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하고는 3살 차이가 나는데 남동생이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터 저보다 컸어요.
지금은 물론 무척무척 크죠.
여튼 덩치가 비슷하다 보니 별로 형으로 안여기는 경향을 보이더군요.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정도일 무렵에 볕 좋은 마루 앞에서 조각도를 갖고 놀고 있었는데
잘못해서 손가락을 베었답니다. 꽤나 심각하게 베여서 피가 마치 분수처럼 쏟아졌었죠.
동생은 막 울고 있고 손에선 포물선을 그리며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상황을 본 저는 어쨌냐?!
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누나 말로는 세수대야를 가져와서 그 피를 받았다고 합니다.
피를 멎게할 생각은 않고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포물선을 그리며 흐르는 피를 대야로 받고 앉아 있는 형-_-;

아무래도 이게 맺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뒤로 한 3-4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죠.
봄이 되면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 황토를 파러 산 기슭으로 경운기를 끌고 가거든요.
아버지랑 동생하고 갔죠. 적당한 곳을 찾아내고 열심히 흙을 괭이로 파는데...
갑자기...쾅-
윽...-_-
괭이가 제 머리를 내리치는게 아니겠어요.
범인은 제 동생. 흙 파다 말고 제 머리를 내리쳤답니다.
저는 원래 잘 참는 터라 울지도 않고 아버지께 얘기했죠. 피 나온다고.
대충 피 멎는 듯 싶어서 흙 다 파고 가자고 얘기를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됩니다. 당연히 중단하고 집으로 왔죠. 쑥 같은 걸로 상처 부위를 지졌습니다.
동생더러 왜 그랬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답니다.
제 머리엔 초승달 모양의 상처가 남아있게 됐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종종 그 얘기를 하는데 동생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답니다.
당한 사람만 기억하는 건가봐요...

그 녀석의 성격상 복수를 한 것 같진 않은데...여튼 왜 제 머리를 내리쳤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괭이로 내려쳐도 흠집만 조금 난 제 머리는 참 단단하단걸 알았지요.

어쩌면 요즘 급격한 기억력 저하가 그것 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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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2005-11-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피가 나오는 이야기라 웃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웃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엄마도 웃으시네요.^^;; 피를 받은 건 그래도 동생 분의 피가 소중하고 아까워서 어린 나이에 바닥에 흘려버릴 수가 없어서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당한 사람만 기억한다는 거 저도 동의 합니다. 저와 오빠 사이에도 그런 애기가 많죠.^^ 시간 나는데로 저도 올리겠습니다.

라주미힌 2005-11-2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끼로 이마까
빠께쓰로피바다
그런거네요? ㅎㅎㅎ

호랑녀 2005-11-2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라주미한님 저도 딱 그 생각했어요.
도끼로 이마까 바께쓰로 피바다...ㅋㅋ
(이 페이퍼인 줄은 모르고,오늘 김장 열심히 하시다가 피를 보셨단 소린 줄 알았습니다, 소굼님)

▶◀소굼 2005-11-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지나고 나니 뭐 웃고 넘어가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도 꽤나 냉정했나봐요. 당황도 않고 피 받고..흙 마저 파고 가자고 그러고-_-;;
라주미힌님/크;;제 일본 이름을 그걸로 해야할까봐요;
호랑녀님/옛날엔 그런 이름 재밌어 했는데...몸소 실천한 셈이네요;;
김장할 땐 고춧가루만 실컷 묻혔지요^^;
 

학창 시절 그다지 엽기적인 사건은 경험하지 않았다 싶었는데 마태우스 님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팍- 삘(!)이 꽂혀 버려서뤼 어설프게 한 자 적어보렵니다.

