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깐 재밌는 걸 많이 하게 된다.

리더스가이드에서 어찌어찌 하다가 하게 된

간단한 100줄 평 쓰기..



아마 책 뒷날개에 제 이름이 들어가나봐요 호호호.

 

희망, 긍정, 낙천주의가 인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자주 의심하고, 공고히 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감을 느낀다. 폴리아나의 극단적인 낙천주의적 성향이 의아스럽지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려는 노력, 결국에는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은 잔잔하고도 아름답게 이어진다.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의 진짜 불행은 행복해지려는 자기노력의 부족, 자기 긍정의 힘을 불신 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소설이다.        <- 요로코롬 썼지용..

 

 

빨강머리 앤 같은 느낌이 나면서도 왠지 동화같고,
나랑은 안맞는다는 느낌이 ㅎㅎㅎ ㅡ..ㅡ;
어렸을 때는 좋아했을 법한...

 

 

새로운 사실...


pollyanna  : 
극단적인 낙천주의자

 

저 책이 당시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나봐요.. 사전에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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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11-2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정말요! 빨강머리 앤 같네. 근데 라주미힌님 저렇게 쓰셨다니 꼭 나를 위한 책 같네요. 한권 사서 읽을까 말까? 어때요 라주미힌님...?^^

라주미힌 2005-11-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주 받은 것도 아닌데, 제가 요즘 너무 광고를 하고 다니는 거 같아요... ㅎㅎ
아.. 스텔라님이 좋아하실 만한 책일지도... (확답은 못 드립니다 ^^)

깍두기 2005-11-2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저 책을 중학교 때 읽고 정말 좋아했지요. 그러나 몇년 후에 보니 영....^^

라주미힌 2005-11-27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저도 그런 생각을... 대상은 아마도 중학생 이하.. ^^;;

물만두 2005-11-2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축하드려요^^

라주미힌 2005-11-2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사합니당.

날개 2005-11-2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재미있어 보입니다.. +.+

아영엄마 2005-11-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라주미힌님은 다방면에서 이름을 날리시는군요~ ^^
 

젊은 벗에게,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성격으로 볼 때, 당연한 귀결일 수 있습니다. 보수는 이념보다 이권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진보는 이념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이권이 있는 곳에서 부패가 생길 수 있다면, 이념을 중심으로 모이는 진보는 서로 이념의 동질성을 확인하려고 하므로 분열의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사회를 볼 때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듯합니다. 보수는 부패로도 망하지 않는데, 진보는 그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부패로 지리멸렬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문시장을 보면 ‘수구는 선동으로 흥한다’라고 말해야 할 듯합니다.

   시간이 지난 사안일수록 선동의 성격은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강정구 교수의 발언으로 빚어진 소란에서 조중동은 서로 뒤질세라 이념 공세를 펼쳤습니다.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자살을 강요하는 숭김파의 체제 물 타기 공세는 멈출 조짐이 아니다”라고 했고, 중앙일보는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나”라고 했으며, 조선일보는 “가만히 앉은 채 당하느냐, 혼신의 힘으로 결사항전을 하느냐가 대한민국 세력’에 닥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간직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했던 볼테르의 말을 되돌아보기엔 그들이 벌이는 선동의 수준은 너무 저질입니다. 선동에 고급한 게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전교조에 대해선 어떤가요? 전교조 죽이기에 앞장서는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전교조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훈계조로 말합니다. 조선일보가 애당초 ‘전교조의 초심’에 찬동했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오늘 많은 독자들은 과거 조선일보가 “교사가 노동자냐?”라고 선동하면서 전교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점을 잊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전교조의 연가투쟁 연기에 대해 ‘여론 악화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달았습니다. 그들의 수치 해석법은 71.4%의 지지를 전폭적인 지지로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중앙일보라고 조선이나 동아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른 입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조중동의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습니다. ‘밤의 대통령’이라던 조선일보와 중앙-동아의 선동은 국민이 그들이 꾀했던 대통령, 국회 구성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오히려 더 심해진 듯합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선동이 저질이라는 점보다, 조중동이 꾀했던 정치구도와 다른 선택을 했던 국민과 시민사회가 조중동의 헤게모니를 계속 용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수준이라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젊은 벗이 그리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에선 조중동 헤게모니가 관철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조중동 헤게모니를 극복하지 않는 한, 젊은 벗이 그리는 사회는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선 적어도 ‘수구가 선동으로 흥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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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이 신(神)을 발명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사고 안에서, 사고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고가 생겨난 것일까? 인류는 언제 어떻게 ‘초월’과 접촉하게 되었을까? 초월성의 직관, 그것은 최초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이 난해한 물음에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초월성을 체험하는 일은 인간의 지성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구조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신화적 사고는 구석기 시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뇌 구조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것.

