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민중

 

소년에게.
   20년 동안의 공백 뒤에 귀국했던 나에겐 두 가지 충격적인 언어가 있었습니다. 남대문이나 서울시청 건물이 작아 보인 것은 ‘성장의 그늘’처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나를 갸우뚱하게 했던 말은 “부자 되세요!”였습니다. 내가 20여 년 동안 살았던 프랑스 사회의 가치관으로도, 그 이전에 살았던 한국 사회의 가치관으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화두였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처럼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 있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문구와 가난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내뱉은 “너는 나처럼 살면 안돼!”였습니다.

   오늘 첫 수요편지의 제목을 <늠름한 민중>으로 단 이유는 내가 아직 두 말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첫 편지를 소년에게 부치는 이유는 소년은 아직 ‘5년 안에 10억 만들기’ 위해 내달리기 전이라고 믿어 <늠름한 민중>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라면 알아야 합니다. 설령 일제 말기에 중학생이었던 리영희 선생처럼 소년 시절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만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소년인 그대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가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 알아야 합니다.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에서 “대한민국 1%의 힘” 따위의 말에 분노하기는커녕 롯데 캐슬이나 타워 팰리스에 대한 선망에 매몰되어 그 말의 폭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른들과 달리,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간직하고 있는 그대는 가령 쪽방촌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 광경을 그리면서 그 말의 폭력성을 충분히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년은 그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줄 알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속물인지 말해줍니다.” 가난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내뱉는 “너는 나처럼 살면 안돼!”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의 대구(對句)입니다. 뒤의 말이 물질지상주의의 폭력성을 담고 있다면, 앞의 말은 그런 사회가 가난에 강요한 비참함을 반영합니다.

   아직 소년인 그대의 친구들이 벌써 장래 희망을 CEO로 꼽고 있을 때, 세계와 만나는 창문인 책을 자주 펼치며 성찰하는 그대는 일생 땀 흘려 일한 아버지들의 “너는 나처럼 살면 안돼!”에서 슬픔과 함께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그 슬픔과 분노는 <늠름한 민중>이 이 시대를 사는 조건입니다. 물론 이 사회를 지배하는 속물들은 <늠름한 민중>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한겨레신문도 지난주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10월21일치 1판 뒤표지 면에 실렸던 삼성의 광고가 2판 이후엔 사라졌습니다. 모든 일간지에 실린 삼성 전면 광고가 한겨레신문의 2판 이후부터 사라진 이유는 그날 치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삼성 이재용씨 또 편법 증여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삼성 계열사인 서울통신기술이 1996년 11월 주당 5천원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으로 전환사채 20억원 어치를 발행했는데 이재용씨가 그 중 대부분인 15억2천만원 어치를 인수하여 최대주주가 됐는데, 비슷한 시점인 96년 12월에는 기존 주주(삼성 임직원)가 갖고 있던 주식 20만주를 주당 1만9천원에 사들였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기사입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와 비슷한 방식을 밝힌 한겨레 보도에 대한 삼성의 반응은 광고 빼기로 나타났습니다. “사주에 대한 비판기사를 실은 신문에 광고를 함께 실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는 주장이었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먹고 살려면 진실 보도를 외면하고 굴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해왔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러니 나서지 말라고, 편안하게 살려면 적당히 굴종하라고 말합니다. 자본의 독재 시대에 늠름한 민중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소년이 정녕 늠름한 민중이 되고자 할 때, 이 시대가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분노와 슬픔을 비판하고 참여하고 행동하는 근거로 삼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한겨레 제2창간 독자배가추진단장 홍세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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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에 콕 박히는 것이...
스승같고 부모님 같네요.

비로그인 2005-10-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옳소..아, 정말 공감임돠. 저 천박한 숱한 문구들..
정말 가슴 아프지만 또 꿋꿋해지는 선생님의 글입니다. 사실 <한겨레>는 젤 돈 안 되는 책광고를 많이 싣기로 유명한 신문입니다. 조중동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거덩요..
 