전 지금도 좀 그런 기질이 남아 있긴 합니다만, 학창 시절 꽤나 융통성이 없는 아이었지요. '뭐 하지 말아라' 라고 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지요. 심지어 대학에 입학해서는 술 마시고 필름 끊겼을 때의 레퍼토리가 집에 수십 번 전화해서 "나 오늘 늦어서 선배 언니네 집에서 자고 갈께요." 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을 정도니까요. 알코올 마저도 어느 정도 이성으로 커버가 되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대충 눈치껏 알아먹으셨으리라 봅니다.

고로 전 또래 친구들 보다는 선생님들과 더욱 친한 사이였지요. 그렇다고 못 되게 마구 일러 바친다거나 그랬다는 건 아니고요. 말 없고 조용하다 못해 친구들 사이에선 존재감을 거의 인정받지 못했는데,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다보니 선생님들의 눈에는 '저런 애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그런 아이였던 거지요.

하지만 그런 저도 된통 두드려 맞았던 적이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받아쓰기를 해서 다 맞은 이에게는 '상'이라는 글자가 찍힌 색종이를 나눠주곤 했었지요. 노트에 붙여서 10개가 모이면 뭘 주고, 20개가 모이면 뭘 주고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곤 했던...

어느 날 받아쓰기를 했는데 전 분명 하나를 틀렸습니다. 그런데 제 짝이 제 답을 고쳐서 100점을 만들어놓았더라고요. 선생님께서는 100점 받은 아이들은 손을 들라고 하셨고 여느 때처럼 '상' 자가 찍힌 도장을 나눠 주셨지요. 전 분명 100점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건만... 글쎄 제 짝이, "수정이도 100점이에요" 라고 말해버렸지 뭡니까. 소심했던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체 선생님으로부터 100점 받은 아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그 작은 종이를 받고야 말았지요. 아마도 사실대로 말하면 제 짝이 혼나게 될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던 듯. 하지만 100점이 아닌 게 100점이 되어버렸으니 어찌나 기분이 이상했던지, 받자마자 구겨서는 호주머니에 넣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지요. 선생님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제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신 듯, "너 나와!!" 라고 소리를 치셨고, 그 때부터 무차별 구타가 시작했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묻지도 않으셨지요. 정말이지 신체의 모든 부분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전 깨달았답니다. 뺨을 때리시고 머리채 잡고 쥐어 뜯으시고 발길질도 하시고, 쓰러지면 일으켜 세우신 후에 다시... 한 30분은 그렇게 맞은 듯... 입술이 터지고 머리카락은 일부 뽑혀나갔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버렸다지요. (심지어 그 선생님 임산부셨습니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솟구치셨는진 아직도 의문입니다;;) 집에서 손바닥 한 번 맞아본 적 없이 곱게 자랐던 저였건만...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얻어터졌으니, 심지어 아이들은 넘어졌다가 다시 오뚝이 마냥 일어나야 했던 절 보고 막 웃음을 터뜨렸지요. 맞는 거 보는 게 재미라도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패싸움을 구경하는 걸지도;;) 하지만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증오보다는 '내가 잘못했어. 난 죽어야 돼.' 라는 생각을 제가 계속 해대고 있었다는 사실이랍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자아존중감이 심히 낮았었던 듯;;

터벅터벅.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거의 1시간 30분은 걸어서 집에 왔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지요. 하지만 어린 아이의 심히 조심스러워 하는 행동은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겠지요. 어느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엉거주춤, 멍든 엉덩이가 아파서 완전히 앉지도 못한 묘한 자세로 있는 저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제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답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어찌 행동했을까요? 아- 전 그 와중에서도 계단에서 굴렀느니, 자전거 타다가 엎어졌느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변호하고야 말았답니다. 지독한 모범생 증후군...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신 어머니께서는 그 길로 학교로 쳐들어가셨지요. 그나마 차분하고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셨으니 망정이지, 속으로는 아마 끙끙 앓으셨을 겁니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난 후 어머니께서는 그러시더군요. 그 당시 당장 경찰에 신고해버리고 싶었다고.. 참느라고 많이 힘드셨다고...

