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울트라 슈퍼 한국우먼

[조계완의 노동시대]

가사노동 부담 때문에 ‘M자형’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구조
주부는 ‘하고’ 남편은 ‘돕는다’는 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악순환 계속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차적으로 여성들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본다는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속성과 집에 와서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남성 노동자들 간의 공모다.”(조주은 ‘노동담론 뒤에 숨어 있는 가족, 그 속에서 내출혈을 앓고 있는 여성들’) 자본은 어제 저녁에 밥하고 빨래하고 밤새도록 아이를 돌보느라 한숨도 못 자 누렇게 뜬 얼굴로 출근하는 노동자를 원치 않고, 거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 노동자는 일체의 가족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이처럼 공적인 일터(노동시장)와 사적인 가족은 성별 분업 속에서 긴밀히 결합돼 서로를 지탱해준다.

맞벌이 부부도 가사노동은 여성 전담


△ 일은 하고 싶은데…그럼 가사노동은 누가? 취업공고판 앞에 서 있는 여성들. (사진/ 류우종 기자)

엥겔스는 “여성 해방의 첫 번째 전제는 모든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참여시키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2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용 가능한 여성 인력의 48.4%만 노동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물론, 다 알다시피 성 역할 구조와 가사노동 부담은 여성 취업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그러나 게리 베커의 ‘신가족경제학’은 동일한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비교우위 논리에 따라 임금을 더 많이 받는 남성은 시장노동을, 여성은 가사노동을 선택하는 노동분업과 역할분담이 가족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여성은 설거지하고 아이를 돌보라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남성 노동자한테는 ‘가족임금’을 준다는 자본의 논리를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를 위해 24시간을 바칠 수 있는 직원은, 또 철야농성에 돌입할 수 있는 조합원은 가사노동과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될 수 있고 동거 여성한테 집안일을 모두 떠맡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남성 노동자뿐이다.

여성의 노동생애를 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구조는 결혼 및 초산 연령과 맞물리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함몰되는 ‘M자형’ 곡선 형태를 취한다. 결혼과 동시에 혹은 결혼 초기에 출산·양육 등 가사 부담으로 노동시장을 떠나 전업주부로서의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M자형이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사라지고 남성과 유사한 역U형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아직 M자형이 남아 있다.

199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를 보면 취업 기혼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요일 평균 3시간21분이다. 남성의 가사노동은 36분에 불과하다. 맞벌이 부부의 무급노동 시간(가사, 가족 보살피기 등)을 보면 여성은 217분, 남성은 30분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아내가 취업하지 않은 가정의 남성 무급노동 시간도 30분으로 똑같았다. 맞벌이라 해도 가사노동은 여성이 전담하는 성별 역할 구조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런 가사노동의 불균등한 배분에 따라 여성은 시장노동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여성 노동자는 일터에서도 ‘진정한 노동자성’을 끊임없이 의심받고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해도 저임금을 받게 된다. 여성이 야근과 회식을 꺼리고 ‘칼퇴근’하는 것도 “여자들은 직업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청난 가사노동 부담 때문이다. 기혼 취업여성은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는 초강력 울트라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과 ‘취집’(졸업 뒤 시집가거나 집안일에 취업하는 것)은 “현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고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차라리 집에서 편히 애들 잘 키우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혼자 1인 2역, 3역을 감당해야 하는 기혼 여성의 과도한 가사노동 부담 탓이 더 크다.

‘가족친화적 노동’이 효과 보려면…

여성의 가사노동은 고된 노동이라기보다는 여성성에 입각한 ‘가족애의 실현’으로 그럴듯하게 이해된다.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한테 가정은 쉼터지만 여성들은 자신의 일터인 가족 속에서 죽어라고 일해야만 한다. 여성들은 눈뜨자마자 출근해서 가족이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때 퇴근한다. 집안일을 “그냥 집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 가사노동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강도 높은 노동인가? 가사노동과 보살핌 노동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물리적인 ‘노동력 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여성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해내는 노동’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폄하돼왔다. 그러나 여성의 가사노동 전담은 가부장적 성별 분업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실 여성이 담당하는 가사노동을 가사 대리인을 고용해 ‘상품’으로 대체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최근 ‘가족친화적(family-friendly) 노동’이란 말이 유행이다. 일과 가족의 양립을 지향하는 정책, 예컨대 노동시간 단축·주5일 근무제·육아휴직제·탄력적 근무제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주부는 가사노동을 ‘하고’ 남편은 ‘돕는다’는 관념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가족친화적 노동 역시 남성에게는 일을 마치고 ‘여가’를 즐기며 쉬는 권리를, 여성에게는 남성들이 집안으로 돌아오는 순간 ‘밥하는 노동’의 시작을 뜻할 뿐이다. “여성은 가족과는 몸서리칠 만큼 친한 관계라서 오히려 그 친밀함을 떼어놓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족과 친해져야 하는 대상은 남성 노동자여야 한다.”(조주은) 남성 노동자도 가사노동의 ‘조력자’가 아닌 ‘일차적 책임자’로서 능력을 개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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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유, 진도 안 나갑니까