 전출처 : 이매지 > [퍼온글] 알라딘 서재 백업 도구

0. 프롤로그

  • 개인적으로 필요해서 알라딘 서재 백업(backup)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갖다 쓰세요.
  • 이것을 사용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테스트를 별로 안 해봤습니다. 혹시 버그가 있으면 제게 알려주세요.
  • 이 프로그램은 '마이페이퍼'와 '마이리뷰'만 백업합니다. 그 외의 것들은 백업하지 않습니다.
  • 참고로 마이페이퍼나 마이리뷰에 올라온 그림들도 모두 백업됩니다.

1. 다운로드

http://my.dreamwiz.com/jeehk/works/albackup/albackup1.zip
http://my.dreamwiz.com/jeehk/works/albackup/albackup2.zip

위 두 파일을 내려받고, 같은 폴더에 압축을 풉니다 (두 개로 쪼갠 이유는, 치사한 드림위즈가 2MB 이하 파일만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어서... --;)

2. 실행시키기

위에서 압축을 푼 폴더로 가서 albackup.exe 를 더블클릭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실행 화면이 나옵니다.



 

3. 백업할 서재의 ID 혹은 CNO 를 넣기

누구의 서재를 백업할지를 백업 프로그램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 화면의 ID 또는 CNO 칸을 채워줘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채우면 됩니다).

ID는, '서재 관리' 화면의 맨 밑에 아래처럼 나옵니다. 제 경우는 서재 ID가 jeehk입니다.



ID를 모르시면 CNO 번호를 넣으세요. CNO 번호는, '마이페이퍼(전체보기)' 등을 클릭했을 때 주소칸에 나오는 숫자입니다. 아래 그림에 나오듯, 제 경우는 CNO가 754175103이군요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커집니다. 확인해 보세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서재라고 백업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ID나 CNO 번호만 알면 됩니다.

4. 로그인이 필요한 경우는 이렇게

비공개 카테고리의 페이퍼들을 백업하기 위해서는, 백업 프로그램이 알라딘에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백업 프로그램이 로그인을 할 수 있도록, email 칸과 password 칸도 채워 주세요. 여러분이 알라딘에 로그인할 때 쓰는 email 주소와 암호를 넣어 주시면 됩니다.

email 칸을 비워 두시면 로그인 하지 않고 손님 자격으로 들어가서 백업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공개된 카테고리만 백업되겠지요.

5. 백업 시작

'GO!' 버튼을 누르시면, 저장할 폴더를 선택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적당한 폴더를 선택한 뒤에 '확인'을 클릭하세요. 그러면 백업이 시작됩니다. 진행될 동안 잠시 기다리세요.

6. 백업 끝



위 그림처럼 'COMPLETED! NOW YOU MAY CLOSE THIS WINDOW.' 라는 말이 나오면, 백업이 끝난 것입니다. 이제 창을 닫아 버리셔도 됩니다.

7. 백업한 서재 보기

앞에서 지정했던 폴더로 가 보시면, 서재가 백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paper1.html 이나 review1.html 을 더블클릭하시면, 백업된 서재를 보실 수 있습니다.

(paper2.html 이나 review2.html 이 있으면 그걸 클릭해도 됩니다. 숫자는 상관 없단 말이지요)

백업된 서재를 보실 때는 오직 다음 것들만 클릭할 수 있습니다.

  • '마이리뷰(전체보기)'
  • '마이페이퍼(전체보기)'
  • 페이지 이동 버튼들
  • 그림들 (클릭하면 크게 나옴)

그 외의 다른 부분을 클릭하면 에러 메시지를 보시게 됩니다. 그때는 가볍게 '백 스페이스' 키를 눌러 주세요.

8. 에필로그

Python으로 작성하였습니다 (GUI는 Tkinter입니다). py2exe를 이용하여 Windows 용 실행 파일을 만들었습니다.

소스 코드는 http://my.dreamwiz.com/jeehk/works/albackup/albackup.py 에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가져다 고쳐 쓰세요.