어머니께서 학교를 다녀가신 후 선생님께서는 저를 부르셨고, 멍 들 때 바르는 연고 하나를 주시더군요. 미안하다고... 하지만 먼지 나듯 두드려 맞은 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되진 않음을... 그게 전부였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곧 출산 휴가에 들어가셨고, 담임 선생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셨거든요. 어쩌면 제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도 전 그 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부들부들 떱니다. 인생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데 있었던 두 가지 일 중 하나인지라... 그 때 왜 그랬는지 이유만이라도 물으셨다면 싶은... (그럼 뭐해요. 제가 대답을 안 했을 거 같은데... 크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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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2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위와 폭력은 무저항과 침묵에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거 같군용... 흐...
평범한 여대생님 답지 않는 유년 시절.. ^^; 정말 말 잘 듣는 학생이었네요.. (저도 조용한 '범생' 스타일이긴 했지만, ㅡ..ㅡ;)
 

이벤트 하신단 페이퍼를 보고는 너무나 평범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쓸 게 없다고 낙심하던 차였는데...
다른 님들의 페이퍼를 읽다보니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이렇게 누추한 펜을 들었습니다 ^^

한때 저는 프로야구 선수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어요.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내가 야구 선수가 되지 못한게 억울(?) 하더라구요. 다른 운동이나 스포츠는 못하지만 야구는 잘 할 자신 있어요. 치고 냅다 달리면 되잖아요, 그까이꺼~

한옥집에 살 때 였는데, 아마 제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거에요.
플라스틱 배트와 플라스틱 야구공, 야구 글러브를 선물받은 오빠를 쫓아 다니면서 야구를 즐겼지요.
착한 오빠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저를 옆에 앉혀 놓았지만
집에 오는 순간 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기꺼이 오빠가 저와 야구 놀이를 해주었지요.

그날도 마당에서 오빠가 슬라이드 볼을 던지고 저는 냅다 치고 달리고 신나게 놀고 있었어요.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여 오빠가 힘껏 공을 던지고 질세라 힘껏 공을 받아친 순간!
슈우우우웅................퍼어억!!!!!!@@@@!!!!!!

한옥집 마루 유리문 아시죠?
그 두꺼운, 너무나 두텁고 불투명해서 문을 닫고 있으면 밖에 누가 왔는지 잘 보이지 않는
그 두꺼운 유리가 깨진겁니다... 유리가 생각보다 좀 약하더라구요 ;;;;

저녁에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던지요.
오빠가요. 오빠가 혼났습니다. 어린 동생이 뭘 아느냐고.... (오빠 미안 ^^;;)
저는 혼날까봐 낼롬 자고 있었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무조건 자는 게 상책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자고 일어나니 평상시와 다를 바 없더라구요.
이 버릇은 그 다음에도 한 번 더 써먹게 되는데요,
그건 다름 아닌 우리 동네에 나타난 기괴한 소녀때문이었어요.

우리동네에는 제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늘 또래 친구들 서너명과 어울려 다녔죠.
어느날 우리 동네에 이사 온  A.
A 는 활발하고 예뻤지만 자기 멋대로 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어요.
대부분 다 온순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A 가 나타난 이후로 아이들이 좀 겁을 먹었지요. 
게다가 A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돌았어요.

밤마다 A와 A엄마가 산에 올라가 제를 지낸다.
A가 지날 때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향냄새)
A는 한밤중에 우리들 집을 돌아다닌다... (산타클로스냐? )