자유를 요구하다 권력을 잡으면 관용을 용납지 않는 기독교의 이중성…강정구를 철없다고 매도하는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을 떠올리다

▣ 장정일/ 소설가

1914년 영국에서 출간된 존 B.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바오, 2005)가 우리나라에 초역된 것은 1958년(신양사 교양신서)이고, 같은 역본이 재간된 것은 1975년(박영사 박영문고)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작·다역으로 소문난, 존경하는 아나키스트 법학자 한 분이 다시 번역했다. 뭐하러 역자는 출간된 지 한 세기나 되어가는 이 케케묵은 책을 새로 번역한단 말인가?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갖고 온 나라가 ‘개그 콘서트장’같이 되어버린 요 며칠간, 상기한 책과 복습 삼아 잡아든 조국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 2001)를 찾아놓고 나서 왈칵 짜증이 치밀었다.

종교개혁이 자유를 성취했다고?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서구에서 벌어진 길고 험난했던 ‘사상의 자유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는 베리의 책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관용하고(313년) 로마의 국교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이성이 속박되고 사상이 노예화되며 지식이 전혀 진보하지 못한 천년”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상의 자유를 얻기 위한 서양인의 고투는 절대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기독교의 등장과 관련되어 있으며, “진보의 이상과 사상의 자유, 그리고 교회권력의 쇠퇴”가 반비례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기독교가 서구 사회를 장악하기 이전의 그리스·로마 시대는 인류 최초의 계몽시대였다. 그들에게는 성서나 성직제도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누린 자유의 표시이자 중요한 조건으로, 그리스·로마 양 시대는 온갖 종교에 관용적이었다. 두 나라의 눈부신 학문과 철학은 종교적 관용을 바탕으로 이성 능력과 토론의 자유가 마음껏 발휘된 경우였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종교적 관용 사회였던 로마에서 박해받았다.

“황제들이 기독교의 경우에 한해 자신들의 관용 정책에 예외를 두었다면, 그 목적은 관용을 수호하는 것이었다”는 간명한 설명은, 기독교가 사이좋게 공존해온 제국 내의 다른 종교에 대해 ‘인류의 적’이라는 공격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양심의 자유라는 원칙이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보다 우선했기에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기독교가 로마를 접수하고 나서는, 곧바로 이교는 물론이고 같은 기독교 교파에 대해서마저 불관용했다는 것이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고 종교적인 자유와 개인적 판단의 권리를 확립하게 해준 일대 사건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견해다. 루터와 칼뱅을 위시한 숱한 종교개혁가들은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들어 교황과 통치자들에게 저항하고 탄원했지만, 개혁의 주류가 득세한 곳에서 숱한 프로테스탄트 분파의 자유는 문자 그대로 ‘불태워’지곤 했다. 종교개혁의 주체들은 자기 교파의 진리만 중요했지,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관용이라는 사회적 문제들을 한 번도 보편 의제로 고찰하지 않았다.

보안법을 방관하는 한국의 루터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 안에서는 자유를 요구하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의무가 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공박은, 고문과 화형을 무기로 1천 년 넘게 다양한 ‘이성의 진보와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아온 서구의 기독교계에 대한 단죄이면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가진 이중성마저 폭로해준다.

4·19와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은 온 국민의 합작품임에도, ‘사상의 자유’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정체를 지킨다는 중도 보수세력의 전유물이다. 이 땅의 루터나 칼뱅 같은 개혁가들은 ‘학문·표현·양심’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보루며, 국가보안법이 언어도단의 법이라고 절실히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강정구 같은 사람을 ‘민주화 세력을 분열시키고, 보수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철없는 사람’으로 매도하기 일쑤다. 베리가 묻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멈춰선 곳에 우리가 똑같이 멈춰서야 한단 말인가?” 진도는 나가지 않은 채, 죽어라 복습만 시키는 한국 사회가 바로 짜증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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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0-3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진도는 나가지 않은 채, 죽어라 복습만 시키는... 장정일 씨, 짱!
 