Python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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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쓰는 유서

                                                                       - 이해인

                              소나무 가득한 솔숲에
                              솔방을 묻듯이 나를 묻어주세요

                              묘비엔 관례대로
                              언제 태어나고
                              언제 수녀가 되고
                              언제 죽었는가
                              단 세마디로 요약이 될 삶이지만

                              '민들레의 영토' 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남은 이들 마음속에
                              기억되길 바랍니다

                              영정 사진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걸로
                              조금의 웃음이 깃든 걸로
                              놓아주세요

                              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이제 진짜 시가 되었다고
                              믿고 싶어요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은
                              그대로 두고 감을 용서하셔요

                              생각보다 빨리
                              나를 잊어도 좋아요
                              부탁 따로 안 해도 그리 되겠지요

                              수녀원의 종소리
                              하늘과 구름과바다와 새
                              눈부신 햇빛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군요

                              그동안 받은 사랑
                              진정 고마웠습니다.

 

 

나도 써볼까나...


깔끔하게 화장해주세요.
절 기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슬퍼도 하지 마세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당신과 함께 한 이 세상에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습니다.

순간의 불빛처럼.
스쳐가는 바람처럼,
흘려 보낸 삶이었습니다.
저의 실수, 저의 잘못, 제가 남긴 상처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모든 기억을 안고 떠납니다. 빠이빠이.

ps. 절도, 사기, 강도, 폭행, 살인, 방화 같은건 생각해 본적 없으니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해요. 므흣.


가는 길 외로우니,
복돌이님, 판다님, 로드무비님, kelly님, 스텔라님, 물만두님, 자명한 산책님, 이매지님 동행하실라우?
(무슨 행운의 편지같네 ㅡ..ㅡ;)

 

뜨인들 출판사의 해바라기 읽다가 그냥 죽음 앞에서의 '참회'라는게 떠올라서리...
쓰고보니 유서같지가 않구랴. 으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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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2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 이 시간에 보니, 쫌 무섭습니다... ^^ ;;;

라주미힌 2005-10-2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은 야행성이구랴...

panda78 2005-10-27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아셨소..... 라주미힌님도 만만치 않으시구랴... ㅎㅎ

이매지 2005-10-27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행성입니다 ㅋ
사실 레포트 쓰고 있어요 ㅜ_ㅜ
같이 따라가면 레포트따위는 안 써도 되겠군요 ! +ㅁ+

라주미힌 2005-10-27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도 동행하시지요.. 가야할 길이 멉니다...
저승문 닫히겠어요..

페일레스 2005-10-2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무서워요 -_-;

라주미힌 2005-10-2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해인님의 시는 아름다운데,
제가 그리 무섭습니까? ㅠㅠ 큭큭...

잡아먹을테다~!!!

로드무비 2005-10-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꺼이 동행합지요.^^
아니, 그런데 가만, 유서 쓰자는 얘긴가? 나 안해!==3=3=3

비로그인 2005-10-2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떼거지 집단자살!! 제 2의 오대양 사건이구만요!! 라주미힌님, 요즘 많이 힘드십니꽈? 일 저지르기 전에 함 만나뵈어야 할텐데..인물이 아깝따..와중에도 나름대로 작업 중.. T^T

라주미힌 2005-10-2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회의 시간을 갖자는 의미였는데..
다들 공포에 질리시는듯.. 꾸엑 ^^;

stella.K 2005-10-2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기억해 주심은 고마운데 생각 좀 해 보구요. 제가 볼 땐 라주미힌님은 점 더 오래 사셔야할 분 같은데요.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이생에서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가셔야죠. 안 그런가요? ㅋㅋ.

라주미힌 2005-10-2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밤 기다리셈 스텔라님.. 죄 한번 더 짓고 가야겠심더.. ㅋㅋㅋ.
 

섞이니 그게 그거.