우리는 점점 A를 멀리하게 되고 피하게 되었지요.
어느날, 소꿉놀이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앞에 A가 나타났습니다.
후미진, 우리들만의 아지트 같은 골목이었는데 A가 거기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우리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 수 있었죠.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들은 A를 보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도망을 쳤습니다.
와중에... 저는, 그 소꿉장난감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정말 귀여운 것들이 많았거든요) 
A의 눈치를 보면서 몇가지를 챙겼답니다. 주섬주섬...(나중에 이웅평 대위가 넘어왔을 때도 이걸 챙겼다지요...-_-;;) 
그때였습니다. A의 발이 제 소꿉놀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A를 떠민 것도 A가 막 움직이기 시작한 즈음이었으니 
소꿉장난감에 대한 애정과 저의 민첩함이 반짝반짝 빛나는 대목이죠 ㅎㅎ

쓰러진 A는 주저앉은김에 마구 울더군요.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저도 따라 울면서 소꿉장난을 결국 다 챙겨갖고 왔다는...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열의는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처럼 좀 그런 면이 있구요 ㅎㅎ
그때를 교훈삼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지킨다, 하는 자신감도 생겼죠.

그날 A를 떠민 것을 엄마가 알게 될까봐
저는 또 집에 와서 실컷 잠을 잤습니다. 
A가 머리를 풀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꿈은 그날 꿨는지
며칠 후에 꿨는지 정확하진 않은데
A에 대한 기괴한 소문에 제가 더 보탰다는 건 확실해요 ^^;;

아주 가끔은 정말 괴로운일이 있을 때,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깊이 잠을 자기도 해요.
어린 날 처럼 저절로 다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날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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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1-2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은 얌전한 소녀였군요!
(산사춘님 글을 읽고 올라오니 그런 생각밖에는...흐흐~)

라주미힌 2005-11-2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식호흡하는 사진인가봐요 ㅎㅎ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졌으면 좋겠네요...

mong 2005-11-2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랑소녀였던 플레져님의 어린시절?
ㅎㅎㅎㅎ

로드무비 2005-11-2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희숙의 낮잠에서 깨어나니 온세상이 낯설고 어쩌구~
하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플레져님, 원하는 책 받으시나봐요. 축하드립니다.^^
 

 

라주미힌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따우(는 아실 것 같아서)방에 서식하던 산사춘이라고 합니다. 우선 ‘엽기’라는 단어에 동해 일케 뜬금없이 상판을 디민 저를, 어여삐 아니 불쌍히 여겨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서재질도 뜬금스럽게 하는 주제에 처음으로 이벤트에 참가하려니 무지 민망하고 떨립니다. 라주미힌님의 넓으신 아량을 기대하며, 저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 이야기들(양으로 어필해 보고자 하는 수작)을 되새기면서 뼛속 깊이 반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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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부제: 어무이 수난사)


어릴 때부터 설레발을 떠느라고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울 어무이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읊으시는 TOP 3가 있습니다. 십센치 너비의 옥상난간에서 평균대 운동하다가 어무이가 비명지르는 바람에 떨어질 뻔 했다거나, 트럭이 코앞에 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렸다가 휙 지나가던 일, 유치원 담벼락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다고 껄껄 웃다가 떨어져 놀라는 바람에 한동안 실명했던 사건 등은 순위권 밖입니다.


먼저 제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춘천에서의 사건입니다. 어무이는 이웃들과 함께 강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고 계셨다 합니다. 아장아장 걷던 막내가 사라진 것도 모를 정도로요. 얼마 뒤에 아래쪽에서 빨래를 하고 계시던 한 아주머니가 물에 흥건히 젖어 빽빽 울어대는 저를 안고 달려오셨다는군요. 빨래가 떠내려 오는 것 같아서 건졌더니 그 집 딸내미더라고 증언하셨다 전해집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자빠져 있게 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서울로 이사 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세살 정도였다는데, 언제나 그러했듯이 어무이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 딸을 찾아 골목을 누비는 일과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없는지라 마침 남편분의 출근 때문에 나오신 옆집 아주머니께 저의 행적을 탐문하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택시를 모시던 옆집 아저씨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셨지요. 그런데 차 밑에 엎드려 있던 작은 형체가 갑자기 우왕~하고 사이렌을 불어댔어요. 네, 차가 떠나는 게 못내 서운했던 산사춘이었습니다. 그 후 옆집 아저씨는 출발 전 차 밑 점검을 절대 빠뜨리지 않으셨다는군요.