 

차라리 명분 없는 쇼가 건전하다

‘교육’ 앞세운 리얼리티쇼의 폭력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토요일-순정만화> <해피선데이-자유선언>도 포장된 건전함 쫓아

▣ 강명석/ 문화평론가

스스로 돈을 벌 때부터 일주일에 CD 몇 장쯤은 늘 샀던 필자에게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가 아니라, “그거 사서 뭐에 쓰려고? 니가 평론가라도 될 거냐?”(그럼요!) 조금이라도 돈이 드는 취미생활을 할라치면, 한국의 부모들은 당연하다는 듯 ‘뭐에 쓰려고’라는 말을 한두 번쯤은 던진다. 뭐에 쓰긴? 듣고 좋으려고 그러지.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교양을 ‘쌓는’ 것이 되지만, 대중음악을 들으면 시간 ‘낭비’가 된다. 그러니까, 즐기려면 뭔가 생산적인 ‘명분’이 있어야 한단 얘기다. 그래서 평소에는 춤만 잘 춘다고 두들겨맞던 가수도 해외에서 성공하면 단숨에 ‘자동차 몇백 대’를 팔아도 못 벌 수익을 안겨준 ‘국민가수’가 된다. 당연히 TV에도 오락 프로그램에도 명분이 필요하다. 오락에 공익을 섞어 , 교육을 섞어 <스펀지>, 법지식을 섞어 <솔로몬의 선택>. 반면 멍청하게 명분조차 만들지 못한 노골적인 오락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은 쉽게 폐지되곤 한다.

그 아이들은 자라 무슨 충격을 받을까

특히 노골적인 오락의 정점에 있는 리얼리티 쇼가 그렇다. ‘몰래 카메라’류의 작품을 제외하면 ‘악동클럽’ 같은 스타 만들기나 ‘김종석 대학가다’ 같은 ‘트루먼 쇼’류의 작품들은 모두 방송가에서 사라졌다. 명분 없이 이렇게 사생활을 밝히는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 한계는 연예인들이 토크쇼에서 자기 사생활을 말하는 정도고, 그것도 요즘엔 <야심만만>이나 <상상플러스-OLD & NEW>처럼 ‘국민의 의식조사’나 ‘세대교감’ 같은 것들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실제 연애 프로그램 대신 <실제상황 토요일> ‘리얼로망스 연애편지’처럼 누구도 진짜라고 믿지 않는 커플 프로그램은 있어도, <치터스>처럼 연인들끼리 서로의 불륜을 캐내는 프로그램은 꿈도 꿀 수 없다. 물론 그게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오락 프로그램이 정말 선정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에선 <치터스>는 안 돼도,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인기리에 방영된다. 소재가 자극적이어도 끝에 부부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자는 말 한마디면 ‘명분’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젠 리얼리티 쇼도 드디어 명분을 찾아낸 것 같다.


△ 명분이 있다면 학대도 용서된다. 최근 어린이 학대 논란을 일으킨 <실제상황 토요일-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실제상황 토요일-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문제아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당한다. 아이들은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당하고, 교정이라는 이유로 심한 경우 해병대까지 가야 한다. 심지어 부모들조차 그 아이들이 혹시 자라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했을 때 어떤 충격을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이렇게 출연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리얼리티 쇼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좋은’ 프로그램이란다. 아이가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아이들의 사생활 침해를 통해 리얼리티 쇼만의 ‘충격 영상’을 보여주며 시선을 모으지만,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그것을 공익적으로 포장한다. 명분이 없을 때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지만, 명분이 생기면 근본적인 문제들마저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그 명분의 희생양은 대다수가 얻는 이익(오락적 즐거움)과 상관없는 가장 약한 존재(아이)들이다.