차라리

따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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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대신 숨진 네팔 19살 카드카
“한달 200달러 벌이” 유혹에 솔깃
수수료 3000달러 주고 속아서 이라크로
입국한 날 무장세력에 잡혀 희생
고용주 미 군수업체 사과조차 없고
제3세계 노동자 송출은 이어진다
박민희 기자
▲ 미군 대신 숨진 네팔 19살 카드카
[관련기사]

현장속 현장

19살 네팔 청년 라메시 카드카는 지난해 8월20일 이라크 서부 안바르에서 머리에 3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이라크 무장세력 ‘안사르 알 순나’는 카드카와 18살 비슈누 하리 타파 등 네팔 젊은이 12명을 한명씩 끌어내 바닥에 엎드리게 한 채 칼과 총으로 살해했다. 안사르 알 순나는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미군을 돕기 위해 온 이단자”이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했다. 네팔 젊은이들은 이라크 서부 알아사드 미 공군기지에서 청소부와 요리사로 일할 예정이었다.

그 한달 전에는 이라크에서 일하던 필리핀 트럭운전사 앙헬로 델라 크루스가 무장세력 ‘이라크 이슬람군’에 납치됐다가 이라크 주둔 필리핀군 51명의 철수 뒤 가까스로 풀려났다.

2년 7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가난 때문에 이라크로 가게 된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의 빈곤 약소국 노동자들이다. 수백만명의 이라크인들이 실업상태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미 군수지원 기업들은 이들을 고용하길 꺼린다. 미군 당국은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미군기지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남아 등에서 온 노동자들을 고용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의 군수지원 하청업체들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제3세계 노동자들을 이라크로 데려가는 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으며,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대한 불법 인력거래망을 통해 이라크로 보내진 뒤 ‘현대판 노예노동’으로 착취당하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 등 미국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전쟁터로 향하는 거대한 인력이동 대열을 만들어낸 것은 미군의 전쟁을 대행하는 미국 사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이라크에서 미군기지 건설과 경비, 요리와 식당운영, 세탁과 청소, 쓰레기 수거, 경호, 최신형 무기 유지와 보수, 우편 업무 등 전투를 뺀 전쟁의 모든 영역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딕 체니 부통령이 90년대에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석유업체 핼리버튼과 토목관련 기업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다. 이들 기업은 90년대 1차걸프전에 참여해 큰 수익을 올리면서 군사용역 업체로 우뚝 섰다.

물론 KBR 직원들이 직접 요리와 청소를 하지는 않는다. KBR 한 기업만해도 중동에서 200개 이상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으며, 이 하청업체들은 인력송출업체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모집한 뒤 이라크로 데려간다고 <시카고트리뷴>은 전했다. 미국 언론들이 추적한 바로는 미 군수업체에 고용돼 이라크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몇만명이나 된다. 이미 2천억달러를 넘어선 미국 이라크전비의 상당 부분은 이들 ‘전쟁 대행 주식회사’나 군수업체들에 흘러들어갔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미군들이 더이상 하지 않는 ‘더러운 노동’을 떠맡고 있는 것은 가장 가난한 3세계 노동자들이다. KBR은 3세계 출신 노동자 2만5000여명을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네팔인 5000여명이 이라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의 내전으로 1996년 이후 1만2500명 이상이 숨진 네팔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네팔인들이 국내에 송금하는 돈은 네팔 전체 국민생산의 5분의 1이 넘는다. 네팔 노동자들은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이라크에서도 인기가 높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부터 구르카로 불린 “용맹한” 네팔 병사들은 외국의 사설 경호업체의 “우수 인력”으로, 바그다드 공항과 핵심지역인 그린존 등의 경비를 맡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 일대에는 노동자들을 이라크로 보내는 인력송출업체들과 브로커들이 ‘맹활약’ 하면서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브로커들은 ‘이라크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거나 먼저 요르단 등으로 데려간 뒤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며 다시 이들을 이라크로 보내기도 한다. 노동자와 가족들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도 받는다. 노동자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이자로 큰 빚을 얻고 이는 이라크에서 벗어날 수 없게하는 족쇄가 된다.