다음 사건은 저도 기억이 납니다. 네다섯살 쯤인데 오빠랑 친척언니가 저만 빼놓고 놀러가서 잔뜩 화가 나 있었걸랑요. 어무이도 냉장고 청소를 하신다고 바빴구요. 냉장고 선반을 모두 꺼내 화장실에서 박박 닦고 계셨습니다. 냉장고....... 참으로 위험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하얗고 텅 빈 공간이 순진한 아이를 유혹하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저는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험을 하고자 냉장고에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주의산만뇨인 산사춘은 금방 싫증을 느꼈고,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밀었습니다. 그런데 안열려요. 성질이 나서 발로 차고 머리로 박았습니다. 그래도 안열려요. 겁이 나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담부터는 기억이 안나요. 어무이의 증언에 의하면 개미만한 소리가 왱왱 거렸다는군요. 그 소리를 찾아헤매다 냉장고 문을 열었으면 약간은 흐뭇했을텐데, 선반을 끼우려고 문을 여셨다는군요. 그리고 수박이 아니라 공기부족으로 기절한 딸이 바닥으로 쿵! 떨어집니다.

 

아, 걱정마세요. 그런 사고가 많아서 그런건지 요새 냉장고는 안에서도 열립니다. 초딩 때 오빠랑 열린다 안열린다 우기다가 직접 실험해 보았지요. 역시 익숙한 제가 냉장고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자격지심발언: 사춘기 전까지는 저도 아주 작았어요!) 암튼 울 어무이 말씀에 의하면 저는 명이 아주 길 거랍니다. 근데................. 대신 어무이 수명은 줄어서 가슴이 아파요. 흑흑



두번째 “범죄의 재구성” (부제: 이웃 수난사)


몇년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아이가 아파트 창문에서 던진 음료수병에 사람이 맞아 숨지는 사건이요.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했던 일이었거든요. 사층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다 먹은 음료수병을 어무이가 베란다에 놓아두셨습니다. 처음엔 오빠가 알려준 방법으로 물풍선을 만들어 아래로 던졌더랬죠. 그러다 만들어놓은 물풍선이 떨어지면 욕구불만에 마구 떨다가 옆에 있던 음료수병에 물을 담아 던졌습니다. 던지고 나서는 누가 볼 새라 얼른 숨었다가 난간에 매달려 깨진 병을 내려다보는 짓을 여러번 했습니다. 다행히 동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어무이께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제 인생엔 고마운 이웃 여럿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웃들에게 또 못할 짓을 했어요. 방어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절대 다른 아이에게 먼저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는데, 그 날은 정말 왜 그랬는지 저 자신도 이해가 안갑니다. 앞집 남자애가 아파트 계단을 마구 뛰어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 왜 난데없이 발을 걸었을까요. 그 아이는 발이 걸려 시멘트벽에 머리를 쾅 부딪쳤고, 저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총알같이 내뺐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친 날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집에 차마 못들어가고 집주변을 기웃거리다 어무이께 붙잡혔습니다. 질질 끌려가 들어가보니 병원에 갔다온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어무이께 맞아가면서 엉엉 울며 빌었지요. 다행히 하늘이 도우사 작은 상처만 났고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들었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미안한 일이어요. 경택아, 미안하다!  

 

그럼에도 함 붙어보자는 애들도 많았지만, 카드와 선물로 가늠해보면 초딩시절 만만치 않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확인되지 않는 과거는 뻥을 쳐도 됩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기피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그 시절 등교길에서는 종종 죽은 쥐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그럼 어김없이 실내화 주머니에 죽은 쥐를 다소곳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하교길에 평소에 저를 괴롭혔던 남자애들에게 던져줬습니다. 던지기 전에 쥐꼬리를 잡고 마구 돌린 뒤 던져주면 효과가 더 컸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모양입니다. 제 손, 잡아주실 거죠?      



세번째 “그 많던 미꾸라지는 어디로 갔을까” (부제: 미꾸라지 수난사)


제 페이퍼에 곤충학대기를 쓴 적이 있는데, 사실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 학대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나마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이미지(뭐?)마저 망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돌팔매를 맞더라도 어린 시절 제 안에 있던 폭력성을 까발리는 과정을 통해, 저도 멀쩡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바람입니다(닥쳐!). 부추겨 주신 그 분께 감사드려요. 그래도 아직은 ‘어류’까지밖에 말 못하겠어요. 나름 진화과정을 보이는군요.


제 성격을 알면서도 우리집은 참 여러 동물을 키웠더랬습니다. 언젠가는 아부지가 어항을 거실에 설치하셨어요. 반짝이는 비단잉어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좁은 어항에서 유턴하기도 힘든 잉어들이 불쌍해 보여서...................... 어른들만 안계시면 어항 벽을 마구 쳐댔지요. 놀라서 턴 하다가 벽에 부딪치라고. 어른들만 안계시면 어항 속에 손을 넣어 휘저어댔어요. 그 고운 피부 한 번 만져보려고. 걸리면 어무이한테 디지게 맞는데도 그 짓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금붕어를 해부한다는 겁니다. 심히 업되어 그간 탐독한 과학책과 시골에 놀러갈 때마다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여 아이들의 탄성 및 구토를 자아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을 구워삶아 남은 금붕어를 산 채로 몇 마리 챙겨왔습니다. 사육하면서 두고두고 실습하려고 어항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 한참 놀고 왔더니 한 마리가 사라진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자 그 때 감이 왔습니다. 마침 잉어들이 다른 금붕어들을 마구 쫓아댕기고 있는 겁니다.


저 악마같은 잉어들!...................하면서 계속 구경하고 자빠져 있었습니다. 꼬리부터 아작을 내는구나야 하면서... 어무이가 아시면 따로 금붕어를 꺼낼까봐 말없이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저녁 먹으라고 어무이가 소리지를 때까지요.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들은 금붕어가 거기 왔다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만 압니다. 이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압니다만 공소시효 만료입니다. 지금은 생각할수록 금붕어들이 참 불쌍하군요(가증!).


하지만 더 불쌍한 아이들이 있었으니 미꾸라지들입니다. 누가 거북이 사촌 남생이를 선물로 사주었거든요. 어무이는 남생이 먹이로 시장에서 팔던 미꾸라지들을 사오셨습니다. 안그래도 남생이가 신기해서 하루종일 붙어있던 차에 미꾸라지들까지 바가지로 밀려오니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마구마구 생겨났습니다. 처음엔 아무리 괴롭혀도 입을 열지 않던 남생이가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물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주요 일과였지요. 그 상태로 번쩍 들고 오빠에게 디밀면 오빠가 기겁을 하고 도망쳤거든요. 마구 화를 내시길래 부모님께는 한 번 밖에 못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역시...... 꼬리부터 아작을 냅니다. 


그 후 미꾸라지는 여러 가지 실험재료로 사용됩니다. 물이 담긴 양동이를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던 차에, 미꾸라지를 넣고 돌리면 미꾸라지만 떨어지지 않을까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안떨어지더군요. 그 다음에는 어느 높이에서 떨어져야 미꾸라지가 죽을까 싶어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가 결국 옥상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옥상의 햇볕을 받으면 미꾸라지를 말려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가게에서 팔던 이십원짜리 노가리에 심취한 탓입니다.


어무이가 한번만 더 옥상에서 말린 미꾸라지가 발견되면 가만 안놔두겠다고 하시어 실험실을 부엌으로 옮깁니다. 곤충은 라이타로 구웠지만 미꾸라지는 가스불로 구워야 제격인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탄 냄새가 안빠져 어무이께 치도곤을 당한 뒤엔 냄새가 나지않는 방법을 고안하게 됩니다. 냉장고에 얼려서 텔레비전에서 본 냉동인간 프로젝트를 실행해보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 및 접근도상 들킬 위험이 크니까요. 그 때 마침 아부지의 양주가 눈에 띄더라구요.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엔 몇방울로 시작하다가 나중엔 원액으로 승부하게 됩니다. 마취되어서 죽은 듯이 뻗었던 미꾸라지가 물에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게 환장하게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농도가 진해질수록 미꾸라지 회생률이 떨어지더군요.  


이렇게 미꾸라지에 대한 가학성이 심해지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미꾸라지로 과녁맞추기와 토막살어로 가다가 결국엔.................................. 당시 유행하던 스카이 콩콩을 사용하고 말았던 거예요. 미꾸라지를 마당에 늘어놓고 미끌거리는 그들이 옆으로 뾱뾱 삐져나가면 끝까지 쫓아가서....................... 죄송합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추어탕을 즐기시는 분들께는 더욱 죄송합니다.


 

암튼 다시 한 번 반성합니다. 어무이가 제가 어렸을 때 패도 너무 팼다고 항상 원망했는데, 제가 한 짓을 써놓고 보니 그 당시 울 어무이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몇년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랬더니 어렸을 때의 감정상태가 떠오르더군요. 하고 싶어서 속에서 불이 막 올라오고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구요, 그 좋아라하는 밥시간도 잊게 되는 몰아의 경지로 진입하게 되더라구요. 잘했다는 게 아니라 저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강하게 끌어당겼다는... 제 갸날픈 서재인생이 파탄날지 모르겠지만, 이벤트를 위해 이 한몸 바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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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11-20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히 최고의 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춘님. 님의 글을 읽고나니 제가 엽기라고 써놓은 게 부끄럽습니다...

2005-11-20 0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05-11-2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흐흐흐흐 엽기 산사춘의 유년기
잘 읽었습니다 ^^

호랑녀 2005-11-2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왜 우리 아이들을 야단칠까요. 산사춘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엽기 어린시절을 보냈던 산사춘님도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는데(봤냐고 하신다면 드릴 말씀이 없사오나)...
이제 걱정 안할랍니다.

플레져 2005-11-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닙, 지존이십니다.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주미힌 2005-11-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슬래쉬, 하드고어 무비를 보는 듯
서걱서걱 갈고 써는 소리가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한 잔혹사... ^^ 잘 읽었습니다.

사실 원래는 주제를 저런 '개인의 역사'를 끄집어 내자였는데. '소수'의 역사일 것 같아서 안했드니
착오였네요. ^_^;

날개 2005-11-2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산사춘님...........!!!!^^ 지존이십니다.2

깍두기 2005-11-2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의 열혈팬이긴 하지만.....
님의 어머님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정말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반 애들을 야단치지 않겠습니다. 어려서 뭔짓을 해도 이렇게 예쁜 아가씨로 자랄 수 있으니.....ㅎㅎㅎ

로드무비 2005-11-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마이 도러도 걱정할 것 없겠네요.
말썽 피울 때 님을 떠올리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듯.ㅎㅎ
이벤트 뽑히셨네요. 당연하지요. 축하드립니다.^^

산사춘 2005-11-2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하지 않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절 어떻게 보실까 싶어 쓸까말까 마이 주저했는데, 용기를 주시는군요. 어무이께 잘해야 되겄어요.
 


컥 _-_)~ ' 누가누가 깊이 패이나' 를 했던 추억이 있었더라면 참말로 좋았을텐데.......... 쩝.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 첫번째 " 배불러! "

저는 어릴적에 가난한 단칸방에서 자라야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짜장면 하나를 시켜서 언니와 오빠와 함께 나눠 먹어야 했던 그 시절. 피 튀기는 그 치열한 젓가락질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왈: " 나 배불러!! "

오빠왈: " 어 그래? 너 그만 먹어. "

나왈: " 나 배부르다니깐!!!!! ㅠ_ㅠ"

오빠왈: " 알았다구!!! 그만 먹어!!!! "

나왈: " 엄마한테 이를꺼야. 나 배부른데 못 먹게한다고. 엉엉엉 ㅠ_ㅠ "  

어머니께서 그날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는 " 배불러" 가 아니라 " 배고파 " 라고 하는 거란다.
컥. 배고파와 배불러를 혼동하다니.. 이런~!!!!! _-_)~ (지금 생각해보니 무지 창피함 ㅋㅋ)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 두번째 " 성이 '막'이고, 이름은 '둥이'예요. "

어릴적에 삼촌들과 함께 바다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지요. 그날 길을 잃어버려서 미아 보호소에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무쟈게 울고 있는 저에게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아저씨왈: " 누구랑 왔니? "

나왈: "삼촌들이랑요. 엉엉 ㅠ_ㅠ "

아저씨왈: " 이름이 뭐니? 삼촌이름 알지? "

나왈: " 네... 제 성은 '이'구요. 이름은 '미애'예요.
그리고 우리 삼촌의 성은 '막' 이구요. 이름은 '둥이'예요.

아저씨왈: " 삼촌이름이.. 막둥이라고?_-_)~  "

그날 미아보호소에서는 이런 방송이 나갔습니다.
" 하얀색에 검은색 줄무늬를 원피스를 입은 6세의 여아가 막둥이 삼촌을 찾습니다.
막둥이 삼촌을 찾습니다 "
다행히 우리 막내삼촌이 방송을 듣고 저를 찾으러 왔어요. ㅋㅋ

아니, 맨날 '막둥아 막둥아~' 그러니깐.  당연히 삼촌이름이 막둥인줄 알았죠!!!!!  이름도 안가르쳐줬으면서 흥=3=3 아직도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하며 저를 놀린답니다. ㅋㅋ

 

썰렁한가요? 안그래도 추운데.. 최송합니다. 으흐흐흐흐 ^0^  좋은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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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20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귀여운 장미의 어린시절이구만~~

가시장미 2005-11-2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멍청한 장미의 어린시절이라구 해야 할 것 같아요. ㅠ_ㅠ

호랑녀 2005-11-2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따뜻해요.

가시장미 2005-11-2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호랑녀님 방금 마태님 서재에 갔다가 님의 글을 보고 바로 님의 서재를 즐찾했는데..
여기서 뵙게되네요. 으흐흐흐흐















호랑녀
저랑 제 친구들은 외계인이에요. 쉿!!!  - 2005-11-20 10:07

사실.. 저도............... 지구인이 아닌 것 같아서요. 쉿!!! _-_)~

야클 2005-11-2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막둥이로 불렸는데. ^^

라주미힌 2005-11-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다..

플레져 2005-11-2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어릴 때 이모네 오빠들을 별명으로 부르던 어른을 따란 한 적 많았는데...
귀여운 장미 였네 ^^

날개 2005-11-20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넘 귀여워....^^

stella.K 2005-11-2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 있지 뭐. ㅋㅋ.

가시장미 2005-11-2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형. 나두 막둥이야~ 으헤헤헤. ^-^

미힌형. 형.. 서재 주인장은 추천 두개 안되나요? 으흐흐흐

플레져언니. 따라한게 아니구요. 정말 이름인줄 알았어요. -_-a ㅋㅋ

스텔라형. 그쵸? 제가 멍청했던 것이 아니죵?!!!!!! -_-)/ ㅋㅋ

조선인 2005-11-21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도 배불러와 배고파를 혼동해요. 둘 다 배아픔류로 치부되는 듯.

가시장미 2005-11-2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그런가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군요. ^-------------^* 어머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