<토요일-순정만화>와 <해피선데이-자유선언> 같은 10대 중심의 리얼리티 쇼도 마찬가지다. ‘순정만화’나 ‘자유선언’은 프로그램 자체로는 흐뭇하다. 그동안 가려졌던 10대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특히 ‘순정만화’는 10대에게도 성인 이상의 현실적인 ‘사랑’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들도 ‘권태기’에 괴로워하고, 자신의 이성 친구에 대한 주변 친구들의 평판에 신경쓴다. 또 외국 오락 프로그램과의 표절 시비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유선언’에서 10대들이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모습들은 시트콤 이상의 재미와 드라마의 감동을 함께 준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이나 일상은 온전히 그들의 진실한 문제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이되, ‘10대’의 사랑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카피도 ‘10대들의’ 진짜 사랑이고, ‘10대들의’ 외침이다. 실질적으로 재미를 주는 건 가려졌던 그들의 사랑과 학창생활을 엿본다는 것이지만,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명분은 그것이 10대의 ‘건전한’ 모습을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정만화’의 커플들은 서로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화하지도 못한 채 MC의 주선에 따라 “앞으로 잘하겠다”는 ‘반성’ 뒤 서로의 ‘포옹’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행동해야 하고, ‘자유선언’에 등장하는 친구의 다툼 역시 모두가 쉽게 화해하고 박수칠 수 있을 만큼의 사연들만 골라 등장한다. 그래서 10대의 이야기는 계속 나오지만 정작 그들의 진지한 감정이 분출될 기회는 차단된다. 다만 그들은 시청자들이 바라보는 10대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래야 10대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프로그램의 ‘명분’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폭력적 관음과 교육 사이

어린이와 10대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명분 안에서만 가치를 가지고, 그들은 자신의 의사와 별개로 ‘구경거리’가 된다. <치터스> 같은 프로그램은 차라리 시청자 자신이 ‘관음 중’임을 인정하게라도 하지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동의하지 않은 관음을 저지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교육’이라고 과시한다. 명분은 중요하지만, 때론 그 명분은 정말 논의하고 지켜야 할 기본적인 룰마저 무시하게 된다. 혹시 지금의 한국 사회가 물의를 일으킨 인물에게 잔인할 정도의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것은, 그들이 정말 그 정도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라, ‘욕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명분일 바에야, 차라리 명분 없는 쾌락이 더 건전할지 모르겠다. 그건 누구에게 피해는 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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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10-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라주미힌님...

로드무비 2005-10-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공감해요.

비로그인 2005-10-3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정말 뭣들 하려는 겐지..핑크 플로이드 뮤비처럼 소시지 찍어내는 공장,이 우리 사회, 맞당께요..

라주미힌 2005-10-3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복돌님의 댓글은 횟칼 같아요.. 스으으윽. ^^;

urblue 2005-10-3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정말 어이없는 프로그램이더군요.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는데....

자신이 이영애라 한다.

나잇살 때문에 눈 좀 고쳤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다 뜯어 고친 것 같다.

업그레이드 시대에 웬 다운그레이드... ㅡ..ㅡ;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세 번 외치니 꿈은 끝났다.

 

 

슬픔...
사랑하는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
늙어가는 모습.
그리고 사라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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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3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뚱뚱해지는 모습도 포함될까요?

마태우스 2005-10-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운그레이드되어도 이영애는 예쁘지 않던가요?

라주미힌 2005-10-3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이영애라는 인물에 대한 꿈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ㅎㅎ
 

<8뉴스><앵커> 중국산 김치 파동은 결국 서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기고 있습니다.

국산 김치는 너무 비싸지고, 싼 수입 김치는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한지연 기자입니다.

<기자> 복지관에서 보내주는 도시락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안유동 할머니. 김치 하나면 반찬 걱정이 없습니다.

[안유동(85)/서울 진관외동 : 곤란하지 뭐, 김차가 없으면.. 쌀보다 이게 더 중요한 거야. 이것 없으면 안되지.] 유독 김치를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복지관에서 김치공급을 줄이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배추값이 너무 올라 직접 담가 먹는건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그 비싼 김치를 해 먹겠소. 빠듯하게 하는 사람이..] 하루 600명의 노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관.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고재욱/은평 노인 종합 복지관장 : 지역의 600세대를 가정 방문해 다 김장을 담가 가지고 다 드렸었는데
절반으로 줄여야 되지 않는냐, 왜냐하면 김장 가격이 3배에서 5배정도 오른다는데.] 급한대로 김치 대신
고추절임 200킬로그램을 담갔습니다.

후원 가정과 김장 김치를 나누는 프로그램도 계획했습니다.

금치가 돼 버린 김치, 긴 겨울 세끼 식사를 어떻게 때워야할 지 서민들은 벌써 걱정이 태산입니다.

[저작권자(c) SBS & SBSi All right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운 겨울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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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0-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 마태님이 서럽다고... -_-;

가시장미 2005-10-3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으흐흐흐흐흐

마태우스 2005-10-3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깍두기가 더 좋아요

비로그인 2005-10-30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그냥 김치 먹는답니다..;;

릴케 현상 2005-10-30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 안 먹음 되지=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