수수료 빚더미 떠안아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카드카도 수도 카트만두에서 한달에 38달러를 받고 일하다가 브로커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외국에 가 미군 부대 요리사로 일하면 한달에 200달러를 받게 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어디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해줄지를 말하지 않았다. 카드카는 브로커에게 수수료 3000달러를 주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으로 여권을 맡겨야 했다. 가족들은 연 23%의 이자로 돈을 빌려 수수료를 냈다. 카드카는 “돈을 벌어와 다쓰러져가는 오두막집 옆에 콘크리트 집을 지어 주겠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카드카와 함께 살해된 타파도 카트만두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외국에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요르단으로 갔다. 10대의 두 젊은이에게 이것은 마지막 여행이 됐다.

이라크전 특수로 활기를 띠고 있는 요르단에서는 또다른 브로커인 인력업체 모닝스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업체 KBR과 병사들의 식사와 세탁 업무 하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다우드앤 파트너스가 여기서 카드카와 타파 일행을 소개 받았다. 일행중 일부는 이라크로는 갈 수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수수료를 내느라 진 빚 때문에 이라크행 버스에 탈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들어가는 도로는 무장세력이 일상적으로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다우드앤 파트너스는 이들에게 아무런 무기도 주지 않았고 보안요원 한명 동승시키지 않았다고 <시카고트리뷴>은 지적한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2004년 8월19일 그 도로에서 노동자들은 사라졌다.

다음날 네팔에 있는 카드카의 집으로 이웃이 다급하게 찾아와 텔레비전에 끔찍한 비디오가 나온다고 알려줬다. 카드카의 어머니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여권을 든 채 무장괴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아들을 알아봤다. 청년들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요르단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이라크로 왔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브로커에게 찾아가자 그는 청년들이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도망쳐버렸다. 네팔 정부도 별다른 노력을 해주지 않았다.

이틀 뒤 두번째 비디오가 공개됐다. 낡은 청바지에 초라한 셔츠를 입은 노동자들이 땅바닥에서 차례로 살해되는 동안 화면은 클로즈업돼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들의 얼굴을 비췄다. 이날부터 분노한 시위대가 이슬람사원을 불태우고 해외인력송출 업체들을 공격하자 정부는 24시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국민들의 울분이 가시지 않자 며칠 뒤 정부는 문제가 된 인력송출회사의 영업허가를 취소하고, 유가족마다 1만4천달러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대부분 그돈으로 수수료를 내느라 빚진 원금과 훌쩍 불어난 이자를 갚아야 했다.

그러나, 네팔 청년들을 이라크로 데려간 업체들의 원청업체인 미 군수업체 KBR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보상도 하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들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숨진 네팔인 12명은 미국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봐야하며, 미국 법에 기초해 마땅한 사망 보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법은 KBR과 하청업체들이 숨진 노동자들에게 ‘국방기지업무 보험’을 제공해야 하며, 유족에게 1년에 54000달러의 연금과 의료보험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기업 법적 책임 있다

12명의 주검은 찾을 수가 없었고 가족들은 이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카드카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애는 반란세력도, 군인도 아니었다. 그냥 일을 하러 갔을 뿐이다.”

카드카와 앙헬로 사건 이후 네팔과 필리핀 정부는 자국인들이 이라크로 일하러 가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지금도 노동자들을 계속 이라크로 송출하고 있다. 네팔 정부는 최근에도 이라크로 노동자들을 보내온 32개 인력송출업체를 폐쇄시킨다고 발표했다. 또 이라크로 노동자들을 보내다 적발돼도 브로커는 벌금만 내면 됐던 조항을 고쳐 형사범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며, 노동자들을 직접 이라크로 보내지 않고 인도, 요르단 등 주변국가로 보낸 뒤 다시 이라크로 보내 규제를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네팔 정부는 노동자들의 해외 송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도 인력송출은 네팔에서 유일하게 번성하는 사업이다. 10년 전만해도 몇개에 불과했던 해외인력송출업체는 530여개로 늘어났다. 카드카와 11명의 젊은이를 이라크로 보낸 인력업체 사장 발라 감 피리는 해외로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카고트리뷴>의 취재 결과 버젓이 카트만두 시내에서 다른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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