1980년대 이른바 ‘뉴아카데미즘’의 기수로 일본 지성계를 흔들었던 저자. 그는 인지고고학의 연구 성과에 기대 인류의 초월성 체험이 대략 3만 년에서 4만 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진단한다.

‘스피리트(Spirit·정령)’로 인해 인류는 ‘초월’과 만나게 되는데, 우리의 직접적 선조인 현생인류는 이전의 네안데르탈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뇌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뉴런의 결합 방식이 훨씬 복잡해져 다른 영역의 지식을 횡적으로 연결해 가는 새로운 지성의 통로가 열렸다는 것.

“비유를 본질로 하는 ‘유동성 지성’이 엄청나게 분출하면서 ‘감각 저편’에 대한 초월적 사고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구석기 인류의 사고에서부터 일신교 성립에 이르기까지 초월적인 것에 대해 인류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답파(踏破)하고자 한다. 신화에서 시작해 글로벌리즘의 신학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걸음걸이로 인류의 지(知)와 종교의 기원을 더듬는다.

이 책의 시리즈 제목 그대로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야생적 사고의 산책)’다. ‘스피리트에서 유일신’으로의 이행 과정을 세밀하게 살피며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이나 국가의 탄생이 어떻게 일신교적 세계관의 탄생과 연관되는지 탐색한다.

저자는 현대의 상품사회에 이르러 인간의 마음 내부에 있는 초월성의 영역을 생생하게 일깨워 주던 스피리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스피리트는 더는 사람들의 영혼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도 불어오지 않는 시대, 인류의 마음의 역사에서 이처럼 빈곤한 시대는 없었다….”

수천 년에 걸쳐 초월성으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이름을 부여해 온 것은 종교였다. 그러나 이제 그 통로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웬만해서는 은총이나 기적조차 통풍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자는 낙관한다.

인류에겐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뇌이자 마음이다. 수만 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며 본래의 순수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현생인류의 뇌 속에서는 아직도 스피리트가 연면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여전히 야생(野生)이다!”

원제 ‘神の發明’(2003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17세기 바로크시대를 연 이탈리아 천재화가 카라바조(1571∼1610)에 관한 평전이다. 우리에게는 대중적으로 낯선 화가이지만,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에서는 10만 리라짜리 지폐 앞면을 장식할 정도로 대접받고 있는 문화적 영웅이다.

저자가 평가하는 카라바조의 위대함은 교회나 제도에 종속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중세시대에 인간 내면의 추악함, 고통, 배반, 슬픔, 속임수, 환희의 체험 등을 화폭에 표현하며 ‘아름다움과 추함, 성속(聖俗)의 경계를 허물었던 화가’라는 것.

살인자로 오랜 도피생활을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던 삶을 산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의 거지, 불량배, 매춘부, 집시, 협잡꾼 등을 때로 예수처럼, 성자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표현했다. 하늘 위의 신이 아니라 땅 위의 신을 화폭에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미술평론가 못지않은 전문적인 작품 설명과 책의 주인공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수준 높은 미술서가 되었다.

허문명 기자

 

 

 

 

 

1923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 니에프의 책을 번역했다. 막심 고리키가 저자의 풍부한 자연묘사 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키플링의 ‘정글북’이나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 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대자연 묘사는 탁월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이다. 김 욱 옮김.

엄주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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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1-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실행이 안되는데요... ㅜ.ㅡ

이리스 2005-11-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제 된다. ^^

라주미힌 2005-11-2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놀랬습니다!!
아마 로딩하는데 시간이 걸렸나봐요.

urblue 2005-11-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깜짝이야.
제가 전에 쓰던 이미지로군요. 전 줄 알고 놀랐어요. -_-;

라주미힌 2005-11-2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계세요... 못질 좀 하게 (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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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1-2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트로파노프!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추천 꾸욱~

라주미힌 2005-11-2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수같아요... 속을 휙 훑고 지나가는 듯..