 대해 반대해야 합니다. 당이 노동조직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천만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민노총은 5%의 대표성 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노동자들, 비정규직들, 저소득층들의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더 낮습니다.

더 대중적이고, 더 어려운 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개혁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당내 논의가 활성화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4월의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1주년 평가 때 ‘민주노동당은 운동권 동창회’라고 비판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 상태입니까? 개선이 좀 됐나요?

=교착상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조건은 냉탕온탕의 한가운데입니다.

민주노총이 부닥치는 현실이 어렵습니다. 내부의 비리나 반개혁적인 일들 때문에 도덕성도 훼손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체 운동의 위기입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운동 자체가,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살아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해결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권과 자본의 탓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상대방 때문에 운동이 활성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비전을 못보여 주는 상황에서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자체로 보면 저는 지난 1년간은 숨가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굉장히 소중한 시간을 성과있게 쓰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민주노동당은 과감해야 합니다. 50~60년대 정당처럼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부닥치는 현실에 대해 통렬한 자기 의식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우월하다고 보는 겁니다. 진보주의자들의 선민의식이 문제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희생한다고 보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덜 비판적이고 덜 가혹합니다. 그게 이번에 문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권력은 썩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딴 놈이 썩으면 우리도 썩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쪽보다 더 가혹하게 자기검열을 해야 합니다.

운동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운동권 집회, 이건 우리 내부행사입니다.

주택문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올 5월~6월은 민란 수준으로 됐는데, 그런 불만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그런 사람들을 공공의 광장으로 나오게 해서 여론을 조직하고 정책대안을 만들고, 그래서 관철하는, 뜨거운 대중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끼리 모이는, 정해진 집단만 모이는, 일반인은 한명도 모이지 않는 집회가 문제입니다. 구태의연한 운동권의 운동방식에 대한 고찰이 없습니다. 교통방해만 하고, 그게 뭡니까.

우리의 열기가 얼마나 일반인들에게 퍼지느냐, 반성적인 고찰이나 운동 변화 노력이 없습니다.

대중을 대표한다면서, 대중에게 우리에게 오라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먼저 깨우쳤으니, 덜 깨우친 대중들은 우리 쪽으로 와라, 이건 우리끼리만 하겠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하는 마케팅 방식보다 더 피드백을 못하고 있습니다. 피드백을 초콜릿 파는 회사보다 더 못하고 있습니다. 여론 수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운동권들의 교만, 경직성으로 외화되는 겁니다.

-이제 개인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당내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논리인데요.

(이 문제를 제기하자, 노 의원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는 듯 듯했다.)

=선거는 과학입니다.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서울시장 누구가 더 좋으냐, 제가 그걸 하면 다른 것을 못하게 됩니다. 저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서울시장으로 나가서, 다른 후보를 이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당 전체로 봤을 때 서울시 의회 의원들이 얼마나 더 당선될 거냐, 단지 분위기상 도움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의정활동을 더 할 경우에, 지금 현역 국회의원 중에 가장 상위권으로 평가받는데, 왜 전교 1등보고 학교를 그만 두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당에 기여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국회의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절반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초보이고, 국민들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아직 주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정책이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정책에 목숨을 바치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국민들 속에서의 정치지형을 바꿔야 합니다. 적지 않은 몫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현직이 아니면 안됩니다. 현역이 아니면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것이 독특한 한국의 문화입니다.

정치적 발언권을 포기하면서, 당선 가능성도 없는 선거에 뛰어들어, 단지 분위기 진작하자는 것이 과연 맞습니까.

민주노동당도 다시 한번 따져 봐야 합니다. 전두환 노태우 구속시킨 박계동(의원)이 선거에서 3등했습니다. 냉엄한 현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진영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인물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일부에서는 대선 출마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권영길 의원이 다시 나서실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대선 3수’가 되니까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요.

=선거에 실무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2008년 총선이 아주 중요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의석이 중요합니다. 총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2007년 대선입니다. 대선과 총선이 4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민주노동당도 다른 당처럼 국민적 관심을 가지는 대선후보 내부경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내에) 사람이 이제는 많습니다. 국민들의 선호도가 다를 겁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는 당원들의 지지, 국민적인 지지가 종합적으로 판단돼 선출될 겁니다.

경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에서는 제대로 된 경선, 국민적 경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대선의 경우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300만~500만표를 받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얻은 표는 당의 정치적 발언권이 됩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도 득표가 중요합니다.

포스트 3김 시대, 3김 이후 시대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준비된 지도자들이 없기에 어디나 선수가 없어요. 고건(전 총리)의 등장은 고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도 있겠지만, 주요 양당의 대선 후보가 제대로 없어서 그 공백이 표현된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후보인가 보다 어떤 정책이냐, 어떤 정부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매력있는 사람이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특징없는 정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소위 대선후보를 보면 국민들이 희망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데, 그러면 누가 되도 이보다는 좋아질 것으로 봐야 하는데, 누가 되도 좋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우리 정치권에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럼 민주노동당 대선 경선에 나설 의사는 있으십니까?

=어떤 의원도 지금 대선 경선에 나가겠다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다음 대선에 안나서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겁니다. 반대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생뚱맞습니다. 지금 말할 시기가 아닙니다. 적절한 시점은 아니죠. 생뚱맞은 상황이죠. 지금 이야기할 상황은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이 다음 대선을 통해, 2008년에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진출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민주노동당은 목표가 집권당이라고 하는데, 그 목표가 현실성이 있습니까?

=현실성이 있는 목표죠. 제가 보기에는 2007년 대선이 중요한데, 2007년 대선을 고비로, 우리가 40~50년간 익숙했던 정치, 영호남 대결구도를 정당시스템으로 보장해 왔던 정치지형은 바뀔 겁니다.

이제는 정책 이념 중심의 선진정치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2007년에 변화가 상당히 이뤄질 겁니다.

이제는 보수-진보 양당 체제로 가는 거죠. 민주노동당은 진보로 남는 거죠.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지만, 굉장히 빠르게, 창당에서 집권까지 가는데 가장 짧은 세월이 걸린 당이 될 겁니다.

2012년은 집권을 눈앞에 둔 진검승부를 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집권을 불온시하는 당 내부의 좌파 경향과, 집권을 허망하게 보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합니다.

민노당의 꿈과 이상은 집권으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집권은 민노당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바꾸기를 위한 고지 확보입니다.

(인터뷰 도중 보좌관이 비행기 시간이 다 됐다고 자꾸 재촉을 했다. 강연 스케줄 때문에 더 이상 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어볼 질문은 남았지만, 다음 번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하다 150번이 넘는 강연을 다녔다면, 강연료 수입도 쏠쏠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회찬 의원이 떠난 뒤 보좌관들에게 물어봤다. 노 의원의 일정관리를 맡고 있는 박권호 보좌관은 “강연료 평균치가 20만원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의원과 보좌관 2명의 비행기삯과 밥값이면 끝이라고 했다. 가끔 1박을 해서 저녁 술자리라도 할 상황이면 오히려 손해라고 했다. 최고로 많이 받아본 것은 어느 경제연구소에서 강연료로 내민 150만원이었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강연을 청하는 쪽이 주로 노조나 총학생회, 아니면 노동단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초청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지고 있는 상황이라 언젠가는 ‘쏠쏠한’ 수입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인기가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한겨레> 정